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준이 서태조란 가명으로 팔봉 빵집으로 들어온 동기는 순전히 자신의 아버지 구일중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참 불순한 동기입니다. 팔봉 선생의 인증서를 구일중으로부터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빵을 만드는 장인정신과는 거리가 먼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팔봉선생과 봉빵을 구일중의 인정을 받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순한 동기이다 보니 2차 경합에서 실패한 것이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일중의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되니 말입니다.




따라서 2차 경합에서 자신을 탈락시킨 팔봉 선생은 구일중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을 방해하는 늙은이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탁구를 거지새끼 취급하는 그런 태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팔봉 선생마저도 진정한 스승으로 여기기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는 수단으로 간주한 것이기에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2차 경합을 통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장인이 갖추어야 할 자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장인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기술을 이용하는 마음 자세도 중요한 것입니다. 경합과 관계없이 구마준은 이러한 장인정신에 대해서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준은 경합에 참가할 만한 자격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셈입니다.  


2차 경합을 전후로 구마준은 춘배(춘배는 팔봉과는 호형호제의 관계로 봉빵을 만드는 데 발효점을 찾는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후 빵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갈라서게 됩니다. 이 가치관의 차이라는 것은 인공 발효물을 섞어서는 안된다는 팔봉의 의견과는 달리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인공 발효물질을 섞어 빵을 빨리 대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춘배의 가치관의 차이를 뜻합니다)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데요, 이 '운명적'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구마준이 완전히 악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구마준은 어느 정도 동정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주저하고 망설이고 흔들리는 모습, 즉 양심의 반경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춘배와의 만남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인간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춘배와의 만나 거래를 하는 하는 구마준의 모습은 영락없는 악한의 모습입니다. 결국 구마준은 팔봉 선생을 떠납니다. 아니 버볐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경합에 탈락한 구마준에게 팔봉 선생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는 것이지요. 팔봉 선생은 누구보다도 구마준을 이해하고 배려했습니다. 빵 기술도 중요하지만 팔봉 선생이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이 더욱 가치가 있었습니다. 경합을 통해서 단순한 제빵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들을 스스로 깨닫게도 했습니다. 팔봉 선생뿐 아니라 팔봉가의 사람들이 다 인간적으로 구마준을 대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구마준은 팔봉선생의 은혜를 배신으로 되갚았습니다.


팔봉 선생은 구일중의 스승입니다. 팔봉선생을 배신하고 떠났다는 것은 구마준이 구일중으로부터 인정받기 또한 포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일중의 인정을 포기한다는 것은 구마준에게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구마준은 팔봉 선생, 구일중, 김탁구를 떠나서 그 대척점에 있는 춘배를 선택한 것이기에 전혀 이질적인 삶을 살아가리라 추측되니다.


이것을 좀 도식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구마준은 필봉선생의 계보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또한 구일중의 후보계 자리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구마준의 선택은 서인숙과 한승재에게도 치명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마준을 위해 지금까지 나쁜 일들을 행해왔는데 마준이 거성식품의 후계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삶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치명적인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구마준이 팔봉가를 떠나 춘배와 한 배를 탔다는 것은 팔봉의 계보와 구일중의 거성식품 후계자리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일중으로부터 인정을 받기위해서는 팔봉 선생의 인증이 필요한데 그것을 포기했으니까 말입니다. 제빵에 관한한 이제 구마준은 춘배와 같은 아웃사이드의 존재가 될 가능성이 무척 커졌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마준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대체 왜 구마준이 이토록 악한이 되어가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인간의 심리와 정신 상태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구마준의 입장에서는 팔봉가의 사람들의 관심과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구마준에게는 자신의 출생 비밀과 자신의 아버지 구일중(사실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지만)의 무관심이 정신적인 트라우마으로 작용하고 있고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KBS 드라마 사이트

그러나 이러한 트라우마에 대한 구마준의 행동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우선, 그의 출생의 비밀과 관련해서는 자신의 어머니 서인숙과 한승재(구마준의 실제 아버지)에 대해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반항이 깊어지면서 자신의 불행(마준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을 잉태한 존재로 복수를 하고자 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부모이기에 한계는 있겠지만 말이다.


