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싸이, 그리고 안철수의 공통점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인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싸이의 <감남 스타일>이 빌보드 핫 100의 1위를 하기 직전이다. 여기에 안철수 돌풍이 대선 정국의 태풍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보기 드문 현상은 다분히 시대의 전환기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before/after로 확연한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들처럼 보인다. 사실 하나의 사건이 시대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수많은 사건들이 변화에 걸쳐있으며 변화도 단절적인 것이 아니다. 연속적으로 변화한다. 그럼에도 그러한 변화에는 좀 더 두드러진 요소들이 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의 출현이라던가, sns출현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김기덕이나 싸이, 그리고 안철수를 변화의 두드러진 사건들로 생각하고 있는가? 우선, 그들을 이런 변화의 두드러진 대표적 현상에 두는 이유는 그들의 성공 때문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숱하게 많다. 그들을 우리 사회 변화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보는 이유는 그들이 성공을 해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그들 존재의 성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상상력은 우리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짜증나게도 만들지만 그 상상력의 확장은 새로운 소통으로 이끌고 있다. 그가 넓혀놓고 있는 이 상상력의 영역은 우리사회의 견고한 인식틀을 벗어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김기덕은 한국 영화계의 이단아로 배척당한 존재였다. 그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것은 이제 우리도 그들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 김기덕 감독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도 우리사회에서는 다소 냉대 받아왔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태도를 고쳐야 한다. 일부 비평가나 평론가의 인정이 아니라 대중의 저변으로 김기덕을 인정하는 세련되고 성숙된 태도가 필요하다.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사회는 좀 더 다양한 상상력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싸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대중음악의 주류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소 특이한 존재였다. 이번 그의 <강남스타일> 만 해도 그렇다.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국내에서는 금지곡으로 팽 당했을지도 모른다. 주류가 아닌 싸이가 이렇게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은 물론 SNS의 힘이 컸다. 싸이를 대한민국의 가수로 자랑스럽게 여기기 이전에 그의 노래가 유투브를 통해 확장되었듯이 소통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깊이 새겨야 한다. 우리사회가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에만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를들면 진보와 보수 같은 것이 그런 것인데 단절된 것들이 아니라 소통하고 보완하는 것들이다. 우리사회를 너무 소모적이고 피폐하게 만든다. 개방된 사회로 나아가고 소통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로 나아가는데 고작 틀에 박힌 생각에만 안주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싸이와 함께 우리사회의 유연성도 함께 확장되어야 할 것이고 우리 인식의 틀도 더욱 깊고 넓어져야 한다고 본다.

 


 

안철수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그는 정치계에서는 문외한이다. 누구보다도 늦게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고 정치와는 걸맞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저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순수하고 착해 보인다. 정치를 할 수 없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을 뒤집어 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정형화된 정치의 틀 속에 안주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안철수는 정치의 영역을 확장한 듯하다. 정치는 이래야 한다는 어떤 틀에서 또 하나의 틀을 추가함으로서 선택의 영역을 넓혔다. 안철수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안철수를 통해서 정치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순수한 사람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안철수와 관련해서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이기에 필자로서는 언급을 자제해야만 하겠다. 결국 안철수를 통해 정치에 대한 인식의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그가 대선에서 실패를 하던 성공을 하던 정치의 변화는 2012년을 기점으로 변화해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들의 공통점은 상상력의 확장과 SNS를 통한 소통의 확장, 그리고 정치인과 정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확장이다. 결국 그들의 공통점은 '확장' 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넓어지고 넉넉해지는 변화 속에서 이들의 현상이 두드러지게 감지되는 것 같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 그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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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머물러 있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 버린다. 이런 흐름을 실감나는 하는 것들이 우리의 도처에 늘려있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변화한 모습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순응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아무리 발버둥쳐 받자 소용이 없는 일이다. 주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지나간 사진속 모습들이나 추억속의 기억들을 떠올릴 때면 변화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고왔던 부모님들의 늙어버린 모습에서, 친구의 모습에서 정작 자신의 모습을 보게도 된다.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연예인들도 그런 존재들 중에 하나이다. 특히 영화나 TV에서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왔던 연예인들이라면 더욱 그러하지 싶다. 그들의 모습을 영상 속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 이대근을 기억하실 것이다.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가 31년 동안이나 기러기아빠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궁금증을 자아내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랴 개인사이고 개인의 속사정을 시시콜콜 캐묻는다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니 말이다. 31년이란 세월은 강산이 3번이나 변하는 시간이다. 그 기간을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 왔다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물론 비록 떨어져 있지만 자주 만나기도 할 것이고 인터넷의 발달로 자주 연락을 할 것이다. 300회나 워싱턴을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것만큼이야 할까?



이대근의 이런 속사정을 접하니 외롭게 죽어간 김희라나  얼마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김추련이 떠오른다. 정말 세월이 덧없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 사건들이었다. 대중의 인기를 누리며 생활하던 한 연예인의 쓸쓸한 죽음과 자살 소식은 개인의 사생활로 돌리기에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다. 죽은 김희라나 김추련만이 알 것이다. 대중의 인기를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았던 시간과는 달리 쓸쓸하게 외롭게 살다 죽음에 직면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변해 간다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점점 변해서 늙고 늙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물의 흐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와는 달리 '쓸쓸한 몰락' 은 자연스럽지가 못해 보인다. 자연스러운 삶에 이물질이 끼어있는 느낌이다. 왜 삶이 그렇게 되어버렸는가는 개인사이지만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대근이 기러기 아빠로 31년간 홀로 살아왔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쓸쓸한 몰락은 아니지만 31년 동안 기러기 아빠로 살아온 것은 자연스럽지가 않아 보인다.  대중의 인기를 누리면서 살아왔듯이 연기자의 명예를 간직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모든 연예인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인기를 누렸던 만큼 행복해 지면 좋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평범함 속에서도 평온하고 품위있게 살아가면 좋겠다. 함께 울고 웃었던 연예인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좋겠다.



이와는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자연에 순응'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떠오른 이미지는 연예인들의 지나친 성형이다. 성형은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자연스러운 발버둥 같은 제스처들을 도처에서 목격하게 되면 참 짠하게 된다. 흐르는 시간에 그렇게 악착같이 저항하기 보다는 좀 더 자연스럽게 자신을 풀어 놓으면 좋겠다. 그래서 선배 연예인들의 '쓸쓸한 퇴장'(?) 을 보면서 자신의 '늙음' 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인기라는 것도 덧없지 않는가? 혹 노년에 성형 후유증이라도 생긴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기까지 할까. 인기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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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2 0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주리니 2012.03.02 0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연스럽게, 인위적이지 않고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요즘은 좀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제게도 말이죠...

  3. 2012.03.02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Zoom-in 2012.03.03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1년이나 기러기 아빠로 보낸 속 사정은 있겠지만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네요.
    가족의 의미가 함께 했을 때 더욱 소중한거 아닌가 생각되네요.

  5. 자유투자자 2012.03.04 1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레뷰추천했고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6. 햄톨대장군 2012.03.04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인이란 직업이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화려해보이는데
    이런글을 읽으면 그들도 같은 사람이구나..싶어요.

