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언니, 송강숙은 과연 어떻게 변화할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해서, 송강숙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할 만큼 송강숙은 나쁜 인간이다. 구대성에게 접근한 것에서부터, 은조와 효선에게 다같이 내면적인 고통을 주고 있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엄마라는 존재와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엄마라면 이럴 수 없는 것이다. 딸 은조에게 "돈이나 챙겨, 이년아!" 하는 속물적인 인간이 어떻게 엄마일 수가 있으며, 자신의 은인이라면 은인이랄 수 있는 구대성의 외동딸 효선을 어떻게 구박할 수가 있는가. 만약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이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송강숙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드라마 <신데렐라언니>의 주제들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송강숙이 구원을 받을 것인가의 여부가 이 드라마를 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원이라는 문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단순히 외부적인 용서가 아니라 송강숙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자각을 통한 변화이다. 이를테면 송강숙이 아무런 내면적인 자각도 없이 죽고 땅에 묻혔을때 살아있는 자들이 용서하는 것은 구원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용서이며 동정에 불과한 것이다. 즉 구원이란 근본적인 자각을 통해 변화하면서 자기 속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송강숙에게서 근본적인 자각이나 변화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송강숙은 영원히 악에 의해 속박 당한 체 철저하게 악녀로 존재할 것 같다. 부처님, 하느님과 맛짱을 뜰 정도라면 말이다. 이런 송강숙이 과연 어떻게 변화할까? 

  



송강숙의 구원과 관련해서는 일차적으로 은조가 관련된다. 누구보다도 송강숙이란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강숙의 변화, 선하게 변화하든지 더욱 나쁘게 변화하든지 은조의 태도가 상당히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은조의 태도라고 했지만, 은조의 운명이라고 하는 편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송강숙의 딸인 은조는 바로 자신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강숙은 은조의 성격과 내면적인 상처와 고통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송강숙과 은조의 철저한 소통의 부재를 의미한다. 송강숙의 속물적인 행태에 대해 은조가 그토록 반항적으로 강변해도 송강숙은 자신의 잘잘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좀 속된 말로 은조가 유서라도 남기면서 자살을 해도 과연 자신의 딸 은조의 내면의 풍경을 이해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둘째로는, 죽은 구대성의 존재이다. 구대성이야 말로 송강숙에게는 은인이다. 만약 뒤늦게라도 송강숙이 구대성의 진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 본다면 변화의 여지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구대성은 죽었지만 은조에게는 여전히 삶을 지탱하는 아빠의 존재이다. 구대성은 대성도가를 감싸는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이다. 신데렐라라는 말에 어울리는 가장 동화적인 인물을 선택하라면 구대성이다. 구대성만큼 동화적인 인물도 없다. 물론 구대성의 분신과 같은 효선도 마찬가지이다.  송강숙이 진정한 구대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셌째로는, 효선이다. 현재까지 효선은 송강숙의 애정을 받기 위해 수모를 감수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송강숙에 대한 효선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구대성을 떠올려보면 효선이 송강숙에게 반기를 드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고 또 효선을 그렇게 그려놓을 거란 추측을 하기가 힘들다. 또한 은조가 효선을 생각하는 마음에 돈을 빼먹을 수 있는 이용가치가 많은 애가 효선이라는 말에 동해 효선에 대한 송강숙의 태도가 유화적으로 돌변했고 말이다.  그러나 송강숙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효선이 대적하기라도 한다면 늦게서야 송강숙이 변화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로, 애기치 않은 운명이다. 효선이 신데렐라라면 효선에게 찾아드는 행운이 송강숙의 불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홍주가에 대성도가가 넘어간다면 송강숙은 안방마님은 커녕은 채무자로 빛더미에 올라설 수도 있는 것이다. 송강숙이 대성도가의 안방마님에서 일순간 길바닥에 나 앉는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사실 송강숙의 구원보다도 그녀로 인해 고통받는 은조를 비롯한 인물들의 내면적 평온이 더욱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송강숙이 너무 나쁜 인간이라 답답한 마음에 송강숙의 변화를 미리 한 번 상상해 보았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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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악랄가츠 2010.05.13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처음에는 그렇게 안봤는데 ㄷㄷㄷ
    최절정 악녀연기를 보여주고 있네요 ㅜㅜ
    과연 어떻게 결말이 날련지 ㄷㄷ

  2. 모과 2010.05.13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여자가 보기 싫어서 개인의 취향을 봅니다. 가끔 재방으로 모게 돼더군요.여자들의 이기심이 너무징그러워요.^^

  3. 자수리치 2010.05.13 0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번째 원츄임다. 저는 항상 권선징악이 가장 속 시원하다는...^^

  4. killerich 2010.05.13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수리치님 의견에 한표추가요~ㅎㅎㅎ..
    저도 오늘 송강숙 이야기 썼어요^^.. ㅎㅎㅎ..

