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참 착한 청년이다. 때 묻지 않았다. 닳고 닳은 인간들의 얄팍한 처세가 가득한 연예계에서 어찌 이런 착은 인간이 있을까. 연예계는 자본주의 논리가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부분들 중에 하나다. 시나리오 작가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는가 하면 수백억을 거두어들이는 연예인과 기획사와 방송사가 있다. 사실 이런 논리라면 우리 사회 자체가 정의나 공정과는 거리가 먼 불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지만, 아무튼 이런 연예계에서 선행이나 봉사의 미담은 그다지 찾아보기가 힘들다. 암암리에 노예계약이 자행되는 곳이며, 온갖 추문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곳이다. 열에 하나가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부인하기도 힘들다. 돈이 논리가 되는 연예계에서 의리를 지키고 인간적인 면을 중요하게 여기기는 참 힘들다. 인상 좋고 예쁜 연예인들의 이미지들 이면에는 바로 이런 삭막하고 살벌한 자본의 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연예인들의  모습에서, 연예기획사의 모습에서, 방송사와 언론의 모습에서 그런 차가운 모습을 본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2171036461001




이런 척박한 연예계에서 <1박2일> 하차와 관련된 이승기의 공언은 참 훈훈한 소식이었다. 너무나도 인간적이며 신뢰감이 넘친다. 연예인이 인기를 좀 얻게 되면 거만해지기 마련이다. 허영이 가득해 진다. 연예인의 신혼집이 몇 십억이라는 소식이나, 공항 패션에 착용한 억대의 명품 소식은 서민의 속을 뒤집기만 한다. 이런 걸 기사라고 전달하는 언론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보면 결국 한 통속이다.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낮은 곳과는 멀어진다. 자신에게 보다 더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비유하자면, 프로 스포츠에서 유명선수들이 계약금 흥청을 하는 그런 태도가 일반화 되어있다. 야구나 축구장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뛰는 것처럼 연예인들도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차이는 있다. 운동은 이미지가 아니다. 운동은 있는 그대로를 내보여야 한다. 아니 달달 털어서 내보내야 한다. 이와는 달리 가수나 연기자는 자신의 본 모습을 최대한으로 숨기고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는 이미지를 드러내야 한다. 자신의 본 모습을 이미지 뒤에 숨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대나 TV에서의 좋은 이미지와는 달리 잘못된 처신이나 사고로 놀라게 된다. 바로 본 모습과 이미지와의 괴리 때문이다.
 


이승기는 자신의 본 모습과 이미지가 그대로 일치하는 몇 안되는 연예인처럼 여겨진다. 성실하고 겸손하며, 인간적인 이승기는 연예계의 상징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연예계 종사자나 집단이 공히 이승기를 벤치 마킹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놀러와>의 '세시봉콘서트' 의 높은 인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러한 이런 높은 인기의 현상이 단순히 음악적인 트렌드의 변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우정, 연예인으로서의 성실함, 음악에 대한 사랑 같은 보이지 않는 감정적인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카라 사태, 연에인들의 도박, 음주운전, 약물복용 등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TV를 보기는 하지만 그런 혐오와 피로감이 언제나 대중의 감정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아이유의 인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박2일><무한도전><남자의 자격>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유재석, 이승기를 좋아하는 것도 바로 연예계에 대한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이 함 몫을 하기 때문이다. 24세의 어린 청년 이승기에게 대중이 열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다. 그래서 대중은 이승기가 <1박2일>을 떠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엄청난 실망을 했다. 배신이라는 말도 했다. 이승기는 대중의 희망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닌 것이다. 숱한 정치인들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들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사회의 어떤 현상이고 이유는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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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회는 ‘눈물’ 이 그 위력을 시원하게 떨쳤다. 역시 제작진은 노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막장 논란이나 불륜 논란을 막을 수 있는 건 눈물 밖에 없다는 판단은 참 정확한 것 같다. 눈물은 참 식상한데도 우리에게는 통하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해주세요>가 이런 신파로 갈 줄을 누가 알았을까? 태호와 윤서영의 관계와 정임의 독립선언은 불륜이나 막장의 비난을 받긴 했지만 조금은 새롭기도 한 것이었다. 특히 정임의 독립선언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닌 새로운 시도이기도 했다. 이후 정임의 우유부단한 모습은 정임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순옥의 자궁암 발병은 너무 진부한 설정이었다. 왜 애궂은 엄마 오순옥에게 이런 비극을 맞이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암에 걸린 엄마만큼 가슴 절절한 사연이 또 어디 있을까? 엄마 오순옥이 암에 걸리게 하고 눈물을 뿌리게 하는 이 신파의 진부한 에피소드가 참 절묘하긴 했다.

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826/5018222.htm

엄마 오순옥의 극적인 암 발병이 주위의 인간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지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 벌써부터 태호는 빨래를 하고 음식을 한다고 부산을 떤다. 아내의 암 발병 소식을 안 김종대는 슬픈 모습을 하고서 잠시 친정에 간 아내 오순옥을 찾기 위해 시장, 찜질방을 헤매다니기도 한다. 이건 당연한 반응이고 변화이다. 하지만 너무 진부하지 않는가.  엄마의 비극이 남편이나 자식,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이건 우리의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부한 일이 좀 더 신선하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드라마에서까지 일어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진다.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새로운 방식을 원하는 것이다.


남편은 꼭 이렇게 아내의 비극을 통해서 변화해야만 할까? 이런 비극이 아니면 남편이 변화할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태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회학 교수라는 인간이 이제야 엄마의 자리를 이해한단 말인가? 이러한 아내와 엄마를 통한 남편과 아들의 변화는 정말 너무 식상하지 않는가? 또 오순옥의 인내와 희생을 정임의 독립선언과 이혼과 비교하여 생각해 보란 것일가? 아니면 이런 오순옥의 일생을 보면서 정임의 판단이나 행동이 너무 잘된 것이라는 것일까? 정말 헷갈릴 정도다.   



제작진은 분명 가족 드라마라는 한계를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남편 종대의 변화, 태호와 정임의 재결합, 자식과 부모의 소통이라는 변화를 기정 사실화하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고 본다. 그러고 이런한 변화를 '엄마의 비극' 을 통해 일으나게 하는 것도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을 내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식상하다. 진부하다. 너무 신파적이다. 왜 꼭 이런 비극(암)을 통해서만 변화를 가져오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이런 변화라면 차라리 변화 시키지 않으면 어떨까? 그러다면 '시원한 감정' 은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역지사지의 '자기성찰' 같은 것을 일으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니 말이다.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갈등이나 소통의 부재를 해소하는 것은 드라마의 전개상 당연한 것이지만 너무 진부한 '엄마 오순옥의 비극' 을 선택한 것이 너무 식상해서 하는 말이다. 무슨 우리들의 엄마는 그리 큰 한을 맺어야 하는 존재인지 모르겠다. 21세기하고도 10년이 넘어가는 데 엄마의 한 맺힌 모습이라니, 그리고 암발병이라니!  


아무튼 이왕 오순옥이 암에 걸려버렸으니 건강하게 쾌유하기만을 빈다. 엄마의 비극이라는 자장이 정말 깊고 크기는 하겠지만, 정임의 태도가 일순간에 태호에게로 기울어진다거나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는 말았으면 한다. 엄마의 비극을 모든 문제의 열쇠로 삼지는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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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는 너무 답답한 에피소드들로 넘쳐났습니다. 자궁암 초기 진단을 받고서도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미련 곰탱이 같은 오순옥 여사(이하 존칭 생략)나 장래의 시어머니가 될 여자(선우은숙 분)의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또는 병적인 허영)을 알고서도 속을 끓이는 연호는 왜 꼭 이래야 하나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암이란 게 어디 숨겨도 될 병이며, 이지적이고 자의식이 강하던 연호가 순종적어야 하는지 영 못마땅하다더군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답답한 사람은 정임입니다. 그녀의 태도는 도대체 이해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순옥은 시기를 잘 맞추어 가족들에게 말을 할 것이고, 연호도 경훈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이들에 대한 답답한 심정은 어쩌면 일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임에 대한 답답한 마음은 참으로 돌파구가 없습니다.






