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미인,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장식용일까?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shore40/H4m/2348?docid=NOLy|H4m|2348|20080823082222

진정한 사랑이란 말은 흔히 듣는 표현이지만 설명하기는 참 힘들다. 그러나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 아니 그렇게 멀리 나갈 것까지 없이 TV의 인간극장이나 휴먼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면 그 진정한 사랑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사랑이란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인가 보다.

이 진정한 사랑을 '남 녀 관계' 로 한정 할 때 과연 성형미인이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비록 좀 더 예뻐졌다고 하나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성형미인은 육체적인 조건만을 바꾸었을 뿐 마음은 그대로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성형은 권장할 만한 것이지 굳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변하지 않는 마음, 한결같은 마음, 지고지순한 마음만 있으면 어떤 육체적이고 외부적인 조건은 사소한 것에 불과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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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가정이 틀리다면? 육체적인 조건을 바꾸기만 하면 될 뿐 마음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까? 만약 이러한 가정이 성립한다면 육체적인 조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악착같이 성형을 하기만 하면 될까? 결국 '미'는 성형에서 나올 수 있고 진정한 사랑이란 성형미인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궤변같지만 이래 저래 성형 미인이 그다지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나 참, 그렇다면 질문을 왜 했을까?
 

사실 이런 가정을 해가며 성형미인이 어쩌니, 진정한 사랑이 어쩌니 하기도 좀 유치해 진다. 사랑이란 제 눈에 안경처럼 상대적인 것이니 말이다. 성형미인에 대해 너그러운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성형미인에 이분법적인 접근도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고전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이 성형에 의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숨길 수가 없다. 얼굴을 뜯어 고친다는 생각 속에는 육체에 대한 집요한 추구가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진정한 인간의 얼굴이기를 포기한 인공적이고 인조적인 '미' 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형이 빈번하게 행해지는 사회가 과연 성숙한 사회일까에 대한 회의도 인다. 별 의미없는 회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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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성형' 이 의학이고 보면 성형은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의학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마치 미용술이기라도 한 듯이 코 좀 세운다거나, 눈을 커 보이게 한다거나, 턱을 깎아 갸름하게 한다거나 얼굴 껍데기를 당겨서 주름을 없애는 식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의학의 남용이 아닐 수 없다. 안락사의 윤리적인 문제 만큼이나 성형의 윤리적인 문제도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의학계나 종교에서는 별 문제 제기가 없다. 참 이상하다. 아무튼 성형의 극단적인 예가 TV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연예인들의 성형 수술이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막장' 같다고 하면 과장일까? 성형이 필요없는 경우에 성형을 너무 남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본인들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TV를 보는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무언중에 영향을 받기가 쉽다. 그나마 얼굴 괜찮은 연예인들까지 이렇게 하면 도대체 얼굴 못생긴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열등감에 시달릴까? 또 성형하려는 충동에 빠질까?


사실, 포스트의 제목이 무리였다. 성형미인이라고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얼굴에 못을 박고, 뼈를 깎았다 하더라도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법도 없다. 성형미인도 인간인 이상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답은 분명하다.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되면서도 동시에 장식적인! 그러나 사랑을 얻기 위해 얼굴을 몰라보게 성형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너무 몰지각한 태도가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몰지각한 태도가 진정한 사랑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만 말이다! 단지 사랑과 함께 성형의 후유증으로 고쳐 나가야 할 앞날의 얼굴이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다. 사랑도 그렇게 마모가 되고 성형미인도 그렇게 닳아간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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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hoebe 2010.01.03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왜이케 웃기십니까...하하하하.....
    웃느라고 글은 하나도 눈에 안들어와요.ㅋㅋㅋㅋㅋ
    저렇게 성형하면 얼마드나요?ㅋㅋㅋ
    콧물이라도 닦아 주시지.ㅋㅋㅋ

  2. 티모시메리 2010.01.04 1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성형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미를 추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 아닐까요? 자기의 분수에 맞지않게 과하다면 문제가 되겠죠. 어디까지나 적당한게 좋죠 ㅎㅎ (가장 어려운 적당이란 개념)
    연애인들의 성형 같은 경우엔..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보다 좋은 수익을 얻기위해, 능률을 높이기 위해.. 더 좋은 설비와 환경을 만들기위해 투자하는 것 처럼..
    자신의 몸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생산적인 계산이 들어간 거라고.. ^^
    뭐 저만의 생각입니다.
    촌.걸.하 님.. 닉네임이.. 꽤 길어지셨네요^^ 새해 행복한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3. 너돌양 2010.01.10 2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형전 강아지가 훨 나아요~~~~~~~~~~~~~~~~~~~~




영화의 베드신 vs TV 드라마의 베드신



드라마 <아이리스>의 김태희와 이병헌의 키스신, 애무신에 이어 베드신를 보면서 이 베드신이 과연 TV 드라마에서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 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바보 상자라는 고전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TV는 가정의 필수품이다. TV 없는 가정은 팥 없는 찐빵이라거나 오아시스 없는 사막라는 유치한 비유를 할 수있을 정도로 문화적인 영양소의 기능까지 하고 있다. TV가 없다면 문화실조에 걸릴 확률이 높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TV의 진화가 이것을 더욱 촉진시킨 면도 있다. 