둘째는, 자신에 대한 구일중의 무관심의 경우인데, 이 무관심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자리 잡으면서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인데 이상하게도 구일중에 대해서는 어떠한 증오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구일중이 관심을 보이는 대상인 김탁구에게 그 트라우마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구마준에게 자신의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존재는 탁구보다는 구일중에게 있다고 할 수있는 데 말이다. 구마준의 증오가 구일중에게로 향해야 하는 것이 보다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 증오가 탁구에게만으로 향한다는 것은 트라우마라고 하기 보다는 구마준의 성격적인 결함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탁구를 파멸시켜서 구일중의 관심과 인정을 받겠다는 것은 구일중의 진의와도 거리가 먼 행동이다.
 

구마준의 이러한 행동은 트라우마라기 보다는 서인숙의 과잉보호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구마준은 어린 시절부터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이 자랐다. 서인숙의 사랑은 물론이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나 빠진 것이 있다면 구일중의 관심 정도이다. 이것은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는 흔히 일어나던 일이었다. 비록 구일중이 애정 표현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마준에게 두드러지게 편견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두 딸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KBS 드라마 사이트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보자면 탁구도 만만치가 않다. 또 성장하면서 겪은 삶은 너무나도 힘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탁구가 밑바닥 삶에서 나뒹굴고 있을 때 마준은 부러울 것 없이 생활했다. 그리고 일본 유학을 통해 지식도 쌓았다. 서인숙이 마준이로부터 여자들을 많이 떼놓았다는 것으로 보아서 여성 편력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구마준이 구일중의 관심에 극단적으로 집착한다는 것은 가진자의 탐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구일중이 탁구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그 관심의 대상인 탁구를 이기려 한다거나 파멸시키려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지 못한 거성 식품 귀공자의 거만한 태도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판단해 보면 구일중의 관심이나 인정이란 것은 구마준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그의 진정한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는 출생의 비밀 하나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증오를 키웠다고 하면 참 합리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오직 탁구에게만 증오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어 진다. 그기다 팔봉 선생까지 파멸시키기 위해 춘배와 손잡는 행동은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가 아닌 구일중의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는 탐욕에 불과한 것이다. 탐욕적인 인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서인숙과는 달리 구마준은 거성 식품의 경영에 그다지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지도 않다.


아무튼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현재의 구마준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거나 변호하는 것은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마준이 진정으로 구일중의 인정을 받고 싶다면 탁구를 이기거나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영수업을 받거나, 거성 식품에서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드라마식으로)좋은 방법이지 싶다. 또 하나 추가하자면 복수보다는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2차 경합이 끝이 났습니다. 양미순은 쌀 케잌을 만들었습니다. 김탁구는 이스트를 대신해서 여러 가지 발효종을 가지고 빵을 만들었습니다만, 자신이 실패를 인정할 정도로 제대로 된 빵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단지 탁구는 발효종으로 사용한 것들 중에서 김치와 요거트는 다루기가 아주 까다롭다는 사실을 발견했구요, 청국장은 가능성이 있는 발효종이라 말합니다. 서태조(이하 구마준이라 표기)는 자신이 만든 빵이 없습니다. 사실 마준은 춘배라는 작자가 전해준 주종빵의 레시피를 그대로 이용해서 빵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마준이 독창적으로 만든 빵은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구마준은 탁구가 이스트 없이 빵 만드는 것에 실패했다고 솔직히 자인한 것과는 달리 주종빵을 자신이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 사람의 빵을 팔봉 선생은 시식하면서 평가를 내립니다. 이들에게는 참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입니다. 양미순의 쌀케잌은 통과를 시킵니다. 탁구와 마준의 빵을 차례로 맛본 팔봉 선생은 탁구의 빵은 통과 마준의 빵은 탈락을 선언합니다.


