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장인정신은 참 중요하다. 이 정신은 '단순히 만들어지는 것' 인 결과에만 전적으로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자세, 만드는 과정등을 존중하는 정신이다. 특히 만드는 자세는 대단히 중요하다, 신명을 다한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자세 속에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음식을 결과물로만 본다면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는 유리되고 만다. 그러나 음식을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그기에 깃든 정성과 재료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면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는 존재로 일체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음식이 사람의 몸을 아프게 한다거나 망친다면 마음과 유리된 음식일 가능성이 커진다. 마음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불순한 재료, 탐욕, 이기주의가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불량식품이라는 것이 그렇다. 음식이 단순히 결과물로만 여겨진다면 음식은 인간에게 유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음식을 마음이 깃든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먹는 사람들에게 음식이 갖는 의미는 참으로 커지는 것이다. 그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마음을 먹는 것이고, 정성을 음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정성과 마음의 맛을 음미하고 자신의 내면 속으로 그것을 넣는 것이다. 만든 사람의 마음을 맛본다는 것은 어떠한 소통의 경지보다도 가장 높은 단계의 소통이지 싶다. 따라서 음식은 유용성이나 실용성의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때로 언어보다도 더 진실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더 깊은 소통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63023113578611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은 참 깊은 의미를 나타낸다. <신데렐라언니>에서 대성도가의 술이 익어가는 과정이 젊은 주인공들이 성숙하게 발전하는 모습과 대비하여 생각해 보았듯이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의 의미가 또한 그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빵에 깃든 정성과 시간과 재료의 투입과 혼합처럼 결국 탁구의 정신에도 그러한 것들이 깃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팔봉 선생이 탁구와 하는 대화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성껏 만든 빵을 굽기만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의 말 말이다. 이러한 팔봉 선생의 말은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의성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은 뭐라해도 정신적인 성숙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빵이 만들어 지기까지의 과정을 단 한 마디로 언급한다면 바로 성숙한 변화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고 팔봉선생의 말을 운명적이라거나 종교적인 초월 같은 걸로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팔봉선생의 말은 장인의식에 가깝다고 본다. 무슨 선승의 화두같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히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말이다. 빵이 익을 동안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듯이 그렇게 인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운명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탁구가 처한 현실은 성숙한 변화를 위한 밀가루 반죽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이 반죽을 어떻게 잘 익은 빵으로 변화 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탁구의 현실 인식에 대한 비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현실을 초월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잘 익은 빵으로의 변화인 것이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다.


<신언니> 대성도가의 구대성이 그랬듯이, 팔봉빵집의 팔봉 선생은 정신적인 지주로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탁구에게는 더욱 그러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은조에게 구대성이 그러한 존재였던 것 처럼 말이다.



첫번째 이미지: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800&g_serial=5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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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미주리 2010.07.03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처럼 표절이 만연하고 신제품도, 다음달이면 똑같이 찍어만든걸 볼 수 있는 세상을 감안하면, 정말 장인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2010.07.03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아빠소 2010.07.03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심심찮게 제빵왕 김탁구 포스트가 눈에 띄네요. 아직 보진않았지만 한번 봐볼까 생각중입니다.
    글 잘보고 갑니다


신데렐라 언니, 정우와 효선이 사랑스럽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커플에게는 세상은 천국이 된다. 사랑에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지옥이 된다. 사랑은 인간을 그렇게 상이한 처지에 놓이게 만든다. 사랑이란 대상이 있고 상대적일 수 밖에 없기에 상처가 생기고 비극이 생기는 것이다. <신데렐라언니>도 예외가 아니다. 기훈과 은조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그 이면에는 기훈과 은조로부터 사랑의 상처를 받고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 있다. 정우가 그렇고, 효선이 그렇다. 그 사랑 때문에 유일하게 대성참도가를 떠난 존재는 정우이다. 정우는 참 쿨했다. 효선도 마찬가지였다. 기훈을 형부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둘의 마음의 심연에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 단지 그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참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선 정우의 경우, 누구보다도 은조를 사랑하고 은조를 책임지려는 마음이 강했다. 은조를 아프게, 하고 은조를 방황하게 하는 기훈의 존재를 알았을 때 은조와 함께 아파하고 방황하는 정우였다. 기훈이 홍주가와 관련된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자 했을 때, 그것을 막았던 것도 정우였다. 기훈보다 은조를 더 위하고 생각했던 존재가 정우였다. 이런 정우의 행동이 바람직했는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오직 은조에 대한 사랑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은조를 위한 헌신적인 행동에 가까웠다. 정우에게 은조는 삶의 근거였고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실상 은조가 기훈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을 헤아리기란 참으로 힘들다. 정우가 은조를 데리고 가서 사랑의 고백을 할 때 은조가 '나 그사람 좋아해' 라며 사실상 거부의 말을 들었을 때 은조를 깨끗하게 잊으려는 그 모습은 참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기훈과 마찬가지로 정우도 은조와 같은 신산한 어린 시절을 살았다. 장씨 아저씨가 데려와 살았던 존재로 따지고 보면 엄마도, 아빠도 없는 그런 존재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은조, 효선,기훈, 강숙의 갈등과 상처에 묻혀 정우의 상처는 많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헤아려보면 정우의 상처야 말로 가장 컸을 것이다. 




정우가 떠나는 순간, 이 불쌍한 존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은조와 헤어지고 버스를 타는 그 순간은 어느 사랑보다 정우의 사랑이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벗어나 숭고한 사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선 또한 마찬가지였다. 효선은 참 바보같은 존재이다. 구대성과 함께 은조와 송강숙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그런 존재이다.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이 효선의 역을 서우가 한 것에 대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편이다. 이것은 서우의 이미지가 다소 이지적이고,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이기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에 희생적인 그런 역과는 걸맞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끝이 나서 이제야 용기를 내어 하는 소리지만 말이다. 아무튼 효선은 기훈을 지독히도 사랑했지만 기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효선에게는 지독히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은조가 누구인가? 송강숙의 딸이 아닌가? 자신의 전부를 앗아간 존재들이 아닌가? 아무리 이들의 존재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해도 자신의 사랑마저 빼앗고 마는 은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사랑마저도 구대성 처럼 느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정우처럼 떠날 수도 없는 효선에게는 더욱 괴로울 것이다.


효선이 송강숙에게 보여준 태도(2010/05/21 - [드라마] - 신언니, 바보같은 효선의 복수 구대성을 닮았다?) 로 판단해 보면 홍기훈이나 은조에 대한 태도 또한 효선의 마음 속에서는 자랐음이 분명하다. 성숙함이라고 간단하게 애기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다. 효선의 피 속에 흐르는 구대성의 피일 것이다. 모전자전 말이다. 구대성이 장씨를 몰래 만나던 송강숙을 그저 용서하고 받아들였듯이, 오직 송강숙이 떠나는 것이 두려웠기에 모른 체 했듯이 말이다.  


정우와 효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은 참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사랑을 배앗은 타인들의 사랑에 그토록 너그러울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움 이상이다. 드라마가 끝이 났지만 정우, 효선 당신들의 상처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2010/06/04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결말이 실망스러운 이유?
2010/06/03 - [드라마] - 신언니, 외로운 사람들끼리 사랑해야 할 이유
2010/05/22 - [드라마] - 신데델라언니, 갈등하는 인간들의 혼란스런 모습들?
2010/05/22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송강숙은 효선에게 다시 돌아올까?
2010/05/21 - [드라마] - 신언니, 바보같은 효선의 복수 구대성을 닮았다?
2010/05/21 - [드라마] - 신언니, 애매모호한 존재들의 아름다움?
2010/05/20 - [드라마] - 신언니, 송강숙은 왜 효선을 두려워할까?
2010/05/17 - [드라마] - 신데렐라언니, 은조가 아닌 송강숙의 죽음이 보인다?
2010/05/14 - [드라마] - 신데렐라언니, 송강숙에 드리워진 운명의 그림자?
2010/05/13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송강숙은 과연 어떻게 변화할까?
2010/05/06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은조?
2010/04/29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구대성의 죽음 VS 은조의 삶
2010/04/24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송강숙은 왜 구대성이 살아 있기를 바랄까?
2010/04/24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생물학적 엄마 vs 정신적인 아빠
2010/06/04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결말이 실망스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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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록킴 2010.06.06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갑자기 생각난것인데요,하늘님 드라마 리뷰와 평가는 전문가급입니다.
    그리고 하늘님 여자분이신가요? 이런 심리적인 드라마 리뷰는 왠만해서는 남자들이 할수 없는것 이여서요^^;
    단지,제가 신데렐라언니를 안본다는것이 아쉽지만,일드쪽도 리뷰 해주세요 ㅎㅎ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6.06 1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하록킴님 너무 과찬이세요^^
      아무튼 감사드리구요, 저 빨리 경매에 참가해야 하는데...여건이 허락치가 않네요^^;;
      저는 남자이지만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답니다.

  2. 라이너스™ 2010.06.06 1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멋진 주말되세요^^

  3. 인생이란 즐거운 롤러코스터 2010.06.06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이런...문근영을 택연이...ㅜㅡ

  4. 너돌양 2010.06.06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이 드라마가 위기의 옥택연을 살렸군요 ㅎㅎ

  5. 둔필승총 2010.06.06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휴일 남은 시간 멋지게 보내세요.~~

  6. 불탄 2010.06.07 0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기가 좀 불편했지만(나이탓에 글씨가 잘 안보이는군요.) 재밌게 잘 읽어보았습니다.

  7. 못된준코 2010.06.07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 ㅑ~~~ 역시 드라마 리뷰는 정말 대단하세요.~~~글만 읽어도 재밌습니다.~

  8. 머니야 머니야 2010.06.07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봤습니다^^ 저도 와이푸가 즐겨보는 덕분에 틈틈 보았었는데..결정적으로 막방을 못봤어요...ㅠㅠ

  9. 핑구야 날자 2010.06.07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효선의 역할을 서우보다는 문근영이 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10. mami5 2010.06.07 2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우와 효선 넘 이쁘죠..
    특히 정우가 더 이뻐요..^^

  11. BlueRoad 2010.06.08 0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 한두 번쯤 스쳐봤던 드라마라.. ㅎㅎ
    그나저나 쭉 읽어보니 드라마 리뷰 정말 잘하시는데 외국 드라마도 한번 해주세요!!







신데렐라 언니, 실망스런 결말은 해피엔딩에 대한 지나친 집착 탓?




<신데렐라 언니>의 제작자들은 해피 엔딩에 어떤 강박을 가지고 있었을까?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비극은 아니더라도 해피 엔딩을 등장인물들에게 그토록 집요하게 요구하는 그런 드라마를 기대하지 않았다. 솔직히 20회는 <신데렐라 언니>를 망친 듯한 느낌이다. 19회에서 송강숙이 돌아오는 장면에서부터 "어, 뭐 이리 송강숙이 쉽게 돌아오나!" 는 한탄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20회에서 은조가 떠 난후 다시 찾는 장면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왜 모든 등장인물들이 대성 참도가로 돌아오고 해피 엔딩으로 끝나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글쓴이가 이전에 썼듯이(2010/05/22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송강숙은 효선에게 다시 돌아올까?) 송강숙이 돌아오기 위해서는 충격이 필요하다고 했다. 등장인물들의 죽음까지도 생각했다. 특히 준수의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정도의 충격이 되어야 송강숙이 돌아 올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송강숙은 준수가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심정이었겠지만 너무 쉽게 돌아왔다. 사실 송강숙이 역사에 효선을 두고 사라졌을 때, 그것으로 송강숙이 사라지기를 바랬다. 영영 말이다. 송강숙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이 드라마의 극적인 재미와 감동의 여운을 남기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송강숙이 나타나고 만 것이다. 동화로 치면 "집을 나간 계모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계모가 개과천선을 하여 돌아온 것입니다."  이런 모양새다. 수 없이 많은 결론들이 가능하지만 이상하게도 송강숙과 관련해서는 송강숙이 돌아와 대성 참도가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을 선택하였으니 최악의 결론을 선택한 느낌이다. 송강숙과 관련해서는 여운을 남겨두어도 충분히 괜찮을 듯 싶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송강숙이 대성참도가로 돌아 온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송강숙의 역할은 대성 참도가를 떠나면서 함께 사라졌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전의 글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송강숙은 동화의 나라 같은 대성 참도가에서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불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록 송강숙이 근본적으로 변화를 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둘째로, 은조가 대성 참도가를 떠난 건 참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기훈과의 결혼을 약속하지만, 결국 효선 때문에 당혹스러워진 은조는 대성참도가를 떠난다.  이 일에 앞서 정우가 대성 참도가를 떠났다. 정우처럼 이렇게 쉽게 떠나면 되는 것이다, 라고 은조는 자조섞인 눈물을 흘린다. 효선은 어찌보면 은조로부터 거의 전부를 빼앗기다시피 했다. 이런 효선이었기에 은조는 가슴이 아픈 것이다. 은조가 떠나는 반전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은조가 떠나는 장면에서 이 드라마가 멈추어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기훈과 효선이 은조를 찾아 나서게 되고 기훈이 은조를 찾게 된다.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지 결론이 사족이 된 듯한 느낌이다.


