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여운이 남습니다. 탁구의 발견이 그 가장 큰 이유입니다. 탁구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현실의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인물이었습니다. 식상하고 판에 박힌 인물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작 우리 사회에서 식상하고 판에 박힌 인간은 한승재나 서인숙, 그리고 구마준 같은 인간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전염병처럼 퍼져있습니다. 한승재나 서인숙 같은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러니 도덕과 양심을 강조하는 사회적인 트랙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탁구을 식상하고 판에 박힌 인물이라고 하면 그건 자기모순이 됩니다. 교육이나 사회에서 추구대상이 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식상한 존재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 자신을 너무 기만하는 것입니다. 원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초로 돌아가야 합니다. 탁구는 원론이고 기초 같은 존재입니다. 탁구야 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존재이며 가장 신선한 존재입니다. 경쟁과 탐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쌍두마차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의 실타래를 풀어가야 함에도 현실은 더욱 더 꼬이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이미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그런데 탁구의 이면에는 팔봉 선생이라는 큰 산이 있습니다. 팔봉 선생이야 말로 탁구를 탁구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래서 참 의미있는 존재입니다. 팔봉 선생은 우리 사회의 얽힌 실타래에 대해 침묵으로 웅변합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듯한 우리 삶을 한 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팔봉 선생이 죽었다고 해서 그가 과거의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탁구처럼 우리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변화의 힘 그 자체입니다.



 

1. 참 된 교육의 힘

팔봉 빵집은 참 된 교육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학교나 학원이라는 교육 기관과 비교해 볼 때 팔봉 빵집은 참된 교육을 가르치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고, 참된 재능과 적성이 기본이되며, 기술 이전에 인간이 중심이 됩니다. 단순히 개인의 스펙을 업하기 위해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닌 진정으로 인간다움을 추구하고 소질과 적성을 개발하는 그런 곳이 바로 팔봉 빵집입니다. 팔봉 빵집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2. 장인 의식

팔봉 선생의 봉 빵은 장인 의식의 결정체입니다. 그가 만든 빵에 대해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있습니다. 무엇을 만들어도 혼을 불어 넣는 정신이 장인 의식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장인 의식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너무 가볍고, 속전속결입니다. 아이들이 김치보다는 행버거를 더 좋아하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성형을 통해 외모에만 치중하는 그런 가벼움이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큰 틀을 놓고 볼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용적인 지식과 사회적인 인정이 크게 작용하면서 실속보다는 겉멋만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직업의 귀천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이들에게 장래 되고 싶은 직업이 무어냐고 하면 소방수가 수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회 봉사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중요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연예인과 대통령이 최고의 가치를 발합니다. 사실 연예인이야 말로 장인 의식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이 됩니다만, 그러나 실제로 연예인을 선택하는 것은 외관으로 보이는 화려함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교육과 관련된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경쟁의 가장 정점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깨어져야 합니다. 바로 팔봉 선생과 팔봉 빵집에 그 해답의 일단이 있지 않을까요.



 

3.인간 중심의 관계

팔봉가와 거성가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인간에 대한 생각입니다. 팔봉가의 행복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인간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거성가는 인간들의 반목과 탐욕으로 물질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불행을 겪습니다. 이 두 공간을 우리의 전통적인 사회와 서구의 물질적인 사회로 양분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이나 서구에 대한 인식은 어쩌면 편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식의 비교가 이제는 무의미해졌다고 할수도 있구요. 이미 우리 사회가 서구 사회보다도 더 물질적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팔봉 빵집은 참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밤 하늘에 보석 같이 빛나는 그런 공간입니다. 우리 사회가 팔봉 빵집처럼 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기본적인 정신은 여젼히 우리 사회에 유효합니다. 높은 시청률 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대한 생각도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팔봉 선생이 쓰러졌습니다. 인터넷 매체에 따르면 팔봉 선생은 죽는다고 하는군요.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팔봉 선생의 생사 여부를 밝히는 것은 다음 회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참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찬물을 끼얹는 꼴입니다. 요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찬물을 끼얹고 싶었을까요? 앞으로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시청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구요, 원래 경합은 3차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1차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2차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 그 다음으로 어떤 빵이 3차의 경합 주제일지 궁금한 차였습니다. 그런데 경합 주제를 공개할 팔봉선생이 죽게 된다고 하니 3차 경합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물론 대장 양인목이 팔봉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3차 경합을 이어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것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가의 주체가 팔봉 선생이며 이 평가를 대장 양인목이 대신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진정성을 평가하는 실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3차 경합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 않든 3차 경합에서 만들도록 제시될 빵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팔봉 선생이 눈을 감기 전에 이 경합 주제를 양인목에게 알려 주었을지, 족자에 미리 적어 놓았을지, 아니면 언급이 없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또한 만갹 이미 3차 경합의 주제를 팔봉 선생이 이미 인목을 통해 밝혔다면 그 의도와 의미가 참 궁금합니다. 이 3차 경합에서 제시되는 빵이야 말로 가장 고난이도의 가장 궁극의 빵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탁구와 미순이 벌이게 될 3차 경합은 사실상 무기연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춘배가 등장하고 구마준이 발효일지를 훔쳐가면서 봉빵의 기술 특허권(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네요)을 차지하기 위해 모의를 하게 됩니다. 따라서 팔봉 선생과 춘배와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춘배는 봉빵이 자신의 빵이라고 주장하면서 팔봉 선생의 봉빵 기술 특허권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에 팔봉가에서는 탁구가 이의 신청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그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서 봉빵을 시연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춘배 측에서는 구마준이 대리자로, 팔봉가에서는 김탁구를 대리자로 하여 봉빵 제조를 시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만화 식객의 요리대결과 같은 봉빵의 대결입니다.



