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왕 김탁구'에 해당되는 글 73건

  1. 2010.10.09 도망자 Plan B,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 끼인 시청자들? (14)
  2. 2010.10.07 도망자 Plan B, 김탁구를 넘을 시청률 상승에 시동을 걸다? (20)
  3. 2010.09.20 김탁구, 아직도 여운이 남는 팔봉 선생과 팔봉 빵집! (13)
  4. 2010.09.18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 가장 불행했던 사람? (18)
  5. 2010.09.18 제빵왕 김탁구, 제작진의 현명한 속임수가 맞을까? (8)
  6. 2010.09.17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도 사실상 해피 앤딩인 이유? (12)
  7. 2010.09.16 김탁구, 구마준보다 더 깊은 상처를 가졌던 구일중 (5)
  8. 2010.09.16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은 한승재와 함께 떠나게 될까? (9)
  9. 2010.09.15 제빵왕 김탁구, 신유경과 서인숙의 운명적인 한판? (12)
  10. 2010.09.12 제빵왕 김탁구, 마준과 유경은 파멸할까? (22)
  11. 2010.09.12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은 정말 비열한 인간인가? (12)
  12. 2010.09.11 김탁구, 구일중의 지혜로운 몰카 속임수 (14)
  13. 2010.09.10 제빵왕 김탁구, 007 위기일발 조진구? (6)
  14. 2010.09.10 제빵왕 김탁구, 악녀되어 버린 유경의 운명은? (21)
  15. 2010.09.10 제빵왕 김탁구,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망하는 이유? (2)
  16. 2010.09.09 제빵왕 김탁구, 마준과 유경의 결혼은 변화를 위한 시작? (9)
  17. 2010.09.07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과 만신의 공통점? (14)
  18. 2010.09.06 김탁구, 누가 서인숙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6)
  19. 2010.09.04 제빵왕 김탁구, 신유경의 흰 드레스의 의미? (11)
  20. 2010.09.03 제빵왕 김탁구, 신유경은 구마준 곁을 떠날까? (13)
  21. 2010.09.02 김탁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의 정체는? (14)
  22. 2010.09.02 김탁구, '행복한 빵' 이 해피 앤딩의 복선이 아닌 이유? (12)
  23. 2010.09.02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이 쓰러진 건 자작극? (12)
  24. 2010.08.31 제빵왕 김탁구, 가장 행복한 빵의 정체는? (18)
  25. 2010.08.30 김탁구, 탁구는 거성가에 '행복한 빵' 의 맛을 전해 줄까? (16)
  26. 2010.08.29 제빵왕 김탁구, 구마준은 과연 '행복' 을 선택할까? (16)
  27. 2010.08.27 제빵왕 김탁구, 춘배는 왜 등장했나? (17)
  28. 2010.08.27 제빵왕 김탁구, 거성가를 접수하러 들어간 김탁구? (7)
  29. 2010.08.25 김탁구, 3차 경합의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빵>? (13)
  30. 2010.08.22 제빵왕김탁구, 구일중의 후계자는 과연 누가 될까? (19)


도망자,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 끼인 시청자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도망자>는 왜 글로벌해야만 할까? 왜 일본과 중국, 미국 대신에 강원도, 제주도, 서울, 부산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전개할 수는 없었을까? 이런 생각은 글로벌하다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단순히 호기심이다. 다만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 대사로 자막을 보아야한다는 불편함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경우 이렇게 다국어로 제작한 영화는 많다. 그러나 대부분 비중 없는 부분이나 엑스트라 부분의 대사를 번역처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필자가 본 영화에만 국한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 달리 <도망자>는 한국말이 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일본어와 중국어, 그리고 영어가 난무한다. 자막으로 번역된 대사를 보려니 번거롭고 어떤 경우에는 흐름이 끊어지기도 한다. 왜 이렇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해서 시청하는 데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자막의 문제는 사소하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세계를 누비며 비쥬얼한 이국적인 느낌을 제공하는 것을 그러한 단점을 커버하는 장점으로 여겼서일까.


아무튼 이렇다 보니 <도망자>는 시청자의 연령층을 참 협소하게 만든 것 같다. 이와 같은 생각은 필자의 이전 포스트(2010/10/07 - [드라마/도망자 Plan B] - 도망자 Plan B, 김탁구를 넘을 시청률 상승에 시동을 걸다?)에 달린 댓글을 읽고 느낀 점이다. 도망자는 애초에 시청자 연령층을 주로 20~40대로 타겟팅한 것 같으며 <제빵왕 김탁구>와 같은 다양한 연령층이 즐겨보는 국민드라마를 의도한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시청자 연령대를 협소하게 만들면서도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글로벌한 드라마로 만들었을까? 아마 여기에는 드라마 제작 이전에 치밀한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누가 적자보려고 드라마를 제작하려고 할 것인가? 필자의 추측으로 드라마 수출을 통한 수익과 드라마 외적인 로열티 수입을 의도하고 있지 않나 싶다. 또한 우리나라 내에서는 시청률을 한정시키고 있지만 ‘글로벌‘ 한 관점에서 보면 시청률은 더욱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스타 비가 아시아의 20~30대의 연령층을 끌어들인다면 시청률은 엄청나지 않을까. 드라마 시장이 협소한 우리에게는 다소 위험스러운 도박이 아닌가도 싶지만 과감한 시도에는 박수를 보낸다. 아무튼 잘 되기 만을 바랄 뿐이다.



만약 이 <도망자>를 로컬하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이 부분도 제작진은 분명 고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을 선택한 것은 단지 ‘글로벌’ 이 여러모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컬 드라마 <추노>의 제작진이 글로벌한 대형 드라마를 제작했다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아무튼 로컬과 글로벌한 배경은 그것들 자체로 의미가 있다. 로컬이 좋다, 글로벌이 좋다는 식의 선택의 대상도 아니다. 이미 글로벌이란 인식 자체가 로컬화 되고 있는 추세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어디 해외 여행이 평생 일대의 대사이인가. 그냥 제잡 드나들 듯이 나가는 것이 해외여행이지 말이다. 믈론 '제집 드나든다' 는 말은 보편적인 의미로 사용하기는 아직 이르긴 하지만 말이다. 로컬이나 글로벌은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일 뿐이다. 제작진의 의도로 선택되고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다. 다만 너무 글로벌을 지향하다보니 여러 개의 언어가 난무하고 자막을 보며 내용을 따라가려니 흐름이 간혹 깨어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되는 것이다.


사건을 해결해가는 두뇌를 사용해야 하는 탐정 이야기이다 보니 약간은 신경을 써야하는 데 설상가상 자막까지 읽어야 하니 피곤하다. 이 드라마를 보게 될 일본, 중국, 그리고 다른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줄곧 이어지는 자막에 자주 끼어드는 그들의 언어에 편안함을 느끼겠지만, 우리말로 대사를 듣다가 자막을 보아야하는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작진은 글로벌한 성공을 위해서 로컬한 불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무튼 이미 글로벌을 선택하고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으니 그저 성공하기만 바랄뿐이다. 재미와 감동이 따라준다면야 자막 정도의 불편함 쯤이야 이해해 주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포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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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씩 등장인물의 모습들이 낯익어 진다. 지우도 나카무라황도 그 과장된 연기가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진이의 비밀스러움도 마찬가지이다. 첫인상은 그리 믿을 것이 못되나 보다. 도망자의 첫인상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비등했다. 필자 개인의 추측이지만 이제 <도망자>에 대한 첫인상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들은 조금 수그러들지 않을까 싶다. 아직 작품의 완성도 운운하기는 이르지만 작품의 완성도도 높아 보인다. 흥미와 즐거움이라는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드라마를 평가하는데 이 흥미나 즐거움의 요소가 양대산맥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흥미가 고조되고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아직은 모를 일이지만, 여기에 감동까지 추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듯이 1,2회를 보기가 참 힘들다. 인내심 없는 시청자를 솎아내려는 듯이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 이런 경우에 직면하면 살짝 기분이 나쁘다. 이런 농담 같은 말을 소설에 대해서 어느 소설가가 한 듯도 한데 그 이름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필자가 생각건대 이건 고의적인 의도라기보다는 시작단계는 언제나 ‘일반적’ 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특히 숨이 긴 장편이나 대하소설 같은 경우는 말이다. 그러다 페이지수가 몇 장 넘어가면서 주인공의 이름이 익숙해지고 배경이나 사건들이 ‘구체화’ 되면서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도망자>는 3회에 이르러 일반적인 성격에서 구체적인 성격으로 넘어가기에 흥미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비의 연기도 어색하지 않고 좋다. 탐정이라는 캐릭터가 갖는 허허실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눈빛을 번득이며 진지함을 드러내는 모습이 실감 있다. 만화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분들에게는 더욱 그러할지 모르겠다. 지우(비 분)가 사건과 더욱 밀착되면서 그의 캐릭터도 좀 더 생동감을 얻고 있다. 1,2회에서 사건과 유리된 상태에서 비의 연기만으로는 다소 과장된 느낌이 들었지만 사건의 한 부분으로 그가 자리하면서 캐릭터가 개성을 발하고 있다. ‘일반적‘에서 ’구체적‘ 으로 진행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조금씩 몰랐던 부분들이 표면 위로 오르는 것이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단서들을 잡아가고 흥미가 고조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반적’에서 ‘구체적’ 으로 나아가는 몇 몇 점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등장인물

이미 언급했지만 지우는 일반적인 인물에서 구체적인 인물로 변하고 있다. 아니 가장 구체성을 띤 인물이었다. 1회는 거의 그의 소개로 할애가 되었으니 말이다. 과장된 표정이나 행동이 있긴 했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사건과 밀착되면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근데 돈과 여자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은 좀 자제하면 좋지 않을까?


진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녀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다. 그러나 지우와 함께 후쿠오카로 건너가면서 만나는 카이의 존재와 황미진와 히로끼의 관계, 더 나아가 이들과 멜기덱의 관계가 시청자들의 추측권 안으로 들어오면서 진이의 정체도 조금씩 베일을 벗고 있다. 또한 양두희의 출현도 진이를 둘러싸고 흥미를 자아내기 시작하고 있다.


2.사건

지우와 진이를 등장인물의 예로 들었지만,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베일에 가려있던 사건이 지우와 진이가 추적해가면서 윤곽을 잡아갈 것이다. 3회에서 이와 관련해서 황미진(윤손하 분), 히로끼(타케나카 나오토 분), 키에코(우에하라 타카코) 등이 등장하면서 궁극의 목표물인 ‘멜기덱’ 에게로 서서히 다가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시청자들은 이들이 멜기덱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건도 멜기덱의 살인과 진이의 복수라는 ‘일반적‘ 인 성격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있기에 흥미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3. 배경

배경도 마찬가지이다. 장소들도 좀 더 구체적인 공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호텔, 온천, 식당, 공연장, 옷가게 등으로 현실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배경의 현실감도 일반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지우와 진이가 멜기덱을 추적하는 과정에 대한민국 경찰 도수가 지우의 친구였던 케빈의 죽음과 관련하여 그를 추격하는데, 경찰이 지우와 진이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것도 스토리를 더욱 밀도있게 만들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제 3회가 지나면서 인내심의 시험도 잘 치루었다. 이제는 좀 더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한가지 흠이라면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우리말이 뒤섞이면서 흐름을 자꾸만 깬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포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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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여운이 남습니다. 탁구의 발견이 그 가장 큰 이유입니다. 탁구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현실의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인물이었습니다. 식상하고 판에 박힌 인물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작 우리 사회에서 식상하고 판에 박힌 인간은 한승재나 서인숙, 그리고 구마준 같은 인간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전염병처럼 퍼져있습니다. 한승재나 서인숙 같은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러니 도덕과 양심을 강조하는 사회적인 트랙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탁구을 식상하고 판에 박힌 인물이라고 하면 그건 자기모순이 됩니다. 교육이나 사회에서 추구대상이 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식상한 존재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 자신을 너무 기만하는 것입니다. 원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초로 돌아가야 합니다. 탁구는 원론이고 기초 같은 존재입니다. 탁구야 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존재이며 가장 신선한 존재입니다. 경쟁과 탐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쌍두마차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의 실타래를 풀어가야 함에도 현실은 더욱 더 꼬이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이미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그런데 탁구의 이면에는 팔봉 선생이라는 큰 산이 있습니다. 팔봉 선생이야 말로 탁구를 탁구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래서 참 의미있는 존재입니다. 팔봉 선생은 우리 사회의 얽힌 실타래에 대해 침묵으로 웅변합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듯한 우리 삶을 한 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팔봉 선생이 죽었다고 해서 그가 과거의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탁구처럼 우리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변화의 힘 그 자체입니다.



 

1. 참 된 교육의 힘

팔봉 빵집은 참 된 교육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학교나 학원이라는 교육 기관과 비교해 볼 때 팔봉 빵집은 참된 교육을 가르치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고, 참된 재능과 적성이 기본이되며, 기술 이전에 인간이 중심이 됩니다. 단순히 개인의 스펙을 업하기 위해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닌 진정으로 인간다움을 추구하고 소질과 적성을 개발하는 그런 곳이 바로 팔봉 빵집입니다. 팔봉 빵집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2. 장인 의식

팔봉 선생의 봉 빵은 장인 의식의 결정체입니다. 그가 만든 빵에 대해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있습니다. 무엇을 만들어도 혼을 불어 넣는 정신이 장인 의식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장인 의식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너무 가볍고, 속전속결입니다. 아이들이 김치보다는 행버거를 더 좋아하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성형을 통해 외모에만 치중하는 그런 가벼움이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큰 틀을 놓고 볼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용적인 지식과 사회적인 인정이 크게 작용하면서 실속보다는 겉멋만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직업의 귀천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이들에게 장래 되고 싶은 직업이 무어냐고 하면 소방수가 수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회 봉사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중요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연예인과 대통령이 최고의 가치를 발합니다. 사실 연예인이야 말로 장인 의식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이 됩니다만, 그러나 실제로 연예인을 선택하는 것은 외관으로 보이는 화려함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교육과 관련된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경쟁의 가장 정점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깨어져야 합니다. 바로 팔봉 선생과 팔봉 빵집에 그 해답의 일단이 있지 않을까요.



