'구일중'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10.09.20 김탁구, 아직도 여운이 남는 팔봉 선생과 팔봉 빵집! (13)
  2. 2010.09.18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 가장 불행했던 사람? (18)
  3. 2010.09.18 제빵왕 김탁구, 제작진의 현명한 속임수가 맞을까? (8)
  4. 2010.09.17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도 사실상 해피 앤딩인 이유? (12)
  5. 2010.09.16 김탁구, 구마준보다 더 깊은 상처를 가졌던 구일중 (5)
  6. 2010.09.16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은 한승재와 함께 떠나게 될까? (9)
  7. 2010.09.15 제빵왕 김탁구, 신유경과 서인숙의 운명적인 한판? (12)
  8. 2010.09.12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은 정말 비열한 인간인가? (12)
  9. 2010.08.09 제빵왕 김탁구, 구마준은 2차 경합에서 탈락한다? (12)
  10. 2010.08.07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은 정말 나쁜 남자인가? (9)
  11. 2010.08.05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 VS 신유경의 자존심 대결 승자는? (24)
  12. 2010.08.05 제빵왕 김탁구, 탁구와 유경의 어긋나는 운명? (11)
  13. 2010.08.01 김탁구,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의 역설적인 의미 (20)
  14. 2010.07.31 제빵왕김탁구,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8)
  15. 2010.07.30 제빵왕김탁구, 공주댁은 왜 구일중에게는 침묵을 지킬까? (11)
  16. 2010.07.30 제빵왕 김탁구, 공주댁은 살인 현장을 지켜봤을까? (14)
  17. 2010.07.29 제빵왕 김탁구, 아직도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의문들? (5)
  18. 2010.07.29 제빵왕 김탁구, 세상에서 제일 배부른 빵은 무엇일까? (1)
  19. 2010.07.23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은 누구에 의해 파멸될까? (20)
  20. 2010.07.22 제빵왕 김탁구, 주목해야할 몇가지 새로운 갈등들 (17)
  21. 2010.07.17 제빵왕 김탁구, 변화를 암시하는 중요한 상징물들 (26)
  22. 2010.07.16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한승재를 옥죄는 운명의 불길한 예감? (12)
  23. 2010.07.16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의 후계자는 과연 누가 될까? (3)
  24. 2010.07.09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이 동정의 여지가 없는 이유? (19)
  25. 2010.07.03 제빵왕김탁구, 팔봉선생의 장인의식과 빵의 교훈? (5)
  26. 2010.07.01 제빵왕 김탁구,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의문들? (3)
  27. 2010.06.26 제빵왕김탁구, 구일중은 왜 김미순을 납치하려고 했을까? (16)
  28. 2010.06.25 제빵왕김탁구, 탁구의 꿈은 착한 사람이 이기게 되는 세상? (5)
  29. 2010.06.25 제빵왕 김탁구, 악녀 서인숙이 동정을 받을 수 없는 이유? (5)
  30. 2010.06.19 <제빵왕 김탁구>가 19세 이상 관람가가 된 이유? (9)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여운이 남습니다. 탁구의 발견이 그 가장 큰 이유입니다. 탁구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현실의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인물이었습니다. 식상하고 판에 박힌 인물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작 우리 사회에서 식상하고 판에 박힌 인간은 한승재나 서인숙, 그리고 구마준 같은 인간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전염병처럼 퍼져있습니다. 한승재나 서인숙 같은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러니 도덕과 양심을 강조하는 사회적인 트랙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탁구을 식상하고 판에 박힌 인물이라고 하면 그건 자기모순이 됩니다. 교육이나 사회에서 추구대상이 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식상한 존재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 자신을 너무 기만하는 것입니다. 원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초로 돌아가야 합니다. 탁구는 원론이고 기초 같은 존재입니다. 탁구야 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존재이며 가장 신선한 존재입니다. 경쟁과 탐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쌍두마차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의 실타래를 풀어가야 함에도 현실은 더욱 더 꼬이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이미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그런데 탁구의 이면에는 팔봉 선생이라는 큰 산이 있습니다. 팔봉 선생이야 말로 탁구를 탁구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래서 참 의미있는 존재입니다. 팔봉 선생은 우리 사회의 얽힌 실타래에 대해 침묵으로 웅변합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듯한 우리 삶을 한 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팔봉 선생이 죽었다고 해서 그가 과거의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탁구처럼 우리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변화의 힘 그 자체입니다.



 

1. 참 된 교육의 힘

팔봉 빵집은 참 된 교육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학교나 학원이라는 교육 기관과 비교해 볼 때 팔봉 빵집은 참된 교육을 가르치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고, 참된 재능과 적성이 기본이되며, 기술 이전에 인간이 중심이 됩니다. 단순히 개인의 스펙을 업하기 위해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닌 진정으로 인간다움을 추구하고 소질과 적성을 개발하는 그런 곳이 바로 팔봉 빵집입니다. 팔봉 빵집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2. 장인 의식

팔봉 선생의 봉 빵은 장인 의식의 결정체입니다. 그가 만든 빵에 대해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있습니다. 무엇을 만들어도 혼을 불어 넣는 정신이 장인 의식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장인 의식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너무 가볍고, 속전속결입니다. 아이들이 김치보다는 행버거를 더 좋아하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성형을 통해 외모에만 치중하는 그런 가벼움이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큰 틀을 놓고 볼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용적인 지식과 사회적인 인정이 크게 작용하면서 실속보다는 겉멋만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직업의 귀천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이들에게 장래 되고 싶은 직업이 무어냐고 하면 소방수가 수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회 봉사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중요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연예인과 대통령이 최고의 가치를 발합니다. 사실 연예인이야 말로 장인 의식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이 됩니다만, 그러나 실제로 연예인을 선택하는 것은 외관으로 보이는 화려함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교육과 관련된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경쟁의 가장 정점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깨어져야 합니다. 바로 팔봉 선생과 팔봉 빵집에 그 해답의 일단이 있지 않을까요.



 

3.인간 중심의 관계

팔봉가와 거성가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인간에 대한 생각입니다. 팔봉가의 행복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인간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거성가는 인간들의 반목과 탐욕으로 물질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불행을 겪습니다. 이 두 공간을 우리의 전통적인 사회와 서구의 물질적인 사회로 양분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이나 서구에 대한 인식은 어쩌면 편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식의 비교가 이제는 무의미해졌다고 할수도 있구요. 이미 우리 사회가 서구 사회보다도 더 물질적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팔봉 빵집은 참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밤 하늘에 보석 같이 빛나는 그런 공간입니다. 우리 사회가 팔봉 빵집처럼 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기본적인 정신은 여젼히 우리 사회에 유효합니다. 높은 시청률 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대한 생각도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제빵왕 김탁구>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구일중의 탁구에 대한 집착은 그야말로 기형적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그를 수가 있나 구일중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이지만 구일중은 단순히 탁구에게 집착해온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의지해 왔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구일중의 마음 속 상처는 어느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출생의 비밀과 할머니 홍여사의 죽음을 목격한 마준 못지 않게 구일중의 마음 속 트라마우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기다 뇌출혈을 일으켜 몸도 자유롭지 않게 되겠습니다.

KBS 드라마 캡처

구일중이 자신의 아내 서인숙과 한승재가 불륜을 저질렀단 사실 정도는 자신이 미순과 저지른 불륜을 생각하면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참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인숙이 그토록 탁구를 멸시하고 천대했지만 구일중은 마준을 내치지 않았습니다. 마준은 탁구만을 애정으로 감싸는 구일중 때문에 많이 비뚤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구일중이 이 사실을 자세하게 눈치 챈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소통의 부재라기 보다는 소통의 어긋남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따라서 구일중에게 마준의 비뚤어진 인간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입장을 바꾸어서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존재인 구일중을 이해하려고 한 인간들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바다위에서 부유하는 섬 같은 존재였습니다.

KBS 드라마 캡처


드라마 상에서 구일중 만큼 답답한 인물도 없습니다. 바보 같은 인물도 없습니다. 김탁구의 바보같은 성격은 구일중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정말이지 구일중은 바보같은 존재였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이란 죄다 혼자서 삭여야만 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아무리 거성의 회장이면 뭐합니까? 십수년 동안 마치 암덩어리처럼 비밀을 안고 살아왔으니 구일중은 정말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 패기의 구마준의 삶과 사랑에 대한 몸부림처럼 그렇게 발버둥 칠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마준이처럼 그 마음의 상처가 부각되지는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대문이구요. 클럽을 전전하며 여자들과 타락을 일삼는 그런 마준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구 말이지요. 구일중에게는 거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과 가정과 우정을 지키려는 책임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마준처럼 무책임하게 자신의 신세만을 한탄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일중이 마준처럼 술이라도 마시고 취기에 소동이라도 부리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오직 구일중에게는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구일중의 옆에는 믿을 만한 인간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회장님, 회장님 하며 따르는 그 탁구 말입니다. 어린 시절 마준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없으며 자기 중심적이었습니까? 그 애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구일중은 몸서리쳤을 것입니다. 일중에게 탁구의 존재는 후계 문제만이 아니라 탁구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위로 받고, 심지어 치유받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일중에게 탁구는 참 의미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전의 글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50%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끝났다. 첫 회가 방영될 때만 해도 이런 시청율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대중들의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국민드라마로 떠올랐다. 마지막 30회가 다가옴에 따라서 결말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그만큼 화제가 되는 드라마였고 상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30회가 끝난 지금 무난하게 결말을 마무리지었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으로 서인숙에 대한 열려진 결말 처리는 선택하기 어려운 비극적인 결말과 해피한 결말 사이에서 제작진이 고심한 흔적처럼 보인다. 마지막 서인숙의 장면은 섬뜩하다 못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낼 정도였다. 서인숙이 미쳐버린게 아닐까 할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닌 인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인숙은 법적인 처벌을 당하는 한승재와는 달리 스스로 파멸되는 그런 응징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한승재와 서인숙에 대한 엄벌을 기대하고 그러한 기대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위장으로 보인다.
 

드라마가 결말로 향해 나아가면서 서인숙은 한승재와는 달리 나약한 모습들을 곳곳에서 보여주면서 해피엔딩으로 처리하려는 징후를 노출하는 듯 했다. 끝까지 악한 모습을 보여준 한승재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구일중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면서 한승재와는 멀어지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이런 일련의 서인숙의 변화로 판단해 보면 제작진은 서인숙을 해피 엔딩에 넣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진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들은 서인숙의 파멸을 원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서인숙의 운명에 대해 제작진은 시청자들과 충돌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한승재와 서인숙이 그 악의 댓가를 지불받지 않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부정한 곳이 되겠는가 말이다. 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드라마가 허구의 세계라고 해도 현실과는 완전히 유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서인숙과 한승재가 해피 엔딩이라는 틀 속에 그 독자성을 잃어버렸다면 이 드라마는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결말로 원망을 불러 왓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제작진은 당초의 해피엔딩을 밀어 붙일 수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 선택한 것이 열린 결말이 아닐까 싶다. 제작진은 비극과 행복 이 둘의 가능성을 다 열어 놓는 열린 결말로 처리함으로써 상상의 여지만을 남긴 것이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해피엔드와 새드엔드 양자를 다 만족시켜주는 선택 말이다. 그러면서도 포면적으로는 서인숙의 악녀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켜주면서 시청자들을 만족시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표면적으로는 대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서인숙에게 악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남겨두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적으로 서인숙은 해피엔딩의 상황 속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서인숙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말이다. 아무리 환경이 서인숙의 해피엔딩을 불러오는 성격이라고 해도 서인숙 자신이 변화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서인숙이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는 구마준이다. 즉, 서인숙이 한승재와 함께 악행을 저질러온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이 구마준이의 거성 장악이었다. 그런데 이런 구마준이 신유경과 함게 여행을 갖게되는 마당에 굳이 마준이나 유경에게 같날을 세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제작진은 결말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표면적인 사실과는 달리 그 깊은 이면에는 서인숙이 행복해 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참 현명한 속임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KBS드라마 포토박스입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제빵왕 김탁구>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50%대의 고공 시청률에 육박하며 국민 드라마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기성세대들에게는 중년연기자들이 전해주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젊은 세대들에게는 젊은 날의 초상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풋풋함과 시행착오의 삶이 어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처음부터 의도하고 제작하였다면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단원 막과 관련해서 우려했던 해피 엔딩은 피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적어도 한승재와 서인숙은 악에 대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의 흐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견의 흐름을 존중해 준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이미 짜놓았던 극본의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결말이 전적으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참 잘 된 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등장인물들의 결말들과는 달리 서인숙만이 열린 결말로 끝났습니다. 아마도 서인숙마저도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기에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서인숙을 고집불통의 악녀로 여전히 남겨두고 있지만 사실상 서인숙에게는 해피엔딩인 셈입니다. 제작진들이 교묘하게 시청자들을 속인 셈입니다. 왜 그럴까요?