  7. 보보 2012.03.05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1년간 혼자서 기러기 아빠로 살다니..
    음.. 왠만한 사람아님~ 못할듯..
    추천꾸욱 하고 갑니다~

  8. *저녁노을* 2012.06.19 1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한 이대근씨네요. 그 오랜기간을...

    오랜....인기....계속 되었음 하는 바람인데...

    잘 보고가요

  9. 멋진만남 2015.06.15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대근씨가 알고보니 기러기아빠의 원조격이네요? 1981년 당시 전두환정권때 유학자유화로 인해 너도나도 유학갔던시절에 청각장애를 앓고있는 두딸을 위해 세딸과 아내를 모두 미국으로 보냈던 아버지이니 짐작이 가더군요? 지금이야 기러기아빠들이 넘쳐나지만 저는 그때 세상에 없었으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일을 했던 사람이니 암튼 이대근씨 존경합니다~!!!! *^^******

  10. 멋진만남 2015.11.27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대근씨 아내는 참고로 결혼전 전국에서도 1등을 할정도로 공부잘한 수재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돈도없고 가난한배우였던 이대근씨를 선택한 장한아내셨죠~!!!!



몇일 전 뉴스(2011.6.4)에 인산인해를 이룬 입시설명회를 다룬 부분이 있었다. 입시설명회에 모여든 사람들이 대부분 부모들이라는 사실에 우리 사회의 광적인 입시설명회 열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왜 학생들의 대학 입시에 부모들이 이처럼 나서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걸 부모의 사랑이나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입시설명회 열풍은 우리 사회에서 학벌의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사랑을 믿어요>의 권기창(권해효 분)은 유능한 학원 강사였다. 어찌보면 사교육의 주범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의 초반부에 권기창은 학원에서 카리스마있는 강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입시 경쟁의 한 가운데서 그 열풍을 온몸으로 느꼈던 인물이다. 이런 살벌한 경쟁의 한 가운데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와 더불어 감정이 메말라버린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인물이 된 듯했다. 이러한 학원에서의 성격이 가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는데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인 인물로 아내 김영희와 아이들에게 기계적인 복종(?)을 강요했다. 그에게 아내 김영희와 자녀들은 마치 강압적인 명령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태도는 그의 경제적인 능력과도 무관치는 않았다.  


이미지출처: kbs 드라마

그런데 어느 순간 학원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아내 영희가 방송작가 공모에 당선이 되면서 역할이 뒤바뀌게 된다. 김영희가 방송국에서 드라마 작가로 일하는 반면, 권기창은 우여곡절 끝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권기창은 경제적인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도 잃고 만다. 이러한 변화의 초기에는 권기창의 몰락이 고소했고, 언제나 권기창에게 눌려살던 김영희의 드라마작가로의 신분상승(?)과 경제적 능력에 시원함을 느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역전된 위치가 감정적인 만족을 주는 것도 잠시, 바뀐 위치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우리의 가대와는 너무 달랐다. 점차 인간적으로 되어가는 권기창과는 달리 드라마 작가가 된 김영희는 자녀와 남편을 방기하면서 술에 빠져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작가로서 드라마대본을 쓴다는 사실을 그녀 행위를 합리화하는 절대적인(?) 근거로 항변하였다. 이러다보니 시청자들이 김영희에게 느끼는 피로감은 꽤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희화화되고 과장된 인물이라 유쾌하게 보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상하게 변화한 김영희와 달리 경제적으로 몰락한 권기창은 그 몰락이 그 자신의 변화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사실 드라마상에서 권기창이 이렇게 달리지게 된 구체적인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성찰적인 모습에 대한 묘사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권기창의 갑작스런 변화가 그 개연성을 결여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연성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권기창이나 김영희는 애초부터 개연성을 초월하는 코믹적인 요소가 강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경제력을 상실하고 어쩔 수없이 전업주부가 된 권기창은 아이들과 더욱 친밀해지면서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이전 아버지의 모습을 서서히 지우고 있다. 아이들도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너무 좋아한다. 권기창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찾으면서 자녀들과 관계회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가 수영도 하고, 강가에서 감자도 구워먹으면서 자녀교육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도 언제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강요만 하던 가부장적인 학원강사의 모습을 재현하던 권기창이 이제는 친구처럼 자녀들과 육체적, 정서적으로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울 정도이다.
 


이렇게 학원이란 공간에서 입시문제 풀이를 하던 학원강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아이들과 어울리는 권기창의 변화한 모습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입시설명회에 모인 부모들의 모습과 권기창의 모습이 자꾸만 대비되면서 교육의 의미와 부모의 역할을 되새겨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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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지 2011.06.08 0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이것이 우리 현대의 부모님들에게 의미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2. 왕비마마 2011.06.08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 가끔 보게되는데~
    정말 요즘 나오는 권해효씨는 처음에 봤던 권해효씨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더라구요~ ^^

    울 촌블님~
    오늘하루도 기분 좋~은 시간 되셔요~ ^^

  3. 꽃집아가씨 2011.06.08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거 촌스런 님 때문이라도 어제 다시보기로 볼려고 했다가..못봤네요 ㅠㅠ

  4. †마법루시퍼† 2011.06.08 0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해효의 연기는 언제나 유쾌해서 좋아요. ^^

  5. hwangja 2011.06.09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 우연히 몇번 봤는데 잼있더라구요~^^


‘강남역 뽀뽀녀 동영상’ 의 주인공이 데뷔를 앞둔 여성 듀오 ‘하라소라‘ 의 멤버인 유소라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강남역 뽀뽀녀의 동영상은 프리허그를 패러디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프리키스를 하는 동영상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동영상이다. 인터넷 기사에서 처음 ’강남 뽀뽀녀‘ 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연예계의 자극적인 홍보물이거나 개인의 홍보 동영상임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


신인 걸듀오의 홍보를 위해 프리허그를 차용한 이런 ‘뽀뽀녀‘ 동영상을 찍었다는 것인데, 공익적인 의미의 프리허그마저 이렇게 상업적인 홍보물로 이용하는 것이 참 씁쓸하다. 과장된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리허그를 프리키스로 패러디한 이런 상업적인 동영상이 우리 가요계의 천박성(?)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동영상을 제작하는 의식의 밑바탕에는 한탕주의나 선정주의가 자리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49447


최근 연예계의 홍보는 자극적인 퍼포먼스로 범람하고 있다. 가요계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는 걸그룹의 선정적인 옷차림과 춤도 그러한 퍼포먼스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와 춤이 범람하는 클럽 문화가 우리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클럽 문화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위축된 현상이 잘못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놀러와>에 출연한 ‘세시봉‘과 이들의 콘서트가 시청자들에게 열광의 대상이 된 것은 이러한 범람하는 자극적인 퍼포먼스에 대한 반작용의 의미가 짙다고 할 수 있다. 노래와 댄스가 범람하는 클럽같은 분위기를 벗어나 자연속에서 차분하고 조용한 노래를 감상하고픈 대중의 심리가 상당부분 작용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시봉의 출연은 우리 가요계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요계의 성장은 변화에서 더욱 크지는 것이다. 문화현상은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에 걸맞게 발전하면서도 언제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획일적이된다면 경직화되고 결국에는 죽어버리는 것이다. 다양함이 생명을 꽃피우는 것이다.  


