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아공 월드컵과 거대한 동물원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golawnet/I9pl/1?docid=aYxa|I9pl|1|20091010215957


아프리카를 거대한 동물원이라고 하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동물이냐고 말이다. 아프리카가 동물원이란 소리가 아니라
동물원 취급을 당해왔다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이다. 아프리카는 동물들에게는 동물원이 아니라 일종의 천국과 같은 곳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황폐해진 초원 위에서 동물들도 쓰러져 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지구상에서 동물들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곳이 아프리카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 지옥이 있다면 그곳은 아프리카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인간이 아니라 동물원의 우리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동물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이 많다. 기아와 질병과 죽음, 전쟁과 내전 등이 인간을 비극적인 삶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한 현실이다. 장 지글러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어보면 서구의 시각에 가려진 적나라한 아프리카의 비참한 실상과 접할 수 있다. 아프리카는 왜 이런 현실이 되었을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아프리카가 이러한 참상에 직면한 것은 유럽국가들의 탓이 크다. 아프리카가 너무 먼 대륙이라 별 관심을 가지고 살아오지 못했다. 관심을 가져 본들 겨우 유니세프 성금 정도이다. 이것마저도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는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갔다.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우리 사이에 놓여있는 실존적인 현실은 유행가 가사 하나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억 속에서만 잊혀져 있을 뿐 아프리카의 비극과 불행은 그대로 우리의 곁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28y6m/8n57/381?docid=1BBqK|8n57|381|20081022230715



유럽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자주 소개가 되고 있는 까닭에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런던은 영국의 수도이다. 노르웨이는 북유럽의 복지 국가이다. 프랑스의 파리에는 루부르 박물관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블로그를 한 번 쓱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하면 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우리와 비슷한 거리에 있음에도 유럽은 속속들이 알면서 아프리카는 그저 검은 대륙으로만 기억한다. 검은 대륙, 세계화의 시대에 너무나도 걸맞지 않는 표현이다.

그런데 유럽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안면서도 유럽이 아프리카에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는 아프리카의 비극을 잊고 살듯이 거의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 단적인 예가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보상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유럽의 흑인 착취에 대한 보상은 과연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수많은 흑인들의 노예장사를 한 유럽이 아프리카 국가에 어떤 보상을 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미국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그토록 많이 학살해 놓고 보상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착취한 것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죄악이다. 히틀러만 악마가 아니다. 이 아프리카에 대한 죄악에 대해 진정한 반성이 없다면 유럽 전체가 악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 스페인, 포루투갈 등 제국주의 식민지를 경영한 유럽의 국가들이 더욱 그렇다.
 

이미지 출처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70620200707732


어쩌면 유럽은 아프리카가 이대로 남아있기를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아프리카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의식이 깨어나면 깨어날수록 그들 과거의 악마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라면 아프리카는 기아와 빈곤에 허덕여야 하고 전쟁과 내란으로 참혹한 상태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치부도 그대로 덮어 둘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과거의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독일이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에 대한 보상과 집시들의 학살에 대한 보상을 비교해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은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미국의 지원을 등에 입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유대인 학살에 대한 보상 요구와 학살 범죄자에 대한 집요한 복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국가라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 집시들은 독일로부터 미미한 보상만을 받았을 뿐이다. 아프리카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유럽인들은 어쩌면 실제로 아프리카를 거대한 동물원 취급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들의 휴가를 위해, 여행을 위해, 쾌락을 위해 찾는 동물원 같은 존재로 말이다. 아프리카는 그저 그렇게 남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원주민들이 죽어가던 말던 그들은 그 불행 위에서 안락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심지어 경쟁을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간주하는 극단적인 자본주의자들은 아프리카의 실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진화론상 도태될 수 있다는 논리와 마찬가지이다. 지구 인구의 균형을 위해서 아프리카의 인구 감소를 긍정적으로 보는 인간들도 있다. 참으로 인간들은 무섭다.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12pmamhappy/7387955



이제 2010년에 남아공 월드컵이 열린다. 아프리카에서는 선진적인 국가이다. 흑인 인권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의 나라이기도 하다. 정말 자랑스러운 나라이다.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어느 유럽의 백인 국가보다도 자랑스러운 국가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국가이다. 넬슨 만델라는 유대인식으로 범죄자를 복수하지 않았다. 그는 백인들을 용서했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의 생각이며 태도인가? 물론 아프리카 자체의 문제도 클 것이다. 어지럽게 늘려있는 아프리카의 문제들이 정말 가슴 아프다. 불행은 왜 이렇게 겹쳐서 나는 것일까? 아프리카여 왜 이토록 이렇게 불행한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계기로 남아공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도약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가 우리에게는 유일하게 하나 남은 자연의 땅이며 미래의 희망이란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영화 <2012> 처럼 아프리카가 인류에게 희망의 대륙이 되었으면 한다. 유럽과 미국은 지난날의 죄악을 반성하는 차원에서라도 진정으로 아프리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미국에 과거의 피해 보상을 요구할 힘과 결집력이 없다. 내란과 전쟁과 기아와 질병으로 허덕이는 국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은 이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면서, 더 나아가 자원만 빼먹으려는 간악한 짓을 버리고 진정으로 자신들이 자행한 과거의 야만적인 짓들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바위에 계란치기에 불과할까?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에게 아프리카의 비극은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월드컵을 통해서 아프리카가 우리의 관심에서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전세계인의 관심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프리카가 일본보다도 더 가까운 우리의 이웃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부터라도 아프리카를 알아나가는 노력을 해야겠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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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디아나밥스 2009.12.08 1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끊이지 않는 내란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저도 이번 월드컵으로 아프리카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면
    합니다.^^

