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왕 김탁구, 어른들의 갈등에 상처받는 아이들


<제빵왕 김탁구> 3회를 보는 것은 참 불편했다. 어른들의 갈등 사이에 끼인 아이들의 모습 때문에 그랬다. 다른 시대의 상대적인 문화라고 이해해야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오늘날과 별 다르지 않다. 어른들의 갈등에 상처 받는 아이들이라는 문제 말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어른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어 내고 아이들은 끊임없이 상처를 입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이 된 아이들은 갈등을 만들어 낸다. 어른과 아이라는 반복되는 악순환은 마치 시지푸스의 영원한 형벌을 닮아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좀 더 간략하게 본다면 갈등하는 어른들과 이 갈등에서 상처를 받는 아이들의 관계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아이들이란 어른들의 입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말이다. 갈등이나 대척점에 있는 관계 당사자들이 낳은 아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또는 애정 관계의 당사자가 낳은 아이라는 이유로 사랑을 받는다. 아이들은 그저 존재할 뿐인데 어른들은 가치를 부여한다. 성격을 규정하고 단정짓는다. 이 드라마에서 어른들이 보이는 아이들에 대한 태도도 바로 이러한 어른들의 관계의 성격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예를 들자면, 구일중 회장의 어머니인 홍여사와 서인숙이 탁구를 대하는 상반된 태도가 그렇다. 어른의 기호에 따라 아이들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이들의 의견이나 판단의 여지가 있을 수가 없다. 참 슬픈 일이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61670177


이 상처 받는 아이들이 <제빵왕 김탁구>에서는 많이 등장한다. 그 가장 대표적인 아이들이 김탁구와 구마준, 그리고 신유경이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갈등이나 문제에 의해 상처를 받는다. 이 상처가 심각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 시절의 내상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 상처로 인해 아이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도 하고, 냉소적이게도 된다. 우리는 <신데렐라 언니> 의 은조나 기훈에게서 이런 상처들을 지겹도록 보았다. 물론 이러한 상처들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방향으로 발산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주인공(protagonist)의 경우가 그렇다. 반주인공(antagonist)의 자리에 있다면 상당히 왜곡된 성격이나 행동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아무튼 아이들이 갖게 되는 상처는 클 수밖에 없다. 김탁구와 구마준은 그러한 상처를 안고 성장해 갈 것이고 서로 갈등을 빚게 될 것이다. 부모대의 갈등이 자녀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연을 끊는다는 종교라면 모를까. 예상하는 바이지만 서로 갈등하고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유경도 마찬가지이다. 유경은 <신언니>의 어린 시절의 은조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단지 부모 잘못 만난 탓에 고통을 겪는 것이다. 사실 이 아이들이 만들어 놓게 될 미래의 모습이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제빵왕 김탁구>는 이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느냐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기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탁구와 구마준의 갈등이 빗어 놓게될 스토리가 축을 이룰 것이다. 더불어 이 아이들의 상처의 본질인 어른들의 관계와 갈등이 어떻게 해소될 것인가에도 촛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전개될 스토리가 참 궁금하다.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과연 될 수 있을까?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6.17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6.17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우리의 교육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부모의 기대가 일조한다고 봐야겠죠. 부모의 지나친 기대보다 자식의 적성이나 재능을 북돋아 주는 것이 더 촣을 것 같아요^^

  2. 달려라꼴찌 2010.06.17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혹시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인가요? 진행과정이 참 황당해서요 ^^;;;

  3. 자수리치 2010.06.17 0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른들의 관계에 아이들이 편입되는 꼴이네요.
    어제 잠깐 봤지만, 아역들 연기가 꽤 볼만하던데요.^^



신데렐라 언니, 은조의 공범의식과 묵인에 대한 분노?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어야 한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아마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악한자와 선한자들로 무리하게 나누려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자식과 부모는 어떤가?


나눈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그건 어딘가 틈이 엿보이고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고 괜히 언짢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나눌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야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과학의 분석이나 분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하나를 있는 그대로 볼 수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나 불행하게도 하나인 것임에도 언제나 분리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있다.  아이와 어른이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아이의 시기를 거친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아이였다는 사실을 떼어놓고는 성장을 말할 수 없고 현재를 말할 수 없다.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불행한 것은 하나의 존재가 금이 가면서 아이와 어른으로 분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잊는다. 하나의 인간 속에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며, 아이와 어른이라는 둘의 존재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세상에 가장 소통의 부재가 바로 아이와 어른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불행은 바로 그렇게 아이들을 잊는 어른들 때문에 생겨난다. 상처받는 영혼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은조는 상처받은 영혼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녀의 엄마 송강숙에 의해 잃어버렸다. 어린시절을 잃어버린 은조는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한 존재의 반쪽을 잃어버린 셈이다. 은조는 참담하다. 엄마없는 하늘 아래에서 살고 싶어한다. 엄마는 곧 자신 속의 아이를 강탈해버린 잔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역겨운 엄마와 살아간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은조는 그런 엄마와 함께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엄마의 곁을 떠나갈 것이지만  지금 여기에서가 아니라는데 언제나 앞으로만이다. 가슴이 아프다. 수많은 '지금' 과 '여기'를 거쳐왔겠지만 은조는 여전히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가 떠나게 될 날이 빨리 다가올 수 있을까? 언제쯤이 될까?