현재 정임은 태호에 대한 미련으로 꽉 차있습니다. 이혼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것도 정임이 자신의 어릴적부터의 꿈을 이룬 이 시점에서 이혼한 남편 때문에 징징거리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성숙한 성인이라면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고도 징징거리기만 한다면 이혼은 왜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정임은 천사가 되었습니다. 정임이 너무나 맑은 영혼을 가진 착한 여성이라서 이혼 이후에 삶의 가책을 가지고, 또 전 남편 태호에 대해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인간성이나 동정심을 다시 느끼게 된 것일까요.  하지만 이러한 감정이라는 것은 이혼 후라면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만약 이제야 태호의 진심이 느껴지고 이혼이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생각한다면 태호의 태도에 관계없이 자신이 먼저 재결합 의도를 밝히든지 말입니다.



이혼 이후 태호와 정임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정말 정나미가 떨어집니다. 정임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통해 제작진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가 너무나 애매모호합니다. 도대체 제작진은 정임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요? 제작진이 이혼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고, 소통의 부재에서 선택한 성급하고 무리한 이혼에 대한 경고로 보아줄 것을 희망한다면 이러한 의도는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이미 시청자들은 정임이 얼마나 신중하게 별거를 생각하고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꿈과 신념조차도 없는 허수아비 같은 정임으로 만들어 놓고 있으니 도대체 이걸 어떻게 수용하라는 것인가요.




사회적인 제도로서의 이혼도 그것 나름대로 정당성과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정임이 이혼을 선택했기에 가수가 되려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혼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사랑하고 결혼한 부부라면 이혼은 피해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태호와 정임의 이혼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정당성을 갖는다고 판단합니다. 태호는 윤서영과의 자유를 희망했고 아내인 정임을 무시했습니다. 살아가면서 정이 붙고 현명해지는 것이라고 주장만 한다면 이 세상에 이혼은 무용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혼이 안타깝고 성급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로서는 참을 수 없는 사정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임이 다시 태호에게 집착하는 것은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정임을 태호로부터 자유롭게 놓아주면 좋겠습니다. 태호가 와서 사정사정을 하고 진심을 제대로 내보이면 모를까 말입니다. 괜스레 정임이 태호 때문에 징징거리는 것은 정말 보기가 너무 민망합니다. 제발 다시 한 번 부탁하건데 정임을 좀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도록 내버려 주면 좋겠습니다.


*이상하게 계속해서 예약발행이 되지 않네요. 왜 이런 지 모르겠네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아시고 계시면 좀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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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결혼해주세요>는 제목이 왜 ‘결혼해주세요’ 일까? 참 생뚱맞은 질문이지만 단지 결혼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이런 제목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물론 드라마의 초기에 강호와 다해의 결혼을 이 드라마의 제목으로 삼은 근거로 이해할 수 있지만 어딘지 부족한감이 있다. 강호와 다해 이후로 한경훈과 김연호 커플을 제외하고는 ‘결혼해주세요’ 라는 대사가 나온 적이 없다.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될 여지가 있는 커플은 한경훈과 김연호 커플, 송인표와 김종남 커플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송인표와 김종남 커플은 드라마상의 진행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짐작이라는 편이 맞을 정도로 분명하지는 않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김태호와 김정임의 이혼은 결혼과는 상충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니 ‘결혼해주세요‘ 는 어딘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이미지출처:KBS드라마 캡처


이혼과 그 이혼을 둘러싼 갈등이 메인스트림인 상황에서 '결혼해주세요' 라는 제목은 좀 어색하지 않는가?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제목의 불확정성과 다의성, 애매성, 집중적이 아니라 확산적인 성격, 명시적이 아닌 암시적인 성격등을 고려한다고 해도 '결혼해주세요' 는 좀 어울리지 않지 않는가.


그런데 조금만 시각을 바꾸어, 김태호와 남정임의 재결합을 배제하면서 새로운 커플들의 등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둔다면 ‘결혼해주세요‘ 라는 말은 적의한 표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새로운 커플의 등장이란 바로 최현욱과 남정임, 김태호와 윤서영 커플이다. 놀랄만한, 더 나아가 황당한 주장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혼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스토리가 전개되는 상황에 '결혼해주세요' 라는 제목을 달기는 이상하지 않는가? 이에 걸맞는 새로운 커플들이 탄생해야 하는 것이다. 태호와 정임이 재결합을 하더라도 그걸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닌가. 아무튼 가능성을 열어놓고 싶고 그 가능성이 점차 커져가면서 (드마라상의) 현실이 되면 좋겠다.


바로 김태호와 윤서영 커플(의 결혼)과 최현욱과 남정임 커플(의 켤혼)이 바로 그런 가능성이고 현실이다. 이런 추측은 현재 진개되고 있는 드라마의 스토리와는 너무 벗어나는 듯해 무리한 추측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의 가능성은 아직은 어느 경우에고 다 열려있는 것이다. 태호와 서영이 커플로 맺어진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현욱과 남정임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결혼해주세요‘ 란 말은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혼으로 얼룩지고 다시 재결합을 한다면 '결혼해주세요' 란 표현은 적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다소 황당한 추측이 현실이 된다면, 제작진이 태호와 정임의 재결합을 스토리의 소실점으로 삼는다는 오해도 어쩌면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불식될지도 모른다. 이런 반전에 대한 추측도 참 황당한 추측에 지나지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알겠는가? 정임을 향해 현욱의 입에서 ‘결혼해주세요’ 란 말이 튀어나오고, 태호의 입에서 또는 서영의 입에서 ‘결혼해주세요‘ 란 말이 흘러나올지는 누구도 섣불리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실현되지는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이렇게 새로운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관계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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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주세요> 49회는 보기가 고역이었다. 등장인물의 갑작스런 성격 변화 때문이었는데, 정임과 태호의 우유부단하고 엉거주춤한 관계는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윤서영과 최현욱의 변화가 그랬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성격의 변화는 제작진의 인위적인 의도가 너무 엿보이면서 자연스러움을 방해했다. 제작진이 정임과 태호의 재결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 보니(?) 주변의 인물이 재결합을 위한 부차적인 지위로 추락하고만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드라마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리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시청자율만을 의식한 태도가 아닌가 싶은데, 아무리 시청율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싶다. 

이미지출처: KBS 드라마 포토 갤러리



정임과 태호의 재결합을 염두에 두면 이들의 이혼을 무의미한 것으로 돌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정임과 태호에 대해서 동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야만 한다. 이것은 정임과 태호라는 인물 자체의 변화를 통해서도 가능하겠지만 주의 인물들을 추락시킴으로써도 가능한 것이다. 즉, 주인공은 주변 주변인물들과 사건에 의해서도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일를 경우 정임과 태호에게 가장 가까운 인물들이 최현욱과 윤서영인 것이다. 만약 이들을 불합리하고 잘못된 인물로 바꾸어 놓는다면 정임과 태호의 재결합은 순조로울 수 있는 것이다.