가족간 대화 부족의 주범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고 있지만 동시에 가족들을 모으는 역설적인 면도 드러낸다. 물론 침묵속에서 TV를 보고 제 각각 자신들의 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겠지만 말이다. TV라는 발명품 자체는 선악의 대상이 아니지만 인간들이 그 TV속에 무엇을 프로그래밍 해놓는가에 따라 TV의 성격은 달라진다. 또한 그 TV의 프로그램을 얼마나 선별적으로 현명하게 보느냐에 따라 TV의 성격도 달라릴 수 있다. TV가 바보상자가 아니라 '현명한 상자' 가 되는 데는 이렇듯 제작자와 시청자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 잡는다. 즉, 제작자가 무엇을 제작하고 시청자가 무엇을 소비하는 냐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작자의 입장에서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자세가 무너지는 것이 도처에서 느껴진다. 이유는 많을 것이지만 결국 돈일 게다. 광고수주와 외압, 타사와의 경쟁등이 더욱 막장으로 치닫는 프로그램, 특히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도 이러한 자극에 비판적이기보다는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다시 상승작용을 낳으면서 더 큰 자극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제 베드신, 섹스신이 안방까지 파고 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TV가 언제나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만을 만들어 낼 수 도 없는 것이다. 시청자의 연령에 다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당여난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프라임 타임에 흔히 가족 드라마니 안방 드라마니 하는 것에 베드신, 섹스신이 묘사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TV에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드라마 한 편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한다. 외국으로 수출되어 한류의 열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TV 드라마 한편은 문화와 예술이 융합되어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 전달 매개로 작용한다. 이러한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되면 한류라는 도도한 흐름이 되는것이다. 드라마의 이러한 기능은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기 보다는 긍정적이고 다소는 교훈적인 내용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무슨 고루하고 케케묵은 것을 욕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도 김태희와 이병헌의 키스신을 부러움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김태희, 이병헌의 베드신 그 수위가 어땠길래?)그래도 이 후기 산업사회와 테크놀로지의 사회에서 안방극장의 드라마가 조금이라도 소금의 역할을 하기 바라는 희망이다. 예로, 최근의 안방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이 그러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와 관련하여, TV 드라마의 베드신이나 섹스신이 어느 정도 허용되어야 할까의 문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한 영화의 베드신이 같은 성격과는 명확히 달라야 함을 인식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글의 제목은 어쩌면 쓸모없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사실 TV와 영화는 믹스되고 있다. TV속에 영화가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서로를 위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에 따라는 부정적인 문제가 외설의 문제이다. 막장 막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바로 이러한 실정이기에 TV드라마가 숭고하게(?)지켜야 할 것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TV드라마가 영화의 흉내만을 내고 예술성만 추구한다면 영화와 다른 것은 없어진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고 이미 그 리미트 라인을 만들어 놓은 상태일 것이다. 

 괜한 노파심인지 모르겠다. 지나칙 보수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또 편협된 사고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최근의 드라마 <아이리스>가 베드신이니, 키스신이니, 애무신이니 하며 인터넷에 화제가 되고 있기에 한 번 생각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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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gnman 2009.10.25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리스의 베드신을 봤는데 전 그냥 웃기더군요. ㅎㅎ
    두사람 극중에서 연애하는게 정말 재밌더라고요.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2. Bahia 2009.10.26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약국은 8시지만 아이리스는 밤 10시에 하잖아요. 애들 자는 시간에 하는데 뭔 온가족이 다 본다고...
    10시 넘으면 애들은 좀 자야해요.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0.26 1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Bahia님 댓글 고맙습니다^^
      사실 방송 시간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중파 방송이란 면에서 어느 정도 건전성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3. 글쎄요 2009.10.26 0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섹스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숨겨야 하는일인가요?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걸까요?

    만약 제가 아이들을 둔 아빠라면, 저때 아이리스를 같이 보고 아이가 둘이 뭐하는거냐고 물어본다면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하는 거라고 말해 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이리스 극 전개상 나온 베드신은 무슨 포르노 처럼 왜곡된 성을 보여주는 장면도 아니었구요.
    자연스럽게 남녀가 만나는 과정을 아이가 보는게 왜 문제가 되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김태희, 이병헌의 베드신 그 수위가 어땠길래?




