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1.07 덕만과 춘추 vs 김대중, 김영삼 (4)
  2. 2009.11.07 이제 미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나? (8)
  3. 2009.08.18 우리 민족을 말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47, 48회의 미실의 정변을 보면서 12.12 군사 쿠테타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역사는 반복한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포스트를 하나 올린게 바로
이제 미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나? 이다. 그리고 잠깐 언급을 했지만 미실의 정변이 실패하는 최대의 요인이 바로 '춘추와 덕만의 화합' 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미실의 정변에 대해 덕만과 춘추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르게 움직였다면 미실의 정변은 분명 성공했으리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춘추의 입장에서는 분명 미실의 힘을 빌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춘추는 오히려 권력에 당장 욕심을 내지않고 덕만을 돕기로 함으로서 힘을 모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을 차지하는 것도 물이 흐르는 것처럼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1980년의 봄 대한민국에 민주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1979년 박정희가 서거하면서 권력의 공백기가 생기면서 민주화의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전두환을 비롯한 군부 세력이 이 틈을 헤집고 들어와 쿠테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이 쿠테타의 이면에는 마치 선덕여왕의 덕만과 춘추처럼 화함하지 못한 김대중, 김영삼이라는 재야 투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항상 협력하면서 동지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든 두 김씨가 서로 그 틀을 깨면서 권력을 위한 경쟁자로 나선 것이다. 이것이 12.12 쿠테타의 빌미가 되면서 민주화의 큰 물줄기가 다시 역류하고 만 것이다. 

12.12 쿠테타의 연장 선상에서 전두환이 물러나고 1987년 6.29선언으로 직전제 개헌이 되면서 민주주의가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1980년의 봄 처럼 김대중, 김영삼 두 김씨는 다시 한번 화합을 하지 못하고 대통령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권력을 12.12 쿠테타 주역의 한 사람인 노태우에게 내주고 만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 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김씨의 권력욕 때문에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버 더 뒷걸음치고 만 것이다. 


이후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는 번갈아 가며 대통령이 되었다. 인간의 권력욕이 얼마나 질기고 모진 것인지 알 수 있다.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염원보다도 그들에게 권력욕이 더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력을 차지 한다는 것이 물처럼 흐르는  순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들은 덕만과 춘추처럼 협력과 화합을 했을 것이고 훨씬 앞서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인데 말이다. 역사란 지나놓고 보면 그 속에서 행한 인간의 행위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알게 된다.  

만약 덕만과 춘추가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처럼 권력에만 눈이 멀어 서로 경쟁의 관계로 들어섰다면 미실의 정변은 12.12 쿠테타 처럼 성공했을 것이다. 단언컨데 춘추는 잠재적인 왕위 경쟁자인 덕만의 편에 서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권력을 지배하고 있던 미실의 편에 섰을 가능성이 더  높다. 즉, 미실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권력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춘추는 미실의 편에 서지않고 덕만의 편에 섰다. 마치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가 화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덕만과 춘추가 손을 함께 합친 것이다.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가 노태우씨 이후에 번갈아가며 대통령이 되었듯이 덕만 공주 이후 춘추의 시대가 다가올 수 있는 화합이었던 셈이다 이와는 달리 김대중과 김영삼이 오랜 민주화 투쟁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가 민주화를 더 후퇴시키고 말았다.


우리가 단순히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를 통해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교훈을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선덕여왕>이 단순히 드라마이지만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면에서 참으로 고무적이다. 만약 덕만과 추춘가 화합하지 못했더라면 미실은 정변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화합과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의 교훈으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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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핫스터프™ 2009.11.07 2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역사는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하지만,
    여러관계가 얽히고 설킨 상황에서는 예측이 참 힘든것이 현실이죠.
    선덕여왕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곤 합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1.07 2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 자체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선덕여왕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선덕여왕도 작가의 해석에 의한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2. 탐진강 2009.11.08 13: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친일파 반역자의 역사는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제 미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나?