이렇게 여전히 무기력하게 엄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은조를 공범의식에 시달리게 한다. 변한 것 없이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엄마의 그 짓거리를 보면서도 함게 살고있다는 것은 공범이 아니고 무엇인가? 엄마를 떠난 다는 것은 엄마의 죄악을 보지 않는 것이다. 보지 않는다면 묵인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8년 동안이나 떠나지 못한 채 자신의 어린시절을 타살해 버린 엄마의 그 위악을 묵인해야 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녀는 자시의 묵인에 분노가 이는 것이다. 은조에게 차디찬 분노만이 남아있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은조' 에게서 어린 시절을 빼앗아버린 엄마라는 존재는 참 모순의 존재이다. 엄마이기에 또 미칠지경이다. 함께 살아오면서도 죽음이 함께 한 삶인 것이다. 말은 사랑이다. 딸을 위한 엄마의 사랑이라지만 감수성 예민한 어린 시절의 은조에게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증오로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에게 사랑이 나에겐 증오가 될 수 있는 건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와 어른은 더욱 그렇다. 그렇게 아이와 어른은 하나이면서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소통 부재의 독립된  인격체가 되어 버린다. 인간은 분열적인 존재이다. 그런 분열적인 인간이 만든 세상 또한 분열적일 수 밖에 없다.


엄마와의 공범의식과 그것에 대한 묵인, 그리고 자유 앞에서의 무기력에 은조의 분노는 새로운 배출구를 찾고자 한다. 자신의 엄마인 강숙, 기훈, 정우? 효선? 아니면 일? 그 배출구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첫번째이미지: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C1004160003
두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41608025501735&outlink=2&SVEC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머 걍 2010.04.17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안봐서 잘 모르는데
    주변에서 이미숙,문근영 두 배우 연기가 좋다고
    말씀들 많이 하시더라구요^^

    • 파비 2010.04.17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머 걍/ 이미숙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고요.
      문근영은 정말 놀랐네요. 섬뜩할 정도로 많이 컸더군요.
      이거 컸다고 해도 되나 모르겠네, ㅎ

      주인장/ 묵인이란 말이 있었군요. 그런데 난 왜 그 단어가 생각 안 났을까? 아무튼 현재 은조의 상태를 잘 나타내주는 말 같네요. 언젠간 그 묵인을 극복하고 자유를 찾아 비상하겠죠. 또 그래야 하고...

  2. 朱雀 2010.04.17 0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중 문근영은 어머니 이미숙 때문에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해요.
    참 불쌍한 인물이에요. 극중 문근영은...

  3. killerich 2010.04.17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점점 흥미진진해지는군요~!!
    촌스런블로그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4. 초록누리 2010.04.17 1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조에게 엄마는 성장을 못하게 하는 존재같아요.
    은조의 상처 근원이 엄마라는 사실이 이 드라마를 새롭게 보게하는 새로운 시각같기도 하고요.

  5. 둔필승총 2010.04.18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에게 받은 상처니 오죽할까요. 에효~~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거짓말의 달인이 되었을까?

http://www.artsnews.co.kr/news/66370


<수상한 삼형제>의 엄청난은 참 문제 많은 여자다. 드라마가 전개되어 가면서 변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성스럽기까지(?) 할 정도이다. 건강과 결혼한 것에서부터 자신이 진 수 천 만원의 빚과 다른 남자의 아들인 종남이 드러나는 사실, 그리고 마침내는 종남의 친아버지인 하행선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과연 이러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남자가 몇이나 될까. 엄청난은 이렇게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문제아다.


이 청난이 이제 건강을 통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상에서 청난의 변화는 참 의미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청난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상한 삼형제>를 무조건 막장이라고 비하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의미있는 측면을 놓치고 말 것이다. 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막장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2010/02/16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이유?


