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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지붕뚫고 하이킥

지붕킥, 준혁의 방 구멍은 어린 시절 동심으로의 통로?


지붕킥, 준혁의 방 구멍은 어린 시절 동심으로의 통로?


                                                       이미지 출처:위키피디아


재미있는 포스트를 읽었다. 질풍마스터님의 포스터 ‘<지붕 뚫고 하이킥>의 준혁이 방에 방문을 달지 않는 이유 라는 제목의 포스터였다. 재미있는 해석이었고,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드라마 해석을 이렇게 다양하게 해서 새로운 안목을 얻게 하고 읽을 거리를 풍성하게 해주어서 좋다.


준혁의 방구멍과 관련해서 필자도 궁금해온 터인데, 그 이유는 일단 젖혀놓고 그 구멍에 대한 준혁의 입장을 먼저 언급해 보자. 준혁이 그 구멍에 대해 불평이 없다는 것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창 반항적이고 이성에 호기심이 강한 고등학생이라면, 심장에 총을 맞은 것처럼 과연 자신의 방에 큼직한 구멍이 뚫려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드라마상의 상징으로 보기에도 어려운 부분이다. 드라마라고 하지만 이 구멍은 재미라는 차원에서만 설득력이 있을 뿐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준혁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것이 아닐까?
 

일단 드라마 상으로 준혁이 이 구멍에 대해 이렇다 할 불평을 하고 있지 않는 이상 구멍에 대해서 무슨 말을 덧붙이기도 부담스럽다. 또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지붕뚫고 하이킥을 날릴 만큼 과장된 설정을 그 장점으로 하고 있으니 만치 궂이 준혁의 태도에 시비를 걸 필요도 없다. 시츄에이션 코메디가 아니던가?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되겠다.


이미지출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58


그런데 필자의 쓸데없는 호기심이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구멍이라면 모가 난 사각형보다는 둥근 원형의 구멍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원형과 사각형은 디자인의 면에서나, 실용성에서나 아주 상반된 기능을 제공한다. 좀 더 나아가 심리적인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직선으로 구성된 사각형은 날카롭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육체적으로도 상처를 입기가 쉽다. 이에 반해서 원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모서리가 없기에 출입하면서 상처를 입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농촌에서 둥그런 산과 강과 구름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도시의 아파트 속에서 무수한 사각형의 건물과 직선의 도로와 사각형의 간판들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사이에는 심리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도시 사람들이 논리라는 직선에 익숙하다면 농촌사람은 감성적인 원형에 익숙하지 않을까? 그러니 도시 사람들에 비해 논리적인 면은 부족하지만 감성적인 면은 풍부하지 않을까?


이러한 모습을 세경과 신애 그리고 해리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어리버리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상처주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세경과 신애와는 달리 해리는 그야말로 지붕뚫고 하이킥이다. 그칠 것이 없다.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쉽게 말을 내뱉고 세경과 신애에게 마음 상처를 주기 일쑤이다. 직선의 날카로움이 몸에 배인 아이다. 동글 동글한 외모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시골아이와 도시아이의 극단적인 차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http://artsnews.media.paran.com/news/52029



이러한 장점이 있는 원형을 사용하지 않고 왜 준혁의 방 구멍을 사각형으로 만들었을까? 쥐구멍을 생각해도 원형이 떠오른다. 맨홀을 생각해도 원형이 떠오른다. 사각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집의 문도 원형이다. 다 원형인데 왜 준혁의 출입 구멍은 사각형일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그렇기에 원형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그만이겠다.


준혁의 방에 출입 구멍이 붙어있는 것은 너무 재미가 있다. 시트콤 <지붕둟고 하이킥> 식의 황당한 언급을 하자면, 준혁의 방 구멍이 개나 고양이 구멍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준혁의 방을 구멍을 통해서 출입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개나 고양이 꼴이 된다고 하면 지나칠까? 헌데 어쩌겠나. 개나 고양이 꼴로 보이니 말이다. 오히려 익숙하지 않아 개나 고양이보다 못하다(?)는 느낌도 팍팍 와 닿는다.


왜 이렇게 개나 고양이 꼴로 방을 드나들어야 할까? 질풍마스터님의 글에 의하면 순재의 회사 계약건과 관련된 일로 과거의 라이벌 박경림이 계약 상대방의 사모님으로 수모를 당한다. 이에 “현경은 끝내 폭발하며 준혁방 벽에다 분노의 하이킥을 날리는데 얼마나 세게 찼는지 벽에 구멍이 다 나버렸다. 조금 과장된 설정이지만 어쨌든 그이후로 그 구멍을 준혁의 방 출입구로 사용해왔다.” 고 하고 있다. 이걸 그대로 출입 구멍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시트콤에 맞는 재미있는 설정이다.

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ut=1&name=/news/entertainment/200912/20091231/9c175115.htm


그런데 사람들이 스스로 개나 고양이를 자처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생각의 유연성이라고 할까?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 괴팍한 짓거리라고 해야할까? 달리도 이런 구멍을 상상했을까? 아니면 개나 고양이의 처지를 체험해 보기 위해서일까? 이런 이유 뿐일까?


어린 시절의 동심이 기억나는가? 좁은 구멍으로, 박스로 파고들던 우리들의 추억들을. 그로고보니 그건 개나 고양이의 구멍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들의 어린 시절 아지트 같은 곳은 아닐까? 만화책이 있고, 컴퓨터 오락이 있고, 유치한 생각들이 싹트는 그런 곳. 그런데 그곳에서 현경이 공부만을 강요한다면 그건 별 소용이 없을 듯도 싶다. 서울대가 아닌 철없는 서운대 정음에게도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그러고 보니 준혁의 방은 어떤 어른들이라도 아이들처럼 머리를 낮추고 엎드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세상이다. 근데 준혁은 고등학생이잖아! 교감인 자옥도 철부지 공주인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