 

3.인간 중심의 관계

팔봉가와 거성가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인간에 대한 생각입니다. 팔봉가의 행복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인간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거성가는 인간들의 반목과 탐욕으로 물질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불행을 겪습니다. 이 두 공간을 우리의 전통적인 사회와 서구의 물질적인 사회로 양분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이나 서구에 대한 인식은 어쩌면 편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식의 비교가 이제는 무의미해졌다고 할수도 있구요. 이미 우리 사회가 서구 사회보다도 더 물질적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팔봉 빵집은 참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밤 하늘에 보석 같이 빛나는 그런 공간입니다. 우리 사회가 팔봉 빵집처럼 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기본적인 정신은 여젼히 우리 사회에 유효합니다. 높은 시청률 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대한 생각도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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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구일중의 탁구에 대한 집착은 그야말로 기형적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그를 수가 있나 구일중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이지만 구일중은 단순히 탁구에게 집착해온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의지해 왔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구일중의 마음 속 상처는 어느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출생의 비밀과 할머니 홍여사의 죽음을 목격한 마준 못지 않게 구일중의 마음 속 트라마우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기다 뇌출혈을 일으켜 몸도 자유롭지 않게 되겠습니다.

KBS 드라마 캡처

구일중이 자신의 아내 서인숙과 한승재가 불륜을 저질렀단 사실 정도는 자신이 미순과 저지른 불륜을 생각하면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참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인숙이 그토록 탁구를 멸시하고 천대했지만 구일중은 마준을 내치지 않았습니다. 마준은 탁구만을 애정으로 감싸는 구일중 때문에 많이 비뚤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구일중이 이 사실을 자세하게 눈치 챈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소통의 부재라기 보다는 소통의 어긋남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따라서 구일중에게 마준의 비뚤어진 인간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입장을 바꾸어서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존재인 구일중을 이해하려고 한 인간들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바다위에서 부유하는 섬 같은 존재였습니다.

KBS 드라마 캡처


드라마 상에서 구일중 만큼 답답한 인물도 없습니다. 바보 같은 인물도 없습니다. 김탁구의 바보같은 성격은 구일중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정말이지 구일중은 바보같은 존재였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이란 죄다 혼자서 삭여야만 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아무리 거성의 회장이면 뭐합니까? 십수년 동안 마치 암덩어리처럼 비밀을 안고 살아왔으니 구일중은 정말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 패기의 구마준의 삶과 사랑에 대한 몸부림처럼 그렇게 발버둥 칠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마준이처럼 그 마음의 상처가 부각되지는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대문이구요. 클럽을 전전하며 여자들과 타락을 일삼는 그런 마준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구 말이지요. 구일중에게는 거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과 가정과 우정을 지키려는 책임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마준처럼 무책임하게 자신의 신세만을 한탄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일중이 마준처럼 술이라도 마시고 취기에 소동이라도 부리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오직 구일중에게는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구일중의 옆에는 믿을 만한 인간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회장님, 회장님 하며 따르는 그 탁구 말입니다. 어린 시절 마준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없으며 자기 중심적이었습니까? 그 애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구일중은 몸서리쳤을 것입니다. 일중에게 탁구의 존재는 후계 문제만이 아니라 탁구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위로 받고, 심지어 치유받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일중에게 탁구는 참 의미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전의 글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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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50%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끝났다. 첫 회가 방영될 때만 해도 이런 시청율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대중들의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국민드라마로 떠올랐다. 마지막 30회가 다가옴에 따라서 결말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그만큼 화제가 되는 드라마였고 상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30회가 끝난 지금 무난하게 결말을 마무리지었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으로 서인숙에 대한 열려진 결말 처리는 선택하기 어려운 비극적인 결말과 해피한 결말 사이에서 제작진이 고심한 흔적처럼 보인다. 마지막 서인숙의 장면은 섬뜩하다 못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낼 정도였다. 서인숙이 미쳐버린게 아닐까 할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닌 인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인숙은 법적인 처벌을 당하는 한승재와는 달리 스스로 파멸되는 그런 응징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한승재와 서인숙에 대한 엄벌을 기대하고 그러한 기대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위장으로 보인다.
 

드라마가 결말로 향해 나아가면서 서인숙은 한승재와는 달리 나약한 모습들을 곳곳에서 보여주면서 해피엔딩으로 처리하려는 징후를 노출하는 듯 했다. 끝까지 악한 모습을 보여준 한승재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구일중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면서 한승재와는 멀어지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이런 일련의 서인숙의 변화로 판단해 보면 제작진은 서인숙을 해피 엔딩에 넣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진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들은 서인숙의 파멸을 원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서인숙의 운명에 대해 제작진은 시청자들과 충돌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한승재와 서인숙이 그 악의 댓가를 지불받지 않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부정한 곳이 되겠는가 말이다. 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드라마가 허구의 세계라고 해도 현실과는 완전히 유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서인숙과 한승재가 해피 엔딩이라는 틀 속에 그 독자성을 잃어버렸다면 이 드라마는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결말로 원망을 불러 왓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제작진은 당초의 해피엔딩을 밀어 붙일 수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 선택한 것이 열린 결말이 아닐까 싶다. 제작진은 비극과 행복 이 둘의 가능성을 다 열어 놓는 열린 결말로 처리함으로써 상상의 여지만을 남긴 것이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해피엔드와 새드엔드 양자를 다 만족시켜주는 선택 말이다. 그러면서도 포면적으로는 서인숙의 악녀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켜주면서 시청자들을 만족시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표면적으로는 대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서인숙에게 악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남겨두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적으로 서인숙은 해피엔딩의 상황 속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서인숙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말이다. 아무리 환경이 서인숙의 해피엔딩을 불러오는 성격이라고 해도 서인숙 자신이 변화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서인숙이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는 구마준이다. 즉, 서인숙이 한승재와 함께 악행을 저질러온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이 구마준이의 거성 장악이었다. 그런데 이런 구마준이 신유경과 함게 여행을 갖게되는 마당에 굳이 마준이나 유경에게 같날을 세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제작진은 결말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표면적인 사실과는 달리 그 깊은 이면에는 서인숙이 행복해 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참 현명한 속임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KBS드라마 포토박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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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50%대의 고공 시청률에 육박하며 국민 드라마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기성세대들에게는 중년연기자들이 전해주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젊은 세대들에게는 젊은 날의 초상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풋풋함과 시행착오의 삶이 어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처음부터 의도하고 제작하였다면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단원 막과 관련해서 우려했던 해피 엔딩은 피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적어도 한승재와 서인숙은 악에 대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의 흐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견의 흐름을 존중해 준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이미 짜놓았던 극본의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결말이 전적으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참 잘 된 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등장인물들의 결말들과는 달리 서인숙만이 열린 결말로 끝났습니다. 아마도 서인숙마저도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기에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서인숙을 고집불통의 악녀로 여전히 남겨두고 있지만 사실상 서인숙에게는 해피엔딩인 셈입니다. 제작진들이 교묘하게 시청자들을 속인 셈입니다. 왜 그럴까요?



언뜻보기에 서인숙은 변화지 않은 인물로 마무리를 짓고 있지만 그녀를 고통 속에 빠트려온 주위의 거의 모든 조건들이 해결된 셈입니다. 한 사람 구일중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구일중은 끝까지 서인숙을 용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구일중을 제외하고 나면 서인숙에게 주위의 다른 인물들은 호의적으로 환경으로 변화하여 자리합니다.


KBS 드라마 캡처



우선, 서인숙에게 가장 도전적인 인물이었던 신유경이 마준과 화해를 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여행을 다녀와서라도 신유경은 결코 서인숙의 라이벌로 자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준이 신유경이 차고있던 서인숙의 팔지를 돌려주는 것이 단적인 예가 되겠죠. 신유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인숙이 신유경을 무시하고 천대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가능성은 아주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마준입니다. 마준을 거성가의 주인으로 앉히려는 서인숙에게 마준의 몰락은 무엇보다도 참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준은 비록 거성의 대표는 되지 못하지만 몰락하지는 않습니다. 한승재의 말처럼 경쟁에서 지면 추락한다는 식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준이 신유경과 화해를 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며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인숙도 아들의 앞날에 축하를 빌어주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는 탁구입니다. 서인숙은 탁구가 거성가의 대표가 되는 것을 참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탁구가 마준을 누르고 대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심 없이 대표자리를 자경에게 내어준 것은 서인숙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탁구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것을 내심 기뻐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탁구에 대한 애정이 조금식 커져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경입니다. 구일중이 이끌던 가부장적인 거성을 이제 자경이 맡게 됩니다. 탁구와 마준이 자신들의 지분을 자경이에게로 몰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자경의 이러한 모습은 서인숙에게는 참으로 큰 만족감을 줄 것입니다. 비록 마준에게 기대한 것에는 못미치지만 자신의 딸이 대표자리에 앉은 건 큰 행복일 것입니다.


서인숙만이 변화가 없는 캐릭터로 열린 결말을 보여주었습니다. 결론을 간추리면, 서인숙은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불행한 삶을 예고했지만 사실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한 존재입니다. 그녀는 다시 행복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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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시간여후면 <제빵왕 김탁구>의 마지막회가 시작이 되겠네요. 대단원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한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또 이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정들었던 모든 등장인물들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몰라옵니다. 아무튼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KBS 드라마 캡처


<제빵왕 김탁구>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구일중의 탁구에 대한 집착은 그야말로 기형적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그를 수가 있나 구일중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이지만 구일중은 단순히 탁구에게 집착해온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의지해 왔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구일중의 마음 속 상처는 어느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출생의 비밀과 할머니 홍여사의 죽음을 목격한 마준 못지 않게 구일중의 마음 속 트라마우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구일중이 자신의 아내 서인숙과 한승재가 불륜을 저질렀단 사실 정도는 자신이 미순과 저지른 불륜을 생각하면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참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인숙이 그토록 탁구를 멸시하고 천대했지만 구일중은 마준을 내치지 않았습니다. 마준은 탁구만을 애정으로 감싸는 구일중 때문에 많이 비뚤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구일중이 이 사실을 자세하게 눈치 챈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소통의 부재라기 보다는 소통의 어긋남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따라서 구일중에게 마준의 비뚤어진 인간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KBS 드라마 캡처


드라마 상에서 구일중 만큼 답답한 인물도 없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이란 죄다 혼자서 삭여야만 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십수년 동안 마치 암덩어리처럼 비밀을 안고 살아왔으니 구일중은 정말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 패기의 구마준의 삶과 사랑에 대한 몸부림처럼 그렇게 발버둥 칠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마준이처럼 그 마음의 상처가 부각되지는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대문이구요. 클럽을 전전하며 여자들과 타락을 일삼는 그런 마준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구 말이지요. 구일중에게는 거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과 가정과 우정을 지키려는 책임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마준처럼 무책임하게 자신의 신세만을 한탄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일중이 마준처럼 술이라도 마시고 취기에 소동이라도 부리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오직 구일중에게는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구일중의 옆에는 믿을 만한 인간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회장님, 회장님 하며 따르는 그 탁구 말입니다. 어린 시절 마준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없으며 자기 중심적이었습니까? 그 애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구일중은 몸서리쳤을 것입니다. 일중에게 탁구의 존재는 후계 문제만이 아니라 탁구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위로 받고, 심지어 치유받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일중에게 탁구는 참 의미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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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일중은 서인숙과 한승재가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어머니인 홍여사가 죽은 날 한승재와 서인숙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한승재와 실랑이를 벌이든 구일중은 자신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단지 찬구이고 아내였기에 그 사실을 인내하며 지내왔다고 말합니다. 이미 예측은 해온 사실이지만 구일중의 입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제법 충격이 컸습니다. 이렇게 구일중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이상 서인숙과 한승재는 구일중과 함께 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KBS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구일중의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을 까요? 그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이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 사실을 감추며 마준의 나이만큼이나 오랜 세월 동안 모른척하고 살았다니 구일중의 인내심이 참 대단합니다. 그기다 비록 애정은 식어버렸지만 여전히 서인숙을 아내로 함께 생활하고 한승재를 비서실장으로 곁에 두고 왔다는 사실이 혀를 두르게 합니다. 정말 이런 위인이 다른 어디에 또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야말로 자신과 거성, 그리고 가정, 자신의 친구를 위해 힘들게 참아온 세월일 것입니다.


이런 구일중의 행동은 결국 자신의 잘못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미순과 불륜을 저지르며 탁구를 낳은 것에 대한 속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탁구에게 애정을 쏟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근원적으로 구일중은 마준에게 애정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픈 일이기에 구일중이 좀 더 가까이 다가갔더라면 하면 아쉬움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누구가 마준에게 살갑게 굴 수 있을까요? 사실 구일중이 마준을 냉대했던 것보다도 서인숙이 탁구를 냉대한 것이 훨씬 더 심했습니다. 서인숙은 탁구를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탁구는 마준처럼 빚나가지 않았습니다. 비록 홍여사의 죽음과 같은 충격적인 일을 직접 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어머니인 미순이 납치되는 것을 목격하고 그 이후로 미순을 찾기 위해 십수년을 찾아 해매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일이 홍여사의 죽을 묵격한 마준의 마음 상처보다도 작은 것일까요?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탁구의 상처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따라서 구일중이 마준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준을 반항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일중은 서인숙에 비하면 인간적인 처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서인숙처럼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이 밝히고 구마준을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 집니다. 따라서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구일중의 처신은 모두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모든 것을 자신이 덮고 가려는 일종의 희생정신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잔정은 없었지만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품위를 지켜려고 노력한 인물입니다.