언뜻보기에 서인숙은 변화지 않은 인물로 마무리를 짓고 있지만 그녀를 고통 속에 빠트려온 주위의 거의 모든 조건들이 해결된 셈입니다. 한 사람 구일중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구일중은 끝까지 서인숙을 용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구일중을 제외하고 나면 서인숙에게 주위의 다른 인물들은 호의적으로 환경으로 변화하여 자리합니다.


KBS 드라마 캡처



우선, 서인숙에게 가장 도전적인 인물이었던 신유경이 마준과 화해를 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여행을 다녀와서라도 신유경은 결코 서인숙의 라이벌로 자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준이 신유경이 차고있던 서인숙의 팔지를 돌려주는 것이 단적인 예가 되겠죠. 신유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인숙이 신유경을 무시하고 천대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가능성은 아주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마준입니다. 마준을 거성가의 주인으로 앉히려는 서인숙에게 마준의 몰락은 무엇보다도 참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준은 비록 거성의 대표는 되지 못하지만 몰락하지는 않습니다. 한승재의 말처럼 경쟁에서 지면 추락한다는 식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준이 신유경과 화해를 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며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인숙도 아들의 앞날에 축하를 빌어주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는 탁구입니다. 서인숙은 탁구가 거성가의 대표가 되는 것을 참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탁구가 마준을 누르고 대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심 없이 대표자리를 자경에게 내어준 것은 서인숙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탁구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것을 내심 기뻐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탁구에 대한 애정이 조금식 커져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경입니다. 구일중이 이끌던 가부장적인 거성을 이제 자경이 맡게 됩니다. 탁구와 마준이 자신들의 지분을 자경이에게로 몰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자경의 이러한 모습은 서인숙에게는 참으로 큰 만족감을 줄 것입니다. 비록 마준에게 기대한 것에는 못미치지만 자신의 딸이 대표자리에 앉은 건 큰 행복일 것입니다.


서인숙만이 변화가 없는 캐릭터로 열린 결말을 보여주었습니다. 결론을 간추리면, 서인숙은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불행한 삶을 예고했지만 사실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한 존재입니다. 그녀는 다시 행복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이제 한 시간여후면 <제빵왕 김탁구>의 마지막회가 시작이 되겠네요. 대단원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한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또 이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정들었던 모든 등장인물들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몰라옵니다. 아무튼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KBS 드라마 캡처


<제빵왕 김탁구>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구일중의 탁구에 대한 집착은 그야말로 기형적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그를 수가 있나 구일중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이지만 구일중은 단순히 탁구에게 집착해온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의지해 왔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구일중의 마음 속 상처는 어느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출생의 비밀과 할머니 홍여사의 죽음을 목격한 마준 못지 않게 구일중의 마음 속 트라마우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구일중이 자신의 아내 서인숙과 한승재가 불륜을 저질렀단 사실 정도는 자신이 미순과 저지른 불륜을 생각하면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참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인숙이 그토록 탁구를 멸시하고 천대했지만 구일중은 마준을 내치지 않았습니다. 마준은 탁구만을 애정으로 감싸는 구일중 때문에 많이 비뚤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구일중이 이 사실을 자세하게 눈치 챈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소통의 부재라기 보다는 소통의 어긋남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따라서 구일중에게 마준의 비뚤어진 인간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KBS 드라마 캡처


드라마 상에서 구일중 만큼 답답한 인물도 없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이란 죄다 혼자서 삭여야만 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십수년 동안 마치 암덩어리처럼 비밀을 안고 살아왔으니 구일중은 정말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 패기의 구마준의 삶과 사랑에 대한 몸부림처럼 그렇게 발버둥 칠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마준이처럼 그 마음의 상처가 부각되지는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대문이구요. 클럽을 전전하며 여자들과 타락을 일삼는 그런 마준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구 말이지요. 구일중에게는 거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과 가정과 우정을 지키려는 책임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마준처럼 무책임하게 자신의 신세만을 한탄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일중이 마준처럼 술이라도 마시고 취기에 소동이라도 부리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오직 구일중에게는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구일중의 옆에는 믿을 만한 인간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회장님, 회장님 하며 따르는 그 탁구 말입니다. 어린 시절 마준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없으며 자기 중심적이었습니까? 그 애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구일중은 몸서리쳤을 것입니다. 일중에게 탁구의 존재는 후계 문제만이 아니라 탁구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위로 받고, 심지어 치유받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일중에게 탁구는 참 의미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일중은 서인숙과 한승재가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어머니인 홍여사가 죽은 날 한승재와 서인숙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한승재와 실랑이를 벌이든 구일중은 자신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단지 찬구이고 아내였기에 그 사실을 인내하며 지내왔다고 말합니다. 이미 예측은 해온 사실이지만 구일중의 입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제법 충격이 컸습니다. 이렇게 구일중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이상 서인숙과 한승재는 구일중과 함께 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KBS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구일중의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을 까요? 그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이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 사실을 감추며 마준의 나이만큼이나 오랜 세월 동안 모른척하고 살았다니 구일중의 인내심이 참 대단합니다. 그기다 비록 애정은 식어버렸지만 여전히 서인숙을 아내로 함께 생활하고 한승재를 비서실장으로 곁에 두고 왔다는 사실이 혀를 두르게 합니다. 정말 이런 위인이 다른 어디에 또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야말로 자신과 거성, 그리고 가정, 자신의 친구를 위해 힘들게 참아온 세월일 것입니다.


이런 구일중의 행동은 결국 자신의 잘못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미순과 불륜을 저지르며 탁구를 낳은 것에 대한 속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탁구에게 애정을 쏟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근원적으로 구일중은 마준에게 애정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픈 일이기에 구일중이 좀 더 가까이 다가갔더라면 하면 아쉬움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누구가 마준에게 살갑게 굴 수 있을까요? 사실 구일중이 마준을 냉대했던 것보다도 서인숙이 탁구를 냉대한 것이 훨씬 더 심했습니다. 서인숙은 탁구를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탁구는 마준처럼 빚나가지 않았습니다. 비록 홍여사의 죽음과 같은 충격적인 일을 직접 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어머니인 미순이 납치되는 것을 목격하고 그 이후로 미순을 찾기 위해 십수년을 찾아 해매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일이 홍여사의 죽을 묵격한 마준의 마음 상처보다도 작은 것일까요?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탁구의 상처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따라서 구일중이 마준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준을 반항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일중은 서인숙에 비하면 인간적인 처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서인숙처럼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이 밝히고 구마준을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 집니다. 따라서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구일중의 처신은 모두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모든 것을 자신이 덮고 가려는 일종의 희생정신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잔정은 없었지만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품위를 지켜려고 노력한 인물입니다.



KBS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마준이 절실하게 구일중의 관심을 받고자 했지만 사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서인숙과 한승재의 원죄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구일중의 차가운 태도가 비난을 받아야할 1차적인 대상이 아니라 서인숙과 한승재가 비난 받아야 하는 결정적인 대상인 것입니다. 또한 구마준의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구일중이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소통이 어긋난 것이지 소통자체를 거부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만약 구일중이 구마준이 홍여사의 죽음을 보게 된 사실을 알았다면 마준에 대한 태도가 그리 차갑지 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구일중은 마준의 그러한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마준에게 다소 차갑게 대했다고 해서 그것을 마준의 반항심과 비뚤어짐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제 구일중의 입에서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한승재와 서인숙은 구일중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구일중이 한승재에게 검찰을 부를지, 비행기 티켓을 가질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과연 서인숙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합니다. 서인숙은 한승재와 함께 떠나게 될까요? 구일중에게 서인숙은 이미 애정이 식은 존재라면 한승재와 함께 떠나는 것도 괜찮지 싶습니다. 구일중에게는 미순의 존재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구일중이 지금까지 서인숙과 애정없는 부부의 연을 이어왔지만 서인숙이 진정으로 뉘우치면 다시 받아 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서인숙과 김미순의 행복가 참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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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결말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이 결말에 대한 기대중에 서인숙과 신유경의 대립에 대한 결말이 있다. 신유경과 서인숙은 극단적인 부류의 여성이다. 서인숙의 어린 시설을 알 수는 없지만 유복하게 자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그녀의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면 과연 서인숙이 자신의 처지와 같은 사람들을 그토록 무시할 수 있을까? 탁구나 유경을 그토록 ‘천박한 인간’ 들로 업신여길 수 있을까? 누구라도 서인숙에게 정을 느끼기가 어렵지 않을까? 한승재 같은 부류의 인간은 제외하고 말이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정말 잘 들어맞는 것 같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이와는 반대로 신유경은 불행한 어린시절을 거쳤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폭력으로 악몽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어린 시절을 겪다보니 자기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 탁구에게 한 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서인숙에게는 사랑하는 탁구를 포기하면서까지 복수를 결행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탁구와 마준과 유경의 인물 비교이다. 탁구는 불행한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세상에 대해 대단히 낙천적이다. 이에 반해 구마준은 탁구와는 정반대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반항적이고 복수심으로 가득하다. 유경의 경우는 탁구와 마준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유경이 탁구와 마준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즉, 유경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인간들에게 대해 애정을 보이면서도 서인숙과 같은 인간에 대해서는 강렬한 복수심을 느끼는 것이다. 아무튼 서인숙과 신유경, 이 극단적인 두 부류의 여자들이 대립을 하면서 그런 결말을 맞게 될지 기대가 된다.  


서인숙을 보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그녀가 아무리 남편 구일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라고 해도 이러한 사실이 그녀의 천박하리 만큼 ‘업신여기는 태도’ 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뒤집어 생각해서 그녀의 업신여기는 태도야 말로 그녀를 외롭게 하기에 중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인숙의 더러운 인간성을 보면 구일중이 얼마나 꼴도 보기 싫을지 오히려 서인숙과 함께 살아야 하는 구일중이 너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서인숙은 겉으로는 고상한척 위세를 다 떨고 있지만 가장 저질의 인간이다. 구일중이 거성의 회장이면서 가부장적인 모습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비웃는 그런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따스한 마음이 있다. 그러나 서인숙은 달라도 너무나도 다르다. 우리가 서인숙이란 존재를 ‘품격있는‘ 자신의 생활 범위 안에서만 보아왔고, 간혹 단지 이질적인 존재인 탁구와 유경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서인숙의 일면을 보아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서인숙이 얼마나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있다.


유경이 밑바닥 현실에서 치고 올라오면서 이제는 서인숙의 며느리라는 신분에까지 상승을 하였지만 그녀의 근본은 서인숙과는 완전히 다르다. 신유경은 약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인간이고 마음 깊숙이에 따뜻한 인간미가 살아있는 존재이다. 표면적으로는 서인숙에 대한 복수를 노리며 거성가의 며느리가 된 유경이 편의상 악녀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영원히 악녀가 될 수 없는 인간이다. 결코 서인숙처럼 뼛속 깊이에 까지 악이 차있는 그런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서인숙과 신유경은 다른 방식으로 그 운명을 맞이해야 한다고 본다. 아니 운명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결과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좋겠다. 아무튼 서인숙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한승재와 함께 말이다. 이미 그녀는 도덕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 동정의 여지가 없다. 이와는 달리 신유경은 서인숙이 법의 심판을 받는 그 사실을 통해 전향적으로 자기 본질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즉, 어떤 결정적인 계기로 자신의 복수를 멈추어야 한다고 본다. 신유경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진정한 신유경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서인숙과 신유경을 피상적이나마 비교해 보았다. 이들의 대립은 단순히 개인들의 대립이기 보다는 서인숙과 신유경으로 상징되는 ‘그 어떤 것’ 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그 대립적인 요소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삶으로, 어린시절로, 내명적인 모습으로 시야가 확대되면 될 수록 그 상징성이 더욱 더 풍성해 질 것이다. 너무나도 상반되고 대조적인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서인숙과 신유경의 대립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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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가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면서 국민드라마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로 나아가면서 사건들에 우연이 남발되고 있어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열려진 문틈으로 조심성 없이 하는 말들이 새어나가면서 갈등이 빗어지는 경우가 정형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홍여사가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대화를 엿들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엿듣는 행동으로 인해서 홍여사는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또 팔봉 빵집에서 구마준이 김탁구와 구일중이 상봉하는 장면을 엿보는 것도 만찬가지입니다. 공주댁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이렇게 필연성이 부족한 우연한 행동에 의해 빈번하게 일어나면 식상해 지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재미있다보니 이러한 구성상의 헛점들이 그마나 이해되는 것일까요.