  2. 바람처럼~ 2009.12.08 2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스포일러를 읽게 되었네요
    2012 아직 안 봤는데 -_-;;;;
    언젠가 아프리카도 꼭 여행해보고 싶습니다~
    동남아도 사실 서구 열강에 의해 침략을 많이 당했지요
    일본에도 당했고요
    캄보디아도 프랑스 식민지였고, 베트남도 그랬고, 라오스는 어디였더라...
    그리고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였죠
    유일하게 동남아에서 식민지가 아니었던 곳은 태국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태국은 서구 열강의 침략에서 이겨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더라구요~
    저도 여행하다가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2.09 2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차~~스포일러가 된다고 생각지도 못했네요;;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도 아프리카 처럼 서구 열강의 식민자로 고통을 당했지요. 그래도 아시아는 아프리카에 비해서는 다소 상황이 나은 것 같아요. 하루 발리 아프리카에서 불행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3. 소이나는 2009.12.08 2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도를 보니 프랑스의 횡단정책과 영국의 종단정책이 눈에 확띄는 군요.
    월드컵을 계기로 아프리카가 무언가 변하는 시발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4. 이슈팟 2009.12.08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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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느릿느릿느릿 2009.12.09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우리 세대에서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래에는 달라졌음 좋겠지만요.^^;


벌처(Vulture)

티벳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티벳 불교, 달라이 라마, 포탈라궁, 자연 등이 떠오를 것 입니다. 또 조장이 떠오르겠지요. 조장이란 사람의 죽은 시신을 새들에게 먹이감으로 던져주는 장례를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Sky burial이라고 합니다. 이 Sky burial의 기원은 종교적인 영향과 자연적인 조건이 합쳐져 만들어 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조장에서 시신을 뜯어먹는 새는 벌쳐(vulture)입니다. 벌쳐는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이름이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티벳의 벌처는 사람 고기를 먹는 독수리입니다.  이걸 티벳인들은 보시라고 합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영혼이 빠져나가고 남은  텅빈 시신은 벌처의 생명을 지탱하는 영양분이 됩니다. 또한 영혼이 빠져나간 시신은 벌처의 육신에 흡수되고 벨처의 육신에 깃든 영혼을 유지하는 영양분이 됩니다. 인간의 시신을 포식하는 티벳의 벌쳐들은 자유롭습니다. 티벳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다닙니다.  이 벌처들이 새끼를 낳을 수 있게 하며 날아다닐 수 있게 하며, 짝짓기를 할 수 있게 합니다. 인간은 죽어 벌처의 생로병사에 관여합니다.
 
우리는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먹이사슬의 제일 위에 위치하는 인간은 다른 동물을 먹습니다. 인간을 먹는 동물들은 없습니다. 물론 무덤속에서 수 많은 벌레들에 의해 흙 속으로 사라지긴 합니다만, 그것은 일상속에서 우리의 눈에서 확인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동물들에 의해 뜯겨 먹이로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사서 먹는 것이 결코 인간들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사 이전 인간이 사나운 맹수들 보다 약한 존재였을 때는 먹이감이 되곤 했을 것입니다. 많은 인간들이 비참하게 잡아 먹혔을 것입니다. 또 그것이 생물계를 유지하는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즉, 먹이 사슬의 제일 위에 위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육고기나 생선을 당연히 음식으로 섭취하듯이 그 당시에는 인간이 맹수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먹이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이 발전하면서 먹이 사슬의 제일 위에 위치하게 되고 마침내 인간은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경우는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운명이 역전이 되어 다른 동물들을 식용하게 되었습니다.


주의
  아래의 사진은 아이들인 경우 어른들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티벳에서는 비록 시신이긴 하지만 인간이 벌처보다 그 먹이 사슬의 아래에 있습니다. 그것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벌처들에게 던져집니다. 이것은 불교의 윤회관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풍습입니다. 인간의 죽음이란 영혼이 육신의 구속을 벗어나는 것이기에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은 뱀의 허물처럼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티벳의 자연이 돌이 많아 척박해 무덤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의미든, 자연 조건이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벌처에게 죽은 자의 시신을 던져주는 것은 벌처들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티벳의 벌처들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벌처들과 함께 살아가는 티벳인들은 항상 죽은 자의 육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벌처는 죽은자들의 무덤인 셈입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혐오스러울 수 있지만 불교라는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벌처를 살리는 선행이 되는 것입니다. 필요없는 육신을 벌처에게 던져주고 벌처를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팃벳의 이 조장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은 수 많은 동물들의 고기를 먹으며 생존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먹이 사슬의 최고점에서 수 많은 고기들을 먹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도 인간을 위해 인위적으로 도살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살되는 동물들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필요없이 많은 동물들을 죽이고, 그 남은 고기들은 또 필요없이 버려집니다. 만약 인간들이 이렇게 버려진다면 어떻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동물들을 사육하고 도살하는 인간들은 그 고기를 굶어 죽어가는 인간들 스스로에게 던져주지 않습니다. 한 쪽에서는 필요 이상의 고기를 소비해 인간들이 비만이 되고, 남은 고기들은 쓰레기로 버려지는데, 지구의 한 켠에서는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인간들은 같은 인간들에게는 고기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요? 이것은 인간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보시를 위해 던져지는 인간들의 시신과 그것을 먹고 사는 벌처, 그리고 인간 스스로 동물들을 도살하고 식용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인간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이 상반된 삶의 방식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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