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0.09.18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 가장 불행했던 사람? (18)
  2. 2010.09.18 제빵왕 김탁구, 제작진의 현명한 속임수가 맞을까? (8)
  3. 2010.09.17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도 사실상 해피 앤딩인 이유? (12)
  4. 2010.09.16 김탁구, 구마준보다 더 깊은 상처를 가졌던 구일중 (5)
  5. 2010.09.16 제빵왕 김탁구, 서인숙은 한승재와 함께 떠나게 될까? (9)
  6. 2010.09.12 제빵왕 김탁구, 마준과 유경은 파멸할까? (22)
  7. 2010.09.11 김탁구, 구일중의 지혜로운 몰카 속임수 (14)
  8. 2010.09.10 제빵왕 김탁구, 007 위기일발 조진구? (6)
  9. 2010.09.10 제빵왕 김탁구, 악녀되어 버린 유경의 운명은? (21)
  10. 2010.09.10 제빵왕 김탁구,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망하는 이유? (2)
  11. 2010.09.09 제빵왕 김탁구, 마준과 유경의 결혼은 변화를 위한 시작? (9)
  12. 2010.09.07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과 만신의 공통점? (14)
  13. 2010.09.06 김탁구, 누가 서인숙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6)
  14. 2010.03.19 수상한 삼형제, 안타까운 부모들의 초상? (9)
  15. 2010.02.25 김연아, 폭탄 발언 정말 잘했다! (31)
  16. 2010.02.19 지붕킥, 줄리엔은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을까? (12)
  17. 2010.02.05 지붕킥, 사회에 날리는 통쾌한 하이킥들 (10)
  18. 2009.11.24 일본인 가족 우리나라 귀화 이유가 무엇일까? (13)
  19. 2009.10.18 티코를 타는 행복 (4)
  20. 2009.09.29 경차 모는 남자가 민망하다? (1)


<제빵왕 김탁구>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구일중의 탁구에 대한 집착은 그야말로 기형적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그를 수가 있나 구일중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이지만 구일중은 단순히 탁구에게 집착해온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의지해 왔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구일중의 마음 속 상처는 어느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출생의 비밀과 할머니 홍여사의 죽음을 목격한 마준 못지 않게 구일중의 마음 속 트라마우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기다 뇌출혈을 일으켜 몸도 자유롭지 않게 되겠습니다.

KBS 드라마 캡처

구일중이 자신의 아내 서인숙과 한승재가 불륜을 저질렀단 사실 정도는 자신이 미순과 저지른 불륜을 생각하면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참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인숙이 그토록 탁구를 멸시하고 천대했지만 구일중은 마준을 내치지 않았습니다. 마준은 탁구만을 애정으로 감싸는 구일중 때문에 많이 비뚤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구일중이 이 사실을 자세하게 눈치 챈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소통의 부재라기 보다는 소통의 어긋남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따라서 구일중에게 마준의 비뚤어진 인간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입장을 바꾸어서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존재인 구일중을 이해하려고 한 인간들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바다위에서 부유하는 섬 같은 존재였습니다.

KBS 드라마 캡처


드라마 상에서 구일중 만큼 답답한 인물도 없습니다. 바보 같은 인물도 없습니다. 김탁구의 바보같은 성격은 구일중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정말이지 구일중은 바보같은 존재였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이란 죄다 혼자서 삭여야만 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아무리 거성의 회장이면 뭐합니까? 십수년 동안 마치 암덩어리처럼 비밀을 안고 살아왔으니 구일중은 정말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 패기의 구마준의 삶과 사랑에 대한 몸부림처럼 그렇게 발버둥 칠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마준이처럼 그 마음의 상처가 부각되지는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대문이구요. 클럽을 전전하며 여자들과 타락을 일삼는 그런 마준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구 말이지요. 구일중에게는 거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과 가정과 우정을 지키려는 책임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마준처럼 무책임하게 자신의 신세만을 한탄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일중이 마준처럼 술이라도 마시고 취기에 소동이라도 부리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오직 구일중에게는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구일중의 옆에는 믿을 만한 인간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회장님, 회장님 하며 따르는 그 탁구 말입니다. 어린 시절 마준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없으며 자기 중심적이었습니까? 그 애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구일중은 몸서리쳤을 것입니다. 일중에게 탁구의 존재는 후계 문제만이 아니라 탁구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위로 받고, 심지어 치유받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일중에게 탁구는 참 의미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전의 글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50%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끝났다. 첫 회가 방영될 때만 해도 이런 시청율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대중들의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국민드라마로 떠올랐다. 마지막 30회가 다가옴에 따라서 결말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그만큼 화제가 되는 드라마였고 상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30회가 끝난 지금 무난하게 결말을 마무리지었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으로 서인숙에 대한 열려진 결말 처리는 선택하기 어려운 비극적인 결말과 해피한 결말 사이에서 제작진이 고심한 흔적처럼 보인다. 마지막 서인숙의 장면은 섬뜩하다 못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낼 정도였다. 서인숙이 미쳐버린게 아닐까 할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닌 인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인숙은 법적인 처벌을 당하는 한승재와는 달리 스스로 파멸되는 그런 응징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한승재와 서인숙에 대한 엄벌을 기대하고 그러한 기대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위장으로 보인다.
 

드라마가 결말로 향해 나아가면서 서인숙은 한승재와는 달리 나약한 모습들을 곳곳에서 보여주면서 해피엔딩으로 처리하려는 징후를 노출하는 듯 했다. 끝까지 악한 모습을 보여준 한승재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구일중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면서 한승재와는 멀어지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이런 일련의 서인숙의 변화로 판단해 보면 제작진은 서인숙을 해피 엔딩에 넣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진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들은 서인숙의 파멸을 원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서인숙의 운명에 대해 제작진은 시청자들과 충돌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한승재와 서인숙이 그 악의 댓가를 지불받지 않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부정한 곳이 되겠는가 말이다. 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드라마가 허구의 세계라고 해도 현실과는 완전히 유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서인숙과 한승재가 해피 엔딩이라는 틀 속에 그 독자성을 잃어버렸다면 이 드라마는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결말로 원망을 불러 왓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제작진은 당초의 해피엔딩을 밀어 붙일 수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 선택한 것이 열린 결말이 아닐까 싶다. 제작진은 비극과 행복 이 둘의 가능성을 다 열어 놓는 열린 결말로 처리함으로써 상상의 여지만을 남긴 것이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해피엔드와 새드엔드 양자를 다 만족시켜주는 선택 말이다. 그러면서도 포면적으로는 서인숙의 악녀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켜주면서 시청자들을 만족시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표면적으로는 대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서인숙에게 악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남겨두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적으로 서인숙은 해피엔딩의 상황 속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서인숙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말이다. 아무리 환경이 서인숙의 해피엔딩을 불러오는 성격이라고 해도 서인숙 자신이 변화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서인숙이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는 구마준이다. 즉, 서인숙이 한승재와 함께 악행을 저질러온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이 구마준이의 거성 장악이었다. 그런데 이런 구마준이 신유경과 함게 여행을 갖게되는 마당에 굳이 마준이나 유경에게 같날을 세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제작진은 결말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표면적인 사실과는 달리 그 깊은 이면에는 서인숙이 행복해 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참 현명한 속임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KBS드라마 포토박스입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제빵왕 김탁구>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50%대의 고공 시청률에 육박하며 국민 드라마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기성세대들에게는 중년연기자들이 전해주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젊은 세대들에게는 젊은 날의 초상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풋풋함과 시행착오의 삶이 어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처음부터 의도하고 제작하였다면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단원 막과 관련해서 우려했던 해피 엔딩은 피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적어도 한승재와 서인숙은 악에 대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의 흐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견의 흐름을 존중해 준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이미 짜놓았던 극본의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결말이 전적으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참 잘 된 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등장인물들의 결말들과는 달리 서인숙만이 열린 결말로 끝났습니다. 아마도 서인숙마저도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기에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서인숙을 고집불통의 악녀로 여전히 남겨두고 있지만 사실상 서인숙에게는 해피엔딩인 셈입니다. 제작진들이 교묘하게 시청자들을 속인 셈입니다. 왜 그럴까요?



언뜻보기에 서인숙은 변화지 않은 인물로 마무리를 짓고 있지만 그녀를 고통 속에 빠트려온 주위의 거의 모든 조건들이 해결된 셈입니다. 한 사람 구일중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구일중은 끝까지 서인숙을 용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구일중을 제외하고 나면 서인숙에게 주위의 다른 인물들은 호의적으로 환경으로 변화하여 자리합니다.