송강숙도 돌아오고, 은조도 기훈이 찾아 데리고 온다. 정우만 떠나갔다. 왜 이렇게 촌스런 결말을 만들었는지 아쉽다. 이미 언급했지만 제작진들이 해피 엔딩에 너무 집착한 것 같다. <신데렐라 언니> 가 상처를 가진 인간들과 그 상처를 서로 보듬으며 아물게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그 궁극의 지점이 상처가 아무는 시점이긴 하지만 꼭 해피 엔딩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말이 너무 실망스러웠기에 이 드라마에는 분명 디렉터의 컷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이다.  아마도 TV드라마 이다 보니 해피엔딩에 집착하게 된 듯 싶다. 아 그러고 보니 <지붕 뚫고 하이킥>의 무모한 결말이 떠오른다. 왜 그럴까?


P.S. 그래도 신언니의 모든 제작진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정말 좋은 시간을 함께 했다고 말이다.
       드 라 마  제작하면서 고생하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60323202295271
두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0321463909158&outlink=2&SV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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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빛날 휘 2010.06.04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너무 싱거운 결말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네요.
    차라리 이럴바에야 해피엔딩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좋은 글 잘보구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2. 이기적인 여우 2010.06.04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들러 좋은 글을 봤습니다.
    그런데..저는 조금 다른 생각이에요..
    송강숙이 준수가 없어졌다는말에 놀라서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전에.. 친구의 딸이 울고있는 모습에서 은조나 효선에게 미안하다는 마음도 느꼈을거라고 생각되네요..
    친구 딸이 엄마의 모습이 싫다고 우는 모습을 보고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라온 은조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느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봤어요..ㅎ

    누구나 다르게 느끼겠지만요..ㅎ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3. Angel Maker 2010.06.04 1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반부 캐릭터의 무너짐과 홍주가의 가벼운 대립이 무게감을 떨어트리고
    너두좋고 나두좋구 다좋구 식의 엔딩은 초반 열혈팬으로서 아쉬움이 컸답니다.

  4. killerich 2010.06.04 1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싱거웠다는... 의견이 대세더군요^^;;
    아...ㅎㅎㅎ

  5. 2010.06.04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자수리치 2010.06.04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였네요.
    너무 밋밋한 결말이었다는....

  7. 장난하냐 2010.06.04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홍기훈은 지금까지 봤던 남주중에 최악이었죠.
    ㅋㅋ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기다리라고 해놓곤,
    납치되어서 죽내 마내 하곤 있었죠.
    은조 아니었음 넌..굶어죽었겠다.

    은조 산 속에 내려놓고 혼자 처리하겠다며
    다시 되돌아갔던 홍기훈씨.. 이미 검찰에 고발되어
    아버지 연행되기 일보직전에도 모르다가 은조 말 듣고서야 알았죠. ㅋㅋ
    은조 아니었음 넌 아주 죽치고 기다리고 있었겠구나.

    진짜 내 스무시간.. 되돌려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의
    전개였습니다. 진짜 최악입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6.06 0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그렇긴해죠. 홍기훈의 해결책은 사실 불법적인 것이죠. 법을 무시하고 자신이 적당하게 타협을 하려고 한 것 말이죠~~차라리 실의에 빠져있고 그냥 내부 고발자에 의해 홍주가가 무너지는 것을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신데델라언니, 갈등하는 인간들의 혼란스런 모습들?



등장인물의 관계들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복수와 용서, 사랑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를 읽기도 간단치가 않다. 의미들이 생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들이 쉽게 잡혀지는 것들이 아니고 애매하다. 논리가 아니라 애매성,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소용돌이 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예상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인간의 삶이란 감정이 충돌하고, 그 감정이 대체로 단호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더듬거리고,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신데델라 언니> 는 바로 이런 삶의 애매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 사랑도, 복수도, 용서도, 그렇게 단호한 것들이 있던가?


그 대표적인 존재가 구대성이다. 구대성이 애매한 존재이기에 동시에 대단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은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엄마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매성이 그렇다. 효선은 또 어떤가? 은조와 송강숙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에서 오락가락 한다. 기훈도 마찬가지이다. 은조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제대로 내보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부처님, 하느님과 맞장을 떴다는 송강숙 마저 내적 혼란을 겪고 있다. 정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은조에 대한 충직성은 하나 만은 변함이 없지만 은조의 심적 갈등에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이렇듯 등장인물, 특히 대성도가의 인물들은 한결 같이 애매한 모습이고 그래서 서로의 관계가 명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모호하다. 홍주가의 인물들과 비교해 보면 바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이것은 갈등하는 인간의 약한 모습들, 그렇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기에 더욱아름답다. 관계의 애매성들을 선천적인 인간의 내면의 불완전함에서도 기인하겠지만, 동시에 성찰하는 인간이기에 더욱 그렇다고 본다.


 

만약 이 세상이 선과 악으로 나누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인간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건 인간의 본성과 자연스러움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이퀴브리움><아일랜드>의 세상처럼 철저하게 인간이 어떤 가치(선) 하나 만에 종속되면서 자유가 억압되고 말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어디 선과 악으로 나누어지는 것인가? 복수라는 감정도 그렇게 철저하고 단호하지 못하다. 인간이 인간을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콘센트를 꼽듯이 코드가 맞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총체성, 심지어 모순이나 내면에 드리워진 악의 그림자까지도 이해하는 것이다. 기구한 송강숙의 삶이나 그 송강숙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은조의 삶은 선과 악이 뒤틀려 있는 삶이다. 악다구니와 욕설과 냉소와 분노가 일상화된 삶이다.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 이난 삶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이 아닐까 한다.


<신데렐라 언니>가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자제되지 않는 과도한 슬픔과 눈물이 옥에 티라면 티일 수 있지만 혼란스러운 인간 내면을 관계의 틀 속에서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내면적인 성숙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은조, 효선, 기훈을 보면 더욱 그렇다. 효선-송강숙, 은조-송강숙, 은조-효선, 기훈-은조-효선-정우의 관계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들어야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쥬얼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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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송강숙은 다시 돌아올까?




16회에서 송강숙이 떠나버렸다. 기차 역사에 홀로 남겨진 효선이 "엄마" 라고 부르짖으며 끝이 났다. 이 송강숙의 떠남은 그녀가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의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던져 주었다. 송강숙은 과연 돌아올까? 만약 송강숙이 돌아온다면 어떤 계기로 인해서 일까?


송강숙이 떠난 것은 드라마의 내적인 필연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다. 필자가 이전의 포스트에서 송강숙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언급했었다. 송강숙이 떠난 것은 이 죽음이라는 추측과 깊은 관련이 있다. 죽음은 송강숙의 떠남의 강한 은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송강숙은 결코 개성도가에 남아 있을 수가 없다. 떠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송강숙이 단지 속물적인 인간으로 남아있다면 뻔뻔스럽게도 대성도가에 남아 온갖 뻔뻔스러운 짓은 다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구대성의 일기를 통해 송강숙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 이런 변화가 송강숙을 내면적으로 뒤흔들고 있다면 송강숙이 대성도가를 떠나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녀가 불행으로 빠트린 대성도가에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또 그 일기를 읽게 된 효선이 그녀의 모든 과거를 안 이상 더 이상 효선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송강숙은 결코 대성도가로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것일까? 돌아 올 수 없다가 정답이다. 송강숙은 결코 대성도가로 돌아 올 수 없다.


그러나 송강숙이 돌아 올 수밖에 없는 어떤 충격적인 일이 대성도가에서 일어난다면 송강숙은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송강숙을 불러들일 수 있는 충격적인 일이란 무엇일까? 혹 그 충격적인 일이란 것이 죽음(꼭 죽음이 아니라도 극단적인 상황)과 관계된 일일까? 실로 궁금하다.


우선은 송강숙 자신의 죽음일 수가 있다. 송강숙 자신이 죽어 다시 대성도가로 돌아오는 시나리오이다. 이것은 상당한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송강숙의 죽음은 다양한 은유로 작용하면서 드라마 내용의 완결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본다. 송강숙이 구대성의 일기를 읽고 침묵 속에서 허공을 오랜 시간동안 응시하는 장면을 그 죽음의 복선으로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죽은 구대성과의 참된 화해를 죽음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물론 송강숙 자신의 궁극적인 변화의 은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송강숙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건강하게 버젓이 살고 있는 송강숙을 죽이려면 고난이도의 설득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과연 송강숙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시청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만큼 당위성이 있을까가 핵심이다.


둘째는, 은조의 죽음이다. 송강숙에게 은조의 죽음이야 말로 충격일 것이다. 송강숙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송강숙은 은조에게 너무나도 깊은 상처를 심어주었다. 속물적인 송강숙과 사색적(또는 지적이고 냉소적)인 은조의 갈등과 화해는 이 드라마에서 관통되고 있는 일관된 주제들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제는 확대와 변주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눈여겨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송강숙은 사실 은조와의 화해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반항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만 했을 뿐이다. 송강숙이 떠나고 다시는 대성 참도가를 찾지 않는다면 이렇게 상처를 준 은조와의 화해는 불가능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은조가 죽는 것은 어떤가? 송강숙을 불러들이기에 엄청난 충격인 동시에 죽은 은조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은조의 죽음이야 말로 구대성과 효선, 그리고 송강숙이 진지하게 화해할 수 있는 매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효선의 죽음이다. 현재 드라마의 내용상 효선의 죽음에 상당한 복선이 깔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훈으로부터의 충격, 아버지 구대성의 죽음으로부터의 충격, 송강숙과 은조로부터의 충격이 겹쳐서 나타나고 있다. 효선이 미각을 상실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물리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상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미각의 상실이란 생존본능의 상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죽음을 상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효선이 죽는다면 송강숙이 돌아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송강숙이 마지막 효선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떠나보낸다면 그 죄책감은 참기 힘들기 때문이다.


넷째로 준수의 죽음이다. 준수의 죽음은 좀 더 쉽게 처리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어린아이라서 말이다. 심한 장난을 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그런 사소한 실수도 가능한 아이이다. 이 준수의 죽음은 송강숙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것이다. 그러나 준수의 죽음은 내용상 그 개연성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갈등의 당사자도 아닌데다가 순진무구한 아이를 송강숙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죽게 하는 충격요법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너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돌아와 본들 갈등은 고스란히 남아있을 뿐이고 말이다. 준수는 대성도가의 미래를 상징하는 새싹의 의미로 존재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준수의 건강한 성장은 갈등으로 얼룩진 대상도가의 모든 갈등들이 해소되었다는 상징으로 말이다.


