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에 대해 포스트를 할 입장은 아니다. 재방으로 몇몇 가수들의 열창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가수에 대한 포스트를 쓰는 것은 그것이 담고있는 사회적인 의미가 무척이나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의미는 참 큼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눌려 그 본질이 축소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나가수>의 사회적인 의미를 무엇에 두어야 할까?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실한 관계가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진실하게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과 그 진실된 노래에 감동받는 청준단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것이다. 그렇게 음악이 매개되어 인간과 인간이 서로 감동을 하는 그 진실한 관계야 말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진정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사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가수들의 콘서트나  <7080>, <열린음악회> 같은 음악프로그램들이 아이돌 위주의 음악 프로그램들에 의해 소외된 청중들의 왜곡된 관계를 회복시켜왔다. 또한 불우한 이웃을 돕는 프로그램들이 그러했다(물론 개인의 차원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가수>와 다른 점은 노래를 통해 진실을 공감하고 그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공중파 방송에서 정기적으로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지출처: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866861



그러나 나가수의 이러한 본질적인 점에도 불구하고 <나가수>에 대해 거품처럼 일어나는 인터넷 한담들은 취담에 가까울 정도로 본질을 도외시한 경우들이 많았다. 누가 자격이 없다느니, 얼마의 돈을 벌었느니, 몸 값이 얼마나 된다느니 하는 별 대수롭지 않는 말들이 변죽을 울려왔고 또 울리고 있는 실정이다. 가수들의 진정성있는 열창과 청중들의 감동이 빗어놓는 진실한 관계에 대한 언급은 그 어디에도 없다.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우리사회의 메마른 풍토에서 이러한 감동적인 관계는 오아시스처럼 우리의 마음을 적시고 그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나가수>의 감동처럼이나 그 관계의 진정성이 필요한 곳이 ‘정치’ 분야이다. 이 관계를 좀 달리 말하면 정치인과 유권자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가수>의 가수와 청중의 관계만큼이나 감동적인 관계여야 한다. 만약 <나정치인>이란 TV 프로그램을 만들어 청중단이 그 정치인을 평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치인들의 속성상 이 프로그램에서도 청중을 기만하여 자신이 진정한 정치인인 마냥 행동을 할까? 아니면 청중을 진정으로 감동시키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줄까? 이런 상상은 정치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기인한 바가 크다. 만약 정치인들과 유권자의 관계가 진정성이 있는 관계로 발전한다면 얼마나 감동적일까? 아마 우리 사회에서 그처럼 감동적인 사건도 없을 것이다.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청중(국민)을 위해 보수나 진보, 여와 야의 정치집단적 개인적 이익을 떠나 정치를 하고,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투명하고 깨끗한 투표로 진정한 정치인을 뽑는다면 얼마나 신명나는 일이 될까? 바로 <나가수> 가 갖는 사회적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건 연예프로그램에 국한되는 것이라고 그 테두리를 설정해 버리면 안된다. <나가수>의 감동이 <나정치인>의 감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작은 스마트폰의 탄생이 인간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고 있듯이 <나가수>의 의미는 분명 사회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이런 일들을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해야하고 언론들이 확대재생산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속화되고 지저분하다. 정치인들이 <나가수>의 이런 의미를 파악하고 자기 성찰의 모멘텀으로 받아들일 일이 없다 판단되고, 언론들은 참새들처럼 작은 모이질에 여념이 없다. 정말이지 나가수의 큰 의미를 발견하면 좋겠는데 밀이다.


<나가수>의 맥락과 같은 다른 예를 들자면 김연아, 박지성, 박태환이다. 김연아나 박지성, 그리고 박태환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서는 일대 사건이다. 일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단순히 스포츠 분야에서만 머물고 있다. 왜 이들의 모습이 정치로, 경제로 확대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이 이루어 놓은 사건의 이면에 있는 노력과 성실함, 그리고 정직함은 부각시키지 않는가? 그들이 우리사회의 영웅이 되면 몰락해야 할 집단이 있다. 굳이 필자가 말을 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타락한 언론은 이들의 노력과 진실성을 국민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이야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그들이 타락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의미를 제공해 주고 혁명은 아니더라도 우리사회에 혼재해 있는 부정과 부패, 거짓과 위선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거둘 수 있는 일대 사건들이 단순히 흔한 가십거리에 묻혀버리는 것이 참 안타깝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해바라기 2011.07.25 0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닿는 글 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한주 되세요.^^