우연의 일치가 될지 모르지만 팔봉 선생이 3차 경합에서 제시하려고 한 빵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빵>이 아닐까 하며, 바로 이 세상에서 정직한 빵을 구마준과의 대결에서 김탁구가 봉빵으로 만들어 내리하는 추측입니다. 즉, 봉빵은 가장 정직한 빵이기도 한 것입니다. 호형호제하던 춘배와 사이가 깨어진 것도 빵을 만드는 정직한 방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직한 빵을 만들겠다는 팔봉 선생과 대량 생산을 하기위해 인공 발효첨가물을 넣자는 춘배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계보를 이어 김탁구와 구마준이 각각 팔봉 선생과 춘배를 대리하여 봉빵을 놓고 실질적인 경합을 벌이는 것은 참 의미있습니다. 결국 3차 경합은 김탁구와 구마준의 봉빵 시연이 되는 셈이며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빵>을 만드는 경합에서 김탁구가 이기게 되리라 추측됩니다. 정직하지 못한 마준이 비록 봉빵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 의미는 많이 디르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같은 봉방이라도 마준의 것은 차가움, 증오,질투의 악취가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3차 경합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단지 드라마의 전개상 탁구의 승리를 예상하는 것입니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3차 경합의 주제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봉빵을 시연하는 김탁구와 구마준은 결과적으로 3차 경합을 벌이게 되는 셈입니다. 양미순은 좀 억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봉빵이 3차 경합의 승리를 가져다 주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빵>의 대표적인 빵이 되겠지요. 아무튼 3차 경합의 주제가 무엇인지, 탁구와 마준의 봉빵 시연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 참 궁금합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1차 경합에서 통과한 양미순의 케익빵, 구마준의 페스트리, 김탁구의 보리밥빵은 아전인수격의 해석인 듯도 하지만 각각 순서대로 미래, 현재, 과거와 잇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미순의 케익빵은 상상의 결과물로서 상상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구마준의 패스트리는 현재 자신의 실력에만 의존한 결과물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탁구의 보리밥 빵은 과거를 품고 있는 빵입니다. 그렇다면 구마준에게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과거의 추억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미래의 희망도 마준에게는 철저히 잊고 싶은 시간인지 모릅니다. 오직 현재의 시간만이 구마준에게는 의미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빨봉 선생의 말씀대로 차가운 느낌이 감도는 것일 지도요. 물론 차가운 느낌은 여러가지 경로로 감지되겠지요.




 
아무튼 양미순의 케익은 일상적으로 먹는 빵은 아닙니다. 주로 생일 같은 즐거운 행사에 많이 사용합니다. 따라서 이 케잌은 기쁠 때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빵입니다. 김탁구의 보리밥 빵은 과거 자신의 삶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도움을 대신해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정이 가득한 빵입니다.


그런데 구마준의 빵은 기술이 뛰어난 대신에 차갑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구마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최선을 다해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탁구의 초라한 보리밥 빵보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데 대해서 화가날 것입니다. 언제나 탁구에게 치였던 경험들이 팔봉선생으로부터도 그런 대접을 받으니 또 얼마나  불만스럽겠습니다. 팔봉 선생은 1차 경합에서는 합격을 시켜주지만 다시 한 번 이런 차가움이 감지된다면 합격시켜 줄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팔봉선생의 이 말은 마치 구마준이 처한 현실은 정확히 꿰뚫고 있는 듯 합니다. 정말 무서운 팔봉선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마준은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상황이니까 말입니다. 구마준은 마음 속 분노가 한껏 고조되어 있습니다. 탁구가 구일중과 상봉을 하면서 구일중으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되고, 신유경을 괴롭히는 자신의 어머니인 서인숙 때문에 분노가 폭발직전이었습니다. 한승재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빵실 오븐기 폭발사고나 소다 사건등이 한승재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마준이 차가움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지 걱정스럽습니다.


만약 이러한 차가운 기운이 계속되는 경우 2차에서는 탈락할 것이라고 팔봉 선생은 분명하게 말했기에, 구마준에게 주어진 과제는 김탁구와 양미순에 비해서 더욱 더 부담스럽습니다. 1차에서 지적 받았던 차가운 기운을 없애는 것과 2차 경합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차 경합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 구마준은 너무나 '차가운 상황' 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마준이 2차 경합을 합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구마준은 결코 2차 경합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만약 구마준이 2차 경합을 통과하려면 그의 마음속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이것은 현재의 상황으로 볼때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구마준이 신유경에게 한 제안(복수의 제안)은 2차 경합을 포기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신유경에게 한 복수의 제안은 차가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부글거리는 복수의 생각이 존재하는 데 또 다른 한 구석에서는 2차 경합을 통과하기 위해 차가움을 없애려고 한다면 이건 완전히 정신분열증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현 상황으로서는 구마준이 2차 경합을 위해 갑자기 돌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다른 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구마준의 제안(자신을 이용해 서인숙에게 복수를 하라는 제안)에 대해 신유경이 응해 줄지의 여부도 관심사입니다. 신유경은 자의식이 구마준 만큼이나 큰 존재입니다. 특히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것이 그 예입니다. 그렇다면 마준의 제의는 신유경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이길 가능성이 큽니다. 서인숙과 같은 속물적인 인간에게 앙갚음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만족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니 말입니다.


이렇게 신유경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 들일 가능성이 엄청나게 큰 상황이기도 하구요. 따라서 구마준의 차가움(즉 복수의 살기가 가장 큰 원인이라 판단)은 더욱 그 강도가 크지겠구요. 그렇다면 2차 경합 통과는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떠한 돌발 변수가 발생할지가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신유경이 구마준의 제의를 차갑게 거절해 버리는 정도인데요, 어던 다른 변수들이 개입들지 참 궁금합니다. 