다섯째, 16회에서 송강숙이 영원히 떠났다는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송강숙은 어떤 이유로 만신창이가 되어 효선에게 돌아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시 돌아온 송강숙이 효선과 다시 만나는 것도 그다지 어색하지도 않을 것 같다.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16회가 송강숙의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구차하게 송강숙이 다시 돌아와 눈물을 뿌려대는 것보다 그렇게 사라져간 송강숙이 훨씬 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층격적인 사건으로서 죽음들을 언급했다. 물론 죽음 만일 이유는 없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어떤 충격이 송강숙을 부르게 될지도 무척이나 궁금하다. 하지만 그런 충격적인 사실들을 지레 짐작하여 다 나열하는 것은 작가나 연출가에 대한 무례가 아닐까 싶다. 열린 결말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결말의 한 종류이고 보면 이러쿵저러쿵 오버이지 싶다. <신데렐라 언니>는 글쓴이의 이런 무례한 예측조차 참으로 불합리하고 억지스럽게만 느껴지게 하는 예측불허의 내용이기에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개인의 취향>과는 달리, <신데렐라언니>는 드라마로서의 질적인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어 너무 기쁘다. <신데렐라언니>에 찬사를 보낸다.


이미지 출처: http://www.artsnews.co.kr/news/78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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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0.05.22 0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을이두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모두가 사랑으로 품어안는 가족드라마이길 바라는 맘입니다.

    리뷰 잘 보고 가요.

  2. 불탄 2010.05.22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연진들을 보고 시청을 하고 싶었던 드라마네요.
    워낙에 TV를 보지 않다보니 마음 뿐이고요. ㅠ.ㅠ
    황금연휴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랄께요.

  3. 하록킴 2010.05.23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흑 무슨내용인지 파악이 안되요 ㅜ.ㅡ
    그래서 추천만 드리고 갑니다 ㅎㅎ

 

신언니, 구대성이 살아난 바보같은 효선의 복수?




효선이 송강숙과 함께 어딘가로 떠났다. 바로 구대성을 괴롭힌 그래서 죽음의 한 이유에 속할 수 있는 장택근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효선과 송강숙의 이 동행은 일종의 살풀이 같은 것이었다. 송강숙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도, 장택근을 원망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아빠 구대성을 위해 딸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 때문이었다. 바보 같은 아버지를 대신한 바보 같은 효선의 복수라고 해도 될 듯싶다. 진실의 확인이라고 해도 될 듯 싶다. 장택근을 만난 효선은 장택근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송강숙의 진실도 알게 되었다. 그랬기에 송강숙이 떠난 기차의 역사에서 목놓아 '엄마' 라고 부르며 통곡하는 것이다. 


15, 16회에서 구대성의 일기를 읽은 효선이 송강숙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하지만 애증이 뒤섞인 감정의 혼란에 불과했다. 효선은 천성적으로, 구대성으로부터 물려받은 피의 한계로 송강숙을 철저하게 증오할 수 없다. 그런 아버지에 그런 딸일 수밖에 없다. 송강숙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송강숙이 저주스럽지만 동시에 그마저도 사랑한 아버지였기에 효선은 더욱 슬프다. 효선 또한 그랬다. 구대성의 죽음과 함께 냉대를 받기 시작했다. 송강숙의 그 모든 위선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꿋꿋하게 참았다. 왜 모녀는 이렇게 바보스러울까?


15회에서 떠나려는 송강숙을 잡으려고 맨발로 달리는 효선의 모습과 도망가려는 송강숙과 잡으려는 효선이 함께 나뒹구는 모습은 꼭 그랬어야 하는가의 아쉬움이 없지 않다. 지금껏 침묵으로도 역동성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기에 그런 엽기적인 행동은 의외로 다가왔다. 오히려 침묵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대성의 일기를 읽고 침묵속에서 앉아있던 송강숙의 모습은 얼마나 역동적이었던가? 아마도 송강숙이 효선을 엎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너무 작위적으로 만든 부분처럼 보인다. 송강숙은 아무도 모르게 챙길 것 챙겨서 야반도주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편이 문제였을까?



아무튼 엽기적인 행동이었지만 구대성- 송강숙 - 효선- 장택근(송강숙의 남자들)의 관계들을 묘하게 표현하는 것이라 참 의미가 있는 장면이었다. 비정한 사내들의 욕지거리와 폭력이 아니라 바보같은 효선이 두려워 진 것이다. 이제 송강숙이 두려워진 존재는 효선, 아니 자신인 것이다. 구대성에게, 효선에게 찍혀있는 자신의 흔적에 참을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녀가 지은 죄악이 너무 두려웠던 것이다. 송강숙에게 이러한 행동은 내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송강숙이 발악적으로 달아나고자 한 이유는 바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자신으로 달아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송강숙을 효선이 잡는다. 이 효선의 행동에는 애증이 뒤섞여 있다. 너무나 바보 같게도 말이다. 도대체 송강숙을 붙잡아서 무엇하려고. 송강숙이 떠나는 것을 구대성이 두려워했듯이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처럼 효선이 송강숙을 붙잡으려 했을까? 그러니 송강숙을 잡은 것은 죽은 아버지 구대성과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그녀의 복수라는 것이 바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대성의 전철을 밟는 것 말이다. 다르다면 구대성이 자신의 본심을 일기장에 비밀로 적어 놓았다면 효선은 송강숙에게 드러내는 것의 차이인 것이다. 즉, 효선의 복수라는 것이 구대성의 마음이 일상에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 효선의 복수는 구대성 만큼이나 송강숙에 대한 애증으로 뒤섞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 송강숙에게 이 효선의 바보스러운 복수만큼 두려운 것이 어디에 있을까? 송강숙은 효선의 모습에서 구대성을 보기에 진실로 부끄럽고 두려움으로 떨게 되며 달아나게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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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1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자수리치 2010.05.21 2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의 유일한 악역주인공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건가요.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드라마가 참 괜찮은 것 같아요.^^

 

신데델라언니, 성찰하는 인간들의 아름다움?



등장인물의 관계들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복수와 용서, 사랑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를 읽기도 간단치가 않다. 의미들이 생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들이 쉽게 잡혀지는 것들이 아니고 애매하다. 논리가 아니라 애매성,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소용돌이 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예상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인간의 삶이란 감정이 충돌하고, 그 감정이 대체로 단호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더듬거리고,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신데델라 언니> 는 바로 이런 삶의 애매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 사랑도, 복수도, 용서도, 그렇게 단호한 것들이 있던가?


그 대표적인 존재가 구대성이다. 구대성이 애매한 존재이기에 동시에 대단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은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엄마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매성이 그렇다. 효선은 또 어떤가? 은조와 송강숙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에서 오락가락 한다. 기훈도 마찬가지이다. 은조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제대로 내보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부처님, 하느님과 맞장을 떴다는 송강숙 마저 내적 혼란을 겪고 있다. 정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은조에 대한 충직성은 하나 만은 변함이 없지만 은조의 심적 갈등에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이렇듯 등장인물, 특히 대성도가의 인물들은 한결 같이 애매한 모습이고 그래서 서로의 관계가 명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모호하다. 홍주가의 인물들과 비교해 보면 바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이것은 갈등하는 인간의 약한 모습들, 그렇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기에 더욱아름답다. 관계의 애매성들을 선천적인 인간의 내면의 불완전함에서도 기인하겠지만, 동시에 성찰하는 인간이기에 더욱 그렇다고 본다.


 

만약 이 세상이 선과 악으로 나누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인간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건 인간의 본성과 자연스러움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이퀴브리움><아일랜드>의 세상처럼 철저하게 인간이 어떤 가치(선) 하나 만에 종속되면서 자유가 억압되고 말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어디 선과 악으로 나누어지는 것인가? 복수라는 감정도 그렇게 철저하고 단호하지 못하다. 인간이 인간을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콘센트를 꼽듯이 코드가 맞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총체성, 심지어 모순이나 내면에 드리워진 악의 그림자까지도 이해하는 것이다. 기구한 송강숙의 삶이나 그 송강숙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은조의 삶은 선과 악이 뒤틀려 있는 삶이다. 악다구니와 욕설과 냉소와 분노가 일상화된 삶이다.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 이난 삶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이 아닐까 한다.


<신데렐라 언니>가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자제되지 않는 과도한 슬픔과 눈물이 옥에 티라면 티일 수 있지만 혼란스러운 인간 내면을 관계의 틀 속에서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내면적인 성숙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은조, 효선, 기훈을 보면 더욱 그렇다. 효선-송강숙, 은조-송강숙, 은조-효선, 기훈-은조-효선-정우의 관계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들어야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쥬얼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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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니, 송강숙은 왜 효선을 두려워할까?




송강숙은 하느님, 부처님과 맞짱을 뜬 여자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 송강숙은 효선이 두려워진다. 애송이에 불과한 효선이가 두려워진다.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송강숙의 삶으로 판단해 보건데 효선은 그녀가 살아온 거친 남자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은 순수한 존재이다. 이미 송강숙의 남자 중에 하나인 장씨를 보아서도 그녀가 얼마나 모질게 살아 왔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은조의 삶 자체가 이것을 추측하게 한다. 은조의 삶에 각인된 송강숙은 얼마나 저주스러웠던가? 그런 송강숙이 효선이가 귀신처럼 무섭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대성도가, 아니 구대성을 유혹할 때의 그 송강숙을 생각해 보면 효선이 하나쯤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대성도 죽었고, 효선이가 본 일기장은 깨끗하게 태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구대성 사이에 자식도 있겠다, 그야말로 송강숙의 세상인 것이다. 효선이 하나쯤 정신병자로 몰아간다고 한 들 대수롭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송강숙은 효선이 너무 두려운 것이다. 가장 안정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송강숙은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송강숙의 두려움의 정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어렴풋한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살아온 삶에 대한 자각인 것이고 구대성에 대한 죄스러움인 것이다. 그러니 송강숙은 효선의 분노에 두려워지는 것이다. 송강숙이 효선을 두려워하는 것은 은조에 비해서는 많이 늦다. 이미 시청자들은 은조가 죽은 구대성의 영정 앞에서 아빠라고 부르던 그 모습과 효선이 구대성의 분신처럼 느끼며 두려워하던 모습, 그리고 엄마 송강숙에게 달려가 대성도가를 떠나야 한다며 벌벌 떨던 그 모습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은조는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이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있는 자신과 자신의 엄마 송강숙에 대해 깊은 혐오감과 분노, 아니 이러한 감정들을 초월한 그 이상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은조처럼, 송강숙이 속물이긴 하지만 그녀의 깊은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도 인간의 얌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구대성의 일기가 그런 송강숙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그 일기의 내용을 읽어가면서 그녀가 과연 인간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자기 삶에 대한 혐오의 감정들이 몰려왔을 것이다. 송강숙이 구대성의 일기장을 보고 앉아있는 모습은 참으로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침묵이었지만 송강숙의 마음속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자기 연민, 혐오, 부끄러움, 분노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소용돌이 쳤을 것이다. 침묵은 그저 침묵이 아닌 것이다.


효선에 대한 송강숙의 두려움의 실체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이 단순히 자신의 과거의 남자나 삶이 밝혀지리라는 그런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두려움인 것이다. 즉, 속물인 그녀를 끝까지 믿고 사랑해준 바보같은 구대성에 대한 죄스러운 감정인 것이다. 구대성을 통해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 것이다. 인간들이 달라져 보이는 것이다. 하느님, 부처도 두렵지 않던 그 안하무인의 송강숙이 겨우 효선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송강숙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변화가 침묵 속이었지만 대단히 역동적이었던 것이다. 이미숙의 연기력에 상당히 덕본 측면이 있다. 효선이 구대성의 일기장을 읽었다는 것은 단순히 부끄러운 자신의 삶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구대성을 파멸시켰다는 바로 그 사실을 읽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짓을 효선이 읽어버린 것이다. 송강숙이 그토록 죄스러워 하던 그 부분을 효선이 읽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송강숙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하느님, 부처님보다도 효선이 두려워진 것이다.


송강숙이 이 두려움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될 지 무척 궁금하다. 효선이 또 송강숙을 용서해 줄지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런 와중에 은조의 역할이 어떻게 개입되어 관계를 형성해 나갈지도 무척 궁금하다. 변화가 시작된 송강숙 저 바닥 밑까지 철저하게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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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비의 세상구경 2010.05.20 1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언니가 점점 더 재미있어 지고 있나봐요
    저도 오늘 검프 졸업하고 신언니로 갈아타야겠어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신데렐라언니, 송강숙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



드라마 <신데렐라언니>는 관계와 소통, 그리고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이다. 상처라는 일면에 초점을 맞출 때, 상처의 근원에 송강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은조의 상처, 효선의 상처. 죽은 구대성의 상처, 이 모두가 송강숙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상처를 입히는 원인이 치유가 되면 상처가 아물게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 상식을 그대로 이 드라마에 적용을 해보면 송강숙의 정신이 치유가 되면 은조, 효선, 그리고 하늘에서의 구대성의 상처가 아물게 되는 것이다.


