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된 초옥은 인간일까, 여우일까? 참 헷갈린다. 초옥 속에 연이가 있다는 것은 구산댁과 윤두수와 양부인에게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실 연이의 간을 먹은 것은 비유하자면 오늘날 간이식 수술 정도에 해당한다. 초옥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초옥의 몸속에 연이의 의식이 들어가 있다면 이건 심각해진다. 정체성이 흔들린다. 본인은 거울만 안보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그런데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몸은 비록 초옥이지만 정신이 연이인 이 존재를 윤두수나 양부인은 초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빙의된 연이의 정신을 빼내야만 초옥이 된다. 구산댁의 입장에서는 초옥이 복수의 대상이지만 초옥의 몸을 죽여버리면 그 속에 있는 연이가 살수가 없다. 빙의된 연이가 꼭꼭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의문은 초옥은 살아있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연이는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윤두수나 양부인에게는 연이가 빙의된 초옥이 자신들을 증오하기만 하니 자신의 여식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초옥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구산댁에게는 어머니 어머니하며 따르는 초옥이 연이로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의 문제는 상대적이다. 윤두수와 양부인에게는 초옥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구산댁에게는 연이가 살아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자. A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A는 얼굴이 지독히도 못생겼어 1억을 들여 얼굴을 완전히 리모델링하는 성형을 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A는 A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대체로 A라고 할 것이다. 얼굴만 바뀌었을 뿐 A 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B라는 남자가 갑자기 바뀌어 여자의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B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대체로 외모보다는 그 외모에 깃든 정신을 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으로 여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나라사람들은 성형 수술에 참 관대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정신 보다는 육체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정신을 내면적인 것이라 한다면 육체를 외면적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외면적인 것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키나 얼굴, 재력, 학벌, 직업 등을 우월하게 여긴다. 그에 비해 한 인간의 내면은 별로 이해하려거나 세심하게 고려하려는 경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심각한 사교육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면적인 성숙함보다는 외면적인 스펙 쌓기를 더 중요시 여긴다.


또 한 예를 들자면 고 앙드레 김 선생이다. 그의 외관, 이를테면 외모, 옷, 말씨 같은 것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진정으로 그의 내면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앙드레 김 선생의 특이함에만 신경을 쓸 뿐 그의 내면이 얼마나 섬세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고 앙드레 김 선생님



12회에서 만신이 구산댁과 조우하는 장면에서 이런 말을 한다. "
아직도 모르겠는냐? 너희가 왜 그렇게 핍박과 고통을 받는지. 진정 모르겠는냐? 너희는 다르다. 너와 네 새끼는 인간과 다르다. 그게 이유이니라." 만신은 구산댁과 연이가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세상에서 이들이 살수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구산댁이나 연이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다르다는 그 차이조차도 극복하려고 말이다.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이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모든 것들이 정당화되는 반면에, 인간 외의 동물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구산댁이 인간이 되려고 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구산댁이나 고 앙드레 김 선생은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고독을 느낀 존재일 것 같다. 자신의 말, 행동, 외모에만 관심을 가지는 대중들에게 비록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앙드레 김 선생은 얼마나 답답하고 섭섭했을까. 고 앙드레 김 선생도 구산댁처럼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싶다. 


"고작 그 이유로,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 내 새끼에게 그리한 것이냐? 
인간이란 그런 것이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찢고, 찌르고,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족속이란 말이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내 새끼를 잡아 그리 처참하게 밟은 것이냐? 이 천벌 받을 놈. 내 오늘은 널 그냥 보내지 않겠다."

▶◀ 삼가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첫번째 두번째 이미지: KBS 드라마
세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309022056342&outlink=2&SVEC
네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1618512398127&outlink=2&SVEC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pennpenn 2010.08.18 0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지 않으니 마이동풍입니다.
    매일 한가지 드라마 보는데도 힘이 부치거든요~ ㅎ ㅎ ㅎ

  2. 루비™ 2010.08.18 1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오해는 이해가 부족한데서 오는 것이지요..
    저도 앙드레김님의 명복을 빌고 싶어요..

