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2.25 미국은 국가가 아니다? (9)
  2. 2009.12.05 강호동은 제우스를 닮았다? (9)
  3. 2009.10.18 거울신화
  4. 2009.10.14 나비효과와 살랑살랑 카라의 엉덩이 춤

 

미국은 국가가 아니다?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gks565/2E9I/124?docid=1DAtB|2E9I|124|20081225203237


미국이 국가가 아니라고 하니 놀라실 겁니다. 미국이 국가라는 당연한 사실을 부정하니까 말입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렵쇼! 캐나다까지 또 추가하다니요.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북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은 어메리컨 인디언들입니다. 콜럼버스 이전 그 광활한 대륙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대륙의 주인인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입을 선언했다고 하나 영제죽주의자들이며 영국의 식민지에 불과합니다. 일본이 우리를 36년간 지배했지만 한반도가 일본 땅이라거나 일본이라는 국가의 한 일부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차이라면 우리가 살아남아 독립 국가가 된것과는 달리 인디언들은 거의 전멸당해 기력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남미를 보십시오. 원주민들이 살아있었기에 순수한 백인의 국가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나마 남미는 비록 백인 지배를 받긴 했지만 원주민들의 피가 많이 섞여있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북아메리카가 백인들의 국가로 성립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비극이 컸다는 것입니다. 학살자들이 국가를 세웠다는 것은 그 전통성을 인정받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국가들은 그들의 신화가 존재합니다. 그만큼 국가라는 것은 오랜 전통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언어와 문화의 동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인들은 완전히 이질적인 사람들 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신화가 없습니다. 신화가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나 캐나다는 여전히 북미를 지배하고 있는 식민주의자에 불과합니다. 원주민들의 독립 선언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원주민들이 꼼짝도 못하는 것은 전멸하다시피하여 수적으로 열세인데다가 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pudding.paran.com/knnews/5263319


이렇게 본다면 중국이라는 나라도 국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있는 무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연합체입니다. 구소련이 분리된 것이나 유고슬라비아가 분리된 것처럼 중국도 당연히 그렇게 분리되어야 마땅합니다. 원주민이 수적으로 많이 존해한다는 면에서 독립의 가능성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원주민들이 거의 완전하게 말살되었기 때문에 독립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보다는 더욱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국가로 존재한다고 하지만 그 국가의 큰 기반을 형성한 존재는 흑인입니다. 양심을 가진 국가라면 그들이 흑인노예로 삼았던 아프리카의 흑인 국가들에 대한 배상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배상만이 그마나 미국이 국가로서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국가적인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프리카를 돌아보면 엄청난 비극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로 끔찍한 현실입니다. 죽음이 일상화 되어 버린 곳입니다. 이런 곳을 미국이 그대로 보고만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한 때 그들을 유린했던 인간으로서 아프리카에 대한 대대적인 배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주민 학살과 아프리카 흑인 착취에 의해 탄생한 미국이 단지 힘으로 이러한 사실을 덮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2009년 크리스마스네요. 예수님이 탄생한 날입니다. 모든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던 예수님의 탄생일입니다. 인간이 모두 죄인이고,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에 불행한 일들이 모두 사라졌으면 합니다. 비극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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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사진가 김기환 2009.12.25 1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거기다 미국은 순전히 흑인노예들의 노동에 의해 건설된 국가이기도 하죠...
    미국은 약간 과거형이지만, 중국은 여전히 이런 극단의 모순들이 진행중이라는 사실..
    너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즐거운 성탄 되십시오.

  2. Phoebe Chung 2009.12.25 1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주나 뉴질랜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3. Zorro 2009.12.25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미로운 음악이 더해져 더 슬프게 느껴지는 글이네요..
    안타깝네요..

  4. 인디아나밥스 2009.12.25 1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이 폭력과 살육으로 일어난 나라라서 지금도 여전히 세계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나 봅니다. 언젠가 그들도 제대로 앙갚음을 당할텐데 말이죠.

  5. 굳라이프 2009.12.28 2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힘있는자가 쓴 논리를 많이 따라 가지요~ 애초가 누가 주인이었나는 별로 안 중요해졌습니다. 미국 인디언들을 위해서 보호구역을 많이 설정해주었습니다. 도박장 설립이 허가 되면서, 많은 도박장이 생겨난 곳도 인디언 보호구역이더군요~



 강호동이 제우스를 닮았다?



이미지 출처: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2/h20091202062252111780.htm#


우리들에게 거인이라고 하면 신화상의 존재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신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거인들은 존재한다. 또한 작은 거인이라는 역설적인 표현도 있다. 거인들은 영웅이라는 말과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동시에 희화적인 존재로도 등장한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이스 신화의 제우스를 보면 바로 드러난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위엄과 권위의 신이지만 동시에 아내 헤라에게 바가지를 긁히는 좀스런 존재이기도 한다. 또 지상의 여인들과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애교스럽게 보이는 장면이다. 거인들은 운명적으로 이런 양면성을 때때로 타고 나는 것일까?

