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이상한 일이지만 구일중을 보면서 만신이 느껴지는 건 왜 일까요? 구일중이 누운 채로 천리를 보는 신통력을 보여주는 것이 만신이 비방을 하여 신통술을 보여주는 것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일까요? <제빵왕 김탁구>에서 이런 모습은 구일중이 처음은 아닙니다. 팔봉 선생이 있었지요. 팔봉선생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고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가진 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주 신비스러운 존재였습니다. 팔봉선생의 이 신비스러움의 아후라가 탁구에게, 마준에게 맞닿으며 무게감과 기품, 그리고 묘한 매력을 만들어 내기도 했구요. 팔봉선생의 화두 같은 1, 2차 경합을 통해 스토리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도 높였습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그런데 이 팔봉 선생을 뒤이어 그의 제자 구일중이 누워서도 천리를 보는 신통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정말 유치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쓰러져 누워 있는 구일중이 탁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마치 영적인 존재가 주인공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종교적인 비의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 드라마는 시대적인 배경이 촌스러움을 느끼게도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촌스럽게 느겨지게도 합니다. 구일중이 누워 천리를 보리라도 누가 생각이나 해 보았을 까요?   


그러다보니 침대에 누워서 천리를 보는 듯한 구일중에 대한 호기심이 이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일중의 신비스로움은 상상력을 동원하게 되면서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돕게 되는 것이구요. 이것은 마치 <구미호-여우누이뎐>의 만신이 그 정체에 대한 굼금증을 유발한 것과 흡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구일중과 만신의 존재 자체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언급한 신통력을 제외하고 구일중과 만신의 몇 가지 공통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외로움

구일중이 거성의 회장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외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가정사와 타고난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주위에서 권모술수를 일삼는 인간들에게 대한 비관적인 인식이나 혐오에 기인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내 서인숙의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도전, 친구 한승재의 배신이 무엇보다도 그러할 것입니다. 짐작컨대 구일중은 붕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무어보다도 구일중은 자신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탁구에게 자기 존재를 자꾸만 투영하는 것 같구요. 그렇다면 만신은 어떤까요? 만신도 참 외로운 인간입니다. 몹쓸병에 걸려 600년 동안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만신은 꼭 인간의 보편적인 외로움을 상징하는 존재같기도 합니다. 몸씁명이라는 그 병,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이 아닐까요?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2.무기력

구일중은 언제나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탁구와 있을 때 웃음을 보여주는 정도입니다. 거성의 회장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운동을 한다거나 자기 체력을 관리하는 모습도 본적이 없습니다. 항상 조용한 모습으로 사무실이나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있습니다. 좋게 보면 품위 있고 과묵한 모습이지만, 좀 나쁘게 말하면 무기력한 남자처럼 보입니다. 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동굴 속에 틀어 박혀 있습니다. 표정연기는 정말 카리스마가 넘치고 비방을 쓰서 신통력을 발휘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무기력합니다. 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집착

구일중은 오직 탁구에게만 집착합니다. 정말이지 병적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두 딸이 있음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마준에게는 보이지 않는 속내를 드러내는 데 인색한 반면에 탁구만 보면 그야말로 표정이 돌변합니다. 아직 이런 차이가 왜 나타는지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이러한 확연한 태도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들이 서서히 드러나겠구요. 만신이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간입니다. 사악한 인간의 간이기에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간이 없으면 만신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구일중에게 탁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면 만신에게 인간의 간 또한 살아가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


이렇게 다소 생뚱맞게 구일중과 만신의 공통점을 살펴보다보니 구일중이나 만신뿐만 아니라 모든 남자들이, 아니 모든 인간들이 참 외로울 수밖에 없고,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삶이 무기력해지는 그런 악순환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게 되는군요. 그럼에도 언제나 그래왔듯이 삶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리셋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죠.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미호-여우누이뎐>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구산댁의 매력적인 모습과 구미호로 변신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하기야, 이별을 고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긴 합니다. 여우누이뎐은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주요 관계들이 주로 구미호와 인간간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타 드라마의 성격과는 달리 민담이나 우화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인간과 동물, 좀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이것을 좀 더 일반화하면 인간과 인간 외적 존재와의 관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관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인간 자신들과의 관계 갈등조차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과 인간 외적인 존재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는 것은 좀 허황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자신에게 불이 났는데 파티를 흥청망청 열고 있는 꼴입니다. 마치 영화 <타워링>에서의 인간들처럼 말입니다.

KBS 캡처화면



인간은 일방적으로 자신 외적인 존재들에게 관계를 강요하여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인간중심주의의 소산입니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개발주의가 그것입니다. 개발이란 다른 말로 하면 일방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폭력에 가깝습니다. 만약 이러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인간의 생존도 보장 받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관련하여 만신의 몹쓸병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만신의 몹쓸병은 다양한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악한 인간의 간을 먹으며 죽지 못해 살아가야 하는 그런 병은 도대체 무슨 병일까요? 그것도 600년 동안이나 그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살아 온 것입니다. 여우누이뎐의 시대적인 배경을 아무리 길게 잡아도 1400년대라고 할 때 그 때로부터 600년이라고 하면 800년대, 즉 9세기쯤 됩니다. 그 때 걸린 몹쓸병이 도대체 무엇일지 필자로서는 도저히 짐작키 어렵습니다.


