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혜라는 이름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지나친 노출로 인해 이슈가 되었다. 오인혜=노출의 등식이 성립될 정도였다. 그녀의 노출은 여타 다른 연예인들의 노출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아주 파격적이었고 기록(?)을 갱신한 듯 했다. 그녀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밟은 것을 보면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필자로서는 그녀의 연기나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그만큼 연기자로서의 지명도는 떨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연기나 영화에 대해서는 모르면서도 노출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오인혜가 되었으니 참 기가 막힐 일이다. 그녀의 노출에 대해 언급해 놓은 기사에 따르면 노출로 여론의 조명을 받고자 하는 이유가 가장 컸다고 한다. 연기나 작품으로 인기를 얻지 못하자 노출로 화제가 되길 바란 모양이었다. 이러한 언급이 근거가 전혀 없지만은 않는 것이 오인혜는 지난 10월 9일 부산 그랜드호텔에서 가진 OSE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노출에 대해 이렇게 말한 부분이었다.


“솔직히 ‘저 좀 봐 주세요’라는 의미에서 입었다. 연기에 목말랐다. 나를 알아야 불러 주실 거 아니냐” “노출 보다 이런 마음을 예쁘게 봐주셨으면 한다”


그녀의 지나친 노출이 문제였지만 노출에 대한 그녀의 인식은 더욱 문제였다. 좀 더 거칠게 말하면 천박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예쁘게 봐주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마음을 예쁘게 봐주기 힘들었다. 차라리 연기 연습을 더 하고 작품을 연구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 값진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말은 노출을 통한 구걸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여배우가 노출로 연기를 구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말이다. 이러한 인식은 노력하는 연기자나, 이제 연기에 뜻을 두고 시작하는 연기 지망생들에게는 허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연기를 하기위해서는 이런 노출도 불사해야 한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내고 싶다거나 (기대조차 할 수는 없지만) 노출에 대한 보수적인 사회인식에 저항하고 싶었다라는 발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연기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노출을 했다는 발언은 아무리 생각해도 연기에 대한 너무 안이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손도 안대고 코 풀어보겠다는 심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미지출처: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12092131001001




그런데 이런 오인혜가 또 파격적인 노출을 했다고 하니 그녀를 아무리 잘 보아 주려고 해도 봐 줄 수가 없다. 아니 연기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아직도 이런 노출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현재 오인혜는 박철수 감독의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의 주연을 꿰찬 상태이다. 그럼 이번에는 무슨 이유로 노출을 한 것일까? 이번에는 영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레드 카펫과도 무관한 한 클럽에서 열린 명품 안경 전문 브랜드 실루엣 런칭 행사장에서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는 연기 기회를 갖기 위한 노출은 아닌 듯싶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안경 브랜드 런칭 행사장에서도 이런 파격적인 노출을 선보였을까?


필자 개인의 판단으로는 오인혜는 노출이 습관화된 상태가 아닌가 싶다. 실내이긴 하지만  겨울 안경 런칭 행사에 파격적인 노출을 선보였다면 습관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안경 브랜드 런칭 행사라면 그것에 걸맞는 의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입는 것이 브랜드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안경 브랜드사와는 의상에 대해 사전 협의가 되었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뭐 이런 것들은 브랜드사가 전적으로 감수해야할 점이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미 언급했던 습관화된 그녀의 노출이다. 노출은 적당한 것이 좋다. 이제 그녀가 영화의 주연까지도 꿰 찼으니 노출을 좀 자체하면 좋겠다. 노출 때문에 주연에 박탈되었다는 오해 자체도 받을 수 있는데 그기에 여자배우들이 주연 자리를 얻으려고 경쟁적으로 벗기라도 한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노출하게 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연기를 위해서 노출을 했다고 하지만 연기가 아닌 결국 '노출= 오인혜' 라는 등식을 벗어나지 못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꾀에 자신이 넘어간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오인혜 이제 적당히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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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려라꼴찌 2011.12.11 0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큼지막한 브라같군요 ㅡ.ㅡ;;

  2. 아빠생각 2011.12.25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이 길어 슬픈 사슴이여.... 정말 슬퍼 보이네요... 너무 외소한 몸매에 그로인한 대두처럼 보이는 공식...플러스로 목이길어 슬퍼야
    하는 사슴인데 이빨을 보이며 웃고있는 그대모습은 한폭의 모순같은 방식을 완성하는구려....캡쳐를 잘한듯.. 그리고 콕 정곡을 찌르
    는 듯한 예리한 지적 또한 글을 다 읽지 않아도 다 읽은듯하게 그림이 그려지네요.... 오인혜라는 이친구 앞으로 계속 눈에 가시(?)
    처럼 기사화 될때마다 님의 글이 떠올릴듯 합니다. 잘보고 잘 감상하고 잘생각하고 갑니다.. 조금만 있으면 새해입니다.. 마무리
    뜻깊게 하시길 바랍니다...

  3. 그냥내생각 2012.02.03 0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자신의 꿈을 위루기 위한 자신의 최선택
    이었다고 봅니다.. 여하튼 자신이 선택한
    길에 최선을 다하시길




필자가 본 영화들 중에 경마와 기수들이 나오는 영화는 우리나라 영화<각설탕>과 일본영화<눈에게 바라는 것>이 다란 생각이 든다. 기억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기수와 경마를 다룬 영화가 더 있을 것이다. <각설탕>도 참 감동적으로 보았지만 일본영화 <눈에게 바라는 것>은 정말 감동적으로 본 영화다. 하지만 필자의 말만 믿고 본다면 실망을 하실지 모르겠다. 박진감도 없고 재미도 없다. 잠오는 영화일 수 있다. 그러니 권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이런 혼자서 무슨 오버를......)


