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같은 제목의 포스트를 올렸는데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듯 하다. 다시 되돌아 보니 필자 스스로의 생각으로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을 다소 억지스럽게 비교해 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필자의 의도는 그렇치가 않았는데 오해를 산 것 같다.

필자의 의도는 이랬다. 6.25를 맞아 6.25의 비참했던 현실을 한 번쯤 상기해 보면서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깨닫고자 했다.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도 가능하지 않았는가 하는 역사의 연속성도 언급하고 싶었다. 

그런데 댓글이 달린 것을 보니 처음의 의도와는 달라진 것 같았다. '금욕주의' '뉴라이트' 등의 단어들이 댓글에 달렸다. 이해할 만은 하다. 6.25는 사실 거의 수구세력들의 전유물처럼 되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편협된 국수주의자도 아니며, 역사의 발전 방향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아니다. 무엇보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사람이다.  또한 이념을 포스트에 담고자 하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월드컵 응원녀와 6.25의 전쟁 고아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만이 불현듯이 떠올랐기때문이다. 그래서 올린 것이 바로 이 포스트(2010/06/24 - [주절주절] - 월드컵 응원녀 vs 6.25전쟁 고아) 이다


화려한 월드컵 응원녀 사진과 낡은  흑백 사진은 참으로 대조가 된다.  이 사진들 속의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단지 그들의 모습 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환경과 삶이 그렇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만약 우리가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얼마나 비참해 질까? (이렇게 이야기 하는 필자의 말에 민족주의를 불러놓으려 한다거나 보수주의라거나 전통으로의 회귀라거나 하지는 말기 바란다) 6.25를 맞아 우리의 비극을 한 번쯤 되돌아 보고 앞으로 우리의 이래에는 이런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오늘은 6월 25일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60년이면 강산이 6번이 바뀐 세월이다. 손에 잡을 만큼 가까운 현실이 아니라 너무나도 멀어진 역사가 되었다. 역사란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겐 절박한 현실이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은 역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주는 달콤한 선물이다. 만약 역사를 우리의 삶, 현실과 단절적으로 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초등학생들에게 6.25는 단지 지나간 역사에 불과하다. 전쟁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이며 사상자라는 수치에 불과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 뿐만 아니다. 그 시절을 살지 않았던 전후 세대들 모두에게는 그저 낡은 역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6.25를 겪은 어른들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이런 경험의 차이,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할 것이다. 삶은 추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경험이다. 현실이고 경험이고 그 현실과 경험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인 오해를 불러 일으키길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행복만을 보기 때문이다. 역사의 추상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는 삶이었고 현실이었다. 그들에게 오늘날 우리의 행복은 무엇일까? 시대착오라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일까? 단순히 세대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는 우리의 행복을 앞에 놓고 지나간 불행, 절박했던 현실, 비참했던 삶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는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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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곳간 2010.06.25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 6.25지요... 저희 앞세대들이 참 힘들게 사셨을 듯해요.. 그분들의 수고.. 잊지 말아야죠^^

  2. 세민트 2010.06.25 2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걸어서 하늘까지님....
    우리 후손들은 6.25를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다 앞세대들 덕분이지요...묵념...

  3. 친절한민수씨 2010.06.25 2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요즘세대는 전쟁을 모르죠? 근데 이쁘긴 이쁘네요 ㅋ

  4. 아디오스(adios) 2010.06.26 1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이쁜 사람과 전쟁의 아픔을 비교해서 사진으로 보니...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느껴지네요

  5. .....`` 2012.06.26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고아가 몇명이나될까요?


다가오는 6월 25일은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60년이면 강산이 6번이 바뀐 세월이다. 손에 잡을 만큼 가까운 현실이 아니라 너무나도 멀어진 역사가 되었다. 역사란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겐 절박한 현실이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은 역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주는 달콤한 선물이다. 만약 역사를 우리의 삶, 현실과 단절적으로 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초등학생들에게 6.25는 단지 지나간 역사에 불과하다. 전쟁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이며 사상자라는 수치에 불과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 뿐만 아니다. 그 시절을 살지 않았던 전후 세대들 모두에게는 그저 낡은 역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6.25를 겪은 어른들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이런 경험의 차이,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할 것이다. 삶은 추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경험이다. 현실이고 경험이고 그 현실과 경험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인 오해를 불러 일으키길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행복만을 보기 때문이다. 역사의 추상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는 삶이었고 현실이었다. 그들에게 오늘날 우리의 행복은 무엇일까? 시대착오라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일까? 단순히 세대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는 우리의 행복을 앞에 놓고 지나간 불행, 절박했던 현실, 비참했던 삶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는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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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4 0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달려라꼴찌 2010.06.24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비되는 두 사진에서...
    묘한 기분이 듭니다. 무언가 씁쓸하기도 하고...

