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믿어요'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11.08.02 사랑을 믿어요, 우진-윤희 결혼에 대한 백두대간님의 지적에 덧붙여 (7)
  2. 2011.07.25 사랑을 믿어요, 젊음의 태양에 드리워진 황혼의 사랑! (8)
  3. 2011.07.12 사랑을 믿어요, 글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걸까? (9)
  4. 2011.07.11 사랑을 믿어요, 왜 이상한 사람들로 만들었나? (10)
  5. 2011.07.10 사랑을 믿어요, 사랑은 변화의 곡선을 타고? (2)
  6. 2011.07.10 사랑을 믿어요, 감동과 재미가 쏠쏠했던 3가지 에피소드들! (3)
  7. 2011.07.07 사랑을 믿어요, 우진-윤희의 결혼 이루어질까? (5)
  8. 2011.06.28 사랑을 믿어요, 늘어져도 맛이 있는 이유? (4)
  9. 2011.06.27 사랑을 믿어요, 사랑은 변화하면서 삶속에 스며든다? (3)
  10. 2011.06.21 사랑을 믿어요, 이미경의 암 발병이 답답한 이유? (8)
  11. 2011.06.20 사랑을 믿어요, 신파의 기미가 보인다? (3)
  12. 2011.06.18 사랑을 믿어요, 김명희의 단순함이 때론 약이다! (7)
  13. 2011.06.14 사랑을 믿어요, 김영호 vs 윤화영 (7)
  14. 2011.06.13 사랑을 믿어요, 자식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집착이다! (3)
  15. 2011.06.12 사랑을 믿어요, 윤화영은 왜 윤희를 미워하나? (7)
  16. 2011.06.09 사랑을 믿어요, 권기창의 변화가 의미있는 이유? (4)
  17. 2011.06.08 사랑을 믿어요, 권기창 학원강사에서 진정한 교육자로? (5)
  18. 2011.06.06 사랑을 믿어요, 우진-윤희 커플 사랑 이루어 질 수 있을까? (6)
  19. 2011.06.05 사랑을 믿어요, 우진- 윤희의 사랑은 금지된 사랑인가? (15)
  20. 2011.06.02 사랑을 믿어요, 가치의 충돌과 화해? (4)
  21. 2011.05.25 사랑을 믿어요, 사랑 정말 믿어야 하나? (8)
  22. 2011.05.23 사랑을 믿어요, 할머니 차귀남은 연애학 박사? (6)
  23. 2011.05.17 사랑을 믿어요, 엄마와 아내이기를 포기한 드라마 작가? (10)
  24. 2011.05.16 사랑을 믿어요, 이기적인 한승우의 철없는 행각? (12)
  25. 2011.05.15 사랑을 믿어요, 이기적인 한승우의 철없는 행각? (8)
  26. 2011.05.09 사랑을 믿어요, 여동생도 모르는 김철수의 정체? (8)
  27. 2011.05.03 사랑을 믿어요, 뚱땡이 국밥집 철수의 정체는? (12)
  28. 2011.05.02 사랑을 믿어요, 자식에 대한 애틋한 부모의 마음! (10)
  29. 2011.04.27 사랑을 믿어요, 박사 서혜진 VS 아내 서혜진 (10)
  30. 2011.04.25 사랑을 믿어요, 상사병에 빠진 우진? (5)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가 62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원래 50회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12회 연장을 하였습니다. 62회로 이어져오는 동안 슬픔과 기쁨을 전해주었습니다.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고,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었으며, 갈등이 화해로 이어지는 곡절도 많았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변화와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몇 가지 점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서혜진과 김승우의 애매한 관계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관계를 불륜으로 볼 것인지 우정으로 볼 것인지는 쉽게 규정하기가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김우진과 윤희의 사랑과 결혼의 문제였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후자의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우진과 윤희는 이종 사촌간입니다. 우진의 아버지 김수봉과 윤희의 양아버지인 김영호는 형제지간으로 사실상 이들의 사랑과 결혼은 도덕과 관습상 용인되기 힘듭니다. 윤희가 김영호의 양녀로 13년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실제적인 혈족의 위치에 있으며 사회적인 규약상의 딸이기에 이들의 사랑과 결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민법상으로도 용인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9772


이 문제에 대해 백두대간님께서 적절하게 지적해주셨습니다. 우진과 윤희의 결혼은 민법상 금지조항에 해당이 됩니다. 민법의 809조 1,2항, 815조 4항은 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님은 제작진이 아직 법적인 입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하면서 혼인에 법적인 하자가 없게 한 것은 13년 동안 양부모-양녀라는 사실상의 혈족으로 함께 살아온 김영호-김윤희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천박한 발상” 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님의 이렇게 날카로운 지적 앞에서 우진과 윤희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필자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필자는 지금까지 우진과 윤희의 결혼에 대해서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왔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법적인 고려는 생각지도 못했으며 비록 관습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점은 제기했지만 당사자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친간의 혼인에 대해서 참 무지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만약 당사자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경우 민법의 조항이 이를 강제할 수 있는가의 의문이 일었습니다. 실제로 민법상의 금지 조항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우가 흔히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들기도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드라마의 제작진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기도 했구요. 필자의 거친 판단으로는 우진과 윤희의 근친간 혼인이 단순히 시청율을 높이기 위한 낚시에 불과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도덕적, 관습적, 법적으로 비난의 대상만 된다고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진 - 윤희의 결혼과 관련해서 천주교 신부인 윤희의 큰 아버지의 반응은 이 문제에 대한 종교적인 해석까지도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의 반응은 이들의 결혼에 대해 참 관용적이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종교적인 관용은 종교의 보수적인 성격을 생각해 보면 의외일 수 있습니다. 실제 캐톨릭의 입장과는 다른 드라마상의 가상적인 반응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판단으로 볼 때 남녀의 진정한 사랑에 대해 종교는 세속적인 법의 강제와는 달리 관용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형수를 위해 기도를 하고, 악인을 용서하는 종교라면 우진-윤희의 진정한 사랑과 결혼을 축복해 주지 않을까요.   
  

또한 비록 민법이 금지하는 근친간의 혼인이지만 그 사랑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이라면 혈족과 인척의 그 당사자들(김영호, 이미경, 김화영, 김수봉 등등)의 반응과 태도도 아주 중요하며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합니다. 필자의 입장이라면 양부모인 김영호와 이미경의 입장과 흡사할 것 같습니다. 양자도 당연히 혈족이지만 사실상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입니다. 도덕, 관습, 민법은 혈족이라 강제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포괄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까지도 강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시대적으로 개정되고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우리사회와 법의 관계를 되돌아보면 그 당대의 인간의 생각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형법도 그러했지만, 민법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민법이란 사람들의 가치 충돌을 중재하는 측면이 강하기에 그러합니다. 바로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의 우진과 윤희의 결혼이 이러한 가치 충돌의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유럽, 미국등에서 동성간의 결혼이 합법화되는 추세가 그런 것인데요,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는 현실적으로 법적인 충돌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진과 윤희의 결혼도 비록 민법의 금지조항에 해당하지만 진정한 사랑까지도 강제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의혹을 제기해 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민법상 양자에 대한 혼인 규정에 한정해서 말입니다.)


<사랑을 믿어요> 제작진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구요, 앞으로도 더 좋은 드라마 제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고생 많으셨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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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믿어요> 59회는 젊음이란 생기와 발랄함 뒤에 붉은 노을빛으로 번지는 황혼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 노을은 우리의 가슴속으로 삶과 죽음, 성장과 늙음, 과시와 달관으로 조금씩 물들어 가며 여러 가지 가치를 성찰하게 했다. 권기창과 김영희의 코믹한 관계, 김우진와 최윤희(김윤희)의 달콤한 사랑의 한 편에 바로 김영호, 이미경의 황혼의 사랑이 있다는 것은 시간이 그리는 삶의 스펙트럼과 늙음의 비의를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이건 참 좋은 일이다. 우진과 윤희의 결혼과 신혼여행, 행복과 기쁨의 한 켠에 이미경의 암 발병과 가슴 뭉큼한 황혼의 사랑을 확인하다는 것은 우리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발랄하고 생기있는 젊음의 열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란 진리를 조용히 일깨워준다. 슬프지만 달관해야할 슬픔으로 조금은 진지하게 우리 삶을 생각케 한다.

이미지출처: http://www.kbs.co.kr/drama/believelove/report/photo/index.html



40년을 교직에서 헌신한 김영호 교감과 전직 교사였던 이미경 부부의 황혼의 사랑은 사랑을 믿어야만 하는 최종의 종착지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믿어요>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사랑의 방식들과 양상들은 결국 김영호와 이미경 부부의 40년 사랑으로 귀착된다. 이런 사실을 어찌 부인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깨는 수많은 복병들이 나타난다.  그런 것들을 이겨낸 부부들이라면 마지막으로 늙음(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이 늙음(죽음) 앞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신앙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테다.



사랑에 관한한 현실속의 사랑이란 말 그대로 참 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사랑은 지폐처럼 냉혹하기도 하며, 사랑은 거짓말처럼 달콤하기도 하며, 총처럼 잔인하기도 하다. 그야말로 너무나 현실적이라 사랑이란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란 회의에 빠지곤 한다. 다 좋다. 세상이 사랑을 이렇게 속되게 타락시켰다해도 그래도 여전히 진실이 살아있음을 본다. 김영호와 이미경 부부이다. 40년쯤 부부의 연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진실하지 아니할까? 이 발견은 정말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김영호와 이미경의 그 황혼의 사랑은 마치 사막에 던져놓은 영롱한 진주같다. 작가는 사막에서 진주를 찾기가 불가능함을 안 모양이다. 그래서 진주를 크게 클로즈업해주었다. 연예계의 달콤한 거품들속에서 사랑을 믿어라는 이 설득력 없는 주장은 그래서 그다지 공허한 외침만은 아닌것 같다. 다행스럽다. 3회를 남겨놓은 지금 <베사메무초>의 대본을 쥐어 짜내는 김영희와 권기창의 노력만큼이나 <사랑을 믿어요>의 작가는 참 고민을 많이 한 듯 보인다.



최근 이순재님(이하 이순재)의 발언이 연예계의 현실을 질타하고 있다. 근데 발언 자체도 소중하지만 이순재가 이러한 발언을 한 사실 자체가 더욱 소중하다고 본다. 정치계에서 능구렁이같은 늙은이들만 보면서 실망해온 우리는 정말 존경스러운 존재를 본다. 연예계는 이런 곳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김영호와 이미경 부부의 클로즈업은 의미가 깊다. 연예계의 현란한 거품속에서 이들 부부의 황혼 사랑은 진실을 일깨우는 소중한 그 무엇이다. 삶은 화려함과 호들갑, 밝음과 기쁨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그림자로서 늙음과 죽음도 도사리고 있다. 왜 이렇게 재수없는 이야기를 하냐고 한다면 이는 너무 지나치게 이분법을 믿는 인간이다. 삶이란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있는 혼돈의 모습이기에 이러한 말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드라마(연계계)는 삶을 위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삶을 성찰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늙고 병이든다. 죽음이 갈라놓을 까지 사랑한다는 표현은 바로 죽음 앞에서, 늙음 앞에서 표현하지 않고 표현되는 진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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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어요> 56회의 시청률이 55회에 비해 5% 이상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을 접하지 않아서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필자의 추측을 말하자면 늘어진 스토리가 조금은 식상하지 않았을까. 원래 50회로 예정되었으나 현재 56회가 끝났으니 그 늘어진 스토리에 1,2회 보지 않아도 그 흐름을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시청률은 더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우진-윤희의 예정된 결혼과 윤화영-윤희와의 갈등이 해소되면서 극적인 요소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아무리 짜내어도 극적인 반전을 기대할 수도 없고 큰 갈등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저 자잘한 이야기들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해질 것이고 인터넷 기사 한토막으로 흐름을 살펴보는으로 만족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권기창-김영희 부부의 에피소드가 웃음을 자아내면서 시청률을 그나마 잡아두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들의 이혼은 어떻게 흐지부지 되었나 정도의 호기심 때문에 말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8308



이렇게 되면 통일되고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의 관점에서보다, 소소한 부분들에 곁눈질이 가기가 쉽다. 이제 스토리는 뻔히 아는 내용이라, 긴장이 풀어지면서 쓸데 없는 것들이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다.  필자도 스토리 전개가 느슨해지다보니 이것저것 별 대수롭지 않는 것에 눈이가고 있는데, 이 포스트에서는 이런 소소한 것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글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걸까? 드라마 작가가 된 김영희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소재의 고갈인지 아이디어마저 떠오르지 않는 영희를 보게 되니 그녀가 신인인지 은퇴를 앞둔 노작가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머리에는 꽃모양으로 장식이 달린 머리밴드를 착용하고 권기창의 런닝셔츠에 이소령의 추리닝(?)을 입고 글을 쓰는 김영희를 볼라치면 망가진 작가의 초상을 제대로 보는 것만 같다. 왜 이렇게 작가를 망가진 이미지로 희화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재미때문이라고 하면 충분하지 싶다. 좀 더 나아가서 작가라고 해서 무거운 권위와 진지함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정도가 아닐까? 화장대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권기창이 참 너무한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김영희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작가여 왜 이렇게 궁상을 떠는가!


김영희가 이렇게 된 것은 그 자신의 문제도 크지만, 작가의 권위나 문학성은 깡그리 무시하는 드라마 pd(감독)의 몰상식한 처신이 도사리고 있다. 이 감독이란 작자를 볼라치면 정말 제정신이 아닌 인간처럼 여겨진다. 드라마 제작의 지난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꼭 마약 중독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헝클어진 머리에 다크써클하며 흐트러진 시선과 흥분을 삭이지 못하는 언행은 이 작자가 정말 감독이 맞나 실을 정도이다. 작품에 살고 작품에 죽은 위대한 예술적 영혼이기라도 한가? 물론 희화화되고 과장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너무 심하다. 이런 작자가 김영희에게 작품이 엉망이라고 박박 소리를 듣고 있으니 김영희로서도 덩달아 미쳐갈 수 밖에.