  3. Joa. 2010.08.18 13: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앙드레김 선생님의 패션이나 그런 것에도 사실 취향이 아니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 디자이너시긴 하셨죠
    좋은 분들이 자꾸만 떠나는 것 같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4. 건강정보 2010.08.18 2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것인데............우리는 우리와 너무 다르다...싶으면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겉에 보이는 모습만 보게 되는것 같아요...

  5. 빨간來福 2010.08.18 2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앙선생님이 나오셔서 깜짝 놀랐네요. 사실 한국에서 겉모습에서 큰 가장 편견속에 살다간 분이 아닌가 하네요.

  6. 끝없는 수다 2010.08.19 0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앙선생님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훌륭한 삶을 살다가 갔던 것이기에 그런듯 합니다. 여기서 앙선생님을 보니 반갑기도 하네요.



신데델라언니, 갈등하는 인간들의 혼란스런 모습들?



등장인물의 관계들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복수와 용서, 사랑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를 읽기도 간단치가 않다. 의미들이 생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들이 쉽게 잡혀지는 것들이 아니고 애매하다. 논리가 아니라 애매성,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소용돌이 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예상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인간의 삶이란 감정이 충돌하고, 그 감정이 대체로 단호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더듬거리고,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신데델라 언니> 는 바로 이런 삶의 애매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 사랑도, 복수도, 용서도, 그렇게 단호한 것들이 있던가?


그 대표적인 존재가 구대성이다. 구대성이 애매한 존재이기에 동시에 대단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은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엄마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매성이 그렇다. 효선은 또 어떤가? 은조와 송강숙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에서 오락가락 한다. 기훈도 마찬가지이다. 은조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제대로 내보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부처님, 하느님과 맞장을 떴다는 송강숙 마저 내적 혼란을 겪고 있다. 정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은조에 대한 충직성은 하나 만은 변함이 없지만 은조의 심적 갈등에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이렇듯 등장인물, 특히 대성도가의 인물들은 한결 같이 애매한 모습이고 그래서 서로의 관계가 명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모호하다. 홍주가의 인물들과 비교해 보면 바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이것은 갈등하는 인간의 약한 모습들, 그렇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기에 더욱아름답다. 관계의 애매성들을 선천적인 인간의 내면의 불완전함에서도 기인하겠지만, 동시에 성찰하는 인간이기에 더욱 그렇다고 본다.


 

만약 이 세상이 선과 악으로 나누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인간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건 인간의 본성과 자연스러움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이퀴브리움><아일랜드>의 세상처럼 철저하게 인간이 어떤 가치(선) 하나 만에 종속되면서 자유가 억압되고 말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어디 선과 악으로 나누어지는 것인가? 복수라는 감정도 그렇게 철저하고 단호하지 못하다. 인간이 인간을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콘센트를 꼽듯이 코드가 맞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총체성, 심지어 모순이나 내면에 드리워진 악의 그림자까지도 이해하는 것이다. 기구한 송강숙의 삶이나 그 송강숙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은조의 삶은 선과 악이 뒤틀려 있는 삶이다. 악다구니와 욕설과 냉소와 분노가 일상화된 삶이다.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 이난 삶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이 아닐까 한다.


<신데렐라 언니>가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자제되지 않는 과도한 슬픔과 눈물이 옥에 티라면 티일 수 있지만 혼란스러운 인간 내면을 관계의 틀 속에서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내면적인 성숙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은조, 효선, 기훈을 보면 더욱 그렇다. 효선-송강숙, 은조-송강숙, 은조-효선, 기훈-은조-효선-정우의 관계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들어야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쥬얼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눈에 바라는 것> 이란 영화가 있다. 일본영화인데 참 의미있게 본 영화다. 재미는 없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어 세 번을 본 영화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기 성찰의 영화이다. 왜 필자가 이 영화에 자꾸만 끌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또 보고 싶으니 말이다.