다음 영화


그랬기에 경마와 기수를 다룬 <그랑프리>의 개봉 소식을 듣고 참 기대가 크다. 개인적으로 <눈에게 바라는 것> 보다 더 좋은 영화면 좋겠다. 그기다 양동근과 김태희가 주연을 맡아 열연하였다고 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연기로 따지자면 양동근 참 대단한 배우가 아닌가. 김태희도 아이리스에서 열연하면서 그 연기력이 일취월장하지 않았는가. 이 그랑프리는 필자로서는 꼭 봐야할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경마와 기수의 영화이며 그기다 양동근과 김태희가 출연하니 말이다.


그런데 김태희가 <그랑프리>에 함께 출연한 양동근에 대해서 호감을 보여 이들 관계에 대해 호기심이 일고 있다. 물론 필자 개인의 호기심이다. 김태희는  KBS 2TV 김승우의 토크쇼 '승승장구'에서 "양동근은 마음으로 가까워진 사람" 이라고 하며 특별한 관심을 내비추었데, 정말 그 의미와 저의가 너무 궁금하다. 김태희에게 마음으로 가까워진 사람이라면 '감각적인 매력' 보다 양동근의 진실함에 더 후한 점수를 준 것이 아닐까 싶다.

 
김태희의 이러한 태도는 또 다른 말에서 더욱 분명해지는데 그녀는 '이병헌과 양동근과의 키스신 중 더 마음에 드는 키스신은?' 은 어떤 것인가라는 시청자의 질문에 김태희는 의외로 양동근과의 키스신을 선택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러한 선택이 의외인 까닭은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과 나누었던 사탕 키스가 숱한 화제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화제가 되었던 사탕 키스보다 양동근과의 키스가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하니 그저 영화<그랑프리> 홍보를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일까?




잠깐 샛길로 새서 김혜수와 류해진의 관계를 잠시 언급해 보자. 다들 알다시피 김혜수와 류해진은 연인 사이이다. 참 미녀와 야수와 같은 커플이다. 이들이 결혼을 할지의 여부는 알 수없다. 단지 연인 사이로 지낼 가능성도 클 것 같다. 이들이 파파라치에 의해 서로의 관계가 들통나자  공식적으로 연인 사이임을 밝혔다. 이 때 필자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김혜수를 감당할 남자가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류해진이 '김혜수를 감당할 남자' 라니 믿기지 않았다. 참 의외의 사건이었다. 뭐 이와 유사한 예들을 들라면 수도 없이 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바로 재미있는 점은 이 지점에서다. 영화<그랑프리> 홍보를 위한 김태희의 립서비스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척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김혜수와 류해진의 관계처럼 말이다. 솔직히 필자는 김태희와 양동근이 잘되면 좋겠다. 단지 좋은 동료의 관계도 좋지만 그 이상의 관계가 되면 좋겠다. 남녀의 관계가 단순히 외모와 스펙에 기반한 관계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특히 가진자들이 가진자들과만 이어지는 사회적인 관습화로 굳어진 악습아닌 악습도 좀 사라지면 좋겠다. 서울대 나온 김태희가 얼굴은 못생겼지만 사내답고 진실한 양동근과 사귄다면 긍정적인 사회의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까. 필자가 양동근와 김태희의 관계를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바램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필자의 개인적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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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0.09.08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살짝 의심이 되긴했는데. 특히 '양동근에게 김태희란' 질문에서 양동근씨가 답변하길 "정말 좋은동료"라고 했을때, 태희씨가 아랫입술 깨물면서 좀 아쉬워하는 표정이 보였거든요. 저 혼자 소설쓰는걸지도 모르지만 만약 사귄다면 잘됐으면 좋겠네요.

  2. ,,., 2010.09.08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오면 저도 꼭 한번봐야겠습니다. 양동근 저도
    많이 좋아한답니다.^^

  3. 느킴있는 아이 2010.09.08 1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승승장구에서 보니 ㅎ 사귀는것 같지는 않아보이던데
    ㅎㅎ 두분다 너무 괜찮은 분들이라서 ㅎ 사귀어도 괜찮을듯 하네요

  4. 오지랖 2010.09.08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녀사이 연애지사에 왜그리 집착인지....간혹보면, 사귀면 좋겠다라는 정도의 언급이 아닌, 사귀어라. 등의 중매쟁이 같은 말도 하고, 별의별 루머를 만들고 사실인냥 꾸며서, 정작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연인이 되어버리는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지요.

    지금 이 게시글에서 그런 조짐이 엿보입니다.

    남의 연애생활에 적당히 거리를 두세요 들...

  5. 원이맘 2010.09.08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승승장구에서 묘한 분위기 였나요+-+
    아 궁금해
    지금 다운 받아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

    전 사귀든 말든 머 상관없고 재밌겠어서 봐야겠어요 ㅋㅋㅋㅋ

    잘보고 가요~~^ ^

  6. *아루마루* 2010.09.08 1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키스신에 대한 내용은 단순한 립서비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둘이 만약 사귀게 된다면 생각보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7. 레오 ™ 2010.09.08 2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녀와 야수의 사랑이야기보다는 .... 항상 2 세가 궁금합니다 ^^

  8. 김치군 2010.09.08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둘은.. 잘 안 어울리는거 같아요 ㅎㅎ..

    아루마루님과는 다른의견 ㅋ

  9. 지후니74 2010.09.09 0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태희씨가 영화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요.
    양동근이라는 좋은 배우와 함께하는 영화이니 만큼 기대가 되네요.~~ ^^

  10. 감성PD 2010.09.09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태희씨..제껀데 ㅎㅎ

  11. 선민아빠 2010.09.09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동근씨 좋아요~~ㅎㅎ

  12. 또웃음 2010.09.09 1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사진 상으론 양동근 얼굴이 김태희의 2배에요. ^^;;;

  13. 백전백승 2010.09.09 2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태희와 양동근이 함께 출연한 영화가 그랑프리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 영화가 승마에 대한 것이었군요.