 

이미지출처:KBS드라마

이에 또 한사람을 덧붙이자면 중견드라마 작가인 김수봉이다. 글을 위해 스스로를 지하에 유폐한 것도 아닌데 여전히 지하에서 생활하면서 비현실적인 존재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 특별한 감수성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어린아이 같다. 가끔씩 글을 쓰는 것을 보면 드라마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소재의 고갈 없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을 믿어요>에서 글을 쓰거나 글을 다루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다. 아니 드라마 <베사메무쵸> 감독의 경우는 ‘조금‘ 그 이상이다. 정신과 치료를 요할 정도로 보인다. 영희의 아파트에서 마음에 드는 대본을 내놓으라고 방방 뜨는 모습을 보신 시청자라면 그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아실 것이다. 이렇게 왜 하나같이 글을 쓰는 작가들과 드라마감독이 유독 이렇게 비현실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을까? 작가의 모습에 대한 강박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을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참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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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어요> 56회의 시청률이 55회에 비해 5% 이상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을 접하지 않아서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필자의 추측을 말하자면 늘어진 스토리가 조금은 식상하지 않았을까. 원래 50회로 예정되었으나 현재 56회가 끝났으니 그 늘어진 스토리에 1,2회 보지 않아도 그 흐름을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시청률은 더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우진-윤희의 예정된 결혼과 윤화영-윤희와의 갈등이 해소되면서 극적인 요소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아무리 짜내어도 극적인 반전을 기대할 수도 없고 큰 갈등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저 자잘한 이야기들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해질 것이고 인터넷 기사 한토막으로 흐름을 살펴보는으로 만족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권기창-김영희 부부의 에피소드가 웃음을 자아내면서 시청률을 그나마 잡아두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들의 이혼은 어떻게 흐지부지 되었나 정도의 호기심 때문에 말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8096(일부 캡처)



이렇게 되면 통일되고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의 관점에서보다, 소소한 부분들에 곁눈질이 가기가 쉽다. 이제 스토리는 뻔히 아는 내용이라, 긴장이 풀어지면서 쓸데 없는 것들이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다.  필자도 스토리 전개가 느슨해지다보니 이것저것 별 대수롭지 않는 것에 눈이가고 있는데, 이 포스트에서는 이런 소소한 것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글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걸까? 드라마 작가가 된 김영희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소재의 고갈인지 아이디어마저 떠오르지 않는 영희를 보게 되니 그녀가 신인인지 은퇴를 앞둔 노작가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머리에는 꽃모양으로 장식이 달린 머리밴드를 착용하고 권기창의 런닝셔츠에 이소령의 추리닝(?)을 입고 글을 쓰는 김영희를 볼라치면 망가진 작가의 초상을 제대로 보는 것만 같다. 왜 이렇게 작가를 망가진 이미지로 희화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재미때문이라고 하면 충분하지 싶다. 좀 더 나아가서 작가라고 해서 무거운 권위와 진지함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정도가 아닐까? 화장대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권기창이 참 너무한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김영희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작가여 왜 이렇게 궁상을 떠는가!


김영희가 이렇게 된 것은 그 자신의 문제도 크지만, 작가의 권위나 문학성은 깡그리 무시하는 드라마 pd(감독)의 몰상식한 처신이 도사리고 있다. 이 감독이란 작자를 볼라치면 정말 제정신이 아닌 인간처럼 여겨진다. 드라마 제작의 지난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꼭 마약 중독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헝클어진 머리에 다크써클하며 흐트러진 시선과 흥분을 삭이지 못하는 언행은 이 작자가 정말 감독이 맞나 실을 정도이다. 작품에 살고 작품에 죽은 위대한 예술적 영혼이기라도 한가? 물론 희화화되고 과장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너무 심하다. 이런 작자가 김영희에게 작품이 엉망이라고 박박 소리를 듣고 있으니 김영희로서도 덩달아 미쳐갈 수 밖에.

 

이미지출처:KBS드라마

이에 또 한사람을 덧붙이자면 중견드라마 작가인 김수봉이다. 글을 위해 스스로를 지하에 유폐한 것도 아닌데 여전히 지하에서 생활하면서 비현실적인 존재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 특별한 감수성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어린아이 같다. 가끔씩 글을 쓰는 것을 보면 드라마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소재의 고갈 없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을 믿어요>에서 글을 쓰거나 글을 다루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다. 아니 드라마 <베사메무쵸> 감독의 경우는 ‘조금‘ 그 이상이다. 정신과 치료를 요할 정도로 보인다. 영희의 아파트에서 마음에 드는 대본을 내놓으라고 방방 뜨는 모습을 보신 시청자라면 그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아실 것이다. 이렇게 왜 하나같이 글을 쓰는 작가들과 드라마감독이 유독 이렇게 비현실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을까? 작가의 모습에 대한 강박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을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참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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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 대한 우진의 사랑(또한 그 역으로도)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이 참 제어하기 힘든 감정적인 현상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맹목성은 사랑에 앞뒤를 재지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정말 너무나도 격렬하고 열정적이라 주위의 조건들을 돌아보지 않는 맹목성을 갖기 쉽습니다. 우진이 윤희와의 사촌지간(비록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관계임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열정과 격렬함으로 인한 맹목성 때문일 것입니다. 주위의 시선이나 관습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우진의 사랑이 격렬하고 열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이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까요? 우진이 윤희와 결혼을 하면 날마다 윤희에게 포로포즈를 하는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한다지만 과연 우진이 윤희를 그토록 사랑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인간의 감정을 마모시키고 격렬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무뎌진 사랑의 모습, 변화한 사랑의 모습이 김동훈과 서혜진, 권기창과 김영희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도대체 젊은 날의 그들의 격렬했을, 열정적이었을 사랑은 어디로 가고 말았을까요? 이제는 다른 남자에서 눈웃음을 치고 불륜을 의심하며(김동훈 서혜진 부부는 이해 화해를 했지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려는 막가는 부부가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무엇이 그들 사랑의 모습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요. 사랑이 변한 것일까요, 그들이 변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 둘다 일까요? 만약 우진과 윤희가 결혼한다면 바로 이 권기창과 김영희 부부의 모습에서  우진과 윤희의 미래의 부부 초상을 추측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권기창과 김영희를 희화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이 이렇게 변화한 모습은 비극이라기 보다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일까요. 결국 부부간의 사랑이란 격렬하고 열정적인 남녀간의 사랑에서 삶에 찌들리는 부부의 관계로 변화하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변화한 사랑의 모습은 희화화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미지출처: http://www.drama/believelove/report/photo/index.html


그러다 시간이 흐르게 되고 또 변화를 겪게 됩니다. 사랑의 변화 곡선은 참 기가 막힙니다. 우진의 입에서 그토록 변화지 않으리라는 단호했던 사랑의 말은 권기창의 입에서는 고등어 타령과 교양 타령으로 롤러코스터처럼 미끄러지다 이제는 김영호(송재호 분)와 이미경(선우용녀 분)의 달관과 관조의 부부관계로 안정적이되는 변화하는 곡선의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작은 파동을 그리는 곡선이 됩니다.  


또 그러다 한평생 부부로 살다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가고 나면 그 심정은 어떠할까요? 홀로된 차귀남 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다시 과거로 과거로 달려가겠지요. 그러나 우진과 윤희의 격렬하고 열정적인 사랑과는 달리 조용한 가슴으로 되새김질 되는 그런 사랑의 기억들이겠지요. 차귀남 할머니(나문희 분)로부터 표면적으로 그런 모습을 접한 적은 없지만 분명 그러할 것입니다. 지난날을 반추하면서 사랑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그릴 것입니다.


사랑을 남녀 이성간의 사랑에 국한하면서 그 변화의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사랑이란 그 세대별로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간의 생각이 충돌하기도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아름다움입니다. 윤화영이 우진의 사랑을 극구 반대하고 있는 것도 우진에 대한 그녀의 과거의 회한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의 순수함을 의심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이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을 둘러싼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의 차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모습들은 시간과 함께 변화하지만 사랑은 인간이 의지하고 믿을 만한 것이 아닐까요? 사랑은 이렇게 인간의 삶 속에 스며드는 것이겠지요.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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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어요> 55회는 세 개의 에피소드가 폭풍처럼 전개되었다. 우선 가장 관심의 중심에 놓여있는 우진-윤희의 관계와 우진-윤화영의 갈등의 해소가 그 한 축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권기창-김영희 부부의 버블같은 소동이 그것이며, 마지막으로 철숙의 결혼 여부가 작은 흐름을 형성했다. 결국 이 에피소드들의 소실점은 ‘사랑을 믿는다‘ 과녁임은 자명하다.


가장 폭풍처럼 몰아닥치고 있는 우진-윤희의 관계는 갈등의 봉합 단계를 넘어 화해로 나아가는 모양새이다. 그 결론이야 뻔하지만 그 관계가 흔치않은 사례인 만큼 그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상에 있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행동상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다. 특히 차귀남, 김영호, 이미경이라는 부모세대와 김동훈, 서혜진, 그리고 막내 김명희의 반응 양상들을 대별하여 살펴보는 것은 작가의 주관이나 가치를 넘어 사색의 여지를 제공해 준다. 우진-윤희에 국한되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특수하고 이질적인 가치 전반에 대해 보편적인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볼 때 우진-윤희의 관계에 대한 차귀남, 김영호의 차분하고 배려하는 태도는 우리사회의 성숙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듯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직 우리사회는 이러한 배려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회적인 성격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권력과 관료조직은 변화의 흐름에서 가장 뒤쳐진 듯한 느낌이다. 부정과 부패가 가장 만연한 곳이 권력의 중심과 그 주변부에서며 관료조직은 여전히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 차귀남과 김영호의 유연하고 배려심있는 모습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대단히 시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의식적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의적절하다. 직설적인 비난이나 비판만이 변화를 추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귀남이나 김영호처럼 권위를 갖고있되 권위주의와 경직성은 버리는 권력과 관료조직이 되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133673



우진-윤희의 에피소드 다음으로 큰 흐름을 이룬 에피소드는 권기창-김영희 부부의 그것으로 이혼을 앞둔 부부가 이런 저런 이유로 서로를 동정하게끔 엮어놓고 있는데 이 부분은 개연성이나 사실성을 떠나 ‘코믹한’ 재미로 채워놓고 있다. 이게 한마디로 하면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경구의 코믹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이란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면서 희비극이라는 미지근한 교집합의 부분까지 형성하며 그렇게 전개가 되는 법이다.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우는 게 인생이란 것이다. 우진-윤희의 그 심각한 비극(결국에는 해피엔딩이 되겠지만)의 한 켠에 권기창-김영희 부부의 산만하고 요란스런 삶의 소동, 이혼을 소재로한 한편의 희극이 있다는 것은 드라마의 묘미를 만드는 구성상의 매력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분명 작가가 드라마의 초부터 의도한 것이고 이 의도는 드라마의 균형감을 잘 맞추었다고 본다. 권기창-김영희 부부의 소동은 사실 가관이다. 한편의 만화같기도 한데, 드라마 작가 김영희가 책상도 없이 화장대에 앉아 시나리오를 쓴다든지, 작가의 권위는 손톱만큼도 보여주지 않고 완전히 망가진다든지......그래도 이런 정도는 이해할만한 것으로, 방송 pd 라는 작자가 작가를 완전히 글 뽑아내는 기계로 생각하는 듯한 태도, 인격을 무시하는 처사등은 작가가 처한 현실을 너무 희화적이고 과장되게 그린 듯하다. 그기다 김영희가 다 쓰지도 못한 시나리오의 내용을 권기창이 술술 적어서 김영희가 졸지에 방송 pd로부터 엄청난 칭찬을 받는 장면들은 정말 민망 그 이상이었다. 그래도 워낙에 코믹으로 나간 부부이기에 재미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싶다. 정말 미워 할 수 없는 부부이고 비현실적인 부부이지만 현실적인 의미를 구하게 만든다.


55회에 이르도록 등장인물들 가운데 아직도 커플로 맺어지지 않은 인물이 딱 한사람 있다. 철숙이다. ‘사랑을 믿어라’ 는데 사랑하지 않는 외로운 등장인물이 있다면 이건 넌센스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목하 철숙의 결혼 작전이 김명희의 머리에서 구상되어 철수에게 브리핑되었다. 변방에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위치에 있던 철숙이 큐피트의 화살을 맞기 직전이다. 그 상대는 우진의 친구 경재가 아닐까 싶다. 철숙을 보는 경재의 태도도 조금씩 야릇해 지고 있는 듯하고 말이다. 철숙과 경재가 커플로 이어진다면 이것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철숙의 성격 참 좋다. 아무튼 바로 이 에피소드가 하나의 흐름이었다. 물론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하면 가장 비중이 작았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55회의 세 가지 큰 에피소드를 살펴보았는데, 우진-윤희 결혼이라는 가치의 충돌과 그것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행동적 반응 양상이라는 거창한 주제에서부터, 개연성과 사실성(논리와 이성)은 떨어지지만 권기창-김영희 부부의 희극적인 재미의 향연, 그리고 철숙 결혼 시기키 작전에 이르기까지 가족드라마로서의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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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어요>(52회)에서 어머니 윤화영의 반대에 부딪혀 윤희와의 결혼이 불가능해진 우진은 마침내 미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 우진과의 결혼 약속을 깬 죄스러움에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러온 윤희로부터 큰어머니의 폐암 소식을 듣게 되고, 이 소식을 빌미삼아 몇일간 미국행을 연기하게 되는데, 이렇게 연기하고 있는 사이에 윤화영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54회).


