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햄스터 루이입니다. 아빠지만 제일 작고 귀엽습니다. 작고 귀여워 아빠다운 권위(?)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는 행동은 제일 활발하고 무슨 일인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햄스터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손 뻗고 엎드려서 잠을 자요!  (9) 2010.06.25
이게 뭐니?  (15) 2010.06.23
아빠가 너무 귀여워요?  (14) 2010.06.22
쳇바퀴가 돌아가지 않는 이유?  (8) 2010.06.21
햄스터와 원숭이의 공퉁점은?  (10) 2010.06.20
그녀가 더위를 피하는 법!  (8) 2010.06.19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김미주리 2010.06.22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어렸을때, 햄스터 30마리까지 키워본적 있어요
    얘네들이 종족번식을 너무 빨리해서 새끼가 금방금방 생기더라구요
    오랜만에 햄스터 보니 반갑네요 ㅎㅎ

  2. 찰리 2010.06.22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모...귀여워라
    까만눈 흑진주 같아요 ~

  3. 머니야 머니야 2010.06.22 1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넘 귀여운 녀석이네요^^
    울꼬맹이 어릴적..들여놓아 키웠던 기억이 나는군여^^

  4. 하늘엔별 2010.06.22 1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여운 아빠라...
    그닥 나쁘지 않네요. ㅋㅋㅋ

  5. 비바리 2010.06.22 1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귀여워요
    저도 키우고 싶은데..여건이.
    대신.구피라는 물고기는 키우고 있어요..
    얼마전에 새끼도 낳았구요..

  6. 이곳간 2010.06.22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빠가... 정말 귀엽네요^^ 새끼들은 더 귀엽겠죠???

  7. 바람처럼~ 2010.06.22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빠가 정말 귀여워요 ^^



신데렐라 언니, 은조에게 아빠로서 구대성의 진정한 의미는?




구대성의 죽음은 참 가슴이 아프다. 이 구대성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드라마를 보는 시각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들 가운데 필자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전통과 관련하여 <전통의 죽음>이라고 좀 과장된 해석을 한 바 있다(신데렐라언니, 구대성의 죽음이 어이없는 자살인 이유?). 이걸 너무 아전인수격의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비난은 달게 감수하겠다. 아무튼 이 전통의 죽음이란 관점에서 보면 구대성이 살아있던 때의 대성도가와 사후의 대성도가는 그 성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전통의 죽음이라고 하였으니 대성도가는 더 이상 전통의 힘으로 운영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징후들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은조이다. 은조는 미생물을 전공하고 효소를 연구하는 대성도가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다. 물론 연구만이 아니라 마켓팅이나 판매쪽에도 힘을 기울이곤 한다. 10회에서 구대성이 죽고 회사의 운명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은조는 실의에 빠져있는 대성도가의 직원들에게 일을 하라고 독려한다.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월급을 꼬박꼬박 주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일하지 않으려면 나가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이러한 은조의 태도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는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관점에서는 타당하지 못한 말이다. 직원들은 월급 때문에 수십년을 대성도가를 떠나지 않고 구대성과 함께 막걸리를 지켜온 것이 아니다. 또한 일을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대성의 죽음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었을 수도 있으며, 또 그들의 항변 그대로 일이 없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막무가내로 나가라는 식은 전통에 대한 인식이 얕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아직 젊고 유능한 과학도이며, 구대성의 대성도가를 살리겠다는 절박한 염원에서 한 행동이고 말이겠지만 전통을 너무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구대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대성도가의 직원들을 하루 아침에 내몰겠다는 것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구대성과 대성도가의 전통을 너무나도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은조는 기훈의 말을 한 번쯤은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은조는 자신이 연구한 표준화된 효모를 가지고 빗은 술 맛을 효선이 보게 한다. 구대성이 빗은 막걸리 맛과 똑같다는 말을 효선에게 듣자 (그것이 술의 전부인 냥) 그 단지를 들고 구대성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대성도가 곳곳을 걸으며 구대성에게 보여주려는의미있는 발걸음을 한 뒤 구대성의 사무실로 들어가 영정 앞에 단지를 놓고 흐느낀다. 그리고 아빠, 아빠 라고 부르짓는다. 이러한 은조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장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구대성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핵심축을 이루는 장면이 되리라고 본다. 이것은 은조의 가슴에 송강숙이라는 속물적인 엄마와 구대성이라는 정신적인 아빠(신데렐라 언니, 생물학적 엄마 vs 정신적인 아빠)가 존재하면서 은조의 행동이나 사고에 영향을 미칠 것을 예고한다. 즉, 은조의 내면 갈등의 중요한 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조의 모습이 아무리 감동적이고 슬프다고 해도  무언가 허전한 것은 은조가 대성도가의 저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전의 태도와 관련해서 볼때 마치 자신이 연구한 효모가 모든 전통의 맛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태도이다. 이건 가능하지도 않다. 드라마상으로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으로 묘사되고 표현된다고 해도 은조의 이 방식은 전통을 앗아가버리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전통의 현대화라고 이해하지 못할 부분도 아니지만 사실상 전통은 사라지는 것이다. 즉 제조 과정이 표준화되고 기계화 되면서 전통적인 과정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은조가 대성도가의 직원들에게 나가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표준화를 통한 기계화 때문이라는 오해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은조가 연구한 효모가 대성도가를 살리는데는 큰 기여를 하게 되겠지만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통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송강숙이 대성도가의 부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내쫓으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즉,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지는 몰라도 전통을 약화시키는고 인간의 정을 부정해버리는 것이다. 은조의 행동 동기와 송강숙의 그것은 전혀 성격이 다르지만 그 결과를 놓고 볼 때는 동일한 것이다. 아무튼 은조는 송강숙과는 너무 달라도 다르니 앞으로의 기대도 다르다. 


