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이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1.20 시크릿가든, 한 편의 성인 동화와 영혼 체인지 (11)
  2. 2009.09.05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몇가지 것들 (6)


<시크릿가든> 본방을 사수하지 못하고 이제야 재방으로 보고 있다. <시가> 폐인님들에게는 한참이나 뒤떨어졌다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것 같다. 재방으로 보니 그 신선함이 다소 떨어져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디테일한 부분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긴 하다. 톡톡 튀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김빠진 맥주를 채워주고 있다고나 할까?


재방으로 보고 있는 주제에 뒤늦게 새롭지도 않은 감평이라는 걸 쓰기는 민망하고, 단지 김주원과 길라임의 영혼 체인지가 갖는 의미를 나름대로 뒤늦게나마 되새겨 보고 싶다. 이건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스토리상에서 '영혼 체인지' 가 갖는 겹겹의 의미들을 알지 못하는 필자이고 보니 단지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생각이 나열될지도 모르겠고, 다소 드라마의 내용상 그 본질적인 의미와 유리 된 글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1192338013&mode=sub_view


대개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문학작품에서 영혼은 원혼인 경우가 많다. 비록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육체를 잃은(육체가 죽은)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유령, 귀신, 성령 같은 단어들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구별하지 못한다. 다만 피상적인 생각이지만, 유령, 귀신, 성령 등은 비록 가시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불가시적이며 비현실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육체를 상실한(비록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죽은) 억울하게 죽거나 원한 맺힌 영혼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영혼이 햄릿의 아버지의 영혼이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샤머니즘에서 혼을 불러내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원혼인 경우가 많다. 초혼제를 하고, 49제를 하며,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게 기도를 한다.


이와는 다소 다른 것이 서구 기독교의 성령(The Spirit)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달리 말하면 신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세속에 속한 것들을 끊임없이 죽어야 한다. 육신도 그 하나이다. 그럴 때 신자들의 마음에 신의 영혼(성령)이 들어와 완전히 새로운 신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원혼이라기보다는 구원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사탄에 대한 응징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니 상대가 있는 것이다. 성령이 사탄을 거듭나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고 보면 이 사탄은 영원히 인간을 유혹하고 구렁으로 빠트리는 존재이다. 만약 한 인간의 내면을 사탄(악한 영혼)이 지배한다면 인간은 신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성령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탄을 물리치는 존재로 말이다.  


이러한 영혼의 존재를 믿는 것은 죽음으로 단절 될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영속성을 제공한다. 기독교에서의 성령 받음은 영생을 보장받는 것이며, 불교에서의 윤회는 영속적인 생의 다양한 변주를 의미한다. 유교도 마찬가지이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 행위는 곧 죽은 뒤에 찾아 올 수 있는 현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http://isplus.joinsmsn.com/article/790/4947790.html?cloc=



영혼은 육신을 빠져나가야지(육체가 죽어야지) 만이 그 독자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산자에게서 영혼이 빠져나가면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햄릿의 아버지나 처녀귀신처럼 사후에 원혼이 되어 나타나거나 불교에서처럼 사후 영혼이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렇게 육신이 죽어야지 많이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밀알이 썩어 새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


*

<시크리가든>에서는 주원과 라임의 영혼들이 서로의 육체를 바꾸어 들어간다. 이런 경우는 참 독특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서로의 영혼이 다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주원은 라임으로 라임은 주원으로 새롭게 거듭난 것이다. 불교적의 윤회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죽음이 없이 영혼이 교체된다는 것은 재미있는 발상이다.


이렇게 육체가 죽지 않고 영혼이 바꾸는 것은 무엇을 의도하기 위해서 일까? 타자 속에 자아의 영혼이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타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타자의 육체를 빌어 세계를 지각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세계가 사라지듯이 타자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는 다를 것이다. 코도, 귀도, 피부도......모든 감각들이 다 다를 것이다. 자아의 영혼으로 타자의 육체를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해와 소통의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이외에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인간이 부단하게 해야할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이며 완전한 이해와 소통인 까닭이다. 