우리의 거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우리의 민담에는 거인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도깨비가 거인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다. 도깨비도 거인처럼 공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어리숙한 것을 보면 그 양면성이 드러난다. 혹부리 영감이 대표적이다.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middlepeople/MFAS/169?docid=nMve|MFAS|169|20040413101830

위 포스터의 괴물이 이봉걸 선수다


현대의 거인들은 어떨가? 신화상의 거인들과는 관계가 없지만 거인의 양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참 재미가 있다. 과거에 이봉걸이라는 씨름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한 때 이만기의 호적수로 상벽을 이루던 선수였다. 지금은 씨름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봉걸 선수의 키가 2m 넘었다. 원조 골리앗이라고 불렸다.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힘은 가히 이만기도 쉽게 이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이봉걸 장사는 동시에 《돌아온 우뢰매 7》에 출연한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파워 있고 기개가 당당했던 거인 이봉걸이 《돌아온 우뢰매 7》에서 희화화된 배우로 연기한 것이다. 역시 거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양면성이 존재하나 보다.

최홍만 또한 마찬가지이다. 최홍만은 씨름 선수시절부터 테크노 골리앗으로 불리며 익살스런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그리고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끼를 발산했다. 그러더니 다시 거인의 야수성을 되찾은 듯 K-1에도 활동하고 있다. 재미있는 거인이다. 제우스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신의 신전인 올림푸에서는 신들 앞에서 근엄하다가도 아내에게 사죽을 못쓰는 그 모습이 마치 사각링의 최홍만과 TV 오락프로그램의 재롱떠는 최홍만과 닮지 않았는가 말이다. 최홍만은 또 <미녀와 야수>라는 혼성 듀엣을 결성해 가수로도 활동을 했다.


이미지 출처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71113112209441

혼성 듀엣 <미녀와 야수>



가장 활동이 많은 거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강호동이 아닐까 싶다. 씨름판에서 야수 같았던 강호동은 1993년 코미디 프로그램인 《코미디 동서남북》에 출연하여 연예계에 발을 내디뎠다. 거인이라는 카리스마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야말로 희화하된 인물로 등장했다. 어떻게 씨름판의 장사가 저렇게 망가질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거인의 운명적인 양면성이었다. 거인의 야수성과 거인의 희화화가 그의 피솟에서 솟구치는 듯 했다. 강호동은 거인의 야수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이제는 희화화로 정상에 우뚝섰다. 현재는 <1박 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상급 MC의 자리에 우뚝 서있다.

이미지출처: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12041355001115&ext=na

애교 발랄한 밥샙


그런데 우리의 거인들에 도전장을 던진 존재가 우리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그 이름하여 검은 피부의 야수 바로 밥샙이다. 밥샙이야 말로 거인의 양면성을 제대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링밖을 뛰쳐나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밥샙은 개그프로그램인 스타킹, 하땅사, 개콘등에 출연하여 귀여운 재롱(?)을 떨면서 망가진 거인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어찌 이런 모습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야수같은 표정으로 힘을 뿜어내다가도 애교섞인 표정으로 돌변하는 것이 영락없이 개그프로그램에서의 예전의 강호동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하는 행동이 예전의 강호동을 판박이로 빼 닮은 듯 하다.  

이렇게 우리의 현실 속 거인들에게도 막강한 파워와 함께 그야말로 재기 발랄한 재치와 끼, 그 양면성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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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디아나밥스 2009.12.05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대판 거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흥미롭군요.^^
    역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닌가봅니다.

  2. 하록킴 2009.12.05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상이나 표정이 사람의 내면을 겉으로 보여준다고 하지만...그것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이에게는 무서울수도 어떤이에게는 자상한 사람일수도 ㅎ

  3. 소이나는 2009.12.05 2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밥샙은 요즘은 파이터가 아니라 ㅋㅋ
    개그맨같이 보이네요 ㅎㅎ
    호동아저씨도 이제 천하장사라는 느낌은 꽤나 사라진 것 같구요^^

  4. 하늘엔별 2009.12.06 0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인들이 모두 출동했네요.
    힘에 있어서는 강호동도 거인이라고 봐야겠어요. ^^

  5. 핫스터프™ 2009.12.06 0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들에 비해 튀는 능력,
    그들은 그 능력을 더욱 발전시킨 진정한 능력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거울신화

주절주절 2009. 10. 18. 01:33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 기념전 거울신화 입니다. 부산 신세계백화점 신세계 갤러리에서 열고 있습니다. 영화배우들의 영화 포스터, 영화속 사진들 같습니다만 획실치는 않습니다. 팜플렛을 깜빡 잊어서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지 못하겠습니다. 아무튼 사진들은 아름답습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고, 슬프고, 괴로움에 치가 떨리는 모습이라고 해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그들의 모습은 인간과 세상을 표현하려는 적막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공간에는 충만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영화에서 느끼는 그 카타르시스를 그들이 만든 신화의 거울 속에서 느끼는 가 봅니다. 