윤서영의 경우 49회에서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윤서영은 최소한 품위있는 인물이었다. 비록 태호와의 불륜으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윤서영이라는 인간만으로 놓고 볼 때는 위악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현대적인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발랄한 포스트모던한 여성이었다. 가정이라는 중심점을 해체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농담이지만, 이런 윤서영이 제도와의 불화는 초래는 했지만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윤서영이 처한 위치는 애매하고 경계에 위치해 있었고 그녀의 고독이나 외로움도 이해해줄만 한 것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윤서영이 나쁜 여자로 돌변하고 말았다. 어느 정도의 복수를 예상하기도 했지만 이 정도로 뒤통수를 칠 정도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사실 복수라는 것도 필자의 바람에 지나지 않았고 말이다.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여자였던가 생각해 보니 전혀 아닌데, 단지 제작진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윤서영의 추락이야 말로 정임과 태호의 관계에 동정을 일으키고 재결합의 초석을 까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 보는 모양이다. 이건 참 천박한 방식이다. 윤서영이 심적으로 이렇게 돌변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다. 태호의 엉거주춤한 태도, 자신을 안고 정임아, 정임아 하는 태도에게서 겪는 수모가 그토록 강렬한 것이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전에 윤서영은 태호에게 그렇게 집착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쿨한 여자였다, 언제든지 태호를 떠날 수 있는 이기적이기는 하지만 이지적인 여자였으며 감정이나 충동에 휩슬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김태호 교수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이혼 사실을 언론에 흘려보는 치졸한 짓과는 거리가 먼 여성이었다. 그러나 제작진들을 윤서영의 뒤통수를 내리치면서 이혼 사실을 불도록 강요해 버렸고 윤서영을 나쁜 여자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49회에서 윤서영을 보면서 과장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륜에 집착하는 열정의 화신처럼 보여 영 거북했다. 왜 이렇게 윤서영을 망가뜨리려 하는지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꼭 이런 방법만을 선택해야 했을까? 재결합이 이 드라마의 운명적인 결론이란 말인가?

http://heymannews.mediahey.com/bbs/board.php?bo_table=W27&wr_id=3012



윤서영에 비하면 아직은 망가진 모습은 아니지만 최현욱의 위치도 마찬가지이다. 최현욱은 참 예술적이고 감성적인 인물이었다. 연예기획사 대표지만 경영방식이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분명히 최현욱은 정임을 사랑하고 있다.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태호보다도 더욱 더 애틋하다고 할 수 있다. 정임이 이혼하기 전부터 이런 감정이 있었지만 유부녀라는 사실이 그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이혼하고 나서는 사정이 달라졌고 최현욱은 정임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기 위해 가수로 적극 밀어주고 있다. 정임의 실력이 50이라면 최현욱의 노력도 50%라고 할 수있다.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정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이런 최현욱이라면 정임이 믿고 서로 사랑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최현욱의 사랑이 감추어져 있지만 정말 애틋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현욱을 망가뜨리려고 작정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결국 최현욱도 회사의 대표인지라 회사경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최현욱의 바운더리를 제작진은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다소 속물적인 인간으로 최현욱을 몰아가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느껴진다. 단지 필자의 직감이다.정말 이렇게 되면 내가 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지 실망스럽게 되고 말 것이다. 윤서영을 그렇게 망가뜨렸다면 최현욱을 그렇게 망가뜨리는 것도 불가능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와 더불어 진심이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태호를 포장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해질 것이다. 49회에서 태호가 장인(장용 분)을 찾아가 징징대는 것이 바로 그렇다. 제작진은 태호를 영구로 몰아가면서 도시적인 이미지를 탈피시키면서 원시적인 인간으로 몰아가지 않을가 싶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제작진이 태호를 정임에게 자신의 진심을 내보이지도 못하는 순순한 남자, 우유부단하고 주저하는 남자로 변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에휴~~ 윤서영과 만나면서 태호의 갈팡질팡,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긴 했지만 저임에게는 대체로 단호한 모습을 보였고 진심이 그랬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김태호 사회학교수를 영구로 만들어 동정을 유발시킨다면 이게 무슨 코메디란 말인가?


이전에 필자는 다른 포스트에서 결말에 대해 나름대로 개인적인 의견을 개진한 바가 있다. 꼭 그래야만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드라마가 인물들에게 의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괜히 잘 나아가는 인물들을 이상하게 만드는 누는 범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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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회, 48회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도대체 이 드라마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실망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혼은 진심을 보게 한다‘ 는 교훈을 전해주기라도 하는 듯이 시종일관 정임으로 갈등하는 태호와 태호로 갈등하는 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당혹스러울 뿐입니다. 이혼을 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갈등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혼 이후에 시종일관 보여주는 이들의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면 도대체 이혼은 왜 했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이렇게 갈등하려면 이혼 자체를 말았어야 하는 것이구요.



이미지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6220


일단 이혼을 했다면 이혼으로 인한 일시적인 당혹스러움이나 갈등을 보여주고 난 뒤 조금씩 덤덤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적어도 이혼이라는 것을 잘못된 선택이라는 일방적인 시각만을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혼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은 그 효용성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혼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도 존재하구요,


시청자들은 정임이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의 별거기간을 거쳐서 신중하게 이혼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임은 보란듯이 가수가 되었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수라는 명성이나 돈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구요. 이것은 이혼이라는 신중한 결정과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혼은 태호와 정임 부부에게는 아픈 상처이지만 동시에 자유로 통하는 문이기도 했습니다. 이혼은 고통스런 문이지만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유로운 문인 것입니다. 정임이 가수가 된 것이나 태호가 모순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삶을 깨는 것도 바로 이혼을 통해서 인 것입니다.


따라서 필자가 이 이혼에서 기대한 것은 정임과 태호의 변화였습니다. 특히 태호의 변화였습니다. 이혼한 정임이 가수가 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는 삶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정임의 재능을 무시했는지, 자유롭운 영혼을 구속했는지, 꿈을 속박했는지를 진심으로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아내인 정임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행복을 바라는 그런 진지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태호의 변화야 말로 이혼이 갖는 중요한 의미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혼 이후에 태호는 완전히 망가지면서 찌질해져가고만 있습니다. 그의 속마음이 어떻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윤서영과의 관계에도 변화를 보여주기를 바랬습니다. 그가 원하던 이상적인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들의 축에 진지함이 있어야함은 물론이구요. 그런데 제작진은 태호를 완전히 망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진지함을 기대할 수 없는 위인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필자는 이런 태호를 영구에 비유(결혼해 주세요, 영구가 되어버린 김태호 교수?) 하기도 했구요.


48회를 보면서 스토리가 뻔해지겠구나 하는 실망스러움을 느꼈습니다.  개과천선한 태호가 정임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겠구나 하고 말이죠. 이게 태호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겠구요. 태호와 정임의 재결합으로 가는 정지작업으로 태호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겠지요. 정임이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태호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되면 정말 ‘이혼을 하고 나니 상대의 진심이 보인다’ 는 식의 교훈과 그러니 이혼은 하지말자거나 가급적 피하자는 권고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스토리는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가야 하는데 제작진이 너무 일방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혼이란 것이 일시적인 소통의 부재나 잘못된 선택일 뿐이며 진심은 다르다는 식이라면 이건 참으로 한심한 메시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도대체 이혼은 왜 한 것인지요. 차라리 이혼 이전에 힘들지만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낫지 않았는가 말이지요. 사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태호와 정임이 티격태격 삐그덕거려도 이혼을 하리라는 상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혼을 하고 말더군요. 그러나 이 이혼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혼 이후의 인물들, 특히 태호의 망가지는 모습은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결혼해주세요> 주말 가족드라마라는 이유로 이혼까지도 부질없는 짓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네요. 가족드라마에 이혼이 맞지 않다면 '이혼' 이란 말 자체를 꺼내지 말았어야죠. 그렇지 않나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실망스럽습니다. 이혼이란 문제는 태호와 정임의 특수한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부들의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혼이란 제도를 이렇게 왜곡해 버리면 도대체 현실적인 부부간의 갈등 해결은 부부의 테두리 내에서만 해결하라는 그런 의미인가요? 정말 태호와 정임의 모습 헷갈리게 하네요! 이혼을 하라는 말인지, 하지 말라는 말인지......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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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회, 48회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도대체 이 드라마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실망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혼은 진심을 보게 한다‘ 는 교훈을 전해주기라도 하는 듯이 시종일관 정임으로 갈등하는 태호와 태호로 갈등하는 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당혹스러울 뿐입니다. 이혼을 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갈등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혼 이후에 시종일관 보여주는 이들의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면 도대체 이혼은 왜 했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이렇게 갈등하려면 이혼 자체를 말았어야 하는 것이구요.


