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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사랑을 믿어요

사랑을 믿어요, 우진-윤희의 결혼 이루어질까?

 

<사랑을 믿어요>(52회)에서 어머니 윤화영의 반대에 부딪혀 윤희와의 결혼이 불가능해진 우진은 마침내 미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 우진과의 결혼 약속을 깬 죄스러움에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러온 윤희로부터 큰어머니의 폐암 소식을 듣게 되고, 이 소식을 빌미삼아 몇일간 미국행을 연기하게 되는데, 이렇게 연기하고 있는 사이에 윤화영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54회).


윤화영을 변화시킨 것은 극적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조금씩 누적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경우에고 윤화영의 변화에 개연성을 제공해줄 만한 충분한 내적동기가 있는데 우진과의 ‘관계’ 가 그 중심에 있음이 분명하다. 윤화영은 영화배우로 우진을 자신의 배로 낳고도 제대로 기르지 못한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못한 아픈 과거가 있다. 그런데 이나마 끝이 아니었다. 다시 우진은 미국행을 선택하고 10년을 미국생활을 하였으니 이 모자의 관계 복원은 요원할 수 밖에 없었다. 이 10년간의 미국생활은 아마도 우진의 어머니 윤화영에 대한 반항이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남의 손에 키워지고 자라서도 미국에서 생활한 우진은 훼손된 모자관계의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조금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그나마 우진이 이런 반항을 억누르고 지극히 정상적인 젊은이로 성장한 것은 그가 미국에서 배운 음악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진에게는 이 어린 시절에 얼마나 엄마의 존재가 절실했을까? 윤화영을 어머니로 받아들일 수 있기까지, 미국생활 후 귀국하고도 집에 들어가지 않은채 우진은 윤화영의 가정부로 있던 철수와 철숙의 어머니였던 실질적으로 자신을 키운 그녀를 어머니로 인정하고 있을 정도였다. 우진이 미국에서 귀국하고도 귀국 사실을 부모에게 감춘채 지냈으니 부모에 대한(특히 윤화영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컸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미지출처: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67357 (일부 캡처)



이렇게 우진으로부터 어머니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윤화영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한창 영화배우로 잘 나갈 때 왜 그토록 우진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는지 이해할 수는 있다. 배우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면 그 소원한 관계의 정체를 윤화영의 입장에서 이해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윤화영의 남편 김수봉에게 화살이 돌려진다. 도대체 우진의 아버지 김수봉은 왜 우진을 키우고 훈육하고 교육시키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 의문이다. 당시 김수봉이 유명한 TV드라마 작가였긴 하지만 영화배우로 바쁜 윤화영과는 역할 분담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인기이거나 괴팍한 작가라고 해도 글쓰고 잠만 자는 생활을 했을까? 드라마의 특성상 김수봉은 매일 시간에 쫓기긴 했겠지만 그렇다고 하루종일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보면 김수봉이 지하에서 생활하면서 윤화영의 냉혹한 취급을 당하는 장면들도 따지고 보면 무절제하고 난봉질 하던 젊은날 김수봉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직 우진의 비난이 윤화영에게만 가해지는 것에는 균형감을 상실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이것도 일종의 가부장적인 작가의 편향된 시선일까? 어머니 윤화영에 대한 우진의 원망이 크면 클수록 윤화영의 가슴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욱 깊어지고 깊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모자간의 상처가 조금씩 봉합되어 가는 과정에 돌출한 우진과 윤희의 결혼 문제는 윤화영에게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다.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자식인 우진에게 다해주고 싶은데 결혼은 마음에 너무 걸리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의 아니고 품을 떠난 자식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어디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이 이성이나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던가? 인정이고 생물적이며 (우리의)전통과 잇닿아 있지 않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의 결혼에 무조건적으로 지원만을 할 수 있을까?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모의 진실한 마음과 통하기도 한다. 자식이 모르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그렇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윤화영의 마음을 그렇게 보고 싶다. 오랫동안 자신과의 소원한 관계로 제대로 어머니의 구실을 해주지 못했는데 우진의 아내만이라도 그럴싸한 아가씨로 붙여주고 싶은 것이 윤화영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윤희를 “그럴싸한 아가씨“ 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머니 윤화영의 마음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사촌간(피가 섞이지 않았지만)인 것 자체가 개운하지 않았던 것이다. 


54회에서 윤화영의 결단만이 남았던 상황에서 윤화영이 결단을 했다. 윤희를 예비며느리로 리스트에 올리고 한 번 공식적으로 만나보고자 한 것이다. 이런 결단의 일련의 과정은 윤화영의 변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차귀남의 말이 맞다. 부모가 자식을 이기려고 하는 자체가 넌센스다. 자식은 자식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그 자식-부모의 관계는 깨어질 수 없는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