KBS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마준이 절실하게 구일중의 관심을 받고자 했지만 사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서인숙과 한승재의 원죄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구일중의 차가운 태도가 비난을 받아야할 1차적인 대상이 아니라 서인숙과 한승재가 비난 받아야 하는 결정적인 대상인 것입니다. 또한 구마준의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구일중이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소통이 어긋난 것이지 소통자체를 거부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만약 구일중이 구마준이 홍여사의 죽음을 보게 된 사실을 알았다면 마준에 대한 태도가 그리 차갑지 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구일중은 마준의 그러한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마준에게 다소 차갑게 대했다고 해서 그것을 마준의 반항심과 비뚤어짐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제 구일중의 입에서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한승재와 서인숙은 구일중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구일중이 한승재에게 검찰을 부를지, 비행기 티켓을 가질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과연 서인숙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합니다. 서인숙은 한승재와 함께 떠나게 될까요? 구일중에게 서인숙은 이미 애정이 식은 존재라면 한승재와 함께 떠나는 것도 괜찮지 싶습니다. 구일중에게는 미순의 존재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구일중이 지금까지 서인숙과 애정없는 부부의 연을 이어왔지만 서인숙이 진정으로 뉘우치면 다시 받아 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서인숙과 김미순의 행복가 참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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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결말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이 결말에 대한 기대중에 서인숙과 신유경의 대립에 대한 결말이 있다. 신유경과 서인숙은 극단적인 부류의 여성이다. 서인숙의 어린 시설을 알 수는 없지만 유복하게 자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그녀의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면 과연 서인숙이 자신의 처지와 같은 사람들을 그토록 무시할 수 있을까? 탁구나 유경을 그토록 ‘천박한 인간’ 들로 업신여길 수 있을까? 누구라도 서인숙에게 정을 느끼기가 어렵지 않을까? 한승재 같은 부류의 인간은 제외하고 말이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정말 잘 들어맞는 것 같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이와는 반대로 신유경은 불행한 어린시절을 거쳤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폭력으로 악몽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어린 시절을 겪다보니 자기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 탁구에게 한 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서인숙에게는 사랑하는 탁구를 포기하면서까지 복수를 결행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탁구와 마준과 유경의 인물 비교이다. 탁구는 불행한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세상에 대해 대단히 낙천적이다. 이에 반해 구마준은 탁구와는 정반대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반항적이고 복수심으로 가득하다. 유경의 경우는 탁구와 마준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유경이 탁구와 마준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즉, 유경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인간들에게 대해 애정을 보이면서도 서인숙과 같은 인간에 대해서는 강렬한 복수심을 느끼는 것이다. 아무튼 서인숙과 신유경, 이 극단적인 두 부류의 여자들이 대립을 하면서 그런 결말을 맞게 될지 기대가 된다.  


서인숙을 보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그녀가 아무리 남편 구일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라고 해도 이러한 사실이 그녀의 천박하리 만큼 ‘업신여기는 태도’ 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뒤집어 생각해서 그녀의 업신여기는 태도야 말로 그녀를 외롭게 하기에 중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인숙의 더러운 인간성을 보면 구일중이 얼마나 꼴도 보기 싫을지 오히려 서인숙과 함께 살아야 하는 구일중이 너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서인숙은 겉으로는 고상한척 위세를 다 떨고 있지만 가장 저질의 인간이다. 구일중이 거성의 회장이면서 가부장적인 모습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비웃는 그런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따스한 마음이 있다. 그러나 서인숙은 달라도 너무나도 다르다. 우리가 서인숙이란 존재를 ‘품격있는‘ 자신의 생활 범위 안에서만 보아왔고, 간혹 단지 이질적인 존재인 탁구와 유경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서인숙의 일면을 보아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서인숙이 얼마나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있다.


유경이 밑바닥 현실에서 치고 올라오면서 이제는 서인숙의 며느리라는 신분에까지 상승을 하였지만 그녀의 근본은 서인숙과는 완전히 다르다. 신유경은 약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인간이고 마음 깊숙이에 따뜻한 인간미가 살아있는 존재이다. 표면적으로는 서인숙에 대한 복수를 노리며 거성가의 며느리가 된 유경이 편의상 악녀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영원히 악녀가 될 수 없는 인간이다. 결코 서인숙처럼 뼛속 깊이에 까지 악이 차있는 그런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서인숙과 신유경은 다른 방식으로 그 운명을 맞이해야 한다고 본다. 아니 운명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결과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좋겠다. 아무튼 서인숙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한승재와 함께 말이다. 이미 그녀는 도덕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 동정의 여지가 없다. 이와는 달리 신유경은 서인숙이 법의 심판을 받는 그 사실을 통해 전향적으로 자기 본질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즉, 어떤 결정적인 계기로 자신의 복수를 멈추어야 한다고 본다. 신유경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진정한 신유경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서인숙과 신유경을 피상적이나마 비교해 보았다. 이들의 대립은 단순히 개인들의 대립이기 보다는 서인숙과 신유경으로 상징되는 ‘그 어떤 것’ 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그 대립적인 요소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삶으로, 어린시절로, 내명적인 모습으로 시야가 확대되면 될 수록 그 상징성이 더욱 더 풍성해 질 것이다. 너무나도 상반되고 대조적인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서인숙과 신유경의 대립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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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다가올수록 무척이나 궁금한 것은 마준과 유경의 운명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될까는 이 드라마의 핵심중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상처받은 인간들의 변화와 치유, 화해와 소통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를 묘사하고 서술하는 궁극의 목적 중의 하나는 변화와 치유, 화해와 소통이니까요. 비록 불변과 은폐와 갈등으로 점철된다고 해서 결국 그것을 통해 변화와 치유, 화해와 소통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탁구-일중(일중은 다소 애매하기도 하지만)-미순의 스토리 라인이 다소 통속적이고 선악 양단의 가치를 지향한다면 인숙, 승재-유경-마준의 스토리 라인은 선악이 뒤섞이고 심리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따라서 후자의 라인이 문학적인 느낌이 강하고 여운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마준과 유경은 참 애착이 가는 인물들입니다. 탁구처럼 모범적인 인간으로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해진 현실 속에서 상처받고, 마음 생채기에 답답해하고, 분노의 격정을 견뎌내지 못하며, 악과 선의 혼란스런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준과 유경의 그런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애착이 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마준을 살펴볼까요. 마준에게는 정말 치유불능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지금 마준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도 바로 그 마음의 상처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마준처럼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하기 힘들만큼 괴로울 것입니다. 사실 그 아픔을 우리는 드라마 내내 마준과 함께 느끼고, 그래서 동정을 하면서 마준의 변화를 진심으로 지켜봐왔습니다. 마준이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 마다 원망하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상처입고 있는 마준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마준이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길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팔봉 빵집에서 마준은 그런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우리의 바람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팔봉 선생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면서 팔봉 선생이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팔봉 선생이 끝까지 마준을 껴 안아주었다는 사실에 강한 인상을 받습니다. 인간의 변화는 한 순간의 문제가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빵이 잘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듯이 조용히 기다려야 할 문제입니다. 마준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혼란스러운 삶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드라마가 끝 난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마준이 불쌍하면서도 슬픔을 자아냅니다.



유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자의 경우 유경은 더욱 더 애틋한 존재입니다. 진정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유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는 유경을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 진다면 더 아름다운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여겨질 정도입니다. 이승철이 부른 이 드라마의 주제곡 <그 사람>을 들으면 유경의 지나온 삶 때문에 가슴이 뭉쿨해지고 안타까워집니다. 유경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폭력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하면서 살아온 유경입니다. 그리고 보육원을 그치면서 대학을 다니고 학생 운동을 하면서 사회변혁의 꿈을 꾸던 유경이었습니다. 마준과 같은 내면적인 상처와 더불어 현실적인 모순과 그 모순으로 인한 고통도 고스란히 당한 인물입니다. 거성가의 황태자였던 박제된 마준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니다. 물론 그 상처의 가치를 측정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유경의 상처야 말로 내외면적인 그야말로 총체적인 상처입니다. 그러니 유경은 총체적인 사유를 하고 있습니다. 마준처럼 유아적이 아닙니다. 마준이 상대적인 질투와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악마성에 가깝다면, 유경은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 잘못된 것이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파멸을 선택한 것이지 파멸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보셨죠, 유경이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아버지와 조우를 했을 때 그녀의 슬픈 눈동자를 말입니다. 그녀는 결코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할 인물이 아닙니다. 비록 어린 시절 자신을 그토록 때리기만 한 존재이지만 마준이 처럼 피눈물 없는 그런 냉혹한 심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경이 복수를 선택했기에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한 것입니다. 정말 슬픈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유경은 더욱 더 슬픈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탁구를 버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버리면서 악을 선택하고 복수를 선택하고, 끝내 파멸을 선택한 유경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마준이나 유경이 파멸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필자는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바보 같은 추측들만을 남발해 왔기에 이번에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렵니다. 어쩌면 파멸을 막을 방법이 애당초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파멸이 된다고 해도 또한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파도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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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가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면서 국민드라마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로 나아가면서 사건들에 우연이 남발되고 있어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열려진 문틈으로 조심성 없이 하는 말들이 새어나가면서 갈등이 빗어지는 경우가 정형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홍여사가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대화를 엿들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엿듣는 행동으로 인해서 홍여사는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또 팔봉 빵집에서 구마준이 김탁구와 구일중이 상봉하는 장면을 엿보는 것도 만찬가지입니다. 공주댁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이렇게 필연성이 부족한 우연한 행동에 의해 빈번하게 일어나면 식상해 지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재미있다보니 이러한 구성상의 헛점들이 그마나 이해되는 것일까요.



KBS 드라마 포토박스 캡처



이와 관련해서 구일중이 병상에 누워 진구를 조종하고 서인숙과 한승재를 비롯한 가족들의 말을 은밀하게 엿듣는 것을 몰래카메라에 비유를 하고 심지어 비열하다고 까지 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특히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대화가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있습니다. 이건 구일중이 비열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이런 엿들기를 남발하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걸 비열하다고 여긴다면 작가가 비열한 것이지 구일중이 비열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죠. 양보해서 작가의 손을 떠난 인물인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해도 실제로 더 비열한 인간들은 서인숙과 한승재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비열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데 병석에 누워 누구를 조종한다는 식이나 단지 열려진 문틈으로 대화를 들었다고 해서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구일중은 자신을 파멸시킬 인간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팔봉 선생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봐 왔듯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야 말로 비열한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구일중이 그 비열한 인간들에게 대항하고 또 그러한 한 방법으로 대화를 엿들었다고 해서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면 도대체 정의는 어디에 있고 진실은 어디에 있을 수가 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이 엿듣기는 숱하게 등장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탁구도, 마준도, 그들이 다 커서 성인이되어서도 그들은 엿듣고, 엿보고 그러면서 갈등이 고조되기도 하고 갈등을 자제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 그걸 모두 비열한 짓이라고 한다면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비열하지 않은 자들이 없을 지경입니다. 공주댁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구일중을 비열하다고 하는 기준으로 공주댁을 본다면 공주댁은 비열함을 넘어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야말로 간악한 스파이짓을 한 중 늙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미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주댁을 움직인 김미순 또한 비열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닥터윤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을 응시하고 그들을 지켜보는 행위가 비열하다면 그 악은 도대체 누가 응시하고 지켜보아야 한다 말일까요.


따라서 엿듣기는 작가가 남발하는 우연이라고 해야 하며, 좀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진실에 다가가려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엿듣는 행위 그 자체는 그다지 바람직 한 행위는 아니지만 그 의도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니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 엿들을 수 밖에 없는 가 하는 사실 말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갭처


구일중의 엿들기와 관련해서 참 재미있는 사실은 홍여사가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비밀을 엿듣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더욱 흡사해 지겠네요. 홍여사와 마찬가지로 구일중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대화를 엿듣습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다시 구마준이 지켜봅니다. 이거 우리가 비오는 날 홍여사가 죽는 바로 그 날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홍여사가 죽는 그 날이 다시 대를 이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직 홍여사를 대신해 구일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일중은 홍여사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지도 참 궁금합니다.서인숙과 한승재의 대화를 엿들은 구일중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입니다. 병석에 있던 구일중이 그런 분노에 휩싸여 고함을 지르는데요, 구일중이 쓰러질만한 조건이 충분히 조성된 듯한 느낌입니다. 홍여사와 마찬가지로 구일중이 쓰러질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그러나 구일중이 죽을 가능성은 그다지 커보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죽는다면 탁구를 돕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기 때문입니다. 비록 탁구가 구일중의 대리인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았지만 서인숙과 한승재가 탁구를 밀어내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악이 승리하는 드라마라면 구일중이 죽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 크지 않습니다. 아무튼 구일중이 살아남아 모든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갭처


그런데 구마준에게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 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오를 것입니다. 이번에는 할머니 홍여사가 아니라 아버지 구일중입니다. 마준은 도대체 이러한 기시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필자가 판단컨데 구마준은 할머니 홍여사에 대한 부채감을 항상 가슴에 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부채감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고 말이죠. 홍여사에 대한 부채감을 만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쓰러진 구일중을 누구보다도 먼저 들쳐 엎고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마준에게 아버지 구일중을 살리는 것은 돌아가신 홍여사를 살리는 것과 동일선상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조금은 치유되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여기에 병실에 누워있는 구일중의 진심이 전해진다면 마준의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 지지 않을까 싶구요. 이것은 구일중과 마준과의 화해로 이어지게 될 지도 모르구요, 궁극적으로 유경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슬픈일이지만 서인숙과 한승재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혼란스러운 갈등의 끈들이 조금식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유경과 마준에게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따로 포스트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구일중이 쓰러져 있으면서 서인숙이나 한 승재의 말을 엿들은 것은 몰래카메라도 비열한 짓도 아닙니다. 그것은 작가가 선택한 진실로 나아가는 한 방식이며 이 방식이 너무 남발되어 식상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좀 더 다른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예를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서 보면 스따브로킨이란 인물이 엿듣는 행위를 빈번하게 하는 데요, 이 경우에는 그가 직접 만든 방의 통로를 통해서이지요. 영화 <이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관이 장롱문으로 가장된 연결 통로가 있죠. 그기서 은밀하게 사람들의 말을  엿듣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그 의도에 따라서 비열한 행위일수도 정의로운 행위일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구일중의 행위를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뇌출혈로 쓰려졌지만 의식이 깨어나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변호사와 상의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정말 비열하다면 서인숙과 한승재가 비열하지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는 것은 그 대상이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합니다.  