  2. Shain 2011.07.25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예술 분야의 1, 2 순위를 겨루는 건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라...
    말씀대로 남들 앞에서 자신의 덕목이 남다름을 겨루는
    나는 정치인 코너가 낫다 싶을 때도 많습니다...
    인격이 재단이 되는 건 아니라지만
    그 사람들은 좀 측정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3. 히트맨2011 2011.07.25 1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드리며, 잘 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자주 왕래 하고 그래요, 구독 신청하고 갈게요^^

  4. 카이로스 2011.07.26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한 그런 가십거리는 쿨하게 한 귀로 흘려듣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됩니다

  5. 하나비 2011.07.26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하는글 입니다 ^^
    행복한저녁되세요 ^ㅎ^

  6. At Information Technology 2011.07.28 0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같이 옳은 말씀이십니다.
    타락..되있는 사람들에게 무얼 더 바랄까요...ㅎㅎ;;


 

영화전문 블로거분들의 포스트를 접하다보면 ‘스포일러 있습니다‘ 라거나 ’스포일러 주의‘ 라는 주위를 환기시키는 친절한 멘트를 볼 수 있습니다. 독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독자는 스포일러를 피하면서 영화의 직접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인터넷 기사를 보다보면 노골적으로 스포일러를 살포(?)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사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1차적으로 스포일러를 흘린 사람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언론의 기능이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언론의 잘못이 그에 못지 않습니다.


이번 주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지나친 스포일러로 홍역을 치렀습니다. 활자화된 매체라면 독자의 의지에 따라 스포일러는 피해갈 수 있겠지만, 영상이나 음성에 기반한 매체라면 스포일러를 피해가기가 무척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분들이라면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차별적인 스포일러의 공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다 보니 <나가수>의 감동은 반감되고 김이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근거없는 소문이 난무하면서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신뢰성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영화, 방송 등의 경우에 스포일러는 정말이지 치명적입니다. 기대하고 보고 싶었는데 김이 빠져버립니다. 홍보의 차원에서 트레일러를 제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을 피상적이고 단속적으로 보여주는 트레일러와는 달리 스포일러는 그 길이와 관계없이 스토리의 일관된 부분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나가수>에서 ‘누가 탈락을 했다더라’ ‘누가 대체 가수로 나온다더라’ 하는 식의 기사들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가득이나 기대를 하고 <나가수>를 시청하는 대중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서슴없이 하는 것일까요?


우선, 흥밋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어야 할 (연예)기자일 수 있습니다. 이런 기자의 현실적인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해를 한다고 해서 공감할 수는 없습니다. <나가수>의 내용을 사전에 흘려 화제거리를 만들어내려는 행위는 참 눈물겹기는 하지만 그저 불쌍하고 측은하기만 합니다. 만약 스포일러 마저 사실에 근거해 있지 않고 '스포일러라는 모양을 띈 가공된 이야기' 라면 정말 기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연예기사의 속성이 ‘센세이셔널’ 을 그 근거에 깔고 있지만 사실만을 기록해야만 할 기자의 태도는 최소한 지켜야 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위해 노력하듯이 기자는 사실적인 보도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센세이셔널 하다고 해도 ‘사실’에 기반해야 하는 것입니다. 추측이나 예단에 근거해서 공상이나 환상으로 기사를 채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측보도를 한다고 해도 그것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확인도 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또는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오도하는 짓은 기자의 사명과 양심을 벗어난 것입니다.


