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을 믿어요>의 스토리 전개가 탄력을 받고 있다. 노련한 중견 연기자들과 신진 연기자들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도 보기 좋다. 17회의 골격을 보면 3가지 큰 에피소드가 잘 버무려지면서 가족들이 함께 보기에도 재미있고 의미가 있었다.  서혜진-한승우의 관계가 일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우려했던 불륜의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는 이른 것 같다. 유부녀 서혜진에 대한 한승우의 묘한 집착과 서혜진의 태도가 아직 우려스러운 정도가 아니며 서혜진에 대한 한승우의 집착이 단순히 이성적이기보다는 죽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게재되어 있는 것 같아 노골적인 불륜보다는 은근한 애정 스토리로 흐를 공산이 클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척되어갈지는 예측불허이다. 불륜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드이고 보면 시청률을 위해 일정부분 수위를 조절해가며 양념으로 넣을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20520133802674


프랑스에서 3년동안 공부한 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서혜진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의식이 참 강한 여성으로 그녀가 위치하고 있는 두 개의 현실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대가족제도라는 보수적인 환경에서의 맏며느리라는 위치와 다른 하나는 미술관 부관장이라는 직함이다. 후자의 위치는 프랑스에서 3년간의 공부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서혜진에게는 딱 알맞은 위치이다. 3년간이나 프랑스유학을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고작 가정에서 주부 역할만 하면서 지식을 사장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인재의 손실이다. 아내와 엄마, 며느리와 주부로서 살아간다면 유학을 갈 필요도 없었다. 개인적인 성취만을 위했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 이기적일테고 말이다. 남편 김동훈(이재룡 분)이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것 같지도 않고 3살된 딸을 떼놓고 프랑스에 3년씩이나 보낼 형편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아내 서혜진을 3년간이나 프랑스에 유학 보낸 것은 남편으로서는 대단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귀국후 고작 주부에 머문다면 참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남편 김동훈의 입장에서도 서혜진이 가정주부로 머무는 것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서혜진의 현실이 그리 녹녹치가 않다. 모교의 강단에라도 서고 싶지만 쉽지 않고 여러모로 취업하기도 힘들다. 또한 대가족에서의 맏며느리 역할도 쉽지 않다. 프랑스에서 3년 동안이나 혼자 공부만 하다 보니 적응하기도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성격까지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강해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입기 쉬운 성격이다. 이렇다보니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있는 모습이다. 남편 김동훈이 싹싹하고 이해심이 넓다보니 이런 서혜진을 잘 받아주어서 그렇지 3년동안 가정을 비운 서혜진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3살된 딸을 두고 유학을 떠난 아내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이해해줄 남편을 현실에서 찾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고 본다. 가족드라마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남편 김동훈은 딸을 세 살때부터 3년동안이나 혼자서 양육할 정도니 남편됨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3년만에 귀국한 서혜진의 현실에 대한 냉소적이고 이지적인 모습은 딸에게 다정다감하고 현실적인 김동훈의 모습과는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부부이지만 어딘가 어긋난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이질감은 서혜진의 태도에 책임이 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가정보다는 자아성취에 더욱 큰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해 불편하기까지도 하다.


따라서 한승우의 힘이긴 하지만 그녀가 미술관의 부관장으로 취업이 된 것은 그녀에겐 그녀가 바라는 세계이며 이상적인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상적인 세상에서 자신의 현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 불만스럽고 불편하기 쉽다. 17회에서 서혜진이 가사일에 힘들어 하는 모습은 그것이 육체적으로 고달프다거나 힘들다는 의미보다는 그녀의 이상이나 꿈을 옥죄는 현실의 불편함이나 불만족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자아성취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한승우는 그녀의 마음을 채워줄 존재로 자리할 수 있다. 남편 김동훈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서서히 한승우에게 마음이 쏠릴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관계 방식이 어떻게 진행될까에 따라서 불륜이냐의 여부가 판가름이 되것인데 앞으로 이들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발전하게 될지 그리고 김동훈의 태도는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다.