  3. 이명박 2010.06.24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라이트들아~ 국민 축제를 저질로 만들어라~ 지나친 노출녀를 등장시켜 시위나 집회문화를 저질로 만들어라~ 젊은 것들도 별 수 없어~ 노인네들처럼 6.25 전쟁문화를 부곽시켜~ ㅋㅋㅋ 그러면 스스로 자괴감을 가질 거야...헤헤헤... 지들이 당하는 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시민들...ㅋㅋㅋ
    노출? 좀 노출은 안되지...지나치게 노출시켜서 집밖에 다니는 것 자체가 범죄로 만들어버려~

  4. 이명박 2010.06.24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싸리 한국을 금욕주의로 만들어서 일본천왕님께 일본 성문화를 한국에서 수입하게 만들어~ㅋㅋㅋ

  5. 일본은 생각해 볼게 많져 2010.06.25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명박 /이건 이중 안틴가요 ;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과 태연희에 주목해야 할 이유?


<수상한 삼형제>는 가족 문제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드라마 답게 가족내의 갈등과 갈등 해소의 모습들이 봇물 터지 듯이 솟아져 나오고 있다. 모두 다가 비중있게 다둘 만한 문제들이면서도, 동시에 다 들 한 두 번쯤은 생가해 본 적이 있는 내용들이라 다 다루기도, 안다루기도 그런, 참 계륵 같은 드라마가 되고 있다. 시청률을 믿고 드라마를 연장 방송하다 보니 별 별 자잘한 이야기까지 다 터져나오고 있다. 어영이 불임이 의심되면서 시험관 아기 운운까지 나오리라 누가 예상 했겠는가? 현찰과 도우미가 결혼을 다시 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보았겠는가? 참 별쓰러운 이야기가 다 터져나오고 있다. 심지어 건강의 고물상의 난자와 경찰관의 사랑까지도 퍼질러 지고 있는 상황이니 보는 시청자들은 참 어지럽지 싶다. 그러니 수삼에 대한 뭔 글을 쓰기도 참 힘들다. 방점을 찍을 만한 주제의식이 희박해져서 말이다.
 


물론 가족 드라마로 거듭나고 있는 <수삼>이 이제서야 가족 문제를 제대로 전달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그리 부정적으로 볼 일도 아니지 싶지만 갈등을 좀 선별하고, 축약하여  드라마 전개의 통일성을 지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관계야 이리저리 얽히고 섥히곤 해서 어느 일방으로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있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는 있지만 그러다 보면 드라마 전개가 박진감이 없어지고 자칫 흥미를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의 <수삼>이 꼭 이런 시점에 직면해 있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백화점식 나열 보다는 한 두 놈만 패는 식의 집중 공략 말이다. 수삼의 주제가 크게는 가족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나아가 보면 이 문제들이 너무 전방위적으로 흩어져 있어 혼란스럽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어영의 불임 문제, 엄청난의 변화 문제, 태연희의 문제 정도는 짚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엄청난의 변화와 태연희의 문제이다.  사실 어영의 불임 문제는 별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주제 의식을 가질 만한 부분이긴 하지만, 다 큰 성인인 어영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치고 계솔이가 또 덩달아 난리를 칠만한 그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그저 이상과 어영이 조용히 해결해 가야할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제작진들이 이 어영의 불임 문제에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게 부부간의 내적 갈등의 문제이지 온 가족들이 다 알고 호들갑을 떨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선, 엄청난의 문제는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수삼>에서 엄청난 만큼 문제적 인간은 없다고 본다. 엄청난이 희극적인 인물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극적인 인물이다. 고아에, 미혼모에, 저학력에, 맏며느리라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정말 비극적인 존재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엄청난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언니>의 등장인물에 비유해 본다면 송강숙류의 인물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이 <수삼> 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그저 웃어야 할 처지는 아니라고 본다. 하행선과의 갈등에서 엄청난이 많이 변화를 했지만 아직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의 글에서 이미 언급했다(2010/05/02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변하지 않는가?)자기 성찰의 과정을 전혀 거칠 수 없는 인물로 여전히 그려지고 있다.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엄청난이 종남이의 엄마로써, 또 앞으로 태어날 쌍둥이의 엄마로써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고 싶다. 68회에서 그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다.
  

