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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사랑을 믿어요

사랑을 믿어요, 엄마와 아내이기를 포기한 드라마 작가?

 

권기창과 김영희 부부는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삶의 역할이 뒤바뀌었다. 학원 경영이 내리막을 달리면서 전업주부로 변신한 권기창, 드라마 작가가 되어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김영희, 참 생각지도 못한 역전된 삶이다. 권기창의 학원이 잘되던 시절 김영희는 초라한 행색을 한 전업주부였다. 특히 그녀의 외모는 촌스러움의 극치였다. 남편 권기창은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에 물든 그야말로 압제적인(?) 남편이었고 김영희는 이런 남편 밑에서 자신의 삶을 유보한 체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움츠리고 살아야 만 했다. 이런 현실에서 드라마 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잃고 찌질하게 살던 김영희가 드라마공모에 당선이 되고 드라마 작가가 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진 것이다. 학원 운영이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집으로 나 앉게 된 권기창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김영희의 드라마 작가 공모 당선은 통괘하기까지 했다.
 

이미지출처: KBS 드라마


그러나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개구리처럼 드라마 작가가 되고난 후의 김영희의 삶은 그녀가 그토록 경멸했던 남편 권기창의 삶을 비슷하게 답습하고 있다. 그녀 역시 일에만 파묻힌 직업여성으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로서의 삶이 작은 시간조차 내기가 어렵다고 해도, 또한 남편 권기창이 전업주부로 가사를 맡아하고 있다고 해도 드라마 작가 이전에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영희는 드라마 작가로서의 삶을 자기 삶의 최우선적인 자리에 놓으면서 가정내에서는 이질적인 존재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시청자들로서도 처음 김영희가 드라마작가가 되면서 권기창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모습에 환호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김영희의 모습에서 피로감을 느겨가고 있지 싶다. 필자 또한 그렇다.


김영희의 모습은 역할의 역전을 통해 통쾌감을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전에 김영희가 혐오했던 남편 권기창의 모습을 흡사하게 답습하고 있기에 자기모순적이다. 따라서 문제의 이동은 있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김영희의 존재가 그렇다. 김영희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남편 권기창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그녀가 드라마 작가가 되어서도 고스란히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성격은 다르지만 말이다. 권기창이 가부장적인 가장에서 자식들에게 좀 더 친밀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반면에 김영희는 드라마 작가로서 현대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식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김영희는 자신의 꿈이었던 드라마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남편 권기창과 자식들을 잃고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권기창의 변화에 큰 진전이 있다고 필자는 이미 언급했는데,  비록 아내 김영희와는 삐걱거리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농구코트에서 함께 농구를 하거나 집안일을 손수 함으로써 아이들에게는 친숙한 아버지가 되고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권기창은 직업을 잃고 전업주부가 되면서 가정적인 아버지로 변화한 것이다.


이런 권기창의 변화한 모습과는 달리 김영희는 드라마 작가로서의 삶이 비대해지면서 아내 와 어머니의 역할을 상실하고 있다. 이런 김영희의 모습은 자기모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남편 권기창의 모습을 은연중에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방기하면서 드라마작가로서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김영희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