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삼'에 해당되는 글 42건

  1. 2010.07.01 결혼해주세요, 왜 리뷰를 찾아 보기가 어려울까? (16)
  2. 2010.06.07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과 태연희에 주목해야 할 이유? (15)
  3. 2010.06.06 수상한 삼형제, 어영의 불임과 계솔이의 마음!
  4. 2010.05.31 수상한 삼형제, 통쾌한 복수극은 경찰과 검찰의 무능력의 결과? (13)
  5. 2010.05.31 수상한 삼형제, 정말 여성 비하 드라마일까? (39)
  6. 2010.05.25 수상한 삼형제, 태연희의 변신은 유죄? (8)
  7. 2010.05.24 수상한 삼형제, 누가 수삼을 막장이라고 그랬나? (37)
  8. 2010.05.23 수상한 삼형제, 김순경 황혼이혼 vs 주범인 황혼결혼 (4)
  9. 2010.05.17 수삼, 김순경에겐 결국 아내 전과자 밖에 없다? (8)
  10. 2010.05.16 수상한 삼형제, 과연 연희는 좀비가 될까? (10)
  11. 2010.05.10 수상한 삼형제, 현찰과 도우미의 위장이혼 복수 성공할까? (20)
  12. 2010.05.09 수상한 삼형제, 얼굴 마담이 되어 버린 연희? (18)
  13. 2010.05.03 수상한 삼형제, 악녀 태연희가 다시 돌아온 이유? (11)
  14. 2010.05.02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변하지 않는가?
  15. 2010.05.02 수상한 삼형제, 어른들은 왜 다들 바보가 될까? (8)
  16. 2010.04.28 수상한 삼형제, 왜 김순경까지 망가트리나? (14)
  17. 2010.04.26 수상한 삼형제, 막장이 아니라 파장? (9)
  18. 2010.04.19 수상한 삼형제, 시어머니 전과자가 진짜 문제인 이유? (12)
  19. 2010.04.19 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5)
  20. 2010.04.18 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4)
  21. 2010.04.18 수상한 삼형제, 김순경을 보며 세상을 원망하게 되는 이유? (5)
  22. 2010.04.15 수삼, 하행선이 떠난 이후 엄청난의 숙제는?
  23. 2010.04.13 수삼, 태연희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8)
  24. 2010.04.12 수삼, 하행선은 '상행선' 을 탔다? (6)
  25. 2010.04.11 수삼, 맏며느리가 끓인 아침라면 문제가 뭐길래? (56)
  26. 2010.04.08 수삼, 김건강에게는 모유 수유가 꼭 필요하다? (4)
  27. 2010.04.07 수상한 삼형제, 건강이 다시 실망스러워진 이유? (4)
  28. 2010.04.05 수상한 삼형제, 연희에게 밀리는 악한 하행선의 치욕? (14)
  29. 2010.04.04 수상한 삼형제, 연희는 왜 악녀가 되었나? (9)
  30. 2010.03.31 수상한 삼형제, 따귀 맞은 연희 가만히 있을까? (29)




다음 뷰에는 다양한 드라마 리뷰들이 등장한다.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오늘 6월 29, 30일자 다음 뷰 TV카테고리에 올라온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리뷰를 보면서 좀 안타까운 점이 발견되었다. 드라마 <결혼해주세요>의 리뷰가 거의 전무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가 참 어려웠다.


시청률로 볼 때 <결혼해주세요>는 4회 시청율이 20%을 넘으며 주말 드라마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더 나아가 현재 20%를 상회하는 시청률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탄력을 받으면서 30%, 40% 까지 육박할 수도 있다. 이런 잠재력이 있는 드라마가 시청률 수치와는 관계없이 다음 뷰에 리뷰가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결혼해주세요>의 전작인 <수상한 삼형제>의 경우는 많은 리뷰들이 다음 뷰에 소개되면서 많은 읽을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물론 여기에는 무거우면서 전문적인 리뷰와 개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적은 감평에 가까운 리뷰가 있지만, 아무튼 <수상한 삼형제>에 보이는 관심(부정적인 생각을 포함해서)은 컸다. 여기에 막장이라는 비난이 더해지면서 <수삼>은 좋지 않은 평에 시달리면서 리뷰의 양은 더욱 늘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시청률은 40%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민드라마라는 낯 간지러운 표현을 사용하기는 어색 하지만 그래도 관심은 대단했다. <수삼> 에 대한 리뷰가 대체로 이를 입증했다.





이와는 달리 <결혼해주세요>는 강호와 다혜의 모텔신으로 인해 막장 논란이 잠깐 일었지만 3, 4회를 거치는 동안 가족드라마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리뷰는 예상할 수 있다. 리뷰가 글쓴이의 의식이나 의견과 괴리감이나 불만, 불편에서 생산되는 경우도 많겠지만, 공감이나 동의, 만족에서 생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삼>이 막장이라는 문제성이 있었기에 리뷰 생산이 많았을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막장이라고 판단되었기에 무관심한 측면도 있었다. 즉 평가의 가치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해주세요> 또한 그 역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리뷰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6월 30일 <결혼해 주세요>의 리뷰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어떤 단서조차 없다. 수많은 지문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쓸모가 없다.


부족하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첫째로, 아직 드라마의 초기이고 갈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월드컵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주말 예능 프로그램들에 대한 리뷰들이 대량 생산되는 것을 보면 그다지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마지막으로 가족드라마가 다루는 너무나 낯익은 일상성이 그것이다. 이것은 리뷰의 필요성을 느끼기 보다는 감정으로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결혼해주세요>에 대한 아주 주관적인 감평을 써고 있는 입장에서 <결혼해주세요>에 대한 리뷰들이 다음 뷰에 많이 올라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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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엄청난과 태연희에 주목해야 할 이유?


<수상한 삼형제>는 가족 문제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드라마 답게 가족내의 갈등과 갈등 해소의 모습들이 봇물 터지 듯이 솟아져 나오고 있다. 모두 다가 비중있게 다둘 만한 문제들이면서도, 동시에 다 들 한 두 번쯤은 생가해 본 적이 있는 내용들이라 다 다루기도, 안다루기도 그런, 참 계륵 같은 드라마가 되고 있다. 시청률을 믿고 드라마를 연장 방송하다 보니 별 별 자잘한 이야기까지 다 터져나오고 있다. 어영이 불임이 의심되면서 시험관 아기 운운까지 나오리라 누가 예상 했겠는가? 현찰과 도우미가 결혼을 다시 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보았겠는가? 참 별쓰러운 이야기가 다 터져나오고 있다. 심지어 건강의 고물상의 난자와 경찰관의 사랑까지도 퍼질러 지고 있는 상황이니 보는 시청자들은 참 어지럽지 싶다. 그러니 수삼에 대한 뭔 글을 쓰기도 참 힘들다. 방점을 찍을 만한 주제의식이 희박해져서 말이다.
 


물론 가족 드라마로 거듭나고 있는 <수삼>이 이제서야 가족 문제를 제대로 전달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그리 부정적으로 볼 일도 아니지 싶지만 갈등을 좀 선별하고, 축약하여  드라마 전개의 통일성을 지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관계야 이리저리 얽히고 섥히곤 해서 어느 일방으로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있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는 있지만 그러다 보면 드라마 전개가 박진감이 없어지고 자칫 흥미를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의 <수삼>이 꼭 이런 시점에 직면해 있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백화점식 나열 보다는 한 두 놈만 패는 식의 집중 공략 말이다. 수삼의 주제가 크게는 가족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나아가 보면 이 문제들이 너무 전방위적으로 흩어져 있어 혼란스럽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어영의 불임 문제, 엄청난의 변화 문제, 태연희의 문제 정도는 짚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엄청난의 변화와 태연희의 문제이다.  사실 어영의 불임 문제는 별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주제 의식을 가질 만한 부분이긴 하지만, 다 큰 성인인 어영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치고 계솔이가 또 덩달아 난리를 칠만한 그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그저 이상과 어영이 조용히 해결해 가야할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제작진들이 이 어영의 불임 문제에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게 부부간의 내적 갈등의 문제이지 온 가족들이 다 알고 호들갑을 떨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선, 엄청난의 문제는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수삼>에서 엄청난 만큼 문제적 인간은 없다고 본다. 엄청난이 희극적인 인물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극적인 인물이다. 고아에, 미혼모에, 저학력에, 맏며느리라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정말 비극적인 존재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엄청난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언니>의 등장인물에 비유해 본다면 송강숙류의 인물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이 <수삼> 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그저 웃어야 할 처지는 아니라고 본다. 하행선과의 갈등에서 엄청난이 많이 변화를 했지만 아직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의 글에서 이미 언급했다(2010/05/02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변하지 않는가?)자기 성찰의 과정을 전혀 거칠 수 없는 인물로 여전히 그려지고 있다.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엄청난이 종남이의 엄마로써, 또 앞으로 태어날 쌍둥이의 엄마로써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고 싶다. 68회에서 그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다.
  

둘째는 태연희이다. 태연희의 문제는 너무 작위적인 요소가 강하다. 제작진은 악녀 태연희를 궁지로 몰아넣으며 시청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통쾌함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 같다. 태연희의 문제는 이렇게 다루어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태연희의 문제는 법과 범죄라는 측면에서 분명하게 다루어지고 그 해결책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아직 스토리가 진행중이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만약 이 태연희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만 다루어 진다면, 즉 우미와 현찰의 위장이혼 복수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아무리 드라마지만 범과 범죄, 경찰과 검찰의 역할을 망각하는 지경으로 치닫게 되고 말 것이다. 이 것만은 좀 피햇으면 한다. 


만약 태연희의 문제도 앞서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극처럼 개인이 해결하는 식이 된다면, < 수상한 삼형제>가 경찰 홍보용 이니 하는 비아냥 같은 글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경찰 홍보라기 보다는 경찰을 무능력하고 비현실적인 집단으로 전락시켜 놓고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진다(2010/05/31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통쾌한 복수극은 경찰과 검찰의 무능력의 결과?) 이번 만큼은 경찰이나 검찰이 제대로 서서 태연희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 이태백 검사도 있고, 아예 경찰 가족이 나오는 이런 드라마에서 법이, 검찰이, 경찰이 무능력해서 비록 악녀이긴 하지만 태연희가 억울한 피해를 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엄청난이란 이 비극적인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태연희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지 <수삼> 제작진들이 신중하게 결정해 나아가야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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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완벽한 가족드라마?


66회에서 한 바탕의 폭풍같은 소동이 지나간 후 67회는 폭풍 이후의 정적처럼 조용한 편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고만고만한 갈등들이 이어졌을 뿐이다. 제작자들도 정신 없었던 66 회 이후 휴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적은 여전히 갈등을 내재하며 <수삼>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대체로 큰 갈등들이 해소된 상황에서 관계들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등장인물들이 해피앤딩으로 이어지기 위한 밑그림으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거나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엄청난의 변화이다. 엄청난이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도 등장하고, 영재영어학원도 포기하는 등 며느리로써, 아내와 엄마로써의 역할이 조금씩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불론 이 변화의 밑바탕에는 마음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왕지사 엄청난이 변화한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바래온 필자로써는(2010/05/30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아직도 정신 못차린 엄청난?)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대학나온 건강이 초등학교 나온 엄청난에게 편견없이 대해주는 모습도 보기 좋다. 


태연희도 변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전 글(2010/05/25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태연희의 변신은 유죄?)에서 언급했듯이 태연희의 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태연희의 변화가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 단순히 동정을 유발하는 차원에서 대충 마무리하지 않기를 바랬다. 67회에서 태연희가 박사기 일당의 부하들에게 잡히는데, 태연희와 관련해서 이후의 스토리 전개도 흥미를 자아낸다. 과연 태연희가 어떻게 변할까?


변화와는 좀 다른 차원이지만 부영의 심적인 변화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너무 일찍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부영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느끼는 현실 감각이다. 다를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은 부영을 아줌마로 취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부영이 포기한 삶의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볼만 하다.  한참 재기 발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이것저것 삶을 즐겨야 할 시기에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부영의 심정이 드러나고 있다. 부영이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현찰과 도우미 가족의 단란한 모습도 눈에 띈다. 자기 집 한 번 마련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아파트를 구입한 이들 가족에게 행복이 찾아 들어 너무나도 기쁘다. 항상 밝은 모습이었지만 상태와 혼수의 밝은 모습도 참 좋았다. 역시 아이들에게는 가정만큼 소중한 곳도 없다. 가정의 소중함을 본다.  


무엇보다도 어영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어영의 불임 문제는 물론 이전에 고조된 갈등이 해결되고 진정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고 불임에 대한 건강의 태도도 너그롭고 보면 이 불임 문제가 큰 갈등을 일으킬 여지는 없다.  단지 눈여겨 볼 부분은 아기에 대한 어영의 태도이다. 일을 위해 임신을 유보하고자 했던 어영이 이제는 아기를 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은 출산률이 줄어들고 있는 요즈음 현실에서 의미가 있지 싶다. 또한 막상 '불임 가능성' 이란 위기에 처해서 상심하는 어영을 보면서 인생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고 그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랬으면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67회에 깔린 가장 기본적인 정서는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 이었다. 어영의 내적인 고민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큰 지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어영의 불임을 알게 된 계솔이의 태도를 통해 부모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확인 할 수 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계솔이이지만 어영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야말로 친부모 이상이었다. 진정성이 묻어났다.  계솔이가 입고 있는 옷이나, 하는 말씨나 행동을 보면 천박하게만 보이는데, 속마음은 참 따뜻하고 진정성이 있는 여자이다. 인간을 외면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알 수 있다. 주범인이 계솔이를 왜 그토록 사랑했는지를 알겠다. 부모의 자식 사랑과 관련하여, 주범인이나 전과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상을 만나 어영이 문제를 상의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또한 그렇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이상을 위해 약을 지어주는 전과자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모습들에서 미우나 고우나 자식을 위한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67회는 <수삼>에서 막장의 요소들이 말끔하게 사라진 완벽한 가족 드라마에 가까웠다. 소중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수삼>을 막장이라고 비난했던 분들도 이 67회에서는 부부의 정,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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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통쾌한 복수극은 경찰과 검찰 무능력의 결과?



