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지붕뚫고 하이킥

지붕킥, 순재가 진정한 주인공인 이유?

 

지붕킥, 순재가 진정한 주인공인 이유?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265970


한 국가의 60대 이상 인구가 15%가 되면 그 사회를 grey society라고 합니다. 노령사회라는 것이지요. 노령 사회는 그에 맞추어서 실버산업이 발달하면서 경제적인 동력이 얻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 인구의 증가로 복지의 부담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은퇴후 복지 제도의 정착은 선진국을 판단하는 주요한 잣대가 아닌가 합니다.


노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가 이러한 복지의 관점에서 과연 선진국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생각은 다시 구체적으로 나누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복지정책이 선진국인가 하는 문제와 다른 하나로 노인 자신의 파워가 강력해서 은퇴이후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경우에든 만족스럽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지만 일단은 앞으로의 글의 단초로만 삼고자 합니다.


이전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그랬지만 <지붕뚫고 하이킥>의 순재는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순수하고 잘 생긴 사위 보석을 똥 취급하는 듯한 노인 순재의 모습에서 완고한 영감쟁이의 이미지를 느끼기는 하지만 노령사회에서 그런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느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30대 중 후반 이상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이전에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의 '대발이 아버지' 의 부활이자 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발이 아버지' 는 대가족 제도하에서 엄한 아버지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유교적인 가부장제라고 비판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아버지와 대척점에 있는 존재가 민주적인 사고를 가진 며느리 하희라였습니다. 당시에 이 드라마가 약 60% 에 가까운 평균 시청률을 자랑했는데, 그 이유가 이러한 대결적인 구도가 우리의 삶과 너무나 익숙했던 데 기인하는 것이라 봅니다. 아무튼 순재는 그 대발이 아버지의 부활이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부할만이 아니라 진화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진화' 말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변화한 사회에 적응한다는 면에서는 진화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2251903531001



나이가 들면서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은퇴하는 삶의 경로를 밞으면서 노인이 된 분들은 대체로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의 중요한 척도 중에 하나인 돈을 쥐어 잡고 있다면 그만큼 그 영향력은 잃지 않는 것입니다. 또 권력이나 명예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를 일반적인 서민들에게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서민들의 경우는 대체로 고만고만입니다. 물려줄 돈도, 사회적인 명예도 없습니다. 나이들어 아프기라도 하면 차마 하기 싫은 말이지만 '애물단지' 로 전락하고 맙니다. 한국사회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정말 유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효'라는 개념이 많이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설령 효자 자녀들이 부양을 해준다고 해도 그것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부담스럽습니다. 사회의 성격이 그만큼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노인들은 당황스럽습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복지 제도가 확충이 되어서 자녀의 도움없이도 나이들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걱정이 없는 복지 사회가 참된 선진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복지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부족합니다. 빨리 노인들이 걱정없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 복지망이 구축되면 좋겠습니다.


노인 개인적인 경우에도 자신들의 노후의 삶보다 자녀들의 교육이나 미래의 삶에 투자하면서 미래의 삶이 휘청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사교육 문제의 해결과도 직결된다는 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습니다. 우리사회는 너무 자녀중심적인 사회처럼 여겨집니다. 젊어서 자녀에게 투자하다가 나이들어 노후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서민들의 삶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말은 너무 당연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고쳐나가면 좋겠습니다. 자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부부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누군들 자녀를 생각해야 겠지만 그렇다고 은퇴하고 닥칠 노년의 삶 또한 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도한 사교육비, 자녀에 대한 능력이상의 기대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바로 부모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우리 사회의 교육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기본이 아닐가 합니다.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700&g_serial=447829


순재의 모습에서 이러한 삶을 봅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위축될 이유가 없습니다. 재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순재의 경우는 어전히 파워가 막강합니다. 기업의 사장입니다. 이런 순재의 모습은 실제적으로 노인의 이상적인 모습이랄 수 있습니다. 서민들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순재가 <지붕킥>의 주인공입니다. 순재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봐도 아무런 무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대발이 아버지의 부활로 시대적인 향수에도 젖게 합니다. 그런데 대발이 아버지의 부활만이 아니라 진화 또한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대응하는 순재의 모습인 것입니다.


젊음이 사라진다고 해서 젊은 정신까지 사라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순재는 노인이지만 사라진 젊음을 한탄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화라고 한들 무리이겠습니까?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순재가 너무 호들갑을 떤다, 깝죽댄다고 하실런지 모르지만 변화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발이 아버지' 로만 머무르면서 자신만의 껍질 속에 묻혀 있기만 한다면 퇴보가 아니겠습니까? 사회 변화의 적응이나 진화의 면에서 보면 순재야 말로 긍정적인 인물입니다.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순재는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 얼마나 유쾌합니까? 드라마지만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나이 들었다고 누리지 못할 사회적인 혜택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괜히 기죽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순재가 진정으로 주인공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