이러한 변수들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구마준은 결코 2차 경합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팔봉선생에게 1차 경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차가움이 감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마준의 경합 탈락이 스토리 전개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주제넘은 예상까지 하게 되는군요.  

 

 첫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72708245008371&outlink=2&SVEC
 두번째 이미지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N329214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빵이 2차 경합의 과제로 부과되었습니다. 필자는 이 재미있는 빵의 정체에 대해서 심오한 무엇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을 했구요. 빵 자체가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빵을 먹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재미를 주는 빵이거나 아니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긴 빵"이 아닐까 하고 언급했습니다. 이어서 "또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재료를 빼고 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다소 기발함이나 창의력을 요구한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앞서의 추측(2010/08/06 - [드라마/제빵왕 김탁구] - 제빵왕 김탁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의 정체는?)에서 빵 자체가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는데, 이건 참 잘못된 추측이 아닐까 합니다. 재미있는 빵은 그 모양에서도 재미를 제공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미있는 모양' 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빵' 을 판단하는 조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 재미있는 모양은 팔봉 선생이 의도하고 있는 것에서 가장 하위의 가치를 지닌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완전히 무시할 정도는 아니고 말이죠.




사실, 세상에서 재미있는 빵을 만들어라는 2차 경합의 질문은 논외로 치더라도, 밀가루나 이스트를 빼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언뜻 빵을 만드는데 밀가루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면 무슨 빵을 만들겠나라고 생각이 미치기 쉬운데요, 사실 밀가루를 대용할 수 있는 곡물이 많습니다. 그러니 밀가루를 빼고서 빵을 만들어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트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스트(효모)가 밀가루의 발효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이스트를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러니 무얼 빼고 하라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경합의 극적 흥미를 자아내기 위해 밀가루나 이스트를 빼라고 한 것이겠지만 사실상 그 의미는 없다는 것이죠. 밀가루나 이스트 없이도 빵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모르되 다른 대체 곡물과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빵의 달인인 팔봉 선생이 이런 것을 모르고 경합의 질문을 준비했다는 것도 쉬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팔봉선생은 밀가루를 대체하는 다른 곡물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또는 이스트를 대신할 대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기를 바란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도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팔봉 선생의 의도는 그런 감각적인 것이 전부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1차 경합에서 보았듯이 가장 보잘 것 없는 탁구의 보리밥 빵이 인간의 정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후한 인정을 받았듯이 재미있는 빵 역시 인간적인 면이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밀가루나 이스트를 빼는 것이 빵을 만드는데 결정적이지도 않지만 밀가루와 이스트는 중요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즉 밀가루와 이스트는 중요한 재료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무엇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빠지면 우리는 당황하고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재미있다는 식으로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모순적인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빵을 만드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밀가루와 이스트, 이런 중요한 재료를 빼고서 빵을 만들어야 할 경우 우선 당황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재미있게 빵을 만든다거나 재미있는 빵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당황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끼면서 재미있을 수는 없는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지는 빵은 어딘지 부족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렇다면 팔봉 선생이 진정으로 의도하는 것은 중요한 것들이 빠졌을 때 불안해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재미있게 빵을 만들어라는 정신적 여유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재미있는 빵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은 재미있고 유쾌한 환경이니까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재미있는 빵이란 밀가루나 이스트같은 중요한 재료들이 빠졌다고 해서 불안하거나 당황해 하지 말고 평정심을 찾아서 재미있게 빵을 만들라는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제빵사가 되면 이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럴 때 불안해 하거나 당황해 하지 말고 그 대체물이나 대안을 찾으면서 재미있게 빵을 만들어라는 것입니다. 재미있게 빵을 만들어야 재미있는 빵이 탄생하지 않겠습니까?