팔봉 선생의 평가는 주관적입니다. 그러나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이라는 관점에서, 이 심사 결과의 가장 중요한 채점 포인트는 '재미' 에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양미순의 쌀케잌은 누가 보아도 재미있습니다. 밀가루로 만들어야할 케잌을 쌀로 만들었으니 파격적이고 재미있습니다. 쌀과 크림의 결합을 상상하기는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밀가루 대용이라면 일반적으로 호밀이나 수수, 보리 같은 곡물을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탁구는 자신이 스스로 실패를 인정했지만 김치, 요거트, 청국장과 같은 발효종에 대한 재미있는 관찰을 하였습니다. 빵과 김치, 빵과 청국장의 조합 참 재미있습니다. 비록 결과는 실패를 했지만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탁구가 한 생각들은 기발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탁구는 실패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이나 억울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유경의 문제도 경합 하루 전날 그녀의 행복을 빌어줌으로서 극복이 되었구요, 마준이 설빙초로 자신의 후각과 미각을 없애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동생을 용서하듯 그렇게 잊으려 합니다. 즉, 이스트 없이 빵 제조 실패의 결과를 자신에게로만 돌릴 뿐 어느 누구를 탓하지 않습니다. 가진자들의 권위의식이나 배운자들의 거만함에 비하면 탁구의 진실함은 너무 바보같기만 합니다. 하지만 정작 바보는 자진자들이요, 배운자들이 아닐까 합니다. 청국장과 빵의 조합처럼이나 탁구와 이 삭막한 현실의 조합은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39124


이렇게 타인을 배려하는 탁구와는 달리 구마준은 탁구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합니다. 구마준은 복수와 질투의 감정으로 빵을 만듭니다. 설빙초로 탁구의 미각, 후각을 잃게 합니다. 그러나 마준 또한 이스트가 없이 빵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낮에 팔봉 빵집에 돌멩이를 던져 소동을 일으켰던 정체불명의 춘배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춘배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빵의 레시피를 마준에게 전해줍니다.

결국 마준에게 2차 경합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춘배의 대리자적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합니다. 재미있다는 말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빵을 만들고 맙니다. 마준이 엇나가고 성격이 비뚤어지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진 그가 가진 탐욕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인데요, 2차 경합에서 만든 빵은 이것들의 결정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빵을 만드는 과정은 복수와 질투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니 이 빵에서 느껴지는 것은 재미가 아니라 1차 경합때 보다도 더큰 '차가움' '살기' 가 응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팔봉선생이 느끼는 것은 정말 참혹할 정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살기는 참으로 참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구마준은 새로운 운명의 갈림길에 서지 않을까 싶네요. 


덧붙여, 춘배의 등장으로 갈등라인이 더 추가가 되면서 드라마가 더욱 재미있어지고 있습니다. 이 춘배의 정체는 아직 완전히 드러난 상태는 아니나 그가 던진 돌멩이를 산 한지에 적힌 '거자필반(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는 글귀나 자신이 마준에게 봉빵을 만든 주인이라고 하는 점이나 발효일지의 두번째 페이지에 적인 '팔봉, 춘배' 라는 이름으로 보아서 팔봉 선생과 많은 갈등을 일어키게 될 인물이 틀림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전개가 참 기대가 됩니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2차 경합이 끝이 났습니다. 양미순은 쌀 케잌을 만들었습니다. 김탁구는 이스트를 대신해서 여러 가지 발효종을 가지고 빵을 만들었습니다만, 자신이 실패를 인정할 정도로 제대로 된 빵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단지 탁구는 발효종으로 사용한 것들 중에서 김치와 요거트는 다루기가 아주 까다롭다는 사실을 발견했구요, 청국장은 가능성이 있는 발효종이라 말합니다. 서태조(이하 구마준이라 표기)는 자신이 만든 빵이 없습니다. 사실 마준은 춘배라는 작자가 전해준 주종빵의 레시피를 그대로 이용해서 빵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마준이 독창적으로 만든 빵은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구마준은 탁구가 이스트 없이 빵 만드는 것에 실패했다고 솔직히 자인한 것과는 달리 주종빵을 자신이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 사람의 빵을 팔봉 선생은 시식하면서 평가를 내립니다. 이들에게는 참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입니다. 양미순의 쌀케잌은 통과를 시킵니다. 탁구와 마준의 빵을 차례로 맛본 팔봉 선생은 탁구의 빵은 통과 마준의 빵은 탈락을 선언합니다.