사족이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김동훈-서혜진 가족이 독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드라마 전개상 그들의 독립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김동훈이 아내 서혜진을 3년동안 프랑스 유학까지 보내줄 정도라면 독립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데 말이다.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서혜진을 힘들게 하는 가사의 짐을 들어주는 것이겠지만 어디 이런 판단이 이들만이 내리고 쉬 처리해 버릴 수는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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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시카 2011.02.27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너무 이뻐요 ^^ 완전 이상형 ㅋㅋ

  2. 해피선샤인 2011.02.27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건 아니구 어무니께서 보실 때 그냥 옆에 껴서 같이 보긴 하는데 서혜진이란 인물은 처음 볼 때부터 좀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더라구요.. 맏며느리가 가정보다는 내 일을 중히 여긴다는 것도 그렇고.. 물론 맏며느리는 무조건 내 일보다 가정이라 하는 건 아니지만 보편적으로는 맏며느리건 막내며느리건 둘 다 중요하다면 일보단 가정이고 내 아이니까요..
    그리고 첫 회부터 불륜스멜이 좀 나긴 했죠.. 한국행 비행기에서 한승우가 서혜진을 발견한 이후로..
    아무튼 저에게는 서혜진이라는 인물은 엄마로써도 0점, 아내로써도 0점이네요

  3. 2011.02.27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Shain 2011.02.27 1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식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나면 현실과의 불일치 때문에
    불륜의 유혹이 생길 수 밖에 없겠네요
    상당히 현실적인 부분인듯 합니다
    만족하기 힘든 상황이라...

  5. 백전백승 2011.02.27 2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여성들이 결혼하면 좋은 지식을 썩힌다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드라마를 보았다며 더 실감났을 것 같은데 이 드라마를 한번도 보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네요.

  6. *아루마루* 2011.02.27 2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딱히 이야기 하기 힘들겠지만....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 일에 몰두 하는 모습은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아내로서는 0점이지 않나 싶네요......

  7. parrr 2011.02.27 2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놀러왔습니다. TV를 발 보지는 않지만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코믹 요소가 많아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박주미양은 나이가 들어도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인상이 남습니다.ㅎ
    즐거운 주일 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ㅎ

  8. PinkWink 2011.02.28 1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 주미...씨~~.. 여전히 이쁘신데 말이죠..^^



<결혼해 주세요> 2회는 예기치 않게 찾아와서는 무덤덤했던 감정의 표면을 조금씩 뚫고 들어오는 사랑의 감정과 또 한 때의 취기어린 젊은 날의 실수, 날 선 공방의 와중에 조금씩 다가오는 사랑의 감정, 그리고 잊혀져 아득한 기억 속에서만 틈틈이 떠오르곤 했을 옛사랑과의 조우를 그리고 있다. 2회의 이 그림은 하나의 종이에 그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종이 위에 다 다르게 그려지는 그런 그림이다. 가볍게 증발하기 쉬운 수채화가 있는가 하면, 추상화도 있으며, 구상화도 있다.


우선, 무덤덤했던 감정의 표면을 조금씩 뚫고 들어오는 사랑의 감정
이걸 색깔에 비유한다면 어떤 색깔이 좋을까? 분홍색이 될 것 같다. 결혼을 한 유부남인 김태호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윤서영의 존재가 그렇고, 아직은 낯설지만 연호에게 다가오는 한경훈이 그렇다. 김태호의 경우와는 달리 아직 김연호는 사랑의 감정이 표면에서만 겉돌고 있지만 조금씩 사랑이 느껴지리라 싶다.




둘째, 한 때의 취기어린 젊은 날의 실수로 싹트는 사랑의 감정
예기치 않긴 했지만 잠자리를 함께 한 김강호와 유다혜가 그렇다. 일반적인 사랑의 과정과는 달리 육체적인 관계에서 시작되어 정신적인 사랑에 도달하는 그런 관계이다. 이러한 사랑은 어떤 색깔일까? 하나의 색깔을 집어내기가 힘들다. 너무나 명확하지만 그래서 약하기도 한 사랑이 될 수 있기에 은색이 아닐까?