'강남 뽀뽀녀' 로 다시 돌아와서, 노래하는 걸그룹이 노래가 아니라 자극적인 퍼포먼스로 자신의 존재를 홍보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아무리 영역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 혼합된다고는 하지만 고유의 영역이 주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춤과 음악이 섞인다고 해도 가수로서 댄서로서의 존재감은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하라소라’ 가 댄서그룹이라고 해도 엄연히 노래가 주가 되는 가수인 것이다. 가수는 노래로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고 무대 위의 퍼포먼스는 부차적인 것이다.


하라소라가 여성듀오라고 한다면 노래로 그들을 홍보하고 존재를 알려야 한다. 노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강남 뽀뽀녀’ 로 공익적인 프리허그를 자극적인 프리키스로 왜곡하는 이상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노래하는 가수가 이런 자극적인 퍼포먼스로 자신을 홍보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이미 상실하는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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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칼촌댁 2011.02.14 0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남역 뽀뽀녀가 누군가 했더니 신인가수라고 그러더군요.
    솔직히 저도 어이없는 마케팅이란 생각이 드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3. 2011.02.14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여강여호 2011.02.14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낯간지러운 마케팅인 듯....

    어김없이 찾아온 월요일입니다.
    즐겁게 일주일 시작하십시오

  5. 달려라꼴찌 2011.02.14 0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인터넷뉴스를 보고 쫌 황당했었습니다 ^^;;;

  6. 티비의 세상구경 2011.02.14 0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는 ....녀 라고 아야기하면..
    아.. 광고구나 이런 생각이 먼저 들더라구요

  7. *꽃집아가씨* 2011.02.14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리허그도 좀.. 그랬는데 이제뽀뽀녀까지..
    마케팅 좋지만.. 이건 좀..ㅠㅠ 아닌거 같아요 ㅠ

  8. 해바라기 2011.02.14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남 뽀뽀녀,얘기 즐감하고 갑니다.
    좋은 한주되세요.^^

  9. 소소한 일상1 2011.02.14 1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점점 더 민망한 마케팅이 도를 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세시봉 콘서트는 참 청량한 자연 그자체였죠. 요즘도 저는 매일 세시봉을 조금씩 듣고 있답니다. 조금 기운이 없을 때나 힘이 빠질 때 한번씩 들으면 괜시리 힘이 나요.^^
    블로그님 좋은 하루되세요. ㅎㅎ

  10. 2011.02.14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뽀뽀 까지 했으니 다음에는 어떤 마케팅 방법이 나올지 우려가 됩니다.
    잘보고 갑니다.

  11. 혜진 2011.02.14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소 황당하기도 하구요..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한주 되세요..^^*

  12. 오붓한여인 2011.02.14 1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데뷔전에 이런마케팅을 하니..
    그래도 선영아사랑해가 가장 큰이슈였던듯.

  13. 자수리치 2011.02.14 14: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찌라시들과 기획사의 합작이듯 싶군요.
    강남역 뽀뽀녀, 정말 어이없는 낚시...입니다.~~

  14. 더머 2011.02.14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뻔하게 무슨 영상이겠지해서 아무렇지도않게 무관심으로 돌렸네요 ㅎㅎ

  15. 굴뚝 토끼 2011.02.14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이런 마케이팅은 역효과 나기 딱 좋죠..^^

  16. 작가 남시언 2011.02.14 2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그랫군요 !!! 일반인인줄 알앗는데 ;;;

  17. ageratum 2011.02.14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이제는 별별 마케팅이 다 있네요..ㅋ

  18. 파리아줌마 2011.02.15 0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격하게 공감합니다..
    본연의 자세를 항상 잃어버리고
    주변것들만 붙들고 있지요..

    세시봉 콘서트는 꼭 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보았네요,

  19. 빨간來福 2011.02.15 0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이런 이벤트홍보가 많다고 하죠.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마케팅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라는 역설같기도 하구요.... 실력은 있을까요?

  20. 돌이아빠 2011.02.15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젠 새로운 홍보 방법을 찾아야 하는거 아닌가 싶네요.
    무슨무슨녀 하면 대부분 X 거나 홍보거나 >.<

  21. PinkWink 2011.02.15 1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그렇군요.. 전 이런것이 있는지도 몰랐는걸요^^
    (헉......ㅠㅠ)


 여행은 다이어트다?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사전적인 여행의 정의가 실제적인 여행의 복합적인 특성을 모두 다 포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의' 는 그것 자체로 정의하는 대상의 존재를 가장 효율적으로 파악하게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불완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에 대한 정의는 단순히 물리적인 현상의 서술에 그친다. 실제와 동떨어진 일반적이고 단편적인 부분적 특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의를 내리기를 즐겨한다. 특히 정의를 내리기 까다로운 추상적인 개념어인 경우가 더욱 그렇다. 가장 두드러진 정의 내리기의 일례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한다. 사랑은 □ □ □ 라는 식의. 또한 우정이나 평화라는 말들도 그러하다.


사랑이나 우정, 평화와 마찬가지로 여행도 수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여행 자체는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여행에 부여하는 추상적인 의미는 실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행이란 폭 넓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은 무엇이다' 는 식의 정의내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갖는 여행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는 면에서 소중하고 할 수 있겠다.


자 그렇다면 여행에 대한 정의를 필자의 마음대로 내려 보려고 한다.



여행은 다이어트다

모든 여행은 발품을 팔게 되어 있다. 걷지 않으면 여행은 성립할 수 없다. 여행을 한다면서 걷지 않는다면 버스만 타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버스만 타고 다니는 것이 여행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저 타고 보는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타고 보기만 하는 것이 여행일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버스에 앉아 밖만 내려다보는 것은 관광과 가까울 수는 있어도 관광이라 이름짓기도 어렵다. 걷지 않고는 관광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제 다시 여행에 걷는 행동을 포함시키고 나면 여행이 다이어트가 안 될 이유가 전혀 없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비만인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비만으로 여행을 시작해서 비만이 사라졌기 때문이거나 비만인 사람들은 운동을 해야 하는 여행을 싫어하기 때문이거나 그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비만인 사람들은 여행보다는 관광을 하려고 할 것이다. 날씬해지려면 괜히 지방흡입술을 하고, 약품을 먹고, 심지어 굶기도 하는 사람잡는 다이어트보다는 여행을 통해 다이어트 효과를 거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산이나 자연을 타고 걷는 여행이라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여행은 다이어트가 될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여행은 자유이다

일시적인 유보이긴 하지만 여행은 일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거기에는 정부의 구속으로 부터도, 권력의 제재로 부터도, 각종 매체의 광고 홍수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어느 정도 무정부주의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만의 자유를 누린다. 무정부만이 아니라 무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며,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치를 느끼며, 실타래처럼 어지러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진다. 그래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또 그런 심성 가진 사람들이 된다.


그런데 자유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는 말처럼 투쟁의 산물이기만 하면 이래저래 자유의 한계가 너무 위축되고 자유를 누린다를 말 자체가 너무 부끄러워 진다. 설마 여행의 자유를 도피 운운으로 비난한다면 할말은 없어진다. 넓은 아량을 보여달라.