이미지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6220


일단 이혼을 했다면 이혼으로 인한 일시적인 당혹스러움이나 갈등을 보여주고 난 뒤 조금씩 덤덤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적어도 이혼이라는 것을 잘못된 선택이라는 일방적인 시각만을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혼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은 그 효용성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시청자들은 정임이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의 별거기간을 거쳐서 신중하게 이혼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임은 보란듯이 가수가 되었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수라는 명성이나 돈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구요. 이것은 이혼이라는 신중한 결정과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혼은 태호와 정임 부부에게는 아픈 상처이지만 동시에 자유로 통하는 문이기도 했습니다. 이혼은 고통스런 문이지만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유로운 문인 것입니다. 정임이 가수가 된 것이나 태호가 모순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삶을 깨는 것도 바로 이혼을 통해서 인 것입니다.


따라서 필자가 이 이혼에서 기대한 것은 정임과 태호의 변화였습니다. 특히 태호의 변화였습니다. 이혼한 정임이 가수가 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는 삶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정임의 재능을 무시했는지, 자유롭운 영혼을 구속했는지, 꿈을 속박했는지를 진심으로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아내인 정임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행복을 바라는 그런 진지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태호의 변화야 말로 이혼이 갖는 중요한 의미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혼 이후에 태호는 완전히 망가지면서 찌질해져가고만 있습니다. 그의 속마음이 어떻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윤서영과의 관계에도 변화를 보여주기를 바랬습니다. 그가 원하던 이상적인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들의 축에 진지함이 있어야함은 물론이구요. 그런데 제작진은 태호를 완전히 망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진지함을 기대할 수 없는 위인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필자는 이런 태호를 영구에 비유(결혼해 주세요, 영구가 되어버린 김태호 교수?) 하기도 했구요.


48회를 보면서 스토리가 뻔해지겠구나 하는 실망스러움을 느꼈습니다.  개과천선한 태호가 정임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겠구나 하고 말이죠. 이게 태호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겠구요. 태호와 정임의 재결합으로 가는 정지작업으로 태호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겠지요. 정임이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태호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되면 정말 ‘이혼을 하고 나니 상대의 진심이 보인다’ 는 식의 교훈과 그러니 이혼은 하지말자거나 가급적 피하자는 권고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스토리는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가야 하는데 제작진이 너무 일방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혼이란 것이 일시적인 소통의 부재나 잘못된 선택일 뿐이며 진심은 다르다는 식이라면 이건 참으로 한심한 메시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도대체 이혼은 왜 한 것인지요. 차라리 이혼 이전에 힘들지만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낫지 않았는가 말이지요. 사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태호와 정임이 티격태격 삐그덕거려도 이혼을 하리라는 상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혼을 하고 말더군요. 그러나 이 이혼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혼 이후의 인물들, 특히 태호의 망가지는 모습은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결혼해주세요> 주말 가족드라마라는 이유로 이혼까지도 부질없는 짓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네요. 가족드라마에 이혼이 맞지 않다면 '이혼' 이란 말 자체를 꺼내지 말았어야죠. 그렇지 않나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실망스럽습니다. 이혼이란 문제는 태호와 정임의 특수한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부들의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혼이란 제도를 이렇게 왜곡해 버리면 도대체 현실적인 부부간의 갈등 해결은 부부의 테두리 내에서만 해결하라는 그런 의미인가요? 정말 종멀 태호와 정임의 모습 헷갈리게 하네요! 이혼을 하라는 말인지, 하지 말라는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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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주세요> 46회는 정말 보기 민망할 정도로 김태호가 망가졌다. 등산하는 정임과 현욱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멧돼지로 오해를 받고 돌멩이를 자초하기도 하면서, 마침내는 정임에게 들켜 도망가다 넘어져 비탈에서 굴러 부상을 입고 현욱의 등에 업혀 응급실로 가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김태호 교수님의 행동은 너무나도 유치찬란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너무 눈이 부신 나머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김태호에게 이렇게 눈을 가리고 나니 윤서영이 등장한다. 이 두분 참 번갈아가면서 말썽이다.


이미지출처 KBS 드라마 포토갤러리



태호와 정임이 이혼하고 난 후 정임은 내심 태호와의 관계에 대해 잔뜩 기대감을 가졌을 것이다. 이제는 불륜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더 이상 유부남이 아닌 태호와의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둘 만의 로맨틱한 사랑을 상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근데 이게 웬걸! 이혼을 하고 난 태호는 서영보다는 정임에게로 마음이 더 가고 있는 듯 하니 말이다. 센스있는 서영이 이걸 포착하지 못할까.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다. 아니 머리 속 분노가 비등점에 다다라 두껑이 열릴 기경일 것이다. 그렇게도 좋하고 따르던 태호가 너무나도 사내답지 않은 남자라니!


이러다보니 졸지에 서영은 태호와의 로맨틱한 사랑의 대상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될 지경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서영이 할 수 있는 대처는 어떤 것일까? 서영은 그다지 악한 인물은 아니지만 악에 받쳤음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정임과 태호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다. 정임으로부터 태호를 떼놓아야 자신의 입지를 어느 정도 확보할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태호를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물론 버리면서 복수하는 것도 포함된다. 사실 태호의 처신을 보면 서영으로서는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전개상 윤서영이 이 두가지의 행동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제작진 때문이다. 제작진의 의도는 태호가 혹독한 시련을 거친 후에 정임과 재결합을 시키려고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윤서영이 정임과 태호의 사이를 이간질 하는 것도, 또한 태호에게 복수하는 것도 물건너 가고 만다. 물론 이러한 추측이 틀릴 수도 있지는 말이다. 아무튼...... 


이미지출처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5102&idxno=351951


이도 저도 불가능하다면 서영은 아주 쿨하게 태호 곁을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참 안타깝다. 태호가 이혼하기 전에는 자신이 한껏 유혹하며 바람을 넣어 태호를 흔들리게 했고, 또한 태호의 이혼까지 초래하면서 이혼 후의 어떤 달콤한 상황을 기대했겠지만 오히려 이혼 이후에 태호가 정임에게 마음이 기우는 것을 보면서 태호의 처신에 치가 떨릴 것이다. 태호에 대한 서영의 모든 환상이 깨어질 것이다.


필자는 태호와 정임이 재결합을 하게 되더라도, 그 이전에는 태호가 정임과 서영 양자로부터 철저하게 복수를 당하면 좋겠다. 산에서 굴러 떨어진 것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참 통쾌하기는 했다. 이렇듯 정임을 괴롭히고 또 서영을 괴롭히는 태호가 이 여자로부터 엄청난 수모를 한 번 당해보기를 바란다. 그래야 정신 좀 차리지 않을까 싶다. 우유부단하고 양다리 걸치는 사내 같지도 않은 대학교수 김태호에게 정임과 서영이 신나게 복수를 하면 좋겠다. 태호는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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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주세요> 45회는 실망스러운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그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라면 무슨 4자 회담 같은 정임, 태호, 현욱, 서영의 조우와 카페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이는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꼭 이렇게 유치하게 네 사람을 만나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좀 더 분명한 것을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도 드라마상으로도 별 어울리는 장면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실망스러운 장면들도 유명하신 사회학 교수 김태호의 좌충우돌 엽기적인 행동들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초기에 코믹한 장면들이 떠오를 정도인데 망가지는 김태호의 모습이 통괘한 복수나 역지사지의 심정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의도이기는 하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김태호를 너무 희화화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게 보이지는 않는다.