둘째는 <나가수> 녹화 현장에 있던 청중단입니다. 이들 중에 만약 스포일러 누출자가 있다면 너무나도 실망스럽습니다. 자신들이 생생한 노래의 향연을 지켜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면 녹화 방송을 통해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그러한 선물을 선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청중단의 누군가가 자기 자랑을 위해 스포일러를 발설했다면 시청자들을 무시한 처사인 것입니다. 자신은 감동을 누리면서 타인들(시청자들)의 감동을 막는 이기적인 짓인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SNS가 떠오른데요, 개인의 발설이 눈덩이가 되듯이 얼마나 크게 확대될 수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제작진입니다. 필자는 제작진에게 가장 의심이 갑니다. 스포일러라고 던져놓은 것들이 실제 방송 내용과는 틀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청중단이나 기자 또한 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확인도 되지 않은 부분을 청중단에 속한 개인이 굳이 스포일러를 누출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따라서 청중단의 개인이 스포일러를 누출했을 가능성은 작아 보입니다. 기자의 경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충분히 스포일러를 누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자에게 스포일러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게 제작진일 가능성 높구요. 물론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따라서 제작진이 <나가수>의 홍보를 위해 언론 매체에 흘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입니다. 타 방송사와 경쟁을 하고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 입장에서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스포일러를 누출한 경우를 추측해보았는데요, 확실한 단정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단정짓기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스포일러라고 포장된 가공의 이야기가 사회의 이슈(?)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앞으로 재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원칙의 문제입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관계의 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고, 음모를 꾸미는 따위의 행위가 스포일러를 누출해서 이익을 챙기려는 짓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앞으로 스포일러로 장난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팔천사 2011.05.23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겁고 행복한 한주보내세요^^

  2. 왕비마마 2011.05.23 0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그~
    저런 김빠지는 촉새같은 사람들~ ^^;;;
    저런 사람들하고 친하면 무~지 김빠진다니까요~ ㅋㅋㅋ

    울 촌블님~
    이번 한 주도 마구 매우 무지 신~나는 한 주 보내셔요~ ^^

  3. 리우군 2011.05.23 0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명한건 탈락자를 누설하는건 청중단이 아닌것 같아요.
    결과는 스탭들과 출연진들만이 알고있으니....
    어찌보면 노이즈 마케팅일수도 있고, 관리를 못한걸수도 있고!
    이 좋은 프로그램이 스포일러떄문에 망가지진 않앗으면 합니다

  4. 꽃집아가씨 2011.05.23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청중평가단 아니면 관계자가장난치는 거같은데
    안했음 좋겠어요.
    전 관계자 같거든요.에효..
    스포때문에 좋은 프로 결과를 미리안다면 기분나쁘죠.
    이제부터 그런일 없었음 좋겠네요

  5. ♡♥베베♥♡ 2011.05.23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관계자 같단 생각 했는데...

    그래도 어젠 멋졌고...
    윤도현이 떨어졌음 또 속상했을텐데...다행이란 생각도 들고...ㅎㅎ
    제가 참 좋게 본 김연우가 떨어져서 또 아쉽고...그래요..

    어찌됐거나 인젠 그거 안했음 좋겠네요...
    일부러 누가 흘린거라면...
    한번은 넘어가도 반복되면 그게 독이 될수도 있으니...

  6. 안나푸르나516 2011.05.23 1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었이건 간에 스포일러 정보는 기대감을 확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되지요.... '스포주의' 라고 친절하게 사전예시를 해 주면 그나마 다행이구요....ㅅㅅ;;

  7. 서상훈 2011.05.23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포일러에서 의외의 결과라고 해서 1위가 의외라는 뜻인줄 알았는데 7위가 의외였습니다;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 기념전 거울신화 입니다. 부산 신세계백화점 신세계 갤러리에서 열고 있습니다. 영화배우들의 영화 포스터, 영화속 사진들 같습니다만 획실치는 않습니다. 팜플렛을 깜빡 잊어서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지 못하겠습니다. 아무튼 사진들은 아름답습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고, 슬프고, 괴로움에 치가 떨리는 모습이라고 해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그들의 모습은 인간과 세상을 표현하려는 적막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공간에는 충만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영화에서 느끼는 그 카타르시스를 그들이 만든 신화의 거울 속에서 느끼는 가 봅니다. 


제일 마지막 사진은 얼마전에 타계한 고 장진영씨의 사진입니다. 슬픈 모습입니다. 그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기라도 한 모습니다. 그녀는 세상과 이별을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영화의 신화 속에서 감동적인 주인공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마음으로 한 송이의 국화꽃을 바칩니다.     



