윤화영을 변화시킨 것은 극적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조금씩 누적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경우에고 윤화영의 변화에 개연성을 제공해줄 만한 충분한 내적동기가 있는데 우진과의 ‘관계’ 가 그 중심에 있음이 분명하다. 윤화영은 영화배우로 우진을 자신의 배로 낳고도 제대로 기르지 못한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못한 아픈 과거가 있다. 그런데 이나마 끝이 아니었다. 다시 우진은 미국행을 선택하고 10년을 미국생활을 하였으니 이 모자의 관계 복원은 요원할 수 밖에 없었다. 이 10년간의 미국생활은 아마도 우진의 어머니 윤화영에 대한 반항이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남의 손에 키워지고 자라서도 미국에서 생활한 우진은 훼손된 모자관계의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조금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그나마 우진이 이런 반항을 억누르고 지극히 정상적인 젊은이로 성장한 것은 그가 미국에서 배운 음악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진에게는 이 어린 시절에 얼마나 엄마의 존재가 절실했을까? 윤화영을 어머니로 받아들일 수 있기까지, 미국생활 후 귀국하고도 집에 들어가지 않은채 우진은 윤화영의 가정부로 있던 철수와 철숙의 어머니였던 실질적으로 자신을 키운 그녀를 어머니로 인정하고 있을 정도였다. 우진이 미국에서 귀국하고도 귀국 사실을 부모에게 감춘채 지냈으니 부모에 대한(특히 윤화영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컸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미지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7357 (일부 캡처)



이렇게 우진으로부터 어머니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윤화영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한창 영화배우로 잘 나갈 때 왜 그토록 우진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는지 이해할 수는 있다. 배우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면 그 소원한 관계의 정체를 윤화영의 입장에서 이해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윤화영의 남편 김수봉에게 화살이 돌려진다. 도대체 우진의 아버지 김수봉은 왜 우진을 키우고 훈육하고 교육시키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 의문이다. 당시 김수봉이 유명한 TV드라마 작가였긴 하지만 영화배우로 바쁜 윤화영과는 역할 분담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인기이거나 괴팍한 작가라고 해도 글쓰고 잠만 자는 생활을 했을까? 드라마의 특성상 김수봉은 매일 시간에 쫓기긴 했겠지만 그렇다고 하루종일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보면 김수봉이 지하에서 생활하면서 윤화영의 냉혹한 취급을 당하는 장면들도 따지고 보면 무절제하고 난봉질 하던 젊은날 김수봉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직 우진의 비난이 윤화영에게만 가해지는 것에는 균형감을 상실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이것도 일종의 가부장적인 작가의 편향된 시선일까? 어머니 윤화영에 대한 우진의 원망이 크면 클수록 윤화영의 가슴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욱 깊어지고 깊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모자간의 상처가 조금씩 봉합되어 가는 과정에 돌출한 우진과 윤희의 결혼 문제는 윤화영에게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다.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자식인 우진에게 다해주고 싶은데 결혼은 마음에 너무 걸리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의 아니고 품을 떠난 자식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어디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이 이성이나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던가? 인정이고 생물적이며 (우리의)전통과 잇닿아 있지 않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의 결혼에 무조건적으로 지원만을 할 수 있을까?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모의 진실한 마음과 통하기도 한다. 자식이 모르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그렇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윤화영의 마음을 그렇게 보고 싶다. 오랫동안 자신과의 소원한 관계로 제대로 어머니의 구실을 해주지 못했는데 우진의 아내만이라도 그럴싸한 아가씨로 붙여주고 싶은 것이 윤화영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윤희를 “그럴싸한 아가씨“ 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머니 윤화영의 마음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사촌간(피가 섞이지 않았지만)인 것 자체가 개운하지 않았던 것이다. 


54회에서 윤화영의 결단만이 남았던 상황에서 윤화영이 결단을 했다. 윤희를 예비며느리로 리스트에 올리고 한 번 공식적으로 만나보고자 한 것이다. 이런 결단의 일련의 과정은 윤화영의 변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차귀남의 말이 맞다. 부모가 자식을 이기려고 하는 자체가 넌센스다. 자식은 자식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그 자식-부모의 관계는 깨어질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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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인기드라마가 그렇듯이 <사랑을 믿어요>도 시청률이 높아지면서 50회로 예정되어 있던 분량을 62회로 늘리고 있습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참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물론 시청률의 덕을 보고자 늘이는 것이기에 스토리상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기에,  스토리를 늘린다는 것이 그다지 힘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디 작가가 그냥 작가이겠습니까? 다만 스토리의 골격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골격 외적부분들을 건드리겠죠. 이렇다보니 스토리가 늘어지는 느낌이 역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장방송이 그다지 부답스럽지 않는 이유는 비극과 희극의 절묘한 균형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현재 <사랑을 믿어요>는 비극과 희극이 비빔밥처럼 뒤섞여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이미경의 암발병과 우진과 윤희의 사랑이 비극의 한 편에 위치해 있으며 권기창과 김영희 부부의 이혼 소동과 김철수와 김명희, 그리고 김철숙이 희극의 또 다른 편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웃다가도 울기도 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비극과 희극이 뒤섞여 있는 것이 친근감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경의 암 발병이라는 비극은 그 속성상 감정을 많이 자극할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적 자극은 스토리를 장식하는 치장물로서 쉽게 자리할 수 있습니다. 비극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비극은 2시간 분량을 10시간 분량으로 늘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감정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BS드라마

희극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혼이라는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권기창-김영희 부부는 정말 심각하기보다는 희화화된 인물들로 오히려 재미와 웃음을 자아냅니다. 필자의 추측으로 12회 분량을 더 늘이는데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렇다보니 12회를 더 늘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스토리나 구성상의 변화가 아니기에 자칫 동음반복으로 인한 지루함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믿어요>는 비극이나 희극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우진과 윤희의 사랑이 늘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늘어짐을 상쇄시는 것이 권기창과 김영희 부부의 이혼관련 송사입니다. 이 부부의 이혼과 관련해서 소송을 준비하는 변호사의 면면이나 대화의 장면들은 참 코믹합니다. 이들을 볼라치면 정말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권기창의 변호사역을 맡고 있는 이한휘는 기가 막힐 정도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렇게 만약 우진과 윤희의 사랑이 일변도로 간다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드라마가 그나마 권기창-김영희 부부, 김철수-김명희 부부의 희극적인 모습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한 역으로 시누이지간이 된 김영희와 김철숙의 유치찬란한 갈등이 혀를 차게 만들 정도이지만 다른 비극적인 요소들이 균형을 맞춰주고 있습니다. 한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이렇게 늘어지다 보면 혹시 서혜진과 한승우가 다시 만나지는 않을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비극과 희극이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어느 한 쪽 일변도로 나아갈 때 생길 수 있는 지루함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면에서, 늘어져도 맛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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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6533

윤희에 대한 우진의 사랑(또한 그 역으로도)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이 참 제어하기 힘든 감정적인 현상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맹목성은 사랑에 앞뒤를 재지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정말 너무나도 격렬하고 열정적이라 주위의 조건들을 돌아보지 않는 맹목성을 갖기 쉽습니다. 우진이 윤희와의 사촌지간(비록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관계임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열정과 격렬함으로 인한 맹목성 때문일 것입니다. 주위의 시선이나 관습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우진의 사랑이 격렬하고 열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이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까요? 우진이 윤희와 결혼을 하면 날마다 윤희에게 포로포즈를 하는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한다지만 과연 우진이 윤희를 그토록 사랑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인간의 감정을 마모시키고 격렬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무뎌진 사랑의 모습, 변화한 사랑의 모습이 김동훈과 서혜진, 권기창과 김영희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도대체 젊은 날의 그들의 격렬했을, 열정적이었을 사랑은 어디로 가고 말았을까요? 이제는 다른 남자에서 눈웃음을 치고 불륜을 의심하며(김동훈 서혜진 부부는 이해 화해를 했지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려는 막가는 부부가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무엇이 그들 사랑의 모습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요. 사랑이 변한 것일까요, 그들이 변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 둘다 일까요? 만약 우진과 윤희가 결혼한다면 바로 이 권기창과 김영희 부부의 모습에서  우진과 윤희의 미래의 부부 초상을 추측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권기창과 김영희를 희화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이 이렇게 변화한 모습은 비극이라기 보다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일까요. 결국 부부간의 사랑이란 격렬하고 열정적인 남녀간의 사랑에서 삶에 찌들리는 부부의 관계로 변화하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변화한 사랑의 모습은 희화화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미지출처: http://www.drama/believelove/report/photo/index.html


그러다 시간이 흐르게 되고 또 변화를 겪게 됩니다. 사랑의 변화 곡선은 참 기가 막힙니다. 우진의 입에서 그토록 변화지 않으리라는 단호했던 사랑의 말은 권기창의 입에서는 고등어 타령과 교양 타령으로 롤러코스터처럼 미끄러지다 이제는 김영호(송재호 분)와 이미경(선우용녀 분)의 달관과 관조의 부부관계로 안정적이되는 변화하는 곡선의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작은 파동을 그리는 곡선이 됩니다.  


또 그러다 한평생 부부로 살다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가고 나면 그 심정은 어떠할까요? 홀로된 차귀남 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다시 과거로 과거로 달려가겠지요. 그러나 우진과 윤희의 격렬하고 열정적인 사랑과는 달리 조용한 가슴으로 되새김질 되는 그런 사랑의 기억들이겠지요. 차귀남 할머니(나문희 분)로부터 표면적으로 그런 모습을 접한 적은 없지만 분명 그러할 것입니다. 지난날을 반추하면서 사랑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그릴 것입니다.


사랑을 남녀 이성간의 사랑에 국한하면서 그 변화의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사랑이란 그 세대별로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간의 생각이 충돌하기도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아름다움입니다. 윤화영이 우진의 사랑을 극구 반대하고 있는 것도 우진에 대한 그녀의 과거의 회한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의 순수함을 의심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이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을 둘러싼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의 차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모습들은 시간과 함께 변화하지만 사랑은 인간이 의지하고 믿을 만한 것이 아닐까요? 사랑은 이렇게 인간의 삶 속에 스며드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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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회에서 김영호의 아내 이미경(선우용녀 분)이 암에 걸렸다는 검사 결과가 나옵니다. 우진과 윤희의 문제로 뒤숭숭한 집안에 엎친데 덮친 격입니다. 평소 가슴이 답답하다던 소리를 자주 하던 이미경에게 설마 암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습니다. 모성에 가해지는 고통은 인간에게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가장 보편적인 소재가 될 수 있긴 합니다만, 단순히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죠. 또 이 드라마가 식상한 신파의 평범한 길을 답습하리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파의 길을 답습하고만 있는 듯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가족드라마의 한계려니 생각하면서도 좀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없는가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이렇게 엄마와 암이란 진부한 소재를 상상하지 못한 것은 금기된 관습을 건드리고 있는 우진과 윤희의 사랑이나 김동훈 서혜진의 갈등 해법, 그리고 희화되기는 했지만 권기창과 김영희의 관계 처리가 그런대로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관계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우진과 윤희의 관계에서 단호한 우진과는 달리 갈팡질팡하는 윤희의 모습이라던가, 김동훈과 서혜진의 경우에 서혜진의 다소 종속적인 태도 등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진부한 일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관계가 단순히 신파에 머물지 않고 인간 관계에 대해서 그 나름대로의 입장들과 의미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미지출처: http://www.kbs.co.kr/drama/photo_gallery/popup_new.html?Drama_Type=&Img_Code=187009005&mcode=


그런데 이미경이 느닺없이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고 암에 걸렸다는 설정은 드라마의 전개에 이물질이 낀 듯한 느낌입니다. 집안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의 존재가 암에 걸린다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엄마의 존재만큼 고달픈 존재도 없습니다. 그렇게 고달픈 삶에 시달리다 암에 걸린다는 설정은 충분히 개연성도 있습니다.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적이고도 한 소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진부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믿어요>이 드라마에 앞서 방영되었던 <결혼해 주세요>의 내용을 잠깐 떠올려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엄마 고두심의 암 발병이 그렇습니다. 이제 대해 필자가 쓴 이전의 포스트 ‘결혼해 주세요, 작가와 제작진에 바라는 ’(http://ourvillage.tistory.com/1181)을 참조하시면 알겠지만 엄마와 암의 설정은 신이 드라마에 끼어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의 발병은 다른 감정들을 위계화 시킬 정도로 막강하니까 말입니다.



엄마 이미경의 암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야기 전개에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현재 발생하고 있는 갈등들을 순화시키면서 화해로 몰아갈 가능성이 커지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색해진 윤희와의 화해, 우진의 문제로 어색해진 윤화영과의 화해, 권기창과 김영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합니다. 이것은 엄마의 암이 다른 갈등들에 감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개연성을 덮쳐버릴 것입니다. 앞으로 12회를 더 연장 방영을 한다고 하니 필자의 이런 추측이 잘못된 것일 수 있겠지만, 엄마의 암 발병은 신파의 영향을 극대화 시킬 것 만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엄마의 암 발병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해피엔딩의 기반을 닦기 위한 가장 극대화된 장치이겠지만 이건 너무 식상하고 진부하기 이럴 때 없습니다. 우진과 윤희가 사랑을 위해 부모의 뜻을 좀 거스르면 어떻습니까? 시간이 약입니다. 윤화영이 가장 걸림돌이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런 불협화음도 조야하게 보여준들 무슨 잘못일까요? 그게 보다 현실적이고 드라마틱합니다. 김영희도 엄마의 암 발병에 갑작스럽게 변화할 가능성이 커질 것 같은데요, 권기창과 김영희는 드라마의 초반부터 워낙 희화화된 인물들이라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작가의 길을 포기하다거나 전업주부로 되돌아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미경의 암 발병으로 그냥 우려가 되는 것들, 감정에 묻혀 버릴 것 같은 점들을 지적해 보았습니다. 아무튼 엄마 이미경의 암 발병이 다른 인물의 관계에 너무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독립된 문제로 처리되면 좋겠습니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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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회에서 김영호의 아내 이미경(선우용녀 분)이 암에 걸렸다는 검사 결과가 나옵니다. 우진과 윤희의 문제로 뒤숭숭한 집안에 엎친데 덮친 격입니다. 평소 가슴이 답답하다던 소리를 자주 하던 이미경에게 설마 암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습니다. 모성에 가해지는 고통은 인간에게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가장 보편적인 소재가 될 수 있긴 합니다만, 단순히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죠. 또 이 드라마가 식상한 신파의 평범한 길을 답습하리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파의 길을 답습하고만 있는 듯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가족드라마의 한계려니 생각하면서도 좀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없는가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이렇게 엄마와 암이란 진부한 소재를 상상하지 못한 것은 금기된 관습을 건드리고 있는 우진과 윤희의 사랑이나 김동훈 서혜진의 갈등 해법, 그리고 희화되기는 했지만 권기창과 김영희의 관계 처리가 그런대로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관계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우진과 윤희의 관계에서 단호한 우진과는 달리 갈팡질팡하는 윤희의 모습이라던가, 김동훈과 서혜진의 경우에 서혜진의 다소 종속적인 태도 등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진부한 일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관계가 단순히 신파에 머물지 않고 인간 관계에 대해서 그 나름대로의 입장들과 의미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미지출처: http://www.kbs.co.kr/drama/photo_gallery/popup_new.html?Drama_Type=&Img_Code=187009005&mcode=


그런데 이미경이 느닺없이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고 암에 걸렸다는 설정은 드라마의 전개에 이물질이 낀 듯한 느낌입니다. 집안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의 존재가 암에 걸린다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엄마의 존재만큼 고달픈 존재도 없습니다. 그렇게 고달픈 삶에 시달리다 암에 걸린다는 설정은 충분히 개연성도 있습니다.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적이고도 한 소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진부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믿어요>이 드라마에 앞서 방영되었던 <결혼해 주세요>의 내용을 잠깐 떠올려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엄마 고두심의 암 발병이 그렇습니다. 이제 대해 필자가 쓴 이전의 포스트 ‘결혼해 주세요, 작가와 제작진에 바라는 ’(http://ourvillage.tistory.com/1181)을 참조하시면 알겠지만 엄마와 암의 설정은 신이 드라마에 끼어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의 발병은 다른 감정들을 위계화 시킬 정도로 막강하니까 말입니다.



