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사설탐정(Private Eye, Private Investigator, Detective)은 다소 희귀한 직업이다. 아무리 양보해도 흥신소를 탐정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면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서구 국가들은 우리와는 좀 상황이 다른 모양이다. 사설탐정이 꽤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경찰이나 검찰이라는 공권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사설 탐정이 활동을 할까? 지금까지 이런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는데 드라마<도망자>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여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이 포스트를 쓰고 있는 지금 이에 대한 답은 필자의 능력 밖이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 이 드라마의 현실적인 의미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만약 한 사회에서 공권력이라는 것이 유명무실해지면 어떤 현상이 초래될까?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만약이라는 전제가 붙는 가정이다. 경찰이 도둑을 잡을 생각은 않고 도둑에게 뇌물이나 받는다거나, 검찰이 부정축재를 한 정치인에게 이상하리 만치 관용적이라거나, 정치인이 국민을 생각지도 않고 자신의 배만 불린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불법이 법을 지배하는 개판이 되지 않을까?
이런 개판에 사람들은 어떤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실적으로 이 개판을 바꿀만한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지만 이런 개판에 발을 담그고 살아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수긍해야만 할 수 밖에 없다. 개판의 일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되기위해서는 고고한 초현실적인 삶을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이게 지금 굴러가고 있는 세상이란 것의 실체가 아닐가 싶다. 발을 내딛고 있는 세상이 있음에도 꿈구는 세상, 꿈꾸는 세상하고 노래를 불러대는 것은 그나마 정신줄 놓아 둘만한 초현실적인 꿈이라도 있어야 해서일까.
꿈속에서 사람들이 노래 불러대는 걸 도피라고 폄하할 수는 없는 건 꿈이 때로는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일까? 아무튼 꿈속에서 사람들은 환각제 같은 달콤한 노래를 만들어 내고, 두더지 잡기를 만들어내고, 가상 현실을 만들어 내고, 문학과 예술을 만들어낸다.
TV 드라마의 주인공은 어떤가? 슈렉과 피오나 공주가 현실과 동화 속의 주인공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듯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도 우리 꿈속의 부산물이기에 현실을 마음대로 휘저어 놓을 수가 있지 않을까? 드
라마 <도망자 Plan B><이하 도망자) 의 지우가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의 경박스러움은 진지함으로 가장한 현실에 대한 조롱이며, 그의 액션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의 제스처이며, 감동의 고객 서비스는 위선자들에 대한 냉소가 아닐까? 그러나 진이에 대한 사랑의 방식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건 좀 진실한 표정을 지어도 될텐데 말이다.
드라마가 전개될수록 <도망자>는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드라마처럼 보인다. 이 지점에서 <대물>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대물>이 아주 시원하다면 <도망자>는 아주 서늘하다는 사실이다. 또 대물이 <낙관적>이라면 도망자는 <비관적>이란 사실이다. 비의 그 경박함을 보면 <도망자>는 참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지우의 표정은 삐에로의 그것처럼 슬픔을 자아낸다. 지우가 비록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고 해도 말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말해달라고 하면 필자는 참 난처해진다. 이 시원함과 서늘함, 낙관과 비관의 감정은 필자의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다.
진이는 왜 지우라는 탐정을 고용했을까? 경찰도 있고, 검찰도 있는데 말이다. 지우를 쫒는 도수는 진이를 쫒는 양두희 일당과 무엇이 다를까? 양두희의 아들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니 이건 또 뭔가다. 그러고 보니 탐정만을 믿고 고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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