이미지 출처: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008061034283&mode=sub_view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일중은 구마준보다 왜 김탁구를 편애할까? 이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구일중을 평가하는 참 중요한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스토리에도 주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구일중에 대해서는 의문시되는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점들을 정확히 알기 전에는 구일중의 전 면목을 알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평가하기도 무언가 꺼림칙합니다. 그러니 구일중으로 속으로 삭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대체 왜 구일중은 구마준보다 김탁구를 편애하는 것일까요? 왜 구일중은 김탁구를 특별한 아이로 여기면서 구마준에게는 사늘한 시선을 보내는 것일까요? 아무리 아내 서인숙과의 사이가 나쁘다고 해도 그 영향으로 아들인 구마준을 차갑게 대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딸만 둘이던 가정에 사내가 태어났다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며 분명 구일중도 이를 반겨야 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일중은 구마준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기간동안 줄곧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가 참 어려운 태도입니다. 구일중의 인격에 큰 결격 사유가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정상적인 아버지로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인숙, 한승재와 마찬가지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구마준의 출생과 관련해서 우리는 당연히 서인숙과 한승재의 아들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강 결정적인 단서로 인정하는 것은 서인숙 자신의 한마디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인숙의 단 한마디를 그대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한승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관계를 구일중이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별 의심을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의 어디에서고 구마준의 출생의 비밀이나 서인숙-한승재의 불륜에 대해 서인숙과 관련하여 한 축이 되고 있는 구일중이 어떠한 언급을 한 사실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의 언급이 없다고 해서 구일중이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구일중이 서인숙-한승재의 불륜을 알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더 나아가서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묵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구마준의 출생 또한 의심스러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서인숙의 임신에 대해 의심했을 수도 있으며 누군가를 시켜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알아 봤을 수도 있습니다. 홍여사의 죽음과 서인숙의 관련성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상에서 이러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구일중이 이러한 사실들에 전혀 무지한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든지 구마준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불륜 사실을 알 수 있고, 구마준을 그들의 자식이라고 의심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구일중이 구마준에게 보여주는 무관심과 냉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마준은 자신의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내 서인숙의 배에서 나온 자식이기는 하지만 이미 서인숙과는 남남이나 다름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니 구마준에게 애정이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불륜이라고 하지만 김미순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김탁구는 엄연히 자신의 피가 흐르고 있는 혈육입니다. 구일중이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바로 이 혈육이라는 사실이 구일중이 모든 비난을 감수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미지 출처: 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806/5251759.htm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아버지로서 구일중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가장에서부터 인자한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평가가 엇갈립니다. 특히 구일중을 비판하는 경우는 그가 아내 서인숙과 자녀들, 특히 구마준에 대해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 서인숙과는 애정 자체를 상실하고 있으며 거성가의 후계자가 될 아들 구마준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구일중이 개인적인 능력과 거성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능력은 탁월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처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일중에게서 나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서인숙도 구마준도 그리고 자경, 자림도 구일중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서인숙의 경우는 완전히 애정이 식어버려 그저 남남이나 다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구일중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시대적인 상황을 구일중과 떼어 놓지 않고 보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구일중을 시대 상황이 개입되지 않는 독립된 개체로 본다면 비판의 여지가 참 많은 인간입니다. 결국 구일중을 보는 시선은 우리이며 우리의 시선은 현재적인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일중을 비판하는 것은 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개인이 뛰어 넘을 수 없는 시대라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태도입니다. 구일중을 제대로 보려면 시대적인 상황을 동시에 고려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대적인 상황을 구일중을 평가하는 배경으로 삼게 되면 구일중의 잘잘못이 결국은 시대적인 제약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일중에 대한 비판보다는 사회 체제에 대한 비판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회의 틀을 개인이 깨고 뛰어넘는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전개상 거성의 창립 30주년이 1990년대 후반이었으니 거성은 1960년대에 처음 창업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구일중의 나이를 30 정도로 잡는다면 60대 초 중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구일중의 외모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모습입니다. 아무튼 1960년대에 30정도의 나이라면 이미 그 사고방식이 대단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고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0년대의 시대적인 상황과 개인의 사고방식을 연결시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일중에게 인자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아버지의 상만을 요구한다면 현재의 시선으로는 당연하지만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어색한 인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대적인 상황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인식과 행동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일반적인 미이지가 존재하던 시대에 구일중이 그런 모습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가 됩니다. 구일중을 비판하는 경우는 바로 구일중을 이런 특수한 경우의 존재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필자의 견해이긴 하지만 구일중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비교해 보았는데요, 어느 경우이든 구일중이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통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의 경우도 시대적인 상황을 구일중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구일중이 너무 한다는 조금의 반발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구일중이 서인숙과 구마준에게 너무 한다는 느낌과 함께 구일중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구마준이 자신의 아들이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서인숙에 대한 구일중의 사늘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애당초 구일중과 서인숙은 애정도 없는 결혼을 했습니다. 두 딸 자경과 자림을 낳기는 했지만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불행한 삶은 구일중과 서인숙 둘 다에게 동정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지 서인숙만 희생자로 동정을 보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결혼 전에 구일중은 김미순을 사랑했고 그 김미순에게서 난 김탁구의 존재는 특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녀사이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일중이 김탁구에게 애정을 쏟는 것을 구마준과 비교하면서 같은 자식인데 너무하다는 시선은 구일중으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 그리고 구마준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덤덤하다면 그들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허락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세는 비난 받을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구일중은 성숙하고 마음 씀씀이가 깊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일중 과연 어떠한 인간이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806/5251759.htm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서인숙에게 신유경은 참으로 황당한 존재입니다. 거성 식품의 후계자가 될 고귀한(?) 신분인 구마준이 이 천한 계집아이와 어울리는 것이 걱정됩니다. 2년 전 자신이 쫓아버렸다고 생각했던 신유경이 거성식품에 취업을 하고 비서실로 보란 듯이 발령을 받았으니 이건 여간 신경이 쓰이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저 천한 계집아이가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지 속이 뒤집어질 지경입니다. 이렇듯 서인숙에게 신유경의 존재는 증오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물론 고귀한 신분과 고상한 생활 취향의 관습화된 눈높이가 가져다주는 타인에 대한 멸시이긴 하지만 그 처해진 환경이 아무리 속물적이고 탐욕적이라 해도 신유경에 대한 서인숙의 분노는 이해해 줄 만 합니다.






신유경에게도 서인숙의 존재는 고상한 외모에 숨겨진 속물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거성 식품의 사모님이라고 해도 서인숙의 하는 짓은 참으로 혀를 내두를 만큼 저속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신유경은 과거 대학시절 운동권 학생으로 사회의 정의와 정치적 민주화,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 잡기 위해서 투쟁했습니다. 그녀는 고문을 당하면서 사회의 변화보다 자신이 변화하면 된다는 회유를 받습니다. 그 순간부터 아마도 신유경은 사회의 변혁이 아니라 자신의 변화를 추구했을 지 모릅니다. 신유경이 투쟁했던 대상은 독재자와 그 주변의 정치인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신의 변화에 갈등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서로의 소통이 부재한 두 사람에게 화해를 기대하기는 하늘에서 별을 따기 만큼이나 힘들 것입니다. 사실 서인숙과 신유경은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충돌은 불을 보듯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한 충돌을 한다고 해도 신분상의 차이가 있고 신유경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신유경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구마준이라는 응원군을 사로 잡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들의 충돌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참으로 재미있는 대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스케일 큰(?) 예상과는 달리 서인숙과 신유경은 참으로 유치하고 황당한 자존심 대결을 합니다. 이 싸움은 구마준이 끼어들면서 승부를 가리지는 못합니다. 이 유치하고 황당한 싸움의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신유경이 김탁구를 만나기로 한 일요일 저녁 탁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전화벨이 울립니다. 비서실에서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신유경이 받자 서인숙이 신유경을 집으로 부른다는 비서실의 연락이었습니다. 신유경은 탁구와의 만남 약속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서인숙의 저택으로 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서인숙은 친적들과의 대화가 있다고 하면서 신유경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무시하면서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신유경은 또 저택의 거실에서 몇 시간을 서있습니다. 잠시라도 앉아있으면 될 것을 끝까지 서서 기다립니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거성그룹의 사모님의 스케일이 고작 이것밖에 안된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가진자가, 힘센자가 이런 유치한 짓을 할 때 당하는 약자는 참으로 분노를 주체하기 힘듭니다. 신유경의 심정은 서인숙으로 향하는 복수의 칼날을 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이 약한 자신이 부와 권력을 한 몸에 쥐고 있는 서인숙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가요?