은조의 내면적인 모습은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부분이다. 소통이 부재하며 상처 받은 은조의 모습은 그 상처가 얼마나 절절하고 깊은 지를 알게 한다. 양심과 엄마라는 혈육 사이에서 내상을 입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은조의 내면도 본다. 이 은조의 내면을 통해 인간이 처하게 되는 상황과 그로 인해 생기는 상처와 아픔, 답답한 마음을 보편적으로 느끼게 된다. "은조가 얼마가 아플가? 송강숙은 왜 저렇게 불쌍할까?" 이러한 감정이 보는 이들의 내면으로 침잠될 때 바로 예술의 감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효선도 마찬가지이다. 효선의 상처도 은조만큼이나 깊고 아프다. 은조처럼 양심의 문제가 관련되는 그러한 상처는 아니다. 효선의 상처는 송강숙의 돌변에 있다. 아빠 구대성이 죽고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송강숙의 돌변은 효선을 밑도 없는 외로움의 나락으로 빠트린다. 물론 여기에는 기훈과의 관계도 존재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외로움이다. 자기 주위의 사람들, 은조와 기훈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것 같은 외로움에서 어디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고통을 받는다. 효선이 이러한 외로움을 참기란 참 어렵다. 바로 이 효선의 상처와  외로움의 근원에 송강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은조의 내면 깊숙이에 자리 잡고 있는 상처의 근원이나 효선의 외로움의 근원에는 송강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를 더 추가해보자면, 살아있던 때의 구대성의 내면 풍경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은조, 효선, 그리고 죽은 대성의 상처 원인인 송강숙에게서 어떤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면 은조나 효선의 상처는 나날이 깊어져 가기만 할 것이다. 여기에서 송강숙의 변화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13회, 14회를 보면서 송강숙의 변화가 미묘하게 느껴지고 있다. 특히 13회에서, 생뚱맞지만 구대성의 일기장을 찾아 일기의 진실한 내용을 접하면서 송강숙은 감동받은 것 같다. 14회에서는 감동의 열기가 더 강력해졌다. 송강숙의 변화는 은조, 효선, 그리고 죽은 구대성에게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깊다. 바로 송강숙이 변화해야만 은조, 효선, 죽은 구대성의 근원적인 상처가 치유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만약 송강숙이 변하지 않는다면 은조의 상처는 아물기가 어려울 것이다. 결국 시간에게나 맡길 수밖에. 효선도 마찬가지이다. 송강숙이 근본적으로 변해야만 은조-송강숙, 효선-송강숙의 관계들이 복구되고 회복될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효선이 구대성의 일기장을 보고 송강숙의 정체를 알게 된 것 같으니 문제가 더욱 복잡해 질 듯 하다. 마치 송강숙에 드리워진 운명의 그림자 같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artsnews.co.kr/news/77504
두번째 이미지:http://www.artsnews.co.kr/news/77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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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록킴 2010.05.14 0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 ㅜ.ㅡ 댓글 1등이지만,쓸말이 없어요 ㅡ.ㅡ;
    신데렐라언니 본적이 없어요;;

  2. 자수리치 2010.05.14 1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강숙의 변화에 많은 사람의 운명도 걸려 있는 거 같네요.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요.^^

  3. killerich 2010.05.14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점점..흥미로운 전개로 이어지는군요^^

  4. 신언니광팬 2010.05.14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 근데 이번엔 신데렐라가 모든 걸 알았으니
    이제 다시 난리가 날 판이네요ㅠㅠ
    그들이 이제는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요

  5. montreal florist 2010.05.15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강숙이 진짜로 변해서 더 재밌어지겠어여

 

신데렐라 언니, 송강숙은 과연 어떻게 변화할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해서, 송강숙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할 만큼 송강숙은 나쁜 인간이다. 구대성에게 접근한 것에서부터, 은조와 효선에게 다같이 내면적인 고통을 주고 있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엄마라는 존재와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엄마라면 이럴 수 없는 것이다. 딸 은조에게 "돈이나 챙겨, 이년아!" 하는 속물적인 인간이 어떻게 엄마일 수가 있으며, 자신의 은인이라면 은인이랄 수 있는 구대성의 외동딸 효선을 어떻게 구박할 수가 있는가. 만약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이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송강숙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드라마 <신데렐라언니>의 주제들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송강숙이 구원을 받을 것인가의 여부가 이 드라마를 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원이라는 문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단순히 외부적인 용서가 아니라 송강숙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자각을 통한 변화이다. 이를테면 송강숙이 아무런 내면적인 자각도 없이 죽고 땅에 묻혔을때 살아있는 자들이 용서하는 것은 구원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용서이며 동정에 불과한 것이다. 즉 구원이란 근본적인 자각을 통해 변화하면서 자기 속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송강숙에게서 근본적인 자각이나 변화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송강숙은 영원히 악에 의해 속박 당한 체 철저하게 악녀로 존재할 것 같다. 부처님, 하느님과 맛짱을 뜰 정도라면 말이다. 이런 송강숙이 과연 어떻게 변화할까? 

  



송강숙의 구원과 관련해서는 일차적으로 은조가 관련된다. 누구보다도 송강숙이란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강숙의 변화, 선하게 변화하든지 더욱 나쁘게 변화하든지 은조의 태도가 상당히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은조의 태도라고 했지만, 은조의 운명이라고 하는 편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송강숙의 딸인 은조는 바로 자신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강숙은 은조의 성격과 내면적인 상처와 고통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송강숙과 은조의 철저한 소통의 부재를 의미한다. 송강숙의 속물적인 행태에 대해 은조가 그토록 반항적으로 강변해도 송강숙은 자신의 잘잘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좀 속된 말로 은조가 유서라도 남기면서 자살을 해도 과연 자신의 딸 은조의 내면의 풍경을 이해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둘째로는, 죽은 구대성의 존재이다. 구대성이야 말로 송강숙에게는 은인이다. 만약 뒤늦게라도 송강숙이 구대성의 진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 본다면 변화의 여지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구대성은 죽었지만 은조에게는 여전히 삶을 지탱하는 아빠의 존재이다. 구대성은 대성도가를 감싸는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이다. 신데렐라라는 말에 어울리는 가장 동화적인 인물을 선택하라면 구대성이다. 구대성만큼 동화적인 인물도 없다. 물론 구대성의 분신과 같은 효선도 마찬가지이다.  송강숙이 진정한 구대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셌째로는, 효선이다. 현재까지 효선은 송강숙의 애정을 받기 위해 수모를 감수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송강숙에 대한 효선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구대성을 떠올려보면 효선이 송강숙에게 반기를 드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고 또 효선을 그렇게 그려놓을 거란 추측을 하기가 힘들다. 또한 은조가 효선을 생각하는 마음에 돈을 빼먹을 수 있는 이용가치가 많은 애가 효선이라는 말에 동해 효선에 대한 송강숙의 태도가 유화적으로 돌변했고 말이다.  그러나 송강숙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효선이 대적하기라도 한다면 늦게서야 송강숙이 변화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로, 애기치 않은 운명이다. 효선이 신데렐라라면 효선에게 찾아드는 행운이 송강숙의 불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홍주가에 대성도가가 넘어간다면 송강숙은 안방마님은 커녕은 채무자로 빛더미에 올라설 수도 있는 것이다. 송강숙이 대성도가의 안방마님에서 일순간 길바닥에 나 앉는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사실 송강숙의 구원보다도 그녀로 인해 고통받는 은조를 비롯한 인물들의 내면적 평온이 더욱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송강숙이 너무 나쁜 인간이라 답답한 마음에 송강숙의 변화를 미리 한 번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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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악랄가츠 2010.05.13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처음에는 그렇게 안봤는데 ㄷㄷㄷ
    최절정 악녀연기를 보여주고 있네요 ㅜㅜ
    과연 어떻게 결말이 날련지 ㄷㄷ

  2. 모과 2010.05.13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여자가 보기 싫어서 개인의 취향을 봅니다. 가끔 재방으로 모게 돼더군요.여자들의 이기심이 너무징그러워요.^^

  3. 자수리치 2010.05.13 0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번째 원츄임다. 저는 항상 권선징악이 가장 속 시원하다는...^^

  4. killerich 2010.05.13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수리치님 의견에 한표추가요~ㅎㅎㅎ..
    저도 오늘 송강숙 이야기 썼어요^^.. ㅎㅎㅎ..

  5. 엄청난넘 2010.05.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 신언니를 1편부터 봐오다고 최근 몇편부터 급격히 수준과 재미가 떨어지는듯 합니다. 일단 너무 웁니다 징징도 정도것해야 슬픈데 처음부터 끝까지 우니 이제 귀에서 너무 걸리적 거립니다. 스토리 전개의 삼류화 갈수록 전개가 삼류소설을 읽는듯 합고 대사가 유치하다고 생각드는게 여러번 있습니다 하지만 문근영 덕분에 그나마 보게 되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될거 같네요

  6. SAGESSE 2010.05.13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드라마를 보지 못해 그저 걸어서 하늘까지님의 뛰어난 분석력에 감탄할 뿐이랍니다. 편안 저녁 되세요!

  7. skagns 2010.05.13 1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캐릭터의 변화는 쉽지 않은데
    신데렐라 언니에서는 송강숙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완전 기대하고 있어요. ^^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8. 하록킴 2010.05.14 0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숙씨가 신데렐라 언니여요?

  9. montreal florist 2010.05.27 0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중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캐릭터네여



신데렐라 언니,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은조?





<신데렐레 언니> 11회는 그야말로 한 편의 소설같은 드라마를 본 느낌이다. 수작이다. 11회를 보면서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은조와 효선, 그리고 기훈의 눈물에, 그리고 송강숙의 표독스러움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구대성의 이미지가 아른거리는 대성도가의 그 모습이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죽은 구대성의 이미지가 살아있는 자들을 반응하게 하는 그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구대성의 이미지를 드라마 내내 읽었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아무튼 팽팽한 긴장감으로 드라마를 보는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던 밤처럼이나.


선과 악은 떼어놓을 수가 없다. 그것들이 절대적인 기준이 없을 뿐 더러 그것을 판단할 인간도 없다. 그런데 그 선과 악을 떼어 놓고 말하고 싶다. 이 포스트의 제목이 바로 그런 표현이다. 선과 악을 떼 놓아야 비로소 은조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조는 바로 그 선과 악의 경계에 선 혼란스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은조는 송강숙이라는 굴레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그 굴레를 벗어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물론 이 때에는 은조에게 선이라는 구체적인 존재가 부재했기에 단순히 도망이었다. 그러나 은조가 송강숙을 떠나지 못한 것은 그 더러운 피 때문이었다. 엄마라는 그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구대성이란 인물을 만나면서 이 세상 은조에게 아빠가 생긴 것이다. 그녀가 송강숙을 등져야 하는 구체적인 존재가 생긴 것이다. 10회에서 은조가 막걸리 독을 들고 구대성의 영정 앞에 앉아 "아빠, 아빠" 하고 흐느끼는 그 모습은 잊기 어렵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엄마인 송강숙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해 주었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구대성을 잃은 은조는 세상을 등진 것 처럼이나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구대성과는 달리 송강숙은 너무나도 나쁘다. 송강숙은 너무나도 탐욕스러운 육체만을 가진 인간이다. 이렇게 나쁜 인간이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을 거부해야 하는데 단지 그 피 때문에 그 언저리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용서할 수 조차 없는 인간이지만 엄마이기에 언제나 떠날 수 없었던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이미 이전 포스트(2010/04/24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생물학적 엄마 vs 정신적인 아빠)에서 언급했지만 송강숙은 단순히 생물적인 엄마에 지나지 않으며 구대성은 정신적인 아빠인 것이다. 







