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개방성이 가져온 역설적인 폐쇄성


인터넷, 참으로 무섭다. 나쁜 의미로도 그렇고 좋은 의미로도 그렇다. 무섭다는 감정 자체는 그다지 바람직한 감정은 아니다. 불쾌하고 기분이 나쁜 감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무섭다는 감정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  공포는 일종의 사회화의 도구가 된다.  법 그자체는 인간의 공포를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무서움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의외로 교훈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최근 인터넷의 익명에 기대 인터넷을 악용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있다면 타진요가 아닐까 싶다. 타블로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자행해온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다미가 정말 무섭다. 마치 고장난 브레이크처럼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음에도 자신들을 믿음을 털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맹신적인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이 전적으로 올바르고 맞다는 독단과 아집이 타인을 괴롭히는 무기가 됨을 알았다. 이 무서운 집단을 통해서 우리는 너무나 큰 교훈을 얻었다.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말이다. 개방적인 인터넷에서 폐쇄적인 집단이 발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미지 출처: TV Daily.com


MC몽은 인터넷이 참으로 무섭다는 사실을 또 다른 방식으로 실감하게 하는 또 다른 존재이다. 타진요가 인터넷의 악용적인 사례 집단이라면 MC몽은 인터넷의 개방성 앞에서 거짓을 행하지 말자는 개인적인 사례이다. 인터넷에는 결코 거짓이나 이전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변명을 늘어 놓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말 조심해서 글을 올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MC몽이 자신의 이 발치와 군면제에 대해 올린 네이버 지식인 글까지 공개되었다. 또 MC몽이 어렵게 살던 시절 도와주던 이웃의 글이 ‘성지글’ 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이 글이 단순히 MC몽 음해성 글인지 아니면 사실을 적은 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일련의 MC몽의 과거의 인터넷 행적은 그 스스로에게 큰 늪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악용한 인터넷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 온 셈이다. 인터넷 정말 잘 이용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과거의 흔적을 남지지 말라는 차원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진실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신정환의 경우는 어떤까? 인터넷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한 뎅기열 쇼는 인터넷의 조작 가능성을 걱정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인터넷 이전에 TV, 신문, 심지어 라디오도 그런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있다. 이제는 인터넷이 개인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조작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신정환이 뎅기열에 걸려 필리핀의 한 병원에 누워 있는 사진하며, 자신의 홈피에 뻔뻔스럽게도 뎅기열로 몸이 아파 귀국치 못하다며 언론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식의 인터넷 플레이를 한 사실은 인터넷이 얼마나 치부를 가리고 조작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인터넷이 악용되는 일이 없어야 겠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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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돌양 2010.10.13 17: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정환,mc몽은 참 답없는 분들이시구요;;;;

  2. 문단 2010.10.13 18: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 한마디의 파급력이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대중에 노출되는 연예인들은 예전보다
    더욱 조심해야할 것같아요.

  3. KEN☆ 2010.10.13 1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 악용 막기 쉽지 않죠...
    더구나 파급력이 막강하기 때문에요.. 어려워 보이지만, 선량한 사람들은 그러지 않길 바랄 뿐이죠...

  4. special-one 2010.10.13 1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한 순간에 사람 한 명을 훅~ 보낼 수 있는 곳이 인터넷 같아요.
    에휴~ 근데 신정환, MC몽은 역시 답이 안나오는 사람들이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역시 추천은 필수 ^^

    다음에 또 뵈요.ㅎ

  5. 자수리치 2010.10.13 2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C몽, 신정환...완전히 아웃입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지요.

  6. DDing 2010.10.13 2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익명성이라고 해도 절대 숨을 수 없는 곳이 인터넷이기도 하죠.
    뒤지면 다 나오니... ㅎㅎ

  7. 원영.. 2010.10.14 0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은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사람을 이롭게도 하고, 사람을 해하는 흉기도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8. 2010.10.15 2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빨간來福 2010.10.18 0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별한 사고가 있으면 늘 인터넷의 문제점이 부각되고 하지만 시정은 안되는 것 같아요. 법제보다도 우선은 이용자들의 의식수준이 올라가야 해결이 되겠죠. 행복한 주말 보내셨나요?




선덕여왕, 비담은 왜 유신의 칼에 죽어야만 했을까?


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223004816&subctg1=05&subctg2=00



드라마 <선덕여왕>의 비담을 어떻게 봐야할지는 그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시대 상황이라는 다소 객관적인 위치에서 본다면 대의를 거스른 반역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이라는 위치에서 보면 비담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이었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보는 비담과 감성적으로 보는 비담의 모습은 너무나도 상반된 모습이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다 입장의 충돌이나 갈등을 내면적으로 일으키며 자아에게 끊임없는 영향을 미친다. 특히 격동기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역사상에서 이러한 내면의 충돌이나 갈등을 겪으며 내린 선택에 의해 살아남거나 파멸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을까? 불행과 행운이 인간 내면의 갈등과 충돌을 겪으며 내린 선택에서 결정되어 지는 것이다.