  14. 하록킴 2010.09.10 0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두 사람 잘어울리는것 같아요^^
    이병헌,김태희 커플도 좋았지만,왠지 어색한 감이 있었는데,
    영화홍보나 인터뷰때 양동근,김태희 커플은 너무나 잘 어울렸어요!
    양동근 남자답고,재미있는 사람인데,이런 남자가 보통 미인을 얻습니다+_+

  15. Hong Kong Company Formation 2011.11.22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았는데 그 영화가 승마에 대한 것이었군




 

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눈에 바라는 것> 이란 영화가 있다. 일본영화인데 참 의미있게 본 영화다. 재미는 없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어 세 번을 본 영화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기 성찰의 영화이다. 왜 필자가 이 영화에 자꾸만 끌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또 보고 싶으니 말이다.


이 <눈에게 바라는 것>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수상한 삼형제>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인물은 엄청난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은 필자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별 관계가 없는 영화가 떠오르면서까지 엄청난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엄청난에게 관심이 있나 보다.


엄청난은 참 많이도 변화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근원적인 변화란 사실이다. 현찰이 연희에게 된 통 당하면서 마음 밑바탕에서 변화가 생기듯이, 연희가 본심을 드러내며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 듯 무언가 분명하게 선하던, 악하던 근본적인 변화를 드러내 주면 좋겠다는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는 무언가 미지근하게만 느껴진다. 하행선이 떠나는 그 과정에서 보여준 엄청난의 변화는 외부적인 변화였다면 이제는 좀 더 내면적인 자기 성찰을 좀 하는 모습이 있으면 좋겠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410100916609&p=sisain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건강과 종남만이 아니라 시부모에 대해서, 시동생들에 대한 변화이다. 이 문제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 한 바가 있다(2010/04/15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삼, 하행선이 떠난 이후 엄청난의 숙제는?). 가족이 생기면 역할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형님이 된다. 그 확대된 역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건강, 종남)에게만 관심이 머무른다면 바람직 한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역할들에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그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 정도는 해야하는 것이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한 아침라면의 경우가 그런 것이다.


건강과 청난이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만 올인하고 있다. 아무리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을 팽개쳐도 된다는 것을 으미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가 자신의 역할들을 중단시켜야 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눈에게 바라는 것>은 모든 것을 읽은 주인공이 형님에게로 도피해 오고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자기 성찰의 과정을 겪는다. 아무리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도 말이다. 바로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밋밋하지만 재미없지만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엄청난에게는 그런 근본적인 자기 성찰이 없다. 물론 건강에 대한 고마움, 시부모에 대한 고마움이 없을 리야 없다. 그러나 왠지 미덥지가 못하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어야 보며 자신을 받아들여 준 건강, 자신을 며느리로 인정한 시부모, 시동생들에게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 과정이 전혀 시끌벅적할 필요는 없다. 이엄청난은 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이다. 주인공으로서의 가장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 인물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랑을 받으며 변화해 가고 있고 그 변화를 흐뭇해하고 있지만 약간 간이 덜 된 국물 같아 이런 사족 같은 글을 쓴다. 고아, 미혼모, 하행선 이라는 굴곡 많고 파란만장했던 삶이었기에 이런 미지근한 변화가 아쉽다는 것이다. 오랜 된 관습을 하루 아침에 깰 수는 없는 것이지만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면적으로 단단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부여주면 좋겠다. 막장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졸은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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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과 2010.04.18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난이 참 버릇이 없더군요.^^
    어제 봣습니다.

  2. 블루버스 2010.04.19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도우미가 더 불쌍해보입니다.
    청난은 그냥 굴러들어온 듯한 인상을 더 많이 풍깁니다.ㅎㅎ
    아직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3. 50대중반 아줌마 2010.04.19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작가라면 이 글쓴이의 조언을 받아들여 마침 임신도 했고 하니 맞벌이를 그만 두고 집에서 시어머니로부터 음식하는 법 살림하는 법 등을 배우며 거침없이 내 뱉는 말솜씨로 시어머니의 무경우도 지적해대면서 서로 지지고 볶고 하다가 내적으로 둥글둥글 두 사람이 변화해 가는 방향으로 대본을 써가고 싶습니다 ㅎㅎ

  4. 50대중반 아줌마 2010.04.19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두 같은 시어머니 반열이지만 전과자 저런 여인네는 진짜 엄청난보다 더 싫어요. 애들이 시집을 안 가려 하잖아요 세상 모든 시어머니들이 다 그런 줄 알고 시짜만 봐도 싫어하잖아요. 저런 시어머니상 좀 그만 만들었음 좋겠어요. 드라마에 점잖고 어른답고 따스한 시어머니상도 좀 만들었음 좋겠네요 이러다 내 아들 장가라도 보낼 수 있을 지 원.....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이유?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2160920131001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는 비판이나 비난을 하나 봅니다. 그런데 필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만큼 막장인 곳이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정작 우리의 현실이 막장이면서 그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상한 삼형제>는 막장 드라마가 아닙니다. 막장 드라마의 한계나 구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막장드라마라고 했을 때 적어도 드라마 자체의 '막장스러움' 과 드라마 내용의 '막작스러움' 을 언급한다고 봅니다. 즉, 드라마 자체의 막장스러움이란 드라마의 구성에 관한 것으로 이야기 전개상에 인과 관계나 개연성이 없이 우연들이 남발되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허구라고 하지만 그럴 듯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드라마 내용의 막장스러움입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 관계의 비상식적이고 엽기적인 행태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고 하는 비판이나 비난은 드라마 내용상의 '막장스러움' 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현찰과 도우미의 부부 관계나, 건강과 엄청난의 관계, 이상과 어영이의 관계등이 비상식적이고 심지어 엽기적이기까지 하는 관계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의 관계, 아니 <수상한 삼형제>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들의 관계가 막장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엄청난의 경우 그녀의 삶이 막장이라기 보다는 기구하다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차라리 이복 동생이 애인이 된다거나 하는 스토리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인간관계가 영화나 소설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상상을 해봅시다. 물론 유명 영화감독과 소설가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수상한 삼형제>라는 영화와 소설이 막장스럽다고 비난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비난이나 비판을 하더라도 문학성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올드보이>나 소설가 김영하의 소설 <오빠가 돌아왔다>는 인간관계로 놓고 볼 때는 그야말로 막장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나 소설을 중고등학생들도 보고 읽습니다. 예술성있는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말입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그리는 인간관계의 엽기성은 현실과 엄청나게 이질적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파고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낯설고 이질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찬사를 받고 문학적이라 칭송을 받습니다. 사실 이걸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엄청나게 막장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21507112124326
 