KBS 드라마 캡처



우선, 서인숙에게 가장 도전적인 인물이었던 신유경이 마준과 화해를 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여행을 다녀와서라도 신유경은 결코 서인숙의 라이벌로 자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준이 신유경이 차고있던 서인숙의 팔지를 돌려주는 것이 단적인 예가 되겠죠. 신유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인숙이 신유경을 무시하고 천대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가능성은 아주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마준입니다. 마준을 거성가의 주인으로 앉히려는 서인숙에게 마준의 몰락은 무엇보다도 참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준은 비록 거성의 대표는 되지 못하지만 몰락하지는 않습니다. 한승재의 말처럼 경쟁에서 지면 추락한다는 식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준이 신유경과 화해를 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며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인숙도 아들의 앞날에 축하를 빌어주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는 탁구입니다. 서인숙은 탁구가 거성가의 대표가 되는 것을 참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탁구가 마준을 누르고 대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심 없이 대표자리를 자경에게 내어준 것은 서인숙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탁구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것을 내심 기뻐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탁구에 대한 애정이 조금식 커져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경입니다. 구일중이 이끌던 가부장적인 거성을 이제 자경이 맡게 됩니다. 탁구와 마준이 자신들의 지분을 자경이에게로 몰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자경의 이러한 모습은 서인숙에게는 참으로 큰 만족감을 줄 것입니다. 비록 마준에게 기대한 것에는 못미치지만 자신의 딸이 대표자리에 앉은 건 큰 행복일 것입니다.


서인숙만이 변화가 없는 캐릭터로 열린 결말을 보여주었습니다. 결론을 간추리면, 서인숙은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불행한 삶을 예고했지만 사실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한 존재입니다. 그녀는 다시 행복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이제 한 시간여후면 <제빵왕 김탁구>의 마지막회가 시작이 되겠네요. 대단원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한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또 이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정들었던 모든 등장인물들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몰라옵니다. 아무튼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KBS 드라마 캡처


<제빵왕 김탁구>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구일중의 탁구에 대한 집착은 그야말로 기형적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그를 수가 있나 구일중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이지만 구일중은 단순히 탁구에게 집착해온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의지해 왔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구일중의 마음 속 상처는 어느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출생의 비밀과 할머니 홍여사의 죽음을 목격한 마준 못지 않게 구일중의 마음 속 트라마우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구일중이 자신의 아내 서인숙과 한승재가 불륜을 저질렀단 사실 정도는 자신이 미순과 저지른 불륜을 생각하면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참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인숙이 그토록 탁구를 멸시하고 천대했지만 구일중은 마준을 내치지 않았습니다. 마준은 탁구만을 애정으로 감싸는 구일중 때문에 많이 비뚤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구일중이 이 사실을 자세하게 눈치 챈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소통의 부재라기 보다는 소통의 어긋남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따라서 구일중에게 마준의 비뚤어진 인간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KBS 드라마 캡처


드라마 상에서 구일중 만큼 답답한 인물도 없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이란 죄다 혼자서 삭여야만 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십수년 동안 마치 암덩어리처럼 비밀을 안고 살아왔으니 구일중은 정말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 패기의 구마준의 삶과 사랑에 대한 몸부림처럼 그렇게 발버둥 칠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마준이처럼 그 마음의 상처가 부각되지는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대문이구요. 클럽을 전전하며 여자들과 타락을 일삼는 그런 마준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구 말이지요. 구일중에게는 거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과 가정과 우정을 지키려는 책임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마준처럼 무책임하게 자신의 신세만을 한탄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일중이 마준처럼 술이라도 마시고 취기에 소동이라도 부리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오직 구일중에게는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구일중의 옆에는 믿을 만한 인간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탁구만이 있었습니다. 회장님, 회장님 하며 따르는 그 탁구 말입니다. 어린 시절 마준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없으며 자기 중심적이었습니까? 그 애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구일중은 몸서리쳤을 것입니다. 일중에게 탁구의 존재는 후계 문제만이 아니라 탁구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위로 받고, 심지어 치유받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일중에게 탁구는 참 의미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구일중은 서인숙과 한승재가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어머니인 홍여사가 죽은 날 한승재와 서인숙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한승재와 실랑이를 벌이든 구일중은 자신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단지 찬구이고 아내였기에 그 사실을 인내하며 지내왔다고 말합니다. 이미 예측은 해온 사실이지만 구일중의 입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제법 충격이 컸습니다. 이렇게 구일중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이상 서인숙과 한승재는 구일중과 함께 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KBS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구일중의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을 까요? 그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이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 사실을 감추며 마준의 나이만큼이나 오랜 세월 동안 모른척하고 살았다니 구일중의 인내심이 참 대단합니다. 그기다 비록 애정은 식어버렸지만 여전히 서인숙을 아내로 함께 생활하고 한승재를 비서실장으로 곁에 두고 왔다는 사실이 혀를 두르게 합니다. 정말 이런 위인이 다른 어디에 또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야말로 자신과 거성, 그리고 가정, 자신의 친구를 위해 힘들게 참아온 세월일 것입니다.


이런 구일중의 행동은 결국 자신의 잘못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미순과 불륜을 저지르며 탁구를 낳은 것에 대한 속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탁구에게 애정을 쏟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근원적으로 구일중은 마준에게 애정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픈 일이기에 구일중이 좀 더 가까이 다가갔더라면 하면 아쉬움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누구가 마준에게 살갑게 굴 수 있을까요? 사실 구일중이 마준을 냉대했던 것보다도 서인숙이 탁구를 냉대한 것이 훨씬 더 심했습니다. 서인숙은 탁구를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탁구는 마준처럼 빚나가지 않았습니다. 비록 홍여사의 죽음과 같은 충격적인 일을 직접 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어머니인 미순이 납치되는 것을 목격하고 그 이후로 미순을 찾기 위해 십수년을 찾아 해매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일이 홍여사의 죽을 묵격한 마준의 마음 상처보다도 작은 것일까요?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탁구의 상처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따라서 구일중이 마준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준을 반항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일중은 서인숙에 비하면 인간적인 처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서인숙처럼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이 밝히고 구마준을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 집니다. 따라서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구일중의 처신은 모두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모든 것을 자신이 덮고 가려는 일종의 희생정신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잔정은 없었지만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품위를 지켜려고 노력한 인물입니다.



KBS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마준이 절실하게 구일중의 관심을 받고자 했지만 사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서인숙과 한승재의 원죄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구일중의 차가운 태도가 비난을 받아야할 1차적인 대상이 아니라 서인숙과 한승재가 비난 받아야 하는 결정적인 대상인 것입니다. 또한 구마준의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구일중이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소통이 어긋난 것이지 소통자체를 거부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만약 구일중이 구마준이 홍여사의 죽음을 보게 된 사실을 알았다면 마준에 대한 태도가 그리 차갑지 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구일중은 마준의 그러한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마준에게 다소 차갑게 대했다고 해서 그것을 마준의 반항심과 비뚤어짐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제 구일중의 입에서 서인숙과 한승재의 관계를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한승재와 서인숙은 구일중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구일중이 한승재에게 검찰을 부를지, 비행기 티켓을 가질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과연 서인숙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합니다. 서인숙은 한승재와 함께 떠나게 될까요? 구일중에게 서인숙은 이미 애정이 식은 존재라면 한승재와 함께 떠나는 것도 괜찮지 싶습니다. 구일중에게는 미순의 존재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구일중이 지금까지 서인숙과 애정없는 부부의 연을 이어왔지만 서인숙이 진정으로 뉘우치면 다시 받아 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서인숙과 김미순의 행복가 참 궁금해 집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결말이 다가올수록 무척이나 궁금한 것은 마준과 유경의 운명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될까는 이 드라마의 핵심중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상처받은 인간들의 변화와 치유, 화해와 소통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를 묘사하고 서술하는 궁극의 목적 중의 하나는 변화와 치유, 화해와 소통이니까요. 비록 불변과 은폐와 갈등으로 점철된다고 해서 결국 그것을 통해 변화와 치유, 화해와 소통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탁구-일중(일중은 다소 애매하기도 하지만)-미순의 스토리 라인이 다소 통속적이고 선악 양단의 가치를 지향한다면 인숙, 승재-유경-마준의 스토리 라인은 선악이 뒤섞이고 심리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따라서 후자의 라인이 문학적인 느낌이 강하고 여운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마준과 유경은 참 애착이 가는 인물들입니다. 탁구처럼 모범적인 인간으로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해진 현실 속에서 상처받고, 마음 생채기에 답답해하고, 분노의 격정을 견뎌내지 못하며, 악과 선의 혼란스런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준과 유경의 그런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애착이 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마준을 살펴볼까요. 마준에게는 정말 치유불능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지금 마준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도 바로 그 마음의 상처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마준처럼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하기 힘들만큼 괴로울 것입니다. 사실 그 아픔을 우리는 드라마 내내 마준과 함께 느끼고, 그래서 동정을 하면서 마준의 변화를 진심으로 지켜봐왔습니다. 마준이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 마다 원망하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상처입고 있는 마준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마준이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길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팔봉 빵집에서 마준은 그런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우리의 바람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팔봉 선생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면서 팔봉 선생이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팔봉 선생이 끝까지 마준을 껴 안아주었다는 사실에 강한 인상을 받습니다. 인간의 변화는 한 순간의 문제가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빵이 잘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듯이 조용히 기다려야 할 문제입니다. 마준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혼란스러운 삶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드라마가 끝 난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마준이 불쌍하면서도 슬픔을 자아냅니다.