이 <눈에게 바라는 것>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수상한 삼형제>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인물은 엄청난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은 필자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별 관계가 없는 영화가 떠오르면서까지 엄청난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엄청난에게 관심이 있나 보다.


엄청난은 참 많이도 변화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근원적인 변화란 사실이다. 현찰이 연희에게 된 통 당하면서 마음 밑바탕에서 변화가 생기듯이, 연희가 본심을 드러내며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 듯 무언가 분명하게 선하던, 악하던 근본적인 변화를 드러내 주면 좋겠다는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는 무언가 미지근하게만 느껴진다. 하행선이 떠나는 그 과정에서 보여준 엄청난의 변화는 외부적인 변화였다면 이제는 좀 더 내면적인 자기 성찰을 좀 하는 모습이 있으면 좋겠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410100916609&p=sisain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건강과 종남만이 아니라 시부모에 대해서, 시동생들에 대한 변화이다. 이 문제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 한 바가 있다(2010/04/15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삼, 하행선이 떠난 이후 엄청난의 숙제는?). 가족이 생기면 역할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형님이 된다. 그 확대된 역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건강, 종남)에게만 관심이 머무른다면 바람직 한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역할들에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그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 정도는 해야하는 것이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한 아침라면의 경우가 그런 것이다.


건강과 청난이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만 올인하고 있다. 아무리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을 팽개쳐도 된다는 것을 으미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가 자신의 역할들을 중단시켜야 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눈에게 바라는 것>은 모든 것을 읽은 주인공이 형님에게로 도피해 오고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자기 성찰의 과정을 겪는다. 아무리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도 말이다. 바로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밋밋하지만 재미없지만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엄청난에게는 그런 근본적인 자기 성찰이 없다. 물론 건강에 대한 고마움, 시부모에 대한 고마움이 없을 리야 없다. 그러나 왠지 미덥지가 못하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어야 보며 자신을 받아들여 준 건강, 자신을 며느리로 인정한 시부모, 시동생들에게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 과정이 전혀 시끌벅적할 필요는 없다. 이엄청난은 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이다. 주인공으로서의 가장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 인물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랑을 받으며 변화해 가고 있고 그 변화를 흐뭇해하고 있지만 약간 간이 덜 된 국물 같아 이런 사족 같은 글을 쓴다. 고아, 미혼모, 하행선 이라는 굴곡 많고 파란만장했던 삶이었기에 이런 미지근한 변화가 아쉽다는 것이다. 오랜 된 관습을 하루 아침에 깰 수는 없는 것이지만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면적으로 단단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부여주면 좋겠다. 막장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졸은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모과 2010.04.18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난이 참 버릇이 없더군요.^^
    어제 봣습니다.

  2. 블루버스 2010.04.19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도우미가 더 불쌍해보입니다.
    청난은 그냥 굴러들어온 듯한 인상을 더 많이 풍깁니다.ㅎㅎ
    아직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3. 50대중반 아줌마 2010.04.19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작가라면 이 글쓴이의 조언을 받아들여 마침 임신도 했고 하니 맞벌이를 그만 두고 집에서 시어머니로부터 음식하는 법 살림하는 법 등을 배우며 거침없이 내 뱉는 말솜씨로 시어머니의 무경우도 지적해대면서 서로 지지고 볶고 하다가 내적으로 둥글둥글 두 사람이 변화해 가는 방향으로 대본을 써가고 싶습니다 ㅎㅎ

  4. 50대중반 아줌마 2010.04.19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두 같은 시어머니 반열이지만 전과자 저런 여인네는 진짜 엄청난보다 더 싫어요. 애들이 시집을 안 가려 하잖아요 세상 모든 시어머니들이 다 그런 줄 알고 시짜만 봐도 싫어하잖아요. 저런 시어머니상 좀 그만 만들었음 좋겠어요. 드라마에 점잖고 어른답고 따스한 시어머니상도 좀 만들었음 좋겠네요 이러다 내 아들 장가라도 보낼 수 있을 지 원.....



