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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구미호 여우누이뎐

여우누이뎐, 구산댁과 앙드레 김



빙의된 초옥은 인간일까, 여우일까? 참 헷갈린다. 초옥 속에 연이가 있다는 것은 구산댁과 윤두수와 양부인에게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실 연이의 간을 먹은 것은 비유하자면 오늘날 간이식 수술 정도에 해당한다. 초옥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초옥의 몸속에 연이의 의식이 들어가 있다면 이건 심각해진다. 정체성이 흔들린다. 본인은 거울만 안보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그런데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몸은 비록 초옥이지만 정신이 연이인 이 존재를 윤두수나 양부인은 초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빙의된 연이의 정신을 빼내야만 초옥이 된다. 구산댁의 입장에서는 초옥이 복수의 대상이지만 초옥의 몸을 죽여버리면 그 속에 있는 연이가 살수가 없다. 빙의된 연이가 꼭꼭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의문은 초옥은 살아있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연이는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윤두수나 양부인에게는 연이가 빙의된 초옥이 자신들을 증오하기만 하니 자신의 여식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초옥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구산댁에게는 어머니 어머니하며 따르는 초옥이 연이로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의 문제는 상대적이다. 윤두수와 양부인에게는 초옥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구산댁에게는 연이가 살아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자. A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A는 얼굴이 지독히도 못생겼어 1억을 들여 얼굴을 완전히 리모델링하는 성형을 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A는 A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대체로 A라고 할 것이다. 얼굴만 바뀌었을 뿐 A 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B라는 남자가 갑자기 바뀌어 여자의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B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대체로 외모보다는 그 외모에 깃든 정신을 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으로 여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나라사람들은 성형 수술에 참 관대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정신 보다는 육체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정신을 내면적인 것이라 한다면 육체를 외면적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외면적인 것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키나 얼굴, 재력, 학벌, 직업 등을 우월하게 여긴다. 그에 비해 한 인간의 내면은 별로 이해하려거나 세심하게 고려하려는 경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심각한 사교육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면적인 성숙함보다는 외면적인 스펙 쌓기를 더 중요시 여긴다.


또 한 예를 들자면 고 앙드레 김 선생이다. 그의 외관, 이를테면 외모, 옷, 말씨 같은 것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진정으로 그의 내면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앙드레 김 선생의 특이함에만 신경을 쓸 뿐 그의 내면이 얼마나 섬세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고 앙드레 김 선생님



12회에서 만신이 구산댁과 조우하는 장면에서 이런 말을 한다. "
아직도 모르겠는냐? 너희가 왜 그렇게 핍박과 고통을 받는지. 진정 모르겠는냐? 너희는 다르다. 너와 네 새끼는 인간과 다르다. 그게 이유이니라." 만신은 구산댁과 연이가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세상에서 이들이 살수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구산댁이나 연이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다르다는 그 차이조차도 극복하려고 말이다.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이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모든 것들이 정당화되는 반면에, 인간 외의 동물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구산댁이 인간이 되려고 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구산댁이나 고 앙드레 김 선생은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고독을 느낀 존재일 것 같다. 자신의 말, 행동, 외모에만 관심을 가지는 대중들에게 비록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앙드레 김 선생은 얼마나 답답하고 섭섭했을까. 고 앙드레 김 선생도 구산댁처럼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싶다. 


"고작 그 이유로,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 내 새끼에게 그리한 것이냐? 
인간이란 그런 것이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찢고, 찌르고,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족속이란 말이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내 새끼를 잡아 그리 처참하게 밟은 것이냐? 이 천벌 받을 놈. 내 오늘은 널 그냥 보내지 않겠다."

▶◀ 삼가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첫번째 두번째 이미지: KBS 드라마
세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309022056342&outlink=2&SVEC
네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1618512398127&outlink=2&SV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