둘째는 태연희이다. 태연희의 문제는 너무 작위적인 요소가 강하다. 제작진은 악녀 태연희를 궁지로 몰아넣으며 시청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통쾌함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 같다. 태연희의 문제는 이렇게 다루어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태연희의 문제는 법과 범죄라는 측면에서 분명하게 다루어지고 그 해결책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아직 스토리가 진행중이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만약 이 태연희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만 다루어 진다면, 즉 우미와 현찰의 위장이혼 복수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아무리 드라마지만 범과 범죄, 경찰과 검찰의 역할을 망각하는 지경으로 치닫게 되고 말 것이다. 이 것만은 좀 피햇으면 한다. 


만약 태연희의 문제도 앞서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극처럼 개인이 해결하는 식이 된다면, < 수상한 삼형제>가 경찰 홍보용 이니 하는 비아냥 같은 글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경찰 홍보라기 보다는 경찰을 무능력하고 비현실적인 집단으로 전락시켜 놓고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진다(2010/05/31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통쾌한 복수극은 경찰과 검찰의 무능력의 결과?) 이번 만큼은 경찰이나 검찰이 제대로 서서 태연희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 이태백 검사도 있고, 아예 경찰 가족이 나오는 이런 드라마에서 법이, 검찰이, 경찰이 무능력해서 비록 악녀이긴 하지만 태연희가 억울한 피해를 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엄청난이란 이 비극적인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태연희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지 <수삼> 제작진들이 신중하게 결정해 나아가야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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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옥이(김진옥) 2010.06.07 0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사람을 통해 생각하는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건뚱이 2010.06.07 1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삼팬인데.. 매번 잘읽고 갑니다. ^^

  3. 막장 2010.06.07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욕하면서 본다는 그 드라마?
    막장에 대를 잇는 그 드라마?
    대한민국 드라마의 하향평준화에 기여한 그 드라마?
    막장에도 급이 있단소린가?
    드라마에 이런 포스트들이 달리니 막장이든 뭐든 시청률만
    오른다면....관심만 갖어준다면....하니...막장이 판을 치지..ㅉㅉㅉㅉㅉ

  4. 수삼팬 2010.06.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을 적어놓으셨네요.
    글 다 쓰시고 맞춤법 한번만 확인해 보시죠.
    틀린 곳이 너무 많네요.

  5. 사랑이면 2010.06.07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했다면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이중 연희는 사랑을 복수로 갚으니까 끝이 저런거일거라는..
    사랑이 꼭 이루어지진않죠..관계가 인연이 아니라면 사랑했으니까 놓아줄줄도 알아야하는데 욕심을 부린탓에
    벌을 받는거에요.. 만약 연희가 도중에 그만 둿더라면 재미는 없겠죠.. 가정을 가진 사람과에 사랑은 그래서 죄인건가봐요.
    그래두 남자들은 늘 이익 이라는거 그건 시대가 변해도 똑같은거 같아요..상처받는건 여자쪽이라는.. 늘 드라마는 가정을 깨면 죄인이고 가정을 지키게하죠..전에 아침드라마 있을때 잘해 는 그 들을 독하게 벗어나서 서로행복해지는 과정이라서
    인기가 있었던거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때 젤 행복하다는거 아시는지..ㅠㅠ

    • 수삼드라마잼있다 2010.06.07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사랑하는 사람과는 무엇을하든, 어디를 가든,무엇을 먹든,함께 할수 있다는것이 즐겁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세요^^

  6. 에듀앤스토리 2010.06.07 1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들이 살벌하네요...

  7. 수삼드라마잼있다 2010.06.07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 쓰신분 앞으론 이런글 쓰지마세요
    영화는 영화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입니다. 사실 요즘 드라마 볼것 없어요. 그나마 기다리는 드라마인데 재미있으면 됐습니다. 이글 쓰신분은 무슨 불만입니까? 그냥 즐겁게 보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오래 오래 길~~게 끌게 놔두세요
    부탁입니다.