 이미지 출처:www.flickr.com

여행은 삶의 다른 오솔길이다.

여행은 삶의 다른 오솔길이다. 우리는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디로 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선택에 의해 삶은 일회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의 선택만이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동시에 여럿의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중요하다. 일회적이기에 우리의 삶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의 연속에서 우리가 나아가는 길들은 차가 다니지 않는 오솔길이기라기 보다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잘 닦인 고속도로이기를 바란다. 많은 돈을 갖고, 큰 집을 갖고, 잘 먹고 잘 입는 그런 윤택한 삶을 꿈꾼다. 그런 꿈은 좋은 꿈이다. 인간이라면 모두 그런 꿈을 꾸게 마련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은 삭막하고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 꿈은 꿀수는 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고속도로 같은 길을 잠시 벗어나 보는 것, 작은 오솔길을 선택하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한다.




여행은 변화이다.

여행은 변화이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의 삶과 부단하게 비교되는 대상들을 동반하게 된다. 잘사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과, 못사는 나라들의 아쉬움이 함께 교차한다. 비만으로 죽어가는 인간과 가난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인간들의 삶이 교차한다. 마음 속 깊이 희비를 교차시키는 인간들의 전혀 다른 삶속에서 우리는 진한 감동을 느낀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묻게 한다. 왜 이런 비극이고, 희극인가? 왜 기쁨과 함께 슬픔을 가져다주는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또 동시에 공동체적인 삶에 대해서도 묻는다. 인간은 외롭지만, 또 함께라는 것을 동시에 확인하기도 한다. 가슴 속 깊이에서 북받쳐 오는 근원적인 물음들이다. 자연의 감동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사람들의 향기도 있다. 재래시장의 순박함이 있는가 하면 현대적인 건물의 세련됨도 있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한다. 기쁘던 슬프던, 분노하고 격정을 토해내던 이것들은 모두 감동으로 수렴된다. 우리의 삶을 뜨겁게 살자는 감동으로 말이다. 바로 이런 감동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여행은 쾌락이다.

여행은 쾌락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먹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 타는 즐거움, 듣는 즐거움 등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각으로 수용하는 쾌락의 극치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 먹지 못한 것, 듣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감각의 충족이니 말이다. 이것은 순전히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정의이다.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쉽게 흔하게 던져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바로 '즐겨라' 는 말이 아닐까? 즐거움이 없는 여행도 있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고행의 여행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을 여정에 비유하고는 그 여정은 고난의 길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행을 위한 여행은 종교적인 수행에 가깝다. 삶의 여정이란 것도 비유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부분을 훌훌 털어버릴 필요가 있다. 여행의 범주에서 추방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여행은 즐거움을 위해 존재케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인생이 고난이라면 여행의 즐거움은 더욱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즐겁게 하자.


 이미지 출처:www.flickr.com


*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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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수리치 2010.07.17 2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작은 오솔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2. mami5 2010.07.17 2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여행은 삶의 다른 오솔길이다에 맘이 솔리네요..^^
    공감하고 갑니다..^^

  3. 레이니아 2010.07.18 0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합니다!
    여행은 삶에 있어서 참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4. PinkWink 2010.07.18 0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은 쾌락이다.. 몹시 공감합니다.
    그 느낌을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 ^^

  5. 꽁보리밥 2010.07.18 0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은 충전이기도 하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데도 유용한 방법이라
    여깁니다.
    여행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 맘에 드는군요.

  6. 빨간來福 2010.07.20 05: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여행은 돌아옴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돌아오는 것은 여행이고, 안돌아오는 건 거주가 되는.... 말장난 같지만, 전 지금도 여행일까 거주일까를 생각하고 있는 18년차 보헤미안입니다. ㅠㅠ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과 태연희에 주목해야 할 이유?


<수상한 삼형제>는 가족 문제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드라마 답게 가족내의 갈등과 갈등 해소의 모습들이 봇물 터지 듯이 솟아져 나오고 있다. 모두 다가 비중있게 다둘 만한 문제들이면서도, 동시에 다 들 한 두 번쯤은 생가해 본 적이 있는 내용들이라 다 다루기도, 안다루기도 그런, 참 계륵 같은 드라마가 되고 있다. 시청률을 믿고 드라마를 연장 방송하다 보니 별 별 자잘한 이야기까지 다 터져나오고 있다. 어영이 불임이 의심되면서 시험관 아기 운운까지 나오리라 누가 예상 했겠는가? 현찰과 도우미가 결혼을 다시 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보았겠는가? 참 별쓰러운 이야기가 다 터져나오고 있다. 심지어 건강의 고물상의 난자와 경찰관의 사랑까지도 퍼질러 지고 있는 상황이니 보는 시청자들은 참 어지럽지 싶다. 그러니 수삼에 대한 뭔 글을 쓰기도 참 힘들다. 방점을 찍을 만한 주제의식이 희박해져서 말이다.
 


물론 가족 드라마로 거듭나고 있는 <수삼>이 이제서야 가족 문제를 제대로 전달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그리 부정적으로 볼 일도 아니지 싶지만 갈등을 좀 선별하고, 축약하여  드라마 전개의 통일성을 지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관계야 이리저리 얽히고 섥히곤 해서 어느 일방으로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있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는 있지만 그러다 보면 드라마 전개가 박진감이 없어지고 자칫 흥미를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의 <수삼>이 꼭 이런 시점에 직면해 있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백화점식 나열 보다는 한 두 놈만 패는 식의 집중 공략 말이다. 수삼의 주제가 크게는 가족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나아가 보면 이 문제들이 너무 전방위적으로 흩어져 있어 혼란스럽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어영의 불임 문제, 엄청난의 변화 문제, 태연희의 문제 정도는 짚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엄청난의 변화와 태연희의 문제이다.  사실 어영의 불임 문제는 별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주제 의식을 가질 만한 부분이긴 하지만, 다 큰 성인인 어영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치고 계솔이가 또 덩달아 난리를 칠만한 그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그저 이상과 어영이 조용히 해결해 가야할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제작진들이 이 어영의 불임 문제에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게 부부간의 내적 갈등의 문제이지 온 가족들이 다 알고 호들갑을 떨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선, 엄청난의 문제는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수삼>에서 엄청난 만큼 문제적 인간은 없다고 본다. 엄청난이 희극적인 인물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극적인 인물이다. 고아에, 미혼모에, 저학력에, 맏며느리라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정말 비극적인 존재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엄청난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언니>의 등장인물에 비유해 본다면 송강숙류의 인물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이 <수삼> 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그저 웃어야 할 처지는 아니라고 본다. 하행선과의 갈등에서 엄청난이 많이 변화를 했지만 아직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의 글에서 이미 언급했다(2010/05/02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변하지 않는가?)자기 성찰의 과정을 전혀 거칠 수 없는 인물로 여전히 그려지고 있다.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엄청난이 종남이의 엄마로써, 또 앞으로 태어날 쌍둥이의 엄마로써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고 싶다. 68회에서 그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다.
  