유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자의 경우 유경은 더욱 더 애틋한 존재입니다. 진정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유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는 유경을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 진다면 더 아름다운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여겨질 정도입니다. 이승철이 부른 이 드라마의 주제곡 <그 사람>을 들으면 유경의 지나온 삶 때문에 가슴이 뭉쿨해지고 안타까워집니다. 유경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폭력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하면서 살아온 유경입니다. 그리고 보육원을 그치면서 대학을 다니고 학생 운동을 하면서 사회변혁의 꿈을 꾸던 유경이었습니다. 마준과 같은 내면적인 상처와 더불어 현실적인 모순과 그 모순으로 인한 고통도 고스란히 당한 인물입니다. 거성가의 황태자였던 박제된 마준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니다. 물론 그 상처의 가치를 측정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유경의 상처야 말로 내외면적인 그야말로 총체적인 상처입니다. 그러니 유경은 총체적인 사유를 하고 있습니다. 마준처럼 유아적이 아닙니다. 마준이 상대적인 질투와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악마성에 가깝다면, 유경은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 잘못된 것이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파멸을 선택한 것이지 파멸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보셨죠, 유경이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아버지와 조우를 했을 때 그녀의 슬픈 눈동자를 말입니다. 그녀는 결코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할 인물이 아닙니다. 비록 어린 시절 자신을 그토록 때리기만 한 존재이지만 마준이 처럼 피눈물 없는 그런 냉혹한 심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경이 복수를 선택했기에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한 것입니다. 정말 슬픈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유경은 더욱 더 슬픈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탁구를 버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버리면서 악을 선택하고 복수를 선택하고, 끝내 파멸을 선택한 유경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마준이나 유경이 파멸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필자는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바보 같은 추측들만을 남발해 왔기에 이번에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렵니다. 어쩌면 파멸을 막을 방법이 애당초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파멸이 된다고 해도 또한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파도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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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가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면서 국민드라마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로 나아가면서 사건들에 우연이 남발되고 있어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열려진 문틈으로 조심성 없이 하는 말들이 새어나가면서 갈등이 빗어지는 경우가 정형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홍여사가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대화를 엿들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엿듣는 행동으로 인해서 홍여사는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또 팔봉 빵집에서 구마준이 김탁구와 구일중이 상봉하는 장면을 엿보는 것도 만찬가지입니다. 공주댁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이렇게 필연성이 부족한 우연한 행동에 의해 빈번하게 일어나면 식상해 지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재미있다보니 이러한 구성상의 헛점들이 그마나 이해되는 것일까요.



KBS 드라마 캡처



이와 관련해서 구일중이 병상에 누워 진구를 조종하고 서인숙과 한승재를 비롯한 가족들의 말을 은밀하게 엿듣는 것을 몰래카메라에 비유를 하고 심지어 비열하다고 까지 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특히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대화를 열려진 문틈으로 엿들은 행위를 몰래카메라에 비유를 하고 그것을 비열한 짓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이건 구일중이 비열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이런 엿들기를 남발하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걸 비열하다고 여긴다면 작가가 비열한 것이지 구일중이 비열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죠. 양보해서 작가를 떠난 인물인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해도 실제로 더 비열한 인간들은 서인숙과 한승재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비열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데 병석에 누워 누구를 조종한다는 식이나 단지 열려진 문틈으로 대화를 들었다고 해서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구일중은 자신을 파멸시킬 인간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팔봉 선생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봐 왔듯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야 말로 비열한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구일중이 그 비열한 인간들에게 대항하고 또 그러한 한 방법으로 대화를 엿들었다고 해서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면 도대체 정의는 어디에 있고 진실은 어디에 있을 수가 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이 엿듣기는 숱하게 등장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탁구도, 마준도, 그들이 다 커서 성인이되어서도 그들은 엿듣고, 엿보고 그러면서 갈등이 고조되기도 하고 갈등을 자제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 그걸 모두 비열한 짓이라고 한다면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비열하지 않은 자들이 없을 지경입니다. 공주댁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구일중을 비열하다고 하는 기준으로 공주댁을 본다면 공주댁은 비열함을 넘어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김미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주댁을 움직인 김미순 또한 비열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악을 응시하고 그들을 지켜보는 행위가 비열하다면 그 악은 도대체 누가 응시하고 지켜보아야 한다 말일까요.


따라서 엿듣기는 작가가 남발하는 우연이라고 해야 하며, 좀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진실에 다가가려는 장치인 것입니다. 엿듣는 행위 그 자체는 그다지 바람직 한 행위는 아니지만 그 의도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니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 엿들을 수 밖에 없는 가 하는 사실 말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갭처


구일중의 엿들기와 관련해서 참 재미있는 사실은 홍여사가 서인숙과 한승재의 은밀한 비밀을 엿듣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더욱 흡사해 지겠네요. 홍여사와 마찬가지로 구일중이 서인숙과 한승재의 대화를 엿듣습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다시 구마준이 지켜봅니다. 이거 우리가 비오는 날 홍여사가 죽는 바로 그 날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홍여사가 죽는 그 날이 다시 대를 이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직 홍여사를 대신해 구일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일중은 홍여사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지도 참 궁금합니다.서인숙과 한승재의 대화를 엿들은 구일중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입니다. 병석에 있던 구일중이 그런 분노에 휩싸여 고함을 지르는데요, 구일중이 쓰러질만한 조건이 충분히 조성된 듯한 느낌입니다. 홍여사와 마찬가지로 구일중이 쓰러질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그러나 구일중이 죽을 가능성은 그다지 커보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죽는다면 탁구를 돕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기 때문입니다. 비록 탁구가 구일중의 대리인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았지만 서인숙과 한승재가 탁구를 밀어내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악이 승리하는 드라마라면 구일중이 죽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 크지 않습니다. 아무튼 구일중이 살아남아 모든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갭처