팔봉 선생의 평가는 주관적입니다. 그러나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이라는 관점에서, 이 심사 결과의 가장 중요한 채점 포인트는 '재미' 에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양미순의 쌀케잌은 누가 보아도 재미있습니다. 밀가루로 만들어야할 케잌을 쌀로 만들었으니 파격적이고 재미있습니다. 쌀과 크림의 결합을 상상하기는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밀가루 대용이라면 일반적으로 호밀이나 수수, 보리 같은 곡물을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탁구는 자신이 스스로 실패를 인정했지만 김치, 요거트, 청국장과 같은 발효종에 대한 재미있는 관찰을 하였습니다. 빵과 김치, 빵과 청국장의 조합 참 재미있습니다. 비록 결과는 실패를 했지만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탁구가 한 생각들은 기발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탁구는 실패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이나 억울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유경의 문제도 경합 하루 전날 그녀의 행복을 빌어줌으로서 극복이 되었구요, 마준이 설빙초로 자신의 후각과 미각을 없애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동생을 용서하듯 그렇게 잊으려 합니다. 즉, 이스트 없이 빵 제조 실패의 결과를 자신에게로만 돌릴 뿐 어느 누구를 탓하지 않습니다. 가진자들의 권위의식이나 배운자들의 거만함에 비하면 탁구의 진실함은 너무 바보같기만 합니다. 하지만 정작 바보는 자진자들이요, 배운자들이 아닐까 합니다. 청국장과 빵의 조합처럼이나 탁구와 이 삭막한 현실의 조합은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39124


이렇게 타인을 배려하는 탁구와는 달리 구마준은 탁구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합니다. 구마준은 복수와 질투의 감정으로 빵을 만듭니다. 설빙초로 탁구의 미각, 후각을 잃게 합니다. 그러나 마준 또한 이스트가 없이 빵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낮에 팔봉 빵집에 돌멩이를 던져 소동을 일으켰던 정체불명의 춘배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춘배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빵의 레시피를 마준에게 전해줍니다.

결국 마준에게 2차 경합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춘배의 대리자적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합니다. 재미있다는 말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빵을 만들고 맙니다. 마준이 엇나가고 성격이 비뚤어지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진 그가 가진 탐욕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인데요, 2차 경합에서 만든 빵은 이것들의 결정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빵을 만드는 과정은 복수와 질투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니 이 빵에서 느껴지는 것은 재미가 아니라 1차 경합때 보다도 더큰 '차가움' '살기' 가 응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팔봉선생이 느끼는 것은 정말 참혹할 정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살기는 참으로 참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덧붙여, 춘배의 등장으로 갈등라인이 더 추가가 되면서 드라마가 더욱 재미있어지고 있습니다. 이 춘배의 정체는 아직 완전히 드러난 상태는 아니나 그가 던진 돌멩이를 산 한지에 적힌 '거자필반(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는 글귀나 자신이 마준에게 봉빵을 만든 주인이라고 하는 점이나 발효일지의 두번째 페이지에 적인 '팔봉, 춘배' 라는 이름으로 보아서 팔봉 선생과 많은 갈등을 일어키게 될 인물이 틀림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전개가 참 기대가 됩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마준은 발효종을 만들기 위해 보던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독초와 그 효능을 읽게 됩니다. 마준의 눈에 우연히 강렬하게 들어온 구절은 미각과 후각의 심각한 손상을 설명한 부분입니다. 마준은 이 독초를 준비해서 탁구에게 해를 입히려고 합니다. 마음 속에 탁구에 대한 응어리가 그렇게도 큰 걸까요. 이런 위험한 짓을 꼭 해야만 할 정도로 탁구로 인해 그 자신이 고통받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탁구가 거지새끼처럼 싫을까요? 
  

마준은 가족 식사에서 돌아와 자신의 책상에 올려져 있는 카세트를 발견합니다. 이 카세트는 탁구가 실수로 부수어 놓은 것 대신에 구입해서 올려놓은 것입니다. 문 밖에 있던 미순은 마준에게 “거금을 들여 탁구가 사다놓은 겁니다. 자기 통장에 있는 거금 85,000원을 들여서 새로 사온 거라구요. 태조씨를 위해서. 그 돈이 무슨 돈인지는 제가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죠, 태조씨도.“ 바로 그 돈은 탁구가 엄마 미순을 찾기 위해 광고비로 저축하고 있는 돈입니다. 그리고 미순은 독백처럼 말합니다. “바보같으니, 자기가 뭘 뺏기는 줄도 모르고 피 같은 돈 들여 저런 거나 사러다니구. 세상에 아마 그런 바보 같은 놈 또 없을 거에요.”