둘째는 태연희이다. 태연희의 문제는 너무 작위적인 요소가 강하다. 제작진은 악녀 태연희를 궁지로 몰아넣으며 시청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통쾌함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 같다. 태연희의 문제는 이렇게 다루어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태연희의 문제는 법과 범죄라는 측면에서 분명하게 다루어지고 그 해결책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아직 스토리가 진행중이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만약 이 태연희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만 다루어 진다면, 즉 우미와 현찰의 위장이혼 복수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아무리 드라마지만 범과 범죄, 경찰과 검찰의 역할을 망각하는 지경으로 치닫게 되고 말 것이다. 이 것만은 좀 피햇으면 한다. 


만약 태연희의 문제도 앞서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극처럼 개인이 해결하는 식이 된다면, < 수상한 삼형제>가 경찰 홍보용 이니 하는 비아냥 같은 글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경찰 홍보라기 보다는 경찰을 무능력하고 비현실적인 집단으로 전락시켜 놓고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진다(2010/05/31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통쾌한 복수극은 경찰과 검찰의 무능력의 결과?) 이번 만큼은 경찰이나 검찰이 제대로 서서 태연희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 이태백 검사도 있고, 아예 경찰 가족이 나오는 이런 드라마에서 법이, 검찰이, 경찰이 무능력해서 비록 악녀이긴 하지만 태연희가 억울한 피해를 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엄청난이란 이 비극적인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태연희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지 <수삼> 제작진들이 신중하게 결정해 나아가야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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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옥이(김진옥) 2010.06.07 0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사람을 통해 생각하는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건뚱이 2010.06.07 1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삼팬인데.. 매번 잘읽고 갑니다. ^^

  3. 막장 2010.06.07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욕하면서 본다는 그 드라마?
    막장에 대를 잇는 그 드라마?
    대한민국 드라마의 하향평준화에 기여한 그 드라마?
    막장에도 급이 있단소린가?
    드라마에 이런 포스트들이 달리니 막장이든 뭐든 시청률만
    오른다면....관심만 갖어준다면....하니...막장이 판을 치지..ㅉㅉㅉㅉㅉ

  4. 수삼팬 2010.06.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을 적어놓으셨네요.
    글 다 쓰시고 맞춤법 한번만 확인해 보시죠.
    틀린 곳이 너무 많네요.

  5. 사랑이면 2010.06.07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했다면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이중 연희는 사랑을 복수로 갚으니까 끝이 저런거일거라는..
    사랑이 꼭 이루어지진않죠..관계가 인연이 아니라면 사랑했으니까 놓아줄줄도 알아야하는데 욕심을 부린탓에
    벌을 받는거에요.. 만약 연희가 도중에 그만 둿더라면 재미는 없겠죠.. 가정을 가진 사람과에 사랑은 그래서 죄인건가봐요.
    그래두 남자들은 늘 이익 이라는거 그건 시대가 변해도 똑같은거 같아요..상처받는건 여자쪽이라는.. 늘 드라마는 가정을 깨면 죄인이고 가정을 지키게하죠..전에 아침드라마 있을때 잘해 는 그 들을 독하게 벗어나서 서로행복해지는 과정이라서
    인기가 있었던거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때 젤 행복하다는거 아시는지..ㅠㅠ

    • 수삼드라마잼있다 2010.06.07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사랑하는 사람과는 무엇을하든, 어디를 가든,무엇을 먹든,함께 할수 있다는것이 즐겁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세요^^

  6. 에듀앤스토리 2010.06.07 1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들이 살벌하네요...

  7. 수삼드라마잼있다 2010.06.07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 쓰신분 앞으론 이런글 쓰지마세요
    영화는 영화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입니다. 사실 요즘 드라마 볼것 없어요. 그나마 기다리는 드라마인데 재미있으면 됐습니다. 이글 쓰신분은 무슨 불만입니까? 그냥 즐겁게 보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오래 오래 길~~게 끌게 놔두세요
    부탁입니다.

  8. 불임향단 2010.06.07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의 주인이 남자인지 아님 기혼이신지 미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어영의 불임이 대수롭지 않다고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된다고... 이렇게 쓰신건 이런일을 당해보지 못하신 분인것 같네요~~
    어영이처럼 불임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솔직히 드라마에서처럼 온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해 당사자만 속앓이에 죄인처럼 지내야 합니다. 보통 남자들이 계속되는 인공수정에 지쳐 짜증내고 결국 부부가 이혼에까지 이르게 되죠!!
    근데 드라마에서처럼만 해준다면 당사자들이 힘을 얻고 좋은 환경속에서 임신에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맘으로 드라마의 어영이를 부러워 합니다. 당해보지 않았다고 쉽게 말씀 하시는것 같아 섭섭한 맘에 횡설수설 올려봅니다

  9. 태연희설정 2010.06.07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작위적이야ㅡㅡ;; SBS방송 긴급구조SOS를 보는 기분이었음ㅋㅋㅋ
    난 그냥..이런 막장 드라마가 싫어..
    근데..현재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이니 신경끊고 싶어도 눈에 띄네요~
    이런 드라마 좋다고~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난 개인적으로 짜증나던데 재미있어한다는게 좀 신기~)
    여튼..그러면서..드라마 제대로 만들어라고 소리치는 시청자들이 조금 웃길뿐ㅋㅋ
    막상 자극적인 소재가 없는 드라마 등장하면 지겹다고 안보면서ㅎ

  10. 동감 2010.06.07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불임향단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글쓴이 나이가 어떻게되고 성별이 어떻게 되는진 모르겠지만 둘이서 해결해야할 문제라니 참 어이가 없군요
    네, 물론 둘이서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주위에 도움도 절실히 필요한 문제입니다.
    왜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아이때문에 이혼을 할까요? 여성에게 임신은 매우 중요한겁니다.
    결혼에서 두사람의 결실.아이또한 중요한 부분이구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마치 자신만이 옳고 당연하다는 양.. 웃깁니다.

    어영의 불임을 울고불고 난리치고, 계솔이 난리칠만한일이 아니라니.. 참 기가막히네요.
    생각이라는걸 좀더 해보심이 어떨지요?

    이 드라마에 팬도 아니고 미혼여성이지만 이 문단에서 참 기가 막혀 글 남깁니다.

  11. 서민이쓴 한마디 2010.06.07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같은 서민이 보기에는 동감대가 많아서 참 요즘 수삼 너무 잼나게 보고있는데~~
    수삼 작가분 상이라두 줘야할듯~~
    글쓰신분은 너무 인간미가 떨어지시는듯~~쯧쯧
    저같은 서민이 보기엔 수삼 500회까지 해두 잼나게 볼듯~~ 전원일기 보는것 같은 기분 ^^

  12. 저도 동감 2010.06.07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임향단님 말씀에 동감하여 글씁니다.
    글쓰신분의 생각에 개인적인 생각이니 머라고 욕하는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 개인저인 생각은 불임의 문제는 둘만의 문제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봅니다.
    불임이 둘만의 문제라면 왜 시댁에서 아이를 임신을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며느리에게 눈총을 주거나
    부부가 이혼을 하게되거나 심지어 대리모까지 쓸까요..?
    아이라는 존재는 부부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불임도 어떻게보면 가족들이 함께 풀어나가거나,
    도움을주고 힘을 주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불임으로 온식구가 호들갑떤다는식의 글은 좀 아니라고 생각이 드네요.