그렇다면 <수상한 삼형제>는 그 내용상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구성상 이질적이고 엽기적인 인간 관계를 설득력있고 자연스럽게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수상한 삼형제>의 구성에도 그다지 치명적인 흠이 없다고 봅니다. 우연과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좀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구성이 막장일 정도로 엉망진창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수상한 삼형제>를 '막장스럽다' 고 여기게 하는 것일까요? 필자의 판단으로 봤을 때 안방극장이라는 상황이 이러한 막장 운운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막장 드라마라고 낙인 찍힌 드라마들이 대부분 다 그렇습니다. 그 내용이 안방극장과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드라마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그런 부분도 있지만) 드라마 외적인 상황이 빗어놓는 문제인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보는 주말 드라마에 비도덕이고 비윤리적이며 엽기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이 막장스럽다는 것이지요.


좀 더 분명히 해두어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막장스러운 현실을 영화로 소설로 드라마로 반영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은 막장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가족과 함께 보는 주말 드라마의 내용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엽기적이라는 사실이 거북스럽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드라마 자체를 막장이라고 비난하기 보다는 시간대에 맞게 드라마를 만들어라고 주문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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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6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2.17 0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저도 재방송으로 보고 있답니다. 주말드라마다 보니 좀 따라 가기가 쉽네요~~ 제 개인적으로는 막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가끔 막장이니 기사가 뜨는 것 같아서 말이죠^^

  2. PAXX 2010.02.17 0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이거 가끔 보는데도 재밌더라구요^^

  3. 악랄가츠 2010.02.17 0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말드라마는 당최 보지를 못하네요 ㅜㅜ
    월화, 수목드라마는 그나마 챙겨보는데, 흑...
    재방이나 케이블이라도 한번 살펴봐야겠네요! ㅎㅎㅎ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하늘이 2010.02.21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에서 있을법한 일이라면 여자친구 죽여서 며칠동안 자동차 트렁크에 실고 회사다니고, 알몸졸업식하고, 친딸 성폭행하고, 아동 성폭행해서 죽이는 현실까지 다 드라마로 만들 수 있다는 걸까요? 그리고 그러한 내용의 세세한 전개까지 공중파를 탈수도 있다는 건가요?
    님의 글처럼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영화나 소설등 예술을 표방하는 작품들은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똥인지 된장인지 가려야 한다는 거지요.
    남녀관계나 외설, 욕들은 일상 다반사이지요. 현실의 것들이 담겨서 공중파를 타면 무조건 막장이 아닌가요?
    공영방송에서 아무런 제제없이 사람을 자극시키고 정신이상적인 것을 전달한다면, 비판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나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경우에 얼마나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지는 살펴봐야 합니다.
    그저 돈과 시청률에 눈멀어 개념없는 드라마를 만들고 방송하는 이들은 건전한 사회의 기준으로 본다면 퇴출 대상이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3.01 0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늘이님, 댓글 감사합니다^^
      외설적이거나 욕설 같은 나오지 안구요, 막장의 현실을 반영하긴 하지만 마장만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 볼만한 문제거리가 많이 들어 있다고 봅니다. 고부관계, 부부관계,현실과 이상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님이 논리대로라면 티비나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소설이나 드라마가 어떻게 다른지 자 모르겠군요.

  5. 하하 2010.03.06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웃기는 군.

  6. 저도 동감 2010.03.09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황과 캐릭터가 특수할 뿐... 한 드라마에서 많은 얘기를 담으려고 좀 얽혀있을 뿐...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이 많다고 느꼈는데 막장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ㅠㅠ 잊을 수 없는 "헌신하면 헌신짝된다"는 대사ㅎㅎ


  

닌자 어쌔신, 어쌔신(assassin)의 숨은 의미를 아시나요?

이미지 출처 http://movie.daum.net/moviedetailPhotoView.do?movieId=45272&photoId=534127



Assassin. 재미있게 생긴 영어단어다. 그러나 그 어원을 살펴보면 결코 재미있지만은 않다. 사실 억울한 구석이 많은 단어다.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가 아랍어를 거치고 영어를 거치면서 왜곡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랍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아랍인들은 암살자, 자객이란 다소 혐오스런 영어 단어(assassin)를 아랍어에서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 분노할 만 하기도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해시시(hashish)와 관련되었다고 하여 마리화나나 대마초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Korea의 어원이 고려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고려 사람들이 무도병이 많다는 해괴망측한 추측을 하면서 chorea(무도병)의 어원이 Korea에 있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처지가 다르긴 하지만, 아랍인들이 assassin이라는 단어에 갖는 감정도 그렇지 않을까!