62회에서 드디어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극이 성공했다. 신세진을 활용한 멋진 두뇌싸움이었다. 연희는 완전히 우미의 지략(?)에 빠져 망하고 말았다. 참 통쾌했다. 재판정에서 현찰과 우미는 검은 수트를 입고 있어 마치 첩보요원 같았다. 아마도 그런 컨셉으로 간 모양이다. 통쾌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복수의 과정이 좀 더 설득력이 있게 진지하게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것이다. 현찰과 우미, 그리고 연희의 갈등이 이 <수삼>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절절한 부분이었기에 보다 현실적으로 복수가 전개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첩보요원 블랙코미디가 된 듯한 느낌이라 그 울림이 축소되고 말았다. 통쾌한 결과만을 기대하기에 그 과정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이 위장이혼 복수극 자체도 비판의 여지가 많았다. 태연희의 이혼을 하면 증언을 번복해 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이러한 위장이혼 복수극이 진행된다는 것도 무리이거니와 태연희가 아무런 서류상의 확인 절차도 없이 그저 이혼하겠다는 현찰의 말만 믿고 증언을 번복해 주겠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악녀 태연희가 이렇게 허술한 여자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러한 정도는 참아 줄만 했다. 연희에 대해서 위장이혼으로 복수를 한다는 건 그래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참으로 황당하게도 신세진을 스파이로 활용하는 설정은 완전히 첩보물로 만들면서 참으로 보기가 민망했다. 전혀 현실성이 떨어졌고 황당했다. 신세진은 도대체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연희에 대해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돈으로 매수 되어 철저하게 연희의 스파이로 활동한다. 우미가 이 사실을 우연히 알아내어 역 정보를 흘려 연희가 재판정에서 증언을 번복하게 한다.



절절했던 우미의 심정만큼이나 이 복수가 현실성이 있기 위해서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다양한 노력을 했어야 하며 연희가 보여주었던 여러 가지 허점에 대해 다각적인 수사가 진행되어야 했다. 이러한 노력이야 말로 진정으로 현실적인 복수가 되는 것이다. 이 법적인 노력을 하지 않다보니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이라는 비법적인 방법이 동원된 것이다. 통쾌하긴 하지만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 복수극이었다. 재판에서 승소하고 법원을 나와 기뻐하는 현찰과 우미의 모습과 법원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연희를 보면서 도대체 근엄하게 서 있는 저 법원 건물이 도대체 현찰에게, 우미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무슨 역할을 했는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고작 연희의 증언 번복에 망치를 두드리고 선고를 하는 모습이라니!


이 지점에서 김순경의 사퇴가 떠오른다. 사과 두 개에 부패 경찰로 몰리는 비과학적인 경찰의 감찰시스템도 떠오른다. 뭘 좀 알아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카메라에 돈봉투가 찍힌 것도 아니고 김순경의 주위의 인물들, 김순경의 이력까지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냥 부패 경찰로 몰고 불명예 사퇴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경찰이니 한편으로 현찰과 우미가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법에, 경찰에 기대지 못하니 당연히 자신들이 위장이혼 복수극을 결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만약 드라마 <수삼>이 이것을 인식하고 이러한 내용으로 몰고 갔다면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대단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가족드라마에서 법이, 경찰이 제대로 역할을 해주지 못해 당사자들이 복수를 결행하게 하는 이 설정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다행이다. 그런데 앞으로 연희가 사라진 <수삼> 얼마나 흥미있게 진행될지 무척 궁금하다. 아니면 극약처방으로 연희를 좀비처럼 또 일으켜 세울까?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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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정말 여성 비하 드라마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수상한 삼형제>가 정말 여성 비하 드라마일까? 글쓴이는 여성 비하 드라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로 여성의 기가 엄청나게 세게 드러나고 있는 그런 드라마라고 판단한다. 만약 여성이 너무 설친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드라마라는 면에서 ‘여성 비하’ 로 여긴다면 할 말은 없다. 예를 들면 엄청난의 경우에, 엄청난이란 캐릭터가 여성 비하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판단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엄청난은 그 기가 너무 세어서, 실상 그 기를 꺾지 못하고 엄청난과 사는 건강이 남성 비하의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어머니인 전과자도 엄청난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이고 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이런 기센 여자인 엄청난이란 존재를 만들었다는 것이 여성 비하라면 좀 지나친 해석이지 싶다. 오히려 청난에게 속아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건강이야 말로 남성 비하의 전형적인 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주어영에게 무시당하던 계솔이의 처지가 여성비하에 가깝다. 자신의 아버지인 주범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재산을 노린다고 무시하던 주어영의 태도야 말로 여성비하의 전형이라고 본다.


우선, 엄청난이란 캐릭터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여성비하’ 라는 표현보다는 ‘여성우월적 캐릭터’ 라고 하는 편이 타당하지 싶다. 그토록 건강을 속이면서 종남이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학벌 없고, 자진 것 없는 엄청난을 비하하고 있기 보다는 그저 단순무식한 무모한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엄청난의 행동은 성격상의 문제일 뿐이지 여성 비하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강조해서 언급했지만 건강이야 말로 남성을 비하하는 전형적인 예인 것이다. 정말 바보도 이런 바보도 없다. 아니 이런 성인(聖人)도 없다. 엄청난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용서하는 것을 보면서 왜 이리도 남성을 이렇게 비하시키는 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평범한 남성도 아니고 건강을 성인으로 만든 것도 사실 남성 비하라고 할 수 있을까?


둘째로, 전과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과자도 기세고 며느리 달달 볶는다는 면에서 ‘여성비하’ 라고 한다면,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모든 공포영화의 귀신들은 ‘여성비하’ 의 전형이 되는 것이다. 귀신들이야 말로 기가 세고 산자들을 공포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전과자의 경우는 여성비하라는 꼬리표를 달기보다는 질투심 많은 시어머니나 며느리 달달 복은 자기 중심적인 시어머니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더 타당하지 싶다. 그런 시어머니는 도처에 있다고 본다. 전과자는 여성비하라기 보다는 그런 현실의 시어머니에게 경종을 울리는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5160831481001



셋째로, 어영이란 캐릭터는 가장 합리적이고 또 자기 생각이 딱 부러지는 존재이다. 검사 이택백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어영은 여성 비하의 대상과는 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다. 어영이 임신을 하려고 이상 앞에서 애교를 떠는 것은 가족드라마에서는 좀 어울리지 않는지는 몰라도 여성 비하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사랑 그렇게 하지 않는 여성이 어디에 있을까? 오히려 주관있고 센스있는 현대여성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상 건강보다 연상인 어영이 불임이 되는 것도 꽤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아이보다는 일에 열중해온 어영이 일시적인 불임의 개연성은 있는 것이다. 어영이 계솔이의 진심을 이해하면서 합리적이고 개인적인 태도에서 조금씩 가정이라는 집단의 본질을 이해해 가는 것은 우리나라의 가족주의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젊은 사람들에게 가족주의나 전통이 고루하게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미덕을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넷째로, 악녀 태연희도 마찬가지이다. 여성비하라기 보다는 여성을 너무 강하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전과자, 엄청난, 어영보다도 기센 여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솔이보다는 기가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태연희는 도우미를 농락하고 가정을 파멸로 이끌고자 한 악녀라는 표현이 어울릴지언정 ‘여성 비하’ 의 대상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여성비하라기 보다는 오히려 여성 우위적인 강력한 카리스마의 현대적인 여성상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여성 비하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여성을 악하고 기가 세게 그렸다는 편이 타당하지 여성을 비하했다고 하는 것은 좀 아니지 싶다. 이런 관점에서 태연희의 몰락은 좀 생각해 볼 여지를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비하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는 다소 동정적이다. 무언가 억압되어 있고, 진실이 왜곡되고, 인격적으로 무시당하고, 성적 차별이나 괴롭힘, 극단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수상한 삼형제>에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그런 감정이라기보다는 굿굿하고, 기가 세고, 독립적이고, 악착같고, 힘이 넘치는 편이다. ‘여성 비하’ 라는 단어가 들어 맞는다면 시어머니 전과자에게 구박을 받던 며느리 도우미나 며느리 주어영에 해당하는 정도라고 본다. 또한 주어영에게 무시를 당하던 계솔이의 처지라고 본다. 자신의 아버지인 주범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얼마나 계솔이를 무시하고 비하했던가? 시어머니 전과자에게 구박받던 우미와 어영, 어영에게 무시당하던 계솔이에게는 참 동정이 갔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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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태연희의 피상적인 변신은 유죄?




<수상한 삼형제> 64회에서 몰락한 태연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태연희의 변화한 모습은 이전의 태연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전의 자신만만하고 당찬 모습은 어디가고 궁색하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었다. 우미를 그렇게도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했으면서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오리발을 내밀면서 우미를 더욱 처참하게 만들던 태연희가 아니었던가? 한 때는 박사기를 호령하는 위치에 있는 듯도 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증언 번복으로 인해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는 박사기의 부하들에 의해 쫒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간의 변화라는 것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너무 심하다면 그 변화의 진실성을 의심받기가 쉬워진다. 조폭 두목이 목사가 된다든지, 살인자가 자선사업가가 된다든지, 범죄자가 정치인이 된다든지, 불륜을 저지런 여자가 수녀가 되는 급격한 변화는 어딘지 그 변화의 진실성을 믿기가 힘들어 진다. 그래서 사실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가 현실에서 잘 일어나지도 않는다.  아니 일어나지만 지극히 제한되어 일어난다. 종교적인 영역에서의 각성 같은 것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세속에서 그러한 변화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현실적인 변화라는 것은 같은 종류의 감정이나 행동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그리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그런 변화들이 대부분이다. 예를들면, 어제 짜증낸 일을 오늘 후회하는 식이다. 오늘 과식한 것을 내일은 자제하는 등의 변화들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라는 자기 반성의 감정이나 행동도 동반된다.


우리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약간은 비현실적인 현실적인 소원인 급격한 변화를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로 많이 보아왔기에 그러한 변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수상한 삼형제>의 경우 하행선과 엄청난의 변화가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한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기란 힘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한 반대급부를 노리는 위선적인 변화인 경우도 해당이 된다.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는 것은 그 이면에 어떤 꿍꿍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한 면에서 태연희의 변화를 살펴 볼때 진실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수상한 삼형제> 제작진에게 부탁하건데 이제라도 태연희가 단순히 시청자들의 동정만을 받을 모습으로 피상적으로 변화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만약 태연희를 다시 동정의 대상이나 심지어 불쌍한 천사로 만든다면 태연희의 리얼리티는 너무나 떨어지고 만다. 왜냐하면 태연희의 변화가 지옥에서 천상으로이거나, 악에서 선으로 줄타기를 하는 너무 극단적인 변화를 겪을 징후가 보이기 때문이다. 64회에서 그런 징후가 조금 드러난 듯 하다. 이렇게 되면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수상한 삼형제>에서 태연희만 그런 것은 아니다.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극이나 주범인과 계솔이의 로맨스도 그렇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리얼리티는 가지고 있다. 만약 태연희가 오르락 내리락 극단적인 변화를  겪는 다면 태연희야 말로 리얼리티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미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태연희는 뻔뻔스러운 태연희-->조폭과 어울리는 악녀--->박사기 뺨치는 조폭녀 같은 여자--->거짓말 증언을 하는 음모가--->현찰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협박자의 이미지를 차례로 보여주었다. 연희가 악녀라 불릴만 하다. 그런데 64회에서 박사기 일당에게 쫒기는 태연희의 궁색한 모습, 통장의 잔고를  보여주면서 동정을 유도한다면 이 변화는 너무 설득력도 없고 급격한 것이다. 태연희는 아직 도우미나 현찰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여전히 악녀인 것이다. 연희에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또한 박사기 일당을 경찰에 신고만 하면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도 있다. 


아무리 인간이 개과천선하고 심성이나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가 급격하게 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종교적인 각성이거나 영적인 경우가 많다. 연희를 변화시키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만약 연희를 변화 시키려면 아주 처참한 상황으로 몰아야 할 것이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떠오르게 말이다. <신언니>의 송강숙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처참한 자신의 처지를 통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각성시켜야 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급격한 변화가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저 어설프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화면 몇 커트로 연희를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연희를 하행선처럼 조용히 사라지게 하는 편이 더 현명한 것이다. 또 드라마 답기도 하고 말이다.  


64회에서 보여 주었던 그런 피상적인 장면을 통해 연희에 대한 동정을 일게 하거나 불쌍한 감정을 일어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혹 64회의 이러한 장면들이 연희가 겪게되는 처참한 장면들의 시작에 불과하다면 필자가 너무 오해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연희를 어설프게 다루지 말기를 바란다. 아무리 해피 엔딩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연희 마저 훌쩍 천사로 만들어 그 해피 엔딩에 동참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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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가족이란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본다!




수상한 삼형제 64회는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가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참으로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64회 이 한편만으로 판단해 볼 때 <수상한 삼형제> 그야말로 훈훈한 가족드라마이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수상한 삼형제>에 기대를 접었던 시청자들에게는 애정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지 싶다. 누가 수삼을 막장이라고 그랬지? 


김순경의 치킨집 사기와 관련해서 주위 가족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현실 속 가정내의 관계망 속에서 조망해보면서 큰 위안과 감동, 그리고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내 전과자의 반응과 태도는 수긍할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황혼 이혼도 상상해 볼 수 있다(실제 드라마는 황혼이혼까지는 가지는 않는다). 어느 아내고 자신과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가게를 채릴 계획을 세우고, 그러다 퇴직금을 사기 당한 남편을 제대로 보아줄까? 사실 전과자의 반응보다도 오히려 김순경이 가끔씩 소리를 지를 때 분하고 더 얄미울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김순경에 대해서 그렇게 느껴질 때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무슨 입이 있어 전과자에게 입을 벙긋하나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전과자를 제외하고, 김순경을 위한 가족들의 노력은 참으로 훈훈한 가족애로 가득했다. 가족 해체 이야기가 심심잖게 등장하고, 기러기 가족, 독신가정이니 하는 가족의 갈등과 변화상을 접하면서 가족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느낌을 받는 현실이다. 가족의 위기는 아니더라도 가족의 갈등은 깊고 심각한 수준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삼 64회가 보여주는 가족의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희망을 보게되어 참 반가웠다. 다시, 누가 수삼을 막장이라고 그랬나? 그냥 즐거운 마음에 하는 독백이다. 이제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언급해 보려고 한다. 