  13. 너무 막장이라고들 하시네요 2010.06.07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들 보니 막장 막장하시면서 쓰레기 취급하시는데 그냥 보기 좋던데요. 처음 캐릭터들이나 사건들이 과장된 면이 많이 있긴 했지만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풍자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소중함을 부각하며 마무리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그렇게 막장으로만 몰아들가시는지??



수상한 삼형제, 태연희의 피상적인 변신은 유죄?




<수상한 삼형제> 64회에서 몰락한 태연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태연희의 변화한 모습은 이전의 태연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전의 자신만만하고 당찬 모습은 어디가고 궁색하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었다. 우미를 그렇게도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했으면서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오리발을 내밀면서 우미를 더욱 처참하게 만들던 태연희가 아니었던가? 한 때는 박사기를 호령하는 위치에 있는 듯도 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증언 번복으로 인해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는 박사기의 부하들에 의해 쫒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간의 변화라는 것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너무 심하다면 그 변화의 진실성을 의심받기가 쉬워진다. 조폭 두목이 목사가 된다든지, 살인자가 자선사업가가 된다든지, 범죄자가 정치인이 된다든지, 불륜을 저지런 여자가 수녀가 되는 급격한 변화는 어딘지 그 변화의 진실성을 믿기가 힘들어 진다. 그래서 사실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가 현실에서 잘 일어나지도 않는다.  아니 일어나지만 지극히 제한되어 일어난다. 종교적인 영역에서의 각성 같은 것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세속에서 그러한 변화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현실적인 변화라는 것은 같은 종류의 감정이나 행동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그리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그런 변화들이 대부분이다. 예를들면, 어제 짜증낸 일을 오늘 후회하는 식이다. 오늘 과식한 것을 내일은 자제하는 등의 변화들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라는 자기 반성의 감정이나 행동도 동반된다.


우리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약간은 비현실적인 현실적인 소원인 급격한 변화를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로 많이 보아왔기에 그러한 변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수상한 삼형제>의 경우 하행선과 엄청난의 변화가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한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기란 힘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한 반대급부를 노리는 위선적인 변화인 경우도 해당이 된다.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는 것은 그 이면에 어떤 꿍꿍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한 면에서 태연희의 변화를 살펴 볼때 진실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수상한 삼형제> 제작진에게 부탁하건데 이제라도 태연희가 단순히 시청자들의 동정만을 받을 모습으로 피상적으로 변화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만약 태연희를 다시 동정의 대상이나 심지어 불쌍한 천사로 만든다면 태연희의 리얼리티는 너무나 떨어지고 만다. 왜냐하면 태연희의 변화가 지옥에서 천상으로이거나, 악에서 선으로 줄타기를 하는 너무 극단적인 변화를 겪을 징후가 보이기 때문이다. 64회에서 그런 징후가 조금 드러난 듯 하다. 이렇게 되면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수상한 삼형제>에서 태연희만 그런 것은 아니다.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극이나 주범인과 계솔이의 로맨스도 그렇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리얼리티는 가지고 있다. 만약 태연희가 오르락 내리락 극단적인 변화를  겪는 다면 태연희야 말로 리얼리티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미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태연희는 뻔뻔스러운 태연희-->조폭과 어울리는 악녀--->박사기 뺨치는 조폭녀 같은 여자--->거짓말 증언을 하는 음모가--->현찰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협박자의 이미지를 차례로 보여주었다. 연희가 악녀라 불릴만 하다. 그런데 64회에서 박사기 일당에게 쫒기는 태연희의 궁색한 모습, 통장의 잔고를  보여주면서 동정을 유도한다면 이 변화는 너무 설득력도 없고 급격한 것이다. 태연희는 아직 도우미나 현찰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여전히 악녀인 것이다. 연희에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또한 박사기 일당을 경찰에 신고만 하면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도 있다. 


아무리 인간이 개과천선하고 심성이나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가 급격하게 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종교적인 각성이거나 영적인 경우가 많다. 연희를 변화시키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만약 연희를 변화 시키려면 아주 처참한 상황으로 몰아야 할 것이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떠오르게 말이다. <신언니>의 송강숙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처참한 자신의 처지를 통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각성시켜야 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급격한 변화가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저 어설프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화면 몇 커트로 연희를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연희를 하행선처럼 조용히 사라지게 하는 편이 더 현명한 것이다. 또 드라마 답기도 하고 말이다.  


64회에서 보여 주었던 그런 피상적인 장면을 통해 연희에 대한 동정을 일게 하거나 불쌍한 감정을 일어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혹 64회의 이러한 장면들이 연희가 겪게되는 처참한 장면들의 시작에 불과하다면 필자가 너무 오해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연희를 어설프게 다루지 말기를 바란다. 아무리 해피 엔딩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연희 마저 훌쩍 천사로 만들어 그 해피 엔딩에 동참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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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 걍 2010.05.25 0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간에 어떤 계기도없이 그런식으로 변해버렸다면
    좀 현실성이 없어보이기는 하네요.

  2. 람모 2010.05.25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범죄자가 ㄷㅌㄹ이 되어 있는게 현실인데요 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현실이 진행중입니다.

  3. 아물케도 2010.05.25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쌈집에서 일할 거 같은데요..ㅎ

  4. 압생뜨 2010.05.25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저 제 생각 한 마디 적으려 합니다. 제 생각은 글쓴이님과 약간 다릅니다.
    오로지 악녀로 태연희를 치부해버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현찰도 자기 입으로 실토했듯 태연희의 마음을 악용하고 가지고 논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처음부터 태연희가 악녀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태연희의 악행에 있어서도 그녀가 동정을 받을 여지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악행의 이유를 보면 말이죠.
    사회적 윤리에서는 벗어나지만 태연희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분명 '사랑에게 배신 받은 복수', 내지는 '사랑을 얻고자 하는 몸부림'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죠.
    물론 태연희는 악녀이고 잘못한 여자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녀 입장에서 서서 그녀를 이해하려고 했을 때, 그녀가 내내 고통스러운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악하면서도, 가장 가엾고 나약한 여자일 수 있다는 거죠.

  5. fourhundred 2010.05.25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연희는 우선 보기에도 건강하다. 그래서 약한 사람을 어렸을 땐 불쌍하게 보고, 커서는 남을 도와 주는데 남보다 좀 더 한 편이다.드라마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잘 아는 사람이거나 드라마극을 위하여 주의 깊게 잘 파악한 사람이다. 배실장이 드라마에서 처한 환경의 대응은 그녀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많은 시청자들이 주인공들을 위한 작가에게 바라는 바는 많다. 수상한삼형제 역시 드라마로 리얼리티에 충실하여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현실의 아이디얼한 삶과 관계하는 태런트와 작가와 시청자의 교감이 여운을 남긴다.

  6. 학생 2010.05.25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그마네슘은불의온도가
    높기대문에

  7. 용문신파 2010.05.25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나를두고더나갈수가
    잇겟서요

  8. 영어를잘하는아가시 2010.05.25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에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변하지 않는가?




엄청난은 종남의 친부인 하행선이 그녀의 곁을 떠나기까지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행선과 건강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엄청난은 친부인 하행선보다 자신과 종남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해준 건강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과정은 참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든 과정에서 엄청난의 변화를 보는 것은 드라마를 보는 작은 기쁨이고 보람이기도 했다.