이제 미실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선덕여왕> 재방송을 따라가며 나는 이제서야 48회을 보았다. 미실이 활을 겨누고 덕만이 두 팔을 벌려 미실에게 맞서는 장면으로 끝나는 48회는 극의 분기점이 되는 장면이기도 했다. 패자와 승자의 분기점. 미실의 정변이 실패하고 미실의 최후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비록 극중에서이지만 미실이 대단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 치면 군사 집단과 그 추종집단이 형성한 권력욕에 어두운 집단의 수장이지만 그래도 미실은 오늘날 독재자들과는 다른 품위가 느껴진다. 언제나 대의를 따랐고 자신이 한 약속은 항상 지키는 신의와 신뢰를 가진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극중에서도 화랑의 입을 통해 미실의 인품과 자질이 신뢰할 수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이 믿음과 신뢰가 48회로 이어지는 미실의 정변으로 완전히 무너지긴 하지만 말이다. 미실이 망가졌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실의 운명에 대해서 알 수는 없다. 자살을  한다는 말이 있지만 확인할 수 없다. 만약 제작자가 미실과 아쉬운 작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다면 미실의 추락을 좀 더 세부적으로 그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미실은 49회에서 당장 작별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실이 어떻게 <선덕여왕>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지 참 흥미진진하다.



48회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12.12 쿠테타였다.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오버랩이 되었다. 미실의 모습이나 그녀 주위의 음모의 세력들이 12.12 쿠테타의 주역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특히 진평왕이 당시의 무기력했던 최규하 대통령을 연상시켰다. 쿠테타 세력에 의해서 허수아비로 전락하면서 대통령이라는 허울만 가졌던 불운의 대통령 최규하. 그러한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서슬 퍼른 군부 쿠테타 세력의 살기는 그야말로 잔혹했기에 말이다. 그러나 진평왕을 잇는 선덕이나 춘추를 보면서 새로운 세력을 보았다.


이런 점에서 다시 12.12 쿠테타를 잠시 생각해 보면  당시 우리에게도 선덕이나 춘추같은 세력이 있었다. 바로 김대중과 김영삼이었다. 이들이 만약 덕만과 춘추가 화합했듯이 서로 화합할 수만 있었다만 구테타 세력은 전두환에서 종결을 보았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좀 더 일직 꽃피웠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양김씨는 대통령 단일화를 실패하면서 쿠테타 세력이 재집권하고 말았던 것이다. 참 감회가 새롭다. 권력욕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죽음을 무릅써고 투쟁한 양김씨가 권력을 위해 민주화를 후퇴시켜 버린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역사가 무엇으로 기록할지 두고 볼 일이다.

극중에서 미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은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이다. 극의 전개상으로도 그렇고, 고현정의 연기력으로도 그렇다. 선덕여왕의 인기는 미실, 즉 고현정의 연기력에 힘 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을 위한 미련과 내용에 대한 미련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드라마를 위한 미련은 정말 아쉽지만 극의 내용상으로 볼 때는 미실은 잔인하게 사라져 주어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가 역사적인 교훈, 즉 역사를 통해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또한 역사로 부터 무언가를 배우도록 하고 싶다면 미실은 잔인하게 죽으면 죽을 수록 좋다. 만약 미실이 살아남아 다시 권력 집단을 형성하려고 한다거나, 심지어 자신이 권력을 재차 잡으려고  하려 한다면, 그러한 시도가 잔인한 종말로 끝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으면 한다. 드라마이기에 이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렇게 하려면 선덕여왕은 더욱 더 늘어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드라마와는 달리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직 미실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리라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수천억의 벌금형을 받고도 전재산이 단돈 29만원이라고 하며 구차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12.12 쿠테타 주역중에 주역이다. 미실이 현대의 독재자들과는 달리 실패한 정변가 탓에 몰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지만 성공했더라면 존경받는 여왕의 자라에도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여겨질 정도다.