청난의 변화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 줄 안다. 악녀가 개과천선하는 전개야 말로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이전에 엄청난의 문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난이 미혼모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어린 시절 하행선과의 불장난으로 예기치 않게 생긴 아이이긴 하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은 그야말로 극진하다. 미혼모라는 말은 사회생활에서는 일종의 낙인과도 같은 것이다. 미혼모에 관한 한 우리사회는 공범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버려진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시키는 일련의 과정에는 우리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폐쇄적인 인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연 미혼모가 어렵지 않게 자신의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을까? 특히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10대 미혼모의 경우는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선진국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수많은 아이들을 외국으로 입양시키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미혼모의 관점에서 청난의 행동 특성을 살펴보면 그녀가 자신의 피붙이인 종남이를 위해 건강과 주위 사람들을 속였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허영이나 허세를 부리는 등의 행동 특성도 어쩌면 미혼모라는 사회적인 인식을 극복하려는 과장된 포즈인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고 해서 청난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혼모라는 관점에서 보면 청난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인 종남에 대한 사랑하나 만큼은 어느 누구의 모정에도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엄청난이 종남을 위해 애써는 모습을 보면서 동정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그녀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면 좋겠다. 왜 엄청난이 거짓말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이 미혼모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AGESSE 2010.03.13 2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어서 하늘까지님께서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햄스터가 댓글다는 데도 끊임없이 달리네요~
    쨈납니다~ ㅋ

  2. 모과 2010.03.13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난이 그렇게 까지 되기까지 많은 고난을 겪었겠지요.
    그러나 며느리 감으로는 빵점입니다.

  3. 하록킴 2010.03.13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드라마를 잘 안봐서 이런 작품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요즘은 추노만 봐요.방에 TV도 없어서...암흑의 루트로 ㅡ.ㅡ;

  4. 2010.03.13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새라새 2010.03.14 1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의식중에 하는 거짓말도 습관이지요..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을 하다보면 그게 거짓말이 되곤 한답니다..


 

지붕킥, 신애와 해리의 공통점


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ut=1&name=/news/entertainment/201001/20100106/a1f77127.htm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신애와 해리는 참 상반된 모습이다. 해리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가족으로 소외받고 있는 아이다. 그렇다 보니 성격이 심술궂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애는 가난한 삶을 살아가지만 오히려 언니 세경과 줄리엔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아니다. 해리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성격이 낙천적이고 어려운 경우에 처해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다.
 

이러한 삶의 조건은 식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신애의 식욕은 거의 식탐에 가깝다. 세경과 줄리엔의 관심으로 정신적인 안정감은 가지고 있지만, 잘 먹지 못하다 보니 언제나 먹는 것에 신경이 집중될 만도 하다. 짜장면 한 그릇이 먹고 싶어 괴로워한다. 음식의 종류와 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단지 신애가 알고 있는 짜장면 한 그릇이면 대만족인 것이다. 이렇게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보니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나 주의에 대한 의식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 언젠가 떡볶이 가게에서 실컷 먹고 가게 주인에게 인질(?)처럼 잡히기도 한다. 뷔페에 가서는 접시에 한 그릇만 담아 먹어야 한다는 속임수에 넘어가 고민 고민하다 점시에 엄청난 음식의 탑을 쌓기도 한다. 신애의 음식에 대한 욕구는 이렇게 강하다.


그렇다면 이런 신애의 식탐에 가까운 음식에 대한 욕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미 언급한 그녀의 가난한 삶의 조건에서 싹텄음이 분명하다. 한참 성장할 나이에 먹는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아프리카의 기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오직 먹고 생존하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신애가 그런 아프리카의 기아처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애의 음식에 대한 욕구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자고 입는 것은 사치스런 일이 아닐까?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인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가장 큰 본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음식의 질보다 양이 중요하고 짜장면이면 최고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짜장면 이미지:
http://www.sportsseoul.com/news2/emotion/wine/2009/1109/20091109101150400000000_7623763283.html
갈비이미지: http://www.sbiznews.com/news/?action=view&menuid=75&no=19249&page=1&skey=&sword=


이런 신애와 정반대로 풍족한 물질적인 삶을 영위하는 해리는 오히려 음식의 양보다는 질에 집중한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가족들의 애정 결핍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는 불안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태는 가족의 관심을 끌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음식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지도 모른다. 바로 갈비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넘치고 넘쳐나는 것이 음식이다 보니 양보다는 질을 우선시 하는지도 모른다. 해리가 언제나 외쳐대는 음식은 "갈비, 갈비"이다. 마치 갈비교의 신자 같다. 갈비는 신애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음식이다. 요즘 아이들이 인스턴트 음식에 빠져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리는 갈비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식과 서구 중심의 식단을 떠오르게 한다. 풍요 속에서 오히려 건강을 잃어가는 아이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무튼 해리가 먹는 음식의 질은 고급스럽고 풍요롭지만 해리의 정신 건강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신애에게 심술궂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은 먹는 음식과도 관련이 있다고할 수 있다. 주로 육식만 하는 경우 인간의 성정이 다소 호전적이고 사나워진다고 한다.
 