아무튼 서인숙과 자존심 싸움에서 신유경의 강한 결기가 느껴집니다. 서인숙이 아무리 거성 식품의 안주인이라고 해도 신유경은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당당한 모습입니다. 
앞으로 서인숙과 신유경의 자존심 대결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411767&year=2010
두번재 이미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7211018181001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경합의 1차 문제로 출제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 무엇인지에 대해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대단히 모순적입니다. 이 질문을 그대로 해석한다면 경합에 참가한 4명 중에 운좋으면 한 사람, 아니면 아무도 2차 경합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미 그대로라면 이 '세상에 가장 배부른 빵' 은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적당하게 배부른 빵이나 그냥 배부른 빵이 아니라 '가장' 배부른 빵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이 모순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임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배부르다는 말은 과학적인 수치가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아주 주관적인 느낌이며,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팔봉 선생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팔봉 선생은 왜 이런 모순적인 질문을 한 것일까요?




이러한 과학적인 답변이 불가능한 질문을 팔봉 선생이 출제한 것은 결국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방식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것일까요? 결국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들면 사랑에 대한 해석이 그런 예입니다. 어디 사랑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으로 풀어 낼 수 있던가요? 팔봉 선생이 의도하고 있는 답변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따라서 첫번째 질문은 너무나도 쉬운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네 사람이  그들 나름대로 '배부른 빵' 에 대해 진실하고 진지하게 생각한 것을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차 경합은 네명 모두 합격하리라 판단됩니다.  만약 모두가 아니라도 최소한 김탁구와 구마준은 통과해야만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경합이 이루어지기에 이 둘만이라도 합격할 가능성은 큽니다. 이럴 경우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하나가 아니라는 모순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네명이 합격해도 마찬가지이구요. '가장' 이란 단어는 하나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김탁구와 구마준이 각각 다른 빵을 만들어 통과하게 된다면 '가장 배부른 빵' 은 2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모순인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이 둘은 합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가장 배부른 빵을 판단하는 사람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팔봉 선생 조차도 판단 할 수 없는 것을 이렇게 질문 했다는 것은 분명 다른 답변의 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의 답변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가장 배부른 빵이란 참가자 각자에게 절실한 상황에서 먹었던 가장 배부른 빵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참가자들에게 그것이 절실한 이유라면 가장 배부른 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가장 배부른 빵이란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씩 존재하는 상대적이면서 주관적인 개인의 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감정은 결코 상대적인 우월성이나 가치를 가지고서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집니다.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가장 배부른 빵은 존재할 수 없지만 한 개인에게 가장 배부른 빵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이유로 가장 배부른 빵이라고 판단될 때 그것은 얼마든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유일성, 절대성이라고 할까요, 뭐 그런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개인들에게 아주 절실한 이유' 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의 평가로 1차 경합 문제의 통과 여부가 결정되리라 추측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개인의 이유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빵을 만드는 인간의 인간성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 태도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은 개인의 삶의 진정성과 삶에 대한 성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김탁구에게도, 구마준에게도, 양미순에게도, 고재복에게도 자신들에게 가장 배부른 빵이 존재하고 있고 자신들을 배부르게 한 진정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1차 문제에서 그들은 모두 통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 윗글의 내용중에 일부는 이전의 글에서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습니다. 필자의 창작물이기에 논리적인 연결을 위해 단락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첫번째 이미지:http://www.unionpress.co.kr/news/detail.php?number=67197&thread=03r02r01
두번째 이미지: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72822542542417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경합의 사전적인 의미는 서로 맞서 겨룬다는 뜻입니다. 뜻 그대로 탁구와 마준이 경합에 참여하려는 의도는 경쟁이고 승부입니다. 이 경합에서 이기기를 서로 바랍니다. 특히 마준의 경우는 팔봉 선생으로부터 인증을 받음으로서 자신의 아버지인 구일중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합을 준비한 팔봉선생은 단순히 경쟁을 위해 이 경합을 제공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경합의 1차 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이란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단순히 제빵자격증 시험같다면  지식과 기능만을 습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팔봉 선생은 그저 지식이나 기능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팔봉 선생이 제공하는 경합과 그 경합에 참가하고 있는 탁구와 마준의 경합에 대한 생각은 서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즉 탁구와 마준에게 경합의 의미는 승부이고 팔봉선생의 인증서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팔봉선생에게 경합이란 말은 빵을 만드는 인간의 자질과 관련된 의미입니다. 적절하지 않지만, 예를 들자면 누가 더 빵을 잘 만드냐가 아니라 누가 더 빵을 만드는 자질을 갖추고 있느냐의 문제를 의미합니다. 또한 빵이라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빵이 만들어지는 전과정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KBS홈페이지 사진 캡처