셋째,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날 선 공방의 와중에 조금씩 다가오는 사랑의 감정
김연호와 한경훈의 만남이 그렇다. 이 둘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초등학교 교사 연호가 무엇이 아쉬워 초등학교 아들이 있는 홀아비(?) 한경훈을 사랑할 수 있을까? 참 비현실적인 커플이며 드라마상으로도 대단히 흥미를 자아내는 커플이다. 이들의 사랑은 비현실적이나, 역으로 현실에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사랑이 될 수 있다. 만약 이들의 사랑을 색깔로 칠해 본다면 무슨 색깔이 될까? 비현실적이고 상상에 의존할 만한 사랑이기에 초록색이 아닐까?


넷째, 잊혀져 아득한 기억 속에서만 틈틈이 떠오르곤 했을 옛사랑의 감정
옛사랑이었던 송인선과의 만남의 기대는 김종대를 설레게 만든다. 결혼을 하고 삼남매의 아버지인 김종대의 뒤늦은 감정은 어떤 도발을 시도하게 될지, 아니면 지켜보면서 그 감정을 친구라는 의미속에 감추어 놓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드라마가 경쾌하고 밝은 코믹한 드라마라면 불륜이 자리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다. 아무튼 두고 볼 일이다. 이 사랑의 감정의 색깔은 무엇일까? 추억을 반추하게 하는 사랑의 감정이기에 회색이지 싶다.


http://www.artsnews.co.kr/news/85125


이 사랑의 색깔을 칠하다 보니 김종대와 김태호는 공교롭게도 결혼이라는 문제, 즉 기혼의 문제가 함께 걸려 있다. 우리가 흔히 불륜이라고 하는 그런 부부관계 외적인 관계가 블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2회의 마지막에 김태호가 윤서영의 이름을 부르는 잠꼬대를 하는 것을 들은 정임의 반응이 바로 그것을 암시한다.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거나 결혼은 생명을 탄생시키기에 신성하다거나 하는 상반된 입장들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이 불륜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질지 참 흥미롭다. 이 불륜의 문제는 결혼과 관련해서 아주 다양한 반응이나 결과를 초래하기에 드라마 내용상의 전개도 궁금해 진다.


이 드라마가 이미 결혼을 주제로 스토리가 전개되리라는 예상을 한다면 이러한 사랑의 양상들이 결혼이라는 사회적인 현상과 맺는 관련성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을 선택하고, 포기하고, 유보하고, 또 결혼 앞에서 행복해하고, 슬퍼하고, 후회하고, 상처 입고, 갈등하는 인간관계와 사랑의 모습들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 공식화 되어 있다시피 한 사랑과 결혼의 공식 같은 것도 차제에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정형화된 결혼의 모습에 대한 생각 말이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620201824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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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니야 머니야 2010.06.21 1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신에서 봤던 오윤아 씨가 여기에도 출연하나 봅니다^^
    드라마를 자주보진못하지만, 흥미로와 보이네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2. 라라윈 2010.06.21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무척 좋아라하는 연애와 사랑이야기가 한가득이라
    기대되는 드라마에요~ ^^;;

  3. 루비™ 2010.06.21 1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노 이후로 드라마를 못 보았군요.
    드라마는 못 보았지만
    본 듯이 읽어보았어요.
    멋진 월욜 되세요~!

  4. 블루버스 2010.06.21 1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삼 끝나고 새로 시작한 드라마네요.
    당분간 안보려고 맘 먹었는데.. 이러시면 안됩니다.ㅎㅎㅎ

  5. skagns 2010.06.21 1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기대하시는 분들 많더라구요.
    저는 주말 저녁 드라마는 안 보는터라.. ㅎㅎ;;
    암튼 이렇게 이웃님들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한주 되시구요!





수상한 삼형제, 해피엔딩으로 끝난 마지막회


<수상한 삼형제>가 70회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69회에서 대부분의 갈등들이 해소되고 70회에서 태연희 문제, 어영의 임신, 엄청난의 갈등들이 해결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필자가 <수삼>에 대한 잡글을 써오면서 <수삼>에 대한 리뷰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목격했다. 이것은 막장논란과 줄거리가 쉽게 예상되는 내용으로 <수삼>에 대한 리뷰 가치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수삼>에 대한 잡글을 지속적으로 적어온 것은 막장 논란에 대한 다른 생각에서 기인했다. <수삼>은 막장이 아니라 ‘된장‘ 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삼>은 가족내의,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를 잘 진득하게 잘 보여주었다. 따라서 현실이라는 막장적인 모습을 반영하기에 막장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불륜, 위장이혼, 무기력한 경찰과 검찰, 사기 등 막장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가족내의, 사회 속의 인간 관계를 여과 없이 잘 보여주었다. 이것 마저 부정하고 부인한다면 이건 우리 자신을 너무 기만하는 처사가 아닐까?