  8. 불임향단 2010.06.07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의 주인이 남자인지 아님 기혼이신지 미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어영의 불임이 대수롭지 않다고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된다고... 이렇게 쓰신건 이런일을 당해보지 못하신 분인것 같네요~~
    어영이처럼 불임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솔직히 드라마에서처럼 온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해 당사자만 속앓이에 죄인처럼 지내야 합니다. 보통 남자들이 계속되는 인공수정에 지쳐 짜증내고 결국 부부가 이혼에까지 이르게 되죠!!
    근데 드라마에서처럼만 해준다면 당사자들이 힘을 얻고 좋은 환경속에서 임신에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맘으로 드라마의 어영이를 부러워 합니다. 당해보지 않았다고 쉽게 말씀 하시는것 같아 섭섭한 맘에 횡설수설 올려봅니다

  9. 태연희설정 2010.06.07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작위적이야ㅡㅡ;; SBS방송 긴급구조SOS를 보는 기분이었음ㅋㅋㅋ
    난 그냥..이런 막장 드라마가 싫어..
    근데..현재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이니 신경끊고 싶어도 눈에 띄네요~
    이런 드라마 좋다고~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난 개인적으로 짜증나던데 재미있어한다는게 좀 신기~)
    여튼..그러면서..드라마 제대로 만들어라고 소리치는 시청자들이 조금 웃길뿐ㅋㅋ
    막상 자극적인 소재가 없는 드라마 등장하면 지겹다고 안보면서ㅎ

  10. 동감 2010.06.07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불임향단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글쓴이 나이가 어떻게되고 성별이 어떻게 되는진 모르겠지만 둘이서 해결해야할 문제라니 참 어이가 없군요
    네, 물론 둘이서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주위에 도움도 절실히 필요한 문제입니다.
    왜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아이때문에 이혼을 할까요? 여성에게 임신은 매우 중요한겁니다.
    결혼에서 두사람의 결실.아이또한 중요한 부분이구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마치 자신만이 옳고 당연하다는 양.. 웃깁니다.

    어영의 불임을 울고불고 난리치고, 계솔이 난리칠만한일이 아니라니.. 참 기가막히네요.
    생각이라는걸 좀더 해보심이 어떨지요?

    이 드라마에 팬도 아니고 미혼여성이지만 이 문단에서 참 기가 막혀 글 남깁니다.

  11. 서민이쓴 한마디 2010.06.07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같은 서민이 보기에는 동감대가 많아서 참 요즘 수삼 너무 잼나게 보고있는데~~
    수삼 작가분 상이라두 줘야할듯~~
    글쓰신분은 너무 인간미가 떨어지시는듯~~쯧쯧
    저같은 서민이 보기엔 수삼 500회까지 해두 잼나게 볼듯~~ 전원일기 보는것 같은 기분 ^^

  12. 저도 동감 2010.06.07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임향단님 말씀에 동감하여 글씁니다.
    글쓰신분의 생각에 개인적인 생각이니 머라고 욕하는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 개인저인 생각은 불임의 문제는 둘만의 문제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봅니다.
    불임이 둘만의 문제라면 왜 시댁에서 아이를 임신을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며느리에게 눈총을 주거나
    부부가 이혼을 하게되거나 심지어 대리모까지 쓸까요..?
    아이라는 존재는 부부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불임도 어떻게보면 가족들이 함께 풀어나가거나,
    도움을주고 힘을 주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불임으로 온식구가 호들갑떤다는식의 글은 좀 아니라고 생각이 드네요.

  13. 너무 막장이라고들 하시네요 2010.06.07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들 보니 막장 막장하시면서 쓰레기 취급하시는데 그냥 보기 좋던데요. 처음 캐릭터들이나 사건들이 과장된 면이 많이 있긴 했지만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풍자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소중함을 부각하며 마무리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그렇게 막장으로만 몰아들가시는지??



수삼, 하행선이 떠난 이후 엄청난의 숙제는?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에 있어서 엄청난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등장인물도 없다. 엄청난의 출생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건데 부모를 일찍 여윈 고아이거나 미혼모의 버려진 아이인지도 모른다. 엄청난이 미혼모로 자신의 아이인 종남에게 엄청나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 애정 결핍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아에, 미혼모라는 삶은 우리 사회에서는 살아가기가 힘들 정도로 냉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신분의 벽이 없다고 하지만 고아이며 미혼모인 엄청난이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에게 하행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 않았다. 그녀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종남을 양육해야 하는 미혼모로 더 극한 고통이 더해졌을 뿐이다. 자식을 돌 볼 능력도 없고, 가정을 꾸릴 능력은 더더구나 없었을 하행선이 엄청난에게 사랑을 보여주었을리도 만무하다.
   