어쌔신(assassin)이란 말은 하시샤신(Hashshashin)에서 유래한 말로 중세에 이스마일리 쉬아(Ismā'īlī Shia) 무슬림의 니자리(Nizari) 파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니자리(Nizari)나 하시샤신(Hashshashin) 이라는 말은 그들의 적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의도적인 폄훼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니자리파는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인 파티미드 칼리프 마아드 알-무스탄실 빌라(Fatimid Caliph Ma'ad al-Mustansir Billah) 의 승계와 관련한 분쟁이후 파티미드 이스마일리 제국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이미지 출처 http://movie.daum.net/moviedetailPhotoView.do?movieId=45272&photoId=535032


이 단어(Hashshashin)의 어원은 다소 불분명하다. 첫째로, 아랍인의 입장에서는 가장 유력하고 또 서구의 학자들 또한 이 견해를 대변하는 학자들이 많은데, 하산(Hassan, 니자리파의 지도자인 하사니 사바)의 추종자들을 뜻한다고 하는 견해가 그것이다. 둘째로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견해로, 하시샤신(Hashshashin)이 '해시시 상용자' 를 의미하는 단어인 아랍어 하시샤시(Hashshash)의 복수형에서 유래했다는 견해이다. 이 가설은 하시샤신Hashshashin)이라는 말은 나자리파의 비밀스런 사회와 이단적인 신학에 기인한 의혹과 연관시켜 적대 세력이 붙인 모욕적인 말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 말은 니자리파의 미친 듯한 이상 행동을 묘사하는 은유로서 비판자들에 의해 모욕적으로 사용되었고 점차적으로 고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나지리파가 대마초를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들이 사용했다기 보다 단순히 해시시를 재배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고 생각되는 해시시(Hashish)라는 말은 대마초로부터 모은 대마초 진을 의미한다. 페르시아에서 그 말의 정확한 정의는 "치료자들" 이나 "허브 판매자들"이다. 대마초와 관련된 이러한 견해가 일방적으로 십자군들에게 전해졌고, 마르코 폴로가 1273년 알라무트(Alamut)를 방문한 그의 설명에서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확실치 않는 이러한 경로를 통해서 하시샤신(Hashshashin)의 왜곡된 의미, 암살자들이라는 의미에 더해 마약 상용자란 악의적인 의미로 "어쌔신(assassin)" 이 서구의 어휘 속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assassin 은 하산 (Hassan ibn al-Sabbah)과 그의 추종자들로부터 나왔다는 설이 수세기 동안 받아들여져왔으나 해시시(hashish)와 연관되어 왜곡된 의미가 다시 나타난 것은 1809년이다.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Sylvestre de Sacy가 그의 한 강의에서 마약과 살인 집단(sect of murderers)을 재언급하면서 그것을 어쌔신이란 단어와 연관을 지어면서 이 가설이 큰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다.


assassin이 유래한 Hashshashin이란 말이 Hassan에서 유래했다는 말과 hashish에서 유래했다는 말은 하늘과 땅 차이다. 테러와 회교 근본주의가 아랍권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인상이듯 어쌔신이라는 단어는 바로 서구의 압랍에 대한 왜곡된 편견이 언어로 나타나 지속적으로 그러한 편견을 확대 생산해 내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영문판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Hashshashin 에서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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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디아나밥스 2009.12.04 2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어쌔신에 그런 뜻이 있었군요.^^
    국어에도 이런 비슷한 말이 없나 생각해봅니다.

  2. 못된준코 2009.12.04 2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한 정보력이세요. 이런건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거죠??ㅎㅎ

  3. 타이 2009.12.05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忍者= 어쌔신....썬태양 ,환상판타지,달문,래드빨강,검정블랙....닌자어쌔신..제목너무 유치해...

  4. 핑구야 날자 2009.12.05 0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의미가 있었군요,...화이팅하고 노력하는 비 화이팅..

  5. 유머나라 2009.12.05 0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심오한 의미가 있었네요.
    아무튼 비의 연기 대단했어요~

  6. mindman 2009.12.05 1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산의 노인' 스토리를 보면 하쉬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무슬림 살인 집단이었죠.
    그런데 맨정신에 살인을 하지 못하니까 '환각' 상태로 했다고 합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2.05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포스트를 했습니다.
      제 사견이 많이 들어가 검증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포스트일 수 있지만 한 번 다르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인드맨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7. 하록킴 2009.12.05 1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억! 이렇게 깊은 뜻이+_+ 한번도 생각도 안해본 너무나 당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요^^;

  8. 라라윈 2009.12.07 0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별 뜻 없이 '자객' 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숨은 뜻이 있었네요....

  9. 난나  2009.12.07 0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이 영화 보고 왔는데... 어쌔신이라는 단어에 저런 사연들이 숨어 있었네요.;

  10. 내영아 2009.12.08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려요! ^^*

  11. 2009.12.09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Deborah 2009.12.12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뜻이 숨겨져 있었군요. 미국에선 이 영화 평점이 그다지 후하지는 않더라고요. 스토리라인 면에서 많이 딸린다고 하던데요. 전 보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네요.






피규어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캐릭터를 찾기가 힘들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 바람을 타고 피규어산업이 효과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피규어나 인형등의 이미지 상품들의  원류가 되는 영화나 만화, 드라마의 캐릭터들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은 탓일 것이다. 일본의 햄토리가 전세계에게서 인기를 끈 것은 마켓팅의 결과이겠지만 그 캐릭터 자체의 매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아시아에서 한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류에 해당하는 상품들의 개발이 부진한 것은 정부의 인식에 일정부분 문제가 있다고 본다. 4대강에 솟아붓는 재원을 이러한 소프트한 문화산업에 투자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 이러한 현실은 정부의 노력 부족에 1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조금 빗나가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인터넷 기사를 읽으니 우리나라의 포천 막걸리 상표등록을 일본에서 선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기사였다. 이러한 일이 결국 독도의 영토 침해의 전략적인 과정과 무엇이 다를까? 물론 일본의 처사가 참으로 간교하고 치졸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국가간 관계는 그야말로 냉엄하다. 평화만큼 공허한 말도 없다. 그것은 단지 힘의 균형을 미화하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힘을 균형을 잃는 순간 평화는 깨어지고 만다. 




