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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도망자 Plan B

도망자, 카이의 진실한 사랑과 죽음?


<도망자> 9회의 끝장면은 카이, 진이, 지우 순으로 양두희 수하들의 쇠파이프에 머리를 가격당해 쓰러지는 것으로 채워졌다. 주인공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흉기에 맞고 쓰러지면서 도대체 누가 누가 죽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진 느낌이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초미의 관심사이다. 다 살았을까? 아니면 한 사람이 죽었을까? 두 사람이 죽었을까? 셋 다는 아닐 것이다. 지우는 살았음이 분명하다. 스토리를 끝까지 이끌어가야 하는 중심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이는 어떤가? 진이도 사건 의뢰인으로 지우와 함께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카이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가엾은 카이.




만약 카이가 죽었다면 그 죽음의 의미가 참 숭고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액션이 나무하고 서사적인 줄거리에 9회의 마지막 카이의 장면은 이드라마를 서정으로 물들게 했다. 카이가 양두희를 만난 것은 진이와의 사랑을 위해서 더 이상 양두희의 요구는 믈론이고 사업 거래 중단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며, 그리하여 사랑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조선은행권 지폐를 더 이상 찾지 않고 진이와 함께 조용히 살겠다는 카이의 사랑은 의심할 바 없는 진실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진이를 죽이려는 양두희 일당이 자신에게 뛰어든 카이와 진이를 살려주지는 않을터. 이에 지우까지 뛰어들면서 이 세 사람은 양두희의 부하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쓰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카이가 양두희와 만나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우와 함께 숨어서 지켜보던 진이의 입장에서 카이는 자신을 기만하고 속인 추악한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랑을 미끼로 자신에게 접근한 사기꾼에 불과한 것이다. 카이로 보아서는 엄청난 오해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카이가 양두희와 함께 거래하면서 진이 부모와 삼촌의 죽음에 개입하기는 했지만 진이에 대한 사랑만큼은 너무나도 진실했다. 그랬기에 진이 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카이가 죽는다면 그의 진실은 죽음과 함께 묻혀지고 말 것이다. 물론 카이의 비서인 소피가 진이에 대한 카이의 진실한 사랑을 알고 있기에 영원히 묻히지  않을 수도 있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카이가 죽는 것이 극적 효과를 비롯해서 스토리상으로 더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진이와 카이의 그 애절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안타까운 끝맺음을 맞게 되겠지만 스토리의 전개상으로는 카이의 죽음이 진이에게 더 큰 갈등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리라 판단된다. 또한 지우에게 있어서도 머리는 명석하지만 경박한 성격에 대한 경종으로 작용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진이와 지우가 양두희, 또는 멜기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극의 효과를 높이는 스토리 전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양두희의 잔인함을 드러내고 있다. 제작진이 카이를 살려놓을 지 죽을 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제작진이 카이를 살려 놓기는 참 애매한 상황이다. 카이가 살아 그 진실한 사랑으로 진이를 끝까지 지켜주는 것도 참 좋지만 걸리는 것은 지우의 존재이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지우가 진이에게로 빠져드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우가 진이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사랑이라는 관점에서도 카이의 죽음은 극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카이가 살아남아서 지우가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간직하는 것도 한 편의 드라마가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카이의 죽음을 통해 상처받고 갈등하는 진이와 지우의 모습을 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카이의 진실을 끝내 오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진이의 상처와 자신의 경박스러움으로 그 진실한 사랑을 가로막았던 지우의 마음 아픔도 스토리를 추동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카이의 죽음 여부와 관계없이 카이의 진실한 사랑은 난무하는 액션 속에서 서정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애잔미를 전해주었다. 9회가 의미있었던 점은 무엇보다도 이점이었다. 역시 사랑은 위대하다.


이미지출처: KBS드라마 포토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