만약 미실이 정변에 성공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상이지만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역사적인 가장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48회를 보면서 생각한 것들을 두서 없이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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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쿠쿠양 2009.11.07 1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보면 참 반복되는 것도 많고. 배울것도 많은것같아요^^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것이겠지요~

  2. 감자꿈 2009.11.07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작진의 말로는 꽃보다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미실을 보내는 마음이 안타까워요.
    더 이상 고현정의 카리스마를 볼 수 없다는 슬픔이...T.T

  3. 유머조아 2009.11.07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현정의 카리스마,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4. 홍콩달팽맘 2009.11.07 2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 죽으면 왠지 긴장감이 늦춰질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깝게 보고 있어요.
    곧 최후를 맞겠군요.



우리 민족을 말한다





이 포스트의 제목은 제가 단 제목이 아닙니다. 이 제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저서 <나의 길 나의 사상> 중 실려있는 강만길 교수와 나눈 대담의 제목입니다. 너무나도 거창해서 확고한 사상이나 지적 토대가 없이는 다룰 수 없는 주제입니다. 이 대담을 읽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저 정치인이 아니라 광범위한 지식을 갖춘 지성인이며 사상가임에 놀라게 됩니다. 그 분의 굵직굵직하고 사고의 폭에 매료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추상적이고 정치적인 수사에 입각해 있는 생각들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있는 데 탄복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의 길 나의 사상>, 이 책을 읽은 후 그 분에 대한 막연한 이해가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 분의 사고와 생각에 반대를 한다고 해도 단순히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을 그저 빨갱이로만 매도하는 것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적인 서민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 분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이 저속한 현실의 틀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때로는 답답합니다. 
 


이제 그 분은 떠났습니다. 가슴 속에 한 가득 한을 담은 채 떠나셨을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신 것도 가슴 아플 것입니다. 그 분에게 붙여졌던 온갖 저속한 언사들에 대해 이제 우리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자성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분의 호는 후광이셨습니다. 인동초처럼 온 갖 시련을 겪어오셨고 이제는 죽어서 밝은 후광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이제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들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인용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분의 참 모습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강만길: ......근대 사상가들 중에 우리의 민족문화를 대단히 신란하게 비판했던 사람이 두 사람 있었습니다. 한 분은 단재 신채호로서 우리 민족의 약점이 사대주의라고 대단히 비찬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이광수로서, 봉건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 비판들을 분석해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단재의 비판에는 우리민족의 문화창조력이나 역사창조력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을때까지 민족 해방운동전선을 떠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광수의 비판에는 패배주의가 들어 있습니다. 민족개조론도 그런 기조에서 나온 듯 싶습니다......

김대중:우리 역사를 보면 조금이라도 개혁적인 일을 하려던 사람들이 온전히 목숨을 부지한 예가 없습니다.중국, 한국,일본의 해상을 지배한 호족으로서 국정을 개혁하려고 했던 장보고는 당시 부패한 귀족의 음모에 의해서 암살당했습니다. 고구려 구토수복의 큰 뜻을 안고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려 했던 묘청도 역시 귀족들에 의해 살해 당했습니다. 노예해방과 민중에 의한 정권의 수립을 꿈꿨던 만적도 비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있으냐, 우리도 정권을 잡아서 좋은 정치를 해보자고 일어선 만적의 노예해방투쟁은 로마의 스파르타쿠스의 난 같은 것에 비교가 안됩니다. 그기에는 뚜렷한 목표와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 세계에서 보기 드문 노예해방 투쟁이었습니다.고려 말엽의 신돈은 당시 사람들로부터 성인으로까지 추앙받았던 사람이지만 참혹한 죽음을 맞았을 뿐 아니라 후세 사람들에 의해서 온갖 매도를 당해왔습니다



이 부분은 개혁적인 그 분 자신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개혁세력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인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그가 민주주의를 위해 헌한한 희생과 고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저는 절대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신봉자이지 사회주의경제의 지지자는 아닙니다. 유럽에서는 자유경제를 하면서도 노동당이건 사회주의당이건 모두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당들은 주식의 대중화를 실천하고 사회주의의 정당들이 주장하는 사회복지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정당이니 사회주의 정당이니 하는 구별이 없이 완전히 중도 통합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사회적으로는 복지를,철학적으로는 유물론과 유심론이 변증법적으로 통합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물을 이러한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뭐가 되고 안 되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당당하고 바르게 살다 죽으면 젊어서 죽건 늙어서 죽건 무엇이 되건 못되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입니다. 인간은 완전히 훌륭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훌륭하게 살다보면 올바른 길을 가게 됩니다. 저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평안합니다.   