6.25 라는 전쟁 속에서 당대의 한국인들이 겪은 불행과 행운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전쟁에서 엄청난 내면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것이고 , 그 선택에 의해 행과 불행이 나누어지는 운명에 처하기도 했을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영혼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것을 개인과 집단의 관계로 넓혀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참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아직도 그 짙은 그림자가 우리의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비담의 슬픈 운명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집단에 의해 희생된 개인의 운명 같은 것을 말이다. 철저하게 '자신' 이 외면된 삶이었다. 권력이라는 구도 속에서 비담이라는 개인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미실이 비담을 버린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의 스승 문노로부터 외면당하게 된 것도 소외된 자신을 인정받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삼한지세>를 빼앗기고 많은 사람들을 독살하는 것도 자신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이었다. 이렇게 철저한 '자신'의 소외는 결국 인간과의 소통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 가운데서 아마도 이성과의 사랑이야말로 큰 부분을 차지 할 것이다. 자신의 생모인 미실에게 버림받고 자신을 키워준 존재는 문노였다. 문노는 개인의 삶을 걸어가는 사람이라기보다 신라라는 국가의 대의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비담에게 가르친 것도 주로 개인적인 삶보다도 대의를 위한 자질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을 것이다. 결국 이 폐단이 비담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122301393467291


이와 관련하여, 유신에 대해 언급해 보면 어느 정도 출신성분상의 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신은 철저하게 집단에 자신을 복속시킨다. 개인의 감정을 철저하게 억압하면서 신라라는 대의에, 선덕여왕에 그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맡긴다. 이러한 태도는 비담과는 아주 상반된 면이다.  철저하게 국가에 자신의 삶을 복속시켰다. 김유신이라는 개인보다는 김유신이라는 부속물로 여겨질 정도다. 알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이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존재는 덕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덕만에 대한 애정이 싹텄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덕만에 대한 비담의 연모는 어쩌면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 때 유신과 삼각관계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유신은 덕만의 결의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길 뿐이었다. 물론 덕만을 향한 유신의 사랑도 깊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 개인적인 감정을 철저하게 억압한 것이 유신이었다. 비담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이러한 두 사람의 경우를 선악이나 가치를 따져서는 안될 것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고유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담은 유신의 칼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유신의 칼에 쓰러지는 비담의 의미는 권력의 한 복판에서 피도 눈물도 억압하는 냉정한 유신이 그 연장선상에서 비담의 사랑을 억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즉, 비담의 처지는 이해하지만 그 따위 것 신라가 이룰 대의에는 반역에 불과한 것이다. 집단과 대의 속에서 개인적인 이해 따위는 한낱 사치에 불과한 것이다. 필자는 비담이 참 불쌍하다. 결속된 집단이라는 틀 속에서 '개인' 적인 감정이 언제나 위태로웠고 결국 그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죽음을 맛이 하기 때문이다. 비담은 유신이나 알천 같은 무사의 단순함이나 미생이나 염종같은 권모술수도 없었다. 비담은 체질적으로 홀로 살아가야할 존재이지 집단 속에 맞춰져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나마 그 집단 속에서 그가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 밖에는 없지 않았을까? 사랑하며 홀로 살아갔어야 할 존재, 비담. 그러나 너무 나도 다른 운명에 처해져야 한 비담. 비담이 그토록 기대고 위안을 얻고자 했던 선덕여왕과의 사랑마저도 염종과 춘추 등의 권모술수에 휘말려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은 참으로 슬프디 슬프다. 죽음이 비담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 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이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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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슬픈비담 2009.12.25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감이에요. 집단이 아닌 혼자여야 자유롭고 활력있고.더 행복했었을 비담..죽어서 더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찾지 않았을까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2. 갓쉰동 2009.12.25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과 덕만은 운명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드라마는 계속 노출하고 있지요.. 단, 덕만이 비담에 대한 운명은 다르지만..

    어쨌든 결론은 문노의 점쾌는 틀렸다는것... ㅋㅋ

  3. blue paper 2009.12.25 08: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흙 ㅜㅜ
    선덕여왕 끝났고... 이젠 뭘 봐야 하나 ㅜㅜ

  4. *삐용* 2009.12.25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이 연기를 참 잘한거 같아요^^ 어려운 캐릭터인데...
    선덕여왕 끝나서 아쉬워요 ㅠㅠ

  5. 탐진강 2009.12.25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수한 비담인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6. 새누 2009.12.26 0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시각으로 보면 유신도 원래도 도망칠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덕만 본인의 바람으로 인해 결국 신하로서 남게되었지요

  7. 못된준코 2009.12.26 1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이 막을 내려서 너무 안타깝네요. 조금 해피엔등으로 끝났다면 아쉬움이 덜 했을텐데요.
    남은 연말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