엄청난은 하행선뿐만이 아니라 건강과 시댁 식구들에게 참으로 많은 피해를 끼쳤다. 그런 그녀였기에 하행선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보여준 엄청난의 변화에 호의를 보냈다. 그런 변화가 있었기에 하행선이 감동을 하고 조용히 떠난 것이다. 엄청난으로서도 당연한 자세였다. 종남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는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건강에게는 물론이고 시댁 식구들 모두에게 자신이 빚진 것들을 되갚아한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하행선과의 갈등의 과정에서 엄청난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청난이 변화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부족하다는 면에서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 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근본적인 변화는 엄청난의 마음의 깊은 곳에서 싹터면서 근본적인 변화의 결과, 이를테면 행동이나 말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은 여전히 이전의 잘못된 습관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우선은 근본적인 인격의 변화가 부족하다. 말투나 행동 같은 한 인간의 인격을 드러내는 습관이 여전히 천박에 가깝다. 특히 시어머니인 전과자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볼라치면 이건 며느리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리 시어머니에게 아양을 떨고, 애교를 부린다고 해도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지켜야 할 금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엄청난은 이러한 금도마저도 깨고 있다.



둘째는, 엄청난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듯한 겸손하지 못한 허세이다. 자신감이 있다는 것과 허세를 부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살기위해 돈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시어머니 전과자를 부려먹는 듯한 모습은 잘못이다. 아무리 엄청난이 임신을 해서 가사일 하기가 힘들다고 해도 최소한 밥상 정도 차리는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그곳도 어렵다면 밥상에 젓가락 하나 올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행선을 떠나게 한 엄청난의 변화가 고작 이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니 말이다. 시어미니 전과자가 아무리 별나다고 해도 엄청난은 그녀 자신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셋째는, 남편 건강에 대한 아내로서의 태도이다. 엄청난에게 건강의 존재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난에게 김건강이 없었더라면 청난과 종남은 하행선과 다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면 엄청난은 김건강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김건강과 하행선의 갈등의 와중에서 보아온 건강의 마음은 정말이지 진실했다. 이런 진실 앞에서 엄청난은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전개상 엄청난의 근본적인 변화가 서서히 나타나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만약 엄청난에게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엄청난의 건강에 대한 사랑은 의심받게 된다. 적어도 엄청난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건강에 대한 사랑과 하행선에 대한 결단의 진실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엄청난이 근본적인 자기 변화를 위한 계기를 어떻게 만들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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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왜 김순경까지 망가트리나?




드라마<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무게중심의 역할을 해온 사람은 ‘수상한 삼형제’ 의 아버지인 김순경이다. 이 김순경의 진지한 말과 행동이 있었기에 그나마 <수상한 삼형제>가 어느 정도 현실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전과자의 포악한(?) 성격과는 달리 김순경은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가장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능한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 방법을 조언해주고, 해결하는 존재였다. 만약 김순경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드라마의 갈등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이다. 그만큼 김순경의 존재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엄청난을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도우미가 다시 학업을 시작하고 요리 학원을 다니는 것을 수용해 주는 것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김순경의 역할이 컸다. 전과자로 인해 생긴 고부간의 갈등의 와중에서도 아내 전과자를 다독이면서도 며느리들의 심정도 헤아리고 이해하는 자상한 남편이자 시아버지였다. 건강에 대한 조언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에서의 역할 뿐만이 아니었다. 김순경은 경찰로서도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하행선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엄청난에 대한 이해, 주위의 불우한 사람을 솔선수범 도와주는 데 이르기까지 선행을 베풀었다. 이런 경찰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경찰에 헌신한 삶이었다. 그야말로 민중의 지팡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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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가장이면서 동시에 모범적인 경찰이었던 김순경이 한 순간에 그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억울하게 경찰복을 벗게 된 김순경이 집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하기 때문이다. 몇 십 년을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집에 머물게 되면 그 인간 됨됨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아무리 이해를 해도 좀스럽게 변해버린 김순경의 모습은 도무지 지켜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전과자가 계모임을 가는 데 빨리 와라느니, 함께 가자느니 하며 전과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불편했다. 또한 가계부를 자신이 쓰겠다는 것이나,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이나 한 결 같이 이전의 김순경과는 너무 달라도 다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김순경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마치 주범인이 개솔이 앞에서 망가지는 것처럼이나 불편하다.


김순경이 이렇게 무너지면 이 드라마의 현실적인 신뢰감도 약화 될 수 밖는 없는 것이다. 가득이나 막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김순경 마저 일관성을 상실하는 것은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그기다 설상가상으로 이상과 태백의 낯 뜨거운 장난, 이상과 어영의 별거 아닌 별거 등이 더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제작진이 의도하는 것이 직장을 잃은 가장의 자화상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순경을 이토록 망가트리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고 본다. 왜 이렇게 인물들을 하나 같이 과장되고 희화화시키는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서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김순경 마저 말이다.
 

앞으로 김순경이 어떻게 변해 갈지는 모르겠지만, ‘사직‘이라는 사실이 인간을 이토록 심각하게 변화시키는 조건이라는 섣부른 강요는 삼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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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uno 2010.04.28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야이거. ㅋㅋㅋ
    아동만화도 아니고 등장인물들 이름이 하나같이 병맛이야. 왜 이래 이거.. ㅋㅋㅋ

  2. 보시니 2010.04.28 1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논란의 중심인 막x 드라마가 갈데까지 가나 봅니다.~

  3. 현실공감 2010.04.28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퇴직한 이시대 아버지상이 아닐런지..

  4. 『토토』 2010.04.28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등장인물을 한번씩 초라하게 만들었다가
    새인물처럼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가 뻔하지요.

  5. *저녁노을* 2010.04.28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맘 아파요.
    트랙백 하나 걸고 갑니다.ㅎㅎ

  6. 공감공감 2010.04.28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퇴직한 남자들의 모습맞습니다.
    단지 차차 그런 모습이 나오는데,
    드라마에서는 좀 빠르게 그런 모습이 나왔을 뿐.

  7. 흐... 2010.04.28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나마 정상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시아버지까지....ㅠ_ㅜ;;

  8. 드자이너김군 2010.04.28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 의젓한 모습의 아버지 마져도.. 희화되는군요.. 수삼.. 정말 안타깝다는..

  9. 2010.04.28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ㅉㅉ 2010.04.28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를 보는거 자체가 한심합니다. 여기와서 댓글 다는 저도 한심하지만 ㅉㅉ

    이런 막장 쓰레기를..

  11. 123113 2010.04.28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퇴직한 아버지들이 집에 머물기 시작하면 저렇게 됩니다. ㅡ.,ㅡ

  12. 며느리 2010.04.28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퇴직하고 집에 앉아 계셔봤는지여..
    전 시아버지께서 농협의 간부까지 지내고 계시다가 퇴직 하셨는데여.. 같이 살면서 보니까
    딱 저렇게 됩니다.. 지금은 안 그러시지만 전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저렇게까지 달라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직하시고 6개월정도 지나니 우울증까지 오시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안버니
    식구들이 날 무시한다고까지 말씀하더이다...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전부터 살갑게 지낸 부부 아니면
    둘이 집에 있어도 서먹서먹하고 할말도 없으니 겉돌지여... 아버지도 할일이 없으시니 냉장고 뒤져
    썩는게 천지라든가 청소 상태가 어떻고 하십니다... 이렇게 싸움이 잦아지다가 부부사이 더 나빠지는 경우도 많구여
    진짜 당해보지 않으셨다면 망가지는 모습이라고 하지 마세여.. 그게 현실입니다.

