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수술은 의학에 무지한 필자가 판단해 볼 때도, 그 발생이 의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즉, 성형 수술이란 의학적인 판단에 따른 수술인 것이다. 그렇다면 의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생명과 질병, 그리고 건강의 유지를 다루는 학문이 아닌가? 이러한 분야로 발생한 성형 수술은 생명과 질병에 관련된 형태상의 이상을 개선하고 고치려는 노력에 근거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고로 인한 안면 상해나 기형등이 그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유전적인 기형이나 질병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의 한 분야인 것이다. 이러한 성형 수술의 최초의 의도는 인간의 아름다움과는 관계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불보듯이 뻔한 사실이다. 보톡스 주사의 경우 같은 것이 그렇다.


 
세계 최초의 성형 수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성형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 타고난 얼굴이나 신체적인 조건을 수술을 통해 더 예쁘고 더 좋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성형외과는 병이나 사고나 유전으로 인한 기형과는 관계없이 단순히 인간의 얼굴이나 신체적인 조건을 더 보기좋게 하기 위한 비의학적인 분야와 걸쳐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강박관념은 그야말로 병적일 정도다. 성형 수술을 통해 얻은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대체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타인의 인식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 줄까하는 것이다. 이 연결 고리는 도대체 왜 끊어지지 않을까? 사실 '타인의 인식' 이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경우는 많긴 하다. 직장 면접이나 연애를 하는 경우 인간의 외모나 신체적인 조건이나 특징이 어느정도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역할은 아니다.

결정적이고 결정적이지 않고를 떠나
이점에서 애매한 문제가 발생하기는 한다. 아주 못생긴 경우가 그렇다. 만약 너무 못생겨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성형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성형 수술이 갖는 본래의 목적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아주 못생겨서 사회 생활이나 구직, 연애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면 부득이 하게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듯
필자는 개인적으로 혐오감을 줄 정도로 못생긴 경우에 있어서 성형 수술은 지지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다소 애매하기는 하지만 '적당하게 못생긴 정도' 는 성형 수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신체 외적인 장점으로 얼마던지 커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쌍꺼풀이 없는 것은 병이 아니라 생물적인 특징이다. 코가 낮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봐도 정상적이고 괜찮은 얼굴에 칼을 들이대는 것은 잘못된 행위이다. 아무리 미와 추가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미와 추에 대한 상식적인 기준은 존재하고 본능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만약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성형 수술을 한다면 결코 지지할 수 없다. 그것은 어떤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더 예쁘지려고 한다는 것은 이유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게 더 예쁘지려고 상거풀 수술을 하고, 입술을 두텁게 하고, 코를 세우는 수술을 하는 것은 수술을 하는 사람쪽이나 의사쪽이나 낭비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의학계에서 이런 거품이 빠진다면 상당히 많은 의료 인력(의사, 간호사)이 실질적인 의료 행위에 투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어 성형 수술만을 전문적으로 하며 의사 생활을 꾸려가기만 한다면 그것도 엄청난 사회적인 낭비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하리수가 성형을 했니, 안했니로 인터넷 지면이 다소 시끌벅적하다. 장미성형 어쩌구 하기도 하는데 그 장미성형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 하리수가 성형 여부에 대해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하리수는 성형 수술을 할 만큼 혐오스러운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성형을 했다니 놀랄 일이다.  필자는 충격적이었다. 성형수술이 너무나도 보편화 되었다는 느낌이다. 할 필요도 없는 성형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은 허영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성형 수술을 끝도 없이 해대다 불행의 늪으로 빠져버린 선풍기 아줌마도 알소 있지 않는가? 허영의 끝은 추락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지가 없는 닉 부이치지이지만 정신만은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강하다
 

만약 닉 부이지칙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만  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 것도 하지 못한체 그의 방에 처박혀 시간을 죽이는 처참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타인의 인식을 그 자신이 의식하지 않았기에 이토록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하물며 정상적인 사람이어서랴.  

성형은 사회적인 비용의 낭비이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 다지 좋지 않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성형 수술을  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 성형 수술을 왜 하는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리수의 성형이 화젯거리가 되는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성형 수술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행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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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borah 2009.10.10 15: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천연미인이라는 말이 아주 낯선 단어가 되고 말았어요. 다들 수술하고 예뻐질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허무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