그런데 구마준에게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 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오를 것입니다. 이번에는 할머니 홍여사가 아니라 아버지 구일중입니다. 마준은 도대체 이러한 기시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필자가 판단컨데 구마준은 할머니 홍여사에 대한 부채감을 항상 가슴에 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부채감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고 말이죠. 홍여사에 대한 부채감을 만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쓰러진 구일중을 누구보다도 먼저 들쳐 엎고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마준에게 아버지 구일중을 살리는 것은 돌아가신 홍여사를 살리는 것과 동일선상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조금은 치유되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여기에 병실에 누워있는 구일중의 진심이 전해진다면 마준의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 지지 않을까 싶구요. 이것은 구일중과 마준과의 화해로 이어지게 될 지도 모르구요, 궁극적으로 유경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슬픈일이지만 서인숙과 한승재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혼란스러운 갈등의 끈들이 조금식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유경과 마준에게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따로 포스트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구일중이 쓰러져 있으면서 서인숙이나 한 승재의 말을 엿들은 것은 몰래카메라도 비열한 짓도 아닙니다. 그것은 작가가 선택한 진실로 나아가는 한 방식이며 이 방식이 너무 남발되어 식상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한 비열하다면 서인숙과 한승재가 비열하지 구일중이 비열하다고 하는 것은 그 대상이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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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의 행보를 보면 마치 롤러 코스트를 탄 것 같습니다. 십 수년전 구일중을 도와 김미순을 납치하고, 실수이긴 하지만 김미순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화를 당한 이후 팔봉 선생의 제자가 되어 빵만들기에 전념하던 조진구였구요. 자기 자책이 무척 심했을 것입니다. 또한 팔봉 선생댁에 있으면서도 한승재의 사주에 흔들리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조진구는 탁구의 편에 섰고 자신이 탁구에게 저지런 원죄를 털어내려고 노력도 했구요. 이런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진구가 비록 과거에는 음지에 있던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탁구를 위해 힘을 보태는 양심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구일중은 마지막으로 조진구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한숭재의 측에 가담하는 척 하면서 한승재의 범죄에 대한 자료들과 행위에 대한 증인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중스파이 노릇을 해 달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진구는 한승재의 사주를 받아 병원에 있는 김미순을 납치합니다. 양미순이 가지고 있는 거성 지분을 강압적으로 빼았기 위해서 말입니다.그러나 김미순은 서류를 찢고 맙니다. 한승재는 김미순을 처리하고자 하고 조진구가 나서서 과거를 실패를 만회하고자 자신이 나서겠다고 합니다. 물론 조진구의 이러한 행동은 한승재의 신뢰를 얻기 위한 가장된 행동이구요. 


진구가 짚차로 김미순을 싣고 가는 중에 좁은 길에서 경운기와 마주하게 되고 진구 옆에 타고 있던 한승재의 똘마니가 경운기 때문에 밖으로 나간 사이에 문의 잠금 장치를 살짝 열어두고 김미순이 탈출하게 합니다. 탈출하는 김미순, 뒤쫓는 한승재 일당의 무리, 그기다 차를 타고 추격하던 김탁구까지 뒤섞이면서 김미순을 잡기위한 추격전은 그야말로 일대 대혼란이 됩니다. 그기다 김미순은 눈가지 보이지 않게되고 말입니다.


이 추격 장면은 너무 어수선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꼭 이렇게 해야했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김미순과 탁구의 상봉도 너무나도 극적이었습니다. 김미순을 잡아가려는 깡패들에게 탁구는 애듯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대들면서 깡패들마저 감동을 시킵니다. 깡패들을 감동시켜 물러나게 하고 이룬 그야말로 인간 승리의 모자 상봉이었습니다.

 kbs포토박스 사진 캡처


아무튼 조진구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한승재의 신뢰를 받으려고 합니다. 구일중과 탁구를 위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것은 순전히 김미순에게 진 과거의 빗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진구에게 검은 그림자가 엄습해 오는 듯 합니다. 김미순을 탈출 시키는 상황에서 김미순의 탈출을 돕기 위해 한승재의 수하 하나를 때리게 되고 그 사실이 한승재의 귀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조진구는 김미순에게 저지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구일중과 탁구, 그리고 김미순을 도와줍니다. 그런데 한승재가 이 사실을 알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진구도 안전한 상황이 아닙니다. 진구도 이렇게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5102&idxno=35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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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숙과 한승재가 어떻게 파멸이 될지 참 궁금합니다. 이 중에서도 서인숙의 운명이 더욱 더 궁금합니다. 서인숙은 아들인 구마준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구마준은 서인숙을 파멸로 이끌려고 하고 있습니다. 서인숙과 구마준은 모자의 관계임에도 소통이 부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구마준은 오직 그 관심이 구일중에게로만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서인숙은 구마준으로부터 어떠한 동정이나 이해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구마준에 의해서 출생의 비밀과 할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자식이 어머니를 증오하고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은 패륜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런 터부를 깰 수 있는 건 유경의 존재입니다.

KBS 드라마 캡처


서인숙에 대한 복수를 위해 공모한 구마준과 유경이고 보면 애당초 결혼에는 사랑이란 말이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단지 이 둘의 결혼은 앞서의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복수심의 결정체에 불과합니다(제빵왕 김탁구, 마준과 유경의 결혼은 변화를 위한 시작?) 비록 서인숙이 구마준 자신의 어머니이기는 하지만 어린시절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었던 당사자로서 내면적인 자학과 증오를 유발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들이라는 한계는 그의 행동을 서슴없이 수행하지는 못하게 합니다. 유경을 끌어들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마준은 결국 유경으로 하여금 복수하게 합니다.


마준은 유경에게 과거 할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사실들을 귓속말로 이야기 한 듯합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귓속말로 소곤거렸기에 마준이 어디까지 유경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경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서인숙이 어디에 있었는지, 팔지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날은 비가 왔다는 말을 서슴없이 서인숙에게 하는 것으로 보아 아주 깊은 내용까지 들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유경이 서인숙에게 역공을 가하는 형세입니다. 서인숙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유경이 서인숙에게 복수를 하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복수를 하면 좋겠습니다만, 구일중에게 단죄되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게 될 서인숙을 보면서 자신의 복수를 거둬 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경이 서인숙으로부터 받은 정신적인 피해의식, 마음의 상처는 참 큽니다. 서인숙은 유경을 볼 때마다 인격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고부간의 관계로 발전한 것이니 그 갈등의 강도는 불을 보듯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경은 서인숙 앞에서 당당합니다. 서인숙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과거의 사건'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완전한 역전입니다. 그렇게 도도하고 당당하던 서인숙이 유경의 말 한마디에 움츠러들었습니다. 통쾌한 장면이었습니다. 유경이 서인숙을 앞으로 어떻게 괴롭힐지 주목할 만합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캡처


그러나 복수의 끝까지 가는 순간 유경 또한 파멸되고 말것 입니다. 복수를 향해 나아가는 유경은 정말 위태롭기만 합니다. 탁구가 그토록 행복하기를 빌었던 유경이었건만 정작 유경은 스스로 행복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목수의 화신, 악녀가 된 유경은 정말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말 답답한 지경입니다. 마준이나 유경이 복수를 위해 결혼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자멸로 치닫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던 유경이 선택한 운명입니다. 유경이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될지 브레이크를 걸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유경이 서인숙에게 하는 복수를 통해 통쾌함을 느끼지만 정작 복수를 하면 할 수록 유경은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겠지요. 사실 서인숙과 유경이 화해를 하는 것은 구마준으로 보아서도 참 이상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인숙은 법의 처벌을 받아야만 할 대상이기에, 유경은 어떤 경우라도 서인숙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기를 바랍니다. 유경이 어떤 운명을 선택할지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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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진짜 매력은 예측하기 힘든 결말과 그 비극성!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이제 2회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궁금했던 결말이 다가오는 설레임, 그리고 기대와 함께 끝난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몰려옵니다. 재미와 더불어 인간 군상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까지도 가질 수 있었기에 <제빵왕 김탁구>와 함께 한 시간은 참 즐거웠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드는 것은 2회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도 결말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흥미를 고조시킬 것 같습니다. 2회쯤 남아있다면 드라마의 내용 전개에 대해서 대충 추측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추측의 적중은 해피엔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피 엔딩이 된다는 것은 이제껏 진행되어 온 스토리상의 갈등들이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대체적인 내용 전개와 결말에 대해 예측이 보다 쉬워 지는 것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그러나 2회밖에 남지 않은 <제빵왕 김탁구>는 결말을 예측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 드라마가 해피 엔딩으로만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니 해피 엔딩으로 끈나서는 안됩니다. 만약 <제빵왕 김탁구>가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면 2회가 남은 이 상황에서 갈등을 더욱 깊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2회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피엔딩을 의도하고 있다면 지금쯤 갈등은 조금씩 해소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28회에서 보았듯이 갈등이 더욱 더 깊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단죄, 악에 대한 응징, 악인의 불행 등 변화의 심층적 과정이 필요 없는 즉각적이거나 짧은 시간만으로 충분한 장면들을 만들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빵왕 김탁구>는 이러이러하다는 식으로 그 결말을 생각하다가도 회가 진행될수록 그 방향이 달라지는 예측이 어려운 상황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탁구-유경-마준의 관계가 그랬습니다. 해피엔딩을 염두에 두면서 통속적으로 보다가 크게 당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유경과 마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까지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입니다. 구마준이 아무리 서인숙에 대한 복수를 미끼로 유경을 유혹하고 결혼했다고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마준에게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첫날밤 유경을 홀로 남겨두고 마준이 호텔의 클럽에서 여자들과 어울리는 장면은 이들의 관계를 예측하기 참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마준이 그 악마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유경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운 메피스토펠레스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제빵왕 김탁구>는 단순히 해피엔딩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럴 시간적인 여유도 없거니와 인간들의 관계가 화해와 치유로 나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지만 자기 성찰과 반성 정도만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제가 작가라면 마준이 자살을 선택하게 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시청자들이 이런 그들의 전향적인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큰 의미가 있지 싶습니다. 그러니 비극으로 끝난다고 해도 그리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비극이 되면 좋겠습니다. 필자에게는 단지 그 비극 위해 탁구가 희망의 새싹으로 암시가 되는 정도라면 대만족입니다.