아무튼 막장 논란 속에서 <수삼>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시간이 지나면 이 드라마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저 막장 이미지만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던져진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막장이라는 편견 없이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족과 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가족애와 사랑과 부모와 자식에 대해서 말이다.
 

필자는 <수삼>에서 변화를 주목해온 인물들이 몇몇 있었다. 이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이들의 변화는 나를 한 번 더 둘러보게 했다. 드라마가 가진 의도가 마냥 재미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생각도 의미있지 싶다. 막장이라고 했다면 이 인물들에서 나를 발견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의 변화를 생각해 볼 이유도 없다. 자그마한 미덕이 있다고 있었기에 적어도 이 잡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우선 태연희의 문제이다. 필자는 태연희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 될지 관심을 가져왔다.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극 때문에 실망한 차에 만약 태연희의 문제마저도 얼렁뚱땅 개인적으로 변칙적으로 해결된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태연희의 문제는 경찰이 나서서 해결해 주어 다행이었다. 태연희가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뉘우치고 이민을 떠나는 것도 작위적이긴 하지만 만족스러운 해결이었다.


둘째는 엄청난의 문제이다. 엄청난의 변화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엄청난은 참 비극적인 인물이다. 이런 엄청난이 너무 코믹한 존재로 나온 것이 조금은 불만이었다. 마치 슬픈 삐에로 같은 모습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정쩡한 모습 말이다. 아무튼 엄청난은 배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다. 사실 엄청난을 변화시키는 것은 건강이만으로는 한계이다. 엄청난은 진정으로 교육이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스스로 배움을 선택한 엄청난에게 교육이 어떻게 그녀를 변화시킬 지 기대가 크다.
 



셋째는 전과자이다. 전과자의 변화 또한 주시해야할 부분이었다. 보수적이고 앞, 뒤 다막힌 전과자가 도우미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자각 하는 것이나 남편인 김순경과 함께 고아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나 모두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고 넓혀나가는 자기 확장의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전과자는 모진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보니 달팽이처럼 자기 생각에만 안주하고, 스스로 경계를 지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 경계를 깬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지 싶다. 낡고 고루한 생각에서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의 변화가 아닌가 말이다.


넷째는 어영이다. 어영이 또한 전과자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방향성은 반대이다. 진보적인 생각에서 보수적인 생각을 이해하는 방향이다. 어영은 참 합리적이고 이지적이며 개인적인 생각이 투철한 여성이었다. 어영도 마찬가지로 이런 자기틀이란 영역 속에서 살아왔다. 이 틀을 부수어 준 것이 새엄마 계솔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임신 문제에 봉착하여 드러나는 어영의 인식 변화가 그렇다. 아기라는 존재는 남녀가 사랑을 해서 만들어지는 신성한 존재이다. 이것은 합리적인 생각을 초월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삶의 모습이다. 어영이 이러한 부분을 이해해 가는 것은 참 의미있는 변화인 것이다.


<수삼>을 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도 참 많은 허점이 있고 공감하지 못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수삼>의 마지막회를 다 보고 난 지금 지적에 참 너그러워 질 것 같다. 70시간이란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본 드라마가 애정이 없을 수는 없다. 막장이라는 비판에도 인정사정없이(?) 막장을 고수해준 제작진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필자에게는 막장이라기보다는 ‘된장’ 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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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4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6.14 1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이 드라마 자체가 사회적으로 기여한 것이 무엇이었냐고 했을 때 잘못된 부분들도 인정해야 겠죠. 이런 드라마는 솔직히 현실의 불만을 희석시키고 정치 무관심을 낳기도 하니가 말이죠.

  2. 2010.06.14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머 걍 2010.06.14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이런 저런 이슈를 많이 만들어낸 드라마같던데
    이제 종영이 됬군요...쭉 시청하시던 분들은 아쉽겠습니다^^

  4. 자수리치 2010.06.14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피엔딩으로 끝났군요. 제대로된 캐릭터가 없었는데,
    끝날 즈음엔 모두 제정신이 드네요.^^

  5. *저녁노을* 2010.06.14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행히 해피엔딩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ㅎㅎ

    잘 보고 가요.