마준은 이 카세트를 보면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전에 팔봉가에 싸움을 했을 때 탁구와 마준이 벌로 3일동안 인가 천으로 손목을 함께 묶고 있어야 했던 적이 있었죠. 그 때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세트를 보며 느끼는 마준의 감정이 말입니다. 카세트에 담긴 것은 탁구의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그게 마준이에게 은근하게 전해진 것이죠. 마준은 ‘나는 말이다, 마준아. 너랑 같이 여기서 빵을 만드는 것이 좋아, 즐거워.‘ 라는 탁구의 말도 떠올려 봅니다. 마준은 정말 전형적인 햄릿형 인간입니다.


한편 마준이 초대한 식사에 참석했다 충격을 받고 팔봉빵집으로 돌아온 탁구는 제빵실에서 여전히 힘들게 경합 준비를 합니다. 참 힘들다고 혼자 팔봉 선생에게 하소연도 해봅니다. 그리고 제빵실의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아침 점호에 양미순이 쓰러진 탁구를 탁구를 발견하고 탁구는 방으로 옮겨집니다.


독초를 감기약으로 오인하고 오영자(미순의 모)와 양미순이 먹이게 되는데 이를 알게 된 구마준이 이를 말리러 가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미 독초는 탁구의 입속으로 넣어진 상태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마준이 쓰러져 주저앉으며 20회가 끝이 납니다.



20회의 이 일련의 과정이 참으로 박진감있게 펼쳐져서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감정이 있다면 마준의 변화입니다. 철저하게 빗나가려고만 하는 마준의 마음 한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변화의 싹을 감지하게 됩니다. 이 변화의 싹이 과연 꽃을 피울지 아니면 말라 죽어버릴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희망사항으로는 마준이 좀 변화하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마준을 보면 고전적인 의미에서 소설의 주인공으로 딱 적합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구마준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지 싶습니다. 주인공은 우유부단하고 내적결합이 있으며 그 결과로 파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주인공이 햄릿이나 오델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실존주의 소설의 대부분의 주인공이 또 그렇구요. 이들은 갈등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죄와벌>의 라스콜리니코프도 그런 유형에 속합니다. 영웅에 대한 예찬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만 노파를 죽이고 난 이후의 그는 그야말로 약하디 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문학이란 것이 비극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삶을 통찰한다고 할 때 본질적로 인간의 유한성, 죽음, 고독 등과 맞닥뜨리기 때문입니다. 웃음, 즐거움, 쾌락등은 본질을 감싸고 있는 현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구요. 아무튼  마준을 이런 주인공들에게 비유하기는 좀 그렇긴 하지만 그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유부단하게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주인공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아직 마준은 변화의 과정에 들어서 있지는 않습니다. '변화'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약간 논외의 언급이지만 필자는 마준의 변화의 중심에 팔봉 선생과 탁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팔봉 선생과 팔봉 빵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곳은 마준의 깊은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 감동의 공간이고 성찰의 공간이며 따뜻한 인간 관계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마준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 얼간이거나 고집센 천재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마준의 변화를 원하는 것은 제발 불행한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kbs.co.kr/drama/takku/media/photo/index.html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의 정체에 대해 두 번 포스트(제빵왕 김탁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의 정체는?김탁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의 정체는?[2])를 올렸습니다. 이 두 번의 포스트들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재미있는 빵의 정체가 <중요한 것이 빠진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재미있게 빵을 만들때 재미있는 빵이 탄생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론 이스트와 밀가루입니다. 물론 이스트와 밀가루는 좀 더 추상적인 다른 것으로 확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20회를 보면서 불현듯 재미있는 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탁구는 너무나도 재미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탁구는 마준이 초대한 식사 자리에서 현실에 대한 슬픈 마음으로 팔봉빵집의 제빵실로 돌아옵니다. 그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 이라는 2차 경합의 과제가 적힌 족자를 보면서 말합니다. 


   "근데 하나도 재미가 없네요. 어쩌죠, 스승님."       


지금 가장 삶이 재미없는 존재는 누구일까요? 유경일까요? 마준일까요? 필자는 누구보다도 바로 김탁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마준 보다도, 신유경보다도 김탁구야 말로 삶이 참 재미없을 것입니다. 사실 신유경도 구마준도 내적 갈등이나 고통이 심합니다. 그러나 자존심과 자격지심이 내적 강등과 고통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치스러운 갈등이요 고뇌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성격상의 결함' 이나 '어린 시절의 상처' 가 그 갈등과 고통의 실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탁구의 경우는 다릅니다. 성격상의 결함이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닙니다. 탁구는 모든 어려운 상황을 단순하게 받아들입니다. 운명이라는 것을 자신의 내면속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외부로 떼어놓으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실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진실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탁구가 자신의 처지에 대해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참으로 대견스러울 정도입니다. 오히려 언제나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서인숙, 한승재는 물론이고, 조진구, 고재복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유경과 마준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 줄 것입니다. 탁구를 보면 긍정과 진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 보다는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정도는 아니지만 내버려 두어라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팔봉선생이 한 말 그대로입니다. 정확치는 않지만 "빵이 숙성할 때가지 그냥 지켜보면 된다." 는 말 말입니다.  