우선 뭐니뭐니해도 김순경에게 힘이 되는 존재는 며느리 도우미였다. 그녀는 김순경에겐 딸과 같은 존재로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들도 하지 못한 그런 역할을 며느리 도우미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며느리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인간의 관계는 그 성격에 따라 규정된다. 도우미와 김순경의 관계는 단지 며느리-시아버지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였다. 그랬기에 아무리 며느리지만 제 가족, 제 부부 욕심만을 챙기지 않고 김순경에게 아파트 살 돈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제의를 거절하는 김순경과 함께 이전에 함께 갔던 포장마차에서 김순경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리며 마음을 드린다고 한 것이다. 마치 도우미가 검정고시 준비를 할 때, 김순경이 필통과 승진시험 수석자의 볼펜을 선물 할 때 처럼 말이다. 이 장면은 참으로 따사로운 장면이었다. 



둘째는, 주범인과의 우정이었다. 주범인은 김순경과는 달리 계솔이와의 황혼결혼으로 깨가 솓아지는 상황이다. 아무리 다른 상황이지만 주범인이 김순경과 만나 전하는 이야기는 참된 우정이었다. 사실 나이들면서 필요이상의 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신이 다 사용하지도 못하고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는가? 주범인은 자신이 건강으로 인해 고통받은 심리적인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건강이 최고라고 위로해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다 잃으니 말이다.

 
셋째는, 이상과 어영이었다. 김순경과 함게 산행을 하고, 산에서 양푼이 비빔밥을 같이 먹고, 쇼핑을 하면서 김순경에게 더 젊어 보이시라고 화려한 색상의 옷을 선물하는 그 모습들을 보면서 바로 저런 모습이 자식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큰 위로가 필요할까? 김순경과 함께 소박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자식의 부모를 위한 소박한 모습이 아닐까? 


결코 김순경은 외로운 가장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자식들과 며느리, 그리고 친구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김순경이 어깨가 쳐져 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아내 전과자도 이제는 현실을 수긍하고 김순경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그 실수를 용서해 준다면 이 세상에 가족내 갈등은 사라지지 가라지지 싶다. 가족내의 갈등이 사라진다면 세상이 밝아지지 않겠는가?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그냥 헛소리가 아닌 것이다. 


가장인 김순경, 우리 가족의 존경을 받고 있는 김순경 기죽지 말고 힘차게 일어나 주면 좋겠다. 아버지로, 친구로,시아버지로, 무엇보다도 남편으로 다시 당당하게 일어서 주기를 바란다. 다시 가족이란 단어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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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가슴 아픈 아버지의 초상 김순경



<수상한 삼형제> 63회는 <개인의 취향> 마직막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쉴새없이 갈등이 해결되고 갈등이 터져나오는 용광로와도 같았다. 이상과 어영의 갈등이 어영의 자각으로 극적인 타결 직전에 있고, 주범인과 계솔이의 암과 관련된 위기가 싱거운 해프닝으로 끝났다.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도 성공했다. 시어머니 전과자와 엄청난의 갈등도 엄청난의 이해를 통해 해소가 되는 과정에 있다. 건강이 운영하는 고물상의 실장과 경찰관의 관계도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갈등 또한 우후죽순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연희는 자신의 증언 번복으로 감옥에 갇힌 박사기에 의해 보복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건강과 엄청난은 종남이로 인해 갈등이 터져나오려는 기세이다. 이 문제는 이미 이전에 한 번 터져나온 문제이기에 재탕에 가깝다 따라서 건강과 엄청난의 갈등은 갈등을 만들기 위한 갈등으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갈등은 김순경에게 돌아간다. 이 갈등은 예상치 못한 것으로 김순경을 곤경으로 몰아넣었다. 자신이 매입한 후닭후닭 치킨집이 사기를 당한 것이다. 경찰로서 양심껏 살아 온 김순경에게 왜 이런 시련이 계속해서 이어지는지 가슴이 아프다. 64회에서 전과자의 반응은 실로 상상을 초월 할 것이다. 퇴직금을 그대로 투자해서 친킨집을 차렸는데, 그 투자업체가 투자자들의 돈을 떼먹고 달아나 버렸으니 말이다. 김순경에게는 치명적인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전직 경찰이 사기를 당한 것이나 사기를 친 사기꾼이나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순경의 사기건은 연희의 사건만큼이나 억지스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말이다. 치킨집 건물의 소유주가 있을 것이고, 그 계약은 본인들이 했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 허술하게 사기를 당하다니 연희에게 사기를 당한 현찰만큼이나 충격적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좋게 말해서 참 착하고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을 등쳐먹는 연희나 박시기 같은 인간들이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곳일까? 아무튼 김순경이 사기를 당한 건 이해부득이기 보다는 너무 안타깝다.



현찰의 경우와는 달리 사기 당한 돈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평생을 몸 바쳐 그 댓가로 받은 퇴직금을 하루 아침에 날려버렸으니 도대체 삶이 무엇인지 회의가 들 정도이다. 하행선, 연희를 잇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의 등장이지 싶다. <수상한 삼형제>의 최후의 갈등이 김순경의 사기사건인 것은 사실 예측하지 못했지만 삼형제의 아버지 김순경의 초상을 제대로 그려주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고령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사회의 문제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아내 전과자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평생을 함께 살아 온 아내이지만 자신과 상의 한 번 없이 미래의 보장이 되는 퇴직금을 날려버렸으니 말이다. 이 황혼부부의 갈등이 우리의 주의과 관심을 무척이나 끈다. 특히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황혼이혼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주범인과 계솔이의 사랑과 황혼결혼도 그 결과는 상반된 것이지만 '김순경의 사기'와 '황혼이혼' 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나이가 들어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면에서 말이다. 사랑의 문제와 그것으로 인해 생긴 자식(어영, 우미)과의 갈등인 것이다. <수상한 삼형제>가 삼형제의 문제와 갈등들이 아니라 이제는 그 직계부모의 문제와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가족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김순경의 갈등과 함께 건강과 엄청난의 갈등이 종남의 문제로 다시 솔솔 연기를 피우고 있으니, 직계자녀의 문제도 다루려나 보다. 수상한 삼형제 참 광범위하게 가족의 문제를 줄기차게 다룰 기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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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김순경이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아내 전과자?



김순경을 보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초상을 보는 것만 같아 안쓰럽다. 김순경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퇴직을 선택했지만 그런 명예, 양심, 진실을 생각해 주는 인간들은 없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의 삭막한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참으로 삭막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김순경이 사퇴를 할 때 동료들 중 누구 하나 김순경을 위해 그의 양심을 위해 변호해준 인물이 없었다. 김순경이 실망한 것도 어쩌면 이런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변호사 사무실에서 허울 좋은 사무장으로 일할 때도 전직 동료나 선배에 대한 예우보다도 귀찮게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양심과 진실을 존중해주고 또 그렇게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보다는 양심을 적당하게 숨기고 진실보다는 거짓을 뒤섞는 그런 사회의 반증일 수 있다. 드라마 <수삼>이 보여주는 사회가 그럴 수 있는 것이기에 단순히 '막장' 이라는 비난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삼을 막장이라는 단일한 시선으로만 바라본다면 작은 부분이지만 미덕을 무시하는 태도가 되고 만다. "막장이다. 그러나 이런 점은 의미있다." 식의 유연한 태도도 필요하지 싶다.


김순경이 '후다닭' 이라는 키친집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김순경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순경의 양심이나 진실 같은 것은 앞으로의 삶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된 것처럼, 쉬쉬하며 후다닭을 개업하려는 모습은 가슴이 아프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무엇이 그토록 부끄러운 것일까? 자신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무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격려 받을 일이지 숨기거나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나이 때문에? 타인의 인식 때문에? 직업의 귀천이란 것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는 아내 전과자의 태도가 너무 실망스럽다. 김순경이 직장을 그만두었다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것이 자영업이든, 새로운 직장이든, 부업이든 말이다. 그런데 아내 전과자의 태도는 경찰이던 때의 김순경과 사직을 한 김순경을 기점으로 너무나도 다르게 변하면서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만약 이러한 전과자의 태도가 직장을 그만 둔 가장에 대한 아내들의 일반적인 생각이고 태도라면 정말 성찰해 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서, 건강과 청난, 그리고 현찰과 우미의 삶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건강과 청난의 경우 아무런 자영업의 경험도 없이 고물상을 차렸다. 젊은 패기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모험이다. 이 고물상을 시작하는 시기에 건강과 청난은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고 미래의 전망도 불투명 했다. 그런데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하여 드라마 상에서도 인터넷 상에서도 비판이 없었다. 김순경도 전과자도, 형제들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시작으로 긍정적으로 보아주는 듯 했다.


현찰과 우미의 '모녀보쌈' 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연희로부터 전 재산을 빼앗기고 본가에서 나와 장모 계솔이와 함께 지내면서 바로 모녀보쌈을 차리는 기염을 토하면서 성업 중이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가게에 손님들이 적지 않는 것으로 판단해 볼 때 흑자인 듯 싶다. 이 모녀보쌈을 개업할 당시에도 아무도 부정적으로 본 사람들이 없다. 다들 축하해 주었다.
 

위 두 가지 경우에 전과자의 태도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특히 건강과 청난의 고물상 사업은 전과자가 현찰의 돈 오천만을 끌어당겨 투자한 것으로 시작한 것이다. 건강이 그 돈으로 고물상을 하는 것을 알고서도 결코 화 한 번 내는 적을 보지 못했다. 현찰이 차린 모녀보쌈도 마찬가지이다. 현찰과 우미와 사이가 틀어지고 시작한 것이지만 이 모녀보쌈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 한마디 없었다. 우미와 관계가 개선 된 이후에는 모녀보쌈을 찾아가 우미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했다. 자식이고 며느리라서 그런 것일 것이다. 어디 자식이나 며느리가 안 되기를 바랄 어머니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남편 김순경의 경우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왜 이럴까? 남편이라면 더 격려를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아직 전과자가 김순경이 후다닭을 개업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만약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보듯이 뻔하다. 태클과 바가지가 지독하게 들어갈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김순경을 이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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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 김순경의 후다닭 개업을 전적으로 축하해주고 도와주기 보다 우선 걱정부터 앞서고 우려를 금치 못한다. 삼형제가 만나 한다는 말들이 대체로 그랬다. 물론 아버지를 걱정하는 자식의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남편, 아버지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앞선다.


누구보다도 김순경 자신이 너무 주눅이 들어있다. 후다닭을 혼자 개업하려고 하는 것도 자격지심 탓이다. 아내가 잘 보아줄까? 자식들이 어떻게 볼까? 이런 생각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러니 혼자서 끙끙대며 후다닭을 개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앞에서 말한 아내 전과자나 자식들의 태도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왜, 가장이 직장을 그만두면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물론 보편적인 현상은 아닐 것이지만 천재적인(?) 작가와 연출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수삼>에서 김순경이 이런 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 볼때 전혀 현실과는 무관한 일은 아니지 싶다.


이 점에서 바라는 점이 있다. 퇴직한 가장에 대한 아내의 이러한 태도는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당당히 아내와 함께 사업을 구상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내와 더불어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 미래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지 사직한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일관하면 안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마지막 삶의 보루인 연금과 퇴직금이 관련되는 문제라 섣불리 나서기는 힘들기는 하다. 그러나 그럴망정,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당당하게, 자식들과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의논하는 태도가 뭐가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김순경에게 전과자가 힘이 되면 좋겠다. 또 그래야 한다고 본다. 김순경은 건강이나 현찰과는 달리, 스스로 치킨집을 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준비를 했다. '후다닭' 해치운 준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건강보다도, 현찰보다도 사업 성공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김순경에 대해 아내 전과자는 바가지나 긁고, 퇴직한 남편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후다닭 치킨집' 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업 성공을 위해 노력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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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통쾌한 복수 뒤에 남는 아쉬움의 정체는?



62회에서 드디어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극이 성공했다. 신세진을 활용한 멋진 두뇌싸움이었다. 연희는 완전히 우미의 지략(?)에 빠져 망하고 말았다. 참 통쾌했다. 재판정에서 현찰과 우미는 검은 수트를 입고 있어 마치 첩보요원 같았다. 아마도 그런 컨셉으로 간 모양이다. 통쾌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복수의 과정이 좀 더 설득력이 있게 진지하게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것이다. 현찰과 우미, 그리고 연희의 갈등이 이 <수삼>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절절한 부분이었기에 보다 현실적으로 복수가 전개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첩보요원 블랙코미디가 된 듯한 느낌이라 그 울림이 축소되고 말았다. 통쾌한 결과만을 기대하기에 그 과정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이 위장이혼 복수극 자체도 비판의 여지가 많았다. 태연희의 이혼을 하면 증언을 번복해 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이러한 위장이혼 복수극이 진행된다는 것도 무리이거니와 태연희가 아무런 서류상의 확인 절차도 없이 그저 이혼하겠다는 현찰의 말만 믿고 증언을 번복해 주겠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악녀 태연희가 이렇게 허술한 여자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러한 정도는 참아 줄만 했다. 연희에 대해서 위장이혼으로 복수를 한다는 건 그래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참으로 황당하게도 신세진을 스파이로 활용하는 설정은 완전히 첩보물로 만들면서 참으로 보기가 민망했다. 전혀 현실성이 떨어졌고 황당했다. 신세진은 도대체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연희에 대해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돈으로 매수 되어 철저하게 연희의 스파이로 활동한다. 우미가 이 사실을 우연히 알아내어 역 정보를 흘려 연희가 재판정에서 증언을 번복하게 한다.