KBS 캡처화면


다만 이 몹쓸병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몹쓸병은 시대적인 틀에 갇혀진 어떤 특정한 육체적인 질병이라기보다는 <여우누이뎐>이라는 드라마가 갖는 현재적 의미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600년 동안 사악한 인간들의 간을 파먹으면서 죽지 못해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만신은 인간의 비극적인 본성과 역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만신은 가슴 아픈 존재입니다. 몹쓸병이라는 것이 만신이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만신이 나쁜 인간이었고 그 벌로 몹쓸병에 걸렸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600년 동안이나 인간의 간을 파먹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아무튼 만신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몹쓸병' 은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비극을 만들어 내었고 또 만들고 있습니다. 구산댁은 만신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만신에게는 죽지 못해 살아가야 하는 형벌이 가장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우리 속의 몹쓸병, 즉 만신을 죽여야만 합니다. 인간이 야만에서 문명으로 꽃을 피워 온 것처럼 그 발전을 여전히 신뢰합니다. 우리 속의 몹쓸병을 죽이는 일, 인간인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미호-여우누이뎐>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구산댁의 매력적인 모습과 구미호로 변신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하기야, 이별을 고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긴 합니다. 여우누이뎐은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주요 관계들이 주로 구미호와 인간간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타 드라마의 성격과는 달리 민담이나 우화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인간과 동물, 좀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이것을 좀 더 일반화하면 인간과 인간 외적 존재와의 관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관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인간 자신들과의 관계 갈등조차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과 인간 외적인 존재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는 것은 좀 허황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자신에게 불이 났는데 파티를 흥청망청 열고 있는 꼴입니다. 마치 영화 <타워링>에서의 인간들처럼 말입니다.




인간은 일방적으로 자신 외적인 존재들에게 관계를 강요하여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인간중심주의의 소산입니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개발주의가 그것입니다. 개발이란 다른 말로 하면 일방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폭력에 가깝습니다. 만약 이러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인간의 생존도 보장 받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관련하여 만신의 몹쓸병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만신의 몹쓸병은 다양한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악한 인간의 간을 먹으며 죽지 못해 살아가야 하는 그런 병은 도대체 무슨 병일까요? 그것도 600년 동안이나 그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살아 온 것입니다. 여우누이뎐의 시대적인 배경을 아무리 길게 잡아도 1400년대라고 할 때 그 때로부터 600년이라고 하면 800년대, 즉 9세기쯤 됩니다. 그 때 걸린 몹쓸병이 도대체 무엇일지 필자로서는 도저히 짐작키 어렵습니다.




다만 이 몹쓸병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몹쓸병은 시대적인 틀에 갇혀진 어떤 특정한 육체적인 질병이라기보다는 <여우누이뎐>이라는 드라마가 갖는 현재적 의미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600년 동안 사악한 인간들의 간을 파먹으면서 죽지 못해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만신은 인간의 비극적인 본성과 역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만신은 가슴 아픈 존재입니다. 몹쓸병이라는 것이 만신이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만신이 나쁜 인간이었고 그 벌로 몹쓸병에 걸렸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600년 동안이나 인간의 간을 파먹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아무튼 만신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몹쓸병' 은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비극을 만들어 내었고 또 만들고 있습니다. 구산댁은 만신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만신에게는 죽지 못해 살아가야 하는 형벌이 가장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우리 속의 몹쓸병, 즉 만신을 죽여야만 합니다. 인간이 야만에서 문명으로 꽃을 피워 온 것처럼 그 발전을 여전히 신뢰합니다. 우리 속의 몹쓸병을 죽이는 일, 인간인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드라마가 끝이 나고 악역이 동정이 가게 된다거나 주인공이 너무 미워지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신에게만은 이런 예외가 없었던 생각이 따라 붙습니다. 만신이 끔찍이도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불쌍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인한 몹쓸병에 걸려 죽지 못해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각종 암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병입니다.




만신이 왜 이런 몹쓸병에 걸렸는지 또 몹쓸병이 어떤 병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살기 위해 600년 동안 사악한 인간의 간을 빼 먹어어야만 했다는 사실로 보아 정말이지 가혹한 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병이 있을까요?


만신은 근본적으로 악한 인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몹쓸병에 걸리다 보니 인간의 간을 파먹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잔인한 모습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간을 파먹으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 갈 수는 없는 것일 테죠. 박수무당이 되어 산속 동굴에서 고독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철저하게 고독했을 겁니다.


만신에 비하면 구산댁이나 연이는 너무나도 행복한 존재들입니다. 비록 인간이 되지 못한체 여우로 죽어야만 했지만 말입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습니다. 인간도 인간 나름이니 말입니다. 만신은 600년 동안이나 인간, 그것도 사악한 인간의 간만을 파먹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만신은 드라마가 끝나도 죽지도 못하고 또 몇 백년을 인간의 간을 파먹으며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정말 끔찍합니다. 도대체 몹쓸병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집니다. 만신이 현대에 나타난다면 현대 의학으로 몹쓸병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요?


만신이 인간을 파먹는 좀비이긴 하지만 참 불쌍한 인간입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미호-여우누이뎐>이 16회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궁금해 하던 만신의 정체도 밝혀졌습니다. 시청률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만큼 만신의 정체는 관심을 끌었습니다. 인테넷에서도 만신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오기도 했구요.