삼가 고 장진영씨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Phoebe Chung 2009.10.18 1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출을 멋지게 한건지 원래 멋저서 그런건지
    다들 너무 멋진데요.
    부럽네요.^^




부산국제영화제가 14회를 맞았습니다. 2009년 10월 8일~10월 16일까지 진행됩니다. 연륜이 늘어갈 수록 양과 질에 있어서 더욱 성장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려 70개 국가에서 355편의 영화들이 소개됩니다. 이에 더해 월드프리미어와 international 프리미어를 합쳐 144편이 상연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납니다.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영화산업이 함께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경제적인 이익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꿈과 감동과 사랑의 공유, 그리고 소통의 한마당이 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부산 국제영화가 바로 이렇게 어우리지는 한마당으로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잇는 가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곁에 부산국제영화제가 함께 한다는 것이 즐겁고 기쁩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행사를 찍은 것입니다. 비록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열기와 분위기를 함게해 보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Mummer 2009.10.08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트 잘보고 갑니다.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되서 못가고 있는데 사진으로나마 잘보고 갑니다^^

  2. 소이나는 2009.10.08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이 북적북적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제이네요,
    아까 뉴스보니 기자만 천명이 넘게 왔다고 하던데. ㅎㅎ
    점차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는 것 같아서 괜히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3. 루트비히 2010.09.05 2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대구에 살땐 부산에 참 자주 내려갔는데..
    서울에 살다보니 너무 멀어서 갈 시간이 없네요.
    부산에 관한 리뷰가 많은걸 보니 부산에 사시는가봐요~


 
이미지출처는 이곳입니다



여행이 우리 삶에 물들이는 7가지 색깔들

 

여행이란 말을 떠올리면 우리에겐 어떤 감정들이 우리 가슴 속으로 스며들까? 여행을 하면서는 우리에겐 어떤 감정이 가슴의 깊은 곳에서 솟아날까? 여행이 끝난 후 우리에겐 어떤 감정의 색깔이 우리를 물들일까?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여행을 끝내고마무리 하면서 은은한 감정들이 마치 물감이 물속에서 퍼져나가듯 우리의 마음을 물들인다. 이 색깔들은 마치 그림물감처럼 우리 삶의 질감과 내용, 느낌과 태도를 덧칠로 변화시키면서 완성된 그림으로 이끌어 나간다. 우리의 삶을 그림과 같은 예술로 승화시키고 고양시키는 감정들이야 말로 우리의 정신적인 성장과 성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러한 감정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본다.



주황색:기대, 설레임

여행하면 이국의 풍경이 펼쳐진다. 너무나도 행복한 상상이다. 이국적이란 말은 참 기대와 설레임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우리의 삶에 뛰어든 여인의 향기처럼 여인이 있는 곳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여행이고 이국적인 풍경이다. 이국적인 풍경이란 꼭 자연에 국한되지 않는다. 새로운 모든 것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우리의 오감의 미개척지대들, 바로 그런 것들이 이국적인 풍경이고 새로운 것들이다. 어찌보면 내게 주어진 운명적인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기대와 설레임의 감정을 느끼면서 우리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빨간색: 속삭임, 끊임없는 자극들

연인의 속삭임은 달콤하다. 연인과의 키스는 더욱 달콤하다. 연인의 자리에 우리가 만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사물들, 그리고 자연으로 바구어 보자. 여인보다는 못할까? 아니면 더 할까? 우리가 오감으로 경험하는 모든 새로운 것들의 자극은 참 달콤하다. 우리가 언제나 보는 태양이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더욱 뜨겁지 않는가? 우리의 육신을 언제나 휘감는 공기조차도 새로운 공간에서는 새롭지 않는가? 바람과 구름과 바다와 산이 또 그렇지 않은가? 일상을 잠깐 벗어나 있는 공간에서 달콤한 속삭임을 듣고 소름돋게 하는 자극들과 만난다. 이렇게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이 인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 저편으로 밀어 놓을 수가 있을까? 인상들을 기억하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속삭이고 자극한다. 인생이 아름답다고, 경이롭다고!