따라서 주원과 라임의 영혼 체인지는 좀 더 확대하면 타자를 향한 이해와 소통에 대한 알레고리가 된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드는 모든 종류의 갈등은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소멸할 때만 사라질 수 있다. 자아와 타자가 충돌하는 이 경계에 꽃을 피우고자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슬픈 운명일 것이다. 주원과 라임의 영혼 체인지는 소멸시킬 수 없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로이다. 세상의 소란에 대한 작은 평화의 소망이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너무나도 애틋한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가 주원과 라임이 되어보는 것은 어떤가?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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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촌댁 2011.01.20 0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촌스런블로그님도 이제 시가 보시기 시작하셨군요.
    전 '영혼체인지'의 의미를 처음에 남녀차이, 계급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했답니다.
    이제 시가를 다 보고 나니, 이 두 의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운명적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2. ♣에버그린♣ 2011.01.20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ㅇ니 이제보셨어요^^ ㅎㅎ
    전 첨부터 페인이였슴다^^

  3. 티비의 세상구경 2011.01.20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크릿가든에서 영혼이 체인지되었지만
    눈을 감고 서로를 느끼던 장면이 갑자기 생각이나네요 ^^;

  4. 감성PD 2011.01.20 1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모저모로 개성있었다고 생각해요 ㅋㅋ

  5. 이류(怡瀏) 2011.01.20 1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시크릿가든 앓이를 저도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ㅠㅠ
    너무나 많은 행복을 주었던 드라마에요 +ㅁ+ 콘서트도 했었고.. 끙

  6. 하록킴 2011.01.21 0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크릿가든 소문은 많이 들어보았는데...
    저는 왜 우리나라 드라마가 안끌릴까요? 시크릿가든은 소재가 조금 특이하다고 하던데..

  7. 꽁보리밥 2011.01.21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 전체가 시크릿가든에 빠져든 느낌입니다.
    대단하 열풍이었어요.^^

  8. 새라새 2011.01.21 1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 저곳에서 시끌 시끌한 시가 저는 변방의 시가인가봅니다 ㅋㅋㅋ

  9. 여강여호 2011.01.22 16: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케이블에서 시크릿 가든 하고 있네요...꼭 이런 식으로만 봤습니다. 그것도 띄엄띄엄..

  10. PinkWink 2011.01.22 2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재방을 볼까바요.. ㅠㅠ 왠지 뒤진듯한 느낌이 강력하게 들거든요..ㅠㅠ

  11. Deborah 2011.01.23 0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재방을 볼까해요. ^^ 잘 만들어진 드라마입니다.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몇가지 것들


여행에 대한 글을 쓰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여행의 경험이 일천하다. 몇 나라가 고작이다. 그것도 남아있는 흔적들이 거의 없다. 그만큼 내게 여행은 그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행기를 써 본다거나, 여행의 경험들을 나의 삶에 대입해 본다거나, 일정에 따라 사진을 찍는 다던가 하는 것은 그다지 흥미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여행을 가서 노는 것에, 먹는 것에, 보는 것이 다였다. 여행을 가기전의 설레임과 다녀온 후의 추억과 아쉬움이 남은 것의 9.9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멍청했던지, 생각이 없었던지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서점에 가보면 많은 여행 관련 책자들이 눈에 띤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 대해 생각하고, 여행에 대한 독특한 안목을 가지고,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많은 사진들이 책속에 존재하고, 수많은 정보들이 책속에 있다. 여행에 대해 반추하지 못한 죄다.


 

재미를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www.flickr.com


그들은 얼마나 나와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가? 재미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여행을 단념할 것이다. 그들을 매혹시킬 만한 재미가 있기에 그들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도 재미와 유희로만 넘쳐나면 얼마나 좋을까? 삶은 왜 오락 게임을 하듯이 재미있지 않을까? 삶은 왜 모순 투성이일까? 때로 잠간이나마 천국을 경험하는 것은 여행을 통해서일까, 아니면 여행 그 자체일까? 여행은 마치 어두운 틈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삶의 틈을 헤집고 나와 꽃 향내를 맡을 수 있도록 한다. 소풍가는 아이의 뛰는 가슴 마냥 우리의 마음도 설렌다.