<제빵왕 김탁구>은 끝까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진작 해피 엔딩을 포기했기에 자연스럽게 되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빵왕 김탁구> 어떤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될지 참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비극 속에서 삶을 긍정하며 유쾌하게 살아가는 김탁구의 의미가 어떻게 자리 매김이 될지도 큰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마준과 유경이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마준이 팔봉 선생의 제자가 되면서 마음 속 깊이에서 변화가 싹트리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변한 마준이 서인숙이나 한승재에게 어느 정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판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추측과는 달리 마준은 서인숙을 팔지로 협박할 정도로 그 악마성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유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준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복수의 길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KBS 드라마 포토 박스 사진 캡처


이런 의미에서 마준과 유경의 결혼은 복수심의 결정체라고 할 만큼 복수심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결혼은 사랑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없는 결혼이기에 결국 불행을 예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탁구가 그렇게도 유경의 행복을 바라지만 마준이나 유경은 행복할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사랑이 없는 데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마준과 유경이 묶이는 그 결혼의 형식은 마치 기성세대의 위선과 권위주의를 부수는 전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 그 결혼의 내면에는 복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결혼을 젊은 날의 패기나 반항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일단 이들의 결혼 자체만으로 서인숙이나 한승재에 대한 복수로 충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마준이나 유경이 이렇게 복수심만을 드러내며 사랑 없는 부부관계를 이끌어가서는 안됩니다. 마준과 유경이 단순히 복수만을 위해 결혼을 하고 그렇게 파멸되어 간다면 이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 것입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행인 것은 탁구가 있고 구일중이 있다는 것입니다. 팔봉선생도 그렇구요. 이들이야 말로 마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준의 트라우마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 못지 않게 구일중의 이유 없는 냉대도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구일중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마준은 변화하리라 생각합니다. 유경의 경우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그런대로 치유가 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십 수년만에 만난 아버지가 진정으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위에 성장하면서 겹겹이 쌓여 온 그녀 삶의 고통과 괴로움의 지층들은 만약 근원이 되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면 서서히 치유가 될 것입니다. 변화 없는 서인숙과 한승재와는 달리 유경의 아버지는 변화를 보여주었기에 말입니다.



마준에게도 이런 존재가 있다면 바로 구일중입니다. 유경에게 변화한 아버지의 존재처럼, 마준에게 변화한 구일중은 마준이 변화하는 시작이 계기가 되리라 봅니다. 이미 유경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ㅅ급니다. 마준에게 구일중의 진심을 전해주겠지요. 마준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오랫동안 지켜왔지만 이제는 제발 변화하면 좋겠습니다.탁구와 구일중, 그리고 여기에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있는 유경이 합세한다면 마준이도 변화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인숙이 변화하지 않더라도, 한승재가 악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해도 말입니다.


3회 남은 드라마를 보면 풀리게 되는 과정이지만 괜시리 마준의 변화를 기대하고 또 기대하다보니 이런 넋두리같은 글을 쓰게 되었네요. 속으로 마준과 유경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랬지만, 생각해 보니 듬직한 탁구보다는 내면의 상처로 불안하기만 한 마준의 옆에 유경이가 있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아무튼 팔봉 선생이 3차 경합으로 제시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모두 맛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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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상한 일이지만 구일중을 보면서 만신이 느껴지는 건 왜 일까요? 구일중이 누운 채로 천리를 보는 신통력을 보여주는 것이 만신이 비방을 하여 신통술을 보여주는 것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일까요? <제빵왕 김탁구>에서 이런 모습은 구일중이 처음은 아닙니다. 팔봉 선생이 있었지요. 팔봉선생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고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가진 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주 신비스러운 존재였습니다. 팔봉선생의 이 신비스러움의 아후라가 탁구에게, 마준에게 맞닿으며 무게감과 기품, 그리고 묘한 매력을 만들어 내기도 했구요. 팔봉선생의 화두 같은 1, 2차 경합을 통해 스토리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도 높였습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그런데 이 팔봉 선생을 뒤이어 그의 제자 구일중이 누워서도 천리를 보는 신통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정말 유치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쓰러져 누워 있는 구일중이 탁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마치 영적인 존재가 주인공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종교적인 비의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 드라마는 시대적인 배경이 촌스러움을 느끼게도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촌스럽게 느겨지게도 합니다. 구일중이 누워 천리를 보리라도 누가 생각이나 해 보았을 까요?   


그러다보니 침대에 누워서 천리를 보는 듯한 구일중에 대한 호기심이 이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일중의 신비스로움은 상상력을 동원하게 되면서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돕게 되는 것이구요. 이것은 마치 <구미호-여우누이뎐>의 만신이 그 정체에 대한 굼금증을 유발한 것과 흡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구일중과 만신의 존재 자체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언급한 신통력을 제외하고 구일중과 만신의 몇 가지 공통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외로움

구일중이 거성의 회장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외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가정사와 타고난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주위에서 권모술수를 일삼는 인간들에게 대한 비관적인 인식이나 혐오에 기인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내 서인숙의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도전, 친구 한승재의 배신이 무엇보다도 그러할 것입니다. 짐작컨대 구일중은 붕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무어보다도 구일중은 자신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탁구에게 자기 존재를 자꾸만 투영하는 것 같구요. 그렇다면 만신은 어떤까요? 만신도 참 외로운 인간입니다. 몹쓸병에 걸려 600년 동안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만신은 꼭 인간의 보편적인 외로움을 상징하는 존재같기도 합니다. 몸씁명이라는 그 병,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이 아닐까요?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2.무기력

구일중은 언제나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탁구와 있을 때 웃음을 보여주는 정도입니다. 거성의 회장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운동을 한다거나 자기 체력을 관리하는 모습도 본적이 없습니다. 항상 조용한 모습으로 사무실이나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있습니다. 좋게 보면 품위 있고 과묵한 모습이지만, 좀 나쁘게 말하면 무기력한 남자처럼 보입니다. 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동굴 속에 틀어 박혀 있습니다. 표정연기는 정말 카리스마가 넘치고 비방을 쓰서 신통력을 발휘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무기력합니다. 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집착

구일중은 오직 탁구에게만 집착합니다. 정말이지 병적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두 딸이 있음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마준에게는 보이지 않는 속내를 드러내는 데 인색한 반면에 탁구만 보면 그야말로 표정이 돌변합니다. 아직 이런 차이가 왜 나타는지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이러한 확연한 태도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들이 서서히 드러나겠구요. 만신이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간입니다. 사악한 인간의 간이기에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간이 없으면 만신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구일중에게 탁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면 만신에게 인간의 간 또한 살아가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


이렇게 다소 생뚱맞게 구일중과 만신의 공통점을 살펴보다보니 구일중이나 만신뿐만 아니라 모든 남자들이, 아니 모든 인간들이 참 외로울 수밖에 없고,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삶이 무기력해지는 그런 악순환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게 되는군요. 그럼에도 언제나 그래왔듯이 삶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리셋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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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의 가장 악한 존재는 서인숙과 한승재입니다. 정말 회가 거듭될수록 이들의 악은 용서 받지 못할 지경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의 아킬레스건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지나친 자식사랑입니다. 이 자식사랑과 관련해서는 서인숙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인 까닭입니다. 사실 서인숙과 한승재도 구마준이라는 자식에 대한 사랑 하나만큼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너무나 비뚤어진 자식사랑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KBS 드라마 포토박스 사진 캡처