은조가 대성도가를 다시 살리려면 대성도가의 저력의 원천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연구한 효모가 대성도가를 살릴 수 있다고 해도 효모를 연구한 열의 만큼이나 대성도가가 축척해온 전통에도 열의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직원들이든 술을 빗는 과정이든 말이다. 

은조에 대한 이러한 지적은 현재의 부족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아직은 부족하고 어설픈 걸음이지만 은조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은조가 구대성을 늦었지만 아빠, 아빠하고 부르짓은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시작과 함께, 은조의 가슴속에 구대성이 아빠로서 자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구대성을 아빠, 아빠 라고 부른 은조의 변화가 기대된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ngel Maker 2010.05.02 0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빠라고 하면서 은조 울때 정말 같이 눈물흘렸어요.
    전부터 아~ 까지 튀어나오다 그다음을 못하는 은조도 안스러웠고 그런 은조를 바라보는 대성도 안스럽고...

  2. 하록킴 2010.05.02 0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인기인 드라마 같군요.
    그런데 저는 드라마를 안봐서 감정이입이 안되요 ㅜ.ㅡ

  3. 파스세상 2010.05.02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은 어렵네요.
    새로운 시작인거는 알겠어요. ㅎㅎ



신데렐라 언니, 생물학적 엄마와 정신적인 아빠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스토리 전개에 가장 큰 추동력을 제공하는 인물은 은조(문근영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은조의 심리적인 갈등의 중심에 자신의 엄마인 송강숙(이미숙분)이 있다. 엄마란 어떤 사람인가? 예외없이 애정의 대상이다. 그런 애정의 대상인 엄마가 속물적인 존재일 때 그 정신적인 혼란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은조가 사랑해야 할 엄마가 그저 속물적인 존재로 타인에게 피해는 물론이고 은조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야기 시킬때 이 애정과 분노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은조가 선택한 것은 엄마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엄마라는 생물적인 관계를 의도적으로 끊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반인륜적이라 비난 받을 수도 있지만, 속물적인 엄마와 생활하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획살한 방법이다. 그러나 모질지 않으면 이러한 일을 실행하기란 힘들다. 특히 미성년인 은조가 이러한 냉정한 선택을 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1,2회에서 보여주었던 은조의 양가적인 갈등에서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보았다. 은조가 끝내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한 것도 바로 '생물학적인 엄마' 라는 사실 때문이다. 


엄마 송강숙이 대성도가의 안방 마님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엄마에 대한 분노는 그 대상이 더욱 확대된다. 아마도 속물적인 엄마에게 놀아나는 '멍청이' 라는 조소의 의미가 깊지 싶다.  이 대성도가에서 은조는 자유를 유보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쌓아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방식을 취하려는 것 같다. 자신의 새아버지가 된 대성도가의 사장인 구대성(김갑수분)에게 진 빚에 대한 보답이며, 자신의 엄마 송강숙을 벗어나는 합리적인 방식이 그것이다.  


은조는 여전히 답답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각조차 없는 엄마를 볼 때 마다 가슴이 탁탁 막힐 것이다. 7회에서 효선 외삼촌이 저지른 불량 대성참막걸리 사건으로 대성 도가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송강숙은 은조가 자는 방에 들어와 '자신의 것을 챙겨라는'  속물적인 말들을 내뱉는데 이 속물성은 시청자인 우리가 보고 참기에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물며 은조에게서랴. 아무리 송강숙이 속물적인 인간이라고 해도 대성도가는 자신을 살린 곳이다. 그런 대성도가를 오직 단물을 빨아먹는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송강숙이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을 어떻게 참을 수가 있을까?
 