KBS 드라마 캡처



제작진에서 밝혔던 ‘동물이 아니다’ 는 언급과 16회의 내용을 통해서 판단해 보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고조시켰던 만신의 정체는 사악한 자들의 간을 파먹으며 활동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하는 운명에 처한 인간 좀비였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활동 에너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만신이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고통스런 운명에 처한 좀비이기 때문입니다. 간을 파먹으며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지도 못하는 만신은 600년 동안이나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만신이 박수무당으로 행세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만신이 좀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박무수당을 가장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당의 영험함을 가장하여 수많은 인간들을 비방이나 신통술로 죽이면서 그리고 간을 취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좀비 만신에게는 취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좀비의 특징이 육체만이 ‘살아‘ 꿈틀거리면서 살아있는 인간을 사냥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신이 좀비처럼 이렇게 공공연히 나다니면서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간을 파먹는 짓을 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수무당 행세를 하면서 비방을 행하고 신통술을 발휘하면서 드라마에서 윤두수나 양부인처럼 사악한 인간을 만들어 간을 파먹는 일이라면 단지 산짐승의 소행 정도로 오해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입니다.

KBS 드라마 캡처


만신이 사악한 인간의 간을 먹어야만 하는 이유

만신은 상징성이 참 풍부한 존재인데요, 만신이 사악한 인간의 간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가 사악한 인간 본성의 결정체요 상징적인 존재로 추측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만신이 좀비가 된 이유는 그가 걸린 ‘몸쓸병’입니다. 이 몸쓸병에 걸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먹기 시작한 것이 사악한 인간들의 간입니다. 이 몹쓸병은 다양하게 추측해 볼 수 있겠는데요, 오늘날로 치자면 자연오염으로 인간의 고질병이 될 수도 있겠구요, X맨 같은 방사능 물질로 인한 유전자 변이로 인간 기형인간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만신은 추상적인 상징성으로 인간의 사악한 마음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사악한 인간 본성의 결정체나 상징적 존재로 말입니다. 이 만신의 대해 여우인 구미호가 단죄를 한다는 퍽이나 의미심장합니다.


만신이 윤두수의 간을 파먹는 장면에서 구산댁과 조우를 하게 되는데요, 구산댁은 만신의 정체를 맑히는 가루약을 뿌리면서 이렇게 만신에게 말합니다.


“니 놈이 살아 돌아왔을 때 내 니 놈의 정체를 짐작했다. 몇 백년 동안 얼마나 사악한 인간들의 간을 먹은 것이냐! 도무지 셀수가 없구나. 몸쓸병에 걸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 멈출 수가 없게 되었구나. 살아도 산 것이 아니며 죽을 수도 없는 가혹한 운명이니 그래서 니 운명을 원망하다 너를 이리 만든 인간들을 그리도 미워하게 된 것이냐! 지난 번엔 실패했지만 네 너를 죽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니 놈의 숨통을 끊어 그 죄만은 간을 꺼내 만년호에 던지면 된다는 것을”


구산댁의 이러한 말은 인간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는 죽이고 증오하는 인간들의 가혹한 현실에 대한 상징인 셈이기도 합니다. 이롷게 구산댁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만신은 오히려 반색을 하며 좋아하는 듯 합니다.


“나를 죽이고 싶으냐. 육백년을 기다렸다. 고맙다.”


만신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참 자연스럽습니다. 만신은 죽지 못해 살아왔으니까요. 만신에게는 삶이라는 것이 고통스러운 질곡이고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구산댁은 이런 만신의 심정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를 죽인다는 것은 만신을 구원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이후 구산댁은 초옥에게는 끝까지 사랑을 보여주고 그 자신이 초옥으로 인해 파멸되어 갑니다. 오히려 초옥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신에게는 달랐습니다. 오직 복수만이 있었습니다. 이 구산댁의 복수는 좀 더 확대하면 자연이 내리는 인간에 대한 형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사악한 본성을 거두지 않는다면 인간의 형벌은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 스르로에게 자승자박당한 셈입니다. 인간은 인간 자신의 사악한 본성을 깨고 나오지 않는 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 운명의 고통이라는 것이기도 하구요.

“죽고 싶으냐? 어찌하여 내가 니 놈을 죽여 줄거라고 생각하느냐. 어림없는 소리. 너는 그 흉측한 몰골로 천년 만년 살거라, 아니 영겁의 세월을 니가 그리 저주하는 인간들과 같이 섞여 두고 두고 고통 받거라. 그것이 내가 너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만신이 육체적인 힘이 없었던 이유

지금까지 만신이 육체적인 힘이 없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좀비였던 까닭입니다. 만신은 비방이나 신통술에는 능했지만 육체적으로는 전혀 힘이 없었습니다. 구산댁에게도 한 순간에 당하고 쓰러졌습니다. 표정은 기괴하고 공포를 자아내었지만 활동력은 없었습니다. 필자도 이전에 이에 관한 포스트( 여우누이뎐, 만신은 왜 육체적인 힘이 없을까?)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만신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 경제에 처한 존재이기에 삶과 죽음이란 두가지 특성을 다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삶의 활동성은 없으면서도 사후의 영적 활동성은 강한 기과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 만신은 육체적인 활동성은 없으면서도 비방이나 신통술은 능수능란하게 발휘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구산댁에게 맥 없이 당하는 것도 이러한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


지금까지 만신이 좀비였으며 좀비 만신의 특징들을 몇 가지 살펴보았는데요, 인간인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장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신의 운명이 곧 인간의 운명이라는 생각까지도 들구요. 이 점들은 이후로도 살펴보면 좋을 을 것 같습니다. <구미호-여우누이뎐>을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여러가지 추측도 해보고 이런 저런 생각도 애 보았는데요, 신통 찮게도 드라마를 보시는데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했네요. 만신처럼 신통술이 좀 있었더라면...... 아무튼 지금까지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고생하신 작가, 연출 피디를 비롯한 제작진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미호-여우누이뎐> 15회는 그야말로 스토리가 밀도있게 전개된 회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시도 눈을 떼기가 힘들 정도였구요. 사실 15회의 내용은 3회분 정도로 늘여도 될 만큼 밀도감이 있었습니다. 윤두수의 현혹됨, 양부인의 죽음, 초옥의 기억 되살아남과 그 언저리의 이야기들이 큰 줄기로 나누어져도 될 만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밀도감 있게 전개되는 내용 중에 필자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거나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들을 잠깐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1.연이의 방울 노리개는 왜 초옥의 빙의를 일으키지 않는가?