  6. 영어를잘하는아가시 2010.06.14 2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어디를나가는데


수상한 삼형제, 완벽한 가족드라마?


66회에서 한 바탕의 폭풍같은 소동이 지나간 후 67회는 폭풍 이후의 정적처럼 조용한 편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고만고만한 갈등들이 이어졌을 뿐이다. 제작자들도 정신 없었던 66 회 이후 휴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적은 여전히 갈등을 내재하며 <수삼>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대체로 큰 갈등들이 해소된 상황에서 관계들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등장인물들이 해피앤딩으로 이어지기 위한 밑그림으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거나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엄청난의 변화이다. 엄청난이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도 등장하고, 영재영어학원도 포기하는 등 며느리로써, 아내와 엄마로써의 역할이 조금씩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불론 이 변화의 밑바탕에는 마음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왕지사 엄청난이 변화한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바래온 필자로써는(2010/05/30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아직도 정신 못차린 엄청난?)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대학나온 건강이 초등학교 나온 엄청난에게 편견없이 대해주는 모습도 보기 좋다. 


태연희도 변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전 글(2010/05/25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태연희의 변신은 유죄?)에서 언급했듯이 태연희의 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태연희의 변화가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 단순히 동정을 유발하는 차원에서 대충 마무리하지 않기를 바랬다. 67회에서 태연희가 박사기 일당의 부하들에게 잡히는데, 태연희와 관련해서 이후의 스토리 전개도 흥미를 자아낸다. 과연 태연희가 어떻게 변할까?


변화와는 좀 다른 차원이지만 부영의 심적인 변화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너무 일찍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부영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느끼는 현실 감각이다. 다를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은 부영을 아줌마로 취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부영이 포기한 삶의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볼만 하다.  한참 재기 발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이것저것 삶을 즐겨야 할 시기에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부영의 심정이 드러나고 있다. 부영이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현찰과 도우미 가족의 단란한 모습도 눈에 띈다. 자기 집 한 번 마련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아파트를 구입한 이들 가족에게 행복이 찾아 들어 너무나도 기쁘다. 항상 밝은 모습이었지만 상태와 혼수의 밝은 모습도 참 좋았다. 역시 아이들에게는 가정만큼 소중한 곳도 없다. 가정의 소중함을 본다.  


무엇보다도 어영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어영의 불임 문제는 물론 이전에 고조된 갈등이 해결되고 진정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고 불임에 대한 건강의 태도도 너그롭고 보면 이 불임 문제가 큰 갈등을 일으킬 여지는 없다.  단지 눈여겨 볼 부분은 아기에 대한 어영의 태도이다. 일을 위해 임신을 유보하고자 했던 어영이 이제는 아기를 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은 출산률이 줄어들고 있는 요즈음 현실에서 의미가 있지 싶다. 또한 막상 '불임 가능성' 이란 위기에 처해서 상심하는 어영을 보면서 인생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고 그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랬으면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67회에 깔린 가장 기본적인 정서는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 이었다. 어영의 내적인 고민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큰 지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어영의 불임을 알게 된 계솔이의 태도를 통해 부모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확인 할 수 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계솔이이지만 어영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야말로 친부모 이상이었다. 진정성이 묻어났다.  계솔이가 입고 있는 옷이나, 하는 말씨나 행동을 보면 천박하게만 보이는데, 속마음은 참 따뜻하고 진정성이 있는 여자이다. 인간을 외면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알 수 있다. 주범인이 계솔이를 왜 그토록 사랑했는지를 알겠다. 부모의 자식 사랑과 관련하여, 주범인이나 전과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상을 만나 어영이 문제를 상의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또한 그렇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이상을 위해 약을 지어주는 전과자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모습들에서 미우나 고우나 자식을 위한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67회는 <수삼>에서 막장의 요소들이 말끔하게 사라진 완벽한 가족 드라마에 가까웠다. 소중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수삼>을 막장이라고 비난했던 분들도 이 67회에서는 부부의 정,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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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눈에게 바라듯 청난에게 바라는 것!