엄마 이미경의 암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야기 전개에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현재 발생하고 있는 갈등들을 순화시키면서 화해로 몰아갈 가능성이 커지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색해진 윤희와의 화해, 우진의 문제로 어색해진 윤화영과의 화해, 권기창과 김영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합니다. 이것은 엄마의 암이 다른 갈등들에 감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개연성을 덮쳐버릴 것입니다. 앞으로 12회를 더 연장 방영을 한다고 하니 필자의 이런 추측이 잘못된 것일 수 있겠지만, 엄마의 암 발병은 신파의 영향을 극대화 시킬 것 만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엄마의 암 발병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해피엔딩의 기반을 닦기 위한 가장 극대화된 장치이겠지만 이건 너무 식상하고 진부하기 이럴 때 없습니다. 우진과 윤희가 사랑을 위해 부모의 뜻을 좀 거스르면 어떻습니까? 시간이 약입니다. 윤화영이 가장 걸림돌이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런 불협화음도 조야하게 보여준들 무슨 잘못일까요? 그게 보다 현실적이고 드라마틱합니다. 김영희도 엄마의 암 발병에 갑작스럽게 변화할 가능성이 커질 것 같은데요, 권기창과 김영희는 드라마의 초반부터 워낙 희화화된 인물들이라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작가의 길을 포기하다거나 전업주부로 되돌아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미경의 암 발병으로 그냥 우려가 되는 것들, 감정에 묻혀 버릴 것 같은 점들을 지적해 보았습니다. 아무튼 엄마 이미경의 암 발병이 다른 인물의 관계에 너무 여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독립된 문제로 처리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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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진과 윤희의 사랑과 관련하여 가장 궁금한 것은 가족내의 세대간 반응이었다. 가족내의 세대를 어떤 절대적인 기준으로 나눌수는 없지만 연령을 기준으로 나눈다면 조부모, 부모 세대와 그 자녀 세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연령이란 대체로 그 속에 사고의 차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진과 윤희의 사랑에 대한 가족내의 반응은 대체로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사촌간의 사랑 을 용인하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사랑의 순수함보다는 사촌간 사랑이라는 금기적인 관습에 더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김수봉, 윤화영의 반응은 부모 세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며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김영호나 그의 아내 이미경(선우용녀 분)의 충격도 가히 짐작하고 남는다. 차귀남 또한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을 쉬 이겨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할머니라는 세대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진과 윤희의 사랑을 다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면에서 김수봉, 윤화영, 김영호 등 다른 부모 세대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차귀남은 명희에게 연애 상담을 해주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개방적이고 신세대적인 사고를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우진과 윤희의 사랑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우진과 윤희의 사랑에 대한 부모세대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며 충격적이었다. 


이미지출처: KBS드라마

이와는 달리 자식 세대의 반응은 다소 우호적인 느낌이다. 이러한 태도는 역시 세대간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특히 김영호가의 막내딸인 김명희(한채아 분)는 보수적인 집안의 분위기와는 가장 걸맞지 않는 신세대인물로 우진과 윤희의 사랑에 대해 정말이지 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쿨한 태도를 보여준다. 김명희의 태도는 우진-윤희의 태도와 동렬상에 위치하는 것으로 호적에도 올라있지 않는 윤희와 우진이 남남으로 그 사랑이 얼마던지 가능하다는 태도이다. 이런 김명희의 태도에 대해서 부모세대들은 혀를 끌끌을 차고 말 상대가 안된다는 식의 반응을 내보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생각이나 가치관의 차이’ 일 뿐이다. 김동훈이나 서혜진도 주저하고는 있지만 대체로 우진과 윤희 두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입장을 보여준다. 물론 김명희와 김동훈 사이에도 눈여겨 보여지는 미묘한 세대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부모 세대와 비교해 보면 우진과 윤희를 이해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생각과 생각이 충돌하는 문제에서 단순함이 때론 약일 수 있다. 신세대에 속하는 김명희의 단순함이 정답이 될 수 있다. 사랑은 당사자의 선택이고 결단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당사자인 우진과 윤희의 입장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부모와 가족의 반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인 김수봉이나 윤화영의 충격과 그 반응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러한 반응이라는 것도 오랫동안 관습화된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보여줄 뿐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체면과 권위주의, 나아가 허영, 속물주의가 한 몫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녀에 대한 반응을 관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지나친 집착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윤화영의 태도는 우리 부모의 마음을 제대로 상징하고 있다. 선악이 명쾌하게 갈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당한 관심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집착은 이제 우리 부모 세대에서 버려야할 태도가 아닐까 싶다. 자식 세대가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마는 결국 자식은 부모의 품을 떠나야 하는 법이다. 부모의 품을 떠난 자식의 선택은 그의 책임이고 그가 살아가면서 경험해야 하는 삶의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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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교감(이하 김영호)이 13년전 윤희를 양녀로 입양하고자 한 것은 부모가 죽고 졸지에 고아가 된 윤희를 위해서였습니다. 13년전 당시 담임이었던 김영호는 윤희를 자신의 집으로 들여 딸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직 호적상으로 윤희가 올라와 있지는 않지만 김영호에게 윤희는 딸 그 이상입니다.


이렇듯 김영호는  학급 반장에다가 똑똑했던 윤희를 끔찍이도 사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윤희를 집으로 들여 딸처럼 지내기란 여간 힘든 결단이 아닙니다. 김영호는 이미 두 딸(김명희, 김영희)과 아들(김동훈)이 있는 현실에서 또 윤희를 딸로 맞이한 것입니다. 이런 김영호의 행동으로 판단해 볼 때, 김영호는 너무나도 동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교사(교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범적이고 착한 윤희가 고아라는 사실이 참 안타깝기는 하지만, 김영호를 만나 행복해 진 듯해 기쁩니다. 김영호가 윤희를 선택한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윤희가 너무 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지출처: KBS드라마


그런데 이런 김영호와는 달리 윤화영은 윤희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큰댁에 입양되어온 김윤희에 대해서 윤화영은 부모없는 고아라거나 궁상맞은 아이라는 등의 조롱에 가까운 태도를 보입니다. 윤화영이 왜 이토록 윤희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지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윤희를 미워하기만(?)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고아임에도 반듯하게 자라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많습니다. 그렇다면 윤희는 참 대견스러운 학생들 둥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윤화영은 윤희를 달갑게 생각지 않습니다.  윤화영은 이러한 윤희를 가족의 구성원으로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착하고 모범적이며 반장으로서 통솔력도 좋은 윤희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부모없는 고아에, 보잘 것 없는 교육적, 사회적, 경제적 백그라운드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복입니다. 당연한 사실이죠. 비록 친부모는 아니지만 윤희가 김영호를 만난 것 정말 행운입니다. 그러나 윤화영은 윤희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같은 인간에 대해 이렇게 평가에 차이가 있는지 놀랍습니다. 과장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윤희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윤희 곁에 친부모는 없었지만 김영호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김영호는 윤희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김영호와는 다르게 윤화영은 윤희를 마치 벌레(?)로 여기는 듯 합니다. 우진과 조금이라도 사이가 가깝다는 말이 들리기라도 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윤희에게 압력을 가합니다. 이렇게 윤희에 대한 평가는 김영호와 윤화영 사이에서 너무 달라도 다릅니다.


윤화영이 윤희를 좋지 않게 보는 것은 어떤 특정한 조건들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조건들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우진과 가까워 지내는데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윤화영은 자신의 며느리는 적어도 자신의 수준에 걸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자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입니다. 윤화영에게는 과거 우진에 대한 원죄(?)가 있습니다. 그 원죄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우진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고아에다 별 볼 것 없는 윤희가 우진과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니 참 기가 찰 노릇입니다. 윤화영의 입장에서 보면 말입니다. 따라서 우진과 윤희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을 것이냐의 여부는 윤화영이 캐스트 보우팅을 쥐고 있는 형세입니다. 윤화영이 갑작스럽게 변화하면서 윤희에 대한 감정이 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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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와의 사랑에 대한 우진의 폭탄 선언으로 큰집, 작은집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윤희를 양녀로 들여 13년동안이나 자식처럼 키운 김영호(송재호 분)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비록 호적에는 올린 상태가 아니지만 자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영호의 반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윤희의 결혼에 대한 어떤 편견은 게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사촌인(이나 다름없는) 우진과의 사랑에 대한 충격이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김영호의 인격으로 판단해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단지 13년간이나 아버이와 딸처럼 지내왔는데 그런 윤희가 자신의 조카인 우진과 사랑을 하고 있다니 놀라고 속상해 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충격은 비록 너무나 강렬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완화되면서 평상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윤희에 대한 집착의 발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혼 상대자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관습적인 충격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영호는 윤희의 감정을 존중해주게 될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KBS드라마


김영호와는 달리 우진의 어머니인 윤화영은 다릅니다. 그녀는 사회적인 조건을 참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진의 감정을 존중해 주기보다는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에 더욱 신경을 씁니다. 우진을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며느리가 될 여자의 경제적인 조건, 학벌, 집안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적인 인지도가 있는 유명배우인 윤화영이고 보면 우진의 배우자도 그에 걸맞은 여자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윤화영이 수진이라는 우진의 오랜 친구를 며느리감으로 생각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식이 이런 부모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안성맞춤이겠죠.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생각과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우진은 윤화영과는 그 생각의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우진은 충분히 윤화영의 생각을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해의 차원이지 잘못된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우진의 이러한 태도는 부모의 생각을 떠나 독립된 인격체의 태도로 바람직한 것입니다. 자식으로서 당당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러한 우진의 태도를 그렇게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의사가 거의 전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적인 판단이 주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자식에게 부모의 의사는 여전히 비중있는 조건으로 유효합니다. 부모는 여전히 자식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합니다. 자식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것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습니다. 선택은 자식이 하고 그 선택에 따른 실패나 ,실수도 자식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는 그 선택 자체를 실패나 실수가 게재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그러한 판단이 부모의 삶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못하게 하려 듭니다. 이 점은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적이기 보다는 공동체적이라는 미덕으로 치장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입니다. 자식은 부모가 낳은 존재는 맞지만 소유물은 아닙니다. 자식이 보다 나은 경제적인 환경, 사회적인 환경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은 언제나 자식의 몫입니다. 그 자식의 몫을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으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집착입니다. 우진에 대한 윤화영의 태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진의 판단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도덕적인 문제입니다. 우진의 사촌형인 김동훈(이재룡 분)이 우진과 만나 하는 이야기도 우진의 잘못을 탓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신에게 미리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 다였습니다. 부모들이 받을 충격 때문에 말입니다. 미리 이야기를 했더라면 그 충격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죠.


부모는 자식에게 충고나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선택을 무조건적으로 어리석다거나 볼경스럽게 여긴다면 그것은 자식에 대한 집착입니다. 그기다 윤화영은 윤희를 맹목적으로 싫어합니다. 고아라는 사실에서부터 경제적, 사회적인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그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선택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앞으로 자식보지 않으면서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식을 자신의 판단으로만 얽매여 놓으려는 윤화영의 태도는 우진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진은 윤화영에게 묻습니다. “윤희가 왜 싫으신데요?” “그냥 싫어” 윤화영은 윤희가 그냥 싫은 것입니다. 우진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말이 안되죠, 그냥 싫다니요.” 바로 이렇습니다. 부모이지만 윤화영의 반대는 실체가 모호한 것입니다. 그냥 싫은 것입니다. 사실 그냥 싫은 것은 아닐테지요. 윤화영은 구구절절 윤희가 싫은 이유를 우진에게 이야기하니까요. 하지만 우진이 왜 윤희를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만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윤화영과 우진의 관계는 참 시사점이 큽니다.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이제는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집착이 혹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몇몇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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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와의 사랑에 대한 우진의 폭탄 선언으로 큰집, 작은집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윤희를 양녀로 들여 13년동안이나 자식처럼 키운 김영호(송재호 분)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비록 호적에는 올린 상태가 아니지만 자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영호의 반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윤희의 결혼에 대한 어떤 편견은 게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사촌인(이나 다름없는) 우진과의 사랑에 대한 충격이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김영호의 인격으로 판단해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단지 13년간이나 아버이와 딸처럼 지내왔는데 그런 윤희가 자신의 조카인 우진과 사랑을 하고 있다니 놀라고 속상해 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충격은 비록 너무나 강렬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완화되면서 평상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윤희에 대한 집착의 발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혼 상대자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관습적인 충격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영호는 윤희의 감정을 존중해주게 될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KBS드라마


김영호와는 달리 우진의 어머니인 윤화영은 다릅니다. 그녀는 사회적인 조건을 참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진의 감정을 존중해 주기보다는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에 더욱 신경을 씁니다. 우진을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며느리가 될 여자의 경제적인 조건, 학벌, 집안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적인 인지도가 있는 유명배우인 윤화영이고 보면 우진의 배우자도 그에 걸맞은 여자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윤화영이 수진이라는 우진의 오랜 친구를 며느리감으로 생각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식이 이런 부모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안성맞춤이겠죠.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생각과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우진은 윤화영과는 그 생각의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우진은 충분히 윤화영의 생각을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해의 차원이지 잘못된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우진의 이러한 태도는 부모의 생각을 떠나 독립된 인격체의 태도로 바람직한 것입니다. 자식으로서 당당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러한 우진의 태도를 그렇게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의사가 거의 전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적인 판단이 주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자식에게 부모의 의사는 여전히 비중있는 조건으로 유효합니다. 부모는 여전히 자식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합니다. 자식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것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습니다. 선택은 자식이 하고 그 선택에 따른 실패나 ,실수도 자식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는 그 선택 자체를 실패나 실수가 게재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그러한 판단이 부모의 삶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못하게 하려 듭니다. 이 점은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적이기 보다는 공동체적이라는 미덕으로 치장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입니다. 자식은 부모가 낳은 존재는 맞지만 소유물은 아닙니다. 자식이 보다 나은 경제적인 환경, 사회적인 환경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은 언제나 자식의 몫입니다. 그 자식의 몫을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으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집착입니다. 우진에 대한 윤화영의 태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진의 판단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도덕적인 문제입니다. 우진의 사촌형인 김동훈(이재룡 분)이 우진과 만나 하는 이야기도 우진의 잘못을 탓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신에게 미리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 다였습니다. 부모들이 받을 충격 때문에 말입니다. 미리 이야기를 했더라면 그 충격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죠.