구산댁이 연이의 무덤에 파묻은 방울 노리개를 초옥이 다시 만졌음에도 불구하고 초옥 속으로 연이의 영혼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첫 번째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오히려 초옥의 손에 들려진 방울 노리개는 초옥의 손에 잡힌 연이의 영혼이 되어 괴로운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구산댁은 연이의 혼이 살려달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달려가는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초옥이 방울 노리개를 들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와 동시에 초옥은 구산댁이 보는 앞에서 그 방울 노리개를 강으로 내던집니다. 초옥은 구산댁에게 방울 노리개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산댁에게 방울 노리개는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옥이 죽은 연이의 방울 노리개를 만지게 되면 초옥 속으로 연이의 영혼이 들어가는 빙의 현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빙의 현상이 이번에는 생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초옥의 손에 들린 방울 노리개가 초옥의 손에 잡힌 연이의 혼이 되어 살려달라고 고통스럽게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초옥에 의해서 버려진 방울 노리개를 건지기 위해서 구산댁이 강으로 뛰어들고 잠시 뒤 구미호가 되어 강의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이 모습을 초록이 데려온 아버지 윤두수가 목격하게 됩니다. 구산댁이 구미호임을 알게 된 윤두수와 구산댁의 대결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15회가 끝을 맺습니다. 아무튼 초옥이 연이의 방울 노리개를 만졌음에도 왜 빙의가 일어나지 않는지 참 궁금합니다.



2.초옥을 연이의 무덤으로 데리고 간 것은 구산댁인가 양부인의 원혼인가?

15회에서 구산댁은 연이의 무덤에 방울 노리개를 다시 뭍습니다. 초옥이 연이의 방울 노리개를 다시 만지게 하여 빙의가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런데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은 윤두수의 칼에 죽은 양부인의 원혼이 초옥에게 나타나 그녀를 연이의 무덤으로 이끕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양부인의 원혼이 구산댁이 변신한 모습으로 초옥을 연이의 무덤으로 이끌어 방울 노리개를 만지게 하려는 계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와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방울 노리개를 만진 초옥은 빙의는 커녕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초옥의 손에 잡힌 방울 노리개가 연이의 고통을 하소연합니다. 초옥의 몸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 초옥의 손에 잡힌 모양새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산댁이 연이의 무덤에 방울 노리개를 묻어 초옥의 빙의를 바랬다면, 양부인이 초옥을 연이의 무덤으로 데리고 간 것은 상충되는 부분입니다. 구산댁과 양부인 원혼의 모정간의 대격돌이라고 할 수 있을 까요?



3.윤두수의 양부인 살해는 순간적인 부노의 결과인가, 구산댁의 현혹에 의한 것인가?

구산댁은 윤두수가 만신과의 거래서와 관련하여 현감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이 실랑이를 벌이고 돌아온 윤두수는 구산댁을 죽여야 한다는 양부인의 채근에 미친 듯한 분노에 휩싸여 양부인을 죽이고 맙니다. 윤두수는 구산댁과 함께 양부인의 시신을 처리합니다. 그야말로 폭풍처럼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이후 윤두수가 혼자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 번째 잔을 들이키고 난 후, 두 번째 잔을 붓는 순간 잔으로 핏방울이 떨어져 퍼집니다. 이후 술잔뿐만 아니라 방이 곳곳에서 피가 흘러내립니다. 이게 실제로는 윤두수의 환상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윤두수의 불안한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윤두수가 양부인을 죽인 것이 단순히 윤두수의 분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구산댁에 의해 현혹되어벌인 결과인지 참 궁금합니다.



4. 은밀하게 지켜보는 시선은 누구의 것일까?

극중 화면에는 카메라의 시선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시선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 시선의 정체는 만신의 정체만큼이나 호기심을 자아내는데요, 이 시선은 창호지를 뚫고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 같기도 하고 만화경 같기도 합니다. 극중 인물들이 이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숨어서 보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 같습니다. 은밀하게 숨어서 보는 시선이라면 천우가 아닐까도 싶지만, 이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시선이 고정되지 않고 유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시선일까요? 만약 이 시선의 주인공이 만신이라면, 지금꺼 궁금하게 여겨온 만신의 정체를 추측하는데 새로운 단서를 제공해 주겠죠. 근데 내일이면(12시가 지났으니 오늘이군요) 만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당에 만신의 정체를 알어 볼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이상은 <구미호-여우누이뎐> 15회를 보면서 가졌던 의문들과 호기심들입니다. 만신의 정체 등 모든 궁금증이 다 풀린다는 의미에서 16회가 참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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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누이뎐>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만신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체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만신의 한 특성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이 특성이 어쩌면 만신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단서로 작용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구요. 그런 만신의 두드러진 특성이 무엇일까요?