신애나 해리 모두 결핍 속에 놓여있다. 신애가 물질적인 결핍에 시달리고 언제나 풍복한 해리의 삶을 부러워한다면, 해리는 풍요속에 빈곤처럼 정신적으로 애정 결핍에 빠져있다. 신애를 질투하는 것도 바로 이언 이유에서 기인한다. 이 둘은 너무나도 상반되지만 흡사한 문제에 빠져있는 것이다. 바로 '결핍' 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신애와 해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새라새 2010.02.22 1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햄스터야 안녕^^ 니 주인님이랑 좋은 꿈 꿔라 ㅎㅎ

  2. Phoebe Chung 2010.02.22 2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저는 두가지가 다 좋은데 어쩌면 좋나요.ㅎㅎㅎ

  3. mami5 2010.02.22 2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 다른 결핍이 있다는게 공통점이네요..^^
    처음 볼 때는 무지 적응이 안되었는데..ㅋㅋ
    특히 해리의 행동이~~ㅎ

  4. 자 운 영 2010.02.22 2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고저 고저 아이들은 아이 다울때가 가장 이쁘죵 ㅎ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시트콤 입니다 ㅎ

  5. 보링보링 2010.02.23 02: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둘다 모두 행복해지면 좋겠네요...에효...어린아이들에게 가난과 애정결핍은...어른이되어서도 많은 영향을 줄 듯 합니다

  6. 김뽀 2010.02.23 0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갈비..........................................

  7. 사이팔사 2010.02.23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사람하고 애기가 광팬이지요, 이 프로......^^

  8. 길긋기 2010.02.23 1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들은 뭘 해도 다 이쁘죠. 재밌게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9. 레오 ™ 2010.02.23 1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먹는 걸루 스트레스 푸는 재미를 너무 일찍 깨달은 세대이군요 ^^

  10. killerich 2010.02.23 2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핍이라..불쌍하군요...

  11. leedam 2010.02.24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참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ㅎㅎ

  12. 유남준 2010.06.07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옷쇼핑몰중 인기 많은곳은 스타일와우 <---이곳보다괜찮은곳 없죠357n




가상공간이 되어 가는 현실, 다시 야만의 시대인가?





쿠키뉴스 기사 일부 캡처화면



오늘 인터넷을 보다가 너무 놀라운 뉴스를 접했습니다. 뉴스 접하셨다면 여러분들도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왠만한 뉴스에도 잘 놀라지 않게 된 현실이 되었지만, 이 뉴스는 가상의 공간(사이버 스페이스, 공상, 상상의 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엽기적인 일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가상의 공간과 현실(실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극단적인 예가 아닐까요? 이런 조짐은 인터넷의 가상 공간이 생겨나면서 있어왔습니다.  사이버 게임상에서 품은 살의를 현실에서 실제로 행하는 것이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경계가 허물어져야 하는 것은 허물어져야 하지만 경제가 분명히 있어야 하는 것은 경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휴전선이나 인간들 사이의 적의의 경계같은 것은 허물어져야 하겠지요. 그 경계가 남아있어야 하는 것의 가장 분명한 예를 들자면 가상공간과 현실의 경제가 아닐까 합니다.


가상 공간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면 그 결과는 정말 파국적일 것입니다. 현실속에 가상적인 것을 응용한다거나 가상의 공간에 현실의 것을 가져다 놓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경계를 전제로 해야하며 또한 선하고 유익한 것으로 한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윈-윈의 사고인 것입니다. 두개의 공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경계 자체가 허물어지고 가상의 엽기적인 행동이 현실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이것은 마치 정신 분열증에 걸린 인간의 정신처럼 분열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가상적인 것을 현실화하려는 분열된 현상 말입니다.


이 엽기적인 임산부 살인 소식을 접하면서, 놀랍게도 제 자신이 현실의 사건에 대한 이성적인 반응이 아니라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습니다. 현실과 가상 공간의 경계가 제 자신의 머리속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할까요. 터미네이터가 떠오르고, 미래의 전쟁이 떠오르면서 임산부의 배에서 나온 아이가 인류의 미매를 구원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으로 이어지더군요. 사건에 대한 무감각한 반응이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태도입니까? 바로 제가 그랬던 것입니다. 충격적인 생각을 하던 머리 속 한켠에서 말입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이렇게 획 돌아 버린 것입니다. 제 머리속에서 현실과 가상의 공간의 허물어진 탓입니다.  


이런 엽기적인 살인이 오래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야만적인 존재였을 적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다시 야만의 시대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요?(이 말에 대해서는 업그레이드 필요함)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핑구야 날자 2009.09.02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엽기 호러같은 세상의 단상이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2. 보링보링 2009.09.03 0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너무 무서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