KBS 드라마 포토박스 캡처



이와 관련해서 구일중이 병상에 누워 진구를 조종하고 서인숙과 한승재를 비롯한 가족들의 말을 은밀하게 엿듣는 것을 몰래카메라에 비유를 하고 심지어 비열하다고 까지 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특히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대화가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있습니다. 이건 구일중이 비열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이런 엿들기를 남발하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걸 비열하다고 여긴다면 작가가 비열한 것이지 구일중이 비열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죠. 양보해서 작가의 손을 떠난 인물인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해도 실제로 더 비열한 인간들은 서인숙과 한승재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비열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데 병석에 누워 누구를 조종한다는 식이나 단지 열려진 문틈으로 대화를 들었다고 해서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구일중은 자신을 파멸시킬 인간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팔봉 선생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봐 왔듯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야 말로 비열한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구일중이 그 비열한 인간들에게 대항하고 또 그러한 한 방법으로 대화를 엿들었다고 해서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면 도대체 정의는 어디에 있고 진실은 어디에 있을 수가 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이 엿듣기는 숱하게 등장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탁구도, 마준도, 그들이 다 커서 성인이되어서도 그들은 엿듣고, 엿보고 그러면서 갈등이 고조되기도 하고 갈등을 자제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 그걸 모두 비열한 짓이라고 한다면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비열하지 않은 자들이 없을 지경입니다. 공주댁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구일중을 비열하다고 하는 기준으로 공주댁을 본다면 공주댁은 비열함을 넘어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야말로 간악한 스파이짓을 한 중 늙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미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주댁을 움직인 김미순 또한 비열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닥터윤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을 응시하고 그들을 지켜보는 행위가 비열하다면 그 악은 도대체 누가 응시하고 지켜보아야 한다 말일까요.


따라서 엿듣기는 작가가 남발하는 우연이라고 해야 하며, 좀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진실에 다가가려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엿듣는 행위 그 자체는 그다지 바람직 한 행위는 아니지만 그 의도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니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 엿들을 수 밖에 없는 가 하는 사실 말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갭처


구일중의 엿들기와 관련해서 참 재미있는 사실은 홍여사가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비밀을 엿듣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더욱 흡사해 지겠네요. 홍여사와 마찬가지로 구일중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대화를 엿듣습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다시 구마준이 지켜봅니다. 이거 우리가 비오는 날 홍여사가 죽는 바로 그 날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홍여사가 죽는 그 날이 다시 대를 이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직 홍여사를 대신해 구일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일중은 홍여사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지도 참 궁금합니다.서인숙과 한승재의 대화를 엿들은 구일중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입니다. 병석에 있던 구일중이 그런 분노에 휩싸여 고함을 지르는데요, 구일중이 쓰러질만한 조건이 충분히 조성된 듯한 느낌입니다. 홍여사와 마찬가지로 구일중이 쓰러질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그러나 구일중이 죽을 가능성은 그다지 커보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죽는다면 탁구를 돕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기 때문입니다. 비록 탁구가 구일중의 대리인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았지만 서인숙과 한승재가 탁구를 밀어내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악이 승리하는 드라마라면 구일중이 죽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 크지 않습니다. 아무튼 구일중이 살아남아 모든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갭처


그런데 구마준에게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 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오를 것입니다. 이번에는 할머니 홍여사가 아니라 아버지 구일중입니다. 마준은 도대체 이러한 기시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필자가 판단컨데 구마준은 할머니 홍여사에 대한 부채감을 항상 가슴에 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부채감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고 말이죠. 홍여사에 대한 부채감을 만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쓰러진 구일중을 누구보다도 먼저 들쳐 엎고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마준에게 아버지 구일중을 살리는 것은 돌아가신 홍여사를 살리는 것과 동일선상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조금은 치유되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여기에 병실에 누워있는 구일중의 진심이 전해진다면 마준의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 지지 않을까 싶구요. 이것은 구일중과 마준과의 화해로 이어지게 될 지도 모르구요, 궁극적으로 유경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슬픈일이지만 서인숙과 한승재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혼란스러운 갈등의 끈들이 조금식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유경과 마준에게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따로 포스트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구일중이 쓰러져 있으면서 서인숙이나 한 승재의 말을 엿들은 것은 몰래카메라도 비열한 짓도 아닙니다. 그것은 작가가 선택한 진실로 나아가는 한 방식이며 이 방식이 너무 남발되어 식상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좀 더 다른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예를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서 보면 스따브로킨이란 인물이 엿듣는 행위를 빈번하게 하는 데요, 이 경우에는 그가 직접 만든 방의 통로를 통해서이지요. 영화 <이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관이 장롱문으로 가장된 연결 통로가 있죠. 그기서 은밀하게 사람들의 말을  엿듣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그 의도에 따라서 비열한 행위일수도 정의로운 행위일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구일중의 행위를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뇌출혈로 쓰려졌지만 의식이 깨어나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변호사와 상의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정말 비열하다면 서인숙과 한승재가 비열하지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는 것은 그 대상이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합니다.  


*글 다시 수정하여 올립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1차 경합에서 통과한 양미순의 케익빵, 구마준의 페스트리, 김탁구의 보리밥빵은 아전인수격의 해석인 듯도 하지만 각각 순서대로 미래, 현재, 과거와 잇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미순의 케익빵은 상상의 결과물로서 상상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구마준의 패스트리는 현재 자신의 실력에만 의존한 결과물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탁구의 보리밥 빵은 과거를 품고 있는 빵입니다. 그렇다면 구마준에게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과거의 추억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미래의 희망도 마준에게는 철저히 잊고 싶은 시간인지 모릅니다. 오직 현재의 시간만이 구마준에게는 의미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빨봉 선생의 말씀대로 차가운 느낌이 감도는 것일 지도요. 물론 차가운 느낌은 여러가지 경로로 감지되겠지요.




 
아무튼 양미순의 케익은 일상적으로 먹는 빵은 아닙니다. 주로 생일 같은 즐거운 행사에 많이 사용합니다. 따라서 이 케잌은 기쁠 때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빵입니다. 김탁구의 보리밥 빵은 과거 자신의 삶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도움을 대신해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정이 가득한 빵입니다.


그런데 구마준의 빵은 기술이 뛰어난 대신에 차갑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구마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최선을 다해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탁구의 초라한 보리밥 빵보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데 대해서 화가날 것입니다. 언제나 탁구에게 치였던 경험들이 팔봉선생으로부터도 그런 대접을 받으니 또 얼마나  불만스럽겠습니다. 팔봉 선생은 1차 경합에서는 합격을 시켜주지만 다시 한 번 이런 차가움이 감지된다면 합격시켜 줄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팔봉선생의 이 말은 마치 구마준이 처한 현실은 정확히 꿰뚫고 있는 듯 합니다. 정말 무서운 팔봉선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마준은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상황이니까 말입니다. 구마준은 마음 속 분노가 한껏 고조되어 있습니다. 탁구가 구일중과 상봉을 하면서 구일중으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되고, 신유경을 괴롭히는 자신의 어머니인 서인숙 때문에 분노가 폭발직전이었습니다. 한승재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빵실 오븐기 폭발사고나 소다 사건등이 한승재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마준이 차가움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지 걱정스럽습니다.


만약 이러한 차가운 기운이 계속되는 경우 2차에서는 탈락할 것이라고 팔봉 선생은 분명하게 말했기에, 구마준에게 주어진 과제는 김탁구와 양미순에 비해서 더욱 더 부담스럽습니다. 1차에서 지적 받았던 차가운 기운을 없애는 것과 2차 경합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차 경합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 구마준은 너무나 '차가운 상황' 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마준이 2차 경합을 합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구마준은 결코 2차 경합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만약 구마준이 2차 경합을 통과하려면 그의 마음속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이것은 현재의 상황으로 볼때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구마준이 신유경에게 한 제안(복수의 제안)은 2차 경합을 포기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신유경에게 한 복수의 제안은 차가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부글거리는 복수의 생각이 존재하는 데 또 다른 한 구석에서는 2차 경합을 통과하기 위해 차가움을 없애려고 한다면 이건 완전히 정신분열증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현 상황으로서는 구마준이 2차 경합을 위해 갑자기 돌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다른 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구마준의 제안(자신을 이용해 서인숙에게 복수를 하라는 제안)에 대해 신유경이 응해 줄지의 여부도 관심사입니다. 신유경은 자의식이 구마준 만큼이나 큰 존재입니다. 특히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것이 그 예입니다. 그렇다면 마준의 제의는 신유경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이길 가능성이 큽니다. 서인숙과 같은 속물적인 인간에게 앙갚음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만족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니 말입니다.


이렇게 신유경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 들일 가능성이 엄청나게 큰 상황이기도 하구요. 따라서 구마준의 차가움(즉 복수의 살기가 가장 큰 원인이라 판단)은 더욱 그 강도가 크지겠구요. 그렇다면 2차 경합 통과는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떠한 돌발 변수가 발생할지가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신유경이 구마준의 제의를 차갑게 거절해 버리는 정도인데요, 어던 다른 변수들이 개입들지 참 궁금합니다. 


이러한 변수들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구마준은 결코 2차 경합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팔봉선생에게 1차 경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차가움이 감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마준의 경합 탈락이 스토리 전개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주제넘은 예상까지 하게 되는군요.  

 

 첫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72708245008371&outlink=2&SVEC
 두번째 이미지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N329214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아버지로서 구일중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가장에서부터 인자한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평가가 엇갈립니다. 특히 구일중을 비판하는 경우는 그가 아내 서인숙과 자녀들, 특히 구마준에 대해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 서인숙과는 애정 자체를 상실하고 있으며 거성가의 후계자가 될 아들 구마준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구일중이 개인적인 능력과 거성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능력은 탁월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처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일중에게서 나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서인숙도 구마준도 그리고 자경, 자림도 구일중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서인숙의 경우는 완전히 애정이 식어버려 그저 남남이나 다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구일중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시대적인 상황을 구일중과 떼어 놓지 않고 보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구일중을 시대 상황이 개입되지 않는 독립된 개체로 본다면 비판의 여지가 참 많은 인간입니다. 결국 구일중을 보는 시선은 우리이며 우리의 시선은 현재적인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일중을 비판하는 것은 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개인이 뛰어 넘을 수 없는 시대라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태도입니다. 구일중을 제대로 보려면 시대적인 상황을 동시에 고려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대적인 상황을 구일중을 평가하는 배경으로 삼게 되면 구일중의 잘잘못이 결국은 시대적인 제약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일중에 대한 비판보다는 사회 체제에 대한 비판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회의 틀을 개인이 깨고 뛰어넘는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전개상 거성의 창립 30주년이 1990년대 후반이었으니 거성은 1960년대에 처음 창업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구일중의 나이를 30 정도로 잡는다면 60대 초 중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구일중의 외모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모습입니다. 아무튼 1960년대에 30정도의 나이라면 이미 그 사고방식이 대단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고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0년대의 시대적인 상황과 개인의 사고방식을 연결시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일중에게 인자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아버지의 상만을 요구한다면 현재의 시선으로는 당연하지만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어색한 인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대적인 상황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인식과 행동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일반적인 미이지가 존재하던 시대에 구일중이 그런 모습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가 됩니다. 구일중을 비판하는 경우는 바로 구일중을 이런 특수한 경우의 존재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필자의 견해이긴 하지만 구일중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비교해 보았는데요, 어느 경우이든 구일중이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통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의 경우도 시대적인 상황을 구일중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구일중이 너무 한다는 조금의 반발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구일중이 서인숙과 구마준에게 너무 한다는 느낌과 함께 구일중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구마준이 자신의 아들이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서인숙에 대한 구일중의 사늘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애당초 구일중과 서인숙은 애정도 없는 결혼을 했습니다. 두 딸 자경과 자림을 낳기는 했지만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불행한 삶은 구일중과 서인숙 둘 다에게 동정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지 서인숙만 희생자로 동정을 보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결혼 전에 구일중은 김미순을 사랑했고 그 김미순에게서 난 김탁구의 존재는 특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녀사이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일중이 김탁구에게 애정을 쏟는 것을 구마준과 비교하면서 같은 자식인데 너무하다는 시선은 구일중으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 그리고 구마준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덤덤하다면 그들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허락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세는 비난 받을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구일중은 성숙하고 마음 씀씀이가 깊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일중 과연 어떠한 인간이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806/5251759.htm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서인숙에게 신유경은 참으로 황당한 존재입니다. 거성 식품의 후계자가 될 고귀한(?) 신분인 구마준이 이 천한 계집아이와 어울리는 것이 걱정됩니다. 2년 전 자신이 쫓아버렸다고 생각했던 신유경이 거성식품에 취업을 하고 비서실로 보란 듯이 발령을 받았으니 이건 여간 신경이 쓰이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저 천한 계집아이가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지 속이 뒤집어질 지경입니다. 이렇듯 서인숙에게 신유경의 존재는 증오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물론 고귀한 신분과 고상한 생활 취향의 관습화된 눈높이가 가져다주는 타인에 대한 멸시이긴 하지만 그 처해진 환경이 아무리 속물적이고 탐욕적이라 해도 신유경에 대한 서인숙의 분노는 이해해 줄 만 합니다.