절절했던 우미의 심정만큼이나 이 복수가 현실성이 있기 위해서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다양한 노력을 했어야 하며 연희가 보여주었던 여러 가지 허점에 대해 다각적인 수사가 진행되어야 했다. 이러한 노력이야 말로 진정으로 현실적인 복수가 되는 것이다. 이 법적인 노력을 하지 않다보니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이라는 비법적인 방법이 동원된 것이다. 통쾌하긴 하지만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 복수극이었다. 재판에서 승소하고 법원을 나와 기뻐하는 현찰과 우미의 모습과 법원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연희를 보면서 도대체 근엄하게 서 있는 저 법원 건물이 도대체 현찰에게, 우미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무슨 역할을 했는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고작 연희의 증언 번복에 망치를 두드리고 선고를 하는 모습이라니!


이 지점에서 김순경의 사퇴가 떠오른다. 사과 두 개에 부패 경찰로 몰리는 비과학적인 경찰의 감찰시스템도 떠오른다. 뭘 좀 알아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카메라에 돈봉투가 찍힌 것도 아니고 김순경의 주위의 인물들, 김순경의 이력까지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냥 부패 경찰로 몰고 불명예 사퇴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경찰이니 한편으로 현찰과 우미가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법에, 경찰에 기대지 못하니 당연히 자신들이 위장이혼 복수극을 결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만약 드라마 <수삼>이 이것을 인식하고 이러한 내용으로 몰고 갔다면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대단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가족드라마에서 법이, 경찰이 제대로 역할을 해주지 못해 당사자들이 복수를 결행하게 하는 이 설정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다행이다. 그런데 앞으로 연희가 사라진 <수삼> 얼마나 흥미있게 진행될지 무척 궁금하다. 혹 극약처방으로 연희를 좀비처럼 또 일으켜 세우지는 않을까?

첫번째 사진: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51009034018492&outlink=2&SVEC
두번째 사진: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51601425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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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현찰과 도우미의 위장이혼 복수 성공할까?




드라마에서 복수는 참 재미있는 소재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시리즈나 최근의 <모범시민>같은 영화들이 참 잔인하기는 하지만 재미가 있는 이유가 복수 때문이다. <모범시민>의 주인공은 복수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복수가 아닐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복수는 인간에게 흥미를 자아낼까?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억울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도 법과는 무관하며 <모범시민>도 그렇다. 법의 불완전성을 통쾌하게 깨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수상한 삼형제>도 마찬가지이다. 현찰과 도우미에게 법이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사기와 공모해서 철저하게 사기를 친 연희를 보는 것은 참 불편하다. 양심을 버리고 교묘하게 법을 이용해 사기를 친 연희는 세상에 활개를 치고, 사기를 당하고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버린 현찰과 도우미는 다시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모습은 법의 불완전성과 억울함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법이 가리는 데 실패한 정의를 현찰과 도우미가 복수를 통해 되찾으려 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복수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니 <수상한 삼형제>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아마 현찰과 도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가 성공할까의 여부가 시청률의 최고점에 이르게 하지 않을까 싶다.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에 대해 연희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샛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연희를 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힐 정도이다. 김사기를 거느리는 조폭의 여두목 같이 보이는가 하면, 신세진을 스파이로 포섭하는 공작의 달인 같기도 하며, 현찰이나 우미와 대화를 하노라면 마치 정의의 사도마냥 '태연한' 걸 보면 정말 탁월한 인물이다. 이런 연희가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드라마에 등장한다는 것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연희는 이미 신세진이란 자신의 심복을 현찰의 가게에 심어놓은 상태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 만약 가게내에서 현찰과 우미가 말을 잘못 하기만 해도 연희에게 위장이혼이 탄로 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연희에 대한 복수는 물 건너가고 만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찰과 우미의 사이를 의심한 연희가 현찰을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 이혼하는 것이 맞냐며 다그치고, 돌아서는 현찰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아, 위장이혼 복수도 끝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마침 연희의 아파트로 들이닥친 우미의 기지로 위기의 순간을 모면한다. 속고 속이는, 믿고 믿게 하는 현찰과 우미, 그리고 연희의 관계가 과연 어떠한 결말로 마무리 될지 참 기대가 된다. 이와 더불어,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과 연희의 발 빠른 대응이 어떤 갈등을 만들어내며 의기 상황을 맞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이다. 가족 드라마가 고도의 심리전과 전략이 충돌하는 서스펜스 복수극이 되는 상황이다.


이제 <수상한 삼형제>는 현찰과 우미의 통쾌한 복수를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 거는 최고의 기대가 되었다. 이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에 따라 시청자들이 얻는 만족감도 커지게 될 것이다. 아무튼 현찰과 우미가 당한 만큼 연희가 통쾌하게 복수당하는 모습이야 말로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이 되리라 싶다.


현찰과 도우미의 복수를 유치하게 볼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들의 복수가 막장이라느니 하지만 왜 막장인지 모르겠다. 드라마상에서 극단적으로 억울한 상황이라면 극단적인 방법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현찰과 도우미같이 삶에 성실한 일반인들도 위장이혼을 하면서까지 복수를 하고 싶은 그런 현실적인 상황이 있을 것이다. 지나친 폭력 위주의 복수가 아니라면 수상한 삼형제의 복수는 긍정적으로 보면 좋겠다.
 

첫번재 이미지: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800&g_serial=49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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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얼굴 마담이 되어 버린 연희?





하행선이 기차를 타고 가버리고 난 후, 설상가상 연희가 빠져버린 <수상한 삼형제>가 박진감이 빠져 버린 지가 제법 오래 된 것 같다. 물론 다른 갈등관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주범인과 계솔이, 이상과 어영, 김순경, 전과자 등이 연희 만큼이나 긴장감을 조성하지는 않는다. 만약 현찰과 도우미, 그리고 연희의 갈등이 해소되면서 연희가 하행선에 이어 <수상한 삼형제>에 작별 인사를 고한다면 그것으로 <수상한 삼형제>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연희를 간간히 내보이면서 연희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다잡으려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난다.


연희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당연하다. 이글거리는 복수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착하게 사는 현찰과 도우미가 연희의 거짓말로 인해서 오랫동안 일구어 온 자신의 사업과 전 재산을 한 순간에 빼앗기는 것을 목격한 시청자들은 연희가 현찰과 도우미로부터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복수를 당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연희에 대한 기대가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연희에 대한 이러한 기대를 너무 잔인할(?) 정도로 이용하는 것 같아 피로감을 느낄 정도이다. 마치 연희를 잊지 말라는 듯이 연희를 내보내며 간간히 무슨 주술을 부리는 듯 하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갈등들을 다루는데 비중을 두면서도 시청률의 관점에서 연희를 드러내 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제작진이 아주 묘하게 삐에로처럼 줄을 타는 느낌이다. 인간관계의 다양한 갈등들을 다른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내 놓고 싶고 또 그렇게 하고 있지만, 동시에 연희를 고정적으로 드러내 놓아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니 연희의 모습을 짬짬이 꺼내어 놓고 있는 것이다. 졸지에 연희가 <수상한 삼형제>의 얼굴 마담이 된 꼴이다. 연희로서도 피곤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동안 얼굴을 드러내 놓기 위해 오핸 시간 동안 대기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연희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하행선처럼 먼저 드라마에서 내 보낼 것 같지는 않다. 연희 효과가 아주 크기 때문이다. ‘연희’ 효과가 아주 크기에 가능하면 연희를 틈틈이 TV 스크린에 내보이면서 연희의 문제를 드라마가 끝나갈 무렵에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58회, 59회에서 연희가 잠깐 모습을 비췄지만 이 연희의 등장 부분이 연희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드라마 내내, 또 드라마가 끝나서도 연희의 잔상이 지속적으로 남아있었다.


연희를 이용한 이러한 드라마 스토리 전개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낯간지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연희를 짧게 등장시켜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드라마에 대한 긴장과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면에서 시청자의 입장과는 달리 제작진에겐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희를 얼굴 마담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시청자의 관심과 시청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아주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약간 안달이 나지만 말이다. 아무튼 연희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는 모르지만 재미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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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악녀 태연희가 다시 돌아온 이유?



연희가 화면에서 사라진 이후로 <수상한 삼형제>가 다소 늘어지는 듯 했다. 드라마의 중심축이 될 만한 갈등이 없이 여러 가지 잡다한 갈등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보는 입장이 다 다르겠지만 <수상한 삼형제>의 스토리 전개에서 현찰과 도우미, 그리고 태연희가 빗어놓는 갈등이 중심축에 가까웠다. 물론 건강과 엄청난, 그리고 하행선의 문제도 그렇다. 수상한 삼형제들의 이야기이니 김이상의 문제도 심각한 갈등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현찰과 도우미와 연희와의 갈등이 컸다. 실제로 현찰과 연희가 불륜을 저지르는 회에서 시청률도 상당히 올랐다고 알고 있다.

58회에서 연희가 다시 돌아왔다. 이전에도 가끔씩 연희가 얼굴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이처럼 다시 스토리의 중심에 자리 잡은 적은 없다. 연희가 돌아 온 것은 크게 세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우선은 연희가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현찰과의 재판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재판 과정에서 연희는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는, 치욕적이긴 하지만 현찰의 치밀한 복수가 그 이유일 수 있다. 즉 현찰이 복수를 위해 연희를 끌어들인 것 말이다. 이 복수의 가능성은 우미와의 이혼이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연희가 증언을 바꾸는 대신에 현찰에게 조건으로 제시한 우미와의 이혼을 현찰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미가 이혼을 하기로 하자 언제나 거부한 현찰이었지만 단지 복수라는 이유만으로 연희를 끌어들일 가능성이 무척 크다. 셋째로는 드라마 외적으로, 연희를 활용한 시청율의 상승을 위해서이다. 태연희의 특기는 태연함과 시청률 높이기. 58회를 보고 나서 59회가 기대가 커지는 것을 보면 제작진의 그 의도가 적어도 필자에게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연희가 다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세 가지의 경우를 언급했는데 가장 개연성이 높은 것은 둘째, 현찰의 복수에 의해서란 것이다. 이 경우만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연희가 다시 돌아오는 계기는 도우미로 인해서다. 억울한 마음 탓에 밤마다(사실 그동안 잘 자왔는데 연희를 등장시키기 위해) 악몽에 시달리고, 아이들의 교육과 시댁과의 관계등 우미의 마음은 그야말로 고통스럽다. 참기 흔든 고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미가 현찰에게 이혼을 원한다고 했고, 마침내 현찰에게는 이혼을 통한 현실적인 복수를 생각하고 연희를 불러들인 것이라 판단된다(단지 판단일 뿐이다.)


현찰의 이혼 결심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이 이르다고 본다. 식당을 하면서 잘 해오던 우미가 현찰에게 너무나 갑작스럽게 억울함을 하소연하면서 이혼을 요구하는 것도 그 의도에 대한 판단이 유보되어야 한다고 본다. 식당을 차리고 분발하던 현찰과 우미 부부가 울컥하는 것이 다소 과장되어 보이지만 연희에 대한 악감정만큼은 잠재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도우미와 현찰의 이혼이 위장이혼이며, 그 이혼을 빌미로 연희의 마음을 돌리고 복수하려는 현찰의 술책인지는 아직은 판단하기가 힘들다.
 

연희의 입장에서도 이혼을 빌미로 접근해 오는 현찰이 의심스러울 것이며 그래서 ‘모녀보쌈‘의 알바생인 신세진을 매수하여 현찰과 우미, 그리고 식당내 분위기를 염탐하려고 작정한 것 같다. 이 신새신을 매수하는 장면은 역시 태연희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이다. 태연하게 너무 잘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매수 행위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표정만 태연할 뿐 머리는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이게 고상한 척 하는 태연희의 한계일까?) 


앞으로 현찰과 우미, 그리고 연희의 두뇌 싸움이 아주 치열해 질 것 같다. 서로의 음모와 음모가 불을 뿜고, 속고 속이는 싸움이 말이다. <수상한 삼형제>가 죽느냐 사느냐의 이판사판식 진흙탕 싸움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이런 와중에 다른 기타의 갈등들은 속전 속결로 해결이 되지 않을가 싶다. 이전에 하행선이 자취를 감춘 후로, 이제 연희의 문제도 분명하게 매듭지어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연희의 운명이 무척 궁금하다. 다음주 59, 60회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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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변하지 않는가?




엄청난은 종남의 친부인 하행선이 그녀의 곁을 떠나기까지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행선과 건강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엄청난은 친부인 하행선보다 자신과 종남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해준 건강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과정은 참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든 과정에서 엄청난의 변화를 보는 것은 드라마를 보는 작은 기쁨이고 보람이기도 했다.


엄청난은 하행선뿐만이 아니라 건강과 시댁 식구들에게 참으로 많은 피해를 끼쳤다. 그런 그녀였기에 하행선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보여준 엄청난의 변화에 호의를 보냈다. 그런 변화가 있었기에 하행선이 감동을 하고 조용히 떠난 것이다. 엄청난으로서도 당연한 자세였다. 종남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는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건강에게는 물론이고 시댁 식구들 모두에게 자신이 빚진 것들을 되갚아한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하행선과의 갈등의 과정에서 엄청난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청난이 변화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부족하다는 면에서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 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근본적인 변화는 엄청난의 마음의 깊은 곳에서 싹터면서 근본적인 변화의 결과, 이를테면 행동이나 말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은 여전히 이전의 잘못된 습관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우선은 근본적인 인격의 변화가 부족하다. 말투나 행동 같은 한 인간의 인격을 드러내는 습관이 여전히 천박에 가깝다. 특히 시어머니인 전과자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볼라치면 이건 며느리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리 시어머니에게 아양을 떨고, 애교를 부린다고 해도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지켜야 할 금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엄청난은 이러한 금도마저도 깨고 있다.