  13. 모과 2010.04.28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현실보다 좀 늦습니다. 작가가 없는 이야기를 마구 만들지는 않거든요.
    간접으로도 경험을 하고 쓰지요.^^
    현실 돌아 보면 참 더 기가 막힌 경우가 많습니다.

  14. z코로 2010.04.30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퇴직하면 저렇게들 되더라구요^^
    정도의 차이가 약간씩 있을 뿐이구요^^





 여행은 다이어트다?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사전적인 여행의 정의가 실제적인 여행의 복합적인 특성을 모두 다 포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의' 는 그것 자체로 정의하는 대상의 존재를 가장 효율적으로 파악하게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불완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에 대한 정의는 단순히 물리적인 현상의 서술에 그친다. 실제와 동떨어진 일반적이고 단편적인 부분적 특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의를 내리기를 즐겨한다. 특히 정의를 내리기 까다로운 추상적인 개념어인 경우가 더욱 그렇다. 가장 두드러진 정의 내리기의 일례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한다. 사랑은 □ □ □ 라는 식의. 또한 우정이나 평화라는 말들도 그러하다.


사랑이나 우정, 평화와 마찬가지로 여행도 수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여행 자체는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여행에 부여하는 추상적인 의미는 실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행이란 폭 넓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은 무엇이다' 는 식의 정의내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갖는 여행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는 면에서 소중하고 할 수 있겠다.


자 그렇다면 여행에 대한 정의를 필자의 마음대로 내려 보려고 한다.



여행은 다이어트다

모든 여행은 발품을 팔게 되어 있다. 걷지 않으면 여행은 성립할 수 없다. 여행을 한다면서 걷지 않는다면 버스만 타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버스만 타고 다니는 것이 여행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저 타고 보는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타고 보기만 하는 것이 여행일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버스에 앉아 밖만 내려다보는 것은 관광과 가까울 수는 있어도 관광이라 이름짓기도 어렵다. 걷지 않고는 관광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제 다시 여행에 걷는 행동을 포함시키고 나면 여행이 다이어트가 안 될 이유가 전혀 없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비만인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비만으로 여행을 시작해서 비만이 사라졌기 때문이거나 비만인 사람들은 운동을 해야 하는 여행을 싫어하기 때문이거나 그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비만인 사람들은 여행보다는 관광을 하려고 할 것이다. 날씬해지려면 괜히 지방흡입술을 하고, 약품을 먹고, 심지어 굶기도 하는 사람잡는 다이어트보다는 여행을 통해 다이어트 효과를 거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산이나 자연을 타고 걷는 여행이라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여행은 다이어트가 될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여행은 자유이다

일시적인 유보이긴 하지만 여행은 일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거기에는 정부의 구속으로 부터도, 권력의 제재로 부터도, 각종 매체의 광고 홍수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어느 정도 무정부주의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만의 자유를 누린다. 무정부만이 아니라 무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며,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치를 느끼며, 실타래처럼 어지러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진다. 그래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또 그런 심성 가진 사람들이 된다.


그런데 자유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는 말처럼 투쟁의 산물이기만 하면 이래저래 자유의 한계가 너무 위축되고 자유를 누린다를 말 자체가 너무 부끄러워 진다. 설마 여행의 자유를 도피 운운으로 비난한다면 할말은 없어진다. 넓은 아량을 보여달라.


 이미지 출처:www.flickr.com

여행은 삶의 다른 오솔길이다.

여행은 삶의 다른 오솔길이다. 우리는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디로 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선택에 의해 삶은 일회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의 선택만이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동시에 여럿의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중요하다. 일회적이기에 우리의 삶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의 연속에서 우리가 나아가는 길들은 차가 다니지 않는 오솔길이기라기 보다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잘 닦인 고속도로이기를 바란다. 많은 돈을 갖고, 큰 집을 갖고, 잘 먹고 잘 입는 그런 윤택한 삶을 꿈꾼다. 그런 꿈은 좋은 꿈이다. 인간이라면 모두 그런 꿈을 꾸게 마련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은 삭막하고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 꿈은 꿀수는 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고속도로 같은 길을 잠시 벗어나 보는 것, 작은 오솔길을 선택하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한다.




여행은 변화이다.

여행은 변화이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의 삶과 부단하게 비교되는 대상들을 동반하게 된다. 잘사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과, 못사는 나라들의 아쉬움이 함께 교차한다. 비만으로 죽어가는 인간과 가난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인간들의 삶이 교차한다. 마음 속 깊이 희비를 교차시키는 인간들의 전혀 다른 삶속에서 우리는 진한 감동을 느낀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묻게 한다. 왜 이런 비극이고, 희극인가? 왜 기쁨과 함께 슬픔을 가져다주는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또 동시에 공동체적인 삶에 대해서도 묻는다. 인간은 외롭지만, 또 함께라는 것을 동시에 확인하기도 한다. 가슴 속 깊이에서 북받쳐 오는 근원적인 물음들이다. 자연의 감동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사람들의 향기도 있다. 재래시장의 순박함이 있는가 하면 현대적인 건물의 세련됨도 있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한다. 기쁘던 슬프던, 분노하고 격정을 토해내던 이것들은 모두 감동으로 수렴된다. 우리의 삶을 뜨겁게 살자는 감동으로 말이다. 바로 이런 감동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여행은 쾌락이다.

여행은 쾌락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먹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 타는 즐거움, 듣는 즐거움 등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각으로 수용하는 쾌락의 극치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 먹지 못한 것, 듣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감각의 충족이니 말이다. 이것은 순전히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정의이다.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쉽게 흔하게 던져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바로 '즐겨라' 는 말이 아닐까? 즐거움이 없는 여행도 있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고행의 여행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을 여정에 비유하고는 그 여정은 고난의 길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행을 위한 여행은 종교적인 수행에 가깝다. 삶의 여정이란 것도 비유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부분을 훌훌 털어버릴 필요가 있다. 여행의 범주에서 추방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여행은 즐거움을 위해 존재케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인생이 고난이라면 여행의 즐거움은 더욱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즐겁게 하자.


 이미지 출처:www.flickr.com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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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링보링 2009.09.01 0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여행은 변화다..이말에 가장 공감갑니다요..
    무언가 많이 느끼고 오게 되는 듯하지요~~~ㅎㅎㅎㅎ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요~

  2. 검도쉐프 2009.09.01 0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은 다이어트다..에 공감이 됩니다.
    배낭을 꾸리다보면 일상에 필요없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되더군요.

  3. assam258 2009.09.02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지요. ^^
    좋은 구경 많이 해도 몸이 힘든건 어쩔수 없을것 같습니다.

  4. 연구소장 안동글 2009.09.03 0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공감이요 :) 여행은 늘 생각한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안겨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떠나고 떠나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