미안, 사과할께.
미안, 사과할께. by jackleg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녹색: 자유

빈곤하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다. 풍요로우나 구속적이라면 우리는 배는 부를지 언정 결코 행복할 수는 없다. 우리의 일상에서 영원한 자유란 없다. 일상이란 구속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죽음이며, 일상을 어느 정도 탈속하는 것이 종교적인 삶이다. 어쩌면 여행은 죽음과도 같다. 종교와도 같다. 아니 어쩌면 일시적인 마약(痲藥), 아니 미약(媚藥)과 같을 지도 모른다. 여행은 중독성이 강한 이유다. 여행은 이렇게 구속의 틈을 헤집고 나오려는 몸부림과 같다. 일시적은 것이 덧없다는 종교적인 인식이 있다. 영생을 꿈꾸는 종교가 그러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행은 소박하다. 덧없다는 한계 속에서 우울해 지기도 한다. 이 우울은 또 다른 자유에 대한 갈망을 낳는다. 하늘에서의 영생이 아니라 땅위에서의 소박한 일시적인 자유이다.



보라색: 충만함과 채움

여행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들 중에 하나가 충만함과 채움이다. 아마도 추상적이던 구체적이던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충족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의 공간에서는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경탄으로, 정신적인 풍요의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경이롭게 체험한다. 소외와 빈곤의 공간에서는 피폐한 삶에 대한 사색과 성찰로 마음은 충만해 진다. 슬픔은 슬픔대로 우리의 가슴을 채운다. 그래서 채워지는 것은 쾌감이나 기쁨만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토해내지만 감동으로 우리의 가슴은 고양된다.



노란색: 이별, 그리고 그리움

만남은 이별로 이어지고, 이별은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별과 그리움의 연속이다. 결국 이러한 만남과 이별의 끊임없는 순환은 삶이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영원한 이별, 곧 죽음이다. 비극적인가? 괜한 감상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별은 가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중의 만남, 여행후의 만남이 얼마나 기쁘던가? 여행은 이별이기 때문이다. 만남을 그리워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인과의 행복한 한때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빠져나갔으니 남는 것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아문 상처의 흔적이 있다. 이 상처의 흔적은 결국 그리움이다. 가슴 시리운 그리움이다. 이것은 삶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별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그것 자체로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리움이야 말로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는 희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삶에 대한 허무가 아닌 삶에 대한 의지에 가깝다.


독일에서 온 편지, 그리고 ..
독일에서 온 편지, 그리고 .. by daphnieh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파란색: 성취감

여행 계획을 짜고, 수정하는 과정에서의 고생은 여행 후의 성취감으로 변한다. 여행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와는 무관하다. 아니 솔직히 만족스러우면 좋다. 여행을 위해 준비한 과정이 성취감과 보람을 가져다 준다. 특히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꼬박고박 착실히 처축을 했다거나 그렇게 어렵게 여비를 마련했다면 그 과정 자체는 너무나 소중하다. 여행이라는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이러한 성취감은 삶에 대한 진지함이며, 시간에 대한 경의이기도 하다. 시간은 잔인하고 엄숙하지만 진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때로 웃음을 보이고 유머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성취감이다.



이렇게 여행이 우리 삶을 물들이는 7가지의 색깔의 감정을 적어보았다. 공감할 부분이 있다면 참 좋겠다. 편향되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도 고마울 뿐이다. 그만큼 여행이 가져다주는 감정의 은혜로움이랄까 유용함을 깊이 믿기 때문이다. 여행은 내가 남기는 흔적이다. 달에 인류 최초의 흔적을 남긴 코 큰 한 인간처럼, 우리도 다시는 찾아 가지 못할(또 찾아 갈수도 있겠지만) 공간에 우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그 추억을 반추할 때면 우리는 마치 스펙트럼으로 무지개를 보듯 다양한 감정들이 하나 둘씩 우리의 마음으로 깃털처럼 내리는 것을 느낀다. 삶이 무지개색으로 아름다워진다.