독도문제나 포천 막걸리 상표 도용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순간의 약점이 보이는 순간 발 빠르게 치고 들어 오는 것이다. 오늘날 구조적으로 전쟁의 가능성이 어려워진 측면이 있지만, 이에 상응하는 여러가지 부문들이 전쟁과 같은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가 바로 전쟁을 대처하고 있는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문화전쟁이라는 말이 암시하 듯이 문화를 확대하기 위한 국지전들이 도처에서 소리없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것이다.  

작은 피규어 하나를 무시 할 수 있을까? 작은 피규어 하나가 한 국가의 경제력과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 피규어의 근원으로 파고들면 그곳에는 애니매이션을 만날 수 있고, 또 더 나아가보면, 영화, 게임, 비디오 같은 소프트한 문화가 칡덩굴 처럼 얽혀있다. 피규어 하나에는 이미 거대한 문화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문화의 원류로서 상당한 부가 가치를 낳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일본 후지 방송에서 <선덕여왕>드라마로 내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류가 단순히 원류(가수나 영화)의 전파에 그치지 말고 그 원류에서 파생되는 다방면의 소프트한 문화의 영역에로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것이 터무니 없는 욕심이라고 생각치 않는다(사실 욕심이 아니라 당연히 그리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 원류에서 창조해 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 산업이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그 중에 하나가 피규어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드라마<선덕여왕>이 피규어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이번 드라마 <선덕여왕>은 그 어느 사극보다도 애니매이션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인물, 무대배경을 비롯해서 의상과 같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캐릭터의 성격과 색상이 애미매이션적인 과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촬영기법에 있어서도 만화의 콘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아니면 제작자측에서 이미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고 있는 지는 확인 할 수 없다. <선덕여왕>의 애니매이션적인 요소는 다른 문화적인 영역으로 전파되기가 쉬워진다. 아무튼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비담이나 미생은 그러한 만화적인 개성을 가진 캐릭터로 인상적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피규어의 보고라고 했는데,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선덕여왕>이 아시아 국가는 물론, 세계로 한류의 바람을 탈 수만 있다면 그기에 수많은 문화 상품, 그 중에 피규어들이 대량으로 양산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등장인물의 개성이 뚜렷하고 기품이 있어 피규어로 만들기에도 참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피규어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화가 함축된 것, 이미지로 우리의 문화가 인상 깊게 각인이 되는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바로 이 작은 피규어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바로 수많은 지류가 퍼져나가는 문화 원류로 자리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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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베드신 vs TV 드라마의 베드신



드라마 <아이리스>의 김태희와 이병헌의 키스신, 애무신에 이어 베드신를 보면서 이 베드신이 과연 TV 드라마에서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 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바보 상자라는 고전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TV는 가정의 필수품이다. TV 없는 가정은 팥 없는 찐빵이라거나 오아시스 없는 사막라는 유치한 비유를 할 수있을 정도로 문화적인 영양소의 기능까지 하고 있다. TV가 없다면 문화실조에 걸릴 확률이 높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TV의 진화가 이것을 더욱 촉진시킨 면도 있다. 

가족간 대화 부족의 주범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고 있지만 동시에 가족들을 모으는 역설적인 면도 드러낸다. 물론 침묵속에서 TV를 보고 제 각각 자신들의 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겠지만 말이다. TV라는 발명품 자체는 선악의 대상이 아니지만 인간들이 그 TV속에 무엇을 프로그래밍 해놓는가에 따라 TV의 성격은 달라진다. 또한 그 TV의 프로그램을 얼마나 선별적으로 현명하게 보느냐에 따라 TV의 성격도 달라릴 수 있다. TV가 바보상자가 아니라 '현명한 상자' 가 되는 데는 이렇듯 제작자와 시청자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 잡는다. 즉, 제작자가 무엇을 제작하고 시청자가 무엇을 소비하는 냐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작자의 입장에서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자세가 무너지는 것이 도처에서 느껴진다. 이유는 많을 것이지만 결국 돈일 게다. 광고수주와 외압, 타사와의 경쟁등이 더욱 막장으로 치닫는 프로그램, 특히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도 이러한 자극에 비판적이기보다는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다시 상승작용을 낳으면서 더 큰 자극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제 베드신, 섹스신이 안방까지 파고 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TV가 언제나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만을 만들어 낼 수 도 없는 것이다. 시청자의 연령에 다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당여난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프라임 타임에 흔히 가족 드라마니 안방 드라마니 하는 것에 베드신, 섹스신이 묘사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TV에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드라마 한 편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한다. 외국으로 수출되어 한류의 열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TV 드라마 한편은 문화와 예술이 융합되어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 전달 매개로 작용한다. 이러한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되면 한류라는 도도한 흐름이 되는것이다. 드라마의 이러한 기능은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기 보다는 긍정적이고 다소는 교훈적인 내용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무슨 고루하고 케케묵은 것을 욕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도 김태희와 이병헌의 키스신을 부러움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김태희, 이병헌의 베드신 그 수위가 어땠길래?)그래도 이 후기 산업사회와 테크놀로지의 사회에서 안방극장의 드라마가 조금이라도 소금의 역할을 하기 바라는 희망이다. 예로, 최근의 안방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이 그러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와 관련하여, TV 드라마의 베드신이나 섹스신이 어느 정도 허용되어야 할까의 문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한 영화의 베드신이 같은 성격과는 명확히 달라야 함을 인식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글의 제목은 어쩌면 쓸모없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사실 TV와 영화는 믹스되고 있다. TV속에 영화가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서로를 위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에 따라는 부정적인 문제가 외설의 문제이다. 막장 막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바로 이러한 실정이기에 TV드라마가 숭고하게(?)지켜야 할 것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TV드라마가 영화의 흉내만을 내고 예술성만 추구한다면 영화와 다른 것은 없어진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고 이미 그 리미트 라인을 만들어 놓은 상태일 것이다. 