적어도 정임과 태호의 관계는 사회적인 의미의 관점에서도 좀 심도있고 심각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부로서의 정임과 태호의 관계, 태호와 서영의 관계, 이혼과 이혼 이후의 삶 등은 그리 쉬운 주제가 아니다. 사실 참 무거운 주제이다. 특히 정임과 태호의 이혼 이후의 삶은 상당히 힘든 시간이다. 더욱이 이러한 관계를 개인사가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고,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면 여기에는 좀 더 심각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특히 태호의 입장에 있어서 더욱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정임은 시종일관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게 하면서 태호는 희화된 인물이 되고만 있으니 이건 제작진의 보수적인 성향과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이런 괜한 의심을 해보기도 한다.

 



45회에서 김태호는 너무나도 망가졌다. 아마도 태호의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정지작업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도대체 이런 작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복수와 대학교수 태호가 어벙해지는 모습은 잘 들어맞는 지도 모른다. 태호가 그럴 때 마다 통쾌할지도 모른다. 태호의 변화를 점점 심각하고 의미있게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정임이 태호와 재결합을 할 것인지의 여부, 태호와 서영의 관계, 정임과 현욱의 관계 등이 그려지겠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인간의 관계란 어떤 정형이 없는 것이고 보면 제작진이 그려나갈 그들의 관계가 무척이나 궁금한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태호를 어벙벙하게만 만들고 있으니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물론 정임에 대한 태호의 미련이 아직도 커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태호가 지켜야 할 정도의 선조차도 깨고 있는 느낌이다.


정임만큼이라도 태호도 심각한 자기 성찰에 빠트리면 좋겠다. 정임이 별거를 선언했던 것처럼, 태호에게도 그런 진지한 모습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시청자들이 바라는 태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재결합을 하지 않아도, 서영과의 관계에 파국을 맞더라도, 현욱에게 혼란스런 감정을 갖게 되더라도, 무엇보다도 정임에게 다시 사랑한다고 말을 결코 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진지한 태호의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정임이 가수가 된 이후에 어벙벙 완전히 바보처럼 되어버린 태호에게서 감정적인 배설이나 통괘함 외에 기대할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앞에서 언급했지만 태호의 근본적이고 극적인 변화를 선보이기 위한 정지작업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과장되게 말해서 시청자들에게 하는 서비스인지는 모르겠지만, 망가지는 태호의 모습에서 정임의 진지함이 자꾸만 헛도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지금 이대로라면 비장한 각오로 정임이 왜 독립선언을 하고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어벙벙해진 태호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래야 정임의 진지한 선택들에 그나마 진지한 대응이 되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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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결혼해주세요>를 보다보면 아무리 드라마지만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뭐 사소한 것이라 그냥 넘겨도 스토리 전개상 아무런 문제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가족드라마라는 교육적인 측면이나 드라마의 리얼리티의 문제를 고려해 본다면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옥외 티쯤 되면 뭐 그냥 지나쳐버리면 되지만, 스크린상에 일상화된 장면이라 옥의 티라고도 할 수 없네요. 이 처럼 눈에 거슬리는 몇가지 점들을 간단하게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81907502415703



1.김종대는 안사돈을 인선이라고 부른다? 

김종대는 안사돈인 송인선을 인선이라고 부릅니다. 젊은 시절 그들의 관계로 보아서는 김종대가 그렇게 부르는 것이 어색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돈 관계인데 아내 오순옥 앞에서  인선이, 인선이 하고 부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득이나 과거 그들의 관계로 오순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종대가 인선이, 인선이 라고 부르는 것은  아내 오순옥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경훈과 연호에게 초등학교 교정은 데이트 장소? 

필자가 너무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사고를 가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경훈과 연호가 학교 교정에서 만나는 것도 탐탁치가 못합니다. 타 교사들과 아이들의 이목도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진실한 사랑이라고 해도 남녀가 학교 교정에서 자주 만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KBS드라마 포토 갤러리



3. 송인선 내과는 유령 병원이다?

도대체 송인선 내과는 병원이 맞는 걸까요? 필자는 드라마의 첫 회부터 지금까지 환자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필자가 모르는 사이에 몇 명의 환자들이 등장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방송 시간 이외의 시간에 환자들이 몰리는지도 모르구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방송 시간대에 환자 한사람 없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최근의 장면들만 보더라도 송인선 내과에는 환자가 없습니다. 환자보다 간호사가 더 많은 병원, 참 막막합니다. 이런 걸 유령 병원이라고 할까요? 의사 1명에 간호사는 2명이나 있는데 환자는 없다, 이거 정말 무서울 정도입니다.


4. 교수 김태호 연구와 강의는 하는지?

사회학과 김태호 교수를 보면 그가 정말 교수가 맞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방송 출연을 하고 윤서영을 만나면서도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모습이나 강의하는 모습 한 번 보지 못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 잠깐 강의를 하는 모습을 본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강의하는 모습은 못보았습니다. 외도로 방송출연을 하고, 정임과의 이혼에 얽힌 시련을 겪으며, 또한 자유롭게 윤서영과의 달콤한 로맨스를 즐기는 김태호 교수는 정말 퇴출 대상 교수가 될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교수라는 신분에 맞게 리얼리티를 제공해 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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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가 거듭될수록 정임과 태호의 재결합 여부에 대한 궁금증만큼이나 정임과 현욱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이러다 보니 최근 드라마의 엔딩컷이 주로 이 세 사람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남녀의 삼각관계는 강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여러 주제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이것은 바로 이들의 관계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반영하는 동시에 또한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최현욱의 등장으로 이러한 관계의 갈등을 예견하고는 있었지만 설마 착한 정임이 현욱과 무슨 관계가 있을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태호와의 이혼 이후의 관계라  이 관계가 불륜도 아니고 개연성도 충분히 가지고 있기에 관계 진척의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호와 서영의 불륜 관계와는 달리 정임과 현욱의 관계는 불륜 관계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전남편 태호와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서 너무하는 게 아니는 냐는 식은 잘못된 것이기도 하구요. 이미 정임이 태호와 이혼을 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욱은 정임에게 이성적인 감정으로 접근했다기보다는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한 동정이 크게 작용한 면이 강합니다. 이성적인 감정이 작용도 했겠지요.


이와 관련해서 서영과 현욱을 비교하게 되는데요, 서영이 태호와 정임 부부의 이혼을 초래했다면 현욱은 이혼한 정임에게 힘과 용기를 불러 넣어주었습니다. 현욱은 이혼으로 심적 갈등을 겪던 정임에게는 큰 힘이 되어 준 긍정적인 존재입니다. 태호와 윤서영으로 인해서 정임이 얼마나 괴로웠습니까? 최현욱이 정임의 이러한 괴로운 시간들을 극복하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시청자라면 최현욱과 정임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보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필자 또한 그렇구요. 