이 정신적인 아빠 구대성과 생물적인 엄마에 지나지 않을 뿐인 송강숙을 또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선과 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죽은 구대성이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도 정신적이라는 말은 대단히 의미가 있으며, 비록 살아는 있지만 얌심이라고는 털  끝만큼도 없는 비열한 송강숙이 정신을 상실한 생물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선악의 경계에 은조가 서 있는 것이다. 물론 효선이도 마찬가지지만. 


앞선 포스트(2010/05/01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구대성의 죽음과 은조의 내면 갈등 요인들)에서도 언급했지만 은조에게 구대성은 아빠 이상의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성도가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송강숙은 자신의 숨을 탁탁 막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구대성이 있던 그 대성도가가 사악한 자신의 엄마인 송강숙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에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이러한 한심스러운 상황을, 이러한 삭일 수 없는 분노의 공기속에서는 단 일초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구대성이라는 선과 송강숙이라는 악의 경계에 선 은조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진다. 이미 효선에게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또한 자신이 표준화시킨 누룩이 최고인 마냥 철없이 굴면서 대성도가의 가족들에게 망발을 솟아붓는 합리적이고 지극히 개인주의기만 하던 은조가 그들을 찾아가 마음의 문을 열었다. 바로 그 모습은 결국 구대성(선)을 닮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또한 효선에게서 구대성의 모습을 보며 우는 은조에게는 따뜻한 변화의 훈기를 느꼈다. 은조는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은조를 가두고 있던 음침한 마음의 창살들이 구대성으로 해서 하나 하나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 송강숙은 철저하게 악하기만 한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항의해 보아도 변화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인간말종인 것이다. 송강숙이 그녀 나름대로 어린시절이나 이후의 상처가 있겠지만 어느 경우에도 구대성을 대신해서 대성도가의 안방을 차지할 그런 인간은 아닌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은조가 충돌하게 될 송강숙과의 관계가 너무나도 궁금한 것이다. 정말 피가 물보다 진할까? 구대성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은조가 엄마 송강숙과 갖게 될 갈등은 <신데렐레언니>의 핵심적인 주제 중에 주제가 아닐까 한다. 

첫번째 이미지: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4300800371001
 
두번째 이미지: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005041703003&mode=sub_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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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악랄가츠 2010.05.06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생물학적 엄마와의 피할 수 없는 한판승부가 시작되는건가요? ㄷㄷㄷ

  2. 달려라꼴찌 2010.05.06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처음 봤는데....긴장의 연속이더만요 ^^
    가족여행 다녀오느라 방문이 뜸했습니다.



신데렐라 언니, 은조에게 아빠로서 구대성의 진정한 의미는?




구대성의 죽음은 참 가슴이 아프다. 이 구대성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드라마를 보는 시각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들 가운데 필자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전통과 관련하여 <전통의 죽음>이라고 좀 과장된 해석을 한 바 있다(신데렐라언니, 구대성의 죽음이 어이없는 자살인 이유?). 이걸 너무 아전인수격의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비난은 달게 감수하겠다. 아무튼 이 전통의 죽음이란 관점에서 보면 구대성이 살아있던 때의 대성도가와 사후의 대성도가는 그 성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전통의 죽음이라고 하였으니 대성도가는 더 이상 전통의 힘으로 운영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징후들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은조이다. 은조는 미생물을 전공하고 효소를 연구하는 대성도가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다. 물론 연구만이 아니라 마켓팅이나 판매쪽에도 힘을 기울이곤 한다. 10회에서 구대성이 죽고 회사의 운명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은조는 실의에 빠져있는 대성도가의 직원들에게 일을 하라고 독려한다.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월급을 꼬박꼬박 주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일하지 않으려면 나가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이러한 은조의 태도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는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관점에서는 타당하지 못한 말이다. 직원들은 월급 때문에 수십년을 대성도가를 떠나지 않고 구대성과 함께 막걸리를 지켜온 것이 아니다. 또한 일을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대성의 죽음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었을 수도 있으며, 또 그들의 항변 그대로 일이 없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막무가내로 나가라는 식은 전통에 대한 인식이 얕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아직 젊고 유능한 과학도이며, 구대성의 대성도가를 살리겠다는 절박한 염원에서 한 행동이고 말이겠지만 전통을 너무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구대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대성도가의 직원들을 하루 아침에 내몰겠다는 것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구대성과 대성도가의 전통을 너무나도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은조는 기훈의 말을 한 번쯤은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은조는 자신이 연구한 표준화된 효모를 가지고 빗은 술 맛을 효선이 보게 한다. 구대성이 빗은 막걸리 맛과 똑같다는 말을 효선에게 듣자 (그것이 술의 전부인 냥) 그 단지를 들고 구대성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대성도가 곳곳을 걸으며 구대성에게 보여주려는의미있는 발걸음을 한 뒤 구대성의 사무실로 들어가 영정 앞에 단지를 놓고 흐느낀다. 그리고 아빠, 아빠 라고 부르짓는다. 이러한 은조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장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구대성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핵심축을 이루는 장면이 되리라고 본다. 이것은 은조의 가슴에 송강숙이라는 속물적인 엄마와 구대성이라는 정신적인 아빠(신데렐라 언니, 생물학적 엄마 vs 정신적인 아빠)가 존재하면서 은조의 행동이나 사고에 영향을 미칠 것을 예고한다. 즉, 은조의 내면 갈등의 중요한 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조의 모습이 아무리 감동적이고 슬프다고 해도  무언가 허전한 것은 은조가 대성도가의 저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전의 태도와 관련해서 볼때 마치 자신이 연구한 효모가 모든 전통의 맛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태도이다. 이건 가능하지도 않다. 드라마상으로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으로 묘사되고 표현된다고 해도 은조의 이 방식은 전통을 앗아가버리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전통의 현대화라고 이해하지 못할 부분도 아니지만 사실상 전통은 사라지는 것이다. 즉 제조 과정이 표준화되고 기계화 되면서 전통적인 과정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은조가 대성도가의 직원들에게 나가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표준화를 통한 기계화 때문이라는 오해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은조가 연구한 효모가 대성도가를 살리는데는 큰 기여를 하게 되겠지만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통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송강숙이 대성도가의 부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내쫓으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즉,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지는 몰라도 전통을 약화시키는고 인간의 정을 부정해버리는 것이다. 은조의 행동 동기와 송강숙의 그것은 전혀 성격이 다르지만 그 결과를 놓고 볼 때는 동일한 것이다. 아무튼 은조는 송강숙과는 너무 달라도 다르니 앞으로의 기대도 다르다. 


은조가 대성도가를 다시 살리려면 대성도가의 저력의 원천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연구한 효모가 대성도가를 살릴 수 있다고 해도 효모를 연구한 열의 만큼이나 대성도가가 축척해온 전통에도 열의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직원들이든 술을 빗는 과정이든 말이다. 

은조에 대한 이러한 지적은 현재의 부족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아직은 부족하고 어설픈 걸음이지만 은조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은조가 구대성을 늦었지만 아빠, 아빠하고 부르짓은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시작과 함께, 은조의 가슴속에 구대성이 아빠로서 자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구대성을 아빠, 아빠 라고 부른 은조의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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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gel Maker 2010.05.02 0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빠라고 하면서 은조 울때 정말 같이 눈물흘렸어요.
    전부터 아~ 까지 튀어나오다 그다음을 못하는 은조도 안스러웠고 그런 은조를 바라보는 대성도 안스럽고...

  2. 하록킴 2010.05.02 0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인기인 드라마 같군요.
    그런데 저는 드라마를 안봐서 감정이입이 안되요 ㅜ.ㅡ

  3. 파스세상 2010.05.02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은 어렵네요.
    새로운 시작인거는 알겠어요. ㅎㅎ



신데렐라언니, 전통을 밀어내는 현대의 어두운 그림자들?




대성도가의 저력의 원천이 무엇일까? 구대성이 일으킨 대성도가는 그야말로 전통의 결정체이다. 구대성의 막걸리에 대한 태도는 엄격했다. 1회에서인가 구대성이 잘 빗어지지 않은 술단지를 깨는 장면이 이를 입증한다. 술에 대한 고집이요 전통에 대한 애착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또한 구대성의 그러한 철학에 묵묵하게 따라온 직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십년을 대성도가와 함께 하면서 대성도가의 명성을 쌓아온 것이다. 비록 공정과정에 기계설비를 도입하고 마켓팅과 판매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변화되었겠지만 드라마에서 생생하게 보아온 것처럼 누룩을 만들고 발효를 시키고 술을 만드는 과정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누룩을 빗기 전에 고사를 지내는 장면은 막걸리에 얼마나 큰 정성이 들어가는 지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성도가의 한옥 자체가 전통의 결정체이다. 


이러한 전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성도가 한옥처럼이나 시대의 겉멋에만 물들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결정체이다. 만약 이윤에만 급급해서 편리성과 효율성만을 따졌다면 대성도가의 모습은 전통적인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오히려 잘 빗어진 전통주로 명성이 퍼졌을 것이다. 바로 그런 전통의 모습 한 가운데 구대성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대성도가 한옥의 발효실은 전통의 생생한 모습이며 구대성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그 장면들 속에서 도도한 현대의 모습이 밀려들면서 전통의 모습을 약화시키는 모습들이 나타났고, 나타나고 있다. 결국 구대성의 죽음은 신데렐라 가족들의 탄생만이 아니라 전통의 죽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대의 급습은 과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근 현대사로 확대되어 해석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넌센스라고 하면 할말은 없다. 아무튼 드라마의 도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전통의 파괴적인 장면들을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가장 처음 목격한 것은 기훈이 누각에 홀로 앉아 부르던 스페인어 노래였다. 이 장면은 은조와 기훈이 만나면서 감정적인 교류를 하게되는 인상적인 장면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누각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 스페인어 노래가 어떠한 내용의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전통의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다. 구대성의 죽음과 관련하여 되돌아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둘째로, 신데렐라의 탄생도 그렇다. 효선은 신데렐라가 아니다. 효선은 전통적인 여성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감상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약간은 걸맞다. 이성적이기라기 보다는 감정적이며, 구대성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은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느낌보다는 우리의 정문화에 가깝게 느껴졌다. 물론 발레를 하고 명품 가방에 옷에 악세사리까지 효선이 휘감고 있는 현대적인 것들이 대성도가의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이것 자체만으로 전통의 약화를 설명할 수 있다. 또 이것만 독립하여 세번째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효선 자체만을 놏고 볼 때는 그녀의 밑바탕은 전통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굳이 효선을 신데렐라라고 호칭하는 자체가 어쩌면 전통적의 약화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제작진의 의도나 무의식이라는 면에서 드라마 외적인 것으로 패스!  


셋째로, 대성도가를 차지하려는 홍주가의 야심은 전통에 대한 현대의 가장 노골적인 압박으로 여겨진다. 기훈의 아버지인 홍주가의 사장이 노골적으로 개입해서 대성도가를 잡아먹으려는 모습은 피폐해지는 전통의 입지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현대는 이렇게 전통의 입지가 좁아지는 시대이다. 드라마이지만 이러한 드라마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통이란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전락해 버린지도 오래 된 것 같다. 마치 박물관처럼 버티고 있는 듯한 대성도가한옥처럼 말이다.