오늘날 우리 교육의 측면에서 이 관계를 살펴본다면, 탁구와 마준이 등수와 결과지상주의에 집착하고 있다면, 팔봉선생은 학생이 학문을 하는 진정한 지향성과 태도, 그리고 독창적인 사고를 평가하고 싶어 하는 셈입니다. 아직은 탁구와 마준이 자신들의 사고의 틀 속에서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1차 경합을 통과하면서 팔봉 선생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2차, 3차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경합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해하리라 판단됩니다. 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팔봉 빵집은 단순히 빵집이 아니라  전통적인 '서당' 이나 도제식의 '학숙' '사숙'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팔봉 선생은 마치 서당의 훈장이나 스승처럼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을 전수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빵을 만드는 인간에 중점을 둡니다. 16회에서 탁구와 마준이 서로 주먹질을 하면서 싸운 사실을 알고는 벌로 서로의 손을 묶고 생활하도록 한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서로 증오하고 싸움을 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빵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서로 묶은 끈은 결국 마음을 잇는 끈인 것입니다. 끈을 묶은 채 외출 했다가 깡패들을 만나 겪는 에피소드에서 끈의 의미가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그 끈으로 서로의 손이 묶여있지만 서로 이해하고 희생하고 도와주는 마음을 연결하는 끈이 되는 것입니다. 빵이 아닌 빵을 만든는 인간에 중심을 두는 스승 팔봉 선생의 지혜로운 교육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합 1차 문제에서 김탁구, 구마준, 양미순, 고재복 모두 다 통과할 가능성이 큽니다. 모두가 아니라도 최소한 김탁구와 구마준은 통과해야만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경합이 이루어지니까 말입니다. 이럴 경우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하나가 아니라는 모순이 성립합니다. '가장' 이란 단어는 하나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적어도 김탁구와 구마준이 각각 다른 빵을 만들어 통과하게 된다면 '가장 배부른 빵' 은 2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모순인 것입니다.


아무튼 가장 배부른 빵이란 참가자 각자에게 가장 배부른 빵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참가자들에게 그것이 절실한 이유가 있다면 통과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즉 가장 배부른 빵이란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씩 존재하는 상대적이면서 주관적인 개인의 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가장 배부른 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개인들에게 아주 절실한 이유로 가장 배부른 빵이라고 판단될 때 그것은 얼마든지 가장 배부른 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유일성, 절대성이라고 할까요, 뭐 그런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개인들에게 아주 절실한 이유' 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의 평가로 1차 경합 문제의 통과 여부가 결정되리라 추측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개인의 이유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빵을 만드는 인간의 인간성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 태도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은 개인의 삶의 진정성과 삶에 대한 성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김탁구에게도, 구마준에게도, 양미순에게도, 고재복에게도 자신들에게 가장 배부른 빵이 존재하고 있고 자신들을 배부르게 한 진정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1차 문제에서 그들은 모두 통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탁구와 마준, 특히 마준에게 이 경합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경합의 과정은 구마준에게는 그아말로 감동적인 시간이 될 것입니다. 팔봉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인내하고, 사랑하며, 희생하는 자세를 배우는 것입니다. 탁구와 마준에게 경합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첫번째 이미지: KBS홈페이지 사진 캡처
두번째 이미지: http://www.unionpress.co.kr/news/detail.php?number=66387&thread=03r02r01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30회로 예정되어 있는 <제빵왕 김탁구>가 이제 16회로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이제 서서히 김미순과 닥터유, 신유경, 그리고 김탁구의 복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서인숙과 한승재의 몰락과 파멸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 질 것 같습니다. 김미순과 신유경의 복수와는 달리 김탁구는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복수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리라 봅니다. 아무튼 서인숙과 한승재의 탐욕스러운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파멸되어 가는 모습이 지속적인 흥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김미순과 닥터 유의 복수는 오랜기간 동안 치밀하게 준비되었습니다. 김미순은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복수와 함께 홍여사의 죽음에 대한 대리 복수 의 성격도 강하게 나타납니다. 김미순은 홍여사의 죽음이 서인숙과 한승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모종의 관계가 아니라 '살인자' 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미순이 보낸 '살인자' 라고 큼직하게 쓰인 편지와 '운명은 이제 당신 편이 아닙니다' 라는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김미순이 홍여사가 어떻게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대목이 되는 것입니다.





'살인자' 의 의미는 김미순 본인의 납치를 사주한 범인을 서인숙이라고 판단한 결과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보낸 '운명' 의 편지는 분명히 홍여사의 죽음과 관계되어 있기에 김미순은 홍여사의 죽음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왜냐하면 홍여사가 살해당하고 빈소에서 서인숙은 김미순에게 "운명은 내 편이다' 고  말하거든요. 서인숙의 운명을 쥐고 있던 홍여사가 죽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김미순이 '운명은 이제 당신 편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 것은 홍여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것, 심지어 홍여사의 죽음 이유까지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김미순은 서인숙과 한승재가 홍여사를 죽였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이 부분이 참 궁금한 대목입니다. 궁금하지만 추측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좁습니다. 바로 공주댁입니다. 공주댁이 아니라면 서인숙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인물이 거성가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주댁은 홍여사가 죽던 날 의심스러운 사실들을 목격했거나 아니면 홍여사의 죽음과 관련해서 서인숙과 한승재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지막 가능성으로는 공주댁이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누군가' 는 홍여사의 죽음 전모를 알고 있는 구마준과 구자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구마준과 구자경이 이런 일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능성이 적어도 구자경은 자신이 거성식품을 차지하기 위해서 구마준을 밀어주는 서인숙의 몰락을 원할 지도 모릅니다. 구자경이 이토록 비인륜적인 인간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냥 추측해 보는 것입니다.





구장경에 대한 추측은 제외하고, 어느 경우에도 오랜 기간 가정부로 홍여사와 함께 한 공주댁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서인숙과 한승재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천벌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주댁은 자신이 어떻게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분노로 치가 떨렸겠지만 서인숙과 한승재의 기고만장함에 주눅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괜히 혼자 나섰다가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몰려왔을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김미순과 통화를 하게 되면서 서로 의기를 투합하는 사이가 되었으리라 추측됩니다.