아무튼 현재의 탁구의 상황은 힘듭니다. 삶이 재미가 없다는 말과 재미있는 빵이란 말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빵' 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탁구는 제빵실에서 밤을 새우고 고열에 제빵실 바닥으로 쓰러진 듯 합니다. 아침에 제빵실에서 모두 점호를 하는 과정에서 양미순이 쓰러져 있는 탁구를 발견합니다. 엄청난 고열에 몸살입니다. 경합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마준과 유경, 서인숙을 만나면서 받았던 충격이 더해서 쓰러진 것 같았습니다. 정말 탁구의 입장에서 첫사랑 유경을 잃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아픔인 것입니다. 그기다 자신의 동생인 마준에게 첫사랑을 빼앗긴다는 것도 너무나 큰 아픔입니다. 그런데 빵이 숙성하듯이 탁구는 잠시 아픔 앓이를 하다 훌훌 털고 일어날 것입니다. 복수나 자기 의지를 무리하게 강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탁구의 힘입니다. 진실의 힘입니다.  


사실 이렇게 우울한 시기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을 만들기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과제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탁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어울립니다. 탁구에게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 만들기' 는 깊은 슬픔과 아픔과 우울과 고뇌를 극복하고 잊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탁구는 몇 일간 자신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운명을 조용히 받아들이고자 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빵은 바로 이 운명을 진실하게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인  아닐까 합니다. 이스트나 밀가루가 빠졌지만 빵이 만들어 지듯, 신유경이 빠진 김탁구도 보다 성숙한 존재가 되리라 믿습니다. 삶이 운명이 참 재미있다고 훌훌 털고 일어날 탁구가 바로 그 재미있는 빵의 참 맛이 아닐까요? 



이미지 출처: http://www.kbs.co.kr/drama/takku/media/photo/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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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애증의 관계인 구마준은 예상과는 달리 참 많은 동정을 받고 있습니다. 탁구의 한 켠에서 마치 탁구의 그림자처럼 슬픈 눈동자, 분노의 눈동자를 보여주는 구마준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고 아량을 베풀고자 하는 듯도 합니다. 구마준은 구일중과 서인숙의 애정 없는 결혼생활, 서인숙과 한승재의 불륜의 희생자로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즉, 마준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트라우마야말로 현재의 구마준의 내외적인 심리상태와 언행을 특징짓은 근원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근원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구마준의 트라우마는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정적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으로 구마준을 관찰해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아무리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깊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사이코패스의 경우 꼭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트라우마 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살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시절의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성인이 된 이후의 성격과 행동을 전적으로 규제한다면 환경도, 교육도, 자기 성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고 보면 구마준이 팔봉선생의 문하에 들어온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회의가 들 뿐입니다. 팔봉빵집에서 무엇을 배울지도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팔봉 선생의 문하에서 2년 동안을 보내면서도 전혀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구마준에게는 도대체가 교육이 필요 없는 것일까요. 과연 이런 인간을 우리는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저 구일중을 원망하면서 서인숙과 한승재를 저주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또한 못난 자격지심에 김탁구에 대한 질투를 평생 멍에로 살아야 할까요? 신유경에 하는 악마같은 복수의 유혹이야 말로 참으로 못난 짓입니다.


구마준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그 트라우마를 깨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일중이 그에게 관심을 보여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한승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구일중의 관심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은 또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자기 성찰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인간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개척하지 못한데 마치 이유기를 두려워하는 못난 아이처럼 구일중에게 정신적인 탯줄을 이으려고만 합니다.