감동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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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처럼 인도로 떠난 여행자가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사색의 흔적을 따라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깊은 의미를 담는다. 삶의 깊이를, 이간의 본질을, 구원이라는 것을......그 깊은 흔적의 골을 추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 속에 그 의미들을 투영한다. 박물관에 며칠을 머물며 역사의 자취를 영혼에 담으려는 여행자가 있다. 그것 또한 삶에 대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예술과 미를 통한 감동의 여정이며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한 여정이다.

사랑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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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연인이 함께 떠나는 여행의 오솔길,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그래서 허니문이라는 게 있나보다. 아니 젊은 연인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육신은 뇌쇠했으나 정신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황혼 여행도 있다. 죽음이 그리 멀리 남아있지 않는 그들에게 이 여정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그들에게 그 시간은 얼마나 보석처럼 아름다울 것인가? 사랑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사랑은 함께 만드는 것이다. 나 하나의 사랑도, 너 하나의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겠지만, 여행에서는 사람이면 더욱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여행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추억거리들 중에 하나이다.

소통을 생각한다




유럽이나 북미, 그리고 영연방 국가들에는 백인들이 다수이다. 그들과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있다 보면 나의 왜소함을 느낀다. 육체적으로 그들이 조금 우월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걸 부정할 수 없다. 때론 그 덩치들에게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소통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언어의 벽이 있지만 표현하지 않는 속에서도 감정의 교류는 단절되지 않는다. 때론 불친절한 인간들도 있다. 무시하는 인간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은 예외적인 존재들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삶을 접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게 된다. 여행의 의미는 바로 이런 부족함의 한 가운데 버젓이 존재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우리가 표현하지 못하는 사이에......언어를 떠나 그렇게 존재한다. 때론 인종간의 갈등이 왜 생기는지, 왜 미워하고, 전쟁을 하는지 애절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하고 있음을 느낀다. 여행이라는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희망과 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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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희망과 꿈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하늘만 바라보아서도 땅의 진정한 고마움을 모를 수 있다. 굳건히 땅을 밟고 서 있어야 꿈도 꿀 수 있고, 희망도 가질 수 있는 법이다. 반대로, 땅만 바라보며 희망 없는 막다른 길에만 직면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희망과 꿈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불만, 때로는 분노의 소산이다. 그렇게 희망과 꿈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현실이 완전하다면 희망도 꿈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밟고 있는 땅을 생각을 본다. 나는 전적으로 희망적이기만 할 수 있을까? 미래에는 어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여행은 바로 이런 희망과 꿈의 동경이 아닐까?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를 경험하면서 우리도 좀 더 나아 보자는 꿈과 희망을 갖게 되고,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를 경험하면서 그들에게 희망과 꿈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하게 된다. 이 넓은 세계가 올망졸망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된다. 굶주림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프리카의 황량한 폐허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나의 경우는 비록 사진 속에서 이지만) 그들이 희망과 꿈을 놓지 않도록 기도한다.

여행은 우리를 재미있게 하고, 감동을 몰아다 주며, 문화와 삶을 이해하게 하고 언어가 다른 인종간에 소통의 전율을 가져다준다. 여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다른 삶, 다른 문화를 가진 인간들과 감동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또한 여행은 우리 가슴속으로 알게 모르게 세계를 향한 뭉클한 희망과 꿈을 스며들게 한다. 이로서 우리와는 무관하던 존재들이 우리와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여행의 황홀한 선물이 아닐까!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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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얀 비 2009.09.05 0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여행하면서 고독과 그리움을 느껴요.
    이곳에 함께 오면 좋았을 그 사람을 떠올리기도 하고, 혹은 예전에 함께 왔던 사람들을 추억하기도 하죠.
    여행이란 해방감을 주기도 해야 하지만, 때론 간절한 그리움이 먼저 다가올 때도 있더군요.

    여럿이서 함께 가면 느끼지 못할, 혼자만의 여행 속 고독도 느껴 보기도 한답니다. 특히 기차를 타고 갈 땐 창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2. 한셩배낭 2009.09.05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동감 입니다,,^^*

  3. condee 2009.09.06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