*죄송한 말씀: 제목에는 7가지 무지색깔이라고 했으나 글은 6가지로 색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보링보링 2009.09.10 0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좋은음악과 좋은글..잘듣고 잘읽고갑니다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몇가지 것들


여행에 대한 글을 쓰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여행의 경험이 일천하다. 몇 나라가 고작이다. 그것도 남아있는 흔적들이 거의 없다. 그만큼 내게 여행은 그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행기를 써 본다거나, 여행의 경험들을 나의 삶에 대입해 본다거나, 일정에 따라 사진을 찍는 다던가 하는 것은 그다지 흥미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여행을 가서 노는 것에, 먹는 것에, 보는 것이 다였다. 여행을 가기전의 설레임과 다녀온 후의 추억과 아쉬움이 남은 것의 9.9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멍청했던지, 생각이 없었던지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서점에 가보면 많은 여행 관련 책자들이 눈에 띤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 대해 생각하고, 여행에 대한 독특한 안목을 가지고,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많은 사진들이 책속에 존재하고, 수많은 정보들이 책속에 있다. 여행에 대해 반추하지 못한 죄다.


 

재미를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www.flickr.com


그들은 얼마나 나와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가? 재미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여행을 단념할 것이다. 그들을 매혹시킬 만한 재미가 있기에 그들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도 재미와 유희로만 넘쳐나면 얼마나 좋을까? 삶은 왜 오락 게임을 하듯이 재미있지 않을까? 삶은 왜 모순 투성이일까? 때로 잠간이나마 천국을 경험하는 것은 여행을 통해서일까, 아니면 여행 그 자체일까? 여행은 마치 어두운 틈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삶의 틈을 헤집고 나와 꽃 향내를 맡을 수 있도록 한다. 소풍가는 아이의 뛰는 가슴 마냥 우리의 마음도 설렌다.

감동을 생각한다

 www.flickr.com

성자처럼 인도로 떠난 여행자가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사색의 흔적을 따라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깊은 의미를 담는다. 삶의 깊이를, 이간의 본질을, 구원이라는 것을......그 깊은 흔적의 골을 추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 속에 그 의미들을 투영한다. 박물관에 며칠을 머물며 역사의 자취를 영혼에 담으려는 여행자가 있다. 그것 또한 삶에 대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예술과 미를 통한 감동의 여정이며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한 여정이다.

사랑을 생각한다

www.flickr.com


젊은 날 연인이 함께 떠나는 여행의 오솔길,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그래서 허니문이라는 게 있나보다. 아니 젊은 연인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육신은 뇌쇠했으나 정신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황혼 여행도 있다. 죽음이 그리 멀리 남아있지 않는 그들에게 이 여정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그들에게 그 시간은 얼마나 보석처럼 아름다울 것인가? 사랑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사랑은 함께 만드는 것이다. 나 하나의 사랑도, 너 하나의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겠지만, 여행에서는 사람이면 더욱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여행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추억거리들 중에 하나이다.

소통을 생각한다




유럽이나 북미, 그리고 영연방 국가들에는 백인들이 다수이다. 그들과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있다 보면 나의 왜소함을 느낀다. 육체적으로 그들이 조금 우월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걸 부정할 수 없다. 때론 그 덩치들에게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소통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언어의 벽이 있지만 표현하지 않는 속에서도 감정의 교류는 단절되지 않는다. 때론 불친절한 인간들도 있다. 무시하는 인간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은 예외적인 존재들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삶을 접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게 된다. 여행의 의미는 바로 이런 부족함의 한 가운데 버젓이 존재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우리가 표현하지 못하는 사이에......언어를 떠나 그렇게 존재한다. 때론 인종간의 갈등이 왜 생기는지, 왜 미워하고, 전쟁을 하는지 애절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하고 있음을 느낀다. 여행이라는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희망과 꿈을 생각한다