넷째로, 무엇보다도 구대성의 죽음과 관련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송강숙의 존재이다. 구대성은 기훈에 의한 충격사가 아니라 송강숙을 불러들인 자살에 가깝다. 송강숙은 전통이나 시대인식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대성도가의 안방을 차지하고 말았으니 전통을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송강숙 앞에서 그 수줍워하던 모습이야말로 자살의 전조였다는 사실이다. 고리타분하게 송강숙을 현모양처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구대성의 아내이고 대성도가의 안방마님이라면 전통이나 얕은 시대인식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강숙은 이와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이다. 그저 자신의 생존만이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는 자기 삶의 배경으로 물러나 있는 그런 존재이다. 이것을 보지 못한 것은 구대성의 큰 실수이며 자살 행위였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구대성의 죽음을 살펴보니 가슴이 아프다. 속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드라마를 너무 과장되게 비틀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보면 좋은 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가 구대성을, 대성도가 한옥을, 묵묵하게 전통을 지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전통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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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빛무리~ 2010.05.01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셨군요..;;
    자극적이라 해도 거부감이 들지 않으면 괜찮은데...
    구대성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글의 내용상 본뜻이 그게 아니라고 해도 거부감이 드는군요.
    트래픽에 제목의 중요성을 체감하신 것 같기는 합니다만...;;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5.01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빛무리님, 이런 지적을 받고 나니 부그럽네요;;
      사실 트랙픽을 의도하고 붙인 제목이 맞긴 맞습니다만,
      또 그렇다고 완전히 글의 내용과는 유리된 제목이라고 생각치는 않았는데......아무튼 읽은 분들의 입장에서 자극적이고 거부감이 든다면 문제가 되는거죠~~지적 감사합니다^^

  2. PAXX 2010.05.01 2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처음으로 본 드라마인데, 분위기가 너무ㅠㅠ

  3. 2010.05.01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R 2010.05.02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데렐라언니제목만보고클릭햇는데 내용은 완전 횡설수설이네요 특히 제목만 자극적이라 좀 거부감이 드네요

  5. Angel Maker 2010.05.02 0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갑수형님은 재혼하시면 가시네요 ㅠ.ㅠ
    신언니에서 그러시고 거상김만덕에서 그러시고 ...
    좀 오래 사셔서 시청자들좀 더 즐겁게 해주시지 ^^;;

  6. pennpenn 2010.05.02 05: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타살인데 왜 자살이라고 표현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새로운 시각입니다.

  7. Lynne. 2010.05.02 07: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드라마를 봐도 어쩜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글을 풀어내시는지...
    걸어서 하늘까지님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별 생각없이 보고 잊어버리는 드라마들이었는데, 종종 들러서 포스팅을 읽은 후 부터는
    조금 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8. 불탄 2010.05.02 1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 자주 방문해서 이 드라마의 결말까지 지켜보도록 해야겠군요. ^^

  9. 악랄가츠 2010.05.02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죽었나요? ㄷㄷㄷ
    요즘 도통 보지를 못해서
    전혀 몰랐어요! ㅜㅜ
    점점 극속 분위기 절벽으로 향하는 거 같네요! ㄷㄷㄷㄷㄷ

  10. 엑셀통 2010.05.02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재미나게 보는 드라마에요. 동이와 신데렐라..
    드라마 주인공들의 행보에 분분한 의견이 많더군요..이런저런 얘기가 틀리다는 것은 아니구요
    전 그저 재미나게 보고있다는..
    전통주에 대한..이해를 도와주셨네요..드라마를 통해..전 드라마를 보며..세세히 이해하지 않는 편이라..
    남겨주신 글을 보며..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게 되었답니다...
    앞전에도 그러셨지만 조금씩 올려주신 글을 읽고 드라마 이해폭을 넓혀보려구요
    벌써 주말이 다 가네요..다시 한주가 시작되고 조금은 부산한 나날이 되겠지만..즐거운 맘으로..
    월요드라마두 있구요

    새 한주에 즐거운 나날 되세요..

  11. 유아나 2010.05.02 2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강숙이 죽인거나 다름 없다고 보시는 군요. 음

  12. 못된준코 2010.05.03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과연 어떻게 된일인지 모르겠지만...설마 송강숙이 죽였을까요??
    포스트를 읽고나니...
    이거...슬슬 의구심이 막 샘솟습니다.~~
    드라마 분석을 이정도까지 하시다니...정말 대단하세요.~~


 

신데렐라 언니, 송강숙은 왜 구대성이 살아 있기를 바랄까?



8회에서 송강숙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구대성이 수술을 받는 동안 수술실 앞에서 하느님, 부처님의 이름을 들먹여 가면서 구대성이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기원했다. 적어도 송강숙의 이 간절한 바램은 진실처럼 보인다. 물론 이 진실의 이면에서 이기적인 본성이 도도하게 흐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사실 진실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다.


그런데 왜 송강숙은 구대성이 살아있기를 기원했을까? 의외가 아닐 수 없다. 필자의 짧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구대성의 갑작스런 죽음은 송강숙에게는 엄청난 부를 자신에게 불러 모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대성이 죽기보다는 살기를 기원하는 것은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다. 애당초 송강숙은 구대성의 사랑 보다는 구대성의 재산을 탐내고 접근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랬기에 자신이 안방마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호적에도 자신과 은조의 이름을 올리면서 법적으로 정당하게 구대성의 재산 상속자가 된 것이다.


그녀가 상속자가 되어 구대성의 재산을 일부라도 차지하게 된다면 이야말로 그녀 자신이 지금까지 원해왔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송강숙은 구대성이 살아남기만을 바라고 있으니 과연 이러한 바람에는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지 모르겠다. 혹 재산을 나누어 갖는데 대한 불만일까? 아니면 구대성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 싹텄기 때문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잔머리 굴리는 데는 도가 트인 송강숙에겐 자신만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우선, 송강숙은 자신의 앞으로의 긴 삶을 생각해 보았을 때 남편인 구대성이 살아있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진실한 사랑이 없는 관계이지만 송강숙도 외로운 인간이고 보면 구대성의 존재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데 있어 구대성이야 말로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허울좋은 꼭두각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구대성이 살아있는 것이 지금 죽는 것보다 남는 장사라는 것이 송강숙의 판단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송각숙이 너무 무서워진다.
 

그런데 만약 송강숙이 구대성과 함께 살아오면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다면 어떨까? 시청자의 입장에서 필자는 그런 확실한 흔적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송강숙의 마음속까지 헤집고 들어 갈 수는 없는 일이고 보면 송강숙의 마음 변화도 전혀 배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찌 송강숙도 인간인데 구대성을 그토록 철저하게 이용만 해먹을 수 있단 말인가? 단물만 빨아먹고 뱉어 버리는 껌도 아니고 그래도 인간인데 작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싹트지 않을까? 송강숙에게 일말의 양심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믿는 게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아니면 당연한 생각일까?


아무튼 송강숙은 남편 구대성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난 후에 수술을 받고 있는 수술실 앞에서 구대성을 위해 기도하는 그 모습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심리적인 이유가 뒤섞여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조금이라도 구대성을 이해하는 쪽으로 나아가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송강숙에서 사랑을 바랄 수는 없지만 그녀를 아내로 받아주고, 반항적이던 은조를 딸로 받아준 구대성에게 적어도 인간적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이것이 그녀 변화의 작은 싹이 되어 꽃으로 만발하는 변화를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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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손강숙 2010.04.25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혼한 남편이 갑자기 죽으면 결혼하고 호적신고하고 그다음날 바로 죽어도 재산은 부인차지입니다.
    남편자식보다도 많아요. 그래서 재혼을 극구 반대하는 자식들이 많아요. 문제지요.

    재혼의 경우 상속은 전처자식보다 많을게 아니라 결혼기간을 고려해야할것 같아요.
    하루를 산 법적 부인보다 수십년 산 친자식이 당연히 많아야죠.

    글구 우리나라 여성의 권리 세계최고입니다.

    북유럽같은 곳과 비교하는데 그런곳은 남녀평등이란게 권리도 비슷한 반면 의무도 남자와 똑같이 지려고 하죠.
    우리나라처럼 남자한데 빌붙으면서 권리만 요구하는 나라와는 다르죠.

    • 옰소 2010.04.25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수다보면 울나라 여자들 빈대 근성 알수있죠.
      외국은 결혼해서 거진 돈관리 남자가 해요.

    • 참내... 2010.04.25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근거로?
      무슨근거로 우리나라 여성의 권리가 세계 최고라 하는지?
      미혼모는 죄인이고
      사내결혼시 여자가 당연히 그만둬야하고
      결혼시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해결하고 (직장을 다녀도.)요즘 그리고 맞벌이 안하고 살아가는게 현실적으로 가당키나한가요?
      하다못해 연예인 스캔들이 터졌을때도 여자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더 날카로운데.

      무슨 근거로 세계 최고? 자체평간가?
      ㅎ 나 참.. 황당해서.
      이봐요, 그따위 주관적 평가 편협한 사고는 머릿속으로만해도 짜증나거든요.

    • 카발리스트 2010.04.26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내.../ 손강숙님의 의견에 정확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님은 80년대 인식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군요. 미혼모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없습니다. 사내결혼시 관두는 여자 거의 없습니다. 결혼시 가사노동도 요즘 맞벌이가 많아서 남자들도 상당부분 기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걸 안하면 결혼생활 유지자체가 어려운 구조가 된지 오래입니다. 님이 그런 환경속에서 사신다면 이해는 가지만 그게 일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렇습니다.

    • 옰소 2010.04.26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내님은 야악간 피해의식에 머물르신듯.
      요즘상황 법적으로는 이미 남녀평등이다 못해
      모성보호라고해서. 아이가 어리고 그러면 양육권등
      엄마한데 우선권이 있고.

      일반적으로 제비족만나는거 아니면 남자돈으로 생활하고 여자들이 돈관리 하죠. 근데 외국은 남자가 돈벌면 같이 쓸지언정 우리처럼 절대 안맡겨요.그래서 남편돈으로 삥땅못치고 우리처럼 여자가 자기돈 숨기지도 못해요. 그런면에서 의무대비 권리가 최고라는 말에 동감이구요.

  3. 리시타크 2010.04.25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강숙이 말했죠. 구대성이 잘못되면 하나님이든 부처님인든 가만놔두지 않겠다고. 그건 은조가 어렸을적 병원에서 사경을 헤멜때와도 같은 반응이였습니다. 송강숙이 구대성을 사랑하는지 안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4. 그걸 모르나? 2010.04.25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동안 여러번 보여줬듯

    따뜻하게 잠잘 수 있는 바람 막아줄 수 있는 지붕과 벽도 필요하지만
    누군가의 아내로서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남부럽지않게 만들고싶었던게 여러번 나오는데.

  5. 달려라땜빵 2010.04.25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게 두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초반에 팔자 더러운년이 아무개의 안사람이 되었다는 것에대한 기쁨과 같은, 반듯한 한 가정의 아내로 남고 싶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회사의 재산이지요.
    지금 아무리 호적에 이름을 올렸고, 딸아이도 잘 하고 있지만 정작 분할로 가게되면 두려움과(거기까지 생각을 한건 아니겠지만 현재 강숙의 케릭터로 봤을땐) 회사가 정상적인 상태여야만 뜯어먹을 게 많다는.. 그의 가치관에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은조는 잘 하고 있지만 그 깜냥이 아직 대성에 비해 뒤 떨어진다고 생각이 들고, 집안의 어르신 들도 자신의 더러운 팔자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데 대성을 이런식의 죽음으로 내몬다면, 결국 처음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두려움이었겠죠.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봤을때 강숙은 자신과 자신의 딸 이외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랑자체에 대해 두려운 사람이라고 보여집니다.

    처음으로 자신을 올곧게 바라봐준 대성에 대한 연민이어도 좋겠구요.. 그럼 이 이유는 세번째가 되겠네요.

  6. 왠 편견::: 2010.04.25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의 댓글을 보니 드라마이야기 하다가 왠 뚱딴지 같은곳으로 빠지셨는지 모르겠네요
    "우리나라처럼 남자한테 빌붙으며 권리만 요구하는 나라와는 다르죠" ???? 왠 피해망상???? ㅋㅋㅋㅋ
    대한민국의 여자로써 기분 나쁩니다. 그런여성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도 많은데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글을 남기시는지..??? 저도 한 글 남김니다. "우리나라 남자들만큼 자국 여성을 비하하는 인종을 보지못했다
    인터넷글의 댓글을 살펴보다 보면 아무이유없이 한국여성들을 아주 못쓸계집으로 만드는데, 정신차리삼
    이런 정신상태로는 한국여성과 결혼하기 힘듬.. 결혼해서도 여편네 때리는 개망나니가 되거나" ㅋㅋ

  7. dsads 2010.04.25 1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가 집에서 살림만 하는데 빈대붙는걸로 생각하는 남자들이 있는한 한국남자들은 루저다.