신유경에게도 서인숙의 존재는 고상한 외모에 숨겨진 속물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거성 식품의 사모님이라고 해도 서인숙의 하는 짓은 참으로 혀를 내두를 만큼 저속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신유경은 과거 대학시절 운동권 학생으로 사회의 정의와 정치적 민주화,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 잡기 위해서 투쟁했습니다. 그녀는 고문을 당하면서 사회의 변화보다 자신이 변화하면 된다는 회유를 받습니다. 그 순간부터 아마도 신유경은 사회의 변혁이 아니라 자신의 변화를 추구했을 지 모릅니다. 신유경이 투쟁했던 대상은 독재자와 그 주변의 정치인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신의 변화에 갈등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서로의 소통이 부재한 두 사람에게 화해를 기대하기는 하늘에서 별을 따기 만큼이나 힘들 것입니다. 사실 서인숙과 신유경은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충돌은 불을 보듯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한 충돌을 한다고 해도 신분상의 차이가 있고 신유경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신유경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구마준이라는 응원군을 사로 잡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들의 충돌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참으로 재미있는 대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스케일 큰(?) 예상과는 달리 서인숙과 신유경은 참으로 유치하고 황당한 자존심 대결을 합니다. 이 싸움은 구마준이 끼어들면서 승부를 가리지는 못합니다. 이 유치하고 황당한 싸움의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신유경이 김탁구를 만나기로 한 일요일 저녁 탁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전화벨이 울립니다. 비서실에서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신유경이 받자 서인숙이 신유경을 집으로 부른다는 비서실의 연락이었습니다. 신유경은 탁구와의 만남 약속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서인숙의 저택으로 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서인숙은 친적들과의 대화가 있다고 하면서 신유경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무시하면서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신유경은 또 저택의 거실에서 몇 시간을 서있습니다. 잠시라도 앉아있으면 될 것을 끝까지 서서 기다립니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거성그룹의 사모님의 스케일이 고작 이것밖에 안된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가진자가, 힘센자가 이런 유치한 짓을 할 때 당하는 약자는 참으로 분노를 주체하기 힘듭니다. 신유경의 심정은 서인숙으로 향하는 복수의 칼날을 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이 약한 자신이 부와 권력을 한 몸에 쥐고 있는 서인숙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가요?


아무튼 서인숙과 자존심 싸움에서 신유경의 강한 결기가 느껴집니다. 서인숙이 아무리 거성 식품의 안주인이라고 해도 신유경은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당당한 모습입니다. 
앞으로 서인숙과 신유경의 자존심 대결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411767&year=2010
두번재 이미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7211018181001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서인숙으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있는 유경의 내면 풍경은 '사랑의 결핍' 과 '분노' 와 '복수' 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2년 전 탁구와의 만남은 사랑의 결핍에 대한 충족이었다면, 동시에 2년 전 서인숙으로부터 당한 인간적인 굴욕과 수치는 지우기 힘든 상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성식품 30주년 기념식장에서 서인숙으로부터 받은 멸시와 비가 오는 날 자취방에서 내 쫒기는 수모는 분명 서인숙에 대한 분노와 복수로 피어났습니다. 그랬기에 신유경이 거성 식품에 취업을 하고 비서실에 발령을 받는 것은 순전히 치밀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경이 거성식품으로 뛰어들면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게 될지 흥미진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년이 지난 후 탁구와 유경이 남산 시계탑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유경이 서인숙에게 갑작스럽게 불려감으로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데요, 재회의 불발이 이상하게도 탁구와 유경의 엇갈리는 운명의 불길한 복선처럼 여겨집니다. 아직까지 유경은 탁구와 마준 사이에서 탁구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서인숙과 한승재의 압력과 멸시는 신유경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고 있는 듯 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데 하물며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사실 이전에는 신유경이 서인숙에 대해 수동적인 복수, 즉 거성식품에 취직하여 자신의 능력을 보란 듯이 보여주어 서인숙을 놀라게 하는 정도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내의 비등점에 다달았을지 모릅니다. 서인숙에 대한 분노와 복수가 커져가면서 유경은 의도적으로 마준과 가까워 질 것만 같습니다.


바로 서인숙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유경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카드가 구마준이기 때문입니다. 탁구에 대한 깊은 애정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유경이 구마준을 선택하는 것 자체로 서인숙은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서인숙이 그토록 원하지 않는 결과이기 때문이죠. 또한 유경이 마준을 움직여 서인숙을 견제한다면 유경은 대단히 흡족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지금 유경은 사랑이냐 복수냐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만약 그녀가 사랑, 즉 탁구를 선택한다면 서인숙에 대한 복수는 무너지게 됩니다. 만약 그녀가 복수, 즉 구마준을 선택한다면 탁구가 무너지게 됩니다. 사실 장기적으로 볼 때 유경은 탁구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러나 유경이 미래에 대한 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의 복수만을 생각할 때는 구마준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유경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모든 것을 유보당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녀가 성장하면서 자신과 같은 불행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키워갔고 대학생이 되면서 학생 운동에 투신 했을 것입니다. 유경은 사랑으로 자신의 내면을 치유 받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녀의 내면 한 켠에 있는 폭력과 억압에 대한 증오도 깊습니다. 서인숙이란 존재는 신유경이 가장 혐오하고 증오하는 전형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대학시절 이루지 못한 사회 변혁의 꿈이나 어린 시절의 불행에 대한 기억이 온통 서인숙에게로 향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신유경은 서인숙에 대한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온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자하는 단순한 의도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서인숙과 한승재로부터 정의롭지 못한 압력과 멸시를 받으면서 신유경은 이전과는 다른 철저한 복수를 생각하게 되는 지도 모릅니다. 그럴 경우 가장 유용한 존재가 구마준입니다. 신유경의 곁에는 구마준이라는 복수와 신분 상승이라는 두 개의 사다리가 놓여져 있습니다. 만약 그녀가 구마준을 잡게 된다면 그녀가 꿈꾸어 온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유경의 고민은 깊어져 갈 것입니다. 탁구와 함께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중심에 설 것인가 신유경의 앞으로의 행보가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73014140580926
두번째 이미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7211018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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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1차 문제로 출제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 무엇인지에 대해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대단히 모순적입니다. 이 질문을 그대로 해석한다면 경합에 참가한 4명 중에 운좋으면 한 사람, 아니면 아무도 2차 경합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미 그대로라면 이 '세상에 가장 배부른 빵' 은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적당하게 배부른 빵이나 그냥 배부른 빵이 아니라 '가장' 배부른 빵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이 모순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임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배부르다는 말은 과학적인 수치가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아주 주관적인 느낌이며,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팔봉 선생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팔봉 선생은 왜 이런 모순적인 질문을 한 것일까요?




이러한 과학적인 답변이 불가능한 질문을 팔봉 선생이 출제한 것은 결국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방식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것일까요? 결국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들면 사랑에 대한 해석이 그런 예입니다. 어디 사랑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으로 풀어 낼 수 있던가요? 팔봉 선생이 의도하고 있는 답변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따라서 첫번째 질문은 너무나도 쉬운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네 사람이  그들 나름대로 '배부른 빵' 에 대해 진실하고 진지하게 생각한 것을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차 경합은 네명 모두 합격하리라 판단됩니다.  만약 모두가 아니라도 최소한 김탁구와 구마준은 통과해야만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경합이 이루어지기에 이 둘만이라도 합격할 가능성은 큽니다. 이럴 경우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하나가 아니라는 모순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네명이 합격해도 마찬가지이구요. '가장' 이란 단어는 하나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김탁구와 구마준이 각각 다른 빵을 만들어 통과하게 된다면 '가장 배부른 빵' 은 2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모순인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이 둘은 합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가장 배부른 빵을 판단하는 사람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팔봉 선생 조차도 판단 할 수 없는 것을 이렇게 질문 했다는 것은 분명 다른 답변의 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의 답변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가장 배부른 빵이란 참가자 각자에게 절실한 상황에서 먹었던 가장 배부른 빵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참가자들에게 그것이 절실한 이유라면 가장 배부른 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가장 배부른 빵이란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씩 존재하는 상대적이면서 주관적인 개인의 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감정은 결코 상대적인 우월성이나 가치를 가지고서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집니다.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가장 배부른 빵은 존재할 수 없지만 한 개인에게 가장 배부른 빵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이유로 가장 배부른 빵이라고 판단될 때 그것은 얼마든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유일성, 절대성이라고 할까요, 뭐 그런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개인들에게 아주 절실한 이유' 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의 평가로 1차 경합 문제의 통과 여부가 결정되리라 추측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개인의 이유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빵을 만드는 인간의 인간성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 태도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은 개인의 삶의 진정성과 삶에 대한 성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김탁구에게도, 구마준에게도, 양미순에게도, 고재복에게도 자신들에게 가장 배부른 빵이 존재하고 있고 자신들을 배부르게 한 진정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1차 문제에서 그들은 모두 통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 윗글의 내용중에 일부는 이전의 글에서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습니다. 필자의 창작물이기에 논리적인 연결을 위해 단락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첫번째 이미지:http://www.unionpress.co.kr/news/detail.php?number=67197&thread=03r02r01
두번째 이미지: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72822542542417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경합의 1차 문제로 출제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 무엇인지에 대해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대단히 모순적입니다. 이 질문을 그대로 해석한다면 경합에 참가한 4명 중에 운좋으면 한 사람, 아니면 아무도 2차 경합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미 그대로라면 이 '세상에 가장 배부른 빵' 은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적당하게 배부른 빵이나 그냥 배부른 빵이 아니라 '가장' 배부른 빵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이 모순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임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배부르다는 말은 과학적인 수치가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아주 주관적인 느낌이며,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팔봉 선생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팔봉 선생은 왜 이런 모순적인 질문을 한 것일까요?




이러한 과학적인 답변이 불가능한 질문을 팔봉 선생이 출제한 것은 결국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방식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것일까요? 결국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들면 사랑에 대한 해석이 그런 예입니다. 어디 사랑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으로 풀어 낼 수 있던가요? 팔봉 선생이 의도하고 있는 답변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따라서 첫번째 질문은 너무나도 쉬운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네 사람이  그들 나름대로 '배부른 빵' 에 대해 진실하고 진지하게 생각한 것을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차 경합은 네명 모두 합격하리라 판단됩니다.  만약 모두가 아니라도 최소한 김탁구와 구마준은 통과해야만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경합이 이루어지기에 이 둘만이라도 합격할 가능성은 큽니다. 이럴 경우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하나가 아니라는 모순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네명이 합격해도 마찬가지이구요. '가장' 이란 단어는 하나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김탁구와 구마준이 각각 다른 빵을 만들어 통과하게 된다면 '가장 배부른 빵' 은 2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모순인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이 둘은 합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가장 배부른 빵을 판단하는 사람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팔봉 선생 조차도 판단 할 수 없는 것을 이렇게 질문 했다는 것은 분명 다른 답변의 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의 답변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가장 배부른 빵이란 참가자 각자에게 절실한 상황에서 먹었던 가장 배부른 빵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참가자들에게 그것이 절실한 이유라면 가장 배부른 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가장 배부른 빵이란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씩 존재하는 상대적이면서 주관적인 개인의 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감정은 결코 상대적인 우월성이나 가치를 가지고서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집니다.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가장 배부른 빵은 존재할 수 없지만 한 개인에게 가장 배부른 빵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이유로 가장 배부른 빵이라고 판단될 때 그것은 얼마든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유일성, 절대성이라고 할까요, 뭐 그런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개인들에게 아주 절실한 이유' 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의 평가로 1차 경합 문제의 통과 여부가 결정되리라 추측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개인의 이유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빵을 만드는 인간의 인간성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 태도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은 개인의 삶의 진정성과 삶에 대한 성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김탁구에게도, 구마준에게도, 양미순에게도, 고재복에게도 자신들에게 가장 배부른 빵이 존재하고 있고 자신들을 배부르게 한 진정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1차 문제에서 그들은 모두 통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 윗글의 내용중에 일부는 이전의 글에서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습니다. 필자의 창작물이기에 논리적인 연결을 위해 단락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첫번째 이미지:http://www.unionpress.co.kr/news/detail.php?number=67197&thread=03r02r01
두번째 이미지: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72822542542417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16회가 끝난 지금 거성가의 가정부인 공주댁의 정체에 대해 관심이 증되고 있습니다. 김미순, 닥터윤과 함께 서인숙에게 복수를 계획하는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부터 어딘가 의뭉스런 구석이 있었는데 실제로 공주댁은 김미순과 연통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김미순과 공주댁이 서로 의기 투합을 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많이 자아냅니다. 앞으로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겠지만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상상도 하게 되고 괜한 추측도 하게 됩니다. 그만큼 공주댁에 대해 관심이 많이 쏠린다는 뜻이겠지요. 아무튼 공주댁은 미순과 닥터윤과 함께 서인숙의 불륜과 홍여사 살인(과실치사와 유기)에 대한 정보를 상당부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성가에서 오랜 동안 생활해온 공주댁의 정보가 훨씬 광범위 할 것입니다.