지붕킥, 세경의 눈물을 닦아주는 지훈의 방식?




세경이 지훈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참 아름다운 눈물이었다. 그리고 세경은 눈물보다 더 슬픈 웃음으로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준혁은 이런 세경의 심정을 안다. 준혁의 가슴에도 세경이 있기 때문이다. 준혁은 보기 드물게 의리파이다. 반항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 정신이 온전한 축에 속한다. 필자 개인적으로 볼 때 <지붕킥>에서 줄리엔이 제일 정신이 온전한 등장인물로 여겨지는데 준혁도 그에 버금간다. 아무튼 세경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준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준혁일까? 준혁이 그렇게도 세경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답지 않게 준혁의 마음이 깊지만 그 한계는 여전하다. 준혁의 생각은 외면적이고 피상적이다. 전적으로 사람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과 이별의 양상에 얽혀있는 사회, 경제적인 측면의 밑바닥까지 성찰하기에 아직 준혁은 어리다. 물론 준혁이 세경의 처지를 동정하고 연정으로 이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단순하다.


그렇다면 세경을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그 슬픔을 아파하는 존재는 지훈일 수 밖에 없다. 지훈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본다. 자신을 향한 세경의 마음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지훈이 세경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침묵밖에는 없다. 지훈이 세경과 함께 과거로 여행을 떠난 것은 결국 지훈이 세경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거나 작별의 의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과거란 작별한 시간이다. 또 머물렀던 공간이 된다. 지훈이 세경과 함께 그 시간과 공간으로 함께 들어간 것은 작별한 시간과의 대면이고 사람들과의 대면이다. 이건 바꾸어 말하면 지훈이 세경에게 자신의 내면을 내보여 준 셈이 된다. 이러한 생각이 아니라면 세경을 데리고 젊은 시절 낭만의 추억을 세경에게 보여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202240081001

 

카페의 벽에 세경이 자신이 다녀간다는 글을 쓰고 하트를 그려 놓은 것은 정말 아름다운 설정이었다. 그것은 지훈의 추억 속에 자신을 남겨놓은 것이다. 지훈은 분명 세경이 자신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지훈에게도 세경에게도 슬픔의 감정인 것이다. 책에만 파묻혀 도대체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건강관리는 하기라도 하는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책만 파는 지훈이 의외로 세경과 함께 찾아간 곳이 축축한 물기가 스며들어 있는 과거라는 시간이었다. 정음이 아니라 세경과 함께 그런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특히나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자연스럽게 간 곳이지만 의도적인 곳이 아니었던가 싶다.


지훈에겐 그러한 방식만이 세경에게, 어쩌면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지훈의 마음 씀씀이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세경도 그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은 그것 대로 아름답다. 세경의 사랑은 이것 만으로도 완결된 것이다. 앞으로 세경에 대한 지훈의 태도는 침묵이고 조용한 미소일 것이다. 그 지훈의 조용한 미소를 보며 세경의 상처가 조금씩 조금씩 아물어 가길 바란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938호 2010.02.04 0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짝사랑이란게 참... 그렇습니다 ㅜ.ㅜ

  2. ㅇㅇ 2010.02.04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훈인 아직 세경이 마음 잘 모르는것 같던데...