제일 마지막 사진은 얼마전에 타계한 고 장진영씨의 사진입니다. 슬픈 모습입니다. 그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기라도 한 모습니다. 그녀는 세상과 이별을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영화의 신화 속에서 감동적인 주인공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마음으로 한 송이의 국화꽃을 바칩니다.     



















삼가 고 장진영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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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행복일까요? 육체적인 쾌락이 행복일까요? 정신적인 것일까요? 물질적인 것일까요? 이렇게 나누는 것이 어리석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육체의 충만함이 행복이 아닐까 싶네요. 인간은 정신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고, 그렇다고 물질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물질에 너무 귀착되다 보니 물질적인 것이 너무 범람하고 있습니다만 그 물질적인 것도 행복을 구성하는 일부일 뿐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더라도 뻥 뚫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 풍족속에서도 오만 사건들이 다 일어나구요. 균형이 너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보아도, 잡지를 보아도, 신문을 보아도, 해외연수, 연예인들의 억억하는 기사거리, 신형 자동차, 로또 복권, 대박, 재테크, 연예인들의 성형 등 물질적인 것들이 너무 범람합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대박을 터뜨리는 것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경제가 나쁜 이 시대의 성격을 감안해 보면 '한탕주의' 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아무리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론이나 방송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주는 훈훈한 기사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언론이나 방송에서 해야하는 것입니다. 일반 서민들 좀 행복하게 해주면 좋은 것 아닙니까? 온갖, 재테크에 대박 신화에 한탕주의에, 또 물신에 찌던 현대인의 병적 자아들이 좀비처럼 떠도는 사건사고에 이르기 까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병리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아닐런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물질이 범람하는 한 켠에서 그 물질 때문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질조차 얻지 못해 고통받는 이웃들이 있다는 데는 잘 신경이 쓰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소설가가 빈 농가를 털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소설가는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그 소설가는 정신이 부자유한 아내를 돌보며 생계가 막막해 도둑질을 한 것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기사입니다. 우리시대의 적나라한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우선되는 우리 사회의 한 상징이 아닐까 합니다.  

 


이 소설가는 인간의 정신의 고양과 즐거움을 위해 소설을 써왔지만 정작 자신의 육체와 정신은 최소한의 물질억 충족이 없었기에 풍요로 소란을 떨고있는 이 시대에서 비참한 생활을 해왔던 것입니다. 물론 이 소설가의 속사정을 알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될 만한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화려한 물질의 축포가 터지는 이 시대에 소설가가 소설로 생계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필자를 너무 안타깝게 하고 부그럽게 만듭니다.

꼭 이것만은 아닙니다. 이 소설가보다도 더 비참하게 살아가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풍요의 사각지대에서 소외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심있는 기자인지, 아니면 의무감인지, 아니면 직무인지는 모르나 사회의 밑바닥 존재드를 다루는 기사들도 간혹 봅니다. 그럴라치면 그러한 기사들이 범람하는 풍요의 기사 속에 매몰되고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카라의 엉덩이 춤은 살랑사랑 흔들거립니다. 이 어덩이 춤이 살랑 살랑거리면 마치 나비 효과 처럼 풍요와 물질의 홍수가 범람하는 듯 못가진자들의 불행들은 저 만치 밀려가기만 합니다. 아니 매몰되고 압살당합니다.




물질만이 아닙니다.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이 있어야 하듯 인간의 품격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정신은 존재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풍요의 한 켠에서 정신 또한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최근의 조두순 사건이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상징합니다. 정신과 물질의 균형이 깨어진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조두순 사건은 조두순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이 황혜해 진 곳에서는 육체적인 황폐의 죄악은 싹텁니다. 육신이 황폐해진 '나영이' 가 바로 그 존재입니다. 정신이 황폐해지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풍요만이 요란을 떠는 세상에서는 결국, 육체와 물질이 낳는 황폐가 검버섯처럼 돋아나는 것입니다. 이런 풍요가 진정한 풍요인지 한 번 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영이가 그린 그림


인간은 행복해야 합니다. 물질이 중요합니다. 정신도 중요합니다. 이 둘이 진정 균형을 이룰 때 행복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의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이 균형이 특정한 개인이나 소수에게만 이루어진다면  국가로 보아서도 행복한 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병든 국가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자의 말 같은데 그런 것은 아니구요, 행복을 국가 차원에서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위에서 보았던 소설가의 불행처럼 아무리 개인이 발버둥처도 도둑질을 하지 않고는 안되는 현실이 가슴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소설가가 글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또 그 글들이 인간들의 정신을 풍요롭게하고 행복하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그 소설가는 분명 자신의 체험으로 한 대작을 쓸 것이라는 자위만을 하게 됩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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