필자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공주댁이 홍여사가 죽어가는 현장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추측까지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김미순이 서인숙에게 ‘殺人者’ 나 ‘운명은 이제 더 이상 당신의 편이 아닙니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 지점에서 한승재가 서인숙을 협박하기 위해 보냈다는 의심도 해볼 수 있습니다. 서인숙과 공범이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한승재가 자신의 입지를 넓히게 위해 서인숙에게 보낸 협박 편지라 하더라도 공주댁의 역할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글의 흐름을 좀 벗어나서 공주댁과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비교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것입니다. 좀 딱딱하게 표현해서 공주댁은 김미순과 닥터윤이 고용한 스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승재도 팔봉 빵집에 있는 김탁구를 감시하기 위해 조진구에게 접근해서 회유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또 고재복에게도 접근하여 어느 정도의 결실을 맺기도 합니다. 고재복은 돈에 눈이 멀어 ‘제빵실 오븐 가스 폭발’ 이나 ‘밀가루 반죽 소다 혼합 사건’ 을 일으키고 탁구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더 이상 이런 짓을 할 수 없지 싶습니다. 이런 한승재와는 달리 김미순과 공주댁은 돈으로 매수하고 매수된 관계라기보다는 신의로 맺어진 관계처럼 보입니다. 공주댁이 홍여사에게 갖는 고마움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승재의 행동이 범죄라면 김미순의 행동은 진실을 찾아내기 위한 의로움인 것입니다. 동기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다시 글의 흐름으로 돌아가서, 공주댁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공주댁은 왜 구일중에게는 여러가지 사실들을 알리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일중에게 서인숙과 한승재의 불륜과 홍여사 살인 사실을 적은 내용을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서인숙의 불륜이나 홍여사의 죽음에 대해 구일중에게 사실을 밝힌다면 진실은 빨리 드러날 것이고 김미순에게도 나쁘진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왜 구일중은 제쳐두고 김미순과만 접촉하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주댁이 구일중에게 직접 진실을 털어 놓거나 편지로 보내는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그 문제는 무엇일까요? 혹 김미순의 계획이 구일중의 거성식품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구일중에게는 비밀로 하는 것일까요? 아무튼 이 문제는 앞으로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16회에서 공주댁의 정체가 거의 드러났습니다. 이제 관심은 공주댁이 어느 선까지 사실을 알고 있느냐입니다. 공주댁의 행동 하나 하나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미지  http://www.artsnews.co.kr/news/93085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30회로 예정되어 있는 <제빵왕 김탁구>가 이제 16회로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이제 서서히 김미순과 닥터유, 신유경, 그리고 김탁구의 복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서인숙과 한승재의 몰락과 파멸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 질 것 같습니다. 김미순과 신유경의 복수와는 달리 김탁구는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복수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리라 봅니다. 아무튼 서인숙과 한승재의 탐욕스러운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파멸되어 가는 모습이 지속적인 흥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김미순과 닥터 유의 복수는 오랜기간 동안 치밀하게 준비되었습니다. 김미순은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복수와 함께 홍여사의 죽음에 대한 대리 복수 의 성격도 강하게 나타납니다. 김미순은 홍여사의 죽음이 서인숙과 한승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모종의 관계가 아니라 '살인자' 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미순이 보낸 '살인자' 라고 큼직하게 쓰인 편지와 '운명은 이제 당신 편이 아닙니다' 라는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김미순이 홍여사가 어떻게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대목이 되는 것입니다.





'살인자' 의 의미는 김미순 본인의 납치를 사주한 범인을 서인숙이라고 판단한 결과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보낸 '운명' 의 편지는 분명히 홍여사의 죽음과 관계되어 있기에 김미순은 홍여사의 죽음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왜냐하면 홍여사가 살해당하고 빈소에서 서인숙은 김미순에게 "운명은 내 편이다' 고  말하거든요. 서인숙의 운명을 쥐고 있던 홍여사가 죽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김미순이 '운명은 이제 당신 편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 것은 홍여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것, 심지어 홍여사의 죽음 이유까지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김미순은 서인숙과 한승재가 홍여사를 죽였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이 부분이 참 궁금한 대목입니다. 궁금하지만 추측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좁습니다. 바로 공주댁입니다. 공주댁이 아니라면 서인숙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인물이 거성가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주댁은 홍여사가 죽던 날 의심스러운 사실들을 목격했거나 아니면 홍여사의 죽음과 관련해서 서인숙과 한승재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지막 가능성으로는 공주댁이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누군가' 는 홍여사의 죽음 전모를 알고 있는 구마준과 구자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구마준과 구자경이 이런 일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능성이 적어도 구자경은 자신이 거성식품을 차지하기 위해서 구마준을 밀어주는 서인숙의 몰락을 원할 지도 모릅니다. 구자경이 이토록 비인륜적인 인간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냥 추측해 보는 것입니다.





구장경에 대한 추측은 제외하고, 어느 경우에도 오랜 기간 가정부로 홍여사와 함께 한 공주댁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서인숙과 한승재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천벌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주댁은 자신이 어떻게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분노로 치가 떨렸겠지만 서인숙과 한승재의 기고만장함에 주눅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괜히 혼자 나섰다가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몰려왔을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김미순과 통화를 하게 되면서 서로 의기를 투합하는 사이가 되었으리라 추측됩니다.


공주댁은 서인숙과 한승재의 파멸을 재촉하는 주요 인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주댁이 홍여사 살인에 대한 결정적인 제보를 하였기에, 김미순과 닥터유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복수를 할 수 있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17회에서 공주댁에게 위기가 찾아 올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한승재가 공주댁을 의심하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상 공주댁의 행보에 관심이 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9403804&contain=&keyword=
두번재 이미지  http://www.artsnews.co.kr/news/93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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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는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도 밀도 있게 스토리가 전개 되었습니다. 전후의 연결 고리가 2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잘 연결이 되면서 깔끔하게 전개되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시대적인 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장면들과 2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여전히 묻힌 체 있다는 것 등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용상 큰 결점은 아닙니다. 15회에서는 의문을 갖고 있던 몇 가지 사건들의 실체가 밝혀집니다. 시나브로 사건들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스토리 전개의 방향성이 조금씩 추측 가능해 지고 있습니다.


우선, 진구에 대한 의심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진구에게는 백혈병에 걸친 여동생이 있고 한승재의 유혹에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승재와 통화 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진구가 한승재와의 관계를 어떻게 청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진구에 대한 의혹은 다소 해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구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튼 2년전 제빵실의 가스 폭발 사고와 경합을 위해 만들어 놓은 반죽에 소다를 넣은 범인이 한승재에게 매수된 고재복으로 밝혀졌습니다.






둘째로. 탁구의 생모인 김미순과 닥터 유가 계획하고 있는 일이 구체화 되고 있습니다. 김미순과 닥터유는 서인숙이 구일중 몰래 매입한 거성식품의 주식 대금을 대출한 실체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재 서인숙은 구마준을 거성식품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남편 구일중에게 상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 압력의 수단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입니다. 대주주의 입장에서 구일중을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마준을 후계자로 하지 않으면 자신의 주식을 이용해 구일중을 거성의 회장자리에서 내리 앉히겠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서인숙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김미순은 서인숙으로부터 대출금을 회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인숙에게는 치명적인 일입니다.


셋째는, 신유경이 거성식품으로 뛰어든 이유입니다. 이것은 전면모가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15회에서 서인숙과 신유경의 대화에서 그 이유의 일단이 드러납니다. 신유경은 자신의 진면목를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거성식품에 취업했다고 말합니다. 신유경은 서인숙에게는 아주 부답스러운 존재입니다.


넷째는, 공주댁입니다. 아직도 의문을 간직하고 있지만 대체로 김미순과 연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김미순이 홍여사를 죽인 살인자로 서인숙을 지목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서인숙을 지목하고 <운명의 편지> 보내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자의 추측으로 공주댁이 홍여사가 죽는 날의 일을 목격햇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공주댁도 김미순의 계획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사소한 의문도 있고 스토리의 전개상 중요한 의문도 있습니다만, 그들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합니다.

 

1. 김미순과 닥터 유는 어떤 관계인가?

김미순과 닥터 유의 등장은 참 극적입니다. 죽었다고 생각되던 김미순의 등장은 그것 자체로도 경이로웠지만 닥터유와 함께 서인숙의 강력한 복수의 실체가 되었다는 면에서 더욱 더 놀랍습니다. 또한 김미순이 어떻게 엄청난 재력가 되었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필자의 추측으로는 거성가를 떠나면서 홍여사로부터 받은 돈이 상당했다는 생각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 성공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의문은 김미순과 닥터 유가 대체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입니다. 부부 같기는 한데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지도 않을 뿐 더러 닥터유가 김미순의 비서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들이 부부일까요?



2.팔봉 선생의 봉빵은 무엇인가?

팔봉 선생의 봉빵에 대한 실체는 여러 블로거님들께서 잘 언급해 주셔서 이 포스트에서 구체적으로 적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봉빵 그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봉빵이 갖는 의미와 그것에 얽힌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3. 신유경은 구일중에게 왜 탁구의 거처를 알려주지 않을까?

15회에서 탁구와 구일중 회장이 대면을 하지만 구일중은 탁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제빵실이 어두웠고 얼굴에 묻은 밀가루 때문 같습니다. 만약 신유경이 서인숙에 대한 복수를 원한다면 구일중에게 탁구가 있는 곳을 귀띔해 주는 것이 유리합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얼마든지 전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유경은 그런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탁구가 구일중과 상봉하는 경우 구마준의 위치가 위태로워 지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신유경은 구마준에 대한 어떤 이유로든 구마준을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무튼 이 부분은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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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트에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 나타나는 4가지 상징물들을 간단하게 언급했다. 그러나 빵에 대한 언급은 그것 자체로는 참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물론 빵만 그런 것이 아니지만, 특히 빵에 대해 그런 느낌을 강하게 갖는 것은 상징물로서 빵의 중요성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포스트는 경합의 1차 문제인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과 관련하여 빵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의 의미는 특별하다. <신데렐라언니>에서 막걸리가 그랬던 것처럼 빵은 인간의 성장과 인간관계의 성숙된 지향점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팔봉 선생은 빵을 매개로 인간적 성숙의 정점에 도달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빵을 통해 도달한 그의 경지는 언어도단의 세계이다. 그것은 논리와 합리성에 근거한 세계가 아니라 직관과 통찰의 세계이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세계이다. 따라서 팔봉 선생에게 빵은 배가 고파서 먹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삶의 지혜와 비의를 자각하는 원천이다. 그러니 빵은 특별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종교적인 신앙에 있어서 그 과정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는 세계를 신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무조건적인 믿음으로의 이행이다. 이것은 좀 과장인지는 모르겠지만 팔봉 선생이 도달한 경지와도 대단히 비슷하다. 물론 신앙의 성격을 비교하거나 종교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빵을 신에 비유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단지 그 도달 과정의 유사성을 언급하는 것이다. 즉,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에서 합리성과 논리를 지워버리는 비약의 과정을 언급하는 것이다. 빵을 단순히 먹거리, 즉 인간의 생물적인 허기를 충족시키는 물질로, 밀가루를 발효하고 어떤 성분들이 들어가는 물질로 보기만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먹을 만한 덩어리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빵을 살아있는 생물처럼 여기고 그것이 성장해 가는 과정으로 여긴다면 빵을 만드는 작업은 생명을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팔봉 선생의 의식 분화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미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제빵왕은 김탁구가 된다. 김탁구와 구마준은 팔봉 선생의 인증을 받기 위해 2년간의 경쟁을 시작하는데, 그 승자는 김탁구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해지는 것은 제빵왕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어떻게 김탁구가 구마준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하는 과정이다. 마치 예전에 인기가 높았던 형사물 <형사 콜롬보>의 형식과 흡사하다. 시청자들은 이미 살인 사건이 터지고 살인자가 누구인지도 알게 된다. 시청자들이 쉽게 알게 된 이러한 일련의 살인 과정을 형사 콜롬보가 기각 막히게 풀어나가면서 마침내 살인자를 잡는 데 감탄하게 된다. 형사물은 아니지만 <제빵왕 김탁구>의 형식이 바로 이와 같다. 이미 제빵왕은 김탁구이다. 그러나 그가 제빵왕이 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은 빵에 대한 김탁구의 태도와 구마준의 태도의 차이로부터 나온다. 팔봉 선생은 빵은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고 있는 듯 하다. 1차 경합의 문제가 빵의 기술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빵의 철학과 관련된 것을 통해 알 수있다.<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 무엇이냐는 종교적인 화두같은 질문은 빵을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태도와 관련이 깊다.  똑같은 칼이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요리를 만드는 도구가 되고,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되는 것처럼 똑 같은 빵이라고 해도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선 탁구의 삶은 신산한 밑바닥의 삶이었다. 팔봉 선생은 어려운 삶을 산 사람들에게서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구일중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제빵실의 사람들을 둘러 보면 대체로 못 배우고 힘든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바람개비 진구이다. 진구가 팔봉 선생의 수하가 되어 빵을 만든다는 사실은 참 놀랄 만한 일이다. 팔봉 선생이 진구를 거두어들인 것인지 그가 스스로 팔봉 선생을 찾아 간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주먹 세계의 진구가 빵을 통해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한승재로부터 심한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마준은 밑바닥 삶을 살아온 인간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구마준은 철저하게 자신을 속이고 팔봉 선생의 수하에 들어 온 경우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말끔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제빵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 그러나 팔봉 선생은 서태조(구마준)에게서 보다는 빵에 대해서는 모르는 단지 인간적인 탁구에게 애정을 더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무엇일까? 이런 화두와 같은 경합의 질문은 팔봉 선생의 빵에 대한 인식과 인간에 대한 태도를 엿보게 한다. 이것은 단순히 빵을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마음, 태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아마도 인간의 마음, 사랑이 깃든 빵이 아닐까? 그런데 아직 필자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예측 불가능이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artsnews.co.kr/news/91231
두번째 이미지: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7282254254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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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14회는 2년이라는 시간이 게재되고 있지만 변화의 양상들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하기에는 그 전후의 연결이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대장이 수염을 길렀다거나, 탁구의 머리 스타일이 달라졌다거나 하는 변화의 장면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2년이란 세월이 가장 많이 변화시킨 존재는 신유경입니다. 학생운동으로 고문을 받은 전력이 있는 신유경이 완전히 일신하여 거성식품에 입사한 것은 2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했습니다. 또한 신유경이 거성 식품에 입사한 그 자체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신유경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거성식품에 입사를 한 것일까요?