부모는 자식에게 충고나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선택을 무조건적으로 어리석다거나 볼경스럽게 여긴다면 그것은 자식에 대한 집착입니다. 그기다 윤화영은 윤희를 맹목적으로 싫어합니다. 고아라는 사실에서부터 경제적, 사회적인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그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선택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앞으로 자식보지 않으면서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식을 자신의 판단으로만 얽매여 놓으려는 윤화영의 태도는 우진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진은 윤화영에게 묻습니다. “윤희가 왜 싫으신데요?” “그냥 싫어” 윤화영은 윤희가 그냥 싫은 것입니다. 우진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말이 안되죠, 그냥 싫다니요.” 바로 이렇습니다. 부모이지만 윤화영의 반대는 실체가 모호한 것입니다. 그냥 싫은 것입니다. 사실 그냥 싫은 것은 아닐테지요. 윤화영은 구구절절 윤희가 싫은 이유를 우진에게 이야기하니까요. 하지만 우진이 왜 윤희를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만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윤화영과 우진의 관계는 참 시사점이 큽니다.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이제는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집착이 혹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몇몇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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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뉴스(2011.6.4)에 인산인해를 이룬 입시설명회를 다룬 부분이 있었다. 입시설명회에 모여든 사람들이 대부분 부모들이라는 사실에 우리 사회의 광적인 입시설명회 열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왜 학생들의 대학 입시에 부모들이 이처럼 나서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걸 부모의 사랑이나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입시설명회 열풍은 우리 사회에서 학벌의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사랑을 믿어요>의 권기창(권해효 분)은 유능한 학원 강사였다. 어찌보면 사교육의 주범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의 초반부에 권기창은 학원에서 카리스마있는 강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입시 경쟁의 한 가운데서 그 열풍을 온몸으로 느꼈던 인물이다. 이런 살벌한 경쟁의 한 가운데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와 더불어 감정이 메말라버린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인물이 된 듯했다. 이러한 학원에서의 성격이 가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는데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인 인물로 아내 김영희와 아이들에게 기계적인 복종(?)을 강요했다. 그에게 아내 김영희와 자녀들은 마치 강압적인 명령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태도는 그의 경제적인 능력과도 무관치는 않았다.  


이미지출처: kbs 드라마

그런데 어느 순간 학원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아내 영희가 방송작가 공모에 당선이 되면서 역할이 뒤바뀌게 된다. 김영희가 방송국에서 드라마 작가로 일하는 반면, 권기창은 우여곡절 끝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권기창은 경제적인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도 잃고 만다. 이러한 변화의 초기에는 권기창의 몰락이 고소했고, 언제나 권기창에게 눌려살던 김영희의 드라마작가로의 신분상승(?)과 경제적 능력에 시원함을 느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역전된 위치가 감정적인 만족을 주는 것도 잠시, 바뀐 위치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우리의 가대와는 너무 달랐다. 점차 인간적으로 되어가는 권기창과는 달리 드라마 작가가 된 김영희는 자녀와 남편을 방기하면서 술에 빠져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작가로서 드라마대본을 쓴다는 사실을 그녀 행위를 합리화하는 절대적인(?) 근거로 항변하였다. 이러다보니 시청자들이 김영희에게 느끼는 피로감은 꽤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희화화되고 과장된 인물이라 유쾌하게 보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상하게 변화한 김영희와 달리 경제적으로 몰락한 권기창은 그 몰락이 그 자신의 변화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사실 드라마상에서 권기창이 이렇게 달리지게 된 구체적인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성찰적인 모습에 대한 묘사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권기창의 갑작스런 변화가 그 개연성을 결여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연성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권기창이나 김영희는 애초부터 개연성을 초월하는 코믹적인 요소가 강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경제력을 상실하고 어쩔 수없이 전업주부가 된 권기창은 아이들과 더욱 친밀해지면서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이전 아버지의 모습을 서서히 지우고 있다. 아이들도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너무 좋아한다. 권기창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찾으면서 자녀들과 관계회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가 수영도 하고, 강가에서 감자도 구워먹으면서 자녀교육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도 언제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강요만 하던 가부장적인 학원강사의 모습을 재현하던 권기창이 이제는 친구처럼 자녀들과 육체적, 정서적으로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울 정도이다.
 


이렇게 학원이란 공간에서 입시문제 풀이를 하던 학원강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아이들과 어울리는 권기창의 변화한 모습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입시설명회에 모인 부모들의 모습과 권기창의 모습이 자꾸만 대비되면서 교육의 의미와 부모의 역할을 되새겨 보게된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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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뉴스(2011.6.4)에 인산인해를 이룬 입시설명회를 다룬 부분이 있었다. 입시설명회에 모여든 사람들이 대부분 부모들이라는 사실에 우리 사회의 광적인 입시설명회 열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왜 학생들의 대학 입시에 부모들이 이처럼 나서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걸 부모의 사랑이나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입시설명회 열풍은 우리 사회에서 학벌의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사랑을 믿어요>의 권기창(권해효 분)은 유능한 학원 강사였다. 어찌보면 사교육의 주범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의 초반부에 권기창은 학원에서 카리스마있는 강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입시 경쟁의 한 가운데서 그 열풍을 온몸으로 느꼈던 인물이다. 이런 살벌한 경쟁의 한 가운데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와 더불어 감정이 메말라버린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인물이 된 듯했다. 이러한 학원에서의 성격이 가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는데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인 인물로 아내 김영희와 아이들에게 기계적인 복종(?)을 강요했다. 그에게 아내 김영희와 자녀들은 마치 강압적인 명령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태도는 그의 경제적인 능력과도 무관치는 않았다.  


이미지출처: kbs 드라마

그런데 어느 순간 학원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아내 영희가 방송작가 공모에 당선이 되면서 역할이 뒤바뀌게 된다. 김영희가 방송국에서 드라마 작가로 일하는 반면, 권기창은 우여곡절 끝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권기창은 경제적인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도 잃고 만다. 이러한 변화의 초기에는 권기창의 몰락이 고소했고, 언제나 권기창에게 눌려살던 김영희의 드라마작가로의 신분상승(?)과 경제적 능력에 시원함을 느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역전된 위치가 감정적인 만족을 주는 것도 잠시, 바뀐 위치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우리의 가대와는 너무 달랐다. 점차 인간적으로 되어가는 권기창과는 달리 드라마 작가가 된 김영희는 자녀와 남편을 방기하면서 술에 빠져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작가로서 드라마대본을 쓴다는 사실을 그녀 행위를 합리화하는 절대적인(?) 근거로 항변하였다. 이러다보니 시청자들이 김영희에게 느끼는 피로감은 꽤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희화화되고 과장된 인물이라 유쾌하게 보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상하게 변화한 김영희와 달리 경제적으로 몰락한 권기창은 그 몰락이 그 자신의 변화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사실 드라마상에서 권기창이 이렇게 달리지게 된 구체적인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성찰적인 모습에 대한 묘사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권기창의 갑작스런 변화가 그 개연성을 결여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연성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권기창이나 김영희는 애초부터 개연성을 초월하는 코믹적인 요소가 강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경제력을 상실하고 어쩔 수없이 전업주부가 된 권기창은 아이들과 더욱 친밀해지면서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이전 아버지의 모습을 서서히 지우고 있다. 아이들도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너무 좋아한다. 권기창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찾으면서 자녀들과 관계회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가 수영도 하고, 강가에서 감자도 구워먹으면서 자녀교육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도 언제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강요만 하던 가부장적인 학원강사의 모습을 재현하던 권기창이 이제는 친구처럼 자녀들과 육체적, 정서적으로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울 정도이다.
 


이렇게 학원이란 공간에서 입시문제 풀이를 하던 학원강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아이들과 어울리는 권기창의 변화한 모습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입시설명회에 모인 부모들의 모습과 권기창의 모습이 자꾸만 대비되면서 교육의 의미와 부모의 역할을 되새겨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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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과 서혜진 부부가 ‘불륜’으로 갈등을 겪다 이제 화해가 되는 시점에 이번에는 불륜보다도 더 강력한 ‘전통, 관습, 인륜‘ 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사촌지간인 우진과 윤희의 사랑이 그것인데요, 사랑에 도취된 그들만의 행위와 사고 속에서는 어떤 고난이나 장벽도 극복할 것 같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엄청난 시한폭탄을 품고 있었습니다.



44회에서 우진이 윤희와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해 큰댁을 찾아가고 또한 그 자리에 우진 자신의 부모인 김수봉과 윤화영도 불러들입니다. 그런데 우진의 이런 폭탄 선언에 큰 아버지 김영호, 자신의 부모 김수봉과 윤화영, 그리고 할머니 차귀남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비록 윤희가 김영호의 친딸은 아니지만 13년 동안이나 딸처럼 여기면서 살아온 사실상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윤희를 우진이 사랑한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있으니 어찌 놀랍고 충격적이지 않겠습니다.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4252



드라마에서도 우진의 아버지인 김수봉의 입을 통해 말해지지만, 우진이 단순히 생각하고 있는 윤희가 김영호의 호적에 올려졌는지 그렇지 않는지의 법적인 문제는 중요치가 않습니다. 문제는 윤리, 도덕적인 문제입니다. 기성세대들은 도덕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하지만 지켜져야 할 것은 지켜져야 하는 입장입니다. 김영호의 가족으로 13년 동안 딸로 지내며 살아온 윤희가 자신의 조카와 사랑하는 사이라니 믿기지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지켜야할 최소한의 요건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덕이나 윤리보다는 법을 우선시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러한 태도는 사랑이라는 현실적인 감정에 대해 맹목적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단순히 맹목적인 사랑의 감정만으로는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이나 윤리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면 바로 우진과 같은 이러한 태도가 사회적인 관습화된 의식 밖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진은 어느 정도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윤희와 만나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을 윤희에게 합니다. 이러한 우진의 태도는 윗세대의 반응과는 너무나도 극과 극입니다. 마치 충격에 휩싸여있는 할머니와 부모 세대를 조롱(?) 하는 것 같습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우진의 고집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아마 필자도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는 기성세대와 이것을 개선하거나 부수려는 새로운 세대와의 갈등을 동반하게 됩니다. 전통을 이어가려는 기성세대에게도 전통이나 관습을 변화시키려는 신세대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표현이 가능하겠죠. 보수와 진보는 결코 선악을 구분하는 개념이 아니라 가치의 차이입니다. 서로에게 일장일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둘의 충돌의 과정에서 변화한 것이 탄생하는 것이 균형과 조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균형과 조화보다는 비약이나 배타의 현상이 발생합니다. 전통이나 관습을 기키려는 힘이 너무 크거나 변화시키려는 힘이 너무 크지면 일방적이 되어버립니다. 이건 서로에게 너무 불행입니다. 수구와 혁명이 다 같이 극단의 현상이며 현실의 불행을 잉태합니다. 우진과 윤희의 사랑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멀리 나아간 듯 하네요.



이러한 관점에서 <사랑을 믿어요> 46회는 우진-윤희의 사랑에 대한 갈등이 45회에 비해 더 크게 밀어 닥칠 것입니다. 이들 사랑의 해결책은 충돌하는 가치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는냐의 문제인데요, 가치의 충돌을 조화와 균형감있게 해결하기라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필자의 추측으로는 우진-윤희(윤희는 후회하면서 우진을 저주하고 있는 듯 하지만)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의 인식을 보여주고자 할 텐데요, 기성세대의 반응과는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무론 처음에는 충격에 빠질 테지만 말입니다. 또한 세대상으로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 김동훈, 서혜진의 태도도 궁금합니다. 45회에서 김동훈과 서혜진은 윗세대인 차귀남, 김영호 등의 반응과는 달리 차분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이해의 폭이 어느 정도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믿어요> 부부간이 불륜보다도 ‘인륜‘ 의 문제로서 이 우진-윤희의 사랑이 빗어놓고 있는 세대간의 갈등, 전통과 현대의 갈등, 가치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이 될지 정말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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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과 서혜진 부부가 ‘불륜’으로 갈등을 겪다 이제 화해가 되는 시점에 이번에는 불륜보다도 더 강력한 ‘전통, 관습, 인륜‘ 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사촌지간인 우진과 윤희의 사랑이 그것인데요, 사랑에 도취된 그들만의 행위와 사고 속에서는 어떤 고난이나 장벽도 극복할 것 같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엄청난 시한폭탄을 품고 있었습니다.