공주댁은 서인숙과 한승재의 파멸을 재촉하는 주요 인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주댁이 홍여사 살인에 대한 결정적인 제보를 하였기에, 김미순과 닥터유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복수를 할 수 있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17회에서 공주댁에게 위기가 찾아 올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한승재가 공주댁을 의심하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상 공주댁의 행보에 관심이 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9403804&contain=&keyword=
두번재 이미지  http://www.artsnews.co.kr/news/93085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장인정신은 참 중요하다. 이 정신은 '단순히 만들어지는 것' 인 결과에만 전적으로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자세, 만드는 과정등을 존중하는 정신이다. 특히 만드는 자세는 대단히 중요하다, 신명을 다한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자세 속에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음식을 결과물로만 본다면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는 유리되고 만다. 그러나 음식을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그기에 깃든 정성과 재료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면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는 존재로 일체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음식이 사람의 몸을 아프게 한다거나 망친다면 마음과 유리된 음식일 가능성이 커진다. 마음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불순한 재료, 탐욕, 이기주의가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불량식품이라는 것이 그렇다. 음식이 단순히 결과물로만 여겨진다면 음식은 인간에게 유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음식을 마음이 깃든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먹는 사람들에게 음식이 갖는 의미는 참으로 커지는 것이다. 그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마음을 먹는 것이고, 정성을 음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정성과 마음의 맛을 음미하고 자신의 내면 속으로 그것을 넣는 것이다. 만든 사람의 마음을 맛본다는 것은 어떠한 소통의 경지보다도 가장 높은 단계의 소통이지 싶다. 따라서 음식은 유용성이나 실용성의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때로 언어보다도 더 진실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더 깊은 소통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63023113578611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은 참 깊은 의미를 나타낸다. <신데렐라언니>에서 대성도가의 술이 익어가는 과정이 젊은 주인공들이 성숙하게 발전하는 모습과 대비하여 생각해 보았듯이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의 의미가 또한 그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빵에 깃든 정성과 시간과 재료의 투입과 혼합처럼 결국 탁구의 정신에도 그러한 것들이 깃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팔봉 선생이 탁구와 하는 대화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성껏 만든 빵을 굽기만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의 말 말이다. 이러한 팔봉 선생의 말은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의성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은 뭐라해도 정신적인 성숙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빵이 만들어 지기까지의 과정을 단 한 마디로 언급한다면 바로 성숙한 변화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고 팔봉선생의 말을 운명적이라거나 종교적인 초월 같은 걸로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팔봉선생의 말은 장인의식에 가깝다고 본다. 무슨 선승의 화두같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히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말이다. 빵이 익을 동안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듯이 그렇게 인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운명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탁구가 처한 현실은 성숙한 변화를 위한 밀가루 반죽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이 반죽을 어떻게 잘 익은 빵으로 변화 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탁구의 현실 인식에 대한 비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현실을 초월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잘 익은 빵으로의 변화인 것이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다.


<신언니> 대성도가의 구대성이 그랬듯이, 팔봉빵집의 팔봉 선생은 정신적인 지주로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탁구에게는 더욱 그러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은조에게 구대성이 그러한 존재였던 것 처럼 말이다.



첫번째 이미지: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800&g_serial=502408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장인정신은 참 중요하다. 이 정신은 '단순히 만들어지는 것' 인 결과에만 전적으로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자세, 만드는 과정등을 존중하는 정신이다. 특히 만드는 자세는 대단히 중요하다, 신명을 다한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자세 속에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음식을 결과물로만 본다면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는 유리되고 만다. 그러나 음식을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그기에 깃든 정성과 재료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면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는 존재로 일체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음식이 사람의 몸을 아프게 한다거나 망친다면 마음과 유리된 음식일 가능성이 커진다. 마음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불순한 재료, 탐욕, 이기주의가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불량식품이라는 것이 그렇다. 음식이 단순히 결과물로만 여겨진다면 음식은 인간에게 유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음식을 마음이 깃든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먹는 사람들에게 음식이 갖는 의미는 참으로 커지는 것이다. 그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마음을 먹는 것이고, 정성을 음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정성과 마음의 맛을 음미하고 자신의 내면 속으로 그것을 넣는 것이다. 만든 사람의 마음을 맛본다는 것은 어떠한 소통의 경지보다도 가장 높은 단계의 소통이지 싶다. 따라서 음식은 유용성이나 실용성의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때로 언어보다도 더 진실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더 깊은 소통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63023113578611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은 참 깊은 의미를 나타낸다. <신데렐라언니>에서 대성도가의 술이 익어가는 과정이 젊은 주인공들이 성숙하게 발전하는 모습과 대비하여 생각해 보았듯이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의 의미가 또한 그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빵에 깃든 정성과 시간과 재료의 투입과 혼합처럼 결국 탁구의 정신에도 그러한 것들이 깃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팔봉 선생이 탁구와 하는 대화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성껏 만든 빵을 굽기만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의 말 말이다. 이러한 팔봉 선생의 말은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의성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은 뭐라해도 정신적인 성숙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빵이 만들어 지기까지의 과정을 단 한 마디로 언급한다면 바로 성숙한 변화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고 팔봉선생의 말을 운명적이라거나 종교적인 초월 같은 걸로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팔봉선생의 말은 장인의식에 가깝다고 본다. 무슨 선승의 화두같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히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말이다. 빵이 익을 동안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듯이 그렇게 인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운명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탁구가 처한 현실은 성숙한 변화를 위한 밀가루 반죽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이 반죽을 어떻게 잘 익은 빵으로 변화 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탁구의 현실 인식에 대한 비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현실을 초월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잘 익은 빵으로의 변화인 것이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다.


<신언니> 대성도가의 구대성이 그랬듯이, 팔봉빵집의 팔봉 선생은 정신적인 지주로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탁구에게는 더욱 그러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은조에게 구대성이 그러한 존재였던 것 처럼 말이다.