둘째는, 엄청난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듯한 겸손하지 못한 허세이다. 자신감이 있다는 것과 허세를 부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살기위해 돈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시어머니 전과자를 부려먹는 듯한 모습은 잘못이다. 아무리 엄청난이 임신을 해서 가사일 하기가 힘들다고 해도 최소한 밥상 정도 차리는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그곳도 어렵다면 밥상에 젓가락 하나 올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행선을 떠나게 한 엄청난의 변화가 고작 이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니 말이다. 시어미니 전과자가 아무리 별나다고 해도 엄청난은 그녀 자신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셋째는, 남편 건강에 대한 아내로서의 태도이다. 엄청난에게 건강의 존재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난에게 김건강이 없었더라면 청난과 종남은 하행선과 다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면 엄청난은 김건강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김건강과 하행선의 갈등의 와중에서 보아온 건강의 마음은 정말이지 진실했다. 이런 진실 앞에서 엄청난은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전개상 엄청난의 근본적인 변화가 서서히 나타나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만약 엄청난에게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엄청난의 건강에 대한 사랑은 의심받게 된다. 적어도 엄청난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건강에 대한 사랑과 하행선에 대한 결단의 진실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엄청난이 근본적인 자기 변화를 위한 계기를 어떻게 만들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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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어른들은 왜 다들 바보가 될까?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을 통해 어른들이 죄다 바보가 된다는 사실을 볼라치면 좀 불편하고 씁쓸해진다. 때로는 나이가 들어서의 고통과 때로는 나이가 들어서의 유쾌함이 다르긴 하지만, 죄다 바보로 만든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상 필연적으로 바보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에고 안타깝긴 매 마찬가지이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위인은 주범인이다. 계솔이개솔이와 사랑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 둘의 사랑은 아름답다. 나이 들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선입견은 버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문제는 어른인 주범인이 사위인 김이상이나 백마탄에게 소꿉장난 같은 사랑의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볼라치면 이건 도대체 뭔가 하고 머리가 띵해지며 넘어가기 일보직전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상이나 백마탄이 코치해 주는 내용들이 죄다 유치하기 짝이 없으니 더욱 어이가 없다. 주범인은 어찌 이토록 계솔이개솔이라면 사죽을 못 쓰면서 오만 궁상을 따 떠는지 이해부득이다.



둘째는 전과자이다. 드라마에서 가장 짜증나는 인물이다. 전과자는 요즘 너무 바보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엄청난과의 관계에서 특히 그렇다. 엄청난이 시어머니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입장에서 따끔한 조언이나 질책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엄청난이 하는 짓에 주눅이 들어 한다. 시어머니 전과자가 파출부도 아니고 그 잘난 용돈 몇 푼 가지고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며느리 엄청난이 아무리 머리에 든 것 없이 무지막지한 위인이지만, 그래도 시어머니로서 따끔한 충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상이다. 아직도 신혼인 이상이 어영과 별거를 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서 이상이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다.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그럴까? 아무튼 이상은 참으로 바보 같은 인물이다. 본가가 어렵다고 해서 혼자 훌쩍 본가로 떠나, 어영과 별거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이 유능한 형사인지는 모르지만 가정 경영은 완전히 빵점이며 바보 같은 처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가에는 자신의 형인 건강이와 엄청난이 있고 김순경이나 전과자가 그리 힘들지도 않는 것이다. 아니 힘들다고 해도 마치 마마보이처럼 본가로 혼자 와서 어영과 별거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믿기지가 않는다.


이외에도 계솔이개솔이, 건강이, 현찰이 모두 바보 같긴 마찬가지이다. 현찰의 문제를 잠깐 언급하자면 연희에게 사기를 당하고 제대로 대처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다. 왜 이렇게 하나 같이 어른들이 바보처럼 되어야 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첫번째 이미지: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004141752081
두번째 이미지: http://www.artsnews.co.kr/news/7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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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왜 김순경까지 망가트리나?




드라마<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무게중심의 역할을 해온 사람은 ‘수상한 삼형제’ 의 아버지인 김순경이다. 이 김순경의 진지한 말과 행동이 있었기에 그나마 <수상한 삼형제>가 어느 정도 현실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전과자의 포악한(?) 성격과는 달리 김순경은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가장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능한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 방법을 조언해주고, 해결하는 존재였다. 만약 김순경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드라마의 갈등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이다. 그만큼 김순경의 존재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엄청난을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도우미가 다시 학업을 시작하고 요리 학원을 다니는 것을 수용해 주는 것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김순경의 역할이 컸다. 전과자로 인해 생긴 고부간의 갈등의 와중에서도 아내 전과자를 다독이면서도 며느리들의 심정도 헤아리고 이해하는 자상한 남편이자 시아버지였다. 건강에 대한 조언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에서의 역할 뿐만이 아니었다. 김순경은 경찰로서도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하행선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엄청난에 대한 이해, 주위의 불우한 사람을 솔선수범 도와주는 데 이르기까지 선행을 베풀었다. 이런 경찰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경찰에 헌신한 삶이었다. 그야말로 민중의 지팡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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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가장이면서 동시에 모범적인 경찰이었던 김순경이 한 순간에 그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억울하게 경찰복을 벗게 된 김순경이 집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하기 때문이다. 몇 십 년을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집에 머물게 되면 그 인간 됨됨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아무리 이해를 해도 좀스럽게 변해버린 김순경의 모습은 도무지 지켜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전과자가 계모임을 가는 데 빨리 와라느니, 함께 가자느니 하며 전과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불편했다. 또한 가계부를 자신이 쓰겠다는 것이나,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이나 한 결 같이 이전의 김순경과는 너무 달라도 다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김순경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마치 주범인이 개솔이 앞에서 망가지는 것처럼이나 불편하다.


김순경이 이렇게 무너지면 이 드라마의 현실적인 신뢰감도 약화 될 수 밖는 없는 것이다. 가득이나 막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김순경 마저 일관성을 상실하는 것은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그기다 설상가상으로 이상과 태백의 낯 뜨거운 장난, 이상과 어영의 별거 아닌 별거 등이 더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제작진이 의도하는 것이 직장을 잃은 가장의 자화상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순경을 이토록 망가트리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고 본다. 왜 이렇게 인물들을 하나 같이 과장되고 희화화시키는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서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김순경 마저 말이다.
 

앞으로 김순경이 어떻게 변해 갈지는 모르겠지만, ‘사직‘이라는 사실이 인간을 이토록 심각하게 변화시키는 조건이라는 섣부른 강요는 삼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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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파장 분위기가 되어버린 수상한 드라마?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가 파장 분위기가 느껴진다. 스토리 전개가 느슨해지고 있는 데 의도적으로 종방에 맞추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나 싶다. 특히 연희와 현찰의 불륜, 며느리들과 시어머니 전과자의 갈등, 그리고 엄청난과 건강, 하행선의 갈등 이후에는 이렇다할 갈등이 부재한 체 스토리가 억지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어영과 이상의 갈등에 포개어져 다시 나타나고 있는 이태백 검사와의 갈등, 개솔이와 주범인의 문제, 김순경의 사퇴등 문제제기의 여지가 있는 그런 갈등들을 개진하고는 있지만 무언가 억지스러운 느낌을 뿌리칠 수가 없다.


우선, 어영과 이상의 갈등은 신혼 초 부부들에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가로 무작정 들어가려는 이상의 유치한 생각과 행동은 너무 유아적이다. 이상이 갑자기 마마보이가 된 형국이다. 아무리 자신의 부모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결혼한 처지에 자신의 아내(어영)을 남겨 놓고 별거 같은 일은 벌인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일까? 자신의 본가에는 형인 건강과 엄청난이 생활하고 있지 않는가? 자신이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김순경에게 통장을 주는 어영의 방법과 같이 말이다. 왜 이런 유치한 갈등을 만들어려는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또한 이태백 검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또 무슨 남녀가 소굽장난치는 식도 아니고 유치찬란하다.
 

다음으로, 개솔이와 주범인의 황혼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그래도 이상보다도 좀 낫지만 주범인의 사고와 행동이 개솔이와 관련되는 경우에는 너무 유치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김순경 앞에서, 어영이에게 조언을 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 근엄하고 위엄있는 주범인의 모습은 어디에 가고 완전 코믹한 주책없는 아저씨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랑이 이렇게 위대한(?) 것이구나 하고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상에게 코치를 받는 것이나, 그렇게 코치를 받고 개솔이에게 유치한 행동을 하는 것이나, 개솔이와 함께 방귀춤을 추는 것이나 이건 뭐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정신 분열증을 살짝 가진 분 같으시다. 웃음 속에 깃든 역설적인 느낌조차도 없다. 이 갈등이 그런대로 심각하다면 심각한데 주범인의 모습에서는 심각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하나의 예로, 현찰과 도우미의 보쌈집에서 일하는 개솔이를 만나기 위해 보쌈집을 찾아가는 주범인의 모습은 한 편의 코믹물이 따로 없다. 재미있게 보면 그만이지만 어느 정도 일관성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사랑이 인간을 변화시킨다고 하지만 이건 좀 심한 느낌이다.

솔이야~~



셋째로, 김순경의 사퇴이다. 이건 황당하다. 명예도 중요하지만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자식들을 다 결혼시키고 빚질 일이 없다지만 귤 두 개 받은 것으로 사퇴를 쉽게 결정해 버리는 것은 설득력이 너무 없다. 은퇴 이후의 노후 문제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해주고자 의도했겠지만, 사퇴하지 않고서도 김순경과 전과자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대책을 들려줌으로서 얼마든지 문제제기가 가능한 것이다. 굳이 설득력도 없이 사표를 수리하게 만들고서 그 집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다. 시청자들이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다. 상상의 여지만으로도 충분한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수상한 삼형제>의 제작진은 최후의 카드인 연희를 숨겨 놓은 채 시기를 저울질 하면서 별 쓸데도 없는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런저런 갈등들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대로 생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연희와 현찰의 갈등이 그래도 꽤 오래 진행되면서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고, 엄청난과 하행선의 갈등도 과장과 비약이 있었지만 설득력 있게 진행되면서 갈등이 해소가 되었다. 그 과정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갈등들은 이미 언급했지만 유치한 요소들이 너무 개입되면서 갈등의 진지함이 약화되고 있다. 주범인의 유치한 사고와 행동, 이상의 맘마보이로의 돌변, 이태백의 공사 구분 없는 행동, 김순경의 귤 2개의 에피소드까지 참 유치찬란한 지경이다. 뚝닥뚝닥해서 현찰이 보쌈집을 개업하고, 건강이 빌린 돈으로 또 뚝닥뚝닥 고물상을 차리는 정도는 애교로 봐 준다고 해도 말이다. 차라리 잠복해 있는 연희의 갈등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전처럼 다수의 갈등들을 배치해서 스토리를 진행해 나간다면 좀 더 시청률이나마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갈등 같지도 않는 갈등, 갈등을 희화하는 요소들이 가득한 이상한 갈등들을 전방위적으로 발생시키고 있는 현재, 무슨 다중 시점의 드라마도 아니고 중심점이 없이 산만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니 보는 사람들이 김이 빠진다. 그걸 알고라도 있는 듯이 연희의 얼굴을 한 번씩 드러내놓고 있는 것일까? 구원투수 연희의 투입이 필요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지1: 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pid=196489
이미지2: http://cafe.daum.net/ohjieunjjang/bvlQ/186?docid=1FORb|bvlQ|186|2010041610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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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시어머니 전과자가 진짜 문제인 이유?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는 갈등의 표본실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갈등을 선보이고 있다. 결국 갈등이야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보면 결국 인간들의 문제이다. 좀 더 나아가면 갈등이란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와 태도의 문제로 귀착된다. 이 가치와 태도가 충돌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인 것이다.


현재 <수상한 삼형제>에서 보여주고 있는 주요 갈등은 고부간의 갈등이다. 물론 개솔이와 주범인의 황혼 사랑과 현찰과 연희의 불륜에 의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지만, 핵심적인 갈등은 전과자-우미, 전과자-어영으로 이어지는 고부간의 갈등이 중심을 이룬다. 어영과 이상의 갈등도 이 고부간의 갈등에서 나오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건강과 엄청난의 갈등도 시어머니인 전과자와 엄청난의 갈등에서 비롯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여러 갈등들이 파생되어 나오는 근원적인 갈등에 고부간의 갈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전과자가 아들 김이상에게 일방적으로 아들로서의 의무만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이상과 어영과의 갈등이 완전히 줄어들 것이다. 엄청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전과자가 이상을 아들이기 보다는 어영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과는 이제 독립적인 존재로 간주한다면 갈등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엄청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아들인 건강의 아내로서 바라 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즉 이 말은 장가가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자식들이 귀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생각보다는 며느리들의 남편이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김순경의 아내로 좀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본다. 자식이란 자기(전과자)의 자식들이기도 하지만 다 큰 어른들이 되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존재인 것이다. 며느리의 남편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식들을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이건 너무나도 잘못된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을 며느리들에게 강요하기만 하니 언제나 갈등이 생기고 당사자인 며느리와 아들들은 자꾸만 힘들어 지는 것이다. 여필종부 식의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전과자에게 베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토록 케케묵은 사고방식에 빠져있단 말인가? 전통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전통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을 시켜서 분가시킨 자식 내외를 시댁으로 들어와라 마라 하는 식은 단순히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고집에 불과한 것이다. 아들이나 며느리는 무조건적으로 (시)어머니의 말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아들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전과자는 아들이나 며느리 덕을 봐야겠다는 생각, 며느리는 이러저러해야한다는 정형화된 인식, 그리고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과감하게 던져버려야 한다. 물론 며느리로서, 아들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식들도 어른이고 여러 가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통보나 강요는 서로를 너무 힘들게 만드는 태도인 것이다. 전과자는 부부 중심적으로 김순경과 함께 좋은 시간을 가지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들 다 키워 놓았으면 이제는 그만 내버려 두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전과자는 자식과 며느리에게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변화를 시도해야 하나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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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눈에 바라는 것> 이란 영화가 있다. 일본영화인데 참 의미있게 본 영화다. 재미는 없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어 세 번을 본 영화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기 성찰의 영화이다. 왜 필자가 이 영화에 자꾸만 끌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또 보고 싶으니 말이다.