이러한 존재 의미를 평가해 보더라도 현욱과 정임의 관계는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태호로부터 무시당해온 시간들을 현욱으로부터 보상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구요.무엇보다도 가수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연예계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현욱이 적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최현욱은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답지 않게 정말이지 인간적으로 신뢰가 가고 착실한 사람입니다. 어찌보면 현욱과 정임의 관계야 말로 잘 어울리는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92007091247337


현욱과는 대조적으로 태호는 연예계에 대해 대단히 냉소적입니다. 정임이 가수가 되는 것에 대해 태호가 걱정해 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연예계의 잘못된 현실을 많이 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43회에서 보았듯이 정임이 입고 있는 속살 드러난 드레스와 짙은 화장에 대해서도 이 사람이 과연 사회학과 교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보수적인 인식을 드러냅니다. 만약 재결합을 한다고 하더라도 가수 정임은 너무나도 불편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태호의 마음에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가수 정임은 여러 가지 면에서 태호로부터 이러저런 질책이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44회에서 보았듯이 시아버지 종대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대학교수 남편 망신시킨다고 생각할 정도니 말 다한 것이지요. 현실적으로 태호와 재결합을 한다면 이전의 독립선언이나 이혼이 필요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태호와 현욱의 대조적인 모습으로 판단해 볼 때 정임이 이혼한 전남편 태호에게 돌아가는 것보다는 현욱과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내 정임을 무시하던 교수 김태호보다는 정임을 존중해주는 현욱이 더욱 인간적이니까 말입니다. 또한 태호와 서영의 관계가 과연 조강지처를 버리면서까지 추구할만한 이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이미지출처: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9260252351001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101003114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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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회는 가수로 상승하는 정임과 여전히 정임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태호를 그리고 있습니다. 정임도 여전히 태호에게 미련이 남아있는 듯합니다. 참 못마땅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7년 동안이나 부부라는 인연으로 함께 살았으니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정임의 마음도 조금씩 태호와는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정임의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태호의 모습이나 태호에게 미련이 남아있는 듯한 정임의 모습이나 다 이들의 관계 단절을 재촉하기 위한 전조가 아닌가도 싶구요.
 



태호-정임 부부가 7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왔고, 그들의 이혼의 원인이 태호와 윤서영과의 불륜이긴 하지만, 사실상 가장 큰 원인은 소통의 부재였습니다. 물론 소통의 부재에 가장 큰 책임은 태호였습니다. 태호는 이기심, 아내의 존재에 대한 무시, 지나친 자존심 등을 가진 남편이었습니다. 정임이 참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특성들로 똘똘 뭉친 태호의 모습이었구요. 따라서 시청자들은 만약 태호가 전반적으로 자기 성찰을 하면서 진정으로 정임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면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런 관심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추동력이 되고 있구요.


그런데 우려스러운 점은 미지근한 재결합입니다. ‘미지근한 재결합’ 이란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결합‘ 을 의미합니다. 만약 이렇게 정임과 태호가 재결합이 된다면 애당초 정임의 독립선언이나 별거, 특히 이혼이 불필요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고서도 갈등의 적당한 해소가 가능해지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재결합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태호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입니다. 태호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재결합을 하는 것은 ’미지근한 재결합‘ 에 불과한 것입니다.


한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는 짧은 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짧은 시간에 일어날 수는 있지만 상대가 받아들일 만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구요. 이 드라마가 얼마나 긴 시간 폭으로 진행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이 지금의 시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시간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길게 가도 강호-다해 부부가 아이를 낳고, 연호- 경훈의 결혼 후의 모습에서 그리 멀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태호와 정임의 재결합은 그 정도의 시간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입니다. 재결합을 하는 것이 감정적인 만족은 줄지 모르겠지만 드라마의 극적 전개상으로는 재결합은 넌센스처럼 보입니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필자가 이전에 쓴 포스트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이미지캡처:KBS 드라마 포토 갤러리





“42회에서 태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정임의 모습이 나타나는데요, 이거 정말 이래선 안됩니다. 아마도 태호와 재결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한데 가족드라마라고 해서 이런 식의 판에 박힌 듯한 스토리 전개는 시청자들을 너무 식상하게 만들 것입니다.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야 행복해 진다는 것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식상한 방식으로 아물게만 한다면 매력이 떨어집니다. 교수와 가수라는 각기 다른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이구요, 정임이 현욱과 결합하는 것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임의 가수로서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임과 함께 변해가는 태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오픈 결말로 마무리 하는 것도 좋겠구요. 태호와의 관계는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으로 여운 정도만을 남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태호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재결합은 참 위험한 것입니다. 재결합을 한다면 정말 너무 생뚱맞은 것입니다.”


생뚱맞다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를 식상하게 만든다는 말에는 다소 동의를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라는 영화가 있었는데요, 별거 한 남편이 여장을 하고 아내의 집 가정부로 들어와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변해가는 남편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화해의 지점까지 나아가고, 아버지와 아이들이 이해의 폭을 넓혀가면서 다시 가족을 이루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갈만 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은 쉽게 재결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열린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다시 재결합을 했다면 감정적으로는 만족스러웠을 것이지만 그 의미의 울림은 작았을 것입니다.


태호와 정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재결합을 원하는 시청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재결합은 태호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변화를 보려면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늘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속속들이 그런 것들을 다 보는 것도 좋겠지만 재결합의 기대와 함께 오픈 결말로 끝나게 된다면 상상의 여지는 더욱 커지고 의미도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태호와 정임의 문제가 우리 문제로 여겨지기도 할 것이구요. 이렇게 여운을 주는 드라마가 좀 불편하긴 하지만 좋은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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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이 가수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정임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얻고 진실함을 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녀가 첫 방송에서 한 실수를 순수하고 진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즉 방송에서의 정임의 모습과 삶 속에서의 정임의 모습이 표리부동하지 않고 일치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드라마 <결혼해 주세요>의 시청자들인 우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정임의 모습을 보아왔으니까요. 극중의 방송 청취자들도 정임의 진실한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중은 정임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artsnews.co.kr/news/113566 일부 캡처



그런데 정작 정임은 가수의 문턱에서 몸을 사리고 주저하고 있습니다.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당혹해합니다. 새로운 삶의 변화이다 보니 적응 기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적응을 위한 시간을 갖고 나면 가수가 된 자신의 모습을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필자의 판단으로 가수 인순이가 다시 등장하는 것도 참 좋을 듯 합니다. 여전히 자신 없고 주저하는 정임에게 인순이는 큰 용기를 전해 줄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침내 42회의 마무리 부분에서 정임은 TV에 출연하기 위해 피를 토해가면서 맹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TV 방송 출연을 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들어가다 태호와 마주치는 장면이 앤딩컷이 됩니다.


정임에 대한 태호의 태도를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자신을 교수로 만들기 위해 7년동안이나 뒷바라지를 한 정임과는 달리 태호는 가수가 되겠다는 정임을 말리기만 합니다. 자신이 도와주겠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습니다. 정임이 부른 주제곡 영화음악 CD 가 발매되고 인터넷의 이슈가 되고, 언론의 주목 대상이 되고 있는 정임을 보면서도 정임이 가수가되는 것에는 부정적입니다. 이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태도입니다. 정임이 TV 방송 출연을 위해 미장원에서 머리손질과 화장을 하면서 떠올린 지나간 생각들도 바로 이런 태호의 모습이었습니다. 분기탱천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태호는 언제나 부정적인 말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태호에게 언제나 정임이 있어야 할 곳은 집이었습니다. 아내와 며느리라는 자리였습니다. 자신은 교수라는 자리를 마치 당연한 듯이 누리고 있으면서 정임이 가수가 되는데 브레이크만 걸려는 심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윤서영에 대한 태도와는 너무나도 상반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임이 TV방송 출연을 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에측하기가 어렵습니다. 42회에서 정임은 현욱과 함께 자신이 가수가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까지 미행한 태호가 이들의 자리에 합석하게 되고 신경전이 오갑니다. 현욱이 휴대폰 통화를 위해서 잠시 자리를 떤 사이에 정임과 옥신각신하던  태호가 자리를 떱니다. 그리고 태호가 두고간 CD들을 보고 그기에 적힌 태호의 글을 보게 되는 데요, 이에 정임이 태호에 대한 감정이 격해지는 듯 하면서 태호 뒤를 따라가 태호를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거 참, 개인적으로 이건 정임의 오버처럼 보입니다. 왜 제작진은 정임이 이런 오버를 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태호의 진심을 읽었다는 말일까요?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110721045714714



필자의 바램으로 TV 방송 출연을 기점으로 정임이 인순이와 같은 가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수 한 두 사람쯤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필자의 이러한 바램과는 달리 TV방송 출연자리에서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첫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다 실수를 한 것처럼 말입니다. 또 두 번째 방송에서 진실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TV 방송출연에서는 이러한 식의 깜짝  실수나 예상하지 않았던 발언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임이 가수가 되고 노래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TV 방송 출연에서는 무언가 자극적인 것을 보여줄려고 하지 말고 그저 무덤덤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 좋겠습니다.