*글 다시 수정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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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가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면서 국민드라마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로 나아가면서 사건들에 우연이 남발되고 있어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열려진 문틈으로 조심성 없이 하는 말들이 새어나가면서 갈등이 빗어지는 경우가 정형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홍여사가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대화를 엿들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엿듣는 행동으로 인해서 홍여사는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또 팔봉 빵집에서 구마준이 김탁구와 구일중이 상봉하는 장면을 엿보는 것도 만찬가지입니다. 공주댁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이렇게 필연성이 부족한 우연한 행동에 의해 빈번하게 일어나면 식상해 지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재미있다보니 이러한 구성상의 헛점들이 그마나 이해되는 것일까요.



KBS 드라마 캡처



이와 관련해서 구일중이 병상에 누워 진구를 조종하고 서인숙과 한승재를 비롯한 가족들의 말을 은밀하게 엿듣는 것을 몰래카메라에 비유를 하고 심지어 비열하다고 까지 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특히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대화를 열려진 문틈으로 엿들은 행위를 몰래카메라에 비유를 하고 그것을 비열한 짓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이건 구일중이 비열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이런 엿들기를 남발하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걸 비열하다고 여긴다면 작가가 비열한 것이지 구일중이 비열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죠. 양보해서 작가를 떠난 인물인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해도 실제로 더 비열한 인간들은 서인숙과 한승재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비열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데 병석에 누워 누구를 조종한다는 식이나 단지 열려진 문틈으로 대화를 들었다고 해서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구일중은 자신을 파멸시킬 인간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팔봉 선생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봐 왔듯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야 말로 비열한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구일중이 그 비열한 인간들에게 대항하고 또 그러한 한 방법으로 대화를 엿들었다고 해서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면 도대체 정의는 어디에 있고 진실은 어디에 있을 수가 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이 엿듣기는 숱하게 등장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탁구도, 마준도, 그들이 다 커서 성인이되어서도 그들은 엿듣고, 엿보고 그러면서 갈등이 고조되기도 하고 갈등을 자제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 그걸 모두 비열한 짓이라고 한다면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비열하지 않은 자들이 없을 지경입니다. 공주댁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구일중을 비열하다고 하는 기준으로 공주댁을 본다면 공주댁은 비열함을 넘어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김미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주댁을 움직인 김미순 또한 비열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악을 응시하고 그들을 지켜보는 행위가 비열하다면 그 악은 도대체 누가 응시하고 지켜보아야 한다 말일까요.


따라서 엿듣기는 작가가 남발하는 우연이라고 해야 하며, 좀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진실에 다가가려는 장치인 것입니다. 엿듣는 행위 그 자체는 그다지 바람직 한 행위는 아니지만 그 의도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니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 엿들을 수 밖에 없는 가 하는 사실 말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갭처


구일중의 엿들기와 관련해서 참 재미있는 사실은 홍여사가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비밀을 엿듣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더욱 흡사해 지겠네요. 홍여사와 마찬가지로 구일중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대화를 엿듣습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다시 구마준이 지켜봅니다. 이거 우리가 비오는 날 홍여사가 죽는 바로 그 날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홍여사가 죽는 그 날이 다시 대를 이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직 홍여사를 대신해 구일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일중은 홍여사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지도 참 궁금합니다.서인숙과 한승재의 대화를 엿들은 구일중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입니다. 병석에 있던 구일중이 그런 분노에 휩싸여 고함을 지르는데요, 구일중이 쓰러질만한 조건이 충분히 조성된 듯한 느낌입니다. 홍여사와 마찬가지로 구일중이 쓰러질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그러나 구일중이 죽을 가능성은 그다지 커보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죽는다면 탁구를 돕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기 때문입니다. 비록 탁구가 구일중의 대리인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았지만 서인숙과 한승재가 탁구를 밀어내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악이 승리하는 드라마라면 구일중이 죽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 크지 않습니다. 아무튼 구일중이 살아남아 모든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갭처


그런데 구마준에게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 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오를 것입니다. 이번에는 할머니 홍여사가 아니라 아버지 구일중입니다. 마준은 도대체 이러한 기시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필자가 판단컨데 구마준은 할머니 홍여사에 대한 부채감을 항상 가슴에 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부채감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고 말이죠. 홍여사에 대한 부채감을 만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쓰러진 구일중을 누구보다도 먼저 들쳐 엎고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마준에게 아버지 구일중을 살리는 것은 돌아가신 홍여사를 살리는 것과 동일선상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조금은 치유되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여기에 병실에 누워있는 구일중의 진심이 전해진다면 마준의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 지지 않을까 싶구요. 이것은 구일중과 마준과의 화해로 이어지게 될 지도 모르구요, 궁극적으로 유경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슬픈일이지만 서인숙과 한승재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혼란스러운 갈등의 끈들이 조금식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유경과 마준에게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따로 포스트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구일중이 쓰러져 있으면서 서인숙이나 한 승재의 말을 엿들은 것은 몰래카메라도 비열한 짓도 아닙니다. 그것은 작가가 선택한 진실로 나아가는 한 방식이며 이 방식이 너무 남발되어 식상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한 비열하다면 서인숙과 한승재가 비열하지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는 것은 그 대상이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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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의 행보를 보면 마치 롤러 코스트를 탄 것 같습니다. 십 수년전 구일중을 도와 김미순을 납치하고, 실수이긴 하지만 김미순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화를 당한 이후 팔봉 선생의 제자가 되어 빵만들기에 전념하던 조진구였구요. 자기 자책이 무척 심했을 것입니다. 또한 팔봉 선생댁에 있으면서도 한승재의 사주에 흔들리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조진구는 탁구의 편에 섰고 자신이 탁구에게 저지런 원죄를 털어내려고 노력도 했구요. 이런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진구가 비록 과거에는 음지에 있던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탁구를 위해 힘을 보태는 양심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구일중은 마지막으로 조진구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한숭재의 측에 가담하는 척 하면서 한승재의 범죄에 대한 자료들과 행위에 대한 증인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중스파이 노릇을 해 달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진구는 한승재의 사주를 받아 병원에 있는 김미순을 납치합니다. 양미순이 가지고 있는 거성 지분을 강압적으로 빼았기 위해서 말입니다.그러나 김미순은 서류를 찢고 맙니다. 한승재는 김미순을 처리하고자 하고 조진구가 나서서 과거를 실패를 만회하고자 자신이 나서겠다고 합니다. 물론 조진구의 이러한 행동은 한승재의 신뢰를 얻기 위한 가장된 행동이구요. 


진구가 짚차로 김미순을 싣고 가는 중에 좁은 길에서 경운기와 마주하게 되고 진구 옆에 타고 있던 한승재의 똘마니가 경운기 때문에 밖으로 나간 사이에 문의 잠금 장치를 살짝 열어두고 김미순이 탈출하게 합니다. 탈출하는 김미순, 뒤쫓는 한승재 일당의 무리, 그기다 차를 타고 추격하던 김탁구까지 뒤섞이면서 김미순을 잡기위한 추격전은 그야말로 일대 대혼란이 됩니다. 그기다 김미순은 눈가지 보이지 않게되고 말입니다.


이 추격 장면은 너무 어수선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꼭 이렇게 해야했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김미순과 탁구의 상봉도 너무나도 극적이었습니다. 김미순을 잡아가려는 깡패들에게 탁구는 애듯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대들면서 깡패들마저 감동을 시킵니다. 깡패들을 감동시켜 물러나게 하고 이룬 그야말로 인간 승리의 모자 상봉이었습니다.

 kbs포토박스 사진 캡처


아무튼 조진구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한승재의 신뢰를 받으려고 합니다. 구일중과 탁구를 위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것은 순전히 김미순에게 진 과거의 빗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진구에게 검은 그림자가 엄습해 오는 듯 합니다. 김미순을 탈출 시키는 상황에서 김미순의 탈출을 돕기 위해 한승재의 수하 하나를 때리게 되고 그 사실이 한승재의 귀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조진구는 김미순에게 저지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구일중과 탁구, 그리고 김미순을 도와줍니다. 그런데 한승재가 이 사실을 알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진구도 안전한 상황이 아닙니다. 진구도 이렇게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5102&idxno=35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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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숙과 한승재가 어떻게 파멸이 될지 참 궁금합니다. 이 중에서도 서인숙의 운명이 더욱 더 궁금합니다. 서인숙은 아들인 구마준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구마준은 서인숙을 파멸로 이끌려고 하고 있습니다. 서인숙과 구마준은 모자의 관계임에도 소통이 부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구마준은 오직 그 관심이 구일중에게로만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서인숙은 구마준으로부터 어떠한 동정이나 이해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구마준에 의해서 출생의 비밀과 할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자식이 어머니를 증오하고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은 패륜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런 터부를 깰 수 있는 건 유경의 존재입니다.

KBS 드라마 캡처


서인숙에 대한 복수를 위해 공모한 구마준과 유경이고 보면 애당초 결혼에는 사랑이란 말이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단지 이 둘의 결혼은 앞서의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복수심의 결정체에 불과합니다(제빵왕 김탁구, 마준과 유경의 결혼은 변화를 위한 시작?) 비록 서인숙이 구마준 자신의 어머니이기는 하지만 어린시절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었던 당사자로서 내면적인 자학과 증오를 유발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들이라는 한계는 그의 행동을 서슴없이 수행하지는 못하게 합니다. 유경을 끌어들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마준은 결국 유경으로 하여금 복수하게 합니다.


마준은 유경에게 과거 할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사실들을 귓속말로 이야기 한 듯합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귓속말로 소곤거렸기에 마준이 어디까지 유경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경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서인숙이 어디에 있었는지, 팔지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날은 비가 왔다는 말을 서슴없이 서인숙에게 하는 것으로 보아 아주 깊은 내용까지 들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유경이 서인숙에게 역공을 가하는 형세입니다. 서인숙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유경이 서인숙에게 복수를 하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복수를 하면 좋겠습니다만, 구일중에게 단죄되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게 될 서인숙을 보면서 자신의 복수를 거둬 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경이 서인숙으로부터 받은 정신적인 피해의식, 마음의 상처는 참 큽니다. 서인숙은 유경을 볼 때마다 인격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고부간의 관계로 발전한 것이니 그 갈등의 강도는 불을 보듯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경은 서인숙 앞에서 당당합니다. 서인숙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과거의 사건'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완전한 역전입니다. 그렇게 도도하고 당당하던 서인숙이 유경의 말 한마디에 움츠러들었습니다. 통쾌한 장면이었습니다. 유경이 서인숙을 앞으로 어떻게 괴롭힐지 주목할 만합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캡처


그러나 복수의 끝까지 가는 순간 유경 또한 파멸되고 말것 입니다. 복수를 향해 나아가는 유경은 정말 위태롭기만 합니다. 탁구가 그토록 행복하기를 빌었던 유경이었건만 정작 유경은 스스로 행복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목수의 화신, 악녀가 된 유경은 정말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말 답답한 지경입니다. 마준이나 유경이 복수를 위해 결혼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자멸로 치닫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던 유경이 선택한 운명입니다. 유경이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될지 브레이크를 걸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유경이 서인숙에게 하는 복수를 통해 통쾌함을 느끼지만 정작 복수를 하면 할 수록 유경은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겠지요. 사실 서인숙과 유경이 화해를 하는 것은 구마준으로 보아서도 참 이상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인숙은 법의 처벌을 받아야만 할 대상이기에, 유경은 어떤 경우라도 서인숙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기를 바랍니다. 유경이 어떤 운명을 선택할지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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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진짜 매력은 예측하기 힘든 결말과 그 비극성!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이제 2회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궁금했던 결말이 다가오는 설레임, 그리고 기대와 함께 끝난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몰려옵니다. 재미와 더불어 인간 군상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까지도 가질 수 있었기에 <제빵왕 김탁구>와 함께 한 시간은 참 즐거웠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드는 것은 2회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도 결말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흥미를 고조시킬 것 같습니다. 2회쯤 남아있다면 드라마의 내용 전개에 대해서 대충 추측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추측의 적중은 해피엔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피 엔딩이 된다는 것은 이제껏 진행되어 온 스토리상의 갈등들이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대체적인 내용 전개와 결말에 대해 예측이 보다 쉬워 지는 것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그러나 2회밖에 남지 않은 <제빵왕 김탁구>는 결말을 예측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 드라마가 해피 엔딩으로만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니 해피 엔딩으로 끈나서는 안됩니다. 만약 <제빵왕 김탁구>가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면 2회가 남은 이 상황에서 갈등을 더욱 깊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2회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피엔딩을 의도하고 있다면 지금쯤 갈등은 조금씩 해소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28회에서 보았듯이 갈등이 더욱 더 깊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단죄, 악에 대한 응징, 악인의 불행 등 변화의 심층적 과정이 필요 없는 즉각적이거나 짧은 시간만으로 충분한 장면들을 만들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빵왕 김탁구>는 이러이러하다는 식으로 그 결말을 생각하다가도 회가 진행될수록 그 방향이 달라지는 예측이 어려운 상황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탁구-유경-마준의 관계가 그랬습니다. 해피엔딩을 염두에 두면서 통속적으로 보다가 크게 당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유경과 마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까지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입니다. 구마준이 아무리 서인숙에 대한 복수를 미끼로 유경을 유혹하고 결혼했다고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마준에게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첫날밤 유경을 홀로 남겨두고 마준이 호텔의 클럽에서 여자들과 어울리는 장면은 이들의 관계를 예측하기 참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마준이 그 악마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유경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운 메피스토펠레스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제빵왕 김탁구>는 단순히 해피엔딩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럴 시간적인 여유도 없거니와 인간들의 관계가 화해와 치유로 나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지만 자기 성찰과 반성 정도만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제가 작가라면 마준이 자살을 선택하게 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시청자들이 이런 그들의 전향적인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큰 의미가 있지 싶습니다. 그러니 비극으로 끝난다고 해도 그리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비극이 되면 좋겠습니다. 필자에게는 단지 그 비극 위해 탁구가 희망의 새싹으로 암시가 되는 정도라면 대만족입니다.