이 <눈에게 바라는 것>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수상한 삼형제>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인물은 엄청난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은 필자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별 관계가 없는 영화가 떠오르면서까지 엄청난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엄청난에게 관심이 있나 보다.


엄청난은 참 많이도 변화해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근원적인 변화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현찰이 연희에게 된 통 당하면서 마음 밑바탕에서 변화가 생기듯이, 연희가 본심을 드러내며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 듯 무언가 분명하게 선하던, 악하던 근본적인 변화를 드러내 주면 좋겠다는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는 무언가 미지근하게만 느껴진다. 하행선이 떠나는 그 과정에서 보여준 엄청난의 변화는 외부적인 변화였다면 이제는 좀 더 내면적인 자기 성찰을 좀 하는 모습이 있으면 좋겠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410100916609&p=sisain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건강과 종남만이 아니라 시부모에 대해서, 시동생들에 대한 변화이다. 이 문제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 한 바가 있다(2010/04/15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삼, 하행선이 떠난 이후 엄청난의 숙제는?). 가족이 생기면 역할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형님이 된다. 그 확대된 역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건강, 종남)에게만 관심이 머무른다면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역할들에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그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 정도는 해야하는 것이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한 아침라면의 경우가 그런 것이다.


건강과 청난이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만 올인하고 있다. 아무리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을 팽개쳐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가 자신의 역할들을 중단시켜야 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눈에게 바라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이 형님에게로 도피해 오고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자기 성찰의 과정을 겪는다. 아무리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도 말이다. 바로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밋밋하지만 재미없지만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엄청난에게는 그런 근본적인 자기 성찰이 없다. 물론 건강에 대한 고마움, 시부모에 대한 고마움이 없을 리야 없다. 그러나 왠지 미덥지가 못하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어야 보며 자신을 받아들여 준 건강, 자신을 며느리로 인정한 시부모, 시동생들에게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 과정이 전혀 시끌벅적할 필요는 없다.


이 엄청난은 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이다. 주인공으로서의 가장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 인물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랑을 받으며 변화해 가고 있고 그 변화를 흐뭇해하고 있지만 약간 간이 덜 된 국물 같아 이런 사족 같은 글을 쓴다. 고아, 미혼모, 하행선 이라는 굴곡 많고 파란만장했던 삶이었기에 이런 미지근한 변화가 아쉽다는 것이다. 오랜 된 관습을 하루 아침에 깰 수는 없는 것이지만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면적으로 단단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부여주면 좋겠다. 막장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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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눈에 바라는 것> 이란 영화가 있다. 일본영화인데 참 의미있게 본 영화다. 재미는 없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어 세 번을 본 영화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기 성찰의 영화이다. 왜 필자가 이 영화에 자꾸만 끌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또 보고 싶으니 말이다.


이 <눈에게 바라는 것>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수상한 삼형제>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인물은 엄청난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은 필자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별 관계가 없는 영화가 떠오르면서까지 엄청난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엄청난에게 관심이 있나 보다.


엄청난은 참 많이도 변화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근원적인 변화란 사실이다. 현찰이 연희에게 된 통 당하면서 마음 밑바탕에서 변화가 생기듯이, 연희가 본심을 드러내며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 듯 무언가 분명하게 선하던, 악하던 근본적인 변화를 드러내 주면 좋겠다는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는 무언가 미지근하게만 느껴진다. 하행선이 떠나는 그 과정에서 보여준 엄청난의 변화는 외부적인 변화였다면 이제는 좀 더 내면적인 자기 성찰을 좀 하는 모습이 있으면 좋겠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410100916609&p=sisain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건강과 종남만이 아니라 시부모에 대해서, 시동생들에 대한 변화이다. 이 문제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 한 바가 있다(2010/04/15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삼, 하행선이 떠난 이후 엄청난의 숙제는?). 가족이 생기면 역할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형님이 된다. 그 확대된 역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건강, 종남)에게만 관심이 머무른다면 바람직 한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역할들에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그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 정도는 해야하는 것이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한 아침라면의 경우가 그런 것이다.


건강과 청난이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만 올인하고 있다. 아무리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을 팽개쳐도 된다는 것을 으미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가 자신의 역할들을 중단시켜야 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눈에게 바라는 것>은 모든 것을 읽은 주인공이 형님에게로 도피해 오고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자기 성찰의 과정을 겪는다. 아무리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도 말이다. 바로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밋밋하지만 재미없지만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엄청난에게는 그런 근본적인 자기 성찰이 없다. 물론 건강에 대한 고마움, 시부모에 대한 고마움이 없을 리야 없다. 그러나 왠지 미덥지가 못하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어야 보며 자신을 받아들여 준 건강, 자신을 며느리로 인정한 시부모, 시동생들에게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 과정이 전혀 시끌벅적할 필요는 없다. 이엄청난은 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이다. 주인공으로서의 가장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 인물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랑을 받으며 변화해 가고 있고 그 변화를 흐뭇해하고 있지만 약간 간이 덜 된 국물 같아 이런 사족 같은 글을 쓴다. 고아, 미혼모, 하행선 이라는 굴곡 많고 파란만장했던 삶이었기에 이런 미지근한 변화가 아쉽다는 것이다. 오랜 된 관습을 하루 아침에 깰 수는 없는 것이지만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면적으로 단단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부여주면 좋겠다. 막장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졸은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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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김순경을 보며 세상을 원망하게 되는 이유?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는 성격적인 결함이나 사회적인 편견을 가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을 덮어 쓴 이유도 이런 인물들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비중있는 인물들 중에서, 수상한 삼형제의 아버지 김순경 만은 거의 무결점의 인물이다. 만약 그가 없다면 수상한 삼형제는 인격적으로 내세울 만한 인물들이 없다.


김순경은 지구대에 근무를 하면서 경위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주위의 불우한 이웃을 조용히 돕는 등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민중의 지팡이로 자부할 만큼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다. 이런 경찰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이 필자의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모범적인 경찰관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공공의 적>같은 경찰 영화에서 보아왔던 약간은 불량스러운 경찰상에 익숙해져서 일것도 같다. 물론 현실 속의 경찰은 많이 다를 것이다. 아무튼 김순경은 참으로 계급과 관계없이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그런 김순경이 귤 2개 때문에 좌천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이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책임도 크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않은 감찰반의 잘못도 크다고 본다. 사실 표창을 받아야 하는 김순경이 오히려 좌천을 당하고 치욕을 받고 사표를 낼 정도라면 이건 정말 잘못된 것이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4112336481001




드라마상으로 볼 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도 건강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잘 살고 있는 엄청난이나 과거의 전력을 용서받은 주범인, 그리고 불륜에서 허덕이던 현찰이 도우미로부터 용서를 받는(연희에게 된 통 당하고는 있지만) 사실등과 비교해 볼 때 귤 2개로 목이 날아가는 상황에 처한 김순경의 처지는 너무 딱해 보인다. 선하게 산 사람들은 약삭빠르지 않기 때문일까? 이게 무슨 장발장의 비극도 아니고 무슨 귤 2개 때문에 이런 험한 꼴을 당한다는 게 어이가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이게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법 없이 살 사람이 법으로 피해를 보는 현실은 법의 존재 근거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법이 지켜주어야 할 사람을 오히려 지키지 못한다면 그 법은 죽어있는 법이지 살아있는 법이 아닌 것이다. 권력을 남용해서 법을 사유화 한다거나 무력화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이것을 법치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권력을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휘두르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이런 현실에서 귤 2개로 사표를 수리하고 하는 김순경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모처럼 막장 드라마의 오명을 덮어쓰고 있는 <수상한 삼형제>가 의도적이던 아니던 현실 비판적인 내용을 선보인 것이다.
 

만약 김순경의 귤 2개의 잣대를 정치인들나 경제인들에게 들이댄다면 과연 자유로울 인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양보해서 드라마 상에서 감찰반이 그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경찰의 부정과 부패를 잘 지적하고 엄벌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현실의 경찰이나 검찰은 어떨까?


너무나 성실하게 살아 온 김순경에게 닥친 사건은 해피엔딩이란 결말과는 무관하게 그 오해가 풀리면 좋겠다. 드라마가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이상 김순경의 경우가 현실에 타산지석이 되면 좋겠다. 정말 김순경 같은 사람들이 존경받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 법의 형평성이 깨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그런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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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 하행선이 떠난 이후 엄청난의 숙제는?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에 있어서 엄청난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등장인물도 없다. 엄청난의 출생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건데 부모를 일찍 여윈 고아이거나 미혼모의 버려진 아이인지도 모른다. 엄청난이 미혼모로 자신의 아이인 종남에게 엄청나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 애정 결핍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아에, 미혼모라는 삶은 우리 사회에서는 살아가기가 힘들 정도로 냉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신분의 벽이 없다고 하지만 고아이며 미혼모인 엄청난이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에게 하행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 않았다. 그녀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종남을 양육해야 하는 미혼모로 더 극한 고통이 더해졌을 뿐이다. 자식을 돌 볼 능력도 없고, 가정을 꾸릴 능력은 더더구나 없었을 하행선이 엄청난에게 사랑을 보여주었을리도 만무하다.
   


이런 신산한 삶을 살아 온 엄청난에게 건강은 어떤 존재인가? 엄청난이 건강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은 건강이가 돈이 많아서도, 얼굴이 잘 생겨서도 아니다. 오직 사랑이고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이다. 엄청난은 철없던 시절 박력 넘치는 사내 하행선에게 한 번에 '뿅' 간 것이 얼마나 큰 실수 인지를 뼈속 깊이 깨닫고 있다. 그 어떤 것보다 미혼모가 되어버린 엄청난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일종의 화두가 되었을 것이다. 사내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별 잘 생기지도 못하고, 돈도, 능력도 없지만 오직 순수하고 진실한 건강을 자신의 남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엄청난에게 하행선은 떠났다. 그녀의 곁에는 건강이 있다. 종남의 아빠이자 자신의 남편인 건강이 있다. 엄청난에겐 어느 순간 보다도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건강이 있고, 건강하게 자라는 종남이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은 진심으로 감격에 겨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사실, 엄청난은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녀를 짓누르던 하행선이란 존재도 사라졌다.
 


그러나 엄청난에게 하행선이 떠난 것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 된 것은 아니다. 엄청난의 삶에서 하행선 떠난 이후의 삶이야 말로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꾸리고, 시부모가 생기고, 서방들이 생기고, 동서들이 생긴 것이다. 한마디로 고아인 엄청난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생긴 것이다.(이와 관련해서는 엄청난의 시어머니인 전과자의 역할은 누구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전과자는 비록 자신이 시어머니라는 위치에 있지만 엄청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과자에게 이러한 것을 바라기는 요원한 실정이다.) 따라서 엄청난은 며느리, 형님 등 가족으로 확대된 역할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글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서, 몇 일전 필자는 엄청난이 좀 더 분방해야 된다는 뜻에서 아침라면 (2010/04/11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삼, 맏며느리가 끓인 아침라면 문제가 뭐길래?)에 대해 언급하면서 엄청난이 좀 더 잘 해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한 적이 있다. 이 포스트로 필자는 '엄청난'(?)  비난의 댓글을 감수해야 했다.

 


근데 사실 그건 오해다. 엄청난이 맏며느리로서 시댁 살림을 도맡아 해야 된다는 소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완전히 등한시 해왔던 가족 내의 자신을 역할을 좀금씩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하는 정도였다. 오해를 풀면 좋겠다. 


아무튼 다시 이전의 글 흐름으로 돌아와서, 엄청난이 처한 가장 급박했던 하행선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가족 내의 역할을 좀 더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건강과 자신의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볼 때 어쩌면 가족내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가족을 내팽개 칠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의 변화가 이왕 마음 깊숙이에서 일어났다면 시부모, 시동생들, 동서들과의 관계 변화도 시도해 봄직 하다. 도우미가 하던 그 역할을 엄청난이 하루 아침에 하기란 힘들 겠지만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엄청난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건강을 선택한 그녀의 눈에서 그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집집마다, 전기 밥솥 없는 집이 없다. 없어도 괜찮다. 결국 엄청난이 남편 건강과 아들 종남에게 비록 찬거리는 몇가지 없다고 해도 따뜻한 흰 쌀밥을 먹여야 할 테고, 그렇게 해야 할 밥이라면 시부모도 함께 공양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점에서는 시어머니 과자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집안 청소나 빨래 같은 것도 주말에 건강과 함께 협력해서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이다. 엄청난이 맏며느리이니까 과거 조선시대의 아낙네들 처럼 허리 펼 날 없이 죽도록 일만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엄청난의 변화의 방향이 건강과 종남을 향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녀에게 새로 생긴 가족을 향한 것이기를 소원해 본다.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를 통해 엄청난의 변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참 즐거운 시간이다.


첫번째: http://news.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7561553&contain=&keyword=&page=1
부번째: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410100916609&p=sisain
마지막: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3190854059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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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 태연희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드라마<수상한 삼형제>의 제작진이 하행선의 에피소드를 노련하게 잘 처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연희이다. <수상한 삼형제>에 호의적인 필자도 연희에 대해서는 그 불만스러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의 정체성이 너무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52회에서 연희와 설켜있는 현찰의 아버지 김순경이 누군가 찍은 사진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끝났다. 판단컨대 연희의 소행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여겨진다. 연희가 아니라면 김순경을 매장시키려고 할 사람이 드라마에서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현찰에 대한 증오와 복수를 하려고 하는 장본인이 연희가 현찰 부부는 물론이고 부모까지 파탄나게 하는 것 처럼 보인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고 할 때도 그 변호(2010/03/15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삼형제, 막장이라 하면서도 시청률이 높은 이유는? 2010/03/01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이유?)에 나섰던 필자이고 보면, 연희의 변화를 접하면서 그 변호의 정당성을 잃고 있는 듯 하다. 무슨 조직 폭력배나 사이코 드라마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연희가 비정상적으로 돌아버리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희는 현찰과의 불륜의 실패로 가정 파괴범이 되고 있고, 조직폭력배의 공범 또는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으며, 사이코의 징조도 보인다.
 