자신의 누이들인 구자림과 구자경을 보십시오. 그녀들도 아버지 구일중으로부터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남아선호로 구마준에 비해서 홀대를 받아왔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자경의 경우는 경영 수업을 받고 싶어 하며 직접 경영을 해보려는 야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인숙에게는 오직 마준이 밖에 없습니다. 구일중이 구마준만을 특히 미워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림과 자경은 구마준처럼 자격지심에 휩싸여 김탁구를 증오하며 경쟁심만을 고취시키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 부러울 것이 없이 자라온 그들이 아닙니까? 구마준은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구마준에게는 거성식품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데 구일중이 관심을 갖는 탁구의 존재가 위기감으로 다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구마준은 김탁구보다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 구일중과 어머니 서인숙이 있습니다. 또 한승재도 있습니다


이런 구마준이 왜 자신의 아버지만 목숨을 걸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도 유치하고 유아적인 행동만을 보입니다. 인정은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고 진실을 내보이면 자연스럽게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진실이 와닿는 것입니다. 14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저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살아왔다는 것은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청년의 행동이 아닙니다. 이러니 그 화살이 구일중에게로 쏠리는 것입니다.


구마준, 지금이라도 자신이 스스로 옭아매어 온 틀을 좀 깨고 나오면 좋겠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유치하고 유아적인 정신 상태에서 아버지 구일중만 원망하고 서인숙과 한승재를 증오하며, 김탁구를 질투하며 그렇게 살아야 할까요? 구마준이 깨어나게 되면 참 여럿 사람들 살리게 될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아버지 구일중을 포함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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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에서 탁구와 상봉한 구일중은 귀가하여 거실에서 마주친 서인숙에게 “당신이 저 번에 제안한 조건 말이요, 최후 통첩이라는 거, 거절하겠소. 당신이 어떤 반대를 하던 난 그 아이를 내 인생에서 지우지 않을 거야. 그러니 당신이 포기를 해 아니면 받아들이던가.” 하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탁구와 관련해서 모든 것을 숨기고 있던 서인숙에게 그녀가 한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립니다. 구일중은 한승재와의 대화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이사회에 마준과 함께 탁구도 불러들일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속인 사실에 대해서 “난 지금 당장 자네를 내쫒아도 분이 풀리지 않을게야.”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심하게 한승재를 질책합니다. 탁구가 팔봉빵집에 있다는 사실을 왜 숨겼는지에 대한 이유조차 물어 보지도 않는 걸 보면 한승재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렇게 구일중은 서인숙, 한승재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고 말았습니다. 마치 탁구와 마준을 대리해서 대리전을 치루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식이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구일중이나 서인숙 둘 다에게 비판의 여지가 많습니다.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로 능력이나 자질은 따지지도 않고 거성의 후계 자리에 앉히려는 모습은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해있는 혈연, 지연, 학연에 대한 지나친 맹신과도 일치합니다.


탁구의 경우 학교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렸을 적부터 사회를 떠돌면서 갖은 고생을 했습니다. 이 세월 동안 탁구가 체험한 삶이 참 가치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탁구의 성격이나 언행이 참 예의 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가 12년 동안이나 어머니 김미순을 찾아다닌 것으로 판단해보면 참으로 효자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탁구는 어렸을 때부터 참 착하고 의리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성격은 회사를 경영하는 능력과 지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구일중이 탁구에게 맹목적으로 회사를 맡기려는 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마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데 사실 기업을 경영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탁구보다는 구마준이 훨씬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일중의 신뢰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거성가를 어렸을 때 떠난 탁구보다는 그래도 거성가에서 남아있던 구마준이 여러모로 능력과 자질을 갖추는데 조건이 좋았음이 분명합니다.


이미지 출처: KBS


아무튼 구일중은 서인숙과 한승재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입니다. 수면 아래로 잠복되어 있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가장 큰 부분에서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거성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충돌을 하니 말입니다.