44회에서 우진이 윤희와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해 큰댁을 찾아가고 또한 그 자리에 우진 자신의 부모인 김수봉과 윤화영도 불러들입니다. 그런데 우진의 이런 폭탄 선언에 큰 아버지 김영호, 자신의 부모 김수봉과 윤화영, 그리고 할머니 차귀남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비록 윤희가 김영호의 친딸은 아니지만 13년 동안이나 딸처럼 여기면서 살아온 사실상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윤희를 우진이 사랑한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있으니 어찌 놀랍고 충격적이지 않겠습니다.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4252



드라마에서도 우진의 아버지인 김수봉의 입을 통해 말해지지만, 우진이 단순히 생각하고 있는 윤희가 김영호의 호적에 올려졌는지 그렇지 않는지의 법적인 문제는 중요치가 않습니다. 문제는 윤리, 도덕적인 문제입니다. 기성세대들은 도덕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하지만 지켜져야 할 것은 지켜져야 하는 입장입니다. 김영호의 가족으로 13년 동안 딸로 지내며 살아온 윤희가 자신의 조카와 사랑하는 사이라니 믿기지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지켜야할 최소한의 요건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덕이나 윤리보다는 법을 우선시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러한 태도는 사랑이라는 현실적인 감정에 대해 맹목적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단순히 맹목적인 사랑의 감정만으로는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이나 윤리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면 바로 우진과 같은 이러한 태도가 사회적인 관습화된 의식 밖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진은 어느 정도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윤희와 만나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을 윤희에게 합니다. 이러한 우진의 태도는 윗세대의 반응과는 너무나도 극과 극입니다. 마치 충격에 휩싸여있는 할머니와 부모 세대를 조롱(?) 하는 것 같습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우진의 고집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아마 필자도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는 기성세대와 이것을 개선하거나 부수려는 새로운 세대와의 갈등을 동반하게 됩니다. 전통을 이어가려는 기성세대에게도 전통이나 관습을 변화시키려는 신세대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표현이 가능하겠죠. 보수와 진보는 결코 선악을 구분하는 개념이 아니라 가치의 차이입니다. 서로에게 일장일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둘의 충돌의 과정에서 변화한 것이 탄생하는 것이 균형과 조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균형과 조화보다는 비약이나 배타의 현상이 발생합니다. 전통이나 관습을 기키려는 힘이 너무 크거나 변화시키려는 힘이 너무 크지면 일방적이 되어버립니다. 이건 서로에게 너무 불행입니다. 수구와 혁명이 다 같이 극단의 현상이며 현실의 불행을 잉태합니다. 우진과 윤희의 사랑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멀리 나아간 듯 하네요.



이러한 관점에서 <사랑을 믿어요> 46회는 우진-윤희의 사랑에 대한 갈등이 45회에 비해 더 크게 밀어 닥칠 것입니다. 이들 사랑의 해결책은 충돌하는 가치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는냐의 문제인데요, 가치의 충돌을 조화와 균형감있게 해결하기라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필자의 추측으로는 우진-윤희(윤희는 후회하면서 우진을 저주하고 있는 듯 하지만)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의 인식을 보여주고자 할 텐데요, 기성세대의 반응과는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무론 처음에는 충격에 빠질 테지만 말입니다. 또한 세대상으로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 김동훈, 서혜진의 태도도 궁금합니다. 45회에서 김동훈과 서혜진은 윗세대인 차귀남, 김영호 등의 반응과는 달리 차분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이해의 폭이 어느 정도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믿어요> 부부간이 불륜보다도 ‘인륜‘ 의 문제로서 이 우진-윤희의 사랑이 빗어놓고 있는 세대간의 갈등, 전통과 현대의 갈등, 가치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이 될지 정말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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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드라마의 성격상 가족의 가치가 중심에 놓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가족드라마에 가족이 해체되는 내용이 전개된다면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상반된 것이라고 해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물론 부정적이라도 가족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가족드라마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가족드라마는 온 가족이 함께 보면서 가족애를 좀 더 공고히(?) 하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족’의 의미는 부정적인 모습을 표출하고 있다. 이것은 전통과 현대, 공동체와 개인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갈등을 겪고 있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극단적으로 가족의 해체라는 표현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저항이나 놀람의 의미가 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가족’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변화에 대한 보수적인 표현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변화를 해체라는 위기로 파악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틀속에서만 생각하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가족의 변화에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http://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3622



<사랑을 믿어요>는 이런 가족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의 가치의 충돌양상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가족드라마로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의미가 재미라는 당의정속에 녹아있어 <사랑을 믿어요>는 가족드라마로서 새겨볼만 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드라마고 가치의 충돌과 갈등은 있기 마련이지만 <사랑을 믿어요>는 변화의 경계선상에서 충돌하는 가치를 보여주고 있어 의미가 있다.


우선 분명한 갈등으로 자리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가족에 대한 어떤 메시지이다. 대가족제도는 현실에서는 자꾸만 사멸되어가는 제도이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대가족을 주된 인간관계의 공간으로 전면에 배치한 것은 삭막해져만 가는 오늘날의 핵가족제도에 대한 성찰적인 의미를 띈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그 대가족 속에서 여전히 권위를 가지고 있는 차귀남의 존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은 어떤가? 연륜의 권위는 인정받지 못하며 자꾸만 왜소해져만 가는 노인들이지 않는가? 삶의 연륜과 그것에서 나오는 지혜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아닌가? 새롭고, 세련되고, 화려한 것에만 가치를 두는 버블 같은 시대에 노인들은 초라해지기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이런 모습을 역전시키고 있는 것이 드라마이다. <사랑을 믿어요>의 할머니 차귀남은 정말 현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명희에게 연애 조언을 세련되게 하는 정도이다. 필자도 다른 포스트에서 차귀남 할머니를 연애박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따라서 할머니 차귀남의 존재는 전통적인 성격을 가장 리얼하게 대변하는 인물인 동시에 현대를 수용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둘째로, 부부 관계에 대한 가치이다. 김동훈과 서혜진 부부의 갈등은 결국 남편과 아내에 대한 서로의 가치관 차이가 원인이 된 경우로 어떤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서 부부관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아내(남편)의 불륜에 대한 남편(아내)의 태도의 문제이거나, 불륜 자체에 대한 인식이거나, 또한 부부간 믿음과 신뢰의 문제 등이 그런 것들이다.  <사랑을 믿어요>에서는 부부와 가정의 틀과 유지라는 가치에 비중을 두는 다소 보수적인 해결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이 문제는 ‘부부‘ 에 대한 인식변화를 제기한다고 할 수 있다. 권기창과 김영희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부부‘ 에 대한 인식 변화를 생각해 보게 한다. 다소 코믹하게 전개가 되지만 아내의 변신과 남편의 내조가 그런 것이다.


셋째, 남녀관계와 관련된 ‘금기의 영역’ 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우진과 윤희의 사랑이 약한 정도의 예가 아닐까 한다. 이들은 비록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촌관계이지만 관습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윤희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우진은 사랑을 위해서 이런 관계를 부수고 극복하고자 한다. 이러한 우진의 시도를 좀 더 확장시켜보면 동성애, 동성부부, 연상연하커플, 독신, 황혼이혼 등과 같은 변화된 인식과 맛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부나 남녀관계의 전통적이고 관습화된 인식에 균열이 생기면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기 시작하고 있다.


현재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가족의 해체라는 방식으로, 커밍아웃이라는 결단으로, 이혼이라는 선택으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다양한 새로운 가치로 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화해하는 과정에 있다. 받아들이기에 영 어색한 정도는 아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너무 멀리 나아간 아전인수격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드라마가 현실을 일정부분 반영한다는 면에서 변화의 양상들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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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참 허구적일 때가 많다. 특히 사랑이란 말만큼 허구적인 말을 찾기가 어렵다. '사랑' 이라는 말 자체는 정말 아름답고 이상적인 말이지만 사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의 현실은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인간이 첫사랑이란 것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간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그만큼 사랑은 인간의 가변적인 감정이나 입장, 상황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 남녀의 입장에서는 정말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라고 해도 그것이 한 가정을 깬 사랑이라거나 한 사람을 불행해 처하게 한다면 어찌 아름답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절대적일 것 같이 시작하는 사랑이라는 것도 시간과 함께 마모되면서 상대적이 되어 버린다. 부분적으로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추할 수 있는 상대적인 모습이 사랑이란 것의 얼굴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뭐 인간의 현실 속에서 이렇지 않은 것들이 있을까?
 


<사랑을 믿어요>에서 서혜진(박주미 분)과 한승우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드라마에서 이들의 관계를 부분적으로 보여줄 때는 참으로 아름답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빠진 듯한 한승우와 모성적인 애정으로 자리하는 서혜진의 관계는 진실하며 아름다워 보인다. 미술관이라는 배경과 파리에서의 조우가 운명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기도 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서혜진이 유부녀가 아니라 김동훈의 여동생이면 어땠을까?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58690



그러나 이들의 관계를 이 둘 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간관계에서 조망해보면 참으로 이기적일 수 있다. 서혜진과 한승우 사이의 진실과 아름다움이 위선적이게도 보이게 만든다. 사랑이란 이렇게 절대적이며 상대적이다. 김동훈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아내가 초등학교 제자를 격려하고 애정을 솟아주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내와 정답게 지내는 모습은 남편인 김동훈에게는 슬픔과 분노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그에게 보내져온 아내 서혜진과 한승우가 함께 다정하게 있는 사진들(음모이며 사실과는 거리가 먼 사진들이지만)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는가? 극단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보면 이혼이라는 것은 쓰레기가 되어버린 사랑의 배출구인 셈이다.
 


서혜진의 이러한 감정에 사랑이란 라벨을 달아 줄 수 있을까? 또 한승우의 서혜진에 대한 애정에 사랑이란 라벨을 달아 줄 수 있을까? 이미 언급했듯이 사랑이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이다. 이 세상 결혼한 부부들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하지만 여전히 검은 머리인체 서로 영원히 갈라지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상대적인 사랑의 현실 속에서 서혜진과 한승우의 관계가 사랑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으며 동시에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필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사랑이면서 사랑이 아닌 것. 참 난감하다.
 


이러한 생각은 그들의 사랑이 동시에 사랑을 깬다는 면에서 사랑이면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불륜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사랑을 깨는 원죄로 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랑은 절대적이여만 하지만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의지가 작용하며 무엇보다도 신의와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혜진이 아직 김동훈과의 사랑을 깼다거나 신의를 상실한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수위이다. 서혜진이 한승우에게 "힘들게 하지 말아달라!" 고 하고 한승우가 파리로 떠난다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랑의 감정이란 너무 변덕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서혜진과 한승우의 애정관계를 두둔하다면 그들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는 김동훈의 모습도 함께 상상하고 가상적인 체험의 노력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동훈에게 서혜진는 신뢰와 신의를 저버리는 아내일 것이다. 한승우에게는 어머니처럼 애정이 느껴지는 서혜진이지만 김동훈에게는 가슴을 갈갈이 찢어놓는 배신한 아내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랑을 믿기가 참 어려워졌다. 그토록 믿었던 아내였는데 아내는 다른 사내 한승우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사랑이란 정말 믿어야 하는 것일까? 결국 이 가족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믿어요' 라고 하는 걸 보면 아내 서혜진에 대한 김동훈의 오해를 풀게 하겠지만 사실상 김동훈이 오해를 푸는 것이 어찌 쉽기만 할까? 김동훈씨, 서혜진씨의 사랑을 믿으세요, 아니면 믿지 않으세요?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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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회로 예정되어 있는 <사랑을 믿어요>가 42회가 끝났으니 8회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간 관계의 갈등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시간이 되겠죠. 아니 이미 갈등이 해소되고 관계가 복원이 되면서 행복한 관계를 예고하기도 합니다. 김철수와 김영희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결별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커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41회에서는 김철수가 김영희에게 국밥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고 이색적인  프로포즈였습니다. 내용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행복하게 해주겠다’ 로 수렴이 되겠지요. 국밥집 사장이다 보니 평생 맛있고 따뜻한 국밥을 먹이겠다는 식의 의미였구요, 근데 김영희는 이 프로포즈를 받고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만, 필자가 워낙 김영희에게 변덕이 심하다는 인상을 찍어놓고 있다보니 그 눈물이 도대체 얼마나 오래까지 갈까 그런 요상한 생각이 다 들더군요. 그럴 시점이 아닌데도 말이죠. 아무튼 김영희 이제는 많이 달라졌으니 믿어야 겠죠.


이제는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해 있지만 그 과정을 보면 김영희의 태도가 참 못마땅합니다. 김영희는 겉멋만 들어, 비유하자면 양철 냄비와 같은 여자였습니다. 철수이전에 사귀던 사내와의 관계는 정말 기가 찰 정도였으니까요. 아니 정말 한심할 정도였습니다. 바람둥이에 말만 번지르하며 자기 중심적인 사내에게 맥도 추지 못하며 질질 끌려다니는 김영희를 보면서 지혜로운 부모 밑에 어찌 저런 자식이 태어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부모인 김영호(송재호 분)나 이미경(선우용녀 분)의 막내딸이라고 하지만 부모의 품성이나 인격에 비해서 김영희는 너무 철없이 느껴졌습니다. 1남 2녀 중에서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아들 김동훈과는 달리 딸들은 너무 다른 모습들입니다. 드라마 작가가 된 김영희는 작가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뭐 작가하면 이래 저래야만 한다는 ‘정형적인 모습‘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작가가 갖추어야할 요건을 2% 정도 빠트리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좀 더 넓은 지면을 이용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http://www.kbs.co.kr/drama/believelove/report/photo/index.html


하지만 이렇게 철없는 김영희가 뚱땡이 국밥집의 사장인 김철수와 목하 결혼을 논하는 사이가 된 것은 참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놀랄 일을 이루는 데는 현자의 지혜로움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로 할머니 차귀남(나문희 분)이 그 존재입니다. 차귀남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독립된 포스트를 작성하고 싶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언급하게 되네요. 또한 독립된 포스트가 아니라 김영희와의 관계에서만 조명하게 되어 아쉬움이 앞섭니다. 아무튼 김영희가 김철수와 사랑하는 관계로 진행되는 과정에는 할머니 차귀남의 지혜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차귀남의 김영호 교감의 어머니로 대충 나이를 헤아려보면 80은 넘은 것 같습니다. 드라마상으로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젊어 보입니다. 차귀남은 할머니로서 손녀에게 남성관이나 연애에 대해 조언해 주는데요, 현실적으로는 참 드문 일입니다. 세대 차이가 큰 만큼 ‘할머니의 말씀‘ 이라는 것은 ’손녀의 입장‘ 에서는 생각의 괴리감만 확인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 일반적인 일입니다. 아니면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별 영양가 없는 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머니 차귀남은 다릅니다. 드라마가 만든 할머니의 이상적인 상이지만 참 매력적인 할머니입니다. 대체로 나이가 들면 꼬장꼬장 해지고 잔소리가 늘어나고 고집불통인 경우가 다반사인데 차귀남은 그런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입니다. 오히려 호쾌합니다. 마음이 넓고 지적이며 지혜롭습니다. 현실적인 할머니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학식있고 덕망 높은 지성인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특히 김영희에게 은근히 김철수를 부각시키고 김영희의 연애에 허를 찌를 때는 할머니 답지 않은 순발력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연애학 박사가 따로 없습니다. 20대 영희보다도 훨씬 젊은 세대의 심리를 잘 꿰둟어 봅니다. 영희에게 하는 짧은 한마디 한마디가 명언처럼 들립니다. 한마디로 너무나도 지혜로운 인물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할머니 차귀남의 존재는 단순히 드라마 내의 역할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가족과 노인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해 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오랜 삶을 살아온 지혜를 가진 존재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는 노인을 너무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도 됩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이 거쳐야 할 ‘노인‘ 이라는 시기를 망각해서도 안되겠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노인의 자리를 자꾸만 협소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사회시스템의 차원에서 노인 문제를 살펴보게도 됩니다. 김영희에게 연애에 대해 조언하는 세대차이가 없이 소통하는 할머니의 존재가 낯설지 않는 때가 곧 도래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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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창과 김영희 부부는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삶의 역할이 뒤바뀌었다. 학원 경영이 내리막을 달리면서 전업주부로 변신한 권기창, 드라마 작가가 되어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김영희, 참 생각지도 못한 역전된 삶이다. 권기창의 학원이 잘되던 시절 김영희는 초라한 행색을 한 전업주부였다. 특히 그녀의 외모는 촌스러움의 극치였다. 남편 권기창은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에 물든 그야말로 압제적인(?) 남편이었고 김영희는 이런 남편 밑에서 자신의 삶을 유보한 체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움츠리고 살아야 만 했다. 이런 현실에서 드라마 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잃고 찌질하게 살던 김영희가 드라마공모에 당선이 되고 드라마 작가가 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진 것이다. 학원 운영이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집으로 나 앉게 된 권기창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김영희의 드라마 작가 공모 당선은 통괘하기까지 했다.
 