    그리고 관상학적으로 한마디만 할께 한국남자들 젊을때는 참 멋지다 요즘애들 특히 키도 크고 훤칠한데

    나이만 들면 진짜 한국남자들처럼 꼬질하고 뭔가 없어보이고 추잡한 사람이 없다;;; 왜 그리 변하는건지

    40이 넘어가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는데 나이 든 한국남자들(특히 정치인들) 인상보면 참

    할말이없다. 아직도 자기자신은 온갖 술집에서 난잡스럽게 다들 놀면서 자기 와이프는 돈 쓰는거 싫어하고

    알뜰해주길 바라고 그러면서도 점점 아줌마스런 자태가 나오면 술집가서 계집질하지; 진짜 재대로 된

    한국남자가 있긴있나 ㅋㅋㅋㅋㅋ 내 주위만해도 한달에 서너번은 이상한데 다 가더만 ㅎㅎㅎ 총각이고 유부남이고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외국엔 맞벌이 하는대신 집안일 똑같이하고 애도 똑같이 본다.

    돈관리야 잘하는 사람이 아무나 하는거지 무슨 남자가 해 ㅋㅋㅋ

    계속 혼자 사세요. 돈 아까워서 결혼은 우찌하누.

  8. dd 2010.04.25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강숙은 재산도 재산이지만 완벽한 가족구성원을 원하는 여자. 그래서 남들보기에 그럴듯하게 부유하면서 남편, 자식 모두, 친척 모두 있어야 자신이 꿈꿔온 완벽한 가족이 구성되는것이지요.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라는것이 그녀에겐 중요합니다. 과부가 되면 그녀의 꿈은 무너지는것이니 남편이 살아있길 원하는것..또 남편이 없으면 그녀의 안주인으로써의 힘을 유지할수 없다고 생각할수도 있어요.. 그러다보니 없던정도 어느정도는 생겼을듯. 그게 사랑일지는 모르지만..

  9. dddd 2010.04.2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조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맬때 부처님하나님 가만안두겠다고 송강숙이 그랬잖아요.
    그런걸로 미루어볼때 구대성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거 아닐까요?

  10. 요즘세태 2010.04.25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특히 끼리끼리 결혼해요.
    남자도 판사나 의사면 부잣집 딸하고 결혼하고.
    여자도 본인이 잘나가는 의사면 남자 직업보구요.
    그저 남자 잘만나 빌붙으려는 여자도 많긴 많지만
    돈많고 잘난 남자는 그런 여자 싫어하죠.

  11. 신언니짱 2010.04.25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딸에게 좋은 아빠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단지 돈만 중요한게 아니라, 사회적 지위도 중요하고~
    이미숙은 혼인신고하고서 좋아하는데, 그때 돈 많은 남자이기도 하지만
    어느 집 안방마님이 되는 것에 환호하자나요.
    사회적으로 반듯한 남편에 현명한 부인 역활도 좋고
    무엇보다 은조에게 아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동안 딸에게 못해준 것들, 부모의 위치랄까..그런 것들과
    박복하여 과부가 되고싶지 않은 마음 같은거~

  12. 신언니짱 2010.04.25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딸에게 좋은 아빠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단지 돈만 중요한게 아니라, 사회적 지위도 중요하고~
    이미숙은 혼인신고하고서 좋아하는데, 그때 돈 많은 남자이기도 하지만
    어느 집 안방마님이 되는 것에 환호하자나요.
    사회적으로 반듯한 남편에 현명한 부인 역활도 좋고
    무엇보다 은조에게 아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동안 딸에게 못해준 것들, 부모의 위치랄까..그런 것들과
    박복하여 과부가 되고싶지 않은 마음 같은거~

  13. 음... 2010.04.25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강숙이 구대성이 살아있기를 기도하는건 아마도 '어느집안의 안사람' 즉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팠던 그녀의꿈 때문이 아닐까요? 많은 남자를 만나왔지만 공식적인 사이가 아니었고, 쫒겨나고 도망가고를 밥먹듯 하는 강숙에게는 안정적인 가정이 필요했고, 항상 그녀를 보듬어줄 남편이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가장중요한건 바로 법적으로 공식적인 떳떳할수 있는 위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렇게 갈구 하는것을 얻었고, 누리며 살지만 구대성이라는 사람이 없이는 될수도, 할수도 없는 것들 이니까요

  14. LJY 2010.04.25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밑에분 우리나라 여성인권이 세계최고라고 하셨는데; 근거없는 말씀입니다

    한 한달전에 뉴욕여행을 갔다가 UN투어를 한적이 있는데 대한민국의 남녀평등이 아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녹색성장과 함께). 그런 면만보고 여성인권 운운하는건 좀;

    그리고 본론으로 돌아가서 음..이미숙씨의 내면적면이아닌 극중캐릭터&대사를 고려해봤을때
    아직 이르다고 한건, 아직 이정도엔 만족하지 않는듯 싶습니다. 대성도가가 조금 더 크길 바라는 욕심?

    물론 인간적인면도 배제할순 없겠지만 대사같은걸 고려해봤을때 대성도가가 더 크길 바라는 욕심이 있는듯 싶네요..

  15. 큼... 2010.04.25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숙을 이해 못하셨나??

    강숙이 원하는 것은 기대어 살 사람이지 돈이 아닙니다.

    남자들로부터 돈을 울궈내서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남자 옆에서 편하게 사는 것을 지향하는 생활이었죠.

    구대성이 죽으면?

    재산이야 많이 생기겠지만 그 돈을 직접 관리하며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됩니다.

    구대성이 살아서 재산 관리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유지해주는 것이 송강숙이 편하게 사는 길입니다.

    송강숙이 구대성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면서 가장 기뻐했던 부분은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돈많은 사모님'이 아니라 '아내'로서의 위치를 원한 것이기에 그것이 무너지게 될 구대성의 죽음을 원하지 않은겁니다.

  16. 코사지 2010.04.26 0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살가운 사랑만 사랑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랑표현이 잘 안되는 사람의 가슴에 숨은 사랑이라는 것이 있답니다.
    사랑처럼 보이기 위해 가면을 쓰고 그동안 해온 행동들로 인해 가슴속 깊은 곳에 사랑이 자리 잡은 거죠.
    그러나 은조를 사랑하는 만큼(비록표현은 안하지만) 남편을 사랑하면 은조한테 배신하는 거라는 거라는 마음이 자꾸 가면을 쓰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겁니다. 그러나 어느날 가면이 바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죠. 바로 이순간인 겁니다.

  17. 작은 물줄기가 바위를 깨듯 2010.04.26 0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스며든 사랑이 아닐까요? 정들고 정신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그러면서요. 하지만 송강숙의 인생 자체가 순탄치 않았고 순수한 사랑을 했었더래도 오래전이라 기억 안나고 살려고 아둥바둥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이용상대로 본다고 생각을 하게 된거겠죠... 그냥 기계적으로... 그런데 구대성이랑 가정을 꾸린지 8년입니다. 그 전에 누구랑 8년이란 긴 세월을 같이 지낸 사람은 없었겠죠. 많아봐야 1-2년 정도였을것이고... 막상 8년동안의 듬직한 바람막이가 되어준 사람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반사적으로 잠제되있던 진심어린 보호본능 (가식적이지 않은)이 드러난 것이겠죠.

  18. 은조야 2010.04.26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강숙이 구대성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이유는...
    지금 구대성이 죽어 버리면 재산이 뿔뿔이 찢어지거나 효선에게 더 큰 목이 돌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조에게 확실히 한목 챙겨놓으라고 누누히 말하는 이유가 재산의 더 많은 부분 혹은 전부를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죠

    위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이고 사실 제 개인적은 느낌은 송강숙이 구대성을 사랑하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19. 달콤 시민 2010.04.26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작은 어찌됐건,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어요 ㅠㅠ
    좋은 글 보고 갑니다.
    더불어, 신데렐라언니 세트장 관련된 트랙백 살포시 걸고 가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20. 구씨집안의계보 2010.05.21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성참도가 구씨집안
    의 계보를 살펴보면
    냉철한 호랑이가장
    구대성한테는 아들이
    없고 대신 딸만2명이
    있는데 한명은 친딸이고
    다른한명은 재혼한아내의
    친딸인 의붓딸인데
    헌데 회사를이끌 후계자없이
    세상을떠나서 참으로안타깝
    기만 하다!

  21. 건강혁명★선택하세요 2010.06.16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여름철 건강은 브이푸드로 지켜요! 투데이 이동훈 기자] ce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유용한 정보를 소개 합니다.
    모세혈관에 쌓인 어혈을 제거하여 혈액을 맑게 하면
    혈액순환이 잘되고, 100가지 병이 없어집니다.
    "자연정혈요법"은 수많은 질병을 스스로 고치는 비법입니다.
    누구나 하루만 배우면 훌륭한 치료사가 됩니다.
    "난치병"도 고치는 체험사례가 무수히 나오고 있습니다.
    아파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소원성취 하셔서 부디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신데렐라 언니, 생물학적 엄마와 정신적인 아빠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스토리 전개에 가장 큰 추동력을 제공하는 인물은 은조(문근영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은조의 심리적인 갈등의 중심에 자신의 엄마인 송강숙(이미숙분)이 있다. 엄마란 어떤 사람인가? 예외없이 애정의 대상이다. 그런 애정의 대상인 엄마가 속물적인 존재일 때 그 정신적인 혼란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은조가 사랑해야 할 엄마가 그저 속물적인 존재로 타인에게 피해는 물론이고 은조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야기 시킬때 이 애정과 분노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은조가 선택한 것은 엄마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엄마라는 생물적인 관계를 의도적으로 끊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반인륜적이라 비난 받을 수도 있지만, 속물적인 엄마와 생활하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획살한 방법이다. 그러나 모질지 않으면 이러한 일을 실행하기란 힘들다. 특히 미성년인 은조가 이러한 냉정한 선택을 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1,2회에서 보여주었던 은조의 양가적인 갈등에서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보았다. 은조가 끝내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한 것도 바로 '생물학적인 엄마' 라는 사실 때문이다. 


엄마 송강숙이 대성도가의 안방 마님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엄마에 대한 분노는 그 대상이 더욱 확대된다. 아마도 속물적인 엄마에게 놀아나는 '멍청이' 라는 조소의 의미가 깊지 싶다.  이 대성도가에서 은조는 자유를 유보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쌓아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방식을 취하려는 것 같다. 자신의 새아버지가 된 대성도가의 사장인 구대성(김갑수분)에게 진 빚에 대한 보답이며, 자신의 엄마 송강숙을 벗어나는 합리적인 방식이 그것이다.  


은조는 여전히 답답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각조차 없는 엄마를 볼 때 마다 가슴이 탁탁 막힐 것이다. 7회에서 효선 외삼촌이 저지른 불량 대성참막걸리 사건으로 대성 도가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송강숙은 은조가 자는 방에 들어와 '자신의 것을 챙겨라는'  속물적인 말들을 내뱉는데 이 속물성은 시청자인 우리가 보고 참기에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물며 은조에게서랴. 아무리 송강숙이 속물적인 인간이라고 해도 대성도가는 자신을 살린 곳이다. 그런 대성도가를 오직 단물을 빨아먹는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송강숙이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을 어떻게 참을 수가 있을까?
 



이전의 포스트(2010/04/17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은조의 공범의식과 분노?)에서 이미 언급 했지만 이런 엄마를 떠나지 못하고 함께 생활해야 하는 은조는 사실상 공범이나 마찬가지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죄책감이 반항적인 태도를 더욱 강화시키고 분노를 더욱 확대시켰을 것이다. 


도대체 은조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자신의 엄마에게 농락당한 대성도가의 사장인 구대성은 은조에게는 단순히 냉소의 대상일 뿐이었다. 꼭 냉소가 아니라도 '엄마의 사기에 놀아나는 바보 같은 존재' 일 뿐이었다. 또한 어린시절부터 엄마의 애정이 부재했던 은조에게 인간들은 냉소와 조소의 대상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엄마에 대한 분노와 적의는 타인을 향한 냉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훈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그 냉소는 애정 결핍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누군가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면 열려 질 수 있는 문에 불과하다. 은조가 바라는 것도 엄마에게서 결핍된 바로 그 애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조가 애정을 느꼈던 기훈도 자신에게서 멀어져 버렸다. 이렇게 은조의 가슴속에서는 뒤엉킨 실타래처럼 답답한 무언가가 뒤엉킨 채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대성도가의 사장인 구대성은 은조와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다. 6회에서 과로로 쓰러진 은조가 병원에 입원하고 병실에서 엄마 송강숙과 말다툼 소리를 엿듣게 되는데 은조가 이 사실을 알아 차린다. 모녀의 말다툼은 구대성에게는 참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혐오스럽고 역겨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은조에게 구대성은 송강숙을 용서하고 이해한다. 이 지점에서 은조가 알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대성은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다. 혼자였지만 기훈에게서 위안받던 그 감정보다도 더 큰 감정의 출렁임이 있는 그런 눈물을 은조는 흘린다.