서인숙에게 탁구의 부상은 과거 홍여사의 죽음을 포함해서 자신과 한승재가 꾸미고 저질러온 일들을 수포로 만드는 것입니다. 서인숙과 한승재는구마준만을 위해 헌신한 시간이었는데 탁구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은 참 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오직 구마준을 거성가의 후계자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탁구를 지지하는 구일중은 아무리 남편이고 회장이라고 해도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구일중과는 부부사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관계이다 보니 구일중을 제거하는 것도 그다지 부담스럽다거나 힘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손에 피를 묻힌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20회의 예고편을 보면 구일중이 차를 타고 경사로 아래로 나뒹구는 장면이 나옵니다. 필자의 판단으로 이 사고는 서인숙과 한승재가 구일중을 죽이기 위해 계획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사고의 결과로 구일중은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구일중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첫번째 이미지 출처: 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806/525175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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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까지 신유경은 김탁구와의 사랑과 구마준이 속삭이는 복수 사이에서 조금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9회에서 신유경이 다시 김탁구를 만나면서 탁구와의 사랑을 선택합니다. 김탁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유경은 그녀가 거성식품에 들어간 애초의 의도를 모두 놓아버리고자 합니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거성과의 모든 악연을 떨쳐버리고자 합니다. 신유경은 이토록 아름다운 아이입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복수의 편으로 몰아넣고 맙니다. 서인숙이나 한승재가 보낸 괴한들에 의해 유경은 강제로 사직서를 써야하는 수모를 당합니다. 서인숙을 설명하는 데 어떤 표현이 가능할까요? 서인숙 정말 악녀입니다. 달려가는 기차도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서인숙은 그런 걸 모르는 여자 같습니다. 너무나도 안하무인이고 천민 자본주의의 속성(속물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지점에서 사랑을 선택하려는 유경의 마음이 다시 복수를 향해 날을 세우고 맙니다. 정말 김탁구의 사랑은 슬픈 사랑이 되고 말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유경에서는 복수를 유보하려는 한 가닥의 마음이 남아있었습니다. 서인숙의 진정어린 사과가 그것입니다. 유경은 서인숙을 찾아가 자신이 당한 수모에 대해 마지막으로 진정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서인숙은 이를 묵살하고 맙니다. 오히려 유경을 더 자극만 합니다. 서인숙의 입에 담겨진 그 천박한 모욕과 욕설 말입니다. 이에 유경이 선택한 발길은 팔봉빵집입니다. 그리고 마준을 불러냅니다.
 

유경은 마준이 그녀에게 제의한 복수의 방식이 아직도 유효한지 묻습니다. 그리고 마준이 유효하다는 뜻으로 유경을 포옹합니다. 이 포옹은 곧 복수로 매개되는 사랑 없는 접점입니다. 하지만 마준에게로 유경의 발길이 향하는 순간 유경의 사랑은 길을 잃고 맙니다. 이 길 잃은 사랑이 꽤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마준에게는 서인숙과 한승재는 죄악을 잉태한 존재들입니다. 부정하고픈 자신의 출생 비밀은 서인숙과 한승재에 대한 분노로 변합니다. 구마준 자신이 구일중이나 팔봉선생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못할 수록 자신을 존재케한 서인숙과 한승재로 향한 분노는 커져 갈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구마준이 너무 변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유치하고 유아적입니다. 여전히 서인숙의 언행을 답습하고 있으면서도 서인숙에게 분노 할 줄만 알았지, 서인숙을 답습하고 있는 자신은 돌아 볼 줄을 모릅니다. 구일중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이 탁구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정말 바보같은 인간입니다. 원망과 부정만을 할 줄 알았지 그 근원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구마준은 극적 긴장감을 위해서는 중요한 존재이지만 그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진정하고 진실한 노력이 없습니다.    


길 잃은 사랑은 유경 만이 아닙니다. 탁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탁구의 아픈 가슴을 미리 상상해 보자니 참 마음이 아파옵니다. 참 많이도 아프게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그런 탁구이기에 유경의 존재는 참으로 특별납니다. 구일중에게 탁구가 특별한 아이인 것처럼이나 탁구에게 유경은 첫사랑입니다. 가슴 뭉클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첫사랑은 진정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일까요? 서인숙과의 악연이 유경을 통해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알게 된다면 탁구는 과연 서인숙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탁구와 유경과의 사랑은 이제 이그러지고 말았습니다. 사랑을 포기하고 복수를 선택한 유경을 누가 잡아 줄까요. 유경 자신이 길 잃은 사랑으로 다시 되돌아 올까요. 아니면 탁구를 영영 떠나게 될까요. 서인숙에 대한 유경의 복수는 참 통쾌하고 만족감을 제공해 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그러진 그 사랑은 앞으로 많은 모퉁이를 돌아 돌아 추억으로만 남게 될까요. 추억이 되어버린 사랑만큼 간절한 추억이 있을까요? 탁구와 유경의 그 길 잃은 사랑이 어떻게 될까요?


첫번재 이미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7211018181001
두번째 이미지: KBS 드라마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