 www.flickr.com



인간에게 희망과 꿈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하늘만 바라보아서도 땅의 진정한 고마움을 모를 수 있다. 굳건히 땅을 밟고 서 있어야 꿈도 꿀 수 있고, 희망도 가질 수 있는 법이다. 반대로, 땅만 바라보며 희망 없는 막다른 길에만 직면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희망과 꿈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불만, 때로는 분노의 소산이다. 그렇게 희망과 꿈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현실이 완전하다면 희망도 꿈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밟고 있는 땅을 생각을 본다. 나는 전적으로 희망적이기만 할 수 있을까? 미래에는 어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여행은 바로 이런 희망과 꿈의 동경이 아닐까?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를 경험하면서 우리도 좀 더 나아 보자는 꿈과 희망을 갖게 되고,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를 경험하면서 그들에게 희망과 꿈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하게 된다. 이 넓은 세계가 올망졸망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된다. 굶주림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프리카의 황량한 폐허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나의 경우는 비록 사진 속에서 이지만) 그들이 희망과 꿈을 놓지 않도록 기도한다.

여행은 우리를 재미있게 하고, 감동을 몰아다 주며, 문화와 삶을 이해하게 하고 언어가 다른 인종간에 소통의 전율을 가져다준다. 여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다른 삶, 다른 문화를 가진 인간들과 감동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또한 여행은 우리 가슴속으로 알게 모르게 세계를 향한 뭉클한 희망과 꿈을 스며들게 한다. 이로서 우리와는 무관하던 존재들이 우리와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여행의 황홀한 선물이 아닐까!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하얀 비 2009.09.05 0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여행하면서 고독과 그리움을 느껴요.
    이곳에 함께 오면 좋았을 그 사람을 떠올리기도 하고, 혹은 예전에 함께 왔던 사람들을 추억하기도 하죠.
    여행이란 해방감을 주기도 해야 하지만, 때론 간절한 그리움이 먼저 다가올 때도 있더군요.

    여럿이서 함께 가면 느끼지 못할, 혼자만의 여행 속 고독도 느껴 보기도 한답니다. 특히 기차를 타고 갈 땐 창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2. 한셩배낭 2009.09.05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동감 입니다,,^^*

  3. condee 2009.09.06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여행은 다이어트다?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사전적인 여행의 정의가 실제적인 여행의 복합적인 특성을 모두 다 포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의' 는 그것 자체로 정의하는 대상의 존재를 가장 효율적으로 파악하게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불완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에 대한 정의는 단순히 물리적인 현상의 서술에 그친다. 실제와 동떨어진 일반적이고 단편적인 부분적 특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의를 내리기를 즐겨한다. 특히 정의를 내리기 까다로운 추상적인 개념어인 경우가 더욱 그렇다. 가장 두드러진 정의 내리기의 일례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한다. 사랑은 □ □ □ 라는 식의. 또한 우정이나 평화라는 말들도 그러하다.


사랑이나 우정, 평화와 마찬가지로 여행도 수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여행 자체는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여행에 부여하는 추상적인 의미는 실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행이란 폭 넓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은 무엇이다' 는 식의 정의내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갖는 여행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는 면에서 소중하고 할 수 있겠다.


자 그렇다면 여행에 대한 정의를 필자의 마음대로 내려 보려고 한다.



여행은 다이어트다

모든 여행은 발품을 팔게 되어 있다. 걷지 않으면 여행은 성립할 수 없다. 여행을 한다면서 걷지 않는다면 버스만 타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버스만 타고 다니는 것이 여행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저 타고 보는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타고 보기만 하는 것이 여행일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버스에 앉아 밖만 내려다보는 것은 관광과 가까울 수는 있어도 관광이라 이름짓기도 어렵다. 걷지 않고는 관광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제 다시 여행에 걷는 행동을 포함시키고 나면 여행이 다이어트가 안 될 이유가 전혀 없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비만인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비만으로 여행을 시작해서 비만이 사라졌기 때문이거나 비만인 사람들은 운동을 해야 하는 여행을 싫어하기 때문이거나 그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비만인 사람들은 여행보다는 관광을 하려고 할 것이다. 날씬해지려면 괜히 지방흡입술을 하고, 약품을 먹고, 심지어 굶기도 하는 사람잡는 다이어트보다는 여행을 통해 다이어트 효과를 거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산이나 자연을 타고 걷는 여행이라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여행은 다이어트가 될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여행은 자유이다

일시적인 유보이긴 하지만 여행은 일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거기에는 정부의 구속으로 부터도, 권력의 제재로 부터도, 각종 매체의 광고 홍수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어느 정도 무정부주의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만의 자유를 누린다. 무정부만이 아니라 무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며,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치를 느끼며, 실타래처럼 어지러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진다. 그래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또 그런 심성 가진 사람들이 된다.