<제빵왕 김탁구>은 끝까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진작 해피 엔딩을 포기했기에 자연스럽게 되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빵왕 김탁구> 어떤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될지 참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비극 속에서 삶을 긍정하며 유쾌하게 살아가는 김탁구의 의미가 어떻게 자리 매김이 될지도 큰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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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준과 유경이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마준이 팔봉 선생의 제자가 되면서 마음 속 깊이에서 변화가 싹트리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변한 마준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에게 어느 정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판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추측과는 달리 마준은 서인숙을 팔지로 협박할 정도로 그 악마성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유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준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복수의 길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KBS 드라마 포토 박스 사진 캡처


이런 의미에서 마준과 유경의 결혼은 복수심의 결정체라고 할 만큼 복수심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결혼은 사랑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없는 결혼이기에 결국 불행을 예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탁구가 그렇게도 유경의 행복을 바라지만 마준이나 유경은 행복할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사랑이 없는 데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마준과 유경이 묶이는 그 결혼의 형식은 마치 기성세대의 위선과 권위주의를 부수는 전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 그 결혼의 내면에는 복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결혼을 젊은 날의 패기나 반항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일단 이들의 결혼 자체만으로 서인숙이나 한승재에 대한 복수로 충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마준이나 유경이 이렇게 복수심만을 드러내며 사랑 없는 부부관계를 이끌어가서는 안됩니다. 마준과 유경이 단순히 복수만을 위해 결혼을 하고 그렇게 파멸되어 간다면 이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 것입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행인 것은 탁구가 있고 구일중이 있다는 것입니다. 팔봉선생도 그렇구요. 이들이야 말로 마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준의 트라우마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 못지 않게 구일중의 이유 없는 냉대도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구일중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마준은 변화하리라 생각합니다. 유경의 경우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그런대로 치유가 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십 수년만에 만난 아버지가 진정으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위에 성장하면서 겹겹이 쌓여 온 그녀 삶의 고통과 괴로움의 지층들은 만약 근원이 되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면 서서히 치유가 될 것입니다. 변화 없는 서인숙과 한승재와는 달리 유경의 아버지는 변화를 보여주었기에 말입니다.



마준에게도 이런 존재가 있다면 바로 구일중입니다. 유경에게 변화한 아버지의 존재처럼, 마준에게 변화한 구일중은 마준이 변화하는 시작이 계기가 되리라 봅니다. 이미 유경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ㅅ급니다. 마준에게 구일중의 진심을 전해주겠지요. 마준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오랫동안 지켜왔지만 이제는 제발 변화하면 좋겠습니다.탁구와 구일중, 그리고 여기에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있는 유경이 합세한다면 마준이도 변화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인숙이 변화하지 않더라도, 한승재가 악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해도 말입니다.


3회 남은 드라마를 보면 풀리게 되는 과정이지만 괜시리 마준의 변화를 기대하고 또 기대하다보니 이런 넋두리같은 글을 쓰게 되었네요. 속으로 마준과 유경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랬지만, 생각해 보니 듬직한 탁구보다는 내면의 상처로 불안하기만 한 마준의 옆에 유경이가 있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아무튼 팔봉 선생이 3차 경합으로 제시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모두 맛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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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상한 일이지만 구일중을 보면서 만신이 느껴지는 건 왜 일까요? 구일중이 누운 채로 천리를 보는 신통력을 보여주는 것이 만신이 비방을 하여 신통술을 보여주는 것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일까요? <제빵왕 김탁구>에서 이런 모습은 구일중이 처음은 아닙니다. 팔봉 선생이 있었지요. 팔봉선생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고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가진 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주 신비스러운 존재였습니다. 팔봉선생의 이 신비스러움의 아후라가 탁구에게, 마준에게 맞닿으며 무게감과 기품, 그리고 묘한 매력을 만들어 내기도 했구요. 팔봉선생의 화두 같은 1, 2차 경합을 통해 스토리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도 높였습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그런데 이 팔봉 선생을 뒤이어 그의 제자 구일중이 누워서도 천리를 보는 신통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정말 유치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쓰러져 누워 있는 구일중이 탁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마치 영적인 존재가 주인공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종교적인 비의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 드라마는 시대적인 배경이 촌스러움을 느끼게도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촌스럽게 느겨지게도 합니다. 구일중이 누워 천리를 보리라도 누가 생각이나 해 보았을 까요?   


그러다보니 침대에 누워서 천리를 보는 듯한 구일중에 대한 호기심이 이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일중의 신비스로움은 상상력을 동원하게 되면서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돕게 되는 것이구요. 이것은 마치 <구미호-여우누이뎐>의 만신이 그 정체에 대한 굼금증을 유발한 것과 흡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구일중과 만신의 존재 자체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언급한 신통력을 제외하고 구일중과 만신의 몇 가지 공통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외로움

구일중이 거성의 회장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외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가정사와 타고난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주위에서 권모술수를 일삼는 인간들에게 대한 비관적인 인식이나 혐오에 기인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내 서인숙의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도전, 친구 한승재의 배신이 무엇보다도 그러할 것입니다. 짐작컨대 구일중은 붕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무어보다도 구일중은 자신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탁구에게 자기 존재를 자꾸만 투영하는 것 같구요. 그렇다면 만신은 어떤까요? 만신도 참 외로운 인간입니다. 몹쓸병에 걸려 600년 동안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만신은 꼭 인간의 보편적인 외로움을 상징하는 존재같기도 합니다. 몸씁명이라는 그 병,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이 아닐까요?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2.무기력

구일중은 언제나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탁구와 있을 때 웃음을 보여주는 정도입니다. 거성의 회장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운동을 한다거나 자기 체력을 관리하는 모습도 본적이 없습니다. 항상 조용한 모습으로 사무실이나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있습니다. 좋게 보면 품위 있고 과묵한 모습이지만, 좀 나쁘게 말하면 무기력한 남자처럼 보입니다. 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동굴 속에 틀어 박혀 있습니다. 표정연기는 정말 카리스마가 넘치고 비방을 쓰서 신통력을 발휘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무기력합니다. 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집착

구일중은 오직 탁구에게만 집착합니다. 정말이지 병적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두 딸이 있음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마준에게는 보이지 않는 속내를 드러내는 데 인색한 반면에 탁구만 보면 그야말로 표정이 돌변합니다. 아직 이런 차이가 왜 나타는지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이러한 확연한 태도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들이 서서히 드러나겠구요. 만신이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간입니다. 사악한 인간의 간이기에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간이 없으면 만신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구일중에게 탁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면 만신에게 인간의 간 또한 살아가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


이렇게 다소 생뚱맞게 구일중과 만신의 공통점을 살펴보다보니 구일중이나 만신뿐만 아니라 모든 남자들이, 아니 모든 인간들이 참 외로울 수밖에 없고,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삶이 무기력해지는 그런 악순환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게 되는군요. 그럼에도 언제나 그래왔듯이 삶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리셋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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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의 가장 악한 존재는 서인숙과 한승재입니다. 정말 회가 거듭될수록 이들의 악은 용서 받지 못할 지경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의 아킬레스건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지나친 자식사랑입니다. 이 자식사랑과 관련해서는 서인숙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인 까닭입니다. 사실 서인숙과 한승재도 구마준이라는 자식에 대한 사랑 하나만큼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너무나 비뚤어진 자식사랑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자식 사랑이란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는 범죄도 서슴치 않는 서인숙과 한승재의 지나친 구마준 사랑을 보면서 비록 극단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자식 사랑에 대한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자식을 위해 부모가 무엇이던 다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식 사랑이란 적어도 자식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독립적인 개체로 자식을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자식사랑에 대한 생각은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히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식이 성장하면서 함께 고민을 나누는 자식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는 견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식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만들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드라마 상에서 서인숙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마준에 대한 자식 사랑이라기 보다는 자기 욕망의 충족이 더욱 강합니다. 그리고 지나친 우월의식의 소산이기도 합니다. 서인숙은 신유경에게 "너 따위가......" 하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구마준이 탁구에게 하는 "거지 같은 녀석이......" 라고 하는 말과 같은 태도와 사고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서인숙의 사고와 태도가 구마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경우로 부모 교육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겉으로는 마준을 위하는 자식 사랑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마준을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는 소유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우월 의식 속에 마준을 가두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준이 서인숙에게 반항하는 것도 그저 자신의 출생의 비밀때문 만이 아닐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속속들이 드러나 있지는 않아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구마준은 거성가의 황태자로 판에 밖히고 형식적인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서인숙은 마준이 어렸을 때부터 거성가를 이어 받을 후계자로서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마준의 삶을 자신의 의도대로 설계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KBS 드라마 캡처


이 지점에서 과연 우리 또한 서인숙의 태도를 자유롭게 비판만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필자를 포함해서 수많은 부모들이 과연 서인숙처럼 자녀들을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리적인 존재로 길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지나친 영어학습 열풍을 비롯한 사교육의 지나친 범람은 결국 자식 사랑이란 말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부모의 욕망들이 충돌하는 강육강식의 세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서인숙의 빗나간 구마준 사랑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교육뿐만이 아닙니다. 자식의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인숙은 마준이 유경과 결혼하려는 행동에 경악합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인숙의 태도를 이해할 만은 합니다. 어떻게 키운 구마준입니까? 그런 구마준이 한낱 보육원 출신의 신유경과 결혼을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서인숙의 입장이라면 어떨까요?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부모고 이런 자식의 선택에 선뜻 쌍수를 들고 환영할까요? 


하지만 서인숙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결국 비판받아야 마땅한 문제는 결국 결혼문제도 서인숙 자신의 욕망 충족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즉 결혼 상대자에 대한 서인숙의 태도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면서도 바로 욕망의 충족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구일중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까지 더해져 구마준에게 집착하는 것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식을 독립적인 개체로 보기보다는 여전히 혈연이라는 탯줄로 이어진 존재로 여기다 보니 언제나 물질적인 풍요, 명예, 사회적인 지위 등 현실적인 가치를 강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나 희망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식의 입지를 좁히고 강요한다면 결코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닌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인숙의 구마준에 대한 집착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교육 문제의 해결과 지나친 경쟁 사회의 완화는 단순히 입시제도나 고용 문제의 해결만이 아니라 총제적으로 우리 사회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총제척인 생각 속에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서인숙의 사고와 태도' 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단지 제도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 자신들의 사고 변화에도 방점이 찍혀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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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숙, 한승재 참 잔인한 인간들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입니다. 뒤를 밟아 뒤통수를 내리치는 뒤통수치기의 달인들입니다. 겉으로는 유경과 마준의 결혼을 허락하는 시늉을 하면서 뒤로는 유경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치려고 합니다. 서인숙이 유경과 함께 웨딩드레스 숍에 있는 동안 한승재는 거성식품 청산 공장에서 경비원으로 있는 유경의 아버지를 찾아 웨딩드레스 숍으로 데리고 옵니다. 어린 시절 유경은 자신의 아버지의 폭력으로 정신적, 육제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동심은커녕 죽지 못해 살아가는 아이였습니다. 그야말로 유경의 어린시절은 지옥과도 같은 시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마준과의 결혼 준비로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는 유경의 눈 앞에 자신의 아버지가 나타난 것입니다. 유경은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정말 천사처럼 환하게 말입니다. 유경의 아버지는 유경을 폭행한 죄로 감방 생활을 했고, 유경은 보육원으로 옮겨져 생활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이고 그런 유경입니다. 이렇게 대면하는 부녀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아주 아주 불순한 목적으로 이런 잔인한 짓을 하는 서인숙과 한승재는 용서의 여지가 없습니다. 서인숙에게 유경의 흰 드레스는 아무 의미없는 더러운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비록 올바른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유경의 아버지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유경의 앞에 나타난 그녀의 아버지가 제발 딸 유경의 소중한 가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면 좋겠습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


서인숙과 한승재는 유경의 불행했던 개인사를 폭로하면서 유경이 결혼하려는 의지를 꺾으려고 합니다. 유경의 아버지를 웨딩드레스 숍으로 데리고와 유경과 대면케 하여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나도록 음모를 꾸밉니다. 유경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인간입니다. 청산 공장에서 우연하게 탁구와 만나게 되었을 때 유경의 아버지는 변한 것 없이 여전히 ‘놈팽이’에 불과합니다.


신유경과 그녀 아버지와의 조우는 유경과 마준의 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서인숙과 한승재가 노린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유경과 그녀 아버지와의 조우가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지가 참 중요합니다.



신유경은 십 수년 만에 아버지를 보게 되지만 이제는 어린 시절 옛날의 그 작은 어린아이 신유경이 아닙니다. 이제는 거성가의 며느리가 되기 직전입니다. 그런 신유경이 자신의 아버지를 본다고 해서 쉽사리 물러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아버지에게 분명한 어조로 반박할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일방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당한다고 해도 오히려 그 결과는 서인숙과 한승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사료됩니다. 서인숙이나 한승재가 왜 자신들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지 한 걸음의 앞 길 조차도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 이상할 노릇입니다. 예초에 이런 천박한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유경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당한 일을 구마준이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신유경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유경을 보는 순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참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감옥살이 하게 하고 집을 나가버린 유경에게 분노의 감정이 잠재해 있을 것입니다. 유경을 보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각오하고 또 각오해왔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딸내미가 그럴 수가 있는가 하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만으로 유경에게 복수할 날만 기다렸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생각 없고 양아치 같은 아버지라 하더라도 자신이 어린 시절 그토록 잔혹하게 폭력을 일삼던 딸을 십 수년만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달려가서 뺨이라도 때리고 웨딩드레스를 찢어 버릴까요? 필자는 유경이 아버지가 그러지는 않으리라 추측합니다. 이렇게 예쁘게 변한 자신의 딸을 보면서 지난날의 회환이 밀려오지 않을까요?