KBS드라마 캡처 화면


육체적인 무기력입니다. 만신은 위협적인 표정과는 달리 육체적으로는 참 무기력합니다. 만신이 힘을 쓰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직접 구산댁을 죽일 만큼 힘이 없는지 언제나 비방만 전해주고 자신은 뒤로 나 앉기만 합니다. 죽은 퇴마사보다도 더 강력한 것은 분명한데 직접 나서서 구산댁을 죽일 만한 힘은 없는가 봅니다. 구산댁을 직접 죽일 수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육체적인 힘이 없는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만신은 머리만 사용해서 신통력만 발휘할 뿐입니다.


도대체 왜 만신은 이렇게 육체적인 힘이 없는 것일까요? 엄청 강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구산댁에게 당해 픽픽 쓰러지는 모습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비방을 사용해서 연이를 죽이고 자신도 퇴마사의 간을 빼먹는 것을 보면 비폭력주의자는 아닌데 말입니다.


우선,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귀신(또는 좀비)입니다. 귀신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인간세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힘을 쓸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KBS드라마 캡처 화면



둘째로는 강력한 힘을 아직 드러내지 않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육체적인 힘을 제약당하고 있거나 자신 스스로 자제를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강력한 힘을 숨기면서 단지 머리만 이용하는지 그 이유가 애매합니다. 굳이 힘을 숨길 필요가 없을뿐더러 비방만을 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만신이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면 자신이 직접 구산댁을 처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신이 직접 나서서 구산댁을 해치려는 적을 본적이 없습니다. 만신은 그저 비방만을 알려주고 양부인, 윤두수 등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연이를 죽이고 구산댁을 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구산댁에 대한 동정입니다. 필자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만신과 구산댁이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오누이가 아닐까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만신의 잔인한 겉모습과는 달리 구산댁에 대한 감정이 의외로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꼭 같은 여우가 아니라도 인간이 아니라는 동질적인 처지에 대해 만신이 구산댁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지요.
 

이상과 같은 세 가지의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만, 그저 추측은 추측에 지나지 않겠지요. <구미호, 여우누이뎐> 이제 2회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모든 호기심들이 다 밝혀지겠지만 그 호기심이 다 밝혀지는 순간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몰려오네요.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빙의된 초옥은 인간일까, 여우일까? 참 헷갈린다. 초옥 속에 연이가 있다는 것은 구산댁과 윤두수와 양부인에게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실 연이의 간을 먹은 것은 비유하자면 오늘날 간이식 수술 정도에 해당한다. 초옥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초옥의 몸속에 연이의 의식이 들어가 있다면 이건 심각해진다. 정체성이 흔들린다. 본인은 거울만 안보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그런데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몸은 비록 초옥이지만 정신이 연이인 이 존재를 윤두수나 양부인은 초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빙의된 연이의 정신을 빼내야만 초옥이 된다. 구산댁의 입장에서는 초옥이 복수의 대상이지만 초옥의 몸을 죽여버리면 그 속에 있는 연이가 살수가 없다. 빙의된 연이가 꼭꼭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의문은 초옥은 살아있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연이는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윤두수나 양부인에게는 연이가 빙의된 초옥이 자신들을 증오하기만 하니 자신의 여식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초옥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구산댁에게는 어머니 어머니하며 따르는 초옥이 연이로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의 문제는 상대적이다. 윤두수와 양부인에게는 초옥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구산댁에게는 연이가 살아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자. A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A는 얼굴이 지독히도 못생겼어 1억을 들여 얼굴을 완전히 리모델링하는 성형을 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A는 A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대체로 A라고 할 것이다. 얼굴만 바뀌었을 뿐 A 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B라는 남자가 갑자기 바뀌어 여자의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B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대체로 외모보다는 그 외모에 깃든 정신을 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으로 여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나라사람들은 성형 수술에 참 관대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정신 보다는 육체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정신을 내면적인 것이라 한다면 육체를 외면적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외면적인 것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키나 얼굴, 재력, 학벌, 직업 등을 우월하게 여긴다. 그에 비해 한 인간의 내면은 별로 이해하려거나 세심하게 고려하려는 경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심각한 사교육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면적인 성숙함보다는 외면적인 스펙 쌓기를 더 중요시 여긴다.


또 한 예를 들자면 고 앙드레 김 선생이다. 그의 외관, 이를테면 외모, 옷, 말씨 같은 것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진정으로 그의 내면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앙드레 김 선생의 특이함에만 신경을 쓸 뿐 그의 내면이 얼마나 섬세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고 앙드레 김 선생님



12회에서 만신이 구산댁과 조우하는 장면에서 이런 말을 한다. "
아직도 모르겠는냐? 너희가 왜 그렇게 핍박과 고통을 받는지. 진정 모르겠는냐? 너희는 다르다. 너와 네 새끼는 인간과 다르다. 그게 이유이니라." 만신은 구산댁과 연이가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세상에서 이들이 살수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구산댁이나 연이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다르다는 그 차이조차도 극복하려고 말이다.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이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모든 것들이 정당화되는 반면에, 인간 외의 동물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구산댁이 인간이 되려고 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구산댁이나 고 앙드레 김 선생은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고독을 느낀 존재일 것 같다. 자신의 말, 행동, 외모에만 관심을 가지는 대중들에게 비록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앙드레 김 선생은 얼마나 답답하고 섭섭했을까. 고 앙드레 김 선생도 구산댁처럼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싶다. 


"고작 그 이유로,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 내 새끼에게 그리한 것이냐? 
인간이란 그런 것이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찢고, 찌르고,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족속이란 말이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내 새끼를 잡아 그리 처참하게 밟은 것이냐? 이 천벌 받을 놈. 내 오늘은 널 그냥 보내지 않겠다."

