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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프레지던트

대물 vs 프레지던트,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우리나라의 드라마 역사에서 정치드라마는 성공적인 입지를 구축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성공 제조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필자가 기억하는 드라마로 <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를 필두로 '공화국 시리즈', <야인시대>, <자이언츠>, <대물>에 이르기까지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왔습니다. <모래시계>의 경우는 시청률 60%대 이상에 육박했습니다.


이런 정치드라마의 성공은 대중의 정치적인 관심에 기인한 바가 큽니다만, 드라마 자체의 특성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정치 드라마들은 주인공(protagonist)과 악인(antagonist)이 대립하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정치드라마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높은 시청율을 기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청자들이 정치드라마를 통해서 정치적인 불만을 해소하거나 만족감을 강화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구요. 정치드라마는 이렇게 대리적인 역할을 통해 대중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기에 중독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마이스타뉴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최근의 수목드라마 <프레지던트>는 이런 성격의 정치드라마와는 다릅니다. 주인공과 악인의 이분법적인 선악구도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선악구도 대신에 진흙탕 싸움과 권모술수의 우위가 권력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선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권력이 중요하며 그 표방하는 대의가 그럴 듯 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권모술수를 통한 권력에의 욕구가 스토리를 이끌어 나갑니다. 장일준을 주인공이라고 해도 단순히 드라마 스토리의 중심적인 인물이라는 측면이 강할 뿐이며 이분법적인 선악이 구분되는 그런 인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권력을 추구하는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추잡한 현실정치의 복마전속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정치인에 불과합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정치인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장일준은 대중의 기대를 대리 충족시켜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현실 정치속의 정치적인 역학관계와 이것을 이용한 교할하고 능청스러운 전략, 그리고 권모술수는 리얼하게 보여줄지 언정 정치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레지던트>의 시청률 저조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기인합니다. 장일준이 신선하다는 평가는 필자의 판단으로는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일준은 결코 신선한 존재가 아닙니다. 구시대 정치의 끝자락에 편승한 젊은 정치인일 뿐입니다. 정책선거와도 거리가 멀기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장일준은 대중이 구역질나게 생각하는 그런 현실정치인의 투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일준은 전 검찰총장인 원칙주의자 신희주을 경선에서 이겨 단일화를 이끌어내었고, 정치입문이 늦어 상대적으로 순수한 전 총리 김경모를 권모술수로 난처하게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장일준의 이런 모습은 대중이 바라던 모습이 아니라 대중이 혐오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대리만족을 느끼기는 커녕 불괘감과 불만을 잔뜩 느끼는 것입니다. 심지어 드라마의 내용에 상당한 회의를 느끼게도 되는 것입니다. 가득이나 현실정치에 신물이 나는데 TV앞에 앉아서 본다는 내용이 현실정치의 동음반복입니다. 이건 정말 고문인 것입니다.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꺼려지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조폭영화나 공상과학영화에 대중이 몰리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시대적인 트렌드라는 말 이면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세세한 이유들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대물>에서 입지전적인 여자대통령 서혜림과 겁없는 검사 하도야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바로 그 등장인물 자체가 현실의 정치판을 뒤틀고 뒤집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능성, 그런 기대가 대물을 통해서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프레지던트>는 어떻습니까? 말로 그럴듯한 궤변을 토해내고 논리를 만들어 내는 현실 정치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실 정치를 표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판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치의 어쩔 수 없는 한계만을 확인하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개선해야 하는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란 그럴 수 밖에 없는 거야' 라는 무기력과 희의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획의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치발전을 원한다면 잘못된 현실 정치판을 변화하고 공감하는 듯한, 현실 정치판을 그럴 듯하게 보여주는 이런 스토리는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실망감을 떨쳐버리기가 힘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