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행복일까요? 육체적인 쾌락이 행복일까요? 정신적인 것일까요? 물질적인 것일까요? 이렇게 나누는 것이 어리석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육체의 충만함이 행복이 아닐까 싶네요. 인간은 정신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고, 그렇다고 물질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물질에 너무 귀착되다 보니 물질적인 것이 너무 범람하고 있습니다만 그 물질적인 것도 행복을 구성하는 일부일 뿐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더라도 뻥 뚫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 풍족속에서도 오만 사건들이 다 일어나구요. 균형이 너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보아도, 잡지를 보아도, 신문을 보아도, 해외연수, 연예인들의 억억하는 기사거리, 신형 자동차, 로또 복권, 대박, 재테크, 연예인들의 성형 등 물질적인 것들이 너무 범람합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대박을 터뜨리는 것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경제가 나쁜 이 시대의 성격을 감안해 보면 '한탕주의' 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아무리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론이나 방송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주는 훈훈한 기사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언론이나 방송에서 해야하는 것입니다. 일반 서민들 좀 행복하게 해주면 좋은 것 아닙니까? 온갖, 재테크에 대박 신화에 한탕주의에, 또 물신에 찌던 현대인의 병적 자아들이 좀비처럼 떠도는 사건사고에 이르기 까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병리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아닐런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물질이 범람하는 한 켠에서 그 물질 때문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질조차 얻지 못해 고통받는 이웃들이 있다는 데는 잘 신경이 쓰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소설가가 빈 농가를 털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소설가는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그 소설가는 정신이 부자유한 아내를 돌보며 생계가 막막해 도둑질을 한 것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기사입니다. 우리시대의 적나라한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우선되는 우리 사회의 한 상징이 아닐까 합니다.  

 


이 소설가는 인간의 정신의 고양과 즐거움을 위해 소설을 써왔지만 정작 자신의 육체와 정신은 최소한의 물질억 충족이 없었기에 풍요로 소란을 떨고있는 이 시대에서 비참한 생활을 해왔던 것입니다. 물론 이 소설가의 속사정을 알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될 만한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화려한 물질의 축포가 터지는 이 시대에 소설가가 소설로 생계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필자를 너무 안타깝게 하고 부그럽게 만듭니다.

꼭 이것만은 아닙니다. 이 소설가보다도 더 비참하게 살아가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풍요의 사각지대에서 소외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심있는 기자인지, 아니면 의무감인지, 아니면 직무인지는 모르나 사회의 밑바닥 존재드를 다루는 기사들도 간혹 봅니다. 그럴라치면 그러한 기사들이 범람하는 풍요의 기사 속에 매몰되고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카라의 엉덩이 춤은 살랑사랑 흔들거립니다. 이 어덩이 춤이 살랑 살랑거리면 마치 나비 효과 처럼 풍요와 물질의 홍수가 범람하는 듯 못가진자들의 불행들은 저 만치 밀려가기만 합니다. 아니 매몰되고 압살당합니다.




물질만이 아닙니다.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이 있어야 하듯 인간의 품격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정신은 존재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풍요의 한 켠에서 정신 또한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최근의 조두순 사건이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상징합니다. 정신과 물질의 균형이 깨어진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조두순 사건은 조두순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이 황혜해 진 곳에서는 육체적인 황폐의 죄악은 싹텁니다. 육신이 황폐해진 '나영이' 가 바로 그 존재입니다. 정신이 황폐해지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풍요만이 요란을 떠는 세상에서는 결국, 육체와 물질이 낳는 황폐가 검버섯처럼 돋아나는 것입니다. 이런 풍요가 진정한 풍요인지 한 번 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영이가 그린 그림


인간은 행복해야 합니다. 물질이 중요합니다. 정신도 중요합니다. 이 둘이 진정 균형을 이룰 때 행복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의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이 균형이 특정한 개인이나 소수에게만 이루어진다면  국가로 보아서도 행복한 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병든 국가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자의 말 같은데 그런 것은 아니구요, 행복을 국가 차원에서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위에서 보았던 소설가의 불행처럼 아무리 개인이 발버둥처도 도둑질을 하지 않고는 안되는 현실이 가슴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소설가가 글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또 그 글들이 인간들의 정신을 풍요롭게하고 행복하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그 소설가는 분명 자신의 체험으로 한 대작을 쓸 것이라는 자위만을 하게 됩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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