이런 신산한 삶을 살아 온 엄청난에게 건강은 어떤 존재인가? 엄청난이 건강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은 건강이가 돈이 많아서도, 얼굴이 잘 생겨서도 아니다. 오직 사랑이고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이다. 엄청난은 철없던 시절 박력 넘치는 사내 하행선에게 한 번에 '뿅' 간 것이 얼마나 큰 실수 인지를 뼈속 깊이 깨닫고 있다. 그 어떤 것보다 미혼모가 되어버린 엄청난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일종의 화두가 되었을 것이다. 사내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별 잘 생기지도 못하고, 돈도, 능력도 없지만 오직 순수하고 진실한 건강을 자신의 남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엄청난에게 하행선은 떠났다. 그녀의 곁에는 건강이 있다. 종남의 아빠이자 자신의 남편인 건강이 있다. 엄청난에겐 어느 순간 보다도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건강이 있고, 건강하게 자라는 종남이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은 진심으로 감격에 겨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사실, 엄청난은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녀를 짓누르던 하행선이란 존재도 사라졌다.
 


그러나 엄청난에게 하행선이 떠난 것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 된 것은 아니다. 엄청난의 삶에서 하행선 떠난 이후의 삶이야 말로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꾸리고, 시부모가 생기고, 서방들이 생기고, 동서들이 생긴 것이다. 한마디로 고아인 엄청난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생긴 것이다.(이와 관련해서는 엄청난의 시어머니인 전과자의 역할은 누구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전과자는 비록 자신이 시어머니라는 위치에 있지만 엄청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과자에게 이러한 것을 바라기는 요원한 실정이다.) 따라서 엄청난은 며느리, 형님 등 가족으로 확대된 역할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글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서, 몇 일전 필자는 엄청난이 좀 더 분방해야 된다는 뜻에서 아침라면 (2010/04/11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삼, 맏며느리가 끓인 아침라면 문제가 뭐길래?)에 대해 언급하면서 엄청난이 좀 더 잘 해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한 적이 있다. 이 포스트로 필자는 '엄청난'(?)  비난의 댓글을 감수해야 했다.

 


근데 사실 그건 오해다. 엄청난이 맏며느리로서 시댁 살림을 도맡아 해야 된다는 소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완전히 등한시 해왔던 가족 내의 자신을 역할을 좀금씩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하는 정도였다. 오해를 풀면 좋겠다. 


아무튼 다시 이전의 글 흐름으로 돌아와서, 엄청난이 처한 가장 급박했던 하행선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가족 내의 역할을 좀 더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건강과 자신의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볼 때 어쩌면 가족내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가족을 내팽개 칠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의 변화가 이왕 마음 깊숙이에서 일어났다면 시부모, 시동생들, 동서들과의 관계 변화도 시도해 봄직 하다. 도우미가 하던 그 역할을 엄청난이 하루 아침에 하기란 힘들 겠지만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엄청난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건강을 선택한 그녀의 눈에서 그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집집마다, 전기 밥솥 없는 집이 없다. 없어도 괜찮다. 결국 엄청난이 남편 건강과 아들 종남에게 비록 찬거리는 몇가지 없다고 해도 따뜻한 흰 쌀밥을 먹여야 할 테고, 그렇게 해야 할 밥이라면 시부모도 함께 공양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점에서는 시어머니 과자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집안 청소나 빨래 같은 것도 주말에 건강과 함께 협력해서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이다. 엄청난이 맏며느리이니까 과거 조선시대의 아낙네들 처럼 허리 펼 날 없이 죽도록 일만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엄청난의 변화의 방향이 건강과 종남을 향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녀에게 새로 생긴 가족을 향한 것이기를 소원해 본다.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를 통해 엄청난의 변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참 즐거운 시간이다.