그런데 자유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는 말처럼 투쟁의 산물이기만 하면 이래저래 자유의 한계가 너무 위축되고 자유를 누린다를 말 자체가 너무 부끄러워 진다. 설마 여행의 자유를 도피 운운으로 비난한다면 할말은 없어진다. 넓은 아량을 보여달라.


 이미지 출처:www.flickr.com

여행은 삶의 다른 오솔길이다.

여행은 삶의 다른 오솔길이다. 우리는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디로 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선택에 의해 삶은 일회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의 선택만이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동시에 여럿의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중요하다. 일회적이기에 우리의 삶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의 연속에서 우리가 나아가는 길들은 차가 다니지 않는 오솔길이기라기 보다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잘 닦인 고속도로이기를 바란다. 많은 돈을 갖고, 큰 집을 갖고, 잘 먹고 잘 입는 그런 윤택한 삶을 꿈꾼다. 그런 꿈은 좋은 꿈이다. 인간이라면 모두 그런 꿈을 꾸게 마련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은 삭막하고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 꿈은 꿀수는 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고속도로 같은 길을 잠시 벗어나 보는 것, 작은 오솔길을 선택하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한다.




여행은 변화이다.

여행은 변화이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의 삶과 부단하게 비교되는 대상들을 동반하게 된다. 잘사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과, 못사는 나라들의 아쉬움이 함께 교차한다. 비만으로 죽어가는 인간과 가난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인간들의 삶이 교차한다. 마음 속 깊이 희비를 교차시키는 인간들의 전혀 다른 삶속에서 우리는 진한 감동을 느낀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묻게 한다. 왜 이런 비극이고, 희극인가? 왜 기쁨과 함께 슬픔을 가져다주는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또 동시에 공동체적인 삶에 대해서도 묻는다. 인간은 외롭지만, 또 함께라는 것을 동시에 확인하기도 한다. 가슴 속 깊이에서 북받쳐 오는 근원적인 물음들이다. 자연의 감동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사람들의 향기도 있다. 재래시장의 순박함이 있는가 하면 현대적인 건물의 세련됨도 있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한다. 기쁘던 슬프던, 분노하고 격정을 토해내던 이것들은 모두 감동으로 수렴된다. 우리의 삶을 뜨겁게 살자는 감동으로 말이다. 바로 이런 감동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여행은 쾌락이다.

여행은 쾌락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먹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 타는 즐거움, 듣는 즐거움 등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각으로 수용하는 쾌락의 극치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 먹지 못한 것, 듣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감각의 충족이니 말이다. 이것은 순전히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정의이다.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쉽게 흔하게 던져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바로 '즐겨라' 는 말이 아닐까? 즐거움이 없는 여행도 있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고행의 여행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을 여정에 비유하고는 그 여정은 고난의 길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행을 위한 여행은 종교적인 수행에 가깝다. 삶의 여정이란 것도 비유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부분을 훌훌 털어버릴 필요가 있다. 여행의 범주에서 추방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여행은 즐거움을 위해 존재케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인생이 고난이라면 여행의 즐거움은 더욱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즐겁게 하자.


 이미지 출처:www.flickr.com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보링보링 2009.09.01 0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여행은 변화다..이말에 가장 공감갑니다요..
    무언가 많이 느끼고 오게 되는 듯하지요~~~ㅎㅎㅎㅎ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요~

  2. 검도쉐프 2009.09.01 0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은 다이어트다..에 공감이 됩니다.
    배낭을 꾸리다보면 일상에 필요없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되더군요.

  3. assam258 2009.09.02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지요. ^^
    좋은 구경 많이 해도 몸이 힘든건 어쩔수 없을것 같습니다.

  4. 연구소장 안동글 2009.09.03 0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공감이요 :) 여행은 늘 생각한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안겨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떠나고 떠나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