은조에게 구대성의 존재는 무엇일까? 
 


은조에게 구대성은 '정신적인 아빠' 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엄마를 그토록 쉽게 용서하고 이해해주는 구대성을 아빠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아빠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멘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엄마의 존재가 은조에게 내면화되었다면 이제는 대성도가의 사장 구대성의 존재가 은조의 마음 속에 내면화 되어져 가리리고 판단된다. 어쩔 수 없이 엄마와 함께 살아가면서 은조는 구대성의 마음 씀씀이 처럼 그렇게 엄마를 받아들여 줄지는 의문이지만 구대성의 면면을 이어받을 공산은 크 보인다. 신데델라가 되는 효선과 속물적인 엄마 사이에서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어떻게 위치하게 될지 <신데렐라 언니> 이 드라마를 보는데 중요한 핵심 부분들 주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첫번째 이미지: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C1004160003
두번째 이미지: http://www.kbs.co.kr/drama/cinderella/about/cast/33546_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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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llerich 2010.04.23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구대성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군요^^
    잘 읽고 갑니다^^

  2. Phoebe Chung 2010.04.23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생각엔 정신적 멘토라고 봐요.
    직업도 가계를 잇고 잇는것도 그렇고....^^

  3. 보시니 2010.04.23 1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걸어서 하늘까지 님~
    오랜만에 찾아 뵙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그동안 블로그 스타일이 좀 바뀌셨네요~
    저도 이렇게 바꿔보고 싶은데,,,ㅎㅎ
    아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잘 보고 배우겠습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4.24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시니님 너무 반가워요^^
      이것 저것 추가하고 담다보니 블로그가 좀 혼란스럽게 된 것 같습니다. 어덯게 정리를 해야 할 대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더 그 젊은 패기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4. 자수리치 2010.04.23 1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로 맺어진 인연도 끈끈하지만,
    저런 아버지라면 정신적 지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5. 하록킴 2010.04.23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님 포스팅 주제가 너무 어려운것 같아요^^;
    원작을 모르니ㅜ.ㅡ

    저는 요즘 스파르타쿠스 1편부터 연속으로 보고 있어요.
    시간이 없어서 잠깐 잠깐보지만요.

    추노가 끝나니 국내 드라마는 볼것이 없네요.

 

신데렐라 언니, 이미숙도 신데렐라?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는 동화 <신데렐라>의 패러디인지 아니면 제목만 차용해 온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패러디든 차용을 했든 신데렐라와 관계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누가 신데렐라 언니일까? 신데렐라는 누구일까? 신데렐라는 효선(서우)이 분명하다. 그러니 신데렐라 언니는 은조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 상의 도식을 벗어나 흔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신데렐라 증후군을 떠올려 본다면 드라마 상 은조의 엄마인 송강숙(이미숙)이야말로 신데렐라라고 할 만하다. 미천한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는 그 누구보다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동화를 벗어난 세속적인 의미의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과 또한 신데렐라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주정꾼의 내연녀로 미래가 없는 듯한 삶을 살다 일약 대성도가의 안방마나님이 되었다는 사실은 신데렐라증후군의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은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나기가 힘들다. 드라마에서 이미숙이 뿌려놓은 신데렐라 증후군의 후유증은 실로 크고 많은 갈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신이 신데렐라가 되겠다는 위선적인 탐욕과 허영이 자신의 딸 은조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족쇄가 되고 있으며, 효선의 불행을 잉태하고 있고, 자신의 남편인 구대성의 운명도 예측하기 힘들어 지고 있다. 이래저래 한 사람의 세속적인 신데렐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말하자면, 세속적인 신데렐라에 의해 동화 속 신데렐라가 생긴다는 사실은 참 재미있는 사실이다. 신데렐라 언니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세속적 신데렐라의 탄생으로 효선은 신데렐라의 고행을 시작하게 되고, 신데렐라의 언니가 되는 은조는 자책과 분노와 냉소로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반항을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효선에게 가해질 은조의 위악적인 행동은 자기만족적이기 보다는 자기 피에 대한 자책에 가깝다. 자신의 엄마(송강숙)에 의해 형성된 애정 결핍과 위선에 대한 혐오는 새로운 창조적인 출구를 찾지 못하고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6회까지 은조의 성격과 태도가 이를 잘 입증해 준다. 은조가 짊어지고 가야할 원죄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롭게 떠나고 싶어 하지만 떠나지 못하고 발이 붙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위선적인 말과 행동으로 신데렐라가 된 송강숙의 행복이 다른 등장인물들을 파멸시키고 몰락을 걷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위선적인 행동만을 지속적으로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신데렐라가 되는 데는 어떤 걸림돌도 없었다. 대성도가의 안방마님으로서 앞으로 탄탄대로이다. 그러나 위선적인 신데렐라로 계속 남아있는다면 은조나 효선 사이의 비극은 더 커지는 불행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실로 살 얼음을 걷는 형국이다.


대성도가의 안방마님의 자릴 꿰찬 송강숙의 앞으로의 변화와 드라마의 전개가 흥미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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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0.04.18 19: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색다른 지적이로네요~
    드라마를 보는 눈이 저와는 차원이 다르군요~

  2. Phoebe Chung 2010.04.18 2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좋은 자리 차지햇으면 그냥 재미나게 살지
    왜 못되게 굴어서 여러 사람 힘들게 할까요. 요상한 여자예요.^^

  3. 악랄가츠 2010.04.19 04: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조와 효선이에게만 집중되었는데 ㄷㄷㄷㄷ
    촌스런블로그님께서 키포인트를 알려주셨네요! ㅎㅎㅎ
    오늘은 잠깐이나마 재방송을 시청하였답니다! >.<
    점점 흥미진진해요! ㅎㅎ

  4. 라라윈 2010.04.19 0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언니를 통해 다시금 이미숙씨의 매력이 폭발하는 것 같아요~ ^^
    배우로서의 매력에 가려 생각 못해봤는데,
    그 분이야 말로 신데렐라였군요...

  5. 머니야 머니야 2010.04.19 1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기파 배우는 언제 어디서 어떤 역활을 맡아하더라도..명품이더군요~^^

  6. 둔필승총 2010.04.19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역쉬 발상의 전환...^^
    잘 보고 갑니다.~~

  7. 탐진강 2010.04.19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숙의 연기에 대해 칭찬이 많더군요.

  8. 유아나 2010.04.21 1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수 형님이 병원에서 모녀가 한 얘기를 엿들었는데 어찌 될지 오늘 기대돼요^^

  9. *저녁노을* 2010.04.23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숙...대단한 배우입니다.
    다른 각도로 보니 또 그렇게 ...느껴집니다.ㅎㅎ

  10. 하록킴 2010.04.23 2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이런 드라마도 있었군요 ㅜ.ㅡ TV를 자주 안보다 보니 ㅋ
    이미숙 선배님 열연하시는군요 ㅎㅎ
    스크린샷만으로도 포스가 느꺼져요 ㅎㅎ



신데렐라 언니, 은조의 공범의식과 묵인에 대한 분노?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어야 한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아마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악한자와 선한자들로 무리하게 나누려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자식과 부모는 어떤가?


나눈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그건 어딘가 틈이 엿보이고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고 괜히 언짢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나눌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야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과학의 분석이나 분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하나를 있는 그대로 볼 수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나 불행하게도 하나인 것임에도 언제나 분리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있다.  아이와 어른이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아이의 시기를 거친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아이였다는 사실을 떼어놓고는 성장을 말할 수 없고 현재를 말할 수 없다.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불행한 것은 하나의 존재가 금이 가면서 아이와 어른으로 분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잊는다. 하나의 인간 속에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며, 아이와 어른이라는 둘의 존재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세상에 가장 소통의 부재가 바로 아이와 어른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불행은 바로 그렇게 아이들을 잊는 어른들 때문에 생겨난다. 상처받는 영혼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은조는 상처받은 영혼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녀의 엄마 송강숙에 의해 잃어버렸다. 어린시절을 잃어버린 은조는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한 존재의 반쪽을 잃어버린 셈이다. 은조는 참담하다. 엄마없는 하늘 아래에서 살고 싶어한다. 엄마는 곧 자신 속의 아이를 강탈해버린 잔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역겨운 엄마와 살아간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은조는 그런 엄마와 함께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엄마의 곁을 떠나갈 것이지만  지금 여기에서가 아니라는데 언제나 앞으로만이다. 가슴이 아프다. 수많은 '지금' 과 '여기'를 거쳐왔겠지만 은조는 여전히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가 떠나게 될 날이 빨리 다가올 수 있을까? 언제쯤이 될까?


이렇게 여전히 무기력하게 엄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은조를 공범의식에 시달리게 한다. 변한 것 없이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엄마의 그 짓거리를 보면서도 함게 살고있다는 것은 공범이 아니고 무엇인가? 엄마를 떠난 다는 것은 엄마의 죄악을 보지 않는 것이다. 보지 않는다면 묵인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8년 동안이나 떠나지 못한 채 자신의 어린시절을 타살해 버린 엄마의 그 위악을 묵인해야 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녀는 자시의 묵인에 분노가 이는 것이다. 은조에게 차디찬 분노만이 남아있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은조' 에게서 어린 시절을 빼앗아버린 엄마라는 존재는 참 모순의 존재이다. 엄마이기에 또 미칠지경이다. 함께 살아오면서도 죽음이 함께 한 삶인 것이다. 말은 사랑이다. 딸을 위한 엄마의 사랑이라지만 감수성 예민한 어린 시절의 은조에게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증오로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에게 사랑이 나에겐 증오가 될 수 있는 건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와 어른은 더욱 그렇다. 그렇게 아이와 어른은 하나이면서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소통 부재의 독립된  인격체가 되어 버린다. 인간은 분열적인 존재이다. 그런 분열적인 인간이 만든 세상 또한 분열적일 수 밖에 없다.


엄마와의 공범의식과 그것에 대한 묵인, 그리고 자유 앞에서의 무기력에 은조의 분노는 새로운 배출구를 찾고자 한다. 자신의 엄마인 강숙, 기훈, 정우? 효선? 아니면 일? 그 배출구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첫번째이미지: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C1004160003
두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41608025501735&outlink=2&SV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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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 걍 2010.04.17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안봐서 잘 모르는데
    주변에서 이미숙,문근영 두 배우 연기가 좋다고
    말씀들 많이 하시더라구요^^

    • 파비 2010.04.17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머 걍/ 이미숙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고요.
      문근영은 정말 놀랐네요. 섬뜩할 정도로 많이 컸더군요.
      이거 컸다고 해도 되나 모르겠네, ㅎ

      주인장/ 묵인이란 말이 있었군요. 그런데 난 왜 그 단어가 생각 안 났을까? 아무튼 현재 은조의 상태를 잘 나타내주는 말 같네요. 언젠간 그 묵인을 극복하고 자유를 찾아 비상하겠죠. 또 그래야 하고...

  2. 朱雀 2010.04.17 0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중 문근영은 어머니 이미숙 때문에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해요.
    참 불쌍한 인물이에요. 극중 문근영은...

  3. killerich 2010.04.17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점점 흥미진진해지는군요~!!
    촌스런블로그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4. 초록누리 2010.04.17 1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조에게 엄마는 성장을 못하게 하는 존재같아요.
    은조의 상처 근원이 엄마라는 사실이 이 드라마를 새롭게 보게하는 새로운 시각같기도 하고요.

  5. 둔필승총 2010.04.18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에게 받은 상처니 오죽할까요. 에효~~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