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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선덕여왕

선덕여왕, 왜 비담만 설원공의 죽음을 지켜봤을까?




선덕여왕, 왜 비담만 설원공의 죽음을 지켜봤을까?

이미지 출처 http://entertainforus.tistory.com/747



설원공이 죽었습니다. 참으로 장렬한 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칠숙이 그랬듯이 설원공 또한 마지막까지 미실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인물입니다. 설원공이 어느 편에 있냐라는 잣대는 중요치 않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게임룰이 지배하는 장이기 때문에 어차피 승자의 시선이 투영되기 때문에 설원공을 단순히 선덕여왕의 적대세력으로만 본다면 설원공의 진면목을 파악하기 어려워집니다. 정사를 떠나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보건데 설원공은 참으로 대단한 위인입니다. 어쩌면 유신과 대칭으로 놓고 볼 수 있는 철저한 미실의 2인자였습니다. 미실의 그림자였습니다. 미실의 충복이었습니다. 유신랑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습니다. 이런 설원공이 미실의 몰락과 함께 그 담대한 꿈도 더불어 접어야 했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미실의 못다 이룬 꿈이 항상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비담은 설원공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미실의 아들, 어쩌면 자신의 아들일 수도 있는 비담을 위해 그는 다시 목숨을 바치기로 결정합니다. 위기에 처한 대야성을 구하기 위해 출정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백제군의 파죽기세에 밀려 부상을 입고 병져 눕게되고 마침내 죽을 맞이하게 됩니다. 설원공의 죽음은 참으로 슬픔을 자아내었습니다. 칠숙의 죽음이 그랬듯이 설원공의 죽음 또한 미실을 위한 변치 않는 충절의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디 이러한 죽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설원공에게서 담대했던 한 위인의 모습을 보았고 ,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한자락 옷깃에 눈물을 훔치는하는 비통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설원공의 곁에 오직 한 사람, 비담만이 있었습니다. 비담만이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습니다. 비담이야 말로 설원공에겐 분신 같은 존재입니다. 미실도 홀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미실의 죽음도 비담만이 지켜보았습니다. 이러한 죽음의 장면은 미실과 설원공과 비담을 뗄 수없는 운명적인 관계로 잇기 위한 드라마의 극적인 연출 때문이었을까요? 알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던 그것이 극적이기만 하다면 드라마상의 효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설원공과 비담 사이에 그런 극적인 장면을 연출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비담의 손을 잡고 있던 설원공의 손이 미끄러져 내려가고 설원공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설원공의 모든 꿈이 비담에게로 전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미실이 이루지 못한 모든 꿈이 말입니다. 미실의 남자이며 충신이었던 설원공의 쓸쓸한 죽음을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칠숙의 죽음이 미실에 대한 충절과 소화와 얽힌 개인적인 죽음에 가까웠다면(칠숙의 난은 대의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즉흥적인 감정에 의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설원공은 분노를 삭이고 후일 대의를 도모하는 공적인 죽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담을 키워 미실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일시적인 감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12020024111116&ext=na


그렇다면 이제 드라마상에서 비담만이 설원공의 죽음을 지켜보게 한 이유가 드러납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어떠한 죽음의 장면이라도 극적이라면 좋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연출자들은 비담만이 지켜보는 곁에서 설원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극적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첫째는, 이미 언급했듯이 설원공에서 비담으로 이어지는 미실의 이루지 못한 꿈의 이전입니다. 설원공은 마지막으로 비담의 손을 잡은 뒤 눈을 감습니다. 미실의 꿈, 설원공의 꿈이 비담에게로 옮겨가는 순간입니다. 이제 비담이야 말로 미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비담이 존재가 부각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설원공과 비담과의 관계에 대한 의문입니다. 비담이 진지왕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설원공의 아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설원공의 죽음을 지켜보는 존재는 단순히 미실로 이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미실-설원공-비담으로 이어지는 이 일련의 관계와 흐름을 보면서 역사에서 원대한 꿈이란 무엇인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은 어떠한 것인지, 승자에 밀려난 패자들의 쓸쓸한 퇴장이 어떠할지를 상상으로나마 보게 됩니다. 미실의 죽음, 설원공의 죽음이 그렇습니다. 앞서는 칠숙과 서품의 죽음도 있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죽음과 함께 끝나나 봅니다. 이제 바통은 비담에게로 넘어갔습니다. 대략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로써는 비담의 죽음 또한 어떠할지 큰 호기심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비담의 죽음은 누가 지켜봐 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