20세기는 민주주의 승리의 역사입니다. 소련이 망한 것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하지 않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망하고 민주주를 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인용으로 판단하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단순히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인신공격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가치의 문제인 경우에는 옳고, 그름의 판단 문제가 너무나도 애매하고 모호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가치의 종합이나 변증법적 발전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러한 조화와 균형, 종합, 통일 보다는 배타와 배제와 증오를 상대에게 겨누는 후진적인 모습을 연출해왔고 아직도 연출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너무도 수탈하고 학대하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귀기울여 듣고 눈여겨보면 지구에 있는 만물들이 사람대문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귀를 쟁쟁히 찌를 것이며 그들의 처참한 모습이 우리들의 눈에 비칠 것입니다. 우리의 어머니인 지구에게 감사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깊이 이해하게 되면 자연에 대한 애정도 싹트기 마련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연은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생물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환경주의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이념 자체는 서구 사회의 창조물이지만 민주주의 이념은 서구사회의 독창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의회나 행정부 같은 민주제도는 서구사회의 창조물이지만 민주주의 이념은 서구사회의 독창물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이념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신이 인권과 자결권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자기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환경 속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그러지 못할 때는 이를 변경시킬 권리가 있는 것으로, 욕구와 주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민주주의 이념이 있는 것입니다.


(동서독) 양쪽 모두 통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통일을 지나치게 서둘러 한 데 대해서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제가 1993년 9월 동독의 마지막 총리이자 동서독의 합병 문서에 조인했던 로타르 드 메제르를 만났을 때 그는 그러한 성급한 통합을 한 데 대해서는 크게 후회하고 있었으며, 같은 기민당이면서도 오늘날 기민당의 대동독정책에 대해서는 큰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빨갱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분들에게는 왜 성급한 적화통일을 하지 않으려는지 의아해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분에게 그저 빨갱이라고만 외쳐대는 어리석은 모습을 말입니다.

근대 이후는 이성과 합리주의의 시대였습니다. 이것이 너무 지나쳐서 감성과 이미지를 과소 평가했습니다. 오늘의 신세대들이 이성과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본 대로 판단하는 피상적인 태도는 다분히 이러한 근대주의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양측 모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를 살아온 오리의 경험에서 볼 때 인간은 이성 외에 감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둘이 조화 될 때 인간의 정신은 완전한 균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합리적인 돌물이지만 이미지에 의해서 행동하는 감각적인 면도 있습니다. 이 두가지의 조화가 완전한 인간상을 만들 것입니다. 



마지막 인용문은 기성세대로서 신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달라는 강만길 교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분입니다. <나의길 나의 사상> 이 책을 읽으면서 줄 곧 가졌던 인상도 이 인용문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학다식한 합리적인 지성인인 동시에 인간의 감성주의를 중요시 하는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화의 화신, 행동하는 양심으로만 알고 있었던 저도 그 분이 얼마나 애정 깊고 감수성이 풍부한 인간임을 느꼈습니다.  



인간은 이념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념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맞지 않는, 아니 상반되고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념으로 세상과 인간들을 난도질 하는 후진적인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으면 합니다. 인간은 그의 이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습도 존재합니다. 그의 존재는 인격과 삶에서도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순간, 그것은 참으로 우리 스스로를 부정하고 타락시키는 협애한 인식인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글은 그 분에 대한 맹목적인 헌사가 아닙니다. 적어도 한 인간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자는 뜻에서 적고 있습니다.  어떻게 한 인간을, 기나긴 삶을 살아온 인간을 '빨갱이' 란 한 단어로 낙인 찍을 수 있는가 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우리를 다시 한 번 돌 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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