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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선덕여왕

선덕여왕, 그 애절한 러브스토리


 

선덕여왕, 그 애절한 러브스토리



권력를 차지하기 위한 암투 속에도 어김없이 사랑과 증오가 빚어놓는 다양한 변주곡이 연주된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조건이 황량하기 때문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어렵게 피는 꽃이 소중하듯이, 외적인 조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권력 암투의 현장에서 피는 사랑은 더욱 소중하다. 인간들의 신념들이 부딪히는 갈등 속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위험하기도 하다. 동지적인 관계에, 군신의 관계에 사랑은 침잠해있거나 억압되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연약한 꽃은 권력의 격랑 앞에서 애꿎은 상채기를 남기기도 하고, 죽음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봄의 새싹처럼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사랑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선덕여왕 속에도 이런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들이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mooye.net/sub_read.html?uid=1437§ion=sc5


천명공주와 유신의 사랑: 희생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실록과는 달리 청명공주가 덕만공주의 언니로 나온다. 마음이 여리면서도 동시에 올곧았던 천명공주였다. 이 청명공주는 유신랑을 애모했다. 유신랑에 대한 청명공주의 사랑은 희생이 동반된 사랑이었다. 조용히 자신의 사랑을 숨기는 그런 사랑이었다. 유신이 덕만을 애모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천명공주가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덕만에게 한 마지막 말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유신과 떠나는 덕만에게 여자로 살아라는 그 말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이미지 출처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90728091705503


소화에 대한 칠숙의 사랑: 자기 연민
이 사랑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증오가 사랑으로 변한 그런 사랑이었다. 죽이고자 하는 대상이 사랑의 대상이 된 그런 사랑이었다. 그렇게 다가온 사랑이었기에 칠숙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더욱 애절한지도 모르겠다. 소화와 함께, 사랑과 함께 떠나고자 한 칠숙의 마음은 조개의 속살처럼 부드러웠다. 칠숙은 철저히 자기감정을 억압하면서 일생을 칼과 함께 살아왔다. 미실을 위한 삶이었다. 그런 그가 소화에게서 자기연민을 느낀 것이다. 칼이 덧없어 진 것이다. 그러나 권력 싸움의 한 복판에서 사랑의 꽃은 꺾여야만 했던 것이다. 소화조차도 모를 만큼 칠숙의 사랑은 깊고도 깊었다. 사랑을 신념에 눌러버려야 했던 칠숙의 가슴을 참으로 헤아리기가 싶지 않다.


이미지 출처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90915081107017




소화에 대한 죽방의 사랑: 소탈
죽방은 소화에게 한 눈에 반한다.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사랑이 아닐까 한다. 평범한 사랑이다. 그러나 평범함에 진리가 있다는 말처럼 평범한 사랑이야 말로 진실한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낯익은 그런 사랑이었다. 수줍어 말 못하고 가슴만 졸이는 그런 사랑이다. 꾸밈없는 사랑, 소탈한 사랑이다. 소화가 죽었을 때 소리지르며 눈물 흘리는 죽방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미지 출처 http://nozstudio.tistory.com/6



덕만과 유신의 사랑: 충절
덕만과 유신의 사랑은 심지 굳은 믿음에 근거해 있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덕만에게 사랑은 사치스런 것이었다. 여인이 되고 싶은 바램이 왜 없었을까? 언니 청명공주가 그렇게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덕만은 여인으로 살기보다 여왕으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유신이 덕만을 사랑했지만 덕만의 대의에 그 사랑을 고스란히 포기했다. 사랑하는 덕만의 대의에 그의 삶을 바친다. 이것은 사랑이라기보다 군신의 관계에 더 가깝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신하로서 유신의 충절은 더욱 간절하고 깊다. 사랑을 대신하는 충절이기 때문이다. 충절이 되어 버린 사랑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칠숙도 그랬다. 사랑보다도 충절을 택했다. 유신은 끝까지 충성스런 신하의 관계로 남으려고 한다. 어느 충절과도 달리 유신의 충절이 사랑의 변주라 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dongjutour/Kg3j/92?docid=1Eqva|Kg3j|92|20090914234538



미실과 설원공의 사랑: 충절
미실과 설원공의 사랑 또한 덕만과 유신의 관계처럼 사랑의 감정이 군신의 관계 속에 녹아있다. 참된 미실의 남자였다. 미실이 죽고도 설원공은 미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이것을 단순히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설원공은 미실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자 했다. 덕만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설원공은 비담을 통해 끝까지 미실의 꿈을 이루고자 했다. 미실을 지켜준다는 것이 곧 그의 미실을 향한 사랑이었다. 미실의 죽음으로 끝난 슬픈 사랑이었지만 설원공의 마음엔 언제나 미실이 있었다. 항상 곁에서 지켜주는 그런 사랑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yunsilz.tistory.com/185


선덕여왕과 비담의 사랑: 자기 파멸
비담이나 선덕여왕이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서로의 처지가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의 정 같은 것 말이다. 특히 비담의 선덕여왕을 향한 애모의 염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뿌리칠 만큼 애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 암투의 한 가운데서 사랑은 자기 파멸을 잉태할 수 있는 독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사랑만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을 위해 머나먼 피안의 세계로 달아나지 않는 한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무자비한 현실에 처해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에 눈이 멀어 선덕여왕에 대해 맹목적으로 되어버린 비담의 존재는 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차가운 관계 속에서 견딜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비담의 존재는 권력을 추구하는 파당에게는 어리석게만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비담은 자기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사랑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의 격동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 속에서 그 관계들을 맺고 있는 인간들에게 사랑은 유보나 억압해 놓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맹목적인 사랑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선덕여왕>에서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권력 역학이라는 운명에 묵인 채, 우리의 일상적인 사랑과는 다르지만, 그리고 생채기가 나고, 죽음으로 끝나기도 하는 사랑이지만 이루지 못하기에 더 애절한 사랑을 보게 된다. <러브 스토리>보다도 더 애절한 러브 스토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