첫번째 이미지: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800&g_serial=502408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6회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동시에 호기심을 자아내는 부분은 탁구의 친모인 김미순의 행방불명입니다. 그녀를 납치한 괴한으로부터 도주하다가 절벽에서 강으로 떨어진 김미순의 모습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지만, 생사여부가 확실하게 드러난 게 아니어서 그 귀추가 주목이 됩니다. 김미순은 살아있을지,죽을 을지 참 궁금합니다.


김미순의 납치는 구일중이 사주한 것이 분명합니다. 참 의외의 일입니다. 구일중이 김미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납치를 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드러난 바가 없습니다. 김미순을 납치하기 이전에 구일중은 탁구에게 호적에 올리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과연 구일중의 이러한 말이 김미순 납치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구일중이 참 잔인하게도 보입니다만, 그 당시의 인습으로 보면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구일중이 김미순을 납치하려고한 의도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신유경의 아버지가 김미순을 겁탈하려는 순간 괴한이 그녀를 구해주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가요, 아니면 구일중이 한승재의 음모를 이미 눈치 채고 내린 조치일까요? 이러한 추측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승재는 신유경의 아버지를 사주하여 김미순을 겁탈하게 하고 자신의 여자로 만들라고 합니다. 아직은 구일중이 왜 김미순을 납치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김미순을 한승재가 사주한 괴한으로부터 보호하거나 구해주려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괴한이 김미순의 손목을 끈으로 묶고 짚차에 태워 어디론가 가는 것으로 판단해보면 과연 구일중이 김미순을 진정으로 구해주려고 했는가 하는 확신은 서지가 않습니다. 단순히 김미순을 구해주려고 했다면 그렇게 손을 묶을 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괴한의 말이 마지막이란 여운까지 남깁니다. "아줌마 더 이상 아줌마 아들 못봐."


만약 구일중이 김탁구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빵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이 진실이라면 김미순을 그렇게 거칠게 다룰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은밀한 방법이 아니라 떳떳하고 공개적으로 탁구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김미순도 그렇게 대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김미순을 구하기는 했지만 납치는 마찬가지 인 것입니다. 아무튼 구일중이 괴한을 사주하여 김미순을 납치하려고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구일중이 지독한 남아선호에 입각하여 탁구만을 필요로 하고 김미순은 버려야 할 존재로 생각했다면 충분히 말로서 타협을 한다거나 다른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느닺없이 괴한을 사주하여 김미순을 납치하는 범죄를 저지를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이전에 구일중이 김미순의 집에 들러 국수를 먹는 장면은 구일중이 김미순에 대한 호감, 더 나아가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판단해 보더라도 김미순을 납치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구일중이 왜 김미순을 납치하려고 했는지 그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홍여사의 죽음은 탁구에게는 비극으로 다가온다. 구일중의 저택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의 장막에 쳐진 구일중이 탁구를 구해낼 수도 없다. 한승재나 서인숙에게는 탁구의 존재만큼 불길한 존재도 없다. 악녀 서인숙과 악한 한승재가 탁구를 가만히 내버려 둘리도 만무하다. 홍여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패륜적인 짓을 하고도 그들의 눈에는 오직 구마준의 미래 밖에는 없다. 특히 한승재는 양심의 가책은 커녕 오히려 탁구 의 친모인 김미순을 신유경의 아버지를 사주하여 겁탈하게 한다. 겁탈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한승재나 서인숙의 악행은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잠깐 옆길로 새어서 한승재의 사주를 받은 신유경의 주정뱅이 아버지가 김미순을 겁탈하려는 순간에 나타나 김미순을 구해준 괴청년은 구일중이 보낸 폭력배로 보이는데, 이 괴청년이 김미순을 짚차에 태워 데리고 가는 과정에서 김미순이 차에서 내려 도망을 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바다로 빠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강한 흥미를 자아내는데 왜 구일중이 괴청년을 김미순에게 보냈는지, 그리고 바다로 떨어진 김미순이 살아있는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김미순이 살아있기만을 바란다. 탁구는 유경으로부터 괴청년의 팔뚝에 바람개비 문신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이것이 탁구에게는 엄마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된다.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006242054123&sec_id=540101



이런 와중에서 탁구는 한승재로부터 제의를 받게 되는데,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여기(구일중의 저택)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모략으로 다만 엄마를 만나게 해준다는 핑계로 탁구를 밀항시키려는 것이었다. 결국 탁구는 한승재의 말대로 하게 되고 차를 타고 간 곳은 어느 부두이다. 밀항선원들로 추측이 되는 남자들에게 밀항선에 태워 영구히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탁구는 달아나게 되고 그 와중에 팔봉 선생과 조우하게 된다. 팔봉 선생과의 조우는 탁구에게는 참 중요한 순간이다. 팔봉 선생은 제빵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구일중의 스승이기도 하다. 후일 탁구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12년이란 세월이 흐른다. 청년 김탁구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 12년 세월 동안 탁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플래쉬백을 통해 앞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무엇보다는 탁구는 자신의 엄마를 찾는 노력을 엄청 했을 것이다.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았을 지도 모른다. 윤시윤이 분한 김탁구가 최초로 등장하는 장면은 시장통에서 횡포를 부리는 건달들과의 싸움 장면인데 건달들을 혼낸 탁구가 건달들의 소매를 걷어 올리며 문신을 확인하는 모습은 엄마를 찾으려는 노력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파란 만장했던 어린 시절의 탁구는 이제 청년 김탁구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에서 일어날 일들이 너무나 많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자신의 엄마 김미순이 한 말 처럼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 말을 그 스스로 확인시켜주면 좋겠다. 그러나 정말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이기게 돼 있는 것이 맞을까?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