 괜한 노파심인지 모르겠다. 지나칙 보수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또 편협된 사고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최근의 드라마 <아이리스>가 베드신이니, 키스신이니, 애무신이니 하며 인터넷에 화제가 되고 있기에 한 번 생각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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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gnman 2009.10.25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리스의 베드신을 봤는데 전 그냥 웃기더군요. ㅎㅎ
    두사람 극중에서 연애하는게 정말 재밌더라고요.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2. Bahia 2009.10.26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약국은 8시지만 아이리스는 밤 10시에 하잖아요. 애들 자는 시간에 하는데 뭔 온가족이 다 본다고...
    10시 넘으면 애들은 좀 자야해요.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0.26 1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Bahia님 댓글 고맙습니다^^
      사실 방송 시간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중파 방송이란 면에서 어느 정도 건전성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3. 글쎄요 2009.10.26 0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섹스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숨겨야 하는일인가요?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걸까요?

    만약 제가 아이들을 둔 아빠라면, 저때 아이리스를 같이 보고 아이가 둘이 뭐하는거냐고 물어본다면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하는 거라고 말해 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이리스 극 전개상 나온 베드신은 무슨 포르노 처럼 왜곡된 성을 보여주는 장면도 아니었구요.
    자연스럽게 남녀가 만나는 과정을 아이가 보는게 왜 문제가 되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영화 <박치기>를 아십니까?  재일 조선인(조총련계)들의 일본에서의 삶을 사실감 있고 생동감있게 그린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의 역작입니다. 분단의 고통과 아픔을 한국인만큼이나 진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재미와 함께 감동을 주는 영화입니다.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의 <식스티 나인, 69>이 한국인이 그린 일본 젊은이들의 방황과 갈등을 재미있게 그린 영화라면, 일본인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의 <박치기>는 재일 조선인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닮은 꼴 감독의 닮은꼴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인 감독이 재일 조선인의 삶을 그렸다는 것은 관심과 애정이 깔려있는 것일 테고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조선인에 대한 진한 애정이 진하게 느겨지는 그런 감정을 알수 있습니다. 아직도 일본 정부가 일제시대의 범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지 않고 있지만, 일본내 양심과 의식있는 개인들과 단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으로 정권교체가 되었습니다. 우리와의 관계도 전향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민당 정권 50년 동안 일본 사회는 오랫동안 국수주의와 제국주의의 향수에 젖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자민당 정권내의 각료들은 끊임없이 망언을 일삼아 왔습니다. 일본 전범들이 유해가 봉안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 국민의 대표작인 신사로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일본사회의 밑바탕에 깔린 제국주의의 향수를 맡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무사히 극복하고 새로운 일본으로 환고탈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만 좋겠습니까? 민주당 정권에서 이러한 정향적인 변화가 우선적으로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영화의 OST 뿐만 아니라, 임진강은 일본과도 상단히 깊은 관련이 있는 강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지략에 말려 배가 없는 일본군에게 배를 배앗기고 조선군이 섬멸되면서 일본의 북진을 자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전투를 일러 임진강 전투라고 합니다. 우리에겐 비극의 강입니다 (참조: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8a1821a)




영화 <박치기>의 내용이 분단상황과 관련이 있고 보면 6.25 당시의 임진강 전투가 직접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임진강의 물을 피로 물들였던 치열한 전투는 동족 상잔의 비극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강이기도 합니다. 민족보다 뭐 그리도 이데올로기가 중요했는지 서로를 무참하게 죽인 비극의 강, 임진강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임진강이 우리의 귀에 오르내렸습니다. 북한의 황감댐 방류로 인한 일가족 실종 때문입니다. 북한이 부족하긴 하지만 늦게나마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명하기는 했지만 임진강의 슬픔이 더 깊어지는 듯 합니다. 이제는 조용히 임진강의 강물이 굽이쳐 흐르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임진강을 노래했던 일본인 포크가수 가즈히코가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나즈막한 감정의 골로 슬픔이 흘러지나 가더군요. 영화 <박치기>를 좋아했고, 노래 <임진강>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임진강>은 북한의 노래입니다. 이 임진강은 1960년대 가즈히코가 리더 싱어로 있더 포크 트리오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Thf folk crusaders) >가 리바이벌을 해 일본내에서 부르기 시작했으나, 곧 금지곡이 됩니다. 판권과 관련한 조총련의 항의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의 가슴 아픈 현실을 증언하고 있는 노래<임진강>을  부른 가토 가즈히코의 자살은 다시 한 번 임진강을 떠오르게 합니다. 가토 가즈히코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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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웃음 2009.10.23 2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박치기를 보고 제작자가 제일동포라곤 하지만
    일본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깜짝 놀랐더랬죠.
    가토 가즈히코의 명복을 빕니다.

  2. Something4u™ 2009.10.29 1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임진강 노래는 참 좋던데...

  3. win 2009.12.25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가 들립니다..박치기가 생각나서 검색하던중에...자살이라니...무슨일인지....명복을빕니다...




김태희, 이병헌의 베드신 그 수위가 어땠길래?