자식 사랑이란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는 범죄도 서슴치 않는 서인숙과 한승재의 지나친 구마준 사랑을 보면서 비록 극단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자식 사랑에 대한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자식을 위해 부모가 무엇이던 다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식 사랑이란 적어도 자식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독립적인 개체로 자식을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자식사랑에 대한 생각은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히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식이 성장하면서 함께 고민을 나누는 자식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는 견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식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만들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드라마 상에서 서인숙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마준에 대한 자식 사랑이라기 보다는 자기 욕망의 충족이 더욱 강합니다. 그리고 지나친 우월의식의 소산이기도 합니다. 서인숙은 신유경에게 "너 따위가......" 하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구마준이 탁구에게 하는 "거지 같은 녀석이......" 라고 하는 말과 같은 태도와 사고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서인숙의 사고와 태도가 구마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경우로 부모 교육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겉으로는 마준을 위하는 자식 사랑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마준을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는 소유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우월 의식 속에 마준을 가두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준이 서인숙에게 반항하는 것도 그저 자신의 출생의 비밀때문 만이 아닐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속속들이 드러나 있지는 않아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구마준은 거성가의 황태자로 판에 밖히고 형식적인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서인숙은 마준이 어렸을 때부터 거성가를 이어 받을 후계자로서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마준의 삶을 자신의 의도대로 설계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KBS 드라마 캡처


이 지점에서 과연 우리 또한 서인숙의 태도를 자유롭게 비판만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필자를 포함해서 수많은 부모들이 과연 서인숙처럼 자녀들을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리적인 존재로 길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지나친 영어학습 열풍을 비롯한 사교육의 지나친 범람은 결국 자식 사랑이란 말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부모의 욕망들이 충돌하는 강육강식의 세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서인숙의 빗나간 구마준 사랑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교육뿐만이 아닙니다. 자식의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인숙은 마준이 유경과 결혼하려는 행동에 경악합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인숙의 태도를 이해할 만은 합니다. 어떻게 키운 구마준입니까? 그런 구마준이 한낱 보육원 출신의 신유경과 결혼을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서인숙의 입장이라면 어떨까요?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부모고 이런 자식의 선택에 선뜻 쌍수를 들고 환영할까요? 


하지만 서인숙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결국 비판받아야 마땅한 문제는 결국 결혼문제도 서인숙 자신의 욕망 충족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즉 결혼 상대자에 대한 서인숙의 태도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면서도 바로 욕망의 충족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구일중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까지 더해져 구마준에게 집착하는 것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식을 독립적인 개체로 보기보다는 여전히 혈연이라는 탯줄로 이어진 존재로 여기다 보니 언제나 물질적인 풍요, 명예, 사회적인 지위 등 현실적인 가치를 강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나 희망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식의 입지를 좁히고 강요한다면 결코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닌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인숙의 구마준에 대한 집착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교육 문제의 해결과 지나친 경쟁 사회의 완화는 단순히 입시제도나 고용 문제의 해결만이 아니라 총제적으로 우리 사회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총제척인 생각 속에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서인숙의 사고와 태도' 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단지 제도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 자신들의 사고 변화에도 방점이 찍혀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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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우리가 삼형제의 부모라면 과연 어떤 심정일까?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129825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의 삼형제인 건강, 현찰, 그리고 이상은 무엇보다도 결혼 생활에서 상당한 갈등을 겪고 있다. 즉, 부부 관계의 갈등과 이에서 파생되는 고부간의 갈등이 주요 테마이다. 이 삼형제들의 삶을 드라마를 통해 볼 때마다 부모로서의 순경과 과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우리가 이 삼형제의 부모라면 과연 어떤 심정일까?


자식이 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과는 달리 자식의 삶은 그렇게 부모의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부모의 마음처럼이나 자식이 다 잘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이러한 문제, 즉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예를 들면, 사교육 열풍이 그렇다. 결국 이 열풍의 본질은 자식의 출세와 연결되어 있다. 결혼도 이 중에 하나이다. 이걸 나쁘게 볼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의 부모들의 교육열을 칭송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바마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부모과 자식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본질이다. 사랑이야 깊고 넓은 것을 누가 모를 것인가? 그러나 그 사랑도 절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상 부모가 자식을 독립적으로 놓아주기는 아직도 어려울 것이다. 부모의 뜻대로 자식을 양육하고 공부를 시키고 결혼을 시키는 일이 여전히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전통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 걸 그다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부모의 이러한 기대에 별 마찰 없이 적응하는 자식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기대와 실제적인 자식의 삶과의 괴리에 대해 부모들이 좀 더 일찍 인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자식의 능력을 넘어 지나친 기대를 갖는 것은 사랑이다기보다는 욕심에 가깝다. 욕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자식을 보는 이러한 생각이 보편화된다면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가 낳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 될 수가 있지 않을까?


결국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의 피해는 고스란히 부모 자신들에게로 돌아온다. 독립심을 일찍부터 기르는 교육이 부재하다 보니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은 모유기의 아이처럼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손을 벌리게 되는 것이다. 결혼도 일정 부분 부모가 개입해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혼수가 그런 것 중에 하나다.




*

수상한 삼형제들의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할 것이다. 자식들에 대한 기대와 며느리들에 대한 실망이 교차하면서 부모로서의 순경과 과자의 마음은 한시라도 편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심정을 백번 헤아리고 남는다. 건강이 청난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연의 과정은 어머니인 과자의 심정을 찢어놓기에 충분하다. 아버지 김순경은 속으로 삭여서 그렇지 그 심정이야 마찬가지 일 것이다. 과자가 막내인 이상을 며느리 어영과 사돈인 범인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추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부모의 심정은 이런 것이다. 자식을 키워 놓았더니 며느리에게 빼앗이고, 자식을 애지중지 키워 놓았더니 여자에게 사기를 당하는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부모들 중에서 삼형제들의 부모인 순경과 과자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부모가 과연 있을까? 과자가 좀 지나친 경우는 있지만(과자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과자가 자식이나 며느리로 인해 가슴을 지워 뜯는 장면들은 자식의 세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모의 삶은 따로 있어야 한다고 본다. 순경이 과자와 함께 시간을 내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부모가 지향해야할 모습이 아닐까 한다. 부모의 삶과 자식의 삶이 혼란스럽게 섞여있는 우리 사회에서 과감하게 부부 중심적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것도 잘못인지는 모른다. 반드시 전통을 버려야만 할 당위성도 없고 또 전통을 완전하게 버린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쓰레기로 추락시키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기본적인 예나 효로 지속되어야 한다. 자식을 낳은 부모로서 그 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의 삶에 지나치게 끼어들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 보다 부부 중심적으로 생활하면서 노년을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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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폭탄 발언 정말 잘했다!


이미지 출처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6181


2010년 동계올림픽 피규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향한 좋은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사다 마오 보다 약 5점이 앞선 점수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오는 26일에 벌어질 프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금메달을 목에 걸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 국민들에게 좋은 소식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아래의 글은 이전에 올린 글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우리 국민에게 한 쓴소리입니다. 우리가 김연아 선수에게 열광하지만 그 열광이 때로는 국민들의 진심과는 달리 독이 되는 경우입니다. 김연아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쓴소리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꼭 피겨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전반, 아니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조언이 되지 싶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큰 약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맞아 김연아 선수의 쓴소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김연아 선수 파이팅~~!

   

김연아의 우승은 참 의미가 큽니다. 필자는 피겨스케이트에 대해서는 무지하므로 피겨 스케이트 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연아 선수는 경기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입을 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경기와 연습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아, 하나 빠진 것이 있습니다. 김연아는 누구보다도 기부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부 천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김연아 선수가 경기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 입을 열었습니다. 일본에서 안도 미키에게 역전 우승을 한 그 다음 날 갈라쇼가 끝 난 직후 한 인터뷰에서 김연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틀이 두 달 같았다”

“특히 한국 관중들의 관전 문화가 익숙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내가 점프를 하기 직전에도 소리가 나더라. 6분 동안 몸을 푸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고, 기권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가끔 피겨를 많이 보지 못했던 분들이 337박수 등을 치실 때면 당황스럽다”

“피겨는 응원보다는 관람을 하는 스포츠다. 그런 응원을 하다 보면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볼 수 있겠는가. 나에게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다”

-세계일보 인터넷 기사 참조-


김연아는 저 만큼 앞서가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는데 피겨를 관람하는 우리의 응원문화는 후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속이 상하고 당혹스러웠으면 이렇게 부담스러운 말을 했겠습니다. 용기가 없으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 응원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정말 부담스러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새겨 들어야할 충고입니다.