  3. 킨들 2010.02.04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과 같은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훈이 그날 과거 추억여행을 한 것은 세경을 위한 마음이라기 보다는 세경으로 인해서인 것 같습니다.
    세경은 구시대적 가치를 지닌 인물입니다. 등장인물들은 그런 세경을 보고 향수나 추억에 잠기는 경우가 많죠.
    이날 지훈도 아마 세경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과거,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지녔던 그때를 떠올렸을 겁니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 지훈은 세경과 함께 추억여행을 하고 있지만,
    온전히 자신의 과거를 되짚고 그만의 추억에 잠겨 있었습니다.
    다음날 창고에서 그는 기타를 꺼내듭니다. 정음이가 그 모습을 보지요.
    이렇듯 세경은 과거를 반추하게 만드는 인물이고, 정음이는 현재 그와 함께 하는 인물입니다.
    추억여행 에피소드에서 지훈이가 의도적으로 세경을 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추억여행을 통해 세경은 소중한 추억이 생겼고,
    어쩌면 학창시절이 없는 세경에게 동기를 부여해줬을 지도 모릅니다.
    세경과 지훈의 관계가 안타까운 건 둘 간의 소통이 없다는 겁니다.
    그날도 세경은 일방적인 지훈의 추억여행에 동승을 한 것이지 상호간의 교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통이 없는 관계가 바람직한 인간관계로 형성되는 경우를 전 본 적이 없습니다.
    소통없이 짝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버린 세경은 지훈을 동경하는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물론 동경하는 마음이 커지면 사랑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준혁과 세경은 서로 소통합니다.
    일상적이고 스며드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병욱피디의 인터뷰를 보니 스며드는 멜로라인을 그리고 싶다고 한 걸 봤습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스며드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 서로간의 소통,
    정신적 감정적 교류라고 생각하기때문에 곧 세경이 준혁을 바라볼 거라 생각합니다.
    준혁은 세상을 아직 모르지만, 그래서 더 인간 본연의 순수합과 이타성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언제나 리뷰 잘 읽고 있습니다. 수고하세요^^

  4. 몽고 2010.02.04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어서 하늘까지님 할루~

    지붕킥을 안봐서 ㅎㄷㄷ

    ㅋㅋ윗분 댓글 짱

  5. 안녕!프란체스카 2010.02.04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킨들님 덧글 짱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ㅋㅋㅋㅋ

  6. ann 2010.02.04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약간 억지스러운 건 그날 지훈과 세경의 만남은 우연이었고 그 우연의 장소가 예전 학교 근처였지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약속을 정한것도 아니고 우연히 순전히 남는 시간 동안 함께 할 그 무엇이 위해 그래서 그 곳을 잘 아는 지훈이 자신의 옛날 가던 곳 자신만의 추억의 장소를 안내하게 되고 함께 가게 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지훈의 감정, 추억속에만 존재하기에 세경이 들어설 자리가 없지요. 지훈이 세경의 마음을 읽고 배려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훈이 떠나고 난 뒤 세경은 혼자서 자신의 감정에 빠집니다. 사랑이건 동경이건 그것은 오로지 세경의 감정일 뿐 이지요 .
    킨들님의 말처럼 둘사이의 소통이 아니라 세경 혼자만의 자기 감정의 표출일뿐었어요...

  7. chqjq 2010.02.04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킥을 보면서 전 지훈이 세경을 배려하거나 세경과 소통하려한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감정적인 소통말입니다.
    준혁과 다른것이 그거이지요 ..
    준혁은 세경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생각하지만,,
    지훈은 세경의 환경과 처지를 생각하고 미래에 대한 충고만 할 뿐이지요
    남의 감정과 배려에 무관심한 지훈이 세경이 대해 저런태도를 가지고 대한거라면
    세상에 둘도 없는나쁜 인간아닐까요?

  8. 달려라꼴찌 2010.02.04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그만 울어야 할텐데요..