지금까지 2년 동안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신유경을 중심에 놓고 언급을 했는데요,  신유경의 대척점에 서는 서인숙에 대해서도 덩달아 관심이 쏠립니다. 2년동안 서인숙에게는 어떠한 변화도 없는 것 같습니다. 홍여사가 죽은 지 14년이 되었지만 서인숙은 참회의 심적 변화를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여자입니다. 뻔뻔스럽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야흐로 이렇게 뻔뻔하고 무서우리 만치 속물적인 서인숙의 목을 옥죄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분명 서인숙에게는 '운명의 그림자'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이러한 변화를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2년 전부터 그런 징후들이 드러나고 있엇습니다. 살인자라는 편지가 그것입니다. 14회에서 2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그런 편지가 여전히 배달되고 잇었습니다. 설살가상으로 거성식품에 입사한 신유경이 나타납니다. 신유경의 등장은 서인숙에게는 예사롭지 않는 등장입니다. 신유경과 서인숙의 관계가 어떠할지는 추측하기 어렵지만 갈등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유경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이제, 서인숙을 옥죄는 운명의 손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손길들은 독립적으로 서인숙을 옥죄게 되겠지만 결국은 서로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연쇄적으로 반응을 할 것 같습니다. 서인숙이 어떻게 파멸될지 참 궁금합니다.






1.김미순과 닥터 유


서인숙을 파멸 시킬 가능성은 김미순과 닥터 유에게서 가장 크게 보입니다. 특히 김미순은 납치를 당하고 죽음에 직면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련의 일을 서인숙이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서인숙이 받는 살인자나 운명 운운하는 편지는 김미순이 보내는 편지라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규모로 복수의 계획을 꾸미고 있기에 그 실패의 가능성도 크다는 사실입니다. 거성식품의 주식과 관련하여 어떤 계획을 짜고 있는 듯 한데 성공하면 좋겠습니다.   






2. 구마준

구마준은 누구보다도 서인숙의 아킬레스라고 할 수 있는 살인현장의 팔찌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자의 관계가 어느 정도 갈등을 완화시키고 있지만 구마준의 가슴에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분노가 크고 깊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복수의 감정은 아니라고 해도 구마준은 자신의 어머니인 서인숙의 살인을 알고 있기에 서인숙을 운명에 맡겨두고자 할지도 모릅니다. 







3. 한승재

한승재가 의외로 서인숙을 옥죄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여사를 죽게 한 공범으로서 협력적인 관계임은 분명하지만, 서인숙과 구마준에게 배신을 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서인숙에 대한 분노가 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함께 죽자는 식의 물귀신 작전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적은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할까요.



몇 가지 가능성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모든 가능성들이 혼재되어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서인숙에게 운명은 어떻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 댈지 무척 궁금합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6090855331115&ext=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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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3회에서는 새로운 갈등 관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새로운 갈등 관계들이 만들어 진다는 것은 스토리상 등장인물간의 관계들이 밀도를 더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갈등 발생의 지점들이 늘어가면서 재미와 흥미 또한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를 더욱 재미있고 흥미를 자극하는 새로운 갈등 관계와 갈등이 해소되는 관계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구마준과 서인숙과의 관계

구마준과 서인숙과의 관계는 신유경을 가운데 놓고 상당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마준과 서인숙의 관계는 아주 미묘한 관계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모자의 관계이지만 서로 출생과 살인을 은폐하는 기반 위에 성립되고 있는 관계입니다. 즉, 서인숙은 구마준의 출생 비밀을 숨기고 있으며, 구마준은 서인숙의 살인을 감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모자 관계는 너무나도 위태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계에 신유경이 끼어들면서 다시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13회에서 서인숙은 구마준으로부터 신유경을 떼어놓으려고 그녀의 자취방에서 나가도록 방주인을 사주합니다. 신유경은 이 날 이후로 휴학을 하고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14회에서 구마준과 서인숙의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참 궁금합니다.
 


2. 한실장과 조진구의 관계

한실장과 조진구의 관계는 12회에서부터 형성되었습니다. 12년 전 조진구는 구일중의 지시로 김미순을 납치하긴 하였으나, 납치의 실질적인 의도와는 달리 김미순을 죽게 만들었습니다(지금 김미순은 살아있습니다). 구일중이 왜 조진구를 시켜 김미순을 납치했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우연히 한실장은 조진구가 구일중에게 한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한 실장인지 모르고 조진구는 구일중에게 해야할 말을 한 실장에게 하고 맙니다. 이를 틈타 한실장은 조진구에게 제안을 합니다. 김탁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서 보고한다면 투병중인 여동생의 병원비를 제공해 줄것이라고 말입니다. 현재 조진구는 여동생을 위해 한실장과 접촉을 하며 여동생의 병원비를 받고 있지만 이 관계는 갈등의 관계로 바뀌지 않을까 예상이 됩니다. 조진구는 김탁구의 엄마인 김미순을 죽게 만들었습니다(김미순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또 주방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때 자신을 구하기 위해 탁구가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이 지점에서 조진구의 심적 갈등은 엄청날 것입니다. 여동생과 탁구 중에 누구를 선택 할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3, 서인숙과 김미순의 관계

이 관계는 갈등이상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첨예한 대립을 보이지는 않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그 갈등이 커질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해집니다. 특히 자식(탁구와 마준)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정도입니다. 또한 살아 돌아온 김미순은 닥터유와 함께 거성가를 파멸시키려는 은밀한 계획을 세우는 듯합니다. 결국 서인숙에 대한 분노 탓입니다.
 


4. 김탁구와 양인목(양미순의 아버지, 팔봉빵집 대장)의 화해

12회에서 양인목은 김탁구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13회에서 김탁구는 자신에게 가족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곧 양인목이 김탁구를 팔봉 빵집의 식구로 완전히 받아들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방에서의 폭발 때문에 탁구가 시력을 상실하면서 보여주는 진실한 모습에 감동한 것입니다. 김탁구는 일시적인 시력 상실의 고통을 겪은 후에 다시 시력을 회복하고 구마준과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2년 후 팔봉 선생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시작합니다.
 

위에서 몇 가지 새로운 갈등들과 화해에 대해 언급을 하였습니다. 더해 13회에서는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를 언급하고 이 포스트를 끝맺고자 합니다.


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ut=1&name=/news/entertainment/201007/20100721/a7u21011.htm


첫째, 구마준과 신유경의 관계입니다. 구마준이 신유경에게 술을 마시자고 제의하고 신유경도 이 제의를 받아들여 순순히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과 신유경이 재미없다고 돌아서 나가던 구마준이 다시 돌아와 그녀에게 완력으로 키스를 하는 장면과 신유경이 뺨을 때리는 장면은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함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13회에서 서인숙이 끼어들면서 신유경이 떠나간 상황이지만 앞으로 구마준과 신유경의 관계와 관련하여 구마준과 서인숙의 복잡한 갈등 상황을 예고합니다.


둘째, 시력을 상실한 탁구가 서울의 병원에 올라가는데요, 그 곳에서 치료를 기다리는 중에 김미순과 조우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탁구의 눈은 가려져 있고 김미순도 12년이란 세월과 가려진 눈 때문에 탁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13회의 백미 중에 백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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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에는 효과적인 상징물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토리 전개의 방향을 암시하는 복선 효과를 나타내는 상징물도 있고 단순한 상징물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징물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은 드라마의 전개에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이렇게 상징물을 이용해서 스토리나 의미를 암시하는 것은 참 세련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떠한 장징물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1. 빵

빵은 말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제빵왕 김탁구>가 김탁구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성장을 그리고 있는 성장 드라마로 볼 수 있기에 이 빵의 의미는 ‘성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떠오르게 하고 전달하는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제빵사가 되기 위해 시작하는 김탁구에게 빵의 의미는 그야말로 더욱 새롭게 다가오는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밀가루라는 단순한 반죽이 빵으로 탄생하는 일련의 과정은 결국 삶의 과정과도 일치하는 것이구요. 양미순이 홀로 주방에서 케익을 만드는 장면은 빵의 상징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합니다. 또한 2년후 팔봉선생의 인정을 받는 구마준과의 경쟁도 빵의 사징성을 떼어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빵의 상징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홍여사의 옥반지

홍여사가 살아있을 때 탁구의 생모인 김미순에게 자신의 옥반지를 줍니다. 신뢰의 표식인 셈입니다. 홍여사는 왜 이 옥반지를 서인숙에게 주지 않고 김미순에게 주었을까요? 서인숙과 한승재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홍여사의 옥반지를 김미순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있는 상징입니다. 이것은 누가 선하다 악하다의 차원을 넘어 이 드라마의 전반적인 스토리 전개를 암시해 주는 수준입니다. 이것은 증거라는 표식이 되어 구일중이나 서인숙 한승재에게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입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71421394840632



3. 서인숙의 금팔찌

현재 구마준이 가지고 있는 서인숙의 금팔찌는 엄청난 폭발력을 내장하고 있고 또 그러한 폭발력을 상징하고 있는 상징물입니다. 스토리 전개상 당장은 구마준이 신유경과 사귀는 과정에서 서인숙에게 이용할 카드처럼 여겨집니다. 말하자면 협박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자신의 엄마를 협박한다는 수준은 아니구요, 은근하게 돌려 언급하지 않을가 추측됩니다. 12회에서 구마준이 이 금팔찌를 만지작거리는 장면을 통해서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당장은 그렇게 사용되겠지만, 스토리 전개상 이 금팔찌는 스토리 전개 내내 서인숙과 한승재의 죄악을 드러내는 단서가 될 것입니다. 김미순과 닥터유의 복수에 이 금팔지보다도 더한 증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구마준과 금팔찌의 존재가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4. 신유경의 모자

신유경의 모자는 신유경의 삶을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이 모자는 신유경이 보육원으로 가게 될 무렵 훔치고 나온 아버지의 돈(김미순과 관계하여 한승재와 거래해서 받은 검은 돈)인데 그녀가 이 돈을 거리의 노숙가족에게 주고서 대신 그 노숙인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 노숙인이 그녀에게 모자를 주면서 한 말은 신유경에게 강하게 와닿았던 모양입니다. 우리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노력해 주렴 하는 식의 말 같았는데요, 이 모자가 바로 그녀가 돕고자 하는 가난한 자들의 상징물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자는 신유경의 삶의 좌표를 상징하는 모자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그녀 마음의 다른 형태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유경은 자신의 신산스런 삶과 2년동안 탁구를 만날 만들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구마준의 집요한 유혹이 합쳐져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보다 자신을 바꾸려는 삶의 태도가 조금씩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자의 운명은 낡은 그 외관처럼이나 대단히 불길하게 여겨집니다.