이미지출처: KBS 드라마


그러나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개구리처럼 드라마 작가가 되고난 후의 김영희의 삶은 그녀가 그토록 경멸했던 남편 권기창의 삶을 비슷하게 답습하고 있다. 그녀 역시 일에만 파묻힌 직업여성으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로서의 삶이 작은 시간조차 내기가 어렵다고 해도, 또한 남편 권기창이 전업주부로 가사를 맡아하고 있다고 해도 드라마 작가 이전에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영희는 드라마 작가로서의 삶을 자기 삶의 최우선적인 자리에 놓으면서 가정내에서는 이질적인 존재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시청자들로서도 처음 김영희가 드라마작가가 되면서 권기창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모습에 환호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김영희의 모습에서 피로감을 느겨가고 있지 싶다. 필자 또한 그렇다.


김영희의 모습은 역할의 역전을 통해 통쾌감을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전에 김영희가 혐오했던 남편 권기창의 모습을 흡사하게 답습하고 있기에 자기모순적이다. 따라서 문제의 이동은 있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김영희의 존재가 그렇다. 김영희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남편 권기창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그녀가 드라마 작가가 되어서도 고스란히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성격은 다르지만 말이다. 권기창이 가부장적인 가장에서 자식들에게 좀 더 친밀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반면에 김영희는 드라마 작가로서 현대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식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김영희는 자신의 꿈이었던 드라마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남편 권기창과 자식들을 잃고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권기창의 변화에 큰 진전이 있다고 필자는 이미 언급했는데,  비록 아내 김영희와는 삐걱거리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농구코트에서 함께 농구를 하거나 집안일을 손수 함으로써 아이들에게는 친숙한 아버지가 되고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권기창은 직업을 잃고 전업주부가 되면서 가정적인 아버지로 변화한 것이다.


이런 권기창의 변화한 모습과는 달리 김영희는 드라마 작가로서의 삶이 비대해지면서 아내 와 어머니의 역할을 상실하고 있다. 이런 김영희의 모습은 자기모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남편 권기창의 모습을 은연중에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방기하면서 드라마작가로서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김영희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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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진이 친정으로 쫓겨나(?) 사실상 남편 김동훈과 별거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승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유부녀인 서혜진에게 접근하지만 않았더라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김동훈-서혜진의 가정이 이토록 힘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동훈이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한승우를 찾아가 다시는 아내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식의 충고를 하고 심지어 주먹을 날리기까지 했을 때 한승우는 프랑스로 떠나려고 결정했다. 그랬기에 그런 결정이 김동훈에 대한 화답으로 판단했고 사내다운 결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승우는 프랑스행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억울한 서혜진의 처지를 김동훈에게 호소하고 오해를 풀도록 노력하기 위해 프랑스행을 포기했다고 추측했다. 그런데 이런 추측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오히려 한승우는 친정에 있는 서혜진을 만나 프랑스로 함게 떠날 것을 제의했다. 불에 기름을 붓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감정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고 해도 타인의 감정을 무시해서는 않된다.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한다. 한승우가 서혜진에게 한 제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 생각없는 정말 말도 안되고 이기적인 제안이었다.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어떻게 서혜진으로 하여금 남편 김동훈과 딸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프랑스로 가자고 할 수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추잡한 바람둥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제안을 하면서 가정을 깨게 할 수 있을까. 물론 공은 서혜진에게 넘어왔고 서혜진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을 가진 서혜진이라면 한승우의 제안을 거절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한승우는 오직 자신의 감정과 입장만이 소중하다고 판단하는 그야말로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친정으로 쫓겨난(?) 서혜진의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기에 한 제안이라 주장하겠지민 이러한 제안은 한 가정을 부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언어는 너무 무섭다. 파리로 함께 가버리면 남아있는 가족들은 얼마나 불행해질까?

 

인간은 가장 타고난 언어라는 소통의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만큼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동물도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인간의 사고와 언어가 불완전하며 자기 중심적이거 편향적일 수 있다는 반증이다. 언어나 말은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들 중에 하나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본질을 감추는 수단이나 도구가 된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드라마가 빗어놓고 있는 김동훈-서혜진-한승우의 갈등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진실이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이라는 것은 소통의 부재에 부딪쳐 화해와 이해되지 못한 체 왜곡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지점에 말(언어)이 있다는 것에 당혹스럽다. 자신들의 말만을 내뱉으면서 그저 겉돌고 있다. 전면모를 보지 못한체 자기 언어만을 내뱉고 있는 이들의 소통의 부재, 특히 한승우의 자기 중심적인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이들에게 의미이게 다가오는 존재가 김영호 교감이다. 김동훈의 아버지인 김영호는 김동훈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윤희 처음 데려왔을 때 너의 엄마가 얼마나 의심을 했던지. 난 말이다, 니 엄마랑 살면서 그게 가장 서운 하더라. 날 못 믿는 것......믿을 수 있는 걸 믿는 건 믿음이 아니야. 눈에 보이든 안보이든 확인을 하든 안하든 무작정 믿는 것, 그게 믿는 거야.  난 에미가 너한 테 뭘 잘못했는지 몰라도 넌 남편으로서 모든 걸 다 덮어주고 믿어줘라. 세월이 흐른후에 모든 걸 다 잘했다고 말할 거다."

 
이것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버리는 것, 이기심을 버리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  김동훈, 서혜진, 한승우의 편협한 마음을 제대로 아우르는 말이다. 자신들의 입장들에서만 아니라 이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이 갈등이 해법은 분명해 진다. 특히 서혜진을 불신하고 있는 김동훈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충고이자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서혜진과 김동훈 사이에 놓여있는 이 믿음의 문제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부의 갈등 상황에서 또 느닷없이 나타내서 갈등을 조장하는 한승우는 오직 부부사이의 믿음이 깨어지기를 믿는 듯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처신을 하고 있다. 갈등은 치유하고 봉합하게 하여야 할 책임이 그에게 있음에도 말이다. 마치 서혜진을 위하고 있는 듯 하지만 서혜진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 한승우의 잘못된 처신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 김동훈은 무어며, 딸 란이의 존재는 무어란 말인가? 또 가족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초래되는 불행은 도대체 무엇인가 말인가?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은 아랑곳 하지 않은체 프랑스로 함게 떠나자는 한승우는 그야말로 파렴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극적인 흥미를 자아내기 위해서 이겠지만 참으로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아무튼 자신을 다시 받아들이고자 하는 남편 김동훈과 자신의 꺽어진 꿈을 펼칠 수있게 하는 한승우 사이에서 선택하게 된 서혜진의 운명이 참 안타까울 뿐이다. 40회에서 서혜진은 한승우를 공항에서 배웅하기만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김동훈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 깨운하지 않는 모습이다. 가족드라마가 왜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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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진이 친정으로 쫓겨나(?) 사실상 남편 김동훈과 별거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승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유부녀인 서혜진에게 접근하지만 않았더라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김동훈-서혜진의 가정이 이토록 힘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동훈이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한승우를 찾아가 다시는 아내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식의 충고를 하고 심지어 주먹을 날리기까지 했을 때 한승우는 프랑스로 떠나려고 결정했다. 그랬기에 그런 결정이 김동훈에 대한 화답으로 판단했고 사내다운 결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승우는 프랑스행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억울한 서혜진의 처지를 김동훈에게 호소하고 오해를 풀도록 노력하기 위해 프랑스행을 포기했다고 추측했다. 그런데 이런 추측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오히려 한승우는 친정에 있는 서혜진을 만나 프랑스로 함게 떠날 것을 제의했다. 불에 기름을 붓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감정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고 해도 타인의 감정을 무시해서는 않된다.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한다. 한승우가 서혜진에게 한 제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 생각없는 정말 말도 안되고 이기적인 제안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150305581001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어떻게 서혜진으로 하여금 남편 김동훈과 딸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프랑스로 가자고 할 수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추잡한 바람둥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제안을 하면서 가정을 깨게 할 수 있을까. 물론 공은 서혜진에게 넘어왔고 서혜진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을 가진 서혜진이라면 한승우의 제안을 거절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한승우는 오직 자신의 감정과 입장만이 소중하다고 판단하는 그야말로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친정으로 쫓겨난(?) 서혜진의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기에 한 제안이라 주장하겠지민 이러한 제안은 한 가정을 부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언어는 너무 무섭다. 파리로 함께 가버리면 남아있는 가족들은 얼마나 불행해질까?

 

인간은 가장 타고난 언어라는 소통의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만큼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동물도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인간의 사고와 언어가 불완전하며 자기 중심적이거 편향적일 수 있다는 반증이다. 언어나 말은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들 중에 하나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본질을 감추는 수단이나 도구가 된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드라마가 빗어놓고 있는 김동훈-서혜진-한승우의 갈등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진실이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이라는 것은 소통의 부재에 부딪쳐 화해와 이해되지 못한 체 왜곡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지점에 말(언어)이 있다는 것에 당혹스럽다. 자신들의 말만을 내뱉으면서 그저 겉돌고 있다. 전면모를 보지 못한체 자기 언어만을 내뱉고 있는 이들의 소통의 부재, 특히 한승우의 자기 중심적인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이들에게 의미이게 다가오는 존재가 김영호 교감이다. 김동훈의 아버지인 김영호는 김동훈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윤희 처음 데려왔을 때 너의 엄마가 얼마나 의심을 했던지. 난 말이다, 니 엄마랑 살면서 그게 가장 서운 하더라. 날 못 믿는 것......믿을 수 있는 걸 믿는 건 믿음이 아니야. 눈에 보이든 안보이든 확인을 하든 안하든 무작정 믿는 것, 그게 믿는 거야.  난 에미가 너한 테 뭘 잘못했는지 몰라도 넌 남편으로서 모든 걸 다 덮어주고 믿어줘라. 세월이 흐른후에 모든 걸 다 잘했다고 말할 거다."

 
이것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버리는 것, 이기심을 버리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  김동훈, 서혜진, 한승우의 편협한 마음을 제대로 아우르는 말이다. 자신들의 입장들에서만 아니라 이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이 갈등이 해법은 분명해 진다. 특히 서혜진을 불신하고 있는 김동훈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충고이자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서혜진과 김동훈 사이에 놓여있는 이 믿음의 문제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부의 갈등 상황에서 또 느닷없이 나타내서 갈등을 조장하는 한승우는 오직 부부사이의 믿음이 깨어지기를 믿는 듯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처신을 하고 있다. 갈등은 치유하고 봉합하게 하여야 할 책임이 그에게 있음에도 말이다. 마치 서혜진을 위하고 있는 듯 하지만 서혜진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 한승우의 잘못된 처신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 김동훈은 무어며, 딸 란이의 존재는 무어란 말인가? 또 가족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초래되는 불행은 도대체 무엇인가 말인가?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은 아랑곳 하지 않은체 프랑스로 함게 떠나자는 한승우는 그야말로 파렴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극적인 흥미를 자아내기 위해서 이겠지만 참으로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아무튼 자신을 다시 받아들이고자 하는 남편 김동훈과 자신의 꺽어진 꿈을 펼칠 수있게 하는 한승우 사이에서 선택하게 된 서혜진의 운명이 참 안타까울 뿐이다. 가족드라마가 왜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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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믿어요, 김철수는 왜 동생을 속이고 있을까?


아주 평범하고 성실하며 순박한 청년인 김철수는 가끔 톡톡 쏘기는 하지만 역시 근본 심정은 착한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오빠에 대해서 동생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실제적인 삶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꾸민 연극이라면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꾸민 듯한 연극이 아니라 실제 범상치 않은 존재로 보이기에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러한 모습이 현실이라면 왜 동생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었다거나 경제적으로 대박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어떻게 오픈카를 타고 다니고 어떤 큰 계약의 당사자로 등장할 수 있을까?


이미 언급했지만 그 비밀은 느닷없는 것이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틀림없다. 심지어 여동생까지 속이고 있는 형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여동생과 함께 작은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청년이 갑작스럽게 달라진 모습은 그 이면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말이다. 시청자가 이럴진데 여동생 김철숙은 얼마나 놀라울까? 아니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오빠가 자신이 알고있는 오빠가 아니라면 이런 배신감도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기가 막힐 정도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1381




이런 호기심은 그 강도에 비례해서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알려져 있지 않은 과거사를 드러내는 형식이 될 것인데 현실적인 삶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이라면 설득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예를 들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모가 느닷없이 나타난다거나, 여동생 몰래 투자한 돈이 엄청나게 불었다거나, 갑부인 친구와의 동업으로 떼돈을 벌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들은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과는 동떨어진 개연성을 상실한 것이다. 기존의 스토리 프레임에 이런 사건이 갑작스럽게 등장하게 되면 감정적인 통쾌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이야기를 망치게 되기 쉽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호기심을 자아내면서 시청률까지 높인다.