<눈에 바라는 것> 이란 영화가 있다. 일본영화인데 참 의미있게 본 영화다. 재미는 없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어 세 번을 본 영화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기 성찰의 영화이다. 왜 필자가 이 영화에 자꾸만 끌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또 보고 싶으니 말이다.


이 <눈에게 바라는 것>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수상한 삼형제>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인물은 엄청난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은 필자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별 관계가 없는 영화가 떠오르면서까지 엄청난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엄청난에게 관심이 있나 보다.


엄청난은 참 많이도 변화해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근원적인 변화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현찰이 연희에게 된 통 당하면서 마음 밑바탕에서 변화가 생기듯이, 연희가 본심을 드러내며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 듯 무언가 분명하게 선하던, 악하던 근본적인 변화를 드러내 주면 좋겠다는 기대 때문이다. 엄청난의 변화는 무언가 미지근하게만 느껴진다. 하행선이 떠나는 그 과정에서 보여준 엄청난의 변화는 외부적인 변화였다면 이제는 좀 더 내면적인 자기 성찰을 좀 하는 모습이 있으면 좋겠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410100916609&p=sisain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건강과 종남만이 아니라 시부모에 대해서, 시동생들에 대한 변화이다. 이 문제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 한 바가 있다(2010/04/15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삼, 하행선이 떠난 이후 엄청난의 숙제는?). 가족이 생기면 역할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형님이 된다. 그 확대된 역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건강, 종남)에게만 관심이 머무른다면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역할들에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그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 정도는 해야하는 것이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언급한 아침라면의 경우가 그런 것이다.


건강과 청난이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만 올인하고 있다. 아무리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을 팽개쳐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가 자신의 역할들을 중단시켜야 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눈에게 바라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이 형님에게로 도피해 오고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자기 성찰의 과정을 겪는다. 아무리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도 말이다. 바로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밋밋하지만 재미없지만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엄청난에게는 그런 근본적인 자기 성찰이 없다. 물론 건강에 대한 고마움, 시부모에 대한 고마움이 없을 리야 없다. 그러나 왠지 미덥지가 못하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어야 보며 자신을 받아들여 준 건강, 자신을 며느리로 인정한 시부모, 시동생들에게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 과정이 전혀 시끌벅적할 필요는 없다.


이 엄청난은 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이다. 주인공으로서의 가장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 인물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랑을 받으며 변화해 가고 있고 그 변화를 흐뭇해하고 있지만 약간 간이 덜 된 국물 같아 이런 사족 같은 글을 쓴다. 고아, 미혼모, 하행선 이라는 굴곡 많고 파란만장했던 삶이었기에 이런 미지근한 변화가 아쉽다는 것이다. 오랜 된 관습을 하루 아침에 깰 수는 없는 것이지만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면적으로 단단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부여주면 좋겠다. 막장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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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عبدلله 2010.04.19 0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사귀게 된 와 함께 이슬람 )))

    http://www.acquainted-with-islam.blogspot.com/

  2. *저녁노을* 2010.04.19 0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신도 하고...
    이제 행복하게 살았음 하는 맘뿐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3. killerich 2010.04.19 0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고 갑니다^^ 촌스런블로그님^^
    행복한 한 주 시작하세요^^



수상한 삼형제, 어영 어떻게 볼 것인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21012341264050&outlink=2&SVEC


어영을 볼 때마다 자꾸만 사이에 낀 어떤 존재로 보인다. 며느리의 위치가 대부분 다 그렇지만 어영은 더욱 그렇게 여겨진다. 우미의 며느리 위치는 고래의 전통적인 방식에 충실하며, 엄청난은 전통적이지도 합리적이도 못한 그런 존재이다. 이들과는 달리 어영은 며느리로서 시댁에 대한 의무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아버지(주범인)와 동생(부영)에 대한 외동딸과 언니로서의 의무와 직장인으로서 며느리의 역할을 하는데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마치 전통적인 시댁 살림을 하고 있는 도우미와 전통적이지도 그렇다고 합리적이지도 못한 엄청난의 중간적인 인물처럼 여겨진다. 아버지 주범인과 동생 부영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면을 드러내면서도 시댁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이해만을 요구하려는 전통과 합리주의의 중간에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상이의 입장 또한 그 양자 사이에서 언제나 난처해지기 일쑤이다.