좀 비약적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연아의 이 발언이 우리의 끼리끼리 문화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깰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지나쳐서 끼리 속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여긴다거나 근거 없이 깎아내리고 모욕을 주는 것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끼리끼리 문화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 집단 이기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 국가라는 이름만이 철저하게 강조될 때 가족 이기주의, 국가 이기주의로 변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1등과 최고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의식을 깨었으면 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1등을 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국가적으로도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1등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1등 외의 선수들에게 보내는 박수는 인색한 것 같습니다. 만약 김연아 선수가 실수로 등외에도 들지 못했다면 어떠했겠습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겠지만, 속으로는 1등 이외에는 의미를 두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개콘을 보니까, "1등만 기억하는 사회" 라고 하면서 울분을 토하는 '우리를 술푸게 세상' 인가 하는 코너가 있더군요. 김연아 선수가 우승을 하던 탈락을 하던 김연아 선수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사랑하고 갈채를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이 1등 지상주의는 스포츠계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이 아닙니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사회 전제가 이러한 질곡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1등 지상주의라는 표현을 조금 후퇴시켜야 하겠지만 '학벌 지상주의'라는 표현은 적합할 것입니다. 학벌 지상주의는 대부분의 부모들에게는 예외 없이 적용되는 현상입니다. 이 학벌 지상주의가 만들어 내는 경제적인, 정신적인, 육체적인 거품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식의 능력에 대해 자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모두들 자식들이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습니다. 너무나도 무모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언급한 그 337 박수가 꼭 사교육 열풍과 같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스포츠는 보면서 즐기는 것이지 우승에만 집착하여 배타적인 응원을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들의 능력에 맞게 학교를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삶의 진정한 의미이고 즐거움이지 능력 이상을 강요하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말로 학벌 사회가 아닌 각자의 능력에 맞게 삶을 살아가는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경기장에서 김연아 선수에게 신명나게 응원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연아 선수에게는 독이 되었습니다. 진심이 반드시 상대에게 도움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1등만을 강요하는, 좀 더 양보해서 좋은 학벌을 강요하는 부모의 마음이 아무리 진심이라고 해도 자녀들에게는 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벌을 우선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큰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사교육으로 밀어 넣는 이 광란의 독, 언제 끝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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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 줄리엔은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을까?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251506441001


몇 일전 줄리엔과 관련한 포스트(지붕킥, 줄리엔을 높이 평가해야 할 이유?)를 올렸다. 원어민 교사인 줄리엔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를 언급한 글이었다. 원어민과 관련하여 줄리엔의 미덕을 생각해 보았지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좀 더 넓혀서 외국인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줄리엔의 의미는 더 큰 폭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줄리엔의 우리말 실력이다. 줄리엔이 우리말을 유창하게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을 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문화를 상대적으로 이해한다는 입장에서 특히 그렇다.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에 대해 너무 절대적으로 취급하지 않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아무리 세계화다 글로벌화다 하지만 문화는 상대적이다. 언어도 문화의 일부인 만큼 상대적으로 보아야한다고 본다. 물론 영어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크다. 그러나 아무리 영어의 영향이 크다고 하지만 영어를 생존의 수단으로까지 인식하게 되는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영어 사교육의 바람을 궁극적으로는 영어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바라보는 국가가 조장한 측면이 너무 강하다. 그러면서도 국가가 나서서 (영어)사교육의 열풍을 가라앉히려고 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라고 본다. 줄리엔이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듯이 적어도 문화를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글로벌 스탠더드한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부족하나마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주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면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화적인 자부심, 언어에 대한 자부심을 너무 내팽캐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았으면 한다.
 

둘째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이유에 관한 것이다. 줄리엔은 인간적이다. 과연 줄리엔이 한국어를 실용인 차원에서 배웠을까? 우리가 토익과 토플 점수를 따서 취업을 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영어를 배우듯이 줄리엔도 그렇게 한국어를 익혔을까? 그건 아니라는 판단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데 시험과 점수로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국가적인 교육적인 장치를 통해 한국어를 배웠을까? 그건 아니라도 본다. 그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문법 중심의 영어를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 배우지 않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강압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이러한 현실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영어가 국가 경쟁력이라는 표어는 영어를 이데올로기화하는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10721052137891



셋째로, 다른 방식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좁은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인 삶이지만 자신의 나라를 벗어나 또 다른 문화를 접해 본다는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영어는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영어의 습득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스스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른 예를 들자면 국가 경쟁력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의 사람들이 그렇다. 외교, 국제 비즈니스, 무역, 정치 등 국제 분야에서 활동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영어가 중요하고 또 그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스스로 영어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러하기에 영어조기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조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모두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국가 경쟁력 차원이라면 영어를 이데올로기의 주입처럼 대규모적인 차원에서 획일적으로 교육하기 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선별적인 영어교육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넷째, 줄리엔의 인간적인 면이다. 줄리엔은 한국어를 통해 사랑을 실천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한국어를 배운 목적이 의사소통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언어를 통해서 인간적인 교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실용적으로, 시험으로, 점수를 위해 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소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언어가 인간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면 영어 그것 좀 모르면 어떤가라는 생각이 든다. 바디 랭귀지로 짧은 영어로 서로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영어라는 거품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해보는 생각이다.


이렇게 줄리엔은 원어민 교사로서 이상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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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 사회에 날리는 통쾌한 하이킥들


http://movie.daum.net/tv/detail/photo/view.do?tvProgramId=54547&photoId=508091&order=default



<지붕 뚫고 하이킥>은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던져주고 있다. 사회를 향해 하이킥을 날린다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이킥들은 무엇일까?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순재가 날리는 하이킥

순재를 보는 생각은 다양할 수 있다. 이 다양한 해석 가운데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무엇보다도 노인의 활발한 삶이 아닐까 한다. 우리사회가 고령화사회이지만 노인복지나 노인에 대한 대우는 빈약한 실정이다. 가진 것이 없다면, 늙는 다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그야말로 사회적인 약자이다. 자식을 위한 희생도 좋지만 부부 중심의 삶도 중요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노년을 위한 경제적인 안정 때문에 그렇다. 73세의 노인이 연애를 하고, 기업을 왕성하게 이끌어 가고, 가정에서 밀려나지 않는 것은 결국 경제적인 안정 때문이 아닌가? 순재의 활동적인 모습은 우리 사회의 노인에 대한 태도에 대해 강한 하이킥을 보내고 있다.



보석이 날리는 하이킥

보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무능한 가장의 모습에 대한 풍자나 해학이라기보다는 똑똑하게만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하이킥으로 여겨진다. 이 보석의 하이킥에 대해서는 이전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2010/01/28 - [드라마/지붕뚫고 하이킥] - 지붕킥, 얼간이들에게 날리는 보석의 하이킥?)



준혁이 날리는 하이킥

사교육의 잘못된 풍조에 대한 하이킥을 날린다. 언제나 사교육과 부모의 간섭에 억눌려 있는 학생들의 현실과는 달리 반항적이다. 과외선생인 정음에게 '너' 라고 하는 그 모습이 사실 통쾌하기까지 하다. 정음이라는 개인에 대한 건방짐이나 무례함이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사교육의 모순에 대한 준혁의 하이킥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세경이 날리는 하이킥

세경의 하이킥은 가장 파괴적일 것 같지만 동시에 사회의 벽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돈 없고 연줄 없는 자들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란 걸 세경이 직접적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세경이 성공하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지만 동시에 돈이나 학벌을 통한 것이라면 사회로의 편입이지 그 벽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성공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공고한 학벌 사회의 틀을 깰 수 있는 수단이라면 너무 좋겠다. 스텐레스김이 세경을 어떠한 위치에 놓이게 할지 너무 궁금하다.



글쓴이가 생각한 몇 가지 하이킥들을 적어 보았다. 등장인물 모두가 날리는 하이킥이 의미심장하지만 몇 사람의 하이킥만을 살펴보았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대중문화 속의 그 무엇이기보다 그 곳을 벗어나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간절한 희망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더욱더 애착이 간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그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업은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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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가족, 우리나라 귀화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인 가족이 우리나라 귀화했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인 가족이 우리나라에 귀화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인 가족은 야나노세 마사시 가족으로 가족사진으로 추측컨대, 야나노세씨 부부와 3남 2녀의 자녀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왜 우리나라로 귀화하기로 결심했는지 그 이유가 말이다. 

