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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신데렐라언니

신데렐라언니, 구대성의 죽음이 어이없는 자살인 이유?



신데렐라언니, 전통을 밀어내는 현대의 어두운 그림자들?




대성도가의 저력의 원천이 무엇일까? 구대성이 일으킨 대성도가는 그야말로 전통의 결정체이다. 구대성의 막걸리에 대한 태도는 엄격했다. 1회에서인가 구대성이 잘 빗어지지 않은 술단지를 깨는 장면이 이를 입증한다. 술에 대한 고집이요 전통에 대한 애착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또한 구대성의 그러한 철학에 묵묵하게 따라온 직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십년을 대성도가와 함께 하면서 대성도가의 명성을 쌓아온 것이다. 비록 공정과정에 기계설비를 도입하고 마켓팅과 판매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변화되었겠지만 드라마에서 생생하게 보아온 것처럼 누룩을 만들고 발효를 시키고 술을 만드는 과정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누룩을 빗기 전에 고사를 지내는 장면은 막걸리에 얼마나 큰 정성이 들어가는 지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성도가의 한옥 자체가 전통의 결정체이다. 


이러한 전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성도가 한옥처럼이나 시대의 겉멋에만 물들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결정체이다. 만약 이윤에만 급급해서 편리성과 효율성만을 따졌다면 대성도가의 모습은 전통적인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오히려 잘 빗어진 전통주로 명성이 퍼졌을 것이다. 바로 그런 전통의 모습 한 가운데 구대성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대성도가 한옥의 발효실은 전통의 생생한 모습이며 구대성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그 장면들 속에서 도도한 현대의 모습이 밀려들면서 전통의 모습을 약화시키는 모습들이 나타났고, 나타나고 있다. 결국 구대성의 죽음은 신데렐라 가족들의 탄생만이 아니라 전통의 죽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대의 급습은 과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근 현대사로 확대되어 해석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넌센스라고 하면 할말은 없다. 아무튼 드라마의 도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전통의 파괴적인 장면들을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가장 처음 목격한 것은 기훈이 누각에 홀로 앉아 부르던 스페인어 노래였다. 이 장면은 은조와 기훈이 만나면서 감정적인 교류를 하게되는 인상적인 장면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누각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 스페인어 노래가 어떠한 내용의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전통의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다. 구대성의 죽음과 관련하여 되돌아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둘째로, 신데렐라의 탄생도 그렇다. 효선은 신데렐라가 아니다. 효선은 전통적인 여성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감상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약간은 걸맞다. 이성적이기라기 보다는 감정적이며, 구대성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은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느낌보다는 우리의 정문화에 가깝게 느껴졌다. 물론 발레를 하고 명품 가방에 옷에 악세사리까지 효선이 휘감고 있는 현대적인 것들이 대성도가의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이것 자체만으로 전통의 약화를 설명할 수 있다. 또 이것만 독립하여 세번째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효선 자체만을 놏고 볼 때는 그녀의 밑바탕은 전통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굳이 효선을 신데렐라라고 호칭하는 자체가 어쩌면 전통적의 약화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제작진의 의도나 무의식이라는 면에서 드라마 외적인 것으로 패스!  


셋째로, 대성도가를 차지하려는 홍주가의 야심은 전통에 대한 현대의 가장 노골적인 압박으로 여겨진다. 기훈의 아버지인 홍주가의 사장이 노골적으로 개입해서 대성도가를 잡아먹으려는 모습은 피폐해지는 전통의 입지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현대는 이렇게 전통의 입지가 좁아지는 시대이다. 드라마이지만 이러한 드라마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통이란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전락해 버린지도 오래 된 것 같다. 마치 박물관처럼 버티고 있는 듯한 대성도가한옥처럼 말이다.


넷째로, 무엇보다도 구대성의 죽음과 관련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송강숙의 존재이다. 구대성은 기훈에 의한 충격사가 아니라 송강숙을 불러들인 자살에 가깝다. 송강숙은 전통이나 시대인식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대성도가의 안방을 차지하고 말았으니 전통을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송강숙 앞에서 그 수줍워하던 모습이야말로 자살의 전조였다는 사실이다. 고리타분하게 송강숙을 현모양처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구대성의 아내이고 대성도가의 안방마님이라면 전통이나 얕은 시대인식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강숙은 이와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이다. 그저 자신의 생존만이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는 자기 삶의 배경으로 물러나 있는 그런 존재이다. 이것을 보지 못한 것은 구대성의 큰 실수이며 자살 행위였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구대성의 죽음을 살펴보니 가슴이 아프다. 속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드라마를 너무 과장되게 비틀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보면 좋은 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가 구대성을, 대성도가 한옥을, 묵묵하게 전통을 지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전통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