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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대인, 그리고 집시



독일, 유대인, 그리고 집시


우리는 흔히 일제의 죄상과 그 배상을 비교하는 대상으로 독일의 유대인에 대한 죄상과 배상을 들곤 한다.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독일의 반성과 배상은 진정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이 유대인에게 진정으로 사죄를 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는 말과 '있다' 란 말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보는 독일에 대한 인식은 진정성이 있어 보이는 수준이지 진정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으로 보았을 때는 진정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독일내의 논의나 성찰도 상당히 진정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홀로코스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독일과 달리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를 묻어놓기에 바쁘다. 어떻게 하면 역사를 화석으로 만들어 버릴 지 골몰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2차 대전 전범의 위패가 있는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독일에 비해 일본도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인 사실 하나만 놓고 보면 적어도 독일 정부 차원에서는 독일의 유대인에 대한 배상과 사죄는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학자들의 학문적인 차원에서 성찰뿐만 아니라 역사 교육에 있어서도 나치 독일의 잔학상에 대해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독일의 역사교과서는 물론이고 윤리, 사회, 종교등의 교과서에서도 나치의 잔혹한 만행을 다루고 있다. 역사 교과서는 독일에서 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치의 점령국아었던 폴란드나 프랑스와 상의하기도 한다. 또 최근에는 프랑스와 함께 양국 공동 역사교과서를 제작했다.


또한 베를린 곳곳에 나치하의 잔인한 만행을 망각하지 말자는 안내판들과 역사적인 유적들이 많이 있다. 유대인 처형 장소, 유대인 박해 장소, 유대인 저술 문서 소각 장소, 유대 교회당 방화 장소등이 그런 곳들이다. 특히 베를린의 중심에 있는 추모 공원은 전세계인들에게 상당히 인상적인 곳이다. 이 추모관은 유대계 미국인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것으로 통일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축구장 3개 크기의 면적에 높이가 최고 4.7m 인 콘크리트로 만든 크기가 다양한 직사각형 기둥 2,711개를 눕혀 놓은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24시간 자유롭게 둘러 볼 수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유대인, 유대인이란 표현이 주를 이룬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대학살(the Holocaust)이라고 했을 때 우리의 생각에 유대인만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The Holocaust를 단순히 유대인 대학살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를 유대인으로 한정시켜버리는 부작용을 낳나았다. 이런 결과로 홀로코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유대인 외의 다른 희생자를 소외시키는 또 다른 그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집시라고 할 수 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14155645&Section=04


2차 대전 당시 유대인과 더불어 학살되었던 집시들에 대한 배상과 사죄를 살펴보면 독일이 얼마나 두 얼굴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독일인의 집시 학살은 유대인 학살 못지않는 잔인한 학살이었다. 유대인에 대한 배상과 사죄만이 큰 이슈화되면서 집시들에 대한 관심은 유대인 학살에 묻혀버려진 것이다. 집시 학자이며 활동가인 이언 핸콕(Ian Hancock)이 집시 학살을 따로 The Porajmos (또는 Porrajmos)라고 명명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유대인의 대학살에 묻혀버린 집시의 학살을 구체화시키려는 노력 말이다. 유대인들에 비해 집단화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학살자 통계가 나와 있지 않지만, 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집시들의 희생자 숫자는 최소 220,000에서 최대 1,500,00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25/2000/005100025200007282139005.html


1970년 독일의 빌리 그랜트 수상이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나 1989년 콜 수상이 아우슈비츠에 헌화한 것이나 2006년 슈뢰더 수상이 부헨벨트 수용소에서 사죄한 것은 유대인들을 향해서였지 결코 집시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를 놓고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집시들에 대한 배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집시들은 2000년 7월 집시 국가 창설을 선포하면서 홀로코스트 희생자 50여만명의 배상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2000년 7월 25일 국제집시연맹(IRU)은 40개국 250명의 전세계 집시대표들이 모여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을 국가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이것은 집시 국가가 유대인들이 세운 이스라엘처럼 영토를 가진 국가와는 달리, 단지 개념적으로 국가에 상응하는 정도로 “기존 국제조직과 체제를 대폭 강화하는 것”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집시들의 이러한 노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라도 없이 떠도는 집시들이 현실적으로 국가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IRU는 국제 변호사들을 고용해 스위스와 독일 등으로부터 배상을 받기 위해 법적인 노력을 해왔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러한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국가가 없는 집시의 성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집시는 유럽, 동유럽에서 차별과 수모를 당하고 있다. 집시 문화 자체가 동화 정책으로 점차 소멸되고 있는 실정이고 멸시와 박해의 대상이 되어왔다. 유대인들이 세운 이스라엘과는 전적으로 다른 처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은 2차 대전의 자신들의 죄상을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독일의 사죄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라면 집시에 대한 보상도 유대인 학살에 걸맞아야 하는 것이다. 집시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 앞으로 어떻게 진척되어 나갈지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