우선, 현찰에게 진술 번복의 댓가로 우미와의 이혼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김순경을 궁지로 몰아 넣는 비열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현찰의 가정을 풍비박산 풍지박산 내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 현실에서 남녀의 치정 문제가 살인을 낳고 비극을 초래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폭력조직까지 연계해 가면서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일가족 전체를 파탄시키려 하는 것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대체로 돌발적이고 의도적이라 해도 유치하다. 그러나 연희의 경우는 정말 스텍터클한 복수극이 아닐 수 없다.

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ut=1&name=/news/entertainment/201004/20100413/a4m77107.htm


둘째, 현찰이 자신의 동창이고, 우미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에 모르는 타인이 아니다. 이런 현찰을 불륜의 늪으로 유혹한 것은 현찰의 잘못이 일정 부분 있다고 하더라도, 연희 스스로 우미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건 적반하장이다. 자신의 잘못 조차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연희가 사이코가 아닐 수 있겠는가? 


셋째, 조직폭력배와 연계되어 있다. 사실상 조직 폭력배의 공범이고 하수인일 수 있지만 연희의 모습은 마치 폭력 조직의 보스 같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아니면 조직 두목이 내연녀거나. 


도대체 연희를 왜 이렇게 만들어 버렸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못하겠다. 이와 관련해서 <수삼>이 막장이라고 하면 이제는 무슨 핑계라도 만들 수 있을까? 


필자 개인적으로는 근본적으로 연희가 나쁜 여자라고 결코 여겨지 않았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연희의 심정을 헤아리고자 연희의 입장이 되려고 자기 최면 같은 것도 걸기도 했다. 실수는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연희가 인간 말종이 아니기에 그 실수를 비록 늦게나마 깨닫으리라 생각했다. 이것이 <수삼>에 거는 최소한의 기대였다. 그런데 이런 연희를 하행선보다도 더 철저하게 냉혈녀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2010/04/05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연희에게 밀리는 악한 하행선의 치욕?) 왜 이렇게 무모하게 인물들을 고문하려는지 모르겠다. 드라마의 전개상 적당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연희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 불륜의 실패 때문에 폭력조직과 공모하고, 가정을 파괴하며, 그 자신이 사이코가 되는 이러한 연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불편하다.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이끌어가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주말 저녁 가족드라마의 시청대에 이런 극단적인 모습으로 치달아야 할까? 삼형제를 수식하는 '수상한' 이라는 조금은 애교있는 의미에 걸맞게 연희도 그런 정도의 '수상한' 여자 친구에 위치 할 수 없었을까? 연희를 통해 더 큰, 보다 더 큰 자극을 만들어 내려는 제작진이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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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 하행선은 '상행선' 을 탔다?






52회에서 하행선은 드디어 엄천난과 종남, 그리고 건강 곁을 떠났다. 하행선은 감옥 출소 후 주변을 맴돌면서 내내 엄청난과 건강에게 큰 정신적인 압박감은 주었다. 이 하행선과의 갈등은 엄청난에게는 가장 큰 시련이자 고통이었다. 건강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엮어내면서 이제 하행선과의 갈등은 해소가 되었다. 판단컨데 이제 엄청난이나 건강의 갈등은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진행되리라 여겨진다. 



하행선이 떠난다는 사실은 이미 <수상한 삼형제>의 다소 유치하고 미흡한(?) 스토리 전개상 이미 예견되다 보니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그런 박진감은 없었다. 하행선이 시원하게 보여준 행동이 다소 고루하고 신파적인 성격은 강했지만, 그래도 교도소 출감 이후 건강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감동받으며 변화하는 모습에서 하행선을 변화시키는 내적 필연성이 전혀 터무니 없거나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행선이 떠나는 식의 이별이 기시감을 강하게 몰고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변화의 과정은 공감의 여운을 충분히 남긴다고 본다. 여기에는 엄청난과 건강의 연기력이 한 몫했다고 본다.
 

하행선이 수감되어 있을 때만 해도 <수상한 삼형제>에서 하행선 만한 악한은 없었다. 이마에 낙인이 찍힌 망아지 같았다. 그런 그가 건강의 진실한 모습을 보면서 변화하는 과정은 소설의 묘사나 서술 만큼 세련미는 없었지만 드라마가 이끌어 가는 내용 하나만큼은 공감할 수 있었다. 이 변화는 어떻게 보면 고귀한 변화일 수 있다. 막장 드라마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사실 하행선의 에피소드는 해피 엔딩이 아니고 새드 엔딩이다. 쉽게 건강과 엄청난에게 찾아온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하행선의 몫은 사라지고 만다. 이 에피소드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하행선이 주인공일 수 있다. 하행선은 조폭영화에서나 보는 조폭의 객기와는 다른 그런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변화를 겪은 하행선이 어디가서 객기나 부리거나 폭력을 행사할까?  가족은 사랑하지만 갱의 패밀리를 위해서는 살인을 서슴치않은 그런 부류와 같을 수 있을까? 이렇게 갈등하는 하행선이 된 것, 이렇게 변화한 하행선이 너무 좋아졌다. 


그러고 보면 하행선은 자신의 이름처럼 하행선을 탄 것이 아니다. 하행선은 <상행선>을 탔다. 모두를 이겼다. 막장드라마라고 등을 돌렸을 모든 사람들도 이겼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만약 하행선이 변화를 겪는 시점을 따라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면 과연 어떤 영화가 만들어 질까? 또한 한편의 소설을 만든다면 어떤 소설이 만들어질까? 전혀 질 낮은 영화나 소설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하행선의 시점은 성숙한 정신을 드러내 줄 것이다. 그 변화는 순수한 건강에게서 받은 이질적인 느낌들로 가득 찰 것이다. 이 이질감에 당혹해 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하행선의 모습이 얼마나 새로울까? 교도소도, 학교도, 우리 사회도 하지 못한 일이다. 건강이라는 한 사람의 순한 바보같은 인간이 이루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영화나 소설에서라면 엄청난 반전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반전 같은 것이 없다고 해서 하행선의 변화가 고루하고 신파적이라고만 하면 안된다. 내적 필연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기에 <수상한 삼형제>에서 하행선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 존재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하행선은 <수상한 삼형제>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만약 또 하행선의 머리를 내밀게 한다면 그 땐 정말 <수상한 삼형제>보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하행선의 처리가 참 깔끔하게 되어서 좋다. 아무리 뻔한 결말이었다고 해도 쉽지 않은 선택을 해준 하행선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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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 아침라면? 도대체 엄청난이 변화고 있는 게 맞나?





50회에서 도우미와 현찰이 집을 나가고 이제는 시어머니 전과자와 엄청난만이 남았다. 51회에서는 시어머니 전과자의 이해할 수 없는 상반된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현찰의 불륜 때문에 학원 수강을 하면서 가사일을 할 수 없다고 전격 선언한 도우미에게 된 통 당하고서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시어머니 전과자는 사오정 같기만 하다. 혼자 되어 편안하다고 하면서도 엄청난의 서툰 가사일에는 불편해 하는 모습에서 도대체 엄청난과 살고있는 큰 아들 건강이를 그토록 믿기만 하면서 둘째 아들 현찰을 차갑게만 대하는 그 태도를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우미가 가사일을 맡으면서 실제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해왔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맏며느리는 엄청난이다. 그렇다면 엄청난은 맏며느리로서의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건강과 함께 고물상 사업을 하면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야말로 '최소한의 노력' 은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밥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이 아닌가? 가사노동이라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엄청난이 맏며느리 라면 도우미가 한 노력의 십분의 일은 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드라마 보면서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이, 엄청난이 아침밥으로 라면을 끓여서 내놓은 것이다. 시아버지 김순경도 기가 찰 노릇이다. 전관과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을 위해 역성을 드는 건강이는 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부창부수다. 따뜻한 밥에 반찬 몇가지 해 놓으라는 식의 타박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엄청난의 편을 들고 나서는 것은 보기가 정말 민망했다. 


건강이에 대한 언급은 각설하고, 엄청난의 경우는 제작진에서 무언가 변화를 모색한다면 이런 경우가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갑작스럽고 큰 변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엄청난의 변화를 보고있는 시청자들에게 라면 아침밥은 그야말로 민망할 정도이다. 종남이를 그토록 사랑하는 엄마로서 엄청난이 시부모에게 고작 이정도 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니 제작진이 변화를 시킬려면 좀 제대로 변화를 시키면 좋겠다.





엄청난이 따뜻한 밥을 짓고, 반찬을 하고 해서 시부모에게 대접하는 모양을 볼 수 있었다면 엄청난의 변화가 근본적인 변화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종남이를 사랑하는 모성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건강이를 그토록 사랑하고 하행선을 거부하는 그 행동이 아직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렇게 시부모에 대한 태도 때문인 것이다. 물론 엄청난의 마음이야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가사일을 배워야 한다고 본다. 엄청난은 언제나 입만 살아 거짓말을 밥먹듯이 했기 때문에 진실어린 실천이 따르지 않아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다. 엄청난은 우미가 떠났다고 해서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맏며느리로서 자신의 역할을 몸소 실천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엄청난이 언제쯤 철이 들지 모르겠다. 엄청난이 철이 좀 들어라고 제작진이 고물상을 그 상징으로 도입했을 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정말 철이 들어야 한다. 요즘 철없는 며느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예, 연희처럼 악녀로 만들겠다고 의도하지 않았다면 좀 더 철저하게 개과천선하는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그 밑바탕이 싹 달라지면 좋겠다. 종남이에게 그토록 헌신적이라면 그리 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무슨 모성 과도비대증도 아니고 종남이에 대한 사랑은 그토록 진실하게 보이게 해놓고 시부모에 대한 태도는 맏며느리로서는 빵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제작진이 원망스럽다. 아침상으로 라면을 차려 놓는다면 말 다 한 것이 아닌가. 


제작진에게 바라건데, 엄청난의 근본적인 변화, 악이든 선이든 납득이 갈 수 있도록 그려주면 좋겠다. 엄청난에게 좀 더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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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 김건강에게는 모유 수유가 꼭 필요하다?




<수상한 삼형제>는 이름 그대로 참 수상한 삼형제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이 중에서 첫째 건강이야 말로 수상을 넘어 '속상' 한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물론 이전의 건강과 현재의 건강을 비교해 보면 인간다운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독립심이나 판단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의지박약한 인간에서 엄청난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건강을 응원했다. 사람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


건강이 엄청난에게 결혼 사기를 당하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침내는 그 아이 종남의 생부인 하행선까지 대면하면서 겪고 있는 그 험난한 인생행로는 동정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니 동정에만 그칠 정도가 아니라 순수한 남편, 끝까지 아내와 자식을 책임지려는 한 진실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정말 바보스럽긴 하지만 순수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인물이 되어갔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이러한 기대가 한 순간에 날아가고 말았다. 고물상을 하겠다며 선뜻 나서면서 자신의 어머니 전과자에게 5천만원을 빌려달라는 대목에서였다. 사업 경험이 없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 구체적인 계획조차도 없이 고물상을 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5천만원을 빌리는 것이다. 한숨이 나왔다. 결국 건강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구나!


건강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안다. 그러기에 다시 일어서려는 절박함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두 살 먹은 아이도 아니고 전과자에게 5천만원을 빌려달라고 어리냥을 부리는 모습은 참 철없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에게 아내와 자식이라는 부양해야할 가족이 생겼으니 자신이 경제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엄청난과 어렵게 부부의 연을 이어가면서 건강이가 보여준 삶의 희망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이러한 건강의 삶에 대한 노력이 드라마 구성의 엉성함으로 말미암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전달되지는 못했지만 전달되는 느낌만큼은 강렬했다. 찜질방에서 잡일은 기본이고, 신문 배달, 도로 위에서의 뻥튀기 장사 등 건강이 보여준 일련의 노력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이 감동적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신파조나 즉흥적인 구상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작품 구성상의 흠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는 감동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이 이 모든 노력의 가치들을 포기하고 갑자기 고물상을 하겠다며 자신의 어머니인 전과자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쉽게 말하고 또 쉽게 허락을 받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답지 않는 성급한 부탁이었다. 어머니 전과자로서도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해도 적지 않은 5천만이라는 돈을 거래한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이 전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건강이 자신의 노력이라는 탑을 스스로 허물어 버렸다는 것이다. 한 순간에 생각 없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5천만을 빌린다는 것은 생각이 없어도 너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를 통해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인 가치관과 삶에서의 입장들 간의 충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건강과 전과자의 관계는 우리 사회의 장자편애와 지나친 혈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아니 그렇게 선고해버리기도 하지만 '가치관과 삶에서의 입장들 간의 충돌' 을 보여주고 그 관계들과 입장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은 의미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과자-건강-현찰-우미의 관계가 우리 사회의 가족 구성원들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게 하는 것이 그렇다.
 

아무튼 건강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이미지가 갑작스런 고물상 사업과 5천만원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엄청난에 대한 순수하고 바보 같은 사랑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갈채를 보냈지만, 여전히 자립하지 못하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는 유아적인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보아 줄 수가 없다. 건강의 갈 길이 아직도 이렇게 멀다는 말인가?


첫번째 이미지 출처: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26986
두번째 이미지: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003151217393&mode=sub_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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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 건강이 다시 실망스러워진 이유?




<수상한 삼형제>는 이름 그대로 참 수상한 삼형제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이 중에서 첫째 건강이야 말로 수상을 넘어 '속상' 한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물론 이전의 건강과 현재의 건강을 비교해 보면 인간다운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독립심이나 판단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의지박약한 인간에서 엄청난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건강을 응원했다. 사람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


건강이 엄청난에게 결혼 사기를 당하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침내는 그 아이 종남의 생부인 하행선까지 대면하면서 겪고 있는 그 험난한 인생행로는 동정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니 동정에만 그칠 정도가 아니라 순수한 남편, 끝까지 아내와 자식을 책임지려는 한 진실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정말 바보스럽긴 하지만 순수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인물이 되어갔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이러한 기대가 한 순간에 날아가고 말았다. 고물상을 하겠다며 선뜻 나서면서 자신의 어머니 전과자에게 5천만원을 빌려달라는 대목에서였다. 사업 경험이 없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 구체적인 계획조차도 없이 고물상을 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5천만원을 빌리는 것이다. 한숨이 나왔다. 결국 건강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구나!