시댁에서의 며느리라는 입장은 전통적인 성격이 강하다. 시집을 감으로서 호적에서 이름이 삭제되는 것에서 이미 입증이 된다. 특히 큰며느리는 더욱 그렇다. 큰 며느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도우미의 현실이 그 실례이다. 시댁 생활을 하지 않는다 해도 여필종부의 전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이 며느리가 지켜야 할 전통적인 법도이고 예의라는 것이다.


어영은 홀아버지, 철부지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면서 정신적으로 엄마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불행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철부지 동생을 키우면서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자라났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행한 가족사에서 자기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합리적인 성격을 갖추게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어영의 이러한 성격은 설날에 시댁의 제사와 자신의 어머니 제사에 대한 태도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설날에 시댁에서의 제사보다도 자신의 집에서 제사를 우선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합리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어영의 태도가 과연 밉상스럽다고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2010130111020


이러한 문제는 조금만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제사의 시간을 조정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어영이 자신의 집에서 제사를 좀 더 일찍 지내고 시댁의 제사에 맞추어 시댁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만 합리적인 생각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그들의 갈등이 너무 안타까운 것이다. 어영이 밉상스럽고 시어머니(전과자)가 너무 전통적인 것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어영이 밉상스럽다고 하기에는 전통이란 것이 다소 비합리적인 면이 있다. 물론 시부모의 입장을 분명히 배려해야 하지만 시부모도 며느리의 입장을 좀 더 합리적으로 이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니(전과자)는 전통적인 생각이 지배적이다. 어영이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전통적인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어영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기에는 전통적인 성격이 강한 것 같다. 전통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렇다며 전통 속에 내재해 있는 비합리적인 것들을 무조건 오늘날에도 주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영이라는 존재는 바로 이 전통과 합리주의에서 시청자들을 저울질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영이 단순히 밉상스럽다고 한다면 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입장(보수적)일 것이며, 다소 설득력이 있는 존재로 여긴다면 합리성을 중요시 여기는 입장(진보적)일 것이다. 어영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전통을 존중하되 동시에 합리적인 생각도 함께 확대되었으면 한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보수와 진보가 조화를 이루는 그런 사회를 말하는 것과 같다. 언제쯤 이런 사회가 이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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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llerich 2010.02.27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저도 젊었을 때는..비슷하게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보수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서^^;;

  2. 모과 2010.02.27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은 착하고 따뜻한 심성같습니다. 어영이....^^

  3. 2010.02.27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쿠쿠양 2010.02.27 14: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모습같기도 하네요...
    언제나 두부류의 사람들이 부딪히는듯...
    그나저나 이 드라마는 이름이 참;;;

  5. 나인식스 2010.02.27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좀 진보적인가요?ㅋㅋ
    주위사람들은 어영이의 행동이 짜증난다고 하는데,
    전 이해가 됐거든요.....ㅋㅋㅋㅋ

  6. 루루 2010.02.28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부모님 문제만 봐서는 걸어서 하늘까지 님이 보신것처럼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남녀관계 (부부관계)에서 놓고 봐도 어영은 여자가 봐도 남자가 봐도 이기심이 강한 케릭터 입니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 같이 함께 하려면 서로를 이해도 해야되고 그리고 그 사람의 과거를 모르기 때문에
    그사람의 상처를 (살면서 상처 하나 안 받고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보듬어 주면서 자신도 만족감을 느끼며
    상대방도 자신의 상처를 보듬아 주며 서로간의 감정 교류를 하고 또 나아가서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에게 단점으로 보이는 성격을 다른 분야로 활용해서 그 사람의 장점으로 키우는가 동시에
    같이 어울려 사는 주위의 사람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 상대방의 단점을 고치고 맞추어 나가며
    또한 상대방이 자신에게 언제나 거부감을 느끼는 단점을 다른쪽으로 보완하거나 아니면 노력으로 고쳐 나가는 것이
    인간과 인간간의 감정교류의 가장 기초적인 과제 입니다
    하지만 주어영은 그걸 전혀 하고 있지 않지요