우선,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의 현실은 교육 문제로 이민을 떠나거나 어학연수나 유학으로 기러기 아빠들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다수의 부모가 교육환경이라고들 말한다. 캐나다나 미국등의 교육 환경이 우라나라보다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사시 부부가 자녀의 교욱 문제를 분명히 고려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귀화를 했다는 사실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람들도 스스로 떠나는 마당에 자신들의 모국인 일본을 떠나 우리나라로 귀화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모국인 일본만 하더라도 교육 환경이 어떤지는 구체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보다 부담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사교육이 그다지 심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도대체 삼남 이녀의 자녀 교육에 어떤 철학이나 견해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나라를 선택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물론 마사시 부부는 이러한 한국의 교육 환경이나 교육현실에 대해 분명 생각했을 것이고 대책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사교육, 입시지옥, 교육 불평등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생활해 갈지 자못 궁금하다. 

둘째로는, 일본과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상당한 갈등을 겪어왔다. 과거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갈등의 핵심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고 역사 왜곡을 서슴치 않는 일본에 대해 한국인의 감정은 여전히 좋지만은 않다.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생활하거나, 한국인이 일본에서 생활하는 것은 어느정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일교포의 삶이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본 가족의 귀화는 불편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삶의 곳곳에서 당황스런 경우를 많이 당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잘 극복해 갈지도 자못 궁금하다.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가 서로 이해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인 가족은 이제 한국인 가족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귀화하기까지 꽤 긴 시간 동안 우리나라에 체류해 왔을 것이고, 우리나라에서의 생활에 익숙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으로 사는 것과 한국인으로 사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한국인으로 잘 적응해 가기를 바란다. 또 이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본인들에게 대한 인식이다.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한국인으로 따뜻하게 받아주었으면 한다. 외국인 백만영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연전히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여전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는 단일 민족이란 생각을 깨고 세계 시민으로서 성숙하고 개방된 자세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번 일본인 가족의 귀화를 통해서 어떤 인종이던지, 어떤 과거사를 가진 민족이던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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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는 한 때 우리나라의 국민차였다가 이제는 단종이 된 티코가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페루 제 2의 도시인 아레끼바(Arequipa)에는 경차 택시의 90% 이상이 티코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 티코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면서 흐뭇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페루는 우리보다 가난한 국가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 국가의 국민들이 티코를 탄다고 하니 그거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대체로 경제적인 능력으로 부자와 빈자를 구분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중고 티코는 별 쓸모도 없는 차입니다. 만약 중고 티코를 타고 다닌다면 검소하고 자연친화적이며 실용적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사회적인 지위가 낫다거나,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거나 하는 식의 좋지 않은 생각을 하기가 일반적입니다. 이전의 포스트 경차 모는 남자가 민망하다? 를 그 예의 일부에 불과합니다.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큰 것, 많은 것, 좋은 것을 선호하는 것이 추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좁은 땅덩어리에도 불구하고 큰 차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차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사용 수단이라기 보다 어느 정도의 자기 과시가 작용합니다. 또한 남들이 그러니 나도 그 쯤은 되야 하지 않는가는 허세도 작용합니다.

이러한 과시나 허세는 자동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보다 잘나야 된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팽배해 있어 어린 시절의 조기 교육을 비롯한 사교육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거품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교육 열풍은 평생 동안 대를 물려 이어지는 고질적인 우리사회의 병폐가 되고 있습니다. 사교육 시장은 이제 세계로 확대되어 기러기 아빠들이 양산되고 자녀들의 교육에 부모들이 목을 매다는 형국으로 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삶의 모습인지 진지하게 물어 보야 합니다. 이러한 사교육은 결국 우리사회의 학벌주의를 더욱 강화 시키면서 다양한 사고, 창조적인 능력을 막는 학벌 지상주의를 낳고 있습니다. 무조건 학벌이 좋아야 대접받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는 너무나 스트레스를 많이 만들어 내는 사회입니다. 지나친 경쟁과 이에 다른 학벌주의 만연이 개인의 전 일생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행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결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없으며 행복한 개인들의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불이 되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다. 끊임없이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고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 남보다 경제적으로 더 많이 퍼부어야 하는 현실이라면 아무리 소득이 높아져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다. 과장되게 말하면 국가적인 재앙입니다.  

중고 티코를 즐겨 타는 페루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허세가 없어 좋습니다. 과시가 없어 좋습니다. 넉넉허게 살아가는 모습이 좋습니다. 어디 행복이 물질에서만 있겠습니까? 학벌에서만 있겠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 못해도, 학벌이 낫아도 천천히 여유있게 작고 허름한 티코를 타고 다니는 페루인들의 삶이야 말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생각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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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언제 이토록 천박해졌는지 모르겠다. 여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외모라도 되는 듯이 성형 수술의 삶의 필수 코스가 되고,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이 학벌이 되어 사교육 시장을 무지막지 키우면서 스스로의 함정을 파고, 명품이 인간의 품위를 재는 잣대라도 되는 듯이 명품을 두르는 명품족들이 판을 치드니, 이제는 남자를 판단하는 데 경차는 민망할 정도라니 우리 나라가 왜 이렇게 저질화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추구하는 것들은 잘나고, 고급스럽고, 높고, 고상한 것들인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은 그야말로 천박하기 이를 때  없다. 필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런 포스트를 하노라면 언제나 공범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임을 스스로 자처해는게 가슴 아프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천박함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이번 국무총리 지명자, 아니 임명장을 받았다니 국무총리인가... 이 분이 참 고상한 사람인줄 알았다. 사회의 지도자로 그나마 활동할 수 있는 인물로 알았다. 그런데 청문회를 거치고 보니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세상에나, 어찌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있나.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그래도 국무총리가 되는 세상이니,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할말이 없다. 사람 실수야 당연한 것인데 뭐 그리 대단하냐고 위대한 이명박 각하께서 그 통큰 마음으로 혜량하신 모양인데......이명박각하께서 2PM 박재범 군에도 그 통큰 아량을 한 번 보이시면 어떨까? 

오래전  개그 콘스트에 "영국의 순수한 혈통 고귀한 귀족 세바스찬 주니어 2세~~" 어쩌구 하면서 천박한 짓을 하던 캐릭터가 오늘날 꼭 대한민국의 천박성을 단적으로 패러디하고 있는 느낌이다. 순수한 혈통은 무슨~~ 고귀한 귀족은 무슨~~ 그런 고귀한 짓을 하시는 분들의 행태란 참으로 하수구 냄새가 저리가라고 할 정도다. 국민 뒤에서 무수한 악취 탱탱볼을 터드리고 장난질을 해왔던 것이다. 존경할 분 하나 없다고 한 들 욕할 자 있을까!

아래 캡처한 기사의 내용은 그리 부정적인 내용은 아니다. 20~39세의 미혼남녀 1,322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체로 이성에 대한 인식이 자동차와의 대소나, 국산/외제와 관계없이 사람 자체의 호감도를 보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단적인 예가 젊은 나이에 외제차를 타는 이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훨신 높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답변이 신뢰를 상실하는 것은 여성의 84.31%가 첫 데이트에서 경차를 타고 나오는 상대에 대해 "솔직히 민망하고 차에 타지 않을 것 같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외제차에 대한 인식 자체가 가식적이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도대체 민망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 좁은 땅덩어리 위에서 대형차만 타고 다녀야 민망하지 않다는 말인가? 이러한 인식에는 크고, 높고, 넓고,풍족함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보기좋은 것이 촣다고 하더라도 경차가 '민망'할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민망할 정도라니 우리 사회의 인간과 부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검소함과 절약과 노동을 그 근본적인 가치로 해서 탄 생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가 얼마나 부에 대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정신에 기반하고 있는 지는 보여준다. 마치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사회주의 기본서인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막스 베버가 지적하는 자본주의적인 정신(막스 베버는 유일한 요소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뿌리가 청교도적 삶과 정신에 있닿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이 자본주의는 여전히 천박한 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베버가 인식하고 있는 자볹의 정신을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단 말인가? 말만 자본주의라고 하지만 참으로 민망하다. 진정으로 민망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설문에 응답한 84.31% 의 응답자들이야 말로 민망하지 않을 수 없다. 민망한 것은 따로 있는 것이다.

이제 인간과 삶과 부와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을 좀 바꾸자! '민망' 하단 말 함부로 쓰지 말자! 민망하단 말을 들어야 하는 인간들은 따로 있다. 경차를 민망하다고 하는 그 여성 자신들이 '민망' 의 대상임도 제발 깨달았으면 한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