사실 드라마와 문학성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추세인데 현실에 찌든 대중에게 어쩌면 문학성이란 것이 사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필자 또한 대중의 한 사람으로 마찬가지이다. 개연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감정적인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일상과 관련해서 더욱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아니 현실을 잊게 하는 수단이다.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이야기가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그만큼 하루하루 현실에 얽매여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건 현실의 외피가 문학적인 감수성을 막고 있는 탓일 것이다. 예를 들면 시장의 좌판 상인들은 드라마가 곧 현실이다. 문학성을 따질 그런 시간적인, 존재론적인 이유를 쉽게 발견하기가 어렵다. 


문학성은 여유와 사색에서 나온다. 삶과 인간에 대해 ‘어떻게’ 보다는 ‘왜’ 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묻기 때문이다. ‘어떻게’ 는 ‘왜’ 의 부차적인 질문이다. 그것은 ‘왜’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와 ‘왜’ 는 큰 부분이 교집합으로 존재한다. 왜라는 사유의 물음에 어떻게가 결과적으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떻게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현실적인 수단들이다.



인간의 본질을 탐색한다거나 삶의 깊은 의미를 드러낸다거나 하는 문학성과는 살고 있는 현실이 너무 팍팍하긴 하다. 작가나 시인이 아니더라도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사색하는 여유를 의식적으로 만들어 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렇듯 오늘날의 드라마는 개연성의 문제나 삶의 본질과 같은 문학적인 깊이는 그리 생각할 바가 아닌 듯 하다. 여동생이 오빠에 대해서 모른다는 사실이나 오빠가 여동생에게 삶의 큰 부분을 숨기는 것은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이런 정도는 약과에 불과하다. 아무튼 김철수의 정체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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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어요, 뚱땡이 철수의 정체는?

그저 사람 좋고 평범한 젊은이로만 보이던 뚱땡이 국밥집 사장인 철수가 심상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철수는 이전 드라마 <결혼해주세요>에서 마치 한경훈(한상진 분)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경훈은 연호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정수를 배달하는 사람으로 어느날 갑작스럽게 대단한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인물입니다. 바로 이런 한경훈의 존재처럼 철수도 갑자스러운 변화를 보여줌으로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철수는 김명희에게 실연당해(?) 가출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어딘지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면서 일주일간이나 종적을 감춘 후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또한 오픈카를 타고 김명희 옆을 스쳐지나가기도 합니다. 이에 김명희는 입을 다물지 못한체 놀라기도 하구요. 이러니 도대체 철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철수가 어떤 존재인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설정은 진부합니다. 그저 평범한 젊은이가 알고 보니 대단한 존재더라는 식은 개연성을 무시하는 비약적인 전개입니다. 이런 비약적인 전개를 통해 놀람과 호기심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마치 드라마의 정석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5020096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철수를 이렇게 비약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은 다소 불만스럽습니다. 명희와의 관계에서 보면 이런 불만의 이유가 분명해 지는데요, 명희가 뚱땡이 국밥집 사장으로서 지극히 평범한 철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가의 문제 때문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 좋은 철수를 통해 명희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녀가 사귀고 있는 남자는 아주 도도하고 시건방지며 명희를 여자가 아니라 부하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희는 이런 사내를 좋아합니다. 명희가 한 때 이 사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철수와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이 사내가 다시 명희에게 다가오자 명희는 다시 그 사내와의 관계를 복원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명희는 국밥집 사장보다는 오픈카를 타고 다니는 사내에게 더 가까이하는 것을 보면 다소 속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영심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명희를 변화시켜주는 존재가 사람 좋고 평범한 청년인 철수이길 은근히 바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철수를 어딘지 모르게 범상치 않는 존재로 만들려고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한 것이죠. 결국 명희를 변화시키고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뚱땡이 국밥집 사장이었던 사람 좋고 평범한 철수>가 아니라 <결혼해주세요>의 한경훈처럼 <호기심을 자아내며 새롭게 등장하는 철수>라면 이들 사랑의 의미는 퇴색되고만 마는 것입니다.


아직 철수가 어떤 존재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전의 철수 모습과는 달리 철수에게 비약적인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은 필자의 잘못된 추측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어떤 경우라도 철수가 변화한 모습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철수의 정체는 무엇까요? 철수는 무슨 사업 같은 걸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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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과 서혜진의 별거는 단순히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친정으로 돌아온 딸 혜진에게 가족, 특히 엄마는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출가한 딸이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엄마의 심정일 것입니다. 김동훈의 아버지인 김영호는 제자가 개업한 식당에 초대받고 찾아가다가 우연하게도 며느리인 서혜진을 보게 됩니다. 제자의 식당이 사돈집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던 거지요. 프랑스에 연수를 가 있어야 할 며느리를 본 것이 얼마나 충격이었을까요?


동훈과 만나고 헤어진 혜진은 집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게 되는데요, 이곳에 혜진의 엄마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모녀가 대화를 나눕니다. 외롭다는 딸의 말, 동훈과는 맞지 않다는 딸의 말에 엄마는 가슴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모녀가 진지하게 나누는 대화이지만 정답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엄마의 마음은 정말 안타깝기 이를 때가 없습니다.


이미지 재캡처 출처 :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5012107133&mode=sub_view 

혜진과 만나고 헤어진 동훈 또한 포장마차에서 홀로 소주잔을 기울입니다. 아내의 배신에 대한 분노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스쳐지나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술 한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 김영호가 정원 그네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김동훈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가 대화를 나눕니다. 아내 혜진을 이해하고자 했다는 말, 가정적이기를 바랬기에 프랑스 유학을 보내주었다는 아들 동훈의 말에 아버지 김영호는 혜진을 모른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진지한 대화일 뿐 동훈과 혜진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삶의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은 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말은 아닙니다. 결국 동훈과 혜진의 부부 갈등은 그들 스스로가 풀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들에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사랑을 읽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식들의 행복을 바랍니다. 별거를 하고 있는 자식들에게 그들이 전하는 말의 핵심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한 발짝 물러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살아오면서 느낀 경험이고 지혜일 것입니다. 부모들의 말이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그 깊은 사랑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말에 담긴 사랑은 얼마간 자식들이 음미해야만 마음으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서혜진에게도, 김동훈에게도 부모의 말이 당장은 어떤 빛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이 깃든 말임은 분명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한 발짝 물러나는 너그러운 마음은 큰 분노와 소외감 속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미덕입니다. 동훈이 아내 혜진의 배신(이나 불륜)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동훈이 혜진을 친정으로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지만 자신이 한발작 물러나고 이해하겠다는 감정은 갖기 힘듭니다. 혜진 또한 이런 남편에게 정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저만치 물러나고 있습니다. 근본에서부터 서로를 돌아보아야 하지만 그들의 자존심은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런 당사자의 감정을 우선적으로 존중해 줄 수 밖에 없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들이 서로 한 발작씩 물러나길 바라는 것이지요. 행복은 그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보하고 이해할 때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김동훈과 서혜진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와 관계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진심어린 사랑의 말은 당장은 동훈이나 혜진의 귀에 거슬리고 공감되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랑이란 걸 알 것입니다. 이런 부모가 동훈과 혜진의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으며 의미를 되새겨 볼만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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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4회에서 김동훈과 서혜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내 서혜진의 불륜 사실에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면서도 숨죽여왔던 김동훈의 분노가 폭발하고 드디어 서혜진과 별거를 선택한 것입니다. 김동훈의 이러한 판단에 대해서는 대중의 의견이 분분하리라 생각합니다. 필자는 김동훈의 별거 선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별거가 문제의 해결보다는 앞으로 문제를 더욱 고착화 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물론 드라마상으로는 서로를 생각하는 진지한 시간을 가지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는 최후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이 별거지 김동훈은 서혜진을 친정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아무리 김동훈이 아내 서혜진의 불륜(?)에 분노한다고 해도 과연 남편으로서 아내를 친정으로 쫓아낼 권리가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또한 서혜진도 그렇습니다. 김동훈의 결정에 그저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절대 별거는 반대다라고 항변해야 하고 그것을 피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서혜진은 김동훈이 퇴근하고 귀가하는 길목에서 만나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 뿐입니다. 김동훈의 말에 눈물만 뚝뚝 흘립니다. 그리고 친정으로 쫓겨(?)납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0102


3년 동안 프랑스에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인텔리라고 할 수 있는 서혜진의 이러한 수동적이고 약한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고작 이런 아내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3년 동안이나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김동훈의 눈에 포착된 서혜진과 한승우의 다정한 모습이 남편으로서 용서하기 힘든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용서받기 힘든 애정 행각을 벌이는 불륜적인 현장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서혜진은 좀 솔직하게 그 상황을 김동훈에게 털어놓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찬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차라리 한 수 더 나아가 별거를 강요한다면 이혼까지도 불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대중의 인식은 참 나빠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자신의 결백을 믿으려 하지 않는 남편 김동훈에 대한 단호한 항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딸 란이가 3살일때 프랑스 유학을 떠날 정도로 당차고 줏대있는 여성이라면 김동훈에게 이런 정도의 단호함은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아내 서혜진은 너무나 순종적이고 유야하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서혜진의 모습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동훈의 태도도 그렇습니다. 별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내 서혜진의 심리적, 감성적인 요소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혜진의 입장은 전혀 이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만을 부각시키면서 그 감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필자가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서혜진은 다소 우울증에 빠져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서혜진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상태일 수 있습니다. 남편과 딸까지 한국에 두고서 프랑스에 유학까지 간 서혜진이 이런 우울증에 빠진 듯한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서혜진은 자의식이 강하며 감수성이 무척 예민한 여성입니다. 3년간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과는 다소 괴리감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따라서 피상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그림을 이해해주는 한승우의 존재는 단지 불륜이라는 관점만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위안적인 존재로 자리했습니다. 한승우도 또한 서혜진을 통해 위안을 받았구요. 따라서 서혜진과 한승우의 관계는 세속적인 불륜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해주는 예술적인 교감을 나누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혜진과 한승우의 관계가 전혀 잘못이 없는 관계라고 주장하거나 변명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김동훈이 자기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아내 서혜진을 바라보면 아내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질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김동훈의 태도는 사실상 남편의 가부장적인 권력의 남용이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또한 시댁 식구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는 서혜진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도록 강요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시댁에서 서혜진은 질식할 정도로 답답한 처지였습니다. 사실 김동훈과 서혜진 부부의 문제가 시댁이라는 공간의 제약 때문에 서혜진이 일방적으로 참고 당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들이 부부의 문제를 좀 더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분가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김동훈과 서혜진의 이러한 일련의 모습은 대중에게 우리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그대로 부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입장을 바꾸어 놓고 본다면 과연 김동훈이 본가로 쫓겨날 수 있을까요?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아니 본가는 커녕 아내에게 오히려 큰 소리를 칠지 모릅니다. 남편이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식의 변명을 들이댈 것입니다. 물론 김동훈은 양심적인 인간이라 이런 잘못이나 실수를 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아쉽고 안타깝게도 별거라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졌지만 앞으로 아내 서혜진에 대해서 김동훈이 1+1= 2 라는 논리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만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김동훈의 노력이 서혜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큰 의미를 던져주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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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 어느 쪽이고 서로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갖습니다. 현재 김우진과 윤희가 그런 빠져나오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데 그들을 막는 제약은 크기만 하고 참 괴로운 지경입니다.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사촌지간이라는 사회적인 통념도 그렇지만 이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됩니다. 오히려 우진과 윤희의 관계를 눈치챈 '샌프란시스코' 윤화영의 존재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윤화영은 윤희에게 매몰차게 우진과 만나지 말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화영은 큰댁의 수양딸인 윤희를 이유 없이 밉게만 보고 있습니다.


윤화영으로부터 우진과 만나지 말도록 강요를 받은 윤희가 우진에게 차갑게 굴자 우진은 마음의 동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 자신의 어머니인 윤화영이 윤희에게 강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기에 우진은 윤희의 싸늘해진 반응이 사촌지간의 '사회적인 통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미지 출처: KBS

이렇다보니 자기 한계에 대한 순응의 모습과 가슴 찢어지는 듯한 윤희에 대한 사랑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친족의 충돌은 정말 힘겨운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사실 윤희는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진이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윤희를 수양딸로 삼은 김영호 교감의 태도 여부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김영호 교감이 자신의 조카인 우진과 자신의 수양딸인 윤희의 관계를 곧 알게 되리라 판단이 되는데요, 김영호 교감의 태도가 이들의 관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봅니다. 즉, 김영호 교감이 윤희를 수양딸의 신분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의 위치로 다시 자리매김한다면 우진과의 사랑을 그렇게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인 통념상으로나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김영호 교감이 윤희의 후견인으로 소중한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아버지임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조카인 우진과의 사랑을 단호하게 거부할 존재는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만의 하나 김영호 교감이 그런 주장을 내세운다면 우진-윤희 사이에 정말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영호 교감의 태도가 이렇게 전향적으로 변화한다면 우진과 윤희의 사랑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윤화영 또한 윤희를 받아들이리라 판단됩니다. 윤화영은 어릴 적 우진에게 엄마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들 우진에 대한 부채감이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우진의 결혼 상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윤희가 우진의 곁에 있는 것을 보고 윤희에게 단호하게 우진과 만나지 말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의 사랑까지도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다고 해고 자식의 감정 마저도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윤희에게 상사병이 난 우진의 감정을 엄마로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진과 윤희의 사랑은 이렇게 잘 극복이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필자의 막연한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외로 김영호 교감의 태도가 보수적이라고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김영호 교감이 아내 이미경(선우용녀)와 가끔씩 티격거리는 모습을 통해서입니다. 사람 좋기는 그만이지만 보수적인 생각이 어느 정도 강한 느낌입니다.

 
아무튼 우진과 윤희의 사랑에 대해 긍정적인 추측이 가면서도, 그들이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특히 김영호 교감과 윤화영의 태도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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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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