  9. 지훈이 2010.02.04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족들한테는 무심한 주제에
    세경이한테는 그나마 신경을 쓰는 편이죠.
    정음이처럼 이뻐서 그런가?
    세경이를 오빠처럼 챙겨줄거면 확실히 챙겨주던가
    뭔가 세경이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면으로 말이죠.
    세경이 마음 알면서 공연히 흔드는 거면 은근 나쁜 남자인거고...
    이를테면 자기를 위해 사골을 끓이지 말라고 하지만
    누나의 명으로 세경이는 계속 사골을 끌여대더군요.
    지훈이 강력하게 우겨서 월급을 올려주거나 학원을 보내주거나 옷방의 옷을 치워주거나
    뭔가 정당한 대우을 받도록 배려해 줄수도 있지 않나요?
    은근 캔디의 테리우스처럼 폼만 잡고
    남자로서도 오빠같은 어른으로서도 별로 세경이를 진지하게 대하는것 같진 않던데요.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말해서 세경이 한테 필요한건 남자나 사랑보다 스펙의 향상 입니다.
    인간관계도 그런쪽으로 세경이 한테 도움이 안되고 상처나 좌절만 줄거면 차라리 없던일로 하는게 나을지도...

  10. 글쎄요 2010.02.04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지훈이가 세경의 맘을 알고 있을까요?
    저 에피 바로 전에 최다니엘 인터뷰를 보면 지훈은 세경의 맘을 모른다...라고 한것 같거든요.

    지훈은 세경의 아픔도 모르고 닦아줘야 할 이유도 아직 모릅니다.
    결국 세경의 눈물은 세경이 나름으로 세경의 방식대로 치유해 갈거라 생각되네요.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경은 지훈과 추억을 공유하며 들었던 노래 pale blue eyes.. LP를 생일카드와 함께 선물로 그의 책상에 놓고 왔습니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지훈을 깨우지도 못하고 다소곳이 LP와 카드를 놓고 왔지만
    지훈은 그것도 인식못하고 바로 정음의 전화를 받고 나가버리지요....ㅠㅠㅠ

  11. 독일 2010.02.05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훈이 세경의 맘을 알고 자신이 줄 수 있는 선물이 저게 다라서 준건 아닌 것 같은데..

    감독 인터뷰를 보고 느낀건 정작 제작진은 특별한 의미부여하지 않았는데 우리 시청자들이 온간 복선과 의미를 부여하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해도 우리가 부여한 의미가 그러하다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아, 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여기저기 게시판에서 그런 글을 너무봐서 우리가 너무 오버하는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2. 2010.02.05 0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헤.. 꿀꿀한 것은 싫어서 요새 지킥을 놓고 있었는데... 원글보고 오호 하다가 댓글보고 응? 하게 되는군요.

    방송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 주제 넘지만, 댓글들 대로 일방적인 세경의 지훈 추억에 끼어들기라도 지훈도 앞으로 과거의 추억을 생각할 때 새로운 추억 (따라다닌 세경)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세경이 지훈에게 젖어있다면 지훈에게도 세경이 자신의 생활 속으로 (특히 동생 챙기기의 심부름을 늘상 시키는 누님덕도 크고) 스며들고 있는 셈이지요. 피곤에 쩔어 자고있는 아이의 머리맡에서 책을 빼낼 수 있는 인간이라.. 세경의 처지를 바꿀 수 있는, 현실적이고 가능한 배려를 생각해내지 못 했다 하여 그의 마음이 꼭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기 애인에게도 취직의 힘듬을 고려하지 않고 뭘 저따구 대우나 받으며 붙어있냐?라는 감정적인 응원을 했던 인간인데요. 엘리트의 길을 살아오느라 주변의 사정을 제대로 바라보고나 개선해주려 할 만큼 타인에 대한 깊은 생각 자체가 없던 사람이라는 것도 고려해야지요.

    앞으로도 꿀꿀할 것 같아서 보게 되지는 않겠지만, 뭐랄까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갑기도 합니다. 과연 지킥의 앞날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드라마를 안 보는 입장에서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할 수는 없지만 촌스런블러그님의 분석은 그냥 읽으니 재미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