▶◀ 삼가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첫번째 두번째 이미지: KBS 드라마
세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309022056342&outlink=2&SVEC
네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1618512398127&outlink=2&SV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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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이 인간이 아닌 것은 이미 밝혀졌다. 구산댁이 구미호로 변신할 때 보여주는 모습을 만신 또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수무당이라고만 알았던 만신이 인간이 아닌 것은 분명해졌다. 윤두수와 양부인을 도와주고 있지만 은혜를 칼로 갚는 윤두수에 의해 참 많이 실망을 한 듯하다. 그가 현감의 편에 선 것도, 구산댁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듯한 모습도 그렇다. 죽은 자신의 모습을 통해 윤두수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구산댁에게 무기력하게 당한 것도 그렇다. 보기와는 달리 만신이 육체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머리만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구산댁에게 그렇게 당하리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특히 14회에서 양부인을 만나 보여주는 만신의 태도는 체념적인 모습이 배어나고 있다. 이런 만신의 모습과는 달리 양부인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양부인이 요괴인지 만신이 요괴인지 그 경계도 애매한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양부인에게 반응하는 만신은 영락없는 무기력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좀 과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면은 마치 인간의 살기와 이에 놀란 요괴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신은 왜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양부인의 비방 요구에 마지못해 응해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필자가 짐작컨대 이미 앞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속된 말로, 자신은 기를 다해서 온갖 비방을 주는데 윤두수는 연이를 죽이고 간을 빼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고 하니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뒤늦게 깨달았을지 모른다.



이렇게 인간에 대한 실망은 구산댁에 대한 동정으로 향하지 않을까? 아무리 잔인하고 무서운 만신이지만 인간에게 외면받고 이용당하는 구산댁에게서 자신과 어떤 동질감을 느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신도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만신의 정체에 대해서 많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필자도 만신의 정체에 너무 궁금해서 포스트를 쓴 적이 있다(여우누이뎐, 만신의 정체는 구산댁의 오빠?) 좀 황당한 추측이기는 하지만 만신이 구산댁의 오빠가 아닐까 언급했다. 오빠가 아니더라도 만신은 인간이 아니긴 마찬가지이다. 만신이 여우이던 아니면 다른 동물이나 요괴이던 인간이 아닌 처지는 같다는 말이다. 만신은 '왜 자신과 연이를 이렇게 괴롭히냐' 는 구산댁의 말에 정확치는 않지만 아직도 모르겠는냐? 너희가 왜 그렇게 핍박과 고통을 받는지. 진정 모르겠는냐? 너희는 다르다. 너와 네 새끼는 인간과 다르다. 그게 이유이니라.' 고 말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말은 결국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하다. 만신 또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신이 구산댁과 연이를 죽이고자 하는 이유를 말한 것이기라 하기에는 자기 처지를 무시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자신도 인간이 아닌 처지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연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구산댁과 연이에 대한 연민이나 마찬가지이다.



어쩔 수 없는 속사정 때문에 만신이 구산댁과 연이를 죽여야만 하는지는 몰라도 만신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인간에 대한 실망과 구산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싹트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성적인 차원은 아니더라도 구산댁을 사랑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비록 인간이 아닌 구미호이지만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으로만 여겨지는 구산댁과 마찬가지로 만신에게도 인간이 아니라서 슬픈 그런 모습이 느껴진다. 만신과 구산댁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만신과 구산댁의 관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무척이나 흥미를 자아낸다. 만신이 구산댁을 도와주면 좋겠다.


첫번째 이미지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00817081617141
두번째 이미지  KBS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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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여우누이뎐> 11회에서 윤두수는 관아에 감금된 만신을 빼내기 위해 조현감에게 땅문서를 뇌물로 건네 줍니다. 윤두수는 만신이 초옥과 관련된 일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를 죽이기 위해 감금된 만신을 석방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석방된 만신을 동굴까지 미행한 윤두수의 수하들은 돌아 앉아있는 만신의 뒤에서 목을 베지만 떨어지는 건 만신의 목이 아니라 해골이었습니다. 만신이 변신술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만신이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맞았습니다. 만신이 인간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필자는 만신을 숫여우라고 생각합니다. 구산댁은 어쩌면 만신의 여동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추측의 가장 큰 이유는 제목에서 드러납니다. ‘여누누이뎐’ 이라는 말 말이죠. ‘여우 남매의 이야기‘ 쯤으로 바꾸어 볼 수 있겠는데요, 드라마의 어느 구석을 찾아보아도 여우는 구미호인 구산댁과 연이 밖에는 없습니다. ’여우누이‘ 라면 연이의 남동생이나 오빠, 또는 구산댁의 남동생이나 오빠를 상정해 볼 수밖에 없는데요, 연이의 경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나이 또래의 남자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산댁만이 남는데요, 만신의 정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때 구산댁의 오빠로 추측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의외의 추측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우누이뎐이란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 때문입니다.


만신이 구산댁의 오빠라는 추측의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12회에서 구산댁과 만신이 만나 나누는 대화와 만신의 행동입니다. 만신은 구산댁이 퇴마사를 죽인 후 갑자기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만   신: 아직도 모르겠는냐? 너희가 왜 그렇게 핍박과 고통을 받는지. 진정 모르겠는냐?

           너희는 다르다. 너와 네 새끼는 인간과 다르다. 그게 이유이니라.

구산댁: 고작 그 이유로,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 내 새끼에게 그리한 것이냐?

          인간이란 그런 것이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찢고, 찌르고,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족속이란 말이냐! 자심과 다르다고 해서 내 새끼를 잡아 그리 처참하게 밟은

          것이냐? 이 천벌 받을 놈. 내 오늘은 널 그냥 보내지 않겠다.