이전의 포스트(2010/04/17 - [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은조의 공범의식과 분노?)에서 이미 언급 했지만 이런 엄마를 떠나지 못하고 함께 생활해야 하는 은조는 사실상 공범이나 마찬가지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죄책감이 반항적인 태도를 더욱 강화시키고 분노를 더욱 확대시켰을 것이다. 


도대체 은조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자신의 엄마에게 농락당한 대성도가의 사장인 구대성은 은조에게는 단순히 냉소의 대상일 뿐이었다. 꼭 냉소가 아니라도 '엄마의 사기에 놀아나는 바보 같은 존재' 일 뿐이었다. 또한 어린시절부터 엄마의 애정이 부재했던 은조에게 인간들은 냉소와 조소의 대상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엄마에 대한 분노와 적의는 타인을 향한 냉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훈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그 냉소는 애정 결핍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누군가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면 열려 질 수 있는 문에 불과하다. 은조가 바라는 것도 엄마에게서 결핍된 바로 그 애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조가 애정을 느꼈던 기훈도 자신에게서 멀어져 버렸다. 이렇게 은조의 가슴속에서는 뒤엉킨 실타래처럼 답답한 무언가가 뒤엉킨 채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대성도가의 사장인 구대성은 은조와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다. 6회에서 과로로 쓰러진 은조가 병원에 입원하고 병실에서 엄마 송강숙과 말다툼 소리를 엿듣게 되는데 은조가 이 사실을 알아 차린다. 모녀의 말다툼은 구대성에게는 참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혐오스럽고 역겨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은조에게 구대성은 송강숙을 용서하고 이해한다. 이 지점에서 은조가 알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대성은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다. 혼자였지만 기훈에게서 위안받던 그 감정보다도 더 큰 감정의 출렁임이 있는 그런 눈물을 은조는 흘린다.


은조에게 구대성의 존재는 무엇일까? 
 


은조에게 구대성은 '정신적인 아빠' 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엄마를 그토록 쉽게 용서하고 이해해주는 구대성을 아빠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아빠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멘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엄마의 존재가 은조에게 내면화되었다면 이제는 대성도가의 사장 구대성의 존재가 은조의 마음 속에 내면화 되어져 가리리고 판단된다. 어쩔 수 없이 엄마와 함께 살아가면서 은조는 구대성의 마음 씀씀이 처럼 그렇게 엄마를 받아들여 줄지는 의문이지만 구대성의 면면을 이어받을 공산은 크 보인다. 신데델라가 되는 효선과 속물적인 엄마 사이에서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어떻게 위치하게 될지 <신데렐라 언니> 이 드라마를 보는데 중요한 핵심 부분들 주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첫번째 이미지: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C1004160003
두번째 이미지: http://www.kbs.co.kr/drama/cinderella/about/cast/33546_index.html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illerich 2010.04.23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구대성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군요^^
    잘 읽고 갑니다^^

  2. Phoebe Chung 2010.04.23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생각엔 정신적 멘토라고 봐요.
    직업도 가계를 잇고 잇는것도 그렇고....^^

  3. 보시니 2010.04.23 1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걸어서 하늘까지 님~
    오랜만에 찾아 뵙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그동안 블로그 스타일이 좀 바뀌셨네요~
    저도 이렇게 바꿔보고 싶은데,,,ㅎㅎ
    아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잘 보고 배우겠습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4.24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시니님 너무 반가워요^^
      이것 저것 추가하고 담다보니 블로그가 좀 혼란스럽게 된 것 같습니다. 어덯게 정리를 해야 할 대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더 그 젊은 패기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4. 자수리치 2010.04.23 1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로 맺어진 인연도 끈끈하지만,
    저런 아버지라면 정신적 지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5. 하록킴 2010.04.23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님 포스팅 주제가 너무 어려운것 같아요^^;
    원작을 모르니ㅜ.ㅡ

    저는 요즘 스파르타쿠스 1편부터 연속으로 보고 있어요.
    시간이 없어서 잠깐 잠깐보지만요.

    추노가 끝나니 국내 드라마는 볼것이 없네요.




수삼, 하행선은 '상행선' 을 탔다?