지금까지 몇 가지 의미있는 상징물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아마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면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스토리의 전개와 함께 이 상징물들이 어떤 암시나 상징, 그리고 역할을 하게 될지 참 궁금합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716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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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숙과 한승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의 화신입니다. 죽어가는 홍여사를 그대로 방치한 채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 범죄는 12년여 동안이나 드러나지 않고 그들을 여전히 안하무인식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홍여사가 죽은 병원에서 서인숙이 김미순에게 "운명은 결국 내편이다" 라는 말은 결국은 사실이 아닐 듯 합니다. 또 그래야만 하구요. 이제는 더이상 운명은 서인숙과 한승재의 편이 아닌 듯 합니다. 조금씩 운명의 쇠사슬이 서인숙과 한승재를 묶어가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서인숙에게 배달된 한 통의 편지가 그것입니다. 그 편지는 오직 살인자란 글씨만이 큼직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서인숙과 한승재에게는 치를 떨게 만드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불안한 예감에 이들은 더욱 사악해 질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입니다. 과거 그들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서라면 어떤한 짓도 서슴치 않으리라 판단됩니다.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867

과연 이 살인자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또한 호기심을 자아내는데요, 이것은 의외로 쉽게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요? 11회에서 등장하는 거성가의 주치의인 닥터윤과 12회에서 등장하는 탁구의 생모인 김미순의 존재와 깊은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만약 이 편지가 김미순이 보낸 것이라면 이 '살인자' 라는 내용의 편지는  홍여사와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김미순은 홍여사의 죽음 원인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살인자의 의미는 김미순 자신을 죽이려고 한 괴한을 사주한 인간이 서인숙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살인자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불안감에 떠는 서인숙과 한승재는 '살인자' 의 의미를 홍여사의 죽음과 관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간의 오해이지만 이러한 오해를 통해 중대한 사건들이 드러나게 될 것 같습니다. 예를들면  탁구가 그 편지를 보냈다고 생각하고 한승재가 탁구를 찾아가서 돈으로 회유하는 장면이 그런 것입니다. 한승재나 서인숙의 불안감은 이렇게 그들을 옥죄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홍여사의 기일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홍여사의 영정 앞에서 구마준이 절을 하는 동안 그 영정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어지고 맙니다. 이 불길한 예감은 구마준에게 뿐만 아니라 서인숙에게로 전해져 기절을 하는 해프닝이 발생합니다. 홍여사는 서인숙과 한승재가 불륜 관계에 있으며 구마준이 한승재와의 사이에서 난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그 모든 사실이 은폐되고 말았습니다. 홍여사 외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준재는 구마준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구마준이 자신의 파멸은 물론이고 어머니인 서인숙과 한승재의 몰락을 원할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구마준의 행보는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그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존재이니까 말입니다.
 


셋째는 구일중, 구자경 모녀와 함께 홍여사의 산소를 찾은 한승재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입니다. 산소 주위에 나타난 검은색 자동차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홍여사의 죽음에 예민할 수 밖에 없는 한승재이고 보면 그 검은색 자동차가 마음에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만 생각이 다 떠올랐을 것입니다. 경찰일 수도 있고, 비밀을 알고 있는 존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구일중이 한승재를 부르는데도 검은색 자동차만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그렇게 넋이 나가고 만것입니다. 정말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오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12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살아온 서인숙과 한승재에게는 그야말로 불길한 예감이 찾아옵니다. 사실 불길한 예감 그 이상입니다. 살인자라니, 이건 죽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이제 서인숙과 한승재에겐 얼마간의 유예기간이 있겠지만 결국엔 밝혀지게될 그들의 죄악으로 서서히 파멸되어 갈 것입니다.  '살인자' 의 의미가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인지, 누가 보내온 것인지 여간 궁금하지가 않습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71408574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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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에서 거성식품 구일중의 후계자가 과연 누가 될 것인가가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김탁구, 구마준, 구자경 이 셋 중에서 한 사람이 되겠는데요, 꼭 12회에서 구자경에게 보여주는 구일중의 관심과 배려 때문만이 아닙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구자경이 구일중의 후계자가 되리라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지 살펴보도록 할께요. 
  


이미지 출처: 아츠뉴스


우선, 구마준의 경우 피상적으로는 후계자가 되려는 의욕을 강하게 내비치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구마준은 어린 시절부터 탁구에게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으면서, 구일중의 사랑을 받으려는 욕망이 아주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속에 끓어오르는 질투만큼이나 후계자에 대한 욕심도 강합니다. 팔봉선생의 수하로 들어가 제빵술을 배우고 팔봉 선생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아버지 구일중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구요. 또한 팔봉선생의 사숙에서 탁구와 조우하게 되면서 더욱 이러한 욕망도 강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구일중으로부터 엇나가게 만들었던 김탁구를 보기 좋게 꺾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바람이고 구일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마준는 가진 자로서 한계를 노출합니다. 김탁구는 구마준이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탁구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후각 능력만이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질투하고 대수롭지 않는 인간으로 치부해버린다 해도 김탁구는 12년이란 세월동안 홀로 세상을 헤쳐나온 인간입니다. 바로 이 밑바닥에서의 삶을 구일중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편하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신유경의 자취방에서 그녀와 나누는 대화를 보면 구일중이 얼마나 속물적인 인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 것 가진 것 없는 탁구가 신유경을 사랑하는 방식을 구마준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걸 조금 확장시켜서 보면 ‘가진 자들의 자기 세계로의 함몰’ 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마준의 속물적인 유혹에 신유경이 서서히 넘어갈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71523333460497


이러한 속물적인 모습에 더해, 구마준의 출생도 한계로 작용합니다. 아니 이 문제는 한계라기보다는 치명적입니다. 이미 그 자신이 한승재와 서인숙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구요. 아무튼 이 사실이 구마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밝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덮어진다면 한승재와 서인숙의 죄악이 드러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마준은 자의던 타의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구일중의 후계자에서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김탁구입니다. 김탁구는 그의 기질이나 성격상으로도 구일중의 후계자 자리를 거부할 것 같습니다. 구일중으로부터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겠지만 그 자리를 거부하리라 여겨집니다. 그가 구일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실제로도 구일중으로부터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러나 탁구에게는 어머니 김미순이 있습니다. 11회에서 다시 김미순의 존재가 부각이 되기 시작하는데요, 앞으로의 김미순의 역할이 강한 호기심을 불러 옵니다. 탁구가 구일중의 후계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필자의 비논리적인 추측에 근거합니다. 즉, 탁구의 꿈은 엄마와 함게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판단해 보면, 구일중의 후계자는 구자경일 가능성이 큽니다. 구자경의 후계자 계승이야말로 여러 가지로 의미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첫째, 가부장제의 약화입니다. 둘째는, 여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입니다. 구자경은 참 똑똑하고 유능한 딸입니다. 단지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아주 두꺼운 벽을 쌓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후계자가 된다면 드라마 내내 가부장적 제도에 의해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구자경에게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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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를 보면서 생기는 호기심들 중에 하나는 서인숙이 과연 동정을 받을 수 있는가 입니다. 서인숙이 동정이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 될지 참 궁금합니다. 이전에 <제빵왕 김탁구>에 대한 리뷰들 중에는 서인숙의 처지를 동정하는 내용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대체로 남존여비의 잘못된 관습에 희생당한 여자로 비춰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서인숙의 대척점에 서있는 존재가 남편 구일중인데요, 아내가 아닌 여자(김미순)에서 난 존재임에도 김탁구는 버젓이 대접을 받는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원통한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 구마준에게는 그다지 살갑지 않게 대해주는 구일중이 증오스럽기도 하겠구요. 심지어 탁구를 자신의 호적에다가 장자로 올려놓았으니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여기까지만 생각해 본다면 서인숙은 동정의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남편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아들 복도 없었습니다. 시어머니인 홍여사(정혜선 분)의 구박도 받았습니다. 서인숙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경제적으로나 외면적으로는 풍족하고 화려하기는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런 서인숙의 존재이다 보니 나쁜 여자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약간의 동정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서인숙이 오히려 거성그룹의 대주주로서 남편 구일중에게 의도적으로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된 것에 대해서도 동정이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연 서인숙이 동정의 여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아니 동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인숙이라는 존재는 악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http://www.artsnews.co.kr/news/88811



첫째, 인간이라면 자신이 어떠한 실수를 하였든 최소한의 반성이 있어야만 합니다. 만약 그러한 실수가 인간의 생명과 관련이 되는 것이라면 더욱 철저하게 고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서인숙은 법적으로 죄인입니다.
비록 홍여사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홍여사가 쓰러진 현장에서 응급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방치를 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죽어가는 홍여사를 그렇게 비참하게 방치한 짓은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12년이나 지난 지금에 홍여사에 대한 죄책감으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모습도 없습니다. 한 번씩 떠오르면서 괴로워 할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서인숙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아들 구마준에게 있습니다. 원죄의식을 조금이나마 느낀다면 지금과 같이 뻔뻔스럽게 행동하지는 못할 것인데 말입니다. 현재의 서인숙은 바로 이 원죄에서 싹튼 구역질나는 악의 꽃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여기에 한 실장과의 공모를 하였으니 이들은 공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서인숙이나 한 실장과 크게 비교되는 인물이 탁구의 친모인 김미순을 죽인(아직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음) 바람개비 문신의 사내 진구(박성웅 분)입니다. 진구는 그 사건이 있은 후 무척 죄책감에 시달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칼잡이인 그가 팔봉선생과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빵사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변화한 삶이 느껴집니다. 또한 탁구가 바람개비 문신을 보았을 때 죄책감과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할 정도였습니다. 이 진구와 서인숙을 비교해 보면 서인숙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한실장과의 불륜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구마준이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일중이 김미순과 불륜을 저지르고 김탁구를 낳은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당시의 전통이나 관습을 아무리 고려한다고 해도 그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의 관습상 구일중은 떳떳하고 서인숙은 죽을 죄를 지었다는 식은 곤란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 불륜을 지속적으로 이어오면서 구마준을 거성 그룹의 후계자로 앉히려는 양심불량의 태도입니다. 아무리 구일중이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해도 자신의 남편인 구일중의 친구이자 최측근인 한 실장과 12년 이상이나 불륜 관계를 지속하면서 자신들 사이에서 태어난 구마준을 거성가의 후계자로 앉히려는 것은 죄악이라고 봅니다. 정말 동정의 여지가 없는 짓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서인숙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동정을 가지고 계셨다면 그런 감상적인 태도는 버리고 좀 더 냉정하게 서인숙을 보기를 바랍니다. 물론 필자 일방의 바람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선악 구도라는 것이 보는 이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제빵왕 김탁구>는 분명하게 선악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인숙과 한실장은 동정의 여지조차 없는 악한입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c1=02&c2=&c3=&designer=&season=&nkey=201006281026343&mode=sub_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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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장인정신은 참 중요하다. 이 정신은 '단순히 만들어지는 것' 인 결과에만 전적으로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자세, 만드는 과정등을 존중하는 정신이다. 특히 만드는 자세는 대단히 중요하다, 신명을 다한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자세 속에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음식을 결과물로만 본다면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는 유리되고 만다. 그러나 음식을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그기에 깃든 정성과 재료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면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는 존재로 일체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음식이 사람의 몸을 아프게 한다거나 망친다면 마음과 유리된 음식일 가능성이 커진다. 마음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불순한 재료, 탐욕, 이기주의가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불량식품이라는 것이 그렇다. 음식이 단순히 결과물로만 여겨진다면 음식은 인간에게 유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음식을 마음이 깃든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먹는 사람들에게 음식이 갖는 의미는 참으로 커지는 것이다. 그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마음을 먹는 것이고, 정성을 음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정성과 마음의 맛을 음미하고 자신의 내면 속으로 그것을 넣는 것이다. 만든 사람의 마음을 맛본다는 것은 어떠한 소통의 경지보다도 가장 높은 단계의 소통이지 싶다. 따라서 음식은 유용성이나 실용성의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때로 언어보다도 더 진실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더 깊은 소통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63023113578611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은 참 깊은 의미를 나타낸다. <신데렐라언니>에서 대성도가의 술이 익어가는 과정이 젊은 주인공들이 성숙하게 발전하는 모습과 대비하여 생각해 보았듯이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의 의미가 또한 그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빵에 깃든 정성과 시간과 재료의 투입과 혼합처럼 결국 탁구의 정신에도 그러한 것들이 깃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팔봉 선생이 탁구와 하는 대화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성껏 만든 빵을 굽기만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의 말 말이다. 이러한 팔봉 선생의 말은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의성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은 뭐라해도 정신적인 성숙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빵이 만들어 지기까지의 과정을 단 한 마디로 언급한다면 바로 성숙한 변화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고 팔봉선생의 말을 운명적이라거나 종교적인 초월 같은 걸로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팔봉선생의 말은 장인의식에 가깝다고 본다. 무슨 선승의 화두같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히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말이다. 빵이 익을 동안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듯이 그렇게 인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운명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탁구가 처한 현실은 성숙한 변화를 위한 밀가루 반죽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이 반죽을 어떻게 잘 익은 빵으로 변화 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탁구의 현실 인식에 대한 비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현실을 초월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잘 익은 빵으로의 변화인 것이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다.


<신언니> 대성도가의 구대성이 그랬듯이, 팔봉빵집의 팔봉 선생은 정신적인 지주로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탁구에게는 더욱 그러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은조에게 구대성이 그러한 존재였던 것 처럼 말이다.