구산댁은 이렇게 말하면서 만신의 내장을 파냅니다. 이때 만신이 구산댁의 팔을 잡고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피를 토하면서 쓰러져 눈을 감습니다. 놀랍게도 만신은 다시 살아납니다. 대화로 판단해 보면, 구산댁은 만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만, 만신이 분명하게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이 됩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만신이 오빠임에도 불구하고 구산댁과 연이를 왜 괴롭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만신은 자신의 조카인 연이를 죽였습니다. 몰론 자신이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윤두수에게 비방을 했주었으니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신은 윤두수의 손을 빌려 왜 자신의 조카 연이를 죽였을까요? 필자의 추측으로 연이는 완전한 여우가 아니라, 자신의 누이인 구산댁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은 인간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산댁 마저 죽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도 연이를 죽인 이유와 흡사하지 않을까 합니다. 구산댁이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과 통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만신도 자신의 누이를 죽여야 하는 심정이 정말 아플 것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구산댁이 아무런 허락도 없이 자신의 나라(여우들의 나라)로부터 인간세로 도망 나와 인간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반역행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만신이 왜 인간을 돕는가 하는 점입니다. 만신이 인간이라면 인간을 도와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여우라면 굳이 연이의 간을 빼 먹이면서까지 초옥이를 살려줄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만신이 구산댁의 오빠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하구요.


아마도 인간을 도와서 연이를 죽이고 구산댁을 해하려 하는 것은 차마 자신의 손으로 직접 조카와 누이를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아니면 그것이 만신에게는 금도인지도 모르겠구요. 인간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유가 있을 수도 있구요.


지금까지 만신의 정체가 구산댁의 오빠라는 사실에 대해 나름대로 그 이유를 살펴보았는데요,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두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309022056342&outlink=2&SV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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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여우누이뎐> 11회는 구산댁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참 애매한 부분이 생깁니다. 구산댁의 복수와 무관하게 11회의 비중있는 한 부분이 완전히 빠지는 듯하기 때문인데요, 바로 연이의 등장에서부터 연이의 빙의 장면까지가 그것입니다. 연이가 등장하고 천우의 도움을 받아 초옥이를 우물에 빠트립니다. 이 연이의 등장부터가 구산댁과 관계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구산댁이 변신을 한 것인지 참 모호합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연이의 등장은 구산댁과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 이유는 이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튼 구사일생으로 우물에서 구해진 초옥은 그 두려움에 미쳐가기 시작합니다. 현실에서 연이의 원혼에 시달리는 것이지요. 구산댁이 윤두수와 양부인이 초옥을 간호하고 있는 방을 나와 “니가 남의 새끼 간을 먹고 온전할 줄 알았느냐. 미쳐가는 것은 당연하지.” 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이것이 그녀의 본격적인 복수의 시작인지 아닌지도 애매합니다.


 


또한 신들린 초옥은 구산댁과 연이가 가진 능력처럼 윤두수와 양부인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게 됩니다. 이러한 능력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신이 연이의 간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충격으로 초옥은 부엌에서 음식들을 닥치는 대로 입속으로 밀어 넣는 괴이한 행동을 보이고 심지어 이를 말리는 양부인의 뺨도 때립니다. 부엌에서 나온 초옥은 미친 듯이 날뛰다 구산댁과 조우하게 됩니다. 초옥은 구산댁에게 “제발 연이에게 말 좀 전해주면 안되겠느냐. 난 정말 몰랐다구. 난 정말 호랑이 간일 줄 알았다고. 그러니까 그만 날 좀 괴롭히라고.“ 라고 비명을 내지릅니다. 그런 와중에 환청처럼 연이의 방울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는 연이의 무덤으로 뛰어갑니다. 초옥의 뒷모습을 보면서 구산댁은 이렇게 말합니다. “니가 니 명이 다한 것을 아는가 보구나.“


연이의 무덤에 도착한 초옥은 연이의 무덤을 맨손으로 파기 시작하고 그 무덤 속에서 머리 방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윤두수의 저택으로 돌아오는 데 이번에는 초옥의 몸으로 연이의 원혼이 들어오게 됩니다. 연이의 영혼이 초옥의 몸을 빌린 빙의에 걸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좀 길게 11회의 내용을 언급했는데요, 이 언급한 부분이 바로 앞서 지적했듯이 “구산댁의 복수와 무관하게 11회의 비중있는 한 부분이 완전히 빠지는 듯” 한 부분입니다. 즉, 구산댁의 복수와는 관계가 없는 부분이라고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구산댁은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연이와 초옥이 주인공인 셈이며 연이의 원혼 복수가 시작된 것입니다.