오히려 신유경의 아버지는 한승재의 사주를 받아서 탁구의 엄마인 김미순을 강간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진구의 도움으로 김미순은 간신히 그 위험을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유경의 아버지는 지난날 돈 몇푼에 자신을 그렇게 사주했던 한승재가 이제는 자신으로 하여금 딸인 유경에게 마저 험한 꼴을 보이려고 하는 짓에 분노할지도 모릅니다. 유경의 아버지라면 응당 그렇게 분노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말입니다.
 

아무튼 신유경과 그녀 아버지와의 만남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합니다. 부녀의 극적인 상봉이 될지 아니면 어린 시절 그 비참했던 관계의 복원이 될지 말입니다. 앞서 언급을 했지만 신유경이 낭패를 당하던, 유경의 아버지가 어떤 변화를 보여주던 그 어떤 경우라도 서인숙과 한승재는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는 꼴입니다.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포토 박스 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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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에서 서인숙은 형식적로나마 마준과 유경의 결혼을 승낙합니다. 하지만 서인숙이 어떤 존재입니까? 마준과 유경의 결혼은 결코 참기조차 힘든 일입니다. 마준이 팔찌로 협박을 하니 어쩔 수 없이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뿐입니다. 단지 결혼을 승낙한다는 모양새만 취할 뿐 그 내용은 철저하게 유경을 짖밟음으로써 결혼 자체를 깨려는 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인숙은 마준을 자극하는 것을 자제하면서 대신 유경이 결혼을 포기하도록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KBS 드라마 캡처


서인숙은 한승재에게 유경이 보육원에 있던 시절의 여러 가지 미심쩍은 일을 언급하면서 유경의 친부모를 확인해보라고 합니다. 유경의 아킬레스근인 개인사를 통해 신유경을 옥죄겠다는 심산입니다. 이에 한승재는 청산공장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유경의 친부를 만나 서울로 데리고 옵니다. 한승재의 말처럼이나 “세상은 넓고도 좁다” 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 시각에 서인숙은 단지 마준의 마음만 달래 놓으면서 유경이 결혼을 포기하도록 함정을 파놓고 있습니다. 즉 의도적으로 웨딩드레스 숍에서 유경과 유경의 친부를 대면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경과 친부가 대면하는 장면에서 26회는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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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서인숙과 한승재 대단한 위인들입니다. 특히 서인숙의 경우 마준이 보여준 자신의 팔지를 보고서도 일말의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내 팔지를 왜 네가 가지고 있냐‘ 는 식의 놀라움 정도만 표할 뿐입니다. 그러다 다시 유경과의 결혼문제로 마준과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마준으로부터 결정적인 협박을 당하게 되는데 그제서야 조금 심적인 동요를 일으킵니다.


서인숙: 내가 왜 그 결혼을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구마준: 왜냐하면 팔지를 주운 곳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자리였기 때문이죠.


아무리 자신의 어머니가 악녀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정말이지 구마준의 패륜적인 행동입니다. 이런 마준을 보면 복수의 화신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자신의 출생 비밀이 어린시절의 깊은 마음 상처라고 하더라도 다른 삶의 부분들은 보지 않은 채 단지 그 상처 하나만을 부여잡고 있는 마준의 모습이 참 안타깝기만 합니다. 과거의 상처에만 매몰되어 오늘을 살고 있는 마준에게 미래란 것도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비록 서인숙이 불륜을 저질러 낳은 존재이지만 서인숙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었을 사랑이나 관심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누리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구요. 그런데 마준의 마음속에는 복수와 증오만이 가득합니다.

KBS 드라마 캡처


유경은 서인숙에 대한 복수를 위해 구마준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엄청난 갈등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유경의 입장에서도 마준과 마찬가지로 복수에 방점을 찍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 없는 삶을 맹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의 판단으로 유경은 복수의 덧없음을 자각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그 복수가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다른 힘들- 법, 구일중, 김미순 등- 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면 유경의 복수에 대한 집착도 누그러지리라 판단됩니다. 이 지점에서 유경이 마준을 쉬 선택하기도, 그렇다고 탁구에게 돌아가는 것은 더욱 힘들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유경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필자의 추측으로는 두 가지 경우의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유경이 떠나는 것과 마준을 선택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마준과 함께 변화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남아있는 사람이 있으면 떠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유경은 복수에만 집착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뿌리치려고 할 것입니다. 유경이 떠나는 것은 결말상으로도 상당한 감동을 주는 결말 같습니다. 왜냐하면 탁구에게 지은 잘못에도 그의 지척에서 맴돈다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비록 사랑은 아니지만 마준에 대한 동정으로 마준과 함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지 이 경우에는 마준의 변화를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마준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존재는 신유경입니다. 탁구도 마준과 함께 팔봉가에서 2년이 넘도록 생활을 했지만 힘이 되는 존재라기보다는 증오와 대결의 대상만이 되어왔습니다. 유경이 마준에게 힘이 되는 존재이다보니 마준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도 싶네요. 팔봉선생, 탁구처럼, 유경이 마준을 변화시키는 큰 힘으로 작용하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경의 선택은 마준의 변화 여부에 좌우가 될 것 같네요. 현재로서는 마준의 변화가 참 어렵게 보이고 유경이 떠날 것만 같습니다만, 아무튼 마준이 어떻게 변화할까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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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 은 무엇일까요? 이 빵은 아주 이상적일 것 같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모두 행복하게 해주는 빵이거나, 빵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빵이라면 이건 너무나도 이상적이겠죠. 2차 경합에서 탁구가 만든 봉빵을 춘배 어른이 먹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 것처럼 행복을 느끼는 그런 빵일까요? 이런 빵이 어디엔가 있을까요? 그런데 팔봉 선생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 은 빵 그 자체보다도 그 비유적인 의미나 상징적인 의미로 쓰여질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KBS 드라마 사진 캡처



탁구가 거성가로 들어갔는데요, 이 거성가에서 탁구가 이루게 될 일련의 과정이 마치 빵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그것을 발효시키고, 빵의 모양을 만들고, 마침내 빵을 굽는 과정이 거성가를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과정으로 비교될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유경, 서인숙과 한승재, 그리고 구마준, 구일중, 김미순에 이르기까지 그 관계들이 어떻게 적절하게 배합이 되고 발효가 되면서 행복이라는 빵으로 구워져 나올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지루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말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행복한 빵을 거성가의 행복에 비유를 했는데요, 재료들이 이리저리 반죽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탁구와 거성가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거성가의 행복이 결정될 것 같습니다. 탁구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죠.



1. 탁구와 유경의 관계

필자의 판단으로(언제나 틀리는 판단이지만) 유경은 마준의 여자가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가진자의 불행에 대한 동정이 가장 큰 동기가 되겠구요. 마준과는 거성가 복수의 공범 관계로 시작한 셈이지만 마준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자신과 같은 마음 속 상처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그녀가 변화시키지 못한 사회의 모순 대신에 악에 발을 담그고 있는 구마준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한 사람 구일중의 부탁입니다. 유경은 구일중에게 인간적인 관심과 배려를 받았습니다. 거성이라는 큰 기업의 회장이 자신을 마준의 여자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모습은 그녀에게는 큰 감동이지 아니지 싶습니다. 어린시절 친부로부터 갖은 폭행을 당하면 자란 신유경에게 구일중은 참 좋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기다가 마준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보태어지고 말입니다. 따라서 유경이 탁구와의 관계는 조금씩 소원해 지겠죠. 그러나 탁구는 이러한 유경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유경아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니까요.

KBS 드라마 사진 캡처


2. 탁구와 마준의 관계

이 둘의 관계는 가장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관계입니다. 탁구와 마준의 화해는 시청자로서 일반적으로 바라는 희망사항일 것입니다. 궁긍적으로 탁구와 마준의 화해야 말로 이 드라마의 의도와도 직결될 것 같구요. 그런데 4회만이 남은 상황에서 그러한 화해의 진전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갈등이 더 커져가고만 있습니다. 또 갈등을 예고하고 있는 듯 하구요. 그러다보니 이 둘의 화해가 과연 이루어질지 불투명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준은 오히려 더욱 악마성을 드러내고 있구요.

이 둘의 관계에는 신유경이 게재되어 있어 신유경의 역할에 따라 갈등 양상에 변화가 올 것 같습니다. 즉, 신유경에 의해서 갈등이 더 커질 수도 있으며, 화해가 가능해 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탁구와 서인숙, 한승재의 관계

탁구와 서인숙, 한승재와의 관계는 단순히 마준과의 관계와 같은 인간적인 갈등이 아니라 거성을 놓고 벌이는 사업상의 대충돌을 예고합니다. 거성을 지키려는 탁구와 거성을 빼앗으려는 서인숙, 한승재의 충돌 말입니다. 탁구에게는 복수의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 사이에 마준이 어떤 입장을 보이게 되느냐에 따라 이 대결의 승부도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큽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탁구가 거성을 지키면서 그 모든 권리를 마준에게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워낙 엉터리 축측을 많이 했왔던 터라 참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탁구와 서인숙, 한승재의 대결이 죽느냐 사느냐의 살벌한 싸움이 되긴 하겠지만 탁구는 서인숙과 한승재를 용서해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서인숙과 한승재는 탁구가 아닌 다른 인물들(김미순, 구일중)에 의해 단죄될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또한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되거나 그자신들 스스로 어떤 극적인 변화를 보여줄 것 같기도 하구요.  


이렇게 거성가로 들어간 탁구가 맺게 될 '관계들' 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이 관계들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빵> 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어려운 과정에서 맛있는 빵이 만들어지듯이 그 관계들이 용서와 이해를 통해 행복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범죄에 대한 단죄는 분명히 이루어져야만 하겠죠.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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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이나 사서에 근거한 사극을 제외한 드라마인 경우 일반적으로 해피 앤딩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팍팍한 현실 때문일 수도 있고, 등장인물에 대한 동정심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이스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에이> 그 정조가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희극적인 면은 이런 비극적인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성격을 갖습니다. 드라마와는 거리가 있지만 성경을 예로 들면 인류 종말의 비극과 구원이 그 핵심입니다. 상당히 비극적인 세계관입니다. 그나마 구원이 있기에 희망적이 되는 것이구요. 불경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극적인 세계관입니다. 이렇듯이 인간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존재에 가깝습니다. 인간들은 태어날 때 앙앙 울면서 태어나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KBS 드라마 캡처


<제빵왕 김탁구>의 결말을 이야기하다 샛길로 빠졌네요. 아무튼 필자의 판단으로는 <제빵왕 김탁구>는 해피 앤딩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의 전개상 작가가 무리하게 개입하지 않는다면 해피 앤딩이 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만약 작가가 해피 앤딩을 무리하게 감행한다면 이 드라마는 용두사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로서 <지붕 뚫고 하이킥>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연출가가 너무 작품에 개입한 나머지 시트콤이 비극이 되는 촌극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가 되겠지만 <제빵왕 김탁구>는 작가가 무리하게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을 봉합하면서 해피 앤딩을 만든다면 <지붕 뚫고 하이킥>의 우를 범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제빵왕 김탁구>가 해피 앤딩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라면 쉽사리 봉합할 수 있을 만큼 갈등이 작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탁구와 마준의 갈등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큽니다. 그 갈등의 골을 메우기가 쉬운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도 서인숙이나 한승재와의 관계에 비한다면 작게나마 이복형과 동생이라는 혈연적인 동질성이 존재합니다. 또한 그 사이에 신유경이 있어 완충적인 작용도 합니다. 아무튼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갈등은 더욱 더 고조가 될 것인데 갑자기 용서하고 화해하는 식은 너무 신파적이고 식상한 도식이 되는 것입니다.

KBS 드라마 캡처


해피 앤딩은 감정적으로 폐쇄적인 결말의 형식입니다. 모든 갈등들이 봉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들의 만족감을 극대화 할 수는 있습니다. 마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환각상태로 만드는 것과 같이 해피 앤딩은 큰 만족감을 줍니다만 생각의 여지는 앗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극적인 결말은 감정적으로 개방적인 결말의 형식에 가깝습니다. 갈등이 봉합되기 보다는 갈등이 대립되면서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이러한 파국 속에서 행복을 느낄 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갈등 대립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라고 해도 슬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음과 파멸과 추락과 타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비극을 볼 때면 생각이 충만해 집니다.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우리의 마음속에는 짠한 감정의 동요가 일게 됩니다.


<제빵왕 김탁구>도 이런 비극이 되면 좋겠습니다만, 필자가 생각건대 해피앤딩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으로만 그치면 좋겠습니다. 마준의 끝 모르고 가는 악마성은 비극을 잉태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준의 악마성은 유경의 팔에 서인숙의 팔찌를 차게 함으로써 극도에 달합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팔찌로 협박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죠. 이런 마준이 결국 새사람이 되는 식의 해피 앤딩은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해피 앤딩에 대한 기대는 팔봉 선생의 유언이 되다시피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빵>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요, 이건 아니지 싶습니다. 팔봉 선생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빵>은 해피 앤딩을 암시하는 복선이 아니라 결말과는 관계없는 단순히 독립적으로 사용된 말이면 좋겠습니다. <제빵왕 김탁구> 해피 앤딩이냐, 비극적인 앤딩이냐 그것도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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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구일중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일중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마치 식물인간이 된 척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식물인간이 된 구일중이 병원에서 퇴원을 해서 집에 뉘어진 것부터가 이상합니다. 퇴원을 시킨 사람이 서인숙이니 사실 이 부분도 참 의심스러운 부분이며 심상치가 않습니다. 구일중이 누워있는 침대옆은 물론이고 방 어디에도 응급조치를 할 만한 의료기기 하나 없거든요. 아무튼 정황상 구일중이 쓰러져 누워있는 것이 꼭 구일중 자신의 쑈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큰데요, 마준이 침대에 누워있는 구일중에게 당신 운운하며 탁구를 철저하게 짓밟겠다는 말에 손을 껌지락거립니다. 또 박 변호사가 누워있는 구일중에게 마치 보고를 하는 듯한 말투하며, 그런 박변호사의 말을 듣고 살며시 눈을 뜨는 구일중하며 식물인간이 아니라 식물인간인 '척' 하는 것 같습니다.