영화의 베드신과 TV 드라마의 베드신 수위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TV드라마의 베드신 수위가 영화에 비해 훨씬 낮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사실 작품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그 적용 수위가 달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드라마와 영화는 그리 다른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위를 결정짓는 것은 작품 외적인 이유 때문이다. 즉, 안방과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차이 때문이다. 이 공간의 차이가 베드신의 수위 차이를 결정 짓는다. 안방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신성한 공간이다. 가족이 상주하는 공간이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하는 공간이다.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안방에 대한 이러한 인식도 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구식의 주거 형태가 정착하면서 안방보다는 거실이 중요한 공간이 되고 가정= 안방이라는 등식이 깨어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TV드라마는 안방의 전유물이며 가족이 함께 보는 상징처럼 되어있다. 영화 채널이나 외화 채널에서 솟아져 나오는 베드신은 노골적인 수위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안방의 TV드라마에서 베드신과 정사신과 섹스신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터부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김태희와 이병헌이 베드신을 연출했다고 한다. 첫 회부터 키스신과 발목 애무신이 있었고 이어서 프렌치 키스와 베드신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항로를 이어가고 있다. 애정의 정도를 표현하다보면 부득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베드신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고 편집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나 연출가의 입장에서는 이런 편집이 예술성을 망치는 것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당한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예술성을 강조한답시고 또는 흥행 수입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안방의 TV드라마에서 노골적인(?) 베드신을 노출하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러한 조치가 정당하다는 판단이 든다. 안방의 TV드라마의 경우는 예술성이나 상업성과 함께 공공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성이라고 해서 뭐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대에 가족용으로 자라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에는 몇 가지 성찰의 문제가 따른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의 결속이나 가정의 분위기가 진보적이어야 하는가, 또는 보수적이어야 하는 가의 문제가 그렇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진보적이어야 하는가, 보수적이어야 하는가? 예를들면, 부모 자식간의 위계적인 권위의 관계가 바람직한지, 아니면 평등에 입각한 친구같은 관계가 바람직한 지는 개인들의 태도와 가치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그 기본적인 선은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 기본적인 선이란 부모의 권위와 자식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서구적인 사고나 생활방식이 침범하지 말아야 하는 마지노선이라고 본다. 부모의 어께위에 자식이 손을 올리면 어깨동무를 하는 식 말이다. 부모 앞에서 애인과 진한 사랑의 키스 같은 것을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 선이 무너지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의미에서 그 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프레임은 보수적인 성격이 강해야 한다고 본다. 진정성과 진실성이 있다면 보수고 진보고 나쁜 것이 결코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보수도 진보도 아니면서 이런 단어로 장식하는 거시 문제가 아닐까? 만약 이런 최소한의 보수성(전통) 마저 무너진다면 가정과 가족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예를들다 보니 이 지경에까지 오고 말았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091022121030128e1&linkid=4&newssetid=1352


김태희와 이병헌의 베드신의 수위가 어떠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면 그 수위가 TV 드라마용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보는 TV 드라마는 극장용 영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옷을 벗고 있고, 섹스의 체위까지 진행되는 장면들이 안방의 TV 드라마에까지 내보내려고 했는지는 쉽게 납득히 가지 않는다, 아마도 TV 영화나 그외 다소 노골적인 프로그램의 추세에 편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베드신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잘 했다고 판단한다.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보수적이어야 좋을 때가 있는 반면에 진보적이어야 좋을 때도 있다. 이 둘을 뒤섞어 놓을 때가 좋을때도 있다. 무너지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무너뜨리는 것이 바람직 할 때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너져서는 안되는 때도 있고, 무너뜨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번의 <아이리스> 베드신이 바로 이런 때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안방의 TV 드라마는 여전히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이므로. 베드신을 보려면 영화관이나 늦은 밤 TV의 영화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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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요 2009.10.26 0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 앞에서 애인과 키스를 하는것이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테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그 선, 문화적 마지노선 이라는건 누가 결정하는걸까요?

    결국 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됩니다. 부모앞에서 애인과의 키스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 문화적 마지노선은 더이상 그자리에 있지 않겠지요.

    문화에 있어서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문화란 단지 여러 사회 요소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니까요.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아이들이 섹스신을 보면 안돼 라는 것도 하나의 문화적 마지노 선이겠지요. 그러나 앞 댓글에 쓴것처럼 아이들은 섹스신을 보면 안되는걸까요? 저는 이 마지노선이 더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3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게 현실입니다. 아시다시피 포르노는 매우 왜곡된 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그 이전에, 예를 들어 10살때, 부모님과 아이리스를 보다가 베드신을 보고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올바른 성과 섹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할 기회가 있었다면 포르노에 의해 왜곡된 성의식을 가질 확률은 확실히 줄어들겠지요.

    제 말투가 좀 주제넘어 보일수 있다는 걸 압니다만 이런 쪽으로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것 같아 써봅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가 없어 홈페이지 주소를 적지 못하는 것에 양해부탁드립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0.26 1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화가 상대적인 것에 동의하신다면 한 번쯤은 우리가 너무 서구 일변도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지 이런 부분도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네요^^
      아무튼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2. 경계선 2010.12.28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구의 옳지못한 영상물을 좋은예절과 문화를가졌던 우리나라에게 맹목적으로 모방하라 하는것은 소에게 개밥을 먹이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예절이나 성문화가 현저히 저질이 되어있다 생각하는 저는

    페미니즘이나 성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진보란것이 존재하지 말아야한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