첫번째 이미지: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800&g_serial=5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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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에서 12년이 흐른 후 20대가 된 탁구가 등장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엄마의 찾아 나선 탁구의 마음은 한결 같기만 하다. 오로지 엄마만 찾는 것이다. 저자거리에서 건달들을 때려눕히면서 소매를 걷어 올려 바람개비 문신을 확신하는 탁구(윤시윤 분)는 오직 엄마를 찾겠다는 그 일념 하나 밖에 없다. 자신의 엄마를 잡아간 괴한이 팔목에 바람개비 문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바람개비 문신과 괴한을 떠올리면 몇 가지 호기심이 일어나게 되는 데 이 포스트는 단지 그러한 호기심에 대한 몇 가지 언급을 하고자 한다.


우선, 바람개비 문신을 하고 있는 사내의 정체이다. 그는 누구이기에 엄마를 납치했을가? 이전 회에서 확인했듯이 바람개비 문신의 사나이는 구일중이 조종해서 미순을 납치했다. 그리고 실수로 미순을 절벽으로 떨어지게 하여 12년이 지난 지금도 생사 확인조차 못하는 지경이다. 이제 바야흐로 그 사내의 정체가 탁구에 의해 밝혀지려고 하고 있다. 7회에서 이미 그 사내가 팔봉 선생의 제과점에서 제빵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http://www.artsnews.co.kr/news/87286

둘째는, 왜 구일중이 바람개비 문신을 사주하여(?) 탁구의 엄마 김미순을 해치려고 했을까 ?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김미순이 행방불명이라는 결과만을 놓고 볼 때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구일중이 왜 이런 사주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호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구일중이 탁구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었기에 김미순을 자신의 아내와 한 실장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물론 이와는 다른 해석 또한 가능하다. 즉, 탁구를 자신의 호적에 장남으로 올리면서 김미순의 존재를 장애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멀리 떠나보내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셋째는, 김미순은 살아있을까? 만약 김미순이 살아있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7회의 앞 부분에서 강변(?)에 쓰러져 있는 김미순의 모습이 나오는데 아마도 살아있다는 복선이 아닐까 싶다. 김미순이 살아있다면 그녀가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 무척 궁금해 진다. 12년이란 세월은 길다면 길기 때문이다.


세 가지 의문점을 지적했는데 이런저런 의문점들에 대한 호기심들이 드라마 전개에 재미와 긴장감을 더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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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동시에 호기심을 자아내는 부분은 탁구의 친모인 김미순의 행방불명입니다. 그녀를 납치한 괴한으로부터 도주하다가 절벽에서 강으로 떨어진 김미순의 모습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지만, 생사여부가 확실하게 드러난 게 아니어서 그 귀추가 주목이 됩니다. 김미순은 살아있을지,죽을 을지 참 궁금합니다.


김미순의 납치는 구일중이 사주한 것이 분명합니다. 참 의외의 일입니다. 구일중이 김미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납치를 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드러난 바가 없습니다. 김미순을 납치하기 이전에 구일중은 탁구에게 호적에 올리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과연 구일중의 이러한 말이 김미순 납치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구일중이 참 잔인하게도 보입니다만, 그 당시의 인습으로 보면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구일중이 김미순을 납치하려고한 의도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신유경의 아버지가 김미순을 겁탈하려는 순간 괴한이 그녀를 구해주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가요, 아니면 구일중이 한승재의 음모를 이미 눈치 채고 내린 조치일까요? 이러한 추측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승재는 신유경의 아버지를 사주하여 김미순을 겁탈하게 하고 자신의 여자로 만들라고 합니다. 아직은 구일중이 왜 김미순을 납치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김미순을 한승재가 사주한 괴한으로부터 보호하거나 구해주려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괴한이 김미순의 손목을 끈으로 묶고 짚차에 태워 어디론가 가는 것으로 판단해보면 과연 구일중이 김미순을 진정으로 구해주려고 했는가 하는 확신은 서지가 않습니다. 단순히 김미순을 구해주려고 했다면 그렇게 손을 묶을 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괴한의 말이 마지막이란 여운까지 남깁니다. "아줌마 더 이상 아줌마 아들 못봐."


만약 구일중이 김탁구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빵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이 진실이라면 김미순을 그렇게 거칠게 다룰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은밀한 방법이 아니라 떳떳하고 공개적으로 탁구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김미순도 그렇게 대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김미순을 구하기는 했지만 납치는 마찬가지 인 것입니다. 아무튼 구일중이 괴한을 사주하여 김미순을 납치하려고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구일중이 지독한 남아선호에 입각하여 탁구만을 필요로 하고 김미순은 버려야 할 존재로 생각했다면 충분히 말로서 타협을 한다거나 다른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느닺없이 괴한을 사주하여 김미순을 납치하는 범죄를 저지를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이전에 구일중이 김미순의 집에 들러 국수를 먹는 장면은 구일중이 김미순에 대한 호감, 더 나아가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판단해 보더라도 김미순을 납치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구일중이 왜 김미순을 납치하려고 했는지 그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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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여사의 죽음은 탁구에게는 비극으로 다가온다. 구일중의 저택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의 장막에 쳐진 구일중이 탁구를 구해낼 수도 없다. 한승재나 서인숙에게는 탁구의 존재만큼 불길한 존재도 없다. 악녀 서인숙과 악한 한승재가 탁구를 가만히 내버려 둘리도 만무하다. 홍여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패륜적인 짓을 하고도 그들의 눈에는 오직 구마준의 미래 밖에는 없다. 특히 한승재는 양심의 가책은 커녕 오히려 탁구 의 친모인 김미순을 신유경의 아버지를 사주하여 겁탈하게 한다. 겁탈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한승재나 서인숙의 악행은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잠깐 옆길로 새어서 한승재의 사주를 받은 신유경의 주정뱅이 아버지가 김미순을 겁탈하려는 순간에 나타나 김미순을 구해준 괴청년은 구일중이 보낸 폭력배로 보이는데, 이 괴청년이 김미순을 짚차에 태워 데리고 가는 과정에서 김미순이 차에서 내려 도망을 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바다로 빠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강한 흥미를 자아내는데 왜 구일중이 괴청년을 김미순에게 보냈는지, 그리고 바다로 떨어진 김미순이 살아있는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김미순이 살아있기만을 바란다. 탁구는 유경으로부터 괴청년의 팔뚝에 바람개비 문신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이것이 탁구에게는 엄마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된다.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006242054123&sec_id=540101



이런 와중에서 탁구는 한승재로부터 제의를 받게 되는데,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여기(구일중의 저택)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모략으로 다만 엄마를 만나게 해준다는 핑계로 탁구를 밀항시키려는 것이었다. 결국 탁구는 한승재의 말대로 하게 되고 차를 타고 간 곳은 어느 부두이다. 밀항선원들로 추측이 되는 남자들에게 밀항선에 태워 영구히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탁구는 달아나게 되고 그 와중에 팔봉 선생과 조우하게 된다. 팔봉 선생과의 조우는 탁구에게는 참 중요한 순간이다. 팔봉 선생은 제빵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구일중의 스승이기도 하다. 후일 탁구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12년이란 세월이 흐른다. 청년 김탁구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 12년 세월 동안 탁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플래쉬백을 통해 앞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무엇보다는 탁구는 자신의 엄마를 찾는 노력을 엄청 했을 것이다.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았을 지도 모른다. 윤시윤이 분한 김탁구가 최초로 등장하는 장면은 시장통에서 횡포를 부리는 건달들과의 싸움 장면인데 건달들을 혼낸 탁구가 건달들의 소매를 걷어 올리며 문신을 확인하는 모습은 엄마를 찾으려는 노력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파란 만장했던 어린 시절의 탁구는 이제 청년 김탁구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에서 일어날 일들이 너무나 많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자신의 엄마 김미순이 한 말 처럼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 말을 그 스스로 확인시켜주면 좋겠다. 그러나 정말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이기게 돼 있는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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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5회는 무더운 여름밤을 식혀주는 서늘한 장면이 많았다. 홍여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서인숙과 한승재의 불륜과 그 죽음을 은폐하려는 그들의 음모는 마치 범죄 스릴러물을 보는 것처럼이나 잔인하고 치밀했다. 홍여사는 마치 인간이 아닌 사물처럼 빗속에 내버려졌고 서서히 죽어갔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짓을 서인숙과 한승재는 한 것이다. 홍여사의 버려진 죽음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악행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각인시켜 준다.


이처럼 서인숙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악녀이다. 과실치사이지만 분명히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리고 시신을 유기했다. 빨리 병원에 연락을 해서 치료를 받았다면 소중한 생명을 살렸을지도 모른다. 정신이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한승재가 무슨 말을 하던 사람을 살리고 보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치부가 홍여사의 입으로 발설된다고 해도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홍여사가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유기를 해버렸다. 이건 명백하게 살인이다. 그러니 서인숙은 악녀일 수 밖에 없다.


만약 서인숙을 유교적인 가부장제의 희생자로 동정한다면, 그것은 현재의 시점에서 가치판단을 한 것으로 단순히 해석의 결과일 뿐이다. 서인숙을 김미순과 상응하는 존재로 여기면서, 김미순처럼이나 구마준을 낳은 서인숙을 불륜이라는 동일한 선상에서 같은 처지가 아닌가 하고 동정을 한다면 시대라는 상대성을 간과하는 것일 테다.


즉, 현재의 시점에서 불륜이라는 점은 구일중도 김미순도 나쁘고 서인숙도 한승재도 나쁘지만 당시의 시점에서는 사회적인 통념상 재력가가 첩을 거느리는 것은 용인되는 때였다. 그 당시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나 관습을 언급하는 것이다. 아니 유교가 낳은 어떤 병폐라고 할 수도 있겠다.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10/0624/20100624101040100000000_8452163317.html



이와는 달리 여성들이 불륜을 저지르고 다른 사내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짓이었다. 하물며 그 아이의 아버지를 속이는 것에랴. 그랬기에 서인숙이 한승재의 아이인 구마준을 낳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짓이었다. 당시의 인식에서는 서인숙은 분명 악녀인 것이다.


둘째로, 내연의 관계인 한승재와 함께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도 사악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남편 구일중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은밀하게 연애를 한다는 것과 자식을 낳아 구일중의 자식처럼 위장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기다 두 딸이 있지 않는가? 아무리 남편인 구일중과의 애정이 식어버렸다 해도 그것을 빌미로 한승재와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는 것은 인륜에도 맞지가 않는다. 구마준이라는 자신들의 아들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은 애틋한 모성으로 봐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으로서는, 여자로서는 정말 사악하고 잘못된 행동이다. 당시의 관점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셋째로 탁구를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천대하는 비인간적인 면모 때문이다. 서인숙이 배운 인간이라면(그녀의 학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지만) 탁구에게 비속어를 남발하는 대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기다가 실상 구마준은 자신의 배에서 나온 자식이긴 하지만 구일중과는 아무 관계가 아니지 않는가. 이런 입장에서 어느 정도 구마준을 편애할 수는 있겠지만 탁구를 무시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탁구를 견제하면서 탁구가 크게 성장하는 것을 방해 할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승재와 함께 탁구를 밀항선에 태워 외국으로 보내버리려는 짓은 그야말로 홍여사를 유기한 범죄만큼이나 큰 범죄인 것이다.   


서인숙은 동정의 여지가 없다. 시어머니인 홍여사를 죽게 했고, 김탁구를 내쫒았으며, 구일중을 철저하게 배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악녀라면 어찌 동정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그 시대적인 배경이 60,70년대입니다. 2000년대와는 30여년의 시차를 두고 있습니다. 이 30년이란 시간 동안 수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발전을 통한 물질적인 풍요가 있었고 물질적인 풍요 한켠으로는 정신적인 삭막함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 대한 가치 판단도 변화해왔습니다. 특히 남성의 권위주의에 억압당해온 성, 여성, 아이, 교육 등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두드러지게 변화해왔습니다.


<제빵왕 김탁구>가 남성의 권위주의와 가부장제가 강력하던 60,70년대를 시대적인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지금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6070 세대가 아니라면 드라마 내용상 현실과의 괴리와 모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10대의 고등학생이 이 드라마를 본다면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물론 현재를 기준으로 하기에 60,70년대를 시대적인 배경으로 하는 <제빵왕 김탁구>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엽기적이고 이상한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시대가 다르다는 상대적인 입장보다는 현재라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아주 열등하고 잘못된 문화로 치부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6070 세대라면 이 드라마의 내용이나 남자, 여자, 아이에 대한 생각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이미 삶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드라마에 공감하고 추억을 반추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헐벗고, 굶주리면서 삶이 얼마나 피곤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그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스쳐지나가듯이 피상적으로 본다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빵왕 김탁구> 가 19세 이상 관람가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10대, 20대, 심지어 30대까지는 그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사실 19세이상 등급 판정을 내렸지만 이 결정은 야하다거나 성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적인 이유가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10대,20대들에게는 이 드라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19세 이상 관람가능하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19세 미만인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좀 힘들 다는 배려에서 일까요?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