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변하지 않는가?




엄청난은 종남의 친부인 하행선이 그녀의 곁을 떠나기까지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행선과 건강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엄청난은 친부인 하행선보다 자신과 종남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해준 건강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과정은 참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든 과정에서 엄청난의 변화를 보는 것은 드라마를 보는 작은 기쁨이고 보람이기도 했다.


엄청난은 하행선뿐만이 아니라 건강과 시댁 식구들에게 참으로 많은 피해를 끼쳤다. 그런 그녀였기에 하행선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보여준 엄청난의 변화에 호의를 보냈다. 그런 변화가 있었기에 하행선이 감동을 하고 조용히 떠난 것이다. 엄청난으로서도 당연한 자세였다. 종남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는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건강에게는 물론이고 시댁 식구들 모두에게 자신이 빚진 것들을 되갚아한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하행선과의 갈등의 과정에서 엄청난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청난이 변화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부족하다는 면에서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 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근본적인 변화는 엄청난의 마음의 깊은 곳에서 싹터면서 근본적인 변화의 결과, 이를테면 행동이나 말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은 여전히 이전의 잘못된 습관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우선은 근본적인 인격의 변화가 부족하다. 말투나 행동 같은 한 인간의 인격을 드러내는 습관이 여전히 천박에 가깝다. 특히 시어머니인 전과자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볼라치면 이건 며느리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리 시어머니에게 아양을 떨고, 애교를 부린다고 해도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지켜야 할 금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엄청난은 이러한 금도마저도 깨고 있다.



둘째는, 엄청난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듯한 겸손하지 못한 허세이다. 자신감이 있다는 것과 허세를 부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살기위해 돈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시어머니 전과자를 부려먹는 듯한 모습은 잘못이다. 아무리 엄청난이 임신을 해서 가사일 하기가 힘들다고 해도 최소한 밥상 정도 차리는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그곳도 어렵다면 밥상에 젓가락 하나 올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행선을 떠나게 한 엄청난의 변화가 고작 이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니 말이다. 시어미니 전과자가 아무리 별나다고 해도 엄청난은 그녀 자신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셋째는, 남편 건강에 대한 아내로서의 태도이다. 엄청난에게 건강의 존재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난에게 김건강이 없었더라면 청난과 종남은 하행선과 다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면 엄청난은 김건강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김건강과 하행선의 갈등의 와중에서 보아온 건강의 마음은 정말이지 진실했다. 이런 진실 앞에서 엄청난은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전개상 엄청난의 근본적인 변화가 서서히 나타나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만약 엄청난에게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엄청난의 건강에 대한 사랑은 의심받게 된다. 적어도 엄청난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건강에 대한 사랑과 하행선에 대한 결단의 진실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엄청난이 근본적인 자기 변화를 위한 계기를 어떻게 만들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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