건강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안다. 그러기에 다시 일어서려는 절박함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두 살 먹은 아이도 아니고 전과자에게 5천만원을 빌려달라고 어리냥을 부리는 모습은 참 철없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에게 아내와 자식이라는 부양해야할 가족이 생겼으니 자신이 경제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엄청난과 어렵게 부부의 연을 이어가면서 건강이가 보여준 삶의 희망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이러한 건강의 삶에 대한 노력이 드라마 구성의 엉성함으로 말미암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전달되지는 못했지만 전달되는 느낌만큼은 강렬했다. 찜질방에서 잡일은 기본이고, 신문 배달, 도로 위에서의 뻥튀기 장사 등 건강이 보여준 일련의 노력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이 감동적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신파조나 즉흥적인 구상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작품 구성상의 흠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는 감동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이 이 모든 노력의 가치들을 포기하고 갑자기 고물상을 하겠다며 자신의 어머니인 전과자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쉽게 말하고 또 쉽게 허락을 받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답지 않는 성급한 부탁이었다. 어머니 전과자로서도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해도 적지 않은 5천만이라는 돈을 거래한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이 전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건강이 자신의 노력이라는 탑을 스스로 허물어 버렸다는 것이다. 한 순간에 생각 없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5천만을 빌린다는 것은 생각이 없어도 너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를 통해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인 가치관과 삶에서의 입장들 간의 충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건강과 전과자의 관계는 우리 사회의 장자편애와 지나친 혈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아니 그렇게 선고해버리기도 하지만 '가치관과 삶에서의 입장들 간의 충돌' 을 보여주고 그 관계들과 입장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은 의미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과자-건강-현찰-우미의 관계가 우리 사회의 가족 구성원들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게 하는 것이 그렇다.
 

아무튼 건강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이미지가 갑작스런 고물상 사업과 5천만원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엄청난에 대한 순수하고 바보 같은 사랑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갈채를 보냈지만, 여전히 자립하지 못하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는 유아적인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보아 줄 수가 없다. 건강의 갈 길이 아직도 이렇게 멀다는 말인가?


첫번째 이미지 출처: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003151217393&mode=sub_view

두번째 이미지: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26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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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연희에게 밀리는 악한 하행선

 



드라마<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인물은 하행선이었다. 감방이나 교도소의 면회실에서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든 하행선은 그야말로 악한의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하행선은 거짓으로 건강과 결혼한 엄청난이 넘어야 할 가장 험난한 산으로 여겨졌다. 건강이나 엄청난의 앞을 가로막을 하행선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거 정말 엄청난이 어떻게 감당할까? 건강은 과연 하행선의 등장으로 엄청난을 포기할까 하는 등의 의문을 몰고 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토록 인상이 험악하고 강렬한 하행선이 교도소를 출소하여 엄청난과 종남을 찾아나서면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에서 본 하행선은 교도소에서 보여준 그 험상궂은 이미지의 위력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하행선이 출소하고 보여준 이미지는 의외로 코믹하고 우유부단하며 마음이 그런대로 따뜻한 모습이다. 의외의 이미지 변신이 아닐 수 없다. 폭풍을 예고하던 하행선의 교도소 이미지가 출소 후에는 코믹하기도 한 이미지로 변하면서 하행선과 엄청난, 그리고 건강이 빗어내는 갈등이 너무 싱그워지고 말았다. 앞으로 그들의 관계도 짐작이 쉽게 갈 정도로 말이다.


이런 하행선과는 달리 오히려 연희가 악녀로 변신한다. 이러한 변화는 극적인 반전에 가까운 정도다. 교도소에서 무척이나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가늘게 실눈을 뜨던 하행선이 그 인상에는 걸맞지 않는 시시하고 다소 코믹한 인간으로 변하는 반면, 불륜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눈물이 있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던 연희가 하행선보다도 더 악한 악녀로 변신한 것은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삼형제중 셋째 김이상을 추근거리는 듯한 이태백이 검사이고, 현찰을 유혹하는 연희가 대학을 졸업하고 찜질방에서 실장을 맡을 정도로 업무능력이 뛰어난 여자이고 보면 이 둘에게는 이상이나 현찰과 벌이게 될 갈등이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태백의 경우는 검사라는 신분부터 애당초 심각한 갈등을 몰고 오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연희의 경우는 사적으로 현찰을 유혹하지만 찜질방의 실장이라는 공적인 직책상 또한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리라 생각지 못했다. 연희가 현찰을 유혹하고 그 과정에서 따귀를 맞긴 했지만 뒷마무리는 쿨하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교도소를 출소하기 전이나 후에 인상이 험악한 하행선은 건강과 엄청난에게는 '엄청난' 위협적인 인간으로 여겨졌다. 금방이라도 살인이라도 칠 기세였다. 하행선을 볼 때마다. 엄천난과 종남이가 어떻게 될지, 또한 건강이는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교도소에서 인상이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하행선이 출소 후 김빠지는 코믹한 존재가 되고 말았으니 완전히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다. 혹시 '여성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악녀가 되어버린 연희도 맥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찰에게 따귀를 맞고 박사기와 사기를 공모하는 그야말로 황당하게 돌변한 연희를 보면서 그 종말의 끝이 선명하게 보이긴 마찬가지이다. 시청자들을 그저 시원하게만 하려는 제작 의도가 그저 고스란히 보인다.


아무튼 <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악독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하행선이 다소 코믹한 인간으로 변하고, 현찰을 유혹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공감의 여지는 있었던 연희가 오히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녀가 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 속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작가의 속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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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연희는 양심도 없는 악녀였다.

 



연희가 드디어 악녀 본색을 드러내었다. 연희에 의한 복수전이 제법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사실 이 복수의 주제는 하행선에게서 기대(?)를 했는데 예상을빗나가고 말았다. 하행선은 이름 그대로 완전히 하행선을 달리고 있을 뿐이다. 교도소 감방에서 보여주든 결연한 보복의 표정은 어디 가고 때로는 코믹하게 변하고 있다. 두고 볼 일이지만 하행선의 분노는 목하 용두사미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고 보니 하행선은 연희에 비하면 천사같다.   


연희는 제 입으로 우미에게 "그 정도 수준밖에 안돼?" 라는 소리를 아주 도도하게 내뱉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말은 연희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연희의 수준은 그야말로 '완전 발바닥이다'. 적어도 말은 알아듣는 여자인 줄 알았다. 교양도 제법 있는 여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연희의 본색은 그야말로 '똥색' 에 지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동창으로써 현찰과 우미에게 하는 짓은 너무나 잔인하다. 어떻게 동창에게 저럴 수가 있는가 라고 할 정도이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복수의 칼날을 품고 현찰을 노골적으로 죽이려고 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여자가 독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는 말이 바로 연희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현찰에게 뺨을 맞고 현찰과의 불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노골적으로 현찰을 매장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악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연희에게는 일말의 양심이 살아있다고 믿었다. 초등학교 동창에다가 현찰과 우미 사이의 갈등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었기에 현찰에게 맞은 따귀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연희는 그러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고 말았다. 상식적인 선을 완전히 넘어버리면서 악녀로 다시 태어나고 말았다. 악녀의 탄생이다. 연희는 자신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기 전에는 그래도 약한 여자의 모습을 가끔씩 보여주기도 했다. 그랬기에 현찰과의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한편으로는 혼자서 살아가는 이혼녀 연희를 '감정적' 으로 동조해 주기도 했다. 얼마나 외로우면 저렇게 현찰에게 추근댈까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연희를 그렇게 보기에는 이제는 완전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렇게 보면 과거에 연희가 왜 결혼생활에 파탄을 맞고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연희는 애당초 결혼이란 것을 하면 안 되는 존재로 보인다. 왜냐하면 결혼이나 부부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연희에게는 남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틀이나 부부의 도리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이혼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현찰이나 도우미에게 하는 짓을 보면 연희가 얼마나 전남편의 속을 썩였을 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사랑에 대해서 자기중심적이면서도 타인의 사랑이나 행복에 대해서는 병적일 정도로 질투심이 강하다. 현찰을 유혹하면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면서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오히려 현찰과 우미의 관계에 대해서 질투한다. 현찰에게 따귀를 맞고는 오히려 누그러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기도 했지만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질투와는 차원이 다른 증오와 분노를 일으키면서 현찰에게 보복을 하려고 한다. 그래도 사랑한 남자인데 한 순간에 사랑이 저주로 돌변한 것이다. 사랑이 한 순간에 증오와 저주의 감정으로 뒤바뀐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사랑이 이렇게 변덕스러울 수가 있을까? 동창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우미의 친구였다는 사실도 기가 막힌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현찰에게 보복의 칼을 빼들고 박사기와 공모하여 현찰을 사업상 사기에 빠트려서 찜질방과 주유소를 빼앗으려 함으로써 현찰을 궁지로 내몰았다. 도대체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 순간에 이렇게 뒤바뀌는 것이 사랑이란 말인가? 이제 연희는 현찰과 우미에게 완전히 적이 되고 말았다.


사실 연희가 악녀가 되리라고 생각지는 못했다. 드라마상에서 연희의 운신이 폭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보여주는 연희의 인간적인 눈물이 이에 속했다. 현찰과 우미 둘다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한 가정의 행복을 노골적으로 깨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연희는 이러한 자신 행동의 운신의 폭이랄까 한계를 완전히 깨었다. 이러한 연희의 행동은 이미 연희의 마음 속에 잔인한 악녀의 본색이 내재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불륜을 이루지 못하고 현찰에게 따귀를 맞은 것 만으로 철저하게 현찰을 파멸시키려 한단 말인가? 이렇게 보면 연희는 선척적으로 악녀였다는 생각이 든다.  


악녀가 되어버린 연희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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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따귀 맞은 연희 가만히 있을까?





현찰이 연희의 따귀를 날렸다. 예상치 못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 한 방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바로 날려 버렸다. 아마 시청률도 덩달아 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도우미의 자랑스러운 남편이 됨과 동시에 시청자들의 애호하는 등장인물이 되었다. 일약 자랑스런 남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현찰의 우유부단한 행동과 도우미에 대한 무시는 보면 볼수록 못나고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무슨 저런 인간이 다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햄릿과 같은 유형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그 선택의 기로가 햄릿 처럼이나 인생을 걸 만큼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연희의 유혹에 넘어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의 참 한심한 문제로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런데 이번에 현찰이 도우미를 연희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도우미 앞에서 보기 좋게 연희의 따귀를 갈긴 것이다. 


그런데 현찰에게 따귀를 맞은 연희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궁금해 진다. 비록 현찰로 부터 뺨을 맞긴 했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질투가 강한 연희이고 보면 예상치 못한 역공이나 반응을 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혹 세경이나 지훈처럼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다. 이것은 그저 기우에 지나지 않으면 좋겠다. 연희가 죽는다는 것은 제외하자.  아무튼 연희가 현찰에게 뺨을 맞고 보이게 될 반응은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자신의 잘못에 대해 '뒤늦은 자각' 을 할 가능성이다. 따끔한 혼이 나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과 같이 현찰에게 따귀를 맞고 아, 내가 못할 짓을 했구나! 하면서 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연희의 성격을  보아서 과연 이런한 반응을 보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도우미가 그토록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도우미를 궁지로 몰아넣고 가학적인 쾌감을 즐기는 듯한 연희의 악녀 근성이 과연 따귀 한 대로 사라지는 것이 가능할지 두고 볼 일이다. 




둘째, 연희가 잡자기 미처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건 현찰이 연희의 따귀를 때리는 것 만큼이나 의외의 추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얼마나 믿었던 현찰이었는데, 도우미보다 자신을 더 위해주었던 현찰이었는데 그 현찰로부터 따귀를 맞은 것은 연희의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히고 만 것이다. 물론 바로 그 직전에 우미를 만나 현찰과의 관계를 거짓으로 꾸며 말하던 연희는 어쩌면 제정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연희가 갑작스럽게 악녀로 돌변한 것은 바로 정신적인 충격의 여파인지도 모른다. 미쳐버린 연희를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비정상적으로 우미를 질투하고 현찰하을 유혹하던 그러한 모습을 보건데 연희가 미쳐버릴 가능성이 결코 없다고 할 수 없다. 사실 현찰에 대한 연희의 집착은 병적일 정도였다. 한 밤중에 가족 나들이를 간 현찰을 전화로 부르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제정신이 바로 박혔다면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셋째, 연희가 현찰과 우미의 곁을 떠나는 가능성이다. 연희가 떠나는 가능성은 가장 높지만 쉽게 예측가능하고 일반적이며 식상하기가지한 추측이다. 그래서 연희가 조용히 자취를 감추는 식은 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이다. 만약 연희가 그냥 떠나 버린다면 연희를 악녀로 만들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넷째, 연희가 쉽게 물러서지 않는 경우의 가능성이다. 얼마던지 연희가 발악적으로 이판사판식으로 나올 수 있다. 이 경우는 갈등이 아주 고조될 것이다. 재미는 한껏 고조가 되겠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복잡해지면서 드라마가 길어질 확률이 높아지고 만다. 봄 개편과 함께 종영을 할 드라마이고 보면 이러한 갈등은 그 마무리가 시간이 걸린다는 면에서 쉽게 선택하지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과연 연희는 어떻게 될까? 도우미에게로 돌아 선 현찰과 함께 연희를 어떻게 만들어 놓을 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수상한 삼형제>가 이제 갈등들이 해소 되어가면서 결말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희가 어떻게 행동을 하게 될까는 그 예측이 조금은 불투명하다. 정말 호기심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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