첫번째: http://news.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7561553&contain=&keyword=&page=1
부번째: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410100916609&p=sisain
마지막: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3190854059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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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미혼모 엄청난이 자식에 집착하는 이유?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이 단편적인 경우가 많다. '지금 보고 있는 그 모습' 이 판단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지만 서로의 마음속을 알기란 참 어렵다. 진실과는 다르게 서로의 마음 속을 모르기에 생기는 오해가 많다. 모두 다 '나' 이면서 동시에 모두다 '너' 인 이 세상이 파라다이이스가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엄청난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을 정도로 분노가 인다. 정말 참 나쁜 여자다. 건강이를 감쪽같이 속이고도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그 뻔뻔스러움은 가히 철면피를 초월한 경지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을 무슨 성모 마리아 모시듯이 집착하는 건강을 보는 것은 너무 불편하다. 아니 눈꼴사납고 분노가 인다. 엄청난을 몇 번이나 내팽개쳐도 모자랄 지경인데 건강은 엄청난을 용서하고 끝까지 받아들인다. 이거 참 난감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신이 바로 박힌 게 맞나고 건강을 욕하다가도 또 저런 남자가 어디 있나고 건강을 감싸주게 된다. 현실과는 맞지 않지만 착하니 어쩌겠는가 말이다. 엄청난에 대한 건강의 태도가 어떤가를 제쳐두고 엄청난은 아무리 생각해도 구제불능의 인간이다.


그러나 이토록 용서의 여지조차 없는 듯한 엄청난에게도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미혼모라는 사실이다. 엄청난에게서 미혼모라는 사실을 간과한다면 엄청난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여지조차 사라지고 만다. 엄청난의 행동과 사고의 특성들이 이 미혼모라는 사실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 미혼모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다룬 바 있다.



인간의 행동 특성의 원인을 헤집고 들어가면 의외로 작은 곳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세 살 도둑 여든까지 간다' 는 속담이 그렇고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는 속담도 마찬가지이다. '매를 아끼면 아이들을 망친다' 는 서양의 속담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엄청난을 보는 관점도 그녀가 생각 없었던 시절의 불장난에서 시작해 볼 수 있다. 바로 미혼모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물론 그 이전 엄청난이 고아였다는 사실로 더 거슬러 올라 갈 수 있고 고아 이전의 처지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드라마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미혼모라는 사실이다. 엄청난에게서 미혼모라는 사실을 떼어놓는다면 엄청난은 단순히 구제불능의 인간이 되고 만다.



엄청난의 행동이나 사고에서 의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현상은 자신의 아이 종남에 대한 모성이다. 엄청난은 이상할 정도로 모성애가 강하다. 엄청난이 천박할 정도로 거짓말이 생활화 되어있고 낭비벽이 심하고 즉흥적이며 충동적이지만 종남에 대한 애정만큼은 어느 모성애에 뒤지지 않는다.
 

엄청난에게 왜 이토록 모성애가 강한 것일까? 미혼모라고 하면 엄청난과는 달리 아이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다. 애당초 모성애라는 것이 없다. 대부분의 미혼모들은 아이들을 유기하거나 입양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정한 애정없이 낳은 아이이기에 쉽게 마치 물건처럼 처리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혼모의 문나 입양아의 문제는 인명 경시 풍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사실상 우리 사회의 미혼모 문제는 그 미혼모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 미혼모들에게 의해서 버려지고 포기되는 아이들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미혼모의 문제가 아니라 '미혼모에게서 태어나서 유기되고 입양되는 아이들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이다.
 

종남에 대한 엄청난의 애틋한 모성애로 판단해보건데 엄청난이 고아라는 사실이 미혼모와 유기아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상상에 까지 이어진다. 엄청난의 개인사를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삶을 종남이에게까지 이어주지는 않으리라는 결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보면 엄청난은 참 불쌍하다. 동정의 여지가 생긴다. 자신의 아이를 끝까지 지키려는 미혼모의 모습이다. 건강이를 속이고 결혼을 한 것도 자신의 편안함보다는 종남이를 지키려는 의도해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엄청난을 두둔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단지 엄청난의 행동과 사고의 이면에 자신의 불행한 개인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규율보다 불행했던 개인사가 비대하게 자리를 잡다보니 도덕심이라거나 염치, 눈치 같은 미덕들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어 버린 것이다. 엄청난을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막돼먹었지만 자신의 아이 종남을 지키기 위한 모성애는 너무나도 강하다는 사실 말이다.
 

엄청난의 모든 악덕에도 불구하고 엄청난을 지켜보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바로 이런 이유는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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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큐빅스™ 2010.03.27 2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씩 저녁 먹으면서 보곤 하는데
    맨날 화내고 싸우기만 해서 지겹드라구요^^

  2. Phoebe Chung 2010.03.27 2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지는 않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 거짓말도 쉽게하는것 같아요.
    가정 교육이 그만큼 중요한건데....그걸 자신도 알고 잇으니 자식에게만은 남다를같네요.
    나중에 좋게 변화해서 좋은 엄마가 됏으면 좋겟네요.^^

  3. 모과 2010.03.28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난의 변화도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 줍니다.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시청률이 높겠지요.^^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3.29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엄청난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 참 궁금합니다.
      미혼모의 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면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과님, 새로운 한 주 활기차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4. 오호라 2010.03.31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공감이 가지만

    미혼모의 모성애에 대해 기술한 부분. 엄청 위험한데요?