42회에서 태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정임의 모습이 나타나는데요, 이거 정말 이래선 안됩니다. 아마도 태호와 재결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한데 가족드라마라고 해서 이런 식의 판에 박힌 듯한 스토리 전개는 시청자들을 너무 식상하게 만들 것입니다.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야 행복해 진다는 것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식상한 방식으로 아물게만 한다면 매력이 떨어집니다. 교수와 가수라는 각기 다른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이구요, 정임이 현욱과 결합하는 것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임의 가수로서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임과 함께 변해가는 태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오픈 결말로 마무리 하는 것도 좋겠구요.  태호와의 관계는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으로 여운 정도만을 남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태호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재결합은 참 위험한 것입니다. 재결합을 한다면 정말 너무 생뚱맞은 것입니다.   


이제 정임이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좋은 노래를 부르고 대중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역할 보다도 가수로서의 그녀의 삶이야 말로 가장 의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혼을 예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정임의 자기 찾기를 통해 갈등에 직면한 인간 관계, 특히 부부관계에 대한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던져주는 정임의 자기 찾기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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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회에서 드디어 정임이 가수로서 빛을 발합니다. 우선 이것에 대해서는 잠깐 사각(뱀의 뿔)을 달아야겠습니다. 청소부 아줌마 정임이 가수가 되는 것은 신데렐라가 공주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좋게 말하면 동화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솔직히 현실과의 비교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까 말입니다. 이것을 드라마의 비현실성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때로 현실과의 끈을 놓쳐버리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보는 것이 뭐 그다지 나쁜 것일까요? 현실도피적이고 현실 모순에 대한 무감각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십년의 인생 살이에서 한 시간 정도 정신 줄 좀 놓았기로서니 그게 정말 쓸데없는 짓이고 무의미한 짓일까요? 그렇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를 통해 즐거움을 찾는 것은 정말 삶의 위안과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정임에게 가수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녀가 태호와의 갈등으로 독립선언을 하고 별거를 하면서부터 가수의 의미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가수되기는 정임의 즉흥적이고 변덕스러운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어리시절부터 그녀가 꿈꾸어온 꿈이고 희망이었습니다. 정임이 어린 시절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까지 포함하는 것인 지도 모르구요.


그러니 정임의 가수되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졌지만, 사실상 아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연예기획사에서 만들어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아이돌그룹과는 다릅니다. 비틀즈와 몽키즈의 차이라고 할까요? 동물원과 소녀시대의 차이라고 할까요? 영국 출신의 비틀즈가 엄청나게 인기를 누리자 미국에서 그 대항마로 만든 그룹이 몽키즈였습니다. 몽키즈도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비틀즈 비클즈의 명성에 묻히고 맙니다. 정임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기획사 사장인 최현욱이 너무 자선사업적인 자세로 정임에게 기회를 준 것 같고, 개인적인 호불호의 감정이 너무 개입되는 것이 기획사 사장의 실제적인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면이 있긴 했습니다. 솔직히 정임에 대한 기획실장의 무시하는 태도가 솔직히 그런 기업의 생리에 맞겠죠. 아무튼 앞서 말했지만 현실과는 비교를 자제하구요.


아무튼 정임이 가수로서 인정을 받는 것은 비주얼한 면이 아닙니다. 그녀의 마음입니다. 정임은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고 마음으로 다가갔습니다. 대중의 마음에 희망을 스며들게 한 것입니다. 극중 최현욱 회현욱의 말처럼 아줌마 정임은 노래를 한 것이 아니라 희망을 노래한 것입니다. 대중에게 꿈에 대한 희망, 좀 세속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공에 대한 희망을 노래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임이 첫 방송 출연에서 실수를 하고 절망하면서도 두번째 방송에서 그 실수를 그저 아름답게 꾸미기에 급급하지 않고 진심을 대중에게 내 보인 것이야 말로 대중의 이해를 받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대중은 연예인들이 다소 의뭉스럽고 두 얼굴, 아니 가면을 쓰고 있다는 의심을 쉽게 떨쳐내지 못합니다. 대중앞의 이미지와 본래의 이미지가 일치한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정임은 이런 편견을 깬 것입니다. 이러한 정임의 태도는 수많은 연예인들과 연예지망생들에게 시사점을 제공해 줍니다.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진심만은 마음 깊이 갖고 있자는 것입니다. 정임이 노래 연습을 하는 과정에 가수 인순이가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제 정임은 우리에게 가수 정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제는 그 정임을 보는 주의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특히 태호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서영의 마음입니다. 또한 시아버지 김종대의 마음입니다. 아니 정임이 가수 되기를 비웃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들의 태도, 그리고 우리의 태도를 확인해 본다는 것은 일상성에 파묻힌 우리의 인식에 소중한 의미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 합니다. 정임을 보는 우리의 인식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겠지요. 아무튼 정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정임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 특히 태호와 김종대가 어떤 모습을 취할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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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스타 박용하씨가 지난 6월 30일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참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고 박용하씨의 명복을 빕니다. 고 박용하씨는 국내보다는 아시아 국가들에서 한류 스타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열결식이 치러진 경기 성남 영생원에는 그를 사랑하는 일본 팬들이 대거 참석을 하였습니다. 또한 일본 전역에 고인의 분향소가 마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고 박용하씨의 한류 스타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살을 선택하였는다는 것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자살을 선택해야 할 만큼 어떤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죽음은 선택하지는 결코 말았어야 했는습니다. 너무나 슬픕니다. 아무리 큰 실패와 실수가 있었다고 해도 다시 일어 설 희망마저 포기한 것이라 너무 안타깝습니다.


고 박용하씨가 한류 스타였던 터라 국내외적으로 언론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습니다. 고 박용하씨의 인기를 실감하게 됩니다.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호주, 뉴질랜드에 까지 고 박용하씨의 자살 소식이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포스트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의 야후 사이트에 실린 고 박용하씨의 자살을 보도한 캡처화면을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어려나라들의 사이트를 살펴보았다면 더 많은 나라의 보도를 소개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를 못해 실망스럽니다) 






일본 곳곳에 고 박용하씨의 분향소가 마련되어 많은 팬들이 분향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야후 화면입니다



말레이지아의 야후 화면입니다


 
싱가폴의 야후 화면입니다



날아라뽀님(http://flypo.tistory.com/)의 블로그에서 재켑처한 일본의 야후화면입니다. 고 박용하씨의 영정을 들고 장지로 떠나는 소지섭씨의 모습이 보입니다.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렇게 많은 인기를 누리던 고 박용하씨의 죽음은 그들을 사랑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팬들에게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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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26일은 참 의미있는 날이다. 남아공월드컵 우루과이와의 16강전 경기에서 비록 패배는 했지만 대한민국 축구의 가능성을 확인한 날이기 때문이다. 승패와 관계없이 우리나라 축구가 세계적인 수준임을 확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르헨티나에게 1-4라는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골 스코어로 보아서는 아직도 세계의 벽이 높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 골들은 단지 실력의 차이에서라기 보다는 심리적인 문제가 컸다고 본다. 월드컵 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고작 박지성, 이용표가 다 였으니 긴장을 많이 했을 것이고 그래서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긴장이 풀리면서 나이지리아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우루과이 전에서는 수준 높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의 축구 종주국이 아니라 당당히 세계적인 팀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대한민국 선수들 모두의 개인적인 역량도 세계적인 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제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 어느 나라들도 대한민국 축구 수준을 무시하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앞으로 4년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8강, 4강 진출도 가능하리라 본다. 아니 우승도 가능하리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오늘 졌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 축구는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시작한다면  세계 정상에 우뚝 설 날도 머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 트로피가 남미와 유럽으로 왔다갔다 해 왔지만 이제는 아시아 국가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의 것이 되라고 믿는다. 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오늘의 경기를 보면서 분명히 느낀 사실이다.



