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선덕여왕

덕만과 춘추 vs 김대중, 김영삼




드라마 <선덕여왕>의 47, 48회의 미실의 정변을 보면서 12.12 군사 쿠테타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역사는 반복한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포스트를 하나 올린게 바로
이제 미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나? 이다. 그리고 잠깐 언급을 했지만 미실의 정변이 실패하는 최대의 요인이 바로 '춘추와 덕만의 화합' 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미실의 정변에 대해 덕만과 춘추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르게 움직였다면 미실의 정변은 분명 성공했으리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춘추의 입장에서는 분명 미실의 힘을 빌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춘추는 오히려 권력에 당장 욕심을 내지않고 덕만을 돕기로 함으로서 힘을 모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을 차지하는 것도 물이 흐르는 것처럼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1980년의 봄 대한민국에 민주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1979년 박정희가 서거하면서 권력의 공백기가 생기면서 민주화의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전두환을 비롯한 군부 세력이 이 틈을 헤집고 들어와 쿠테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이 쿠테타의 이면에는 마치 선덕여왕의 덕만과 춘추처럼 화함하지 못한 김대중, 김영삼이라는 재야 투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항상 협력하면서 동지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든 두 김씨가 서로 그 틀을 깨면서 권력을 위한 경쟁자로 나선 것이다. 이것이 12.12 쿠테타의 빌미가 되면서 민주화의 큰 물줄기가 다시 역류하고 만 것이다. 

12.12 쿠테타의 연장 선상에서 전두환이 물러나고 1987년 6.29선언으로 직전제 개헌이 되면서 민주주의가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1980년의 봄 처럼 김대중, 김영삼 두 김씨는 다시 한번 화합을 하지 못하고 대통령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권력을 12.12 쿠테타 주역의 한 사람인 노태우에게 내주고 만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 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김씨의 권력욕 때문에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버 더 뒷걸음치고 만 것이다. 


이후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는 번갈아 가며 대통령이 되었다. 인간의 권력욕이 얼마나 질기고 모진 것인지 알 수 있다.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염원보다도 그들에게 권력욕이 더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력을 차지 한다는 것이 물처럼 흐르는  순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들은 덕만과 춘추처럼 협력과 화합을 했을 것이고 훨씬 앞서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인데 말이다. 역사란 지나놓고 보면 그 속에서 행한 인간의 행위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알게 된다.  

만약 덕만과 춘추가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처럼 권력에만 눈이 멀어 서로 경쟁의 관계로 들어섰다면 미실의 정변은 12.12 쿠테타 처럼 성공했을 것이다. 단언컨데 춘추는 잠재적인 왕위 경쟁자인 덕만의 편에 서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권력을 지배하고 있던 미실의 편에 섰을 가능성이 더  높다. 즉, 미실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권력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춘추는 미실의 편에 서지않고 덕만의 편에 섰다. 마치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가 화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덕만과 춘추가 손을 함께 합친 것이다.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가 노태우씨 이후에 번갈아가며 대통령이 되었듯이 덕만 공주 이후 춘추의 시대가 다가올 수 있는 화합이었던 셈이다 이와는 달리 김대중과 김영삼이 오랜 민주화 투쟁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가 민주화를 더 후퇴시키고 말았다.


우리가 단순히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를 통해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교훈을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선덕여왕>이 단순히 드라마이지만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면에서 참으로 고무적이다. 만약 덕만과 추춘가 화합하지 못했더라면 미실은 정변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화합과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의 교훈으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