    우리 사회에서는 미혼모에 대한 여건이 안되어 그 아이를 입양시키는 경우가 많고

    정말 뉴스에 날 만큼 유기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미혼모라서 모성애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닌것 같습니다.

    실제로 결혼한 부부라 할지라도 입양시키는 경우, 애를 버리는 경우, 혹은 방치해서 죽게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모성애는 인간의 차이인 듯 하고

    미혼모의 입양이 많은 경우는 우리 사회가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빠서 그런 것 같습니다.

  5. pennpenn 2010.04.12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안보니 마이동풍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지붕킥, 세경의 짜장면이 해리의 갈비보다 맛있는 이유?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12280043


지금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대한민국, 이 대한민국도 한 때 남의 지원을 받아야하던 찌들어지게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6.25 직후 전후 참상에서부터 60년대까지가 바로 가장 어려운 때가 아닌가 싶다. 역사상 수많은 전쟁을 경험했지만 6.25 만큼 잔인한 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몽고 식민지 100년이나, 임진왜란 7년이나, 일제 식민지 36년도 이 3년간의 6.25 전쟁만큼 비극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같은 동족 상잔의 비극이라는 점에서도 그 슬픔이 더하다.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미국의 잘잘못을 떠나, 만약 6.25 직후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비극은 더욱 참혹했을 것이다.


전후 미국의 대한 지원 중에 잉여 농산물 무상지원이 있었다. 미국은 당시 잉여 농산물이 너무 남아 처리가 곤란한 지경이었다. 밀의 가격이 하락하자 정부에서 적정가에 매입해 그 잉여 농산물을 태평양에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잉여 농산물 보관과 유지비 때문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짓이었다. 이렇게 바다에 버리던 잉여 농산물을 우리나라에 무상 원조라는 이름으로 지원해 준 것이다. 그게 미국에는 쓰레기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상 원조와 관련한 여러 말들을 모두 배제해 버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잉여 농산물 무상제공은 가난과 기아로부터의 벗어남이 절체절명의 바램이었던 당시에 자존심을 돌아 볼 수없는 참으로 가슴 아픈 상황이었다.
 

이 잉여 농산물 중의 거의 대분분이 밀가루였다. 미국 남부의 밀밭과 옥수수 밭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다. 얼마나 넓었기에 흑인들을 수입해서 노예로 삼을 정도였을까? 노예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밀밭 재배는 거의 불가능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인간의 식량이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서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왜 인디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삼지는 않았을까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에 상륙할 당시 수많은(당시의 인디언 수는 들쑥날쑥 이다) 인디언이 있었지만 거의 전멸하다 시피했다. 유럽인이 옮긴 병원균에 감염되어 대다수가 죽었다고 하지만 확인하기도 어렵다. 인디언 대량학살의 죄를 줄이려는 눈가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남미의 경우는 거의 백인들만이 살아남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미의 원주민들은 병원균에 대한 면역력이 더 높았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 였을까? 물론 백인들의 희생도 있었다.



짜장면과 갈비찜


짜장면 출처:http://www.sportsseoul.com/news2/emotion/wine/2009/1109/20091109101150400000000_7623763283.html
갈비 출처:http://www.sbiznews.com/news/?action=view&menuid=75&no=19249&page=1&skey=&sword=


그러니 인디언들에게서 노동력을 충당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백인 그 자신들 마저도 그랬다. 이렇게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에 의해서 재배되던 밀이 기계화로 인해 잉여물이 남아돌아가 버리기까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 버려지던 밀을 우리가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 또한 그렇다. 미국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한 밀이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생계의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카오스이론의 나비효과가 이런 것이 아닐까? 흑인의 노동력이 대한민국에서 구원의 손길이 되었다는...... 심한 비약일까?