 

KBS 드라마 사진 캡처


1.탁구의 인간성과 그 정직함에 대한 믿음

그러면 구일중은 왜 이런 자작극을 벌이는 것일까요. 사실 구일중이 이런 '쑈' 를 하는 것이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가장 개연성이 있는 것이 탁구의 경영능력 테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탁구는 거성이라는 큰 기업을 경영 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테스트를 하나 마나이지요. 구일중이 너무나 믿고 있는 탁구이기에 자신이 자작극을 벌이면서 탁구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하면서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까요? 탁구가 '탁구스러움' 으로 이사회에 참가하여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 여부가 궁금한 이유입니다.


 

2.마준의 거성 경영에 대한 욕망 확인

둘째로는 구마준의 거성 경여에 대한 욕망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구일중은 자신이 식물인간이 되면서 경영이 불가능해질 때 과연 그 경영권을 놓고 누가 나서는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마준이가 거성 경영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는지도 확인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마준은 구일중에게 거성 경영에 대한 욕망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오직 구일중의 관심과 인정만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아마도 구일중은 구마준의 거성 경영에 대한 본심을 알고 싶었는지 모르구요. 그런데 구일중이 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 구마준의 탐욕은 한 순간에 드러납니다. 필자는 지금까지 스토리 전개를 통해 구마준이 구일중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경영수업은 자림이에 비해서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구요, 마준은 서인숙에게도 거성 경영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일중이 쓰러지자 홍여사가 죽은 현장에서 서인숙이 떨어뜨렸던 팔찌를 신유경에게 채워줍니다. 이것은 구마준이 서인숙에게 신유경을 인정해주기와 팔찌(서인숙의 과거의 범죄)를 교환하기를 강요합니다. 이건 정말 잘잘못을 떠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패륜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구마준의 악마성은 끝간 데를 모를 지경입니다. 구일중은 이런 구마준을 모니터하고 있을 텐데요, 정말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KBS 드라마 사진 캡처
 

3.서인숙과 한승재의 탐욕과 악마성

구일중의 식물인간은 서인숙과 한승재에게는 거성을 삼킬 수 있는 참 큰 호기입니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악의 마수를 드러내놓으면서, 거성을 놓고 탁구와 혈투를 벌일 것입니다. 이사회에서 거성의 경영 대리인의 지위에 대해 탁구를 선택할지 구마준을 선택할지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이 과정에서 서인숙과 한승재는 마준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서인숙의 경우는 마준에 의해 팔찌로 협박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많이 좁아졌습니다. 꼼짝없이 신유경을 며느리로 들여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서인숙은 마준을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

구일중이 자작극을 벌이는 이유를 몇 가지 살펴보았는데요, 순전히 필자의 생각일 뿐입니다. 처음에는 구일중이 쓰러진 것이 맞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져서 드디어는 자신이 자작극을 벌여보자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팔봉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3차 경합의 주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 입니다. 팔봉 선생이 쓴 족자의 내용처럼 탁구는 가장 행복한 빵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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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 은 무엇일까요? 이 빵은 아주 이상적일 것 같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모두 행복하게 해주는 빵이거나, 빵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빵이라면 이건 너무나도 이상적이겠죠. 2차 경합에서 탁구가 만든 봉빵을 춘배 어른이 먹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 것처럼 행복을 느끼는 그런 빵일까요? 이런 빵이 어디엔가 있을까요? 그런데 팔봉 선생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 은 빵 그 자체보다도 그 비유적인 의미나 상징적인 의미로 쓰여질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KBS 드라마 사진 캡처



탁구가 거성가로 들어갔는데요, 이 거성가에서 탁구가 이루게 될 일련의 과정이 마치 빵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그것을 발효시키고, 빵의 모양을 만들고, 마침내 빵을 굽는 과정이 거성가를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과정으로 비교될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유경, 서인숙과 한승재, 그리고 구마준, 구일중, 김미순에 이르기까지 그 관계들이 어떻게 적절하게 배합이 되고 발효가 되면서 행복이라는 빵으로 구워져 나올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지루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말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행복한 빵을 거성가의 행복에 비유를 했는데요, 재료들이 이리저리 반죽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탁구와 거성가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거성가의 행복이 결정될 것 같습니다. 탁구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죠.


1. 탁구와 유경의 관계
필자의 판단으로(언제나 틀리는 판단이지만) 유경은 마준의 여자가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가진자의 불행에 대한 동정이 가장 큰 동기가 되겠구요. 마준과는 거성가 복수의 공범 관계로 시작한 셈이지만 마준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자신과 같은 마음 속 상처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그녀가 변화시키지 못한 사회의 모순 대신에 악에 발을 담그고 있는 구마준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한 사람 구일중의 부탁입니다. 유경은 구일중에게 인간적인 관심과 배려를 받았습니다. 거성이라는 큰 기업의 회장이 자신을 마준의 여자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모습은 그녀에게는 큰 감동이지 아니지 싶습니다. 어린시절 친부로부터 갖은 폭행을 당하면 자란 신유경에게 구일중은 참 좋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기다가 마준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보태어지고 말입니다. 따라서 유경이 탁구와의 관계는 조금씩 소원해 지겠죠. 그러나 탁구는 이러한 유경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유경아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니까요.

KBS 드라마 사진 캡처

2. 탁구와 마준의 관계
이 둘의 관계는 가장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관계입니다. 탁구와 마준의 화해는 시청자로서 일반적으로 바라는 희망사항일 것입니다. 궁긍적으로 탁구와 마준의 화해야 말로 이 드라마의 의도와도 직결될 것 같구요. 그런데 4회만이 남은 상황에서 그러한 화해의 진전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갈등이 더 커져가고만 있습니다. 또 갈등을 예고하고 있는 듯 하구요. 그러다보니 이 둘의 화해가 과연 이루어질지 불투명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준은 오히려 더욱 악마성을 드러내고 있구요.

이 둘의 관계에는 신유경이 게재되어 있어 신유경의 역할에 따라 갈등 양상에 변화가 올 것 같습니다. 즉, 신유경에 의해서 갈등이 더 커질 수도 있으며, 화해가 가능해 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탁구와 서인숙, 한승재의 관계
탁구와 서인숙, 한승재와의 관계는 단순히 마준과의 관계와 같은 인간적인 갈등이 아니라 거성을 놓고 벌이는 사업상의 대충돌을 예고합니다. 거성을 지키려는 탁구와 거성을 빼앗으려는 서인숙, 한승재의 충돌 말입니다. 탁구에게는 복수의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 사이에 마준이 어떤 입장을 보이게 되느냐에 따라 이 대결의 승부도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큽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탁구가 거성을 지키면서 그 모든 권리를 마준에게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워낙 엉터리 축측을 많이 했왔던 터라 참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탁구와 서인숙, 한승재의 대결이 죽느냐 사느냐의 살벌한 싸움이 되긴 하겠지만 탁구는 서인숙과 한승재를 용서해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서인숙과 한승재는 탁구가 아닌 다른 인물들(김미순, 구일중)에 의해 단죄될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또한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되거나 그자신들 스스로 어떤 극적인 변화를 보여줄 것 같기도 하구요.  


이렇게 거성가로 들어간 탁구가 맺게 될 '관계들' 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이 관계들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빵> 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어려운 과정에서 맛있는 빵이 만들어지듯이 그 관계들이 용서와 이해를 통해 행복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범죄에 대한 단죄는 분명히 이루어져야만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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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팔봉 선생이 남긴 3차 경합의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 입니다. 그러고 보니 팔봉 선생의 경합 주제는 참 의미심장해 집니다. 1차 경합의 주제가 배부른 빵이었고, 2차가 재미있는 빵이었습니다. 인간은 최소한의 배고픔은 충족시켜야 하지만 그렇다고 배만 채우면서 살아가는 존재는 아닙니다. 육체적인 충족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만족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재미는 바로 이런 정신적인 만족과 잇닿아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행복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만족과 정신적인 만족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 2차 경합을 거치면서 인간이 배부르고 재미를 추구함으로서 얻어지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행복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수렴이 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불행을 원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KBS 드라마



그러나 전제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또 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들이 행복을 보는 관점이나 행복의 정의는 다 다릅니다. 따라서 하나의 절대적인 행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붙인 행복은 그 내용이나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 상대의 행복을 빼앗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 너무 정신이 없는데요, 정리해 보자면 행복은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하나의 절대적인 행복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들에게 나름대로의 행복이 있으며 그 행복이 각자에게는 절대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절대적인 행복은 없지만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행복은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전제가 깨어지는 곳이 현실이라는 곳입니다. 이 드라마상으로 보면 거성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가졌음에도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성가 사람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 불행의 원인이 구일중의 가부장적인 태도이든, 서인숙과 한승재의 불륜이든 가진 자들의 증오와 탐욕은 덜 가진 자들보다 더 파국적입니다.
 

                                                  KBS 드라마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을 불행하게 만든다거나, 상대적인 비교를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빈부 차이가 크다거나, 행복을 자신이 만들어 가기보다는 타인들을 착취하고 이용하여 얻으려는 경우들을 색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행복만이 아니라 불행이 도처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것입니다. 행복해지려는 모든 인간들의 마음과 현실과의 괴리는 참 큽니다. 그러니 행복이란 이상적인 추구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경험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부유한 자라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듯이 아무리 가난한 자도 불행하기만 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단지 인간들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모든 드라마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단지 제빵왕 김탁구는 팔봉 선생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이라는 경합 주제를 제시하면서 행복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탁구와 마준의 삶, 그리고 팔봉가와 거성가의 비교를 통해서 말입니다. 거성가로 입성한 탁구가 과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빵' 의 맛을 전해 줄지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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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 선생의 존재는 그 죽음 이후로도 <제빵왕 김탁구>의 스토리를 지배할 것 같습니다.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와 정신 때문입니다. 그 정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덕이 사랑과 용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준에 대한 팔봉선생의 태도를 보면서 악에 대한 용서와 변화를 기다리는 인내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빵을 굽고 조용히 기다리는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사랑은 더 아름다운 덕목이었습니다. 팔봉 선생은 그의 모든 제자들을 사랑했습니다. 다 불쌍하고 죄많은 인간이었습니다. 구마준이 예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구마준이야말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인간이었습니다. 아마도 팔봉 선생이 마준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팔봉 선생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복수보다 사랑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춘배의 변화가 이것을 말해줍니다. 


KBS드라마


필자는 팔봉 선생의 영향 아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변화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말입니다. 단지 빵을 굽는 시간이 오래 걸린 셈입니다. 오랜 세월이었지만 결국 변화를 보여준 춘배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구마준은 어떨까요. 마음의 상처가 깊은 사림일 수록 더욱 철저하게 변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마준도 그럴까요? 현재로서는 예단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구마준을 변화시키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준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정말 구제불능입니다. 


그렇다면 구마준을 변화시키는 환경이란 무엇일까요? 뭐니뭐니해도 팔봉 선생입니다.  팔봉 선생은 끝까지 마준의 변화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지켜봐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준은 이런 팔봉 선생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제빵실에 불을 지르고, 발효일지를 훔치고 춘배와 함께 팔봉 선생의 봉빵 명장의 권리마저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팔봉 선생마저 죽습니다. 구마준은 정말 악마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그가 여전히 팔봉가의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다름으로, 구일중입니다. 구일중은 뇌졸증으로 쓰러져 있습니다. 마준이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해준 팔봉선생조차 안중에도 없었던 것은 구일중의 관심과 인정 때문입니다.  자신의 출생 비밀에 대한 트라우마를 구마중의 관심과 인정으로 보상받으려는 지나치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구일중이 쓰러져 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기는 힘들 것 처럼 보입니다. 이런 구일중의 존재가 여전히 구마준에게도 유효한 것일까가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가지 문제가 게재되어 있습니다. 


KBS 드라마


1.구마준이 거성 식품의 경영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입니다.
단순히 구일중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경우인데요. 그렇다면 쓰러져 누워있는 구일중에게 연민이 싹틀 것입니다. 권력이나 명예의 유한성이나 덧없음도 느끼게 될 것이구요. 따라서 구일중의 관심과 인정보다는 자신이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2. 구마준이 거성 식품의 경영에 욕심이 많아 구일중의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이제 구일중의 관심이나 인정은 중요치가 않습니다. 단지 구일중이 쓰러진 것이 자신이 거성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호기이기 때문입니다. 구마준은 약해져 버린 구일중이 관심이나 인정을 받을 만한 존재가 더이상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변화는 더 이상 기대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서인숙의 팔찌는 더욱 가치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어머니까지도 제거해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구마준이 거성의 후계자가 되려고 한다면 그에게는 막힐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그런데 사실은 구일중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탁구에게 주어버렸으니 이것은 구마준을 엄청난 악의 화신으로 몰아갈 수가 있습니다)  


KBS 드라마


셋째로, 김탁구입니다.
구일중이 쓰러진 상황에서 후계자 자리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김탁구가 구일중으로부터 모든 권리를 승계 받았습니다. 사실상 후계자는 정해진 셈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구마준(거성 경영에 욕심이 있는 경우)이나 서인숙과 한승재는 온갖 음모를 꾸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탁구가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탁구를 음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 권리의 서류들은 변호사를 통해 공증이 되었고 그런 탁구를 음해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혐의가 돌아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탁구는 거성 경영에 관심이 없다고 봅니다. 단지 정의가 살아있는, 행복이 넘치는 거성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 하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팔봉 선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구마준, 팔봉가와 자신을 끊임없이 죽이려고 한 서인숙과 한승재에 대해 분명하게 복수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구마준의 경우는 위에 살펴 보았듯이 경우에 따라서 그 관계가 달라 질 것입니다.)  김탁구와 서인숙 한승재(또는 구마준을 포함해서)의 혈투가 기대됩니다. 구마준이 거성 경영에 뛰어든다면 구마준에게 탁구의 존재는 구마준 내면의 악마성을 최고조로 달하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탁구와 마준 사이의 3차 경합이 되겠고 말입니다. 