특히 무덤에서 연이의 머리 방울을 가지게 되면서 초옥의 몸속으로 연이의 원혼이 들어가는 빙의가 일어나는데요, 이 빙의를 구산댁은 알아채지도 못합니다. 무덤에서 돌아온 빙의 걸린 초옥을 보면서 구산댁은 “잘 됐구나, 내 오늘 밤 니 간을 도려내 금수만도 못한 니 애비에게 돌려주마” 라고 살기를 세웁니다. 마약 초옥의 속에 연이의 원혼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구산댁이 연이의 존재와 초옥의 빙의를 전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빙의가 일어난 사실을 그나마 믿게 되는 것은 초옥의 몸으로 들어간 연이가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실가는 데 바늘도 같이 간다’ 고 하면서 자신이 연이라는 사실을 완강하게 주장하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도 잠시 빙의 걸린 초옥에게 윤두수가 “지금부터 너는 절대로 구산댁 한테 가면 안된다...... 함부로 구산댁에게 그 일을 발설하면 안된다. 만약 니가 그 사실을 말하게 된다면 모두 위험해 진다......” “(구산댁이) 죽을 수도 있다” 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빙의 걸린 초옥은 자신의 어미인 구산댁을 위해서 자신이 다시 초옥인 것으로 위장을 하게 되는데요, 양부인에게 “구산댁 때문에 속상해 하는 어머니가 너무 안쓰러워서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구산댁을 쫒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어미인 구산댁을 위한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구산댁이 밖에서 엿듣게 되고 빙의 걸린 초옥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이의 원혼이 빙의 걸렸다는 사실도 모른 채 구산댁은 빙의 걸린 초옥을 죽이기로 결심을 하고 상여막으로 나오게 하고 그곳에 가둔 체  불을 붙입니다. 불 속에서 어머니를 외치는 연이의 모습으로 11회는 끝을 맺습니다.


지금까지 연이의 등장에서부터 초옥의 빙의와 상여막에서 불길에 휩쓸려 위기에 처한 연이의 모습까지를 살펴보았는데요, 이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11회는 분명히 구산댁의 복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구산댁은 우왕좌왕만 하며 뭔 구미호인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구산댁은 엑스트라에 불과하며 사실상 연이의 복수가 전부였습니다. 


필자의 생각으로, 11회에서는 잠깐 등장 하였을 뿐이지만 만신과 구산댁의 싸움을 미리 예견할 정도로 부재하는 만신의 역할이 부각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산댁은 초옥의 빙의를 모르고 있지만 만신은 이미 초옥이 연이의 물건을 건드리면 빙의에 걸린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산댁 보다 한 수 위에서 내려다 보는 만신입니다. 연이의 원혼이 초옥을 불러 빙의에 걸리게 했지만 이걸 예언했던 만신은 정말 대단한 존재입니다. 구산댁은 이 걸 전혀 모르고 말이지요. 11회는 만신의 잠재력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회였습니다. 앞으로 만신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궁금해집니다.



첫번째 이미지: KBS 방송 이미지 캡처

두번째 이미지: 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8824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미호 여우누이뎐> 9회는 윤두수에게 쫓겨 절벽으로 내 몰린 구산댁이 연이의 환청을 들으며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으로 끝났다. 그리고 10회에서 구산댁의 시신을 찾기 위해 산속을 뒤지던 윤두수가 백여우에게 당한다. 그리고 산중 폐가에서 깨어나 보니 옆에 구산댁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윤두수에게는 정말 놀랄 일이다.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중상은 당했어야 하는데 자신의 옆에 있으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그기다 연이를 죽이고 간을 취한 윤두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기까지 하니 윤두수는 구산댁에게 오히려 측은지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본격적으로 복수를 시작하는 구산댁의 계책으로 윤두수를 홀려서 다시 윤두수가로 들어가려는 연기였다.






이렇게 해서 구산댁은 윤두수가로 다시 들어가게 되는데 이 과정은 그야말로 윤두수가 구산댁에게 홀렸다고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설명이 부족할 정도다. 구산댁에게 넘어가는 윤두수가 멍청하게만 느껴졌다. 표면적으로는 딸 연이를 잃고 과거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불행한 처지가 된 구산댁을 애처롭게 여기고 거두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구산댁의 입장에서 보면 미색에 넘어간 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윤두수가로 다시 들어간 구산댁은 복수를 시작하게 된다. 사자가 사슴의 숨통을 순간적으로 끊어놓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서서히 목을 옥죄며 고통을 주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 같다. 복수가 시작되고 윤두수와 양씨 부인, 초옥등은 불행을 겪게 되겠지만 그 결말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증이 증폭될 뿐이다. 그 이유는 만신의 존재 때문이다.


조현감(윤두수가 사는 마을의 수령)은 윤두수와는 라이벌의 관계로 윤두수가 연이를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것만 밝혀내면 윤두수를 몰락하게 만들고 자신의 권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연이를 죽이고 간을 취해서 초옥을 회생시키는 날에 윤두수가에서는 이를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열었다. 이 잔치에서 조현감과 윤두수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구산댁이 끼어들어 상을 뒤엎으며 윤두수에게 딸 연이를 죽였다고 저주를 퍼붓는다. 이것은 조현감에게는 윤두수를 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윤두수에게 극도의 분노를 나타내었던 구산댁이 이제는 윤두수와 다시 나란히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조현감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러던 차에 조현감은 만신을 잡아들이게 되고 만신으로부터 윤두수의 살인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만신이 이 모든 것들을 조현감에게 순순히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다.






조현감에 의해 잡힌 만신은 구산댁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복수가 완전하게 이루어질지, 아니면 만신에게 당하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구산댁이 윤두수에게 복수를 하게 될지는 만신의 역할에 달려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극중 만신의 역할이 크지지 않을가 싶다. 


아무튼 이렇게 다시 문제가 복잡해진 것은 윤두수가 구산댁에 의해 홀려서 사리판단이 부족해진 때문이다. 9회에서 절벽에서 떨어진 구산댁이 10회에서는 멀쩡하게 나타날 때부터 윤두수는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야 했던 것이다. 여우가 인간을 홀린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윤두수가 구산댁에게 홀리지 않았다고 해도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구산댁이 윤두수가에 복수를 하는 것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지만, 한편으론 선의의 희생자가 생기지는 않으면 좋겠다. 초옥이 같은 아이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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