52회에서 하행선은 드디어 엄천난과 종남, 그리고 건강 곁을 떠났다. 하행선은 감옥 출소 후 주변을 맴돌면서 내내 엄청난과 건강에게 큰 정신적인 압박감은 주었다. 이 하행선과의 갈등은 엄청난에게는 가장 큰 시련이자 고통이었다. 건강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엮어내면서 이제 하행선과의 갈등은 해소가 되었다. 판단컨데 이제 엄청난이나 건강의 갈등은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진행되리라 여겨진다. 



하행선이 떠난다는 사실은 이미 <수상한 삼형제>의 다소 유치하고 미흡한(?) 스토리 전개상 이미 예견되다 보니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그런 박진감은 없었다. 하행선이 시원하게 보여준 행동이 다소 고루하고 신파적인 성격은 강했지만, 그래도 교도소 출감 이후 건강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감동받으며 변화하는 모습에서 하행선을 변화시키는 내적 필연성이 전혀 터무니 없거나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행선이 떠나는 식의 이별이 기시감을 강하게 몰고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변화의 과정은 공감의 여운을 충분히 남긴다고 본다. 여기에는 엄청난과 건강의 연기력이 한 몫했다고 본다.
 

하행선이 수감되어 있을 때만 해도 <수상한 삼형제>에서 하행선 만한 악한은 없었다. 이마에 낙인이 찍힌 망아지 같았다. 그런 그가 건강의 진실한 모습을 보면서 변화하는 과정은 소설의 묘사나 서술 만큼 세련미는 없었지만 드라마가 이끌어 가는 내용 하나만큼은 공감할 수 있었다. 이 변화는 어떻게 보면 고귀한 변화일 수 있다. 막장 드라마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사실 하행선의 에피소드는 해피 엔딩이 아니고 새드 엔딩이다. 쉽게 건강과 엄청난에게 찾아온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하행선의 몫은 사라지고 만다. 이 에피소드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하행선이 주인공일 수 있다. 하행선은 조폭영화에서나 보는 조폭의 객기와는 다른 그런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변화를 겪은 하행선이 어디가서 객기나 부리거나 폭력을 행사할까?  가족은 사랑하지만 갱의 패밀리를 위해서는 살인을 서슴치않은 그런 부류와 같을 수 있을까? 이렇게 갈등하는 하행선이 된 것, 이렇게 변화한 하행선이 너무 좋아졌다. 


그러고 보면 하행선은 자신의 이름처럼 하행선을 탄 것이 아니다. 하행선은 <상행선>을 탔다. 모두를 이겼다. 막장드라마라고 등을 돌렸을 모든 사람들도 이겼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만약 하행선이 변화를 겪는 시점을 따라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면 과연 어떤 영화가 만들어 질까? 또한 한편의 소설을 만든다면 어떤 소설이 만들어질까? 전혀 질 낮은 영화나 소설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하행선의 시점은 성숙한 정신을 드러내 줄 것이다. 그 변화는 순수한 건강에게서 받은 이질적인 느낌들로 가득 찰 것이다. 이 이질감에 당혹해 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하행선의 모습이 얼마나 새로울까? 교도소도, 학교도, 우리 사회도 하지 못한 일이다. 건강이라는 한 사람의 순한 바보같은 인간이 이루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영화나 소설에서라면 엄청난 반전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반전 같은 것이 없다고 해서 하행선의 변화가 고루하고 신파적이라고만 하면 안된다. 내적 필연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기에 <수상한 삼형제>에서 하행선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 존재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하행선은 <수상한 삼형제>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만약 또 하행선의 머리를 내밀게 한다면 그 땐 정말 <수상한 삼형제>보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하행선의 처리가 참 깔끔하게 되어서 좋다. 아무리 뻔한 결말이었다고 해도 쉽지 않은 선택을 해준 하행선에게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illerich 2010.04.12 0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활기찬 월요일 시작하세요^^ 촌스런 블로그님^^

  2. 모과 2010.04.12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어제 봤습니다.
    하행선 그동안 인생을 잘못 살았지만 이제 제대로 살것같아요. 좋은 여자 만나고 자식도 낳고 ....기차는 하행선을 탓지만 그는 마음의 상행선을 탓습니다. 공감입니다.^^

  3. 자수리치 2010.04.12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행선이 큰 결심을 하고 떠났군요.^^
    좋은 한 주 시작하세요. 걸어서 하늘까지 님^^

  4. 이곳간 2010.04.12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곁을 떠나는건데 아마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5. 빠삐코 2010.04.12 14: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행선..좀 안쓰러웠어요..



    연희 나쁜 기지배...

  6. 유아나 2010.04.12 2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라 하행선이 수삼을 막장에서 살렸군요 라는 식으로 댓글 달았는데 사라졌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