영화의 베드신과 TV 드라마의 베드신 수위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TV드라마의 베드신 수위가 영화에 비해 훨씬 낮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사실 작품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그 적용 수위가 달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드라마와 영화는 그리 다른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위를 결정짓는 것은 작품 외적인 이유 때문이다. 즉, 안방과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차이 때문이다. 이 공간의 차이가 베드신의 수위 차이를 결정 짓는다. 안방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신성한 공간이다. 가족이 상주하는 공간이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하는 공간이다.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안방에 대한 이러한 인식도 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구식의 주거 형태가 정착하면서 안방보다는 거실이 중요한 공간이 되고 가정= 안방이라는 등식이 깨어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TV드라마는 안방의 전유물이며 가족이 함께 보는 상징처럼 되어있다. 영화 채널이나 외화 채널에서 솟아져 나오는 베드신은 노골적인 수위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안방의 TV드라마에서 베드신과 정사신과 섹스신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터부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김태희와 이병헌이 베드신을 연출했다고 한다. 첫 회부터 키스신과 발목 애무신이 있었고 이어서 프렌치 키스와 베드신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항로를 이어가고 있다. 애정의 정도를 표현하다보면 부득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베드신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고 편집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나 연출가의 입장에서는 이런 편집이 예술성을 망치는 것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당한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예술성을 강조한답시고 또는 흥행 수입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안방의 TV드라마에서 노골적인(?) 베드신을 노출하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러한 조치가 정당하다는 판단이 든다. 안방의 TV드라마의 경우는 예술성이나 상업성과 함께 공공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성이라고 해서 뭐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대에 가족용으로 자라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에는 몇 가지 성찰의 문제가 따른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의 결속이나 가정의 분위기가 진보적이어야 하는가, 또는 보수적이어야 하는 가의 문제가 그렇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진보적이어야 하는가, 보수적이어야 하는가? 예를들면, 부모 자식간의 위계적인 권위의 관계가 바람직한지, 아니면 평등에 입각한 친구같은 관계가 바람직한 지는 개인들의 태도와 가치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그 기본적인 선은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 기본적인 선이란 부모의 권위와 자식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서구적인 사고나 생활방식이 침범하지 말아야 하는 마지노선이라고 본다. 부모의 어께위에 자식이 손을 올리면 어깨동무를 하는 식 말이다. 부모 앞에서 애인과 진한 사랑의 키스 같은 것을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 선이 무너지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의미에서 그 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프레임은 보수적인 성격이 강해야 한다고 본다. 진정성과 진실성이 있다면 보수고 진보고 나쁜 것이 결코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보수도 진보도 아니면서 이런 단어로 장식하는 거시 문제가 아닐까? 만약 이런 최소한의 보수성(전통) 마저 무너진다면 가정과 가족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예를들다 보니 이 지경에까지 오고 말았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091022121030128e1&linkid=4&newssetid=1352


김태희와 이병헌의 베드신의 수위가 어떠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면 그 수위가 TV 드라마용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보는 TV 드라마는 극장용 영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옷을 벗고 있고, 섹스의 체위까지 진행되는 장면들이 안방의 TV 드라마에까지 내보내려고 했는지는 쉽게 납득히 가지 않는다, 아마도 TV 영화나 그외 다소 노골적인 프로그램의 추세에 편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베드신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잘 했다고 판단한다.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보수적이어야 좋을 때가 있는 반면에 진보적이어야 좋을 때도 있다. 이 둘을 뒤섞어 놓을 때가 좋을때도 있다. 무너지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무너뜨리는 것이 바람직 할 때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너져서는 안되는 때도 있고, 무너뜨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번의 <아이리스> 베드신이 바로 이런 때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안방의 TV 드라마는 여전히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이므로. 베드신을 보려면 영화관이나 늦은 밤 TV의 영화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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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요 2009.10.26 0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 앞에서 애인과 키스를 하는것이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테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그 선, 문화적 마지노선 이라는건 누가 결정하는걸까요?

    결국 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됩니다. 부모앞에서 애인과의 키스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 문화적 마지노선은 더이상 그자리에 있지 않겠지요.

    문화에 있어서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문화란 단지 여러 사회 요소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니까요.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아이들이 섹스신을 보면 안돼 라는 것도 하나의 문화적 마지노 선이겠지요. 그러나 앞 댓글에 쓴것처럼 아이들은 섹스신을 보면 안되는걸까요? 저는 이 마지노선이 더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3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게 현실입니다. 아시다시피 포르노는 매우 왜곡된 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그 이전에, 예를 들어 10살때, 부모님과 아이리스를 보다가 베드신을 보고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올바른 성과 섹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할 기회가 있었다면 포르노에 의해 왜곡된 성의식을 가질 확률은 확실히 줄어들겠지요.

    제 말투가 좀 주제넘어 보일수 있다는 걸 압니다만 이런 쪽으로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것 같아 써봅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가 없어 홈페이지 주소를 적지 못하는 것에 양해부탁드립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0.26 1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화가 상대적인 것에 동의하신다면 한 번쯤은 우리가 너무 서구 일변도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지 이런 부분도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네요^^
      아무튼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2. 경계선 2010.12.28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구의 옳지못한 영상물을 좋은예절과 문화를가졌던 우리나라에게 맹목적으로 모방하라 하는것은 소에게 개밥을 먹이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예절이나 성문화가 현저히 저질이 되어있다 생각하는 저는

    페미니즘이나 성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진보란것이 존재하지 말아야한다 생각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14회를 맞았습니다. 2009년 10월 8일~10월 16일까지 진행됩니다. 연륜이 늘어갈 수록 양과 질에 있어서 더욱 성장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려 70개 국가에서 355편의 영화들이 소개됩니다. 이에 더해 월드프리미어와 international 프리미어를 합쳐 144편이 상연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납니다.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영화산업이 함께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경제적인 이익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꿈과 감동과 사랑의 공유, 그리고 소통의 한마당이 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부산 국제영화가 바로 이렇게 어우리지는 한마당으로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잇는 가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곁에 부산국제영화제가 함께 한다는 것이 즐겁고 기쁩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행사를 찍은 것입니다. 비록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열기와 분위기를 함게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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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ummer 2009.10.08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트 잘보고 갑니다.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되서 못가고 있는데 사진으로나마 잘보고 갑니다^^

  2. 소이나는 2009.10.08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이 북적북적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제이네요,
    아까 뉴스보니 기자만 천명이 넘게 왔다고 하던데. ㅎㅎ
    점차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는 것 같아서 괜히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3. 루트비히 2010.09.05 2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대구에 살땐 부산에 참 자주 내려갔는데..
    서울에 살다보니 너무 멀어서 갈 시간이 없네요.
    부산에 관한 리뷰가 많은걸 보니 부산에 사시는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