지붕킥의 세경과 신애 이야기를 하려다가 서두가 길어졌다. 화교들이 언제 짜장면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대중화되기 시작했는지 확실히 모르겠다(짜장면의 원조는 1905년 인천 차이나 타운이라고 한다). 6.25이후에 무상원조로 받은 밀가루와 짜장면이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는지도 궁금하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후의 포스트에서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
 

짜장면은 앞뒤 사정으로 보아 그렇게 흔한 음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에 바나나가 귀해서 아주 비쌌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갖은 야채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짜장을 곁들인 짜장면이 값 싸지는 않았을 것이다. 1960~70년대에 짜장면은 아이들의 꿈이었다. 부모따라 어디 놀이동산이라도 가게 되면 심중팔구 중국 식당에서 짜장면을 먹는 것이 도식화 되어 있을 정도였다. 왜 이렇게 짜장면이 아이들의 로망이 되었는지도 무척 궁금하다.
 

식신신애(서신애)와 빵꾸똥꾸 해리(진지희)

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ut=1&name=/news/entertainment/201001/20100106/a1f77127.htm



그런 짜장면이었다.
 

<지붕킥>의 초반에 보듯이 세경과 신애가 깊은 산중에서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서울이라는 도시와의 공간적인 거리감이기도 하지만 2009년이라는 현재와의 시간적인 거리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경과 신애는 1960년대, 70년대 초 아주 가난하던 시절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아가면서도 인간미 넘치던 그 시절의 서민들의 순수하고 순박한 모습을 세경과 신애는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짜장면이란 사실은 그 때 가난하던 그 시절의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전히 짜장면의 위력은 대단하지만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통닭과 피자와 햄버그가 더욱 친근하다. 이런 현실에서 세경과 신애가 짜장면을 그토록 좋아하는 모습은 가난했으나 인간미가 넘쳤던 1960년대, 70년대 초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줄리엔이 세경과 신애에게 짜장면을 사주는 것은 묘하게도 미국의 식량무상원조가 떠올랐다. 별스러운 생각인지 모르겠다. 줄리엔이 세경과 신애를 위해 자신의 방을 내어주는 것도 우리가 못살던 시절 미국의 원조를 받던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그렇다고 줄리엔이 미국이다라는 식으로 비약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세경과 신애의 모습에서 우리의 가난하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일 뿐이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세경과 신애는 순재네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게 된다. 다행스럽다. 세경과 신애가 살아갈 곳이 그래도 재미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독같은 해리가 좀 껄끄럽긴 하지만 말이다. 세경과 신애와 이 가족들과의 의식적인 차이는 너무나도 클 수 밖에 없다. 세경과 신애는 수세식 화장기도 세탁기도 청소기도 믹서기도 모르고 사용하지 조차 모른다. 신애는 콜라, 아이스크림도 처음으로 먹어본다. 이런 아이들이다. 그러니 해리와의 의식적인 차이는 해리가 좋아하는 갈비와 짜장면의 차이만큼이나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장벽이 있긴 하지만 순재네 가족들은 참 인간적이고 재미있는 가족이다. 해서, 세경과 신애가 살아가기에는 참 다행스러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바깥 세상은 세경과 신애에게는 살벌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화려한 칼라 사진 속에서 유독 세경과 신애만이 짜장면 색깔처럼 흑백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을 잘 적응해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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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사진가 김기환 2010.01.12 0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장면에 대한 냉철한 고찰이군요.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 달콤시민 2010.01.12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저도 자장면에 한표요! 하하하
    갈비찜에는 추억이나 의미가 크게 없지만 자장면에는 많은 추억과 이야기가 있어요.. ㅎㅎ
    졸업식에 항상 함께한 자장면들.. 어릴때 외식은 중국집 등등.. 아아~

  3. Phoebe Chung 2010.01.12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우 오늘 짜장면 먹고 싶어져서 큰일 낫네요.
    춘장 사려면 시내 한국 슈퍼 가야하는데....

  4. 보시니 2010.01.12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붕뚫고 하이킥의 제작진은 코드에 관한 고찰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단순히 웃고 즐기기만 하는 시트콤이 아니라, 가족, 인간관계, 등에 대해
    세세히 생각하는 바를 제공하는 드라마인 것 같습니다.

  5. 쿠쿠양 2010.01.12 15: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걸보니 짜장면이 갑자기 땡기네요;;
    집에있는 짜장라면이라도;;

    글은 짜장면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인데 말이죠^^:

  6. 하록킴 2010.01.12 2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햐! 이런 주제로 이런 흥미진진한 포스팅을 하시다니 ㅎㅎ 하늘까지님 최고+_+
    저는 요즘 자짱면보다 제육덮밥이 땡기더라고요 ㅎㅎ중국집 제육덮밥에 짬뽕국물 크악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