넷째로 신유경입니다. 신유경은 마준에 대한 아버지 구일중의 사랑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구일중이 신유경을 만나 구마준에 대한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런 신유경이고 보면 구마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구일중이 쓰러져 누워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럴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 구일중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런 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져 누워있다는 사실은 마준의 변화를 재촉할 것이라 봅니다. 신유경과 관련해서는 과연 탁구를 선택할지 마준을 선택할지 무척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신유경이 마준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도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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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에 다다른 <제빵왕 김탁구>의 다른 많은 중요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춘배 선생(이하 존칭 생략)을 좀 언급해야 겠다. 춘배 참 싱거운 인물이다. 등장할 때의 비장함과 사악함이 잠깐의 시간(실제 시간상으로 몇 주간) 동안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이건 완전히 기적과도 같다. 팔봉 선생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봉빵의 비밀과 팔봉가로부터 마준을 유혹하여 이탈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인물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KBS 드라마


팔봉 선생이 죽어야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24회에서 팔봉 선생의 죽음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스토리 전개에 녹여 넣고 싶었던 것 같다. 죽음이야말로 강렬한 교훈이나 변화의 계기가 된다.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팔봉 선생의 죽음이야 말로 그것 자체로 극적인 사건이며 인물 관계의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봉빵의 비밀도 그렇게 대결로 몰아가서 확인시켜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봉빵의 비밀은 그냥 묻혀있는 것이 드라마의 숨은 매력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아니면 양인목의 입으로도 얼마든지 빵의 비밀이 알려 질수도 있고 말이다. 춘배에 의해 봉빵의 비밀이 밝혀지고 봉빵의 진정한 소유자가 누구인지 경합을 벌이는 장면은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바람처럼 왔다가 그냥 스쳐지나가는 춘배의 존재는 드라마의 자연스런 전개에 이물질이 끼어든 느낌이었다.
 

KBS 드라마



TV는 비주얼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굳이 춘배를 등장시키지 않아도 팔봉 선생이나 양인목의 생각을 통해서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었다. 2차 경합 중에 마준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춘배의 느닷없는 등장과 봉빵 레시피의 전달은 마준에게는 크나 큰 유혹이었다. 2차 경합에서 통과하지 못한 마준은 춘배의 유혹에 추동되어 더욱 악마성을 드러내었다. 제빵실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의 시선을 돌린 뒤 팔봉 선생의 방으로 들어가 발효일지를 훔친 것이다. 그러나 탁구와의 봉빵 시연에서 마준은 패배하고 만다. 반면 탁구는 팔봉 선생의 명예를 지키게 된다.
 

춘배는 마준을 조종하여 악마로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봉빵을 한 입 먹고는 감탄하여 개과천선하여 사라졌다. 만약 이 세상사람 모두에게 봉빵을 먹일 수 있다면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고보면 구마준이 참 독한 녀석이기는 독한 모양이다.


아무튼 춘배가 나타나서 극적인 두 개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팔봉 선생이 죽었으며, 구마준이 더욱 악해졌고 팔봉가를 떠나 거성가로 돌아갔다. 그러나 춘배의 등장은 너무 느닷없었고 팔봉선생의 죽음과 구마준의 악마성에 너무 우연적으로 작용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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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는 비록 팔봉 선생이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특히 팔봉 선생이 탁구와 마준에게 보낸 자필 편지가 그 단적인 예입니다. 또한 팔봉 선생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해 3차 경합의 주제까지도 족자에 친히 적어 놓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빵' 이었습니다. 결국 이 둘다 팔봉 선생의 유서인 셈입니다. 팔봉 선생의 유서가 되어버린 이 자필 편지와 경합의 주제는 탁구에게도 마준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반항적이고 엇나가고 비뚤어진 마준도 팔봉 선생의 유서를 읽고 어떤 식으로던 변하게 되리라 판단됩니다. 팔봉 선생의 유서를 접하고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마준은 정말 구제 불능의 인간인 것입니다. 마준에게도 최소한 기본적인 양심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팔봉선생의 죽음에 가장 충격을 받은 인물은 구일중 같습니다.
팔봉선생의 상가에서 거성으로 돌아온 구일중은 여비서가 전해주는 서류를 보다 손이 마비가 되는지 서류를 떨어뜨립니다. 김미순을 만나 헤어진 후에도 손에 경련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김미순이 자신을 미행하는 서인숙을 유인하여 청산으로 가서 같이 죽자는 소동을 벌일 때 나타난 구일중이 쓰러집니다. 구일중이 이렇게 쓰러지는 데는 팔봉 선생의 죽음이 한 몫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일중이 쓰러지자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간은 한승재입니다. 구일중이 보관하고 있는 주식 지분 서류와 회사 자산과 관련된 서류들을 빼내려고 합니다. 회장실 금고에서 치러한 서류들을 찾지 못하자 한승재는 과감하게도 거성가의 구일중 서재를 뒤집니다. 이런 한승재와 함께 서인숙도 함께 찾습니다. 쓰러진 구일중을 두고 이렇게 추잡한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한편 탁구에게는 구일중의 변호사가 찾아와 두툼한 서류 봉투를 건네주는 데요, 구일중이 자신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경우에 탁구에게 전해주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 봉투 속에는 탁구에게 거성의 경영권과 자산등을 물려준다는 장남의 상속 권리 같은 서류들이 있었습니다. 구일중의 뜻과는 달리 탁구는 거성의 후계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팔봉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구일중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탁구의 마음은 어떤 결기로 가득 찬 것 같습니다. 그토록 거절해 왔던 거성가를 경영하라는 구일중의 제의를 바로 받아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탁구를 변화시킨 건 팔봉 선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와 자신을 죽이려고 한 한승재와 서인숙에 대한 분노가 아닌가 합니다. 탁구에게서 멀어져 간 감정들이 다시 탁구에게 찾아든 것입니다.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면 탁구가 거성가로 뛰어들 일은 결코 없을 것인데 말입니다. 아마도 필자의 추측으로는 일시적인 분노가 아닐까 합니다.




탁구에게 분노는 팔봉 선생이 남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과 거리가 멉니다. '행복' 은 탁구가 추구해야할 삶의 가치입니다. 팔봉 선생의 유언과 상충하는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되지만 탁구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팔봉 선생도 그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것은 탁구가 항상 추구하고 있는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 때문입니다. 행복은 악한 자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정직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한승재나 서인숙은 결코 행복할 자격이 없는 인간들입니다. 구마준과도 어떤 형식으로든 충돌이 불가피 할 것 같습니다.
 

3차 경합의 주제인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빵>을 만들어야 하는 탁구가 거성의 장남 자격으로 들어가 벌이게 될 일련의 사건들은 마치 서부 영화의 결투를 연상시킬 것만 같습니다. 24회에서 탁구가 거성가로 들어가는 뒷 모습과 탁구를 맞이하는 거성가의 식구들의 모습은 마치 서부 영화의 한 장면 같았거든요. 김탁구에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빵>과 <정직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상>이 거성가와의 결투의 과정에서 어떤 조화를 이루게 될지 참 궁금합니다. 두루뭉실 넘어가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식의 동화는 되지 않겠지요.

첫번째, 두번째 이미지: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39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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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 선생이 쓰러졌습니다. 인터넷 매체에 따르면 팔봉 선생은 죽는다고 하는군요.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팔봉 선생의 생사 여부를 밝히는 것은 다음 회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참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찬물을 끼얹는 꼴입니다. 요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찬물을 끼얹고 싶었을까요? 앞으로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시청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구요, 원래 경합은 3차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1차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2차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 그 다음으로 어떤 빵이 3차의 경합 주제일지 궁금한 차였습니다. 그런데 경합 주제를 공개할 팔봉선생이 죽게 된다고 하니 3차 경합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물론 대장 양인목이 팔봉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3차 경합을 이어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것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가의 주체가 팔봉 선생이며 이 평가를 대장 양인목이 대신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진정성을 평가하는 실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3차 경합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 않든 3차 경합에서 만들도록 제시될 빵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팔봉 선생이 눈을 감기 전에 이 경합 주제를 양인목에게 알려 주었을지, 족자에 미리 적어 놓았을지, 아니면 언급이 없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또한 만갹 이미 3차 경합의 주제를 팔봉 선생이 이미 인목을 통해 밝혔다면 그 의도와 의미가 참 궁금합니다. 이 3차 경합에서 제시되는 빵이야 말로 가장 고난이도의 가장 궁극의 빵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탁구와 미순이 벌이게 될 3차 경합은 사실상 무기연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춘배가 등장하고 구마준이 발효일지를 훔쳐가면서 봉빵의 기술 특허권(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네요)을 차지하기 위해 모의를 하게 됩니다. 따라서 팔봉 선생과 춘배와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춘배는 봉빵이 자신의 빵이라고 주장하면서 팔봉 선생의 봉빵 기술 특허권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에 팔봉가에서는 탁구가 이의 신청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그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서 봉빵을 시연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춘배 측에서는 구마준이 대리자로, 팔봉가에서는 김탁구를 대리자로 하여 봉빵 제조를 시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만화 식객의 요리대결과 같은 봉빵의 대결입니다.



우연의 일치가 될지 모르지만 팔봉 선생이 3차 경합에서 제시하려고 한 빵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빵>이 아닐까 하며, 바로 이 세상에서 정직한 빵을 구마준과의 대결에서 김탁구가 봉빵으로 만들어 내리하는 추측입니다. 즉, 봉빵은 가장 정직한 빵이기도 한 것입니다. 호형호제하던 춘배와 사이가 깨어진 것도 빵을 만드는 정직한 방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직한 빵을 만들겠다는 팔봉 선생과 대량 생산을 하기위해 인공 발효첨가물을 넣자는 춘배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계보를 이어 김탁구와 구마준이 각각 팔봉 선생과 춘배를 대리하여 봉빵을 놓고 실질적인 경합을 벌이는 것은 참 의미있습니다. 결국 3차 경합은 김탁구와 구마준의 봉빵 시연이 되는 셈이며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빵>을 만드는 경합에서 김탁구가 이기게 되리라 추측됩니다. 정직하지 못한 마준이 비록 봉빵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 의미는 많이 디르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같은 봉방이라도 마준의 것은 차가움, 증오,질투의 악취가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3차 경합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단지 드라마의 전개상 탁구의 승리를 예상하는 것입니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3차 경합의 주제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봉빵을 시연하는 김탁구와 구마준은 결과적으로 3차 경합을 벌이게 되는 셈입니다. 양미순은 좀 억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봉빵이 3차 경합의 승리를 가져다 주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빵>의 대표적인 빵이 되겠지요. 아무튼 3차 경합의 주제가 무엇인지, 탁구와 마준의 봉빵 시연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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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구에게 붙여진 제빵왕이란 별칭은 유경이 탁구에게 선물한 제빵 모자에 새겨진 '제빵왕' 에서 유래합니다. 제빵왕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제빵계의 큰 인물이나 장인일 것입니다.

구일중은 탁구가 자신의 후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구일중의 이러한 생각은 대단히 무리한 것입니다. 본처의 자식들이 있는 데 첩의 자식을 거성식품을 책임질 후계자로 삼는 것은 아무리 그 시대적인 배경을 고려한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아들인 구마준이 버젓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마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자식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두 딸이 있습니다. 특히 자경의 경우는 거성 식품을 경영하려는 야심이 크며 그만큼 노력합니다. 아버지 구일중의 인정만 받으려는 구마준과는 달리 착실하게 경영에 대한 실무적인 일들을 익히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보나 구마준 보다는 속이 꽉찬 인물입니다. 이런 자식들이 있는데도 구일중이 김탁구를 후계자로 앉힌다면 잘못된 것이지요. 자식이 없고 자식이 있다고 해서 사리 판단이 없는 경우라면 모를까 마준(물론 마준은 어릴적 부터 버릇이나 독립심이 없어고 크가면서도 구일중에게는실망스러운 아들이었을 것이다.), 자경이 있는 데 말입니다.



그러나 구마준의 경우는 이제 거성 식품의 후계자는 될 수가 없습니다. 팔봉선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팔봉 선생의 계보 속에 구일중이 있기에 팔봉 선생을 배신한 구마준을 결코 거성의 후계자로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마준 그 자신도 그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아니 구마준은 거성을 경영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고 여겨집니다. 단지 구일중의 애정이 필요했고 그 장애물이 되는 김탁구를 이기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경영수업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여자문제로 서인숙의 속을 꽤나 썩인 것을 보면 거성 식품의 귀공자로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인숙의 눈에도 신유경은 그런 여자아이에 불과한 것이죠.


앞서 언급을 했지만 구일중은 김탁구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려고 합니다. 구일중의 이러한 태도는 아무리 탁구에 대한 인식이 좋다고 해도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탁구는 구일중의 이러한 생각과는 다른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머니 김미순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또한 자신의 스승인 팔봉 선생의 계보를 잇는 제빵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일중은 결코 김탁구의 뜻을 꺽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일중이 선택해야할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지 불을 보듯이 뻔해 집니다. 자신의 큰 딸 자경입니다. 자경이야 말로 거성을 이끌 수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서인숙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서인숙과는 다른 기품이 있습니다. 성격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다소 차가운 성격이 감지되지만 기업 경영에서 이러한 성격은 단점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구일중이 자경에게 갖는 태도도 그다지 나쁘진 않습니다. 언젠가 자경이 구일중에게 경영수업을 받아보겠다는 말을 하면서 할머니의 묘소에 함께 동행해 달라고 합니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사고에 젖어있는 구일중이 자경을 할머니의 묘소에 데리고 갑니다. 이 부녀 모자의 화해랄까요, 인정이랄까요, 이런 모습은 자경의 가능성과 자신감을 엿보게 합니다.


팔봉 선생의 계보를 잇는 제빵왕이 되는 김탁구, 거성의 후계자가 되는 구자경, 참 멋진 조합처럼 보입니다.


첫번째 이미지: kbs 드라마
두번째 이미지: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8136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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