  5. 엄청난넘 2010.05.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 신언니를 1편부터 봐오다고 최근 몇편부터 급격히 수준과 재미가 떨어지는듯 합니다. 일단 너무 웁니다 징징도 정도것해야 슬픈데 처음부터 끝까지 우니 이제 귀에서 너무 걸리적 거립니다. 스토리 전개의 삼류화 갈수록 전개가 삼류소설을 읽는듯 합고 대사가 유치하다고 생각드는게 여러번 있습니다 하지만 문근영 덕분에 그나마 보게 되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될거 같네요

  6. SAGESSE 2010.05.13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드라마를 보지 못해 그저 걸어서 하늘까지님의 뛰어난 분석력에 감탄할 뿐이랍니다. 편안 저녁 되세요!

  7. skagns 2010.05.13 1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캐릭터의 변화는 쉽지 않은데
    신데렐라 언니에서는 송강숙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완전 기대하고 있어요. ^^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8. 하록킴 2010.05.14 0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숙씨가 신데렐라 언니여요?

  9. montreal florist 2010.05.27 0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중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캐릭터네여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변하지 않는가?




엄청난은 종남의 친부인 하행선이 그녀의 곁을 떠나기까지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행선과 건강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엄청난은 친부인 하행선보다 자신과 종남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해준 건강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과정은 참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든 과정에서 엄청난의 변화를 보는 것은 드라마를 보는 작은 기쁨이고 보람이기도 했다.


엄청난은 하행선뿐만이 아니라 건강과 시댁 식구들에게 참으로 많은 피해를 끼쳤다. 그런 그녀였기에 하행선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보여준 엄청난의 변화에 호의를 보냈다. 그런 변화가 있었기에 하행선이 감동을 하고 조용히 떠난 것이다. 엄청난으로서도 당연한 자세였다. 종남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는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건강에게는 물론이고 시댁 식구들 모두에게 자신이 빚진 것들을 되갚아한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하행선과의 갈등의 과정에서 엄청난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청난이 변화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부족하다는 면에서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 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근본적인 변화는 엄청난의 마음의 깊은 곳에서 싹터면서 근본적인 변화의 결과, 이를테면 행동이나 말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은 여전히 이전의 잘못된 습관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우선은 근본적인 인격의 변화가 부족하다. 말투나 행동 같은 한 인간의 인격을 드러내는 습관이 여전히 천박에 가깝다. 특히 시어머니인 전과자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볼라치면 이건 며느리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리 시어머니에게 아양을 떨고, 애교를 부린다고 해도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지켜야 할 금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엄청난은 이러한 금도마저도 깨고 있다.



둘째는, 엄청난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듯한 겸손하지 못한 허세이다. 자신감이 있다는 것과 허세를 부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살기위해 돈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시어머니 전과자를 부려먹는 듯한 모습은 잘못이다. 아무리 엄청난이 임신을 해서 가사일 하기가 힘들다고 해도 최소한 밥상 정도 차리는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그곳도 어렵다면 밥상에 젓가락 하나 올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행선을 떠나게 한 엄청난의 변화가 고작 이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니 말이다. 시어미니 전과자가 아무리 별나다고 해도 엄청난은 그녀 자신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셋째는, 남편 건강에 대한 아내로서의 태도이다. 엄청난에게 건강의 존재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난에게 김건강이 없었더라면 청난과 종남은 하행선과 다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면 엄청난은 김건강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김건강과 하행선의 갈등의 와중에서 보아온 건강의 마음은 정말이지 진실했다. 이런 진실 앞에서 엄청난은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전개상 엄청난의 근본적인 변화가 서서히 나타나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만약 엄청난에게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엄청난의 건강에 대한 사랑은 의심받게 된다. 적어도 엄청난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건강에 대한 사랑과 하행선에 대한 결단의 진실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엄청난이 근본적인 자기 변화를 위한 계기를 어떻게 만들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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