2010년 16강 진출과 함께 당초의 목표도 이루었다. 결고 실패가 아니다. 기죽을 필요도 없다. 세계 수준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허정무 감독, 이하 23명의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 선수들 너무 잘했다. 아무런 뒷말도 필요없고 원망도 필요없다. 어떤 비난도 필요없다. 단지 우리가 더 나은 팀이 되기 위해서 연구하고 노력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본다. 아시아의 축구 강국이 아니라 세계의 축구 강국으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대한민국 선수들 오늘 너무 잘 해 주었다. 월드컵 우승이 그저 꿈만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의 실력을 함게 견인하고 있다.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당신들 너무 너무 잘했다. 당신들의 시합을 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 선수들에게 다시 한 번 더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다음 화면 갭처(http://search.daum.net/search?w=tot&t__nil_searchbox=btn&q=%B4%EB%C7%D1%B9%CE%B1%B9%20%BF%F9%B5%E5%C4%C5%20%C6%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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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가 14회를 맞았습니다. 2009년 10월 8일~10월 16일까지 진행됩니다. 연륜이 늘어갈 수록 양과 질에 있어서 더욱 성장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려 70개 국가에서 355편의 영화들이 소개됩니다. 이에 더해 월드프리미어와 international 프리미어를 합쳐 144편이 상연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납니다.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영화산업이 함께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경제적인 이익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꿈과 감동과 사랑의 공유, 그리고 소통의 한마당이 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부산 국제영화가 바로 이렇게 어우리지는 한마당으로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잇는 가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곁에 부산국제영화제가 함께 한다는 것이 즐겁고 기쁩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행사를 찍은 것입니다. 비록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열기와 분위기를 함게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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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몇가지 것들


여행에 대한 글을 쓰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여행의 경험이 일천하다. 몇 나라가 고작이다. 그것도 남아있는 흔적들이 거의 없다. 그만큼 내게 여행은 그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행기를 써 본다거나, 여행의 경험들을 나의 삶에 대입해 본다거나, 일정에 따라 사진을 찍는 다던가 하는 것은 그다지 흥미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여행을 가서 노는 것에, 먹는 것에, 보는 것이 다였다. 여행을 가기전의 설레임과 다녀온 후의 추억과 아쉬움이 남은 것의 9.9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멍청했던지, 생각이 없었던지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서점에 가보면 많은 여행 관련 책자들이 눈에 띤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 대해 생각하고, 여행에 대한 독특한 안목을 가지고,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많은 사진들이 책속에 존재하고, 수많은 정보들이 책속에 있다. 여행에 대해 반추하지 못한 죄다.


 

재미를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www.flickr.com


그들은 얼마나 나와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가? 재미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여행을 단념할 것이다. 그들을 매혹시킬 만한 재미가 있기에 그들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도 재미와 유희로만 넘쳐나면 얼마나 좋을까? 삶은 왜 오락 게임을 하듯이 재미있지 않을까? 삶은 왜 모순 투성이일까? 때로 잠간이나마 천국을 경험하는 것은 여행을 통해서일까, 아니면 여행 그 자체일까? 여행은 마치 어두운 틈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삶의 틈을 헤집고 나와 꽃 향내를 맡을 수 있도록 한다. 소풍가는 아이의 뛰는 가슴 마냥 우리의 마음도 설렌다.

감동을 생각한다

 www.flickr.com

성자처럼 인도로 떠난 여행자가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사색의 흔적을 따라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깊은 의미를 담는다. 삶의 깊이를, 이간의 본질을, 구원이라는 것을......그 깊은 흔적의 골을 추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 속에 그 의미들을 투영한다. 박물관에 며칠을 머물며 역사의 자취를 영혼에 담으려는 여행자가 있다. 그것 또한 삶에 대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예술과 미를 통한 감동의 여정이며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한 여정이다.

사랑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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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연인이 함께 떠나는 여행의 오솔길,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그래서 허니문이라는 게 있나보다. 아니 젊은 연인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육신은 뇌쇠했으나 정신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황혼 여행도 있다. 죽음이 그리 멀리 남아있지 않는 그들에게 이 여정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그들에게 그 시간은 얼마나 보석처럼 아름다울 것인가? 사랑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사랑은 함께 만드는 것이다. 나 하나의 사랑도, 너 하나의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겠지만, 여행에서는 사람이면 더욱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여행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추억거리들 중에 하나이다.

소통을 생각한다




유럽이나 북미, 그리고 영연방 국가들에는 백인들이 다수이다. 그들과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있다 보면 나의 왜소함을 느낀다. 육체적으로 그들이 조금 우월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걸 부정할 수 없다. 때론 그 덩치들에게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소통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언어의 벽이 있지만 표현하지 않는 속에서도 감정의 교류는 단절되지 않는다. 때론 불친절한 인간들도 있다. 무시하는 인간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은 예외적인 존재들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삶을 접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게 된다. 여행의 의미는 바로 이런 부족함의 한 가운데 버젓이 존재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우리가 표현하지 못하는 사이에......언어를 떠나 그렇게 존재한다. 때론 인종간의 갈등이 왜 생기는지, 왜 미워하고, 전쟁을 하는지 애절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하고 있음을 느낀다. 여행이라는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희망과 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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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희망과 꿈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하늘만 바라보아서도 땅의 진정한 고마움을 모를 수 있다. 굳건히 땅을 밟고 서 있어야 꿈도 꿀 수 있고, 희망도 가질 수 있는 법이다. 반대로, 땅만 바라보며 희망 없는 막다른 길에만 직면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희망과 꿈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불만, 때로는 분노의 소산이다. 그렇게 희망과 꿈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현실이 완전하다면 희망도 꿈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밟고 있는 땅을 생각을 본다. 나는 전적으로 희망적이기만 할 수 있을까? 미래에는 어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여행은 바로 이런 희망과 꿈의 동경이 아닐까?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를 경험하면서 우리도 좀 더 나아 보자는 꿈과 희망을 갖게 되고,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를 경험하면서 그들에게 희망과 꿈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하게 된다. 이 넓은 세계가 올망졸망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된다. 굶주림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프리카의 황량한 폐허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나의 경우는 비록 사진 속에서 이지만) 그들이 희망과 꿈을 놓지 않도록 기도한다.

여행은 우리를 재미있게 하고, 감동을 몰아다 주며, 문화와 삶을 이해하게 하고 언어가 다른 인종간에 소통의 전율을 가져다준다. 여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다른 삶, 다른 문화를 가진 인간들과 감동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또한 여행은 우리 가슴속으로 알게 모르게 세계를 향한 뭉클한 희망과 꿈을 스며들게 한다. 이로서 우리와는 무관하던 존재들이 우리와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여행의 황홀한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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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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