    정황적으로 그녀가 어머니 없이 한 집안의 반가장 역활과 동생의 어머니 역활을 어릴때부터 하다보니
    가족에 대한 과도할정도의 가족애를 가지게 된것도 문제지만
    그녀는 그걸 전혀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밉상이긴 하지만 어영의 예전 애인이었던 왕재수가 이제는 왜 떠났는지 이해가 갈 정도지요.
    작가님은 어영이란 케릭터를 만들어서 지금 어린 세대의 며느리들이 고부살이로 겪는 갈등과
    문제점을 이상이란 정말 말도 안될정도로 착한 남편상의 케릭터를 만들어.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위함으로 이렇게 하시는것 같지만 그럴려면

    그것도 한두번이면 괜찮을듯 하지만 점점 심하게 되서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도
    미친년으로 보이게 되는 악영향을 끼치게 된거 랍니다.

    본성이 착하면 뭐합니까.

    자기 가족만 중요한걸 알고 자기 자존심만 중요한걸 알면서
    감정의 교류와 인간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막무간으로 무시한
    케릭터입니다.

    이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면 어영은 그냥 미친년일 뿐인 케릭터로 전락하고 말것 입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3.01 0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 달기가 참 조심스러워 지는군요^^
      루루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수긍할 수는 없네요.보는 이의 나이나 환경에 따라서 어영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겠죠.

      의견 감사합니다~~^^

  7. 2010.03.02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영이가 남자라면
    과연 친정집에서 저랬을까 싶던데요
    남자가 하면 당연한거고
    여자가 저러면 이상하게 비춰지는게
    한국은 아직도 멀었음
    어영이 하는 짓이 딱 한국남자들이잖아요...........
    어영이 말이 공감가는것.............남자들은 왜..........장가만 가면 효자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부모만 되면 말 함부로하고.....시부모에게만
    잘하는게 당연한듯한........더러운 세상.....
    실제로도 정신 나간 시부모들 많더라구요..........
    이 더러운 문화는 언제쯤 바꿔질지

  8. 지나다 2010.03.02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여자지만 어영이 밉상이에요.
    전엔 답답한 도우미..찍소리 못하는 도우미가 미웠는데 요즘은 연희..최고 밉상..담에 어영..버금가요.
    어영..케릭
    이젠 하도 짱짱,징징대서 목소리도 듣기 싫어요.
    자기 생각만 하고 살겠단 말이지...뭐 한마디 한마디..이쁜 구석이 없어.
    도우미랑 반반만 섞이지 그랬는지..
    여튼 남자들..여자 치마폭에 휩싸여 꼼짝 못하는건 예나 지금이나..같단 말야..

    현실이라면...아마..어영이..저런 모습에..신랑..사랑 식어가는건 시간 문제
    여자인..제3자가 어영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나는데..어떤 남자가 평생을 저런식으로
    저만 알아달라고 시집일에는 싫다고 징징대는거 마냥 사랑해줄꼬...
    남..녀를 떠나,,어영이 모습은 아름답지도 않고 사랑해주고 싶지도 않은 모습이네요.

    아마 늙으면 이효춘보다 더한 모습 보일터 ..
    그나마 젊어서는 겉모습보고 사랑을 해줄수 있지만..
    자기편에서 유리하게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은 남자나 여자나 절대 아름다울수 없어요.
    좀있으면 어영이 울상소리 듣기 싫고 실증나 여검사한테 맘이 돌아가야..현실성이 생김.
    이건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닌고 이기..성의 문제 같네요.




김태희, 이병헌의 베드신 그 수위가 어땠길래?




영화의 베드신과 TV 드라마의 베드신 수위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TV드라마의 베드신 수위가 영화에 비해 훨씬 낮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사실 작품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그 적용 수위가 달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드라마와 영화는 그리 다른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위를 결정짓는 것은 작품 외적인 이유 때문이다. 즉, 안방과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차이 때문이다. 이 공간의 차이가 베드신의 수위 차이를 결정 짓는다. 안방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신성한 공간이다. 가족이 상주하는 공간이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하는 공간이다.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안방에 대한 이러한 인식도 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구식의 주거 형태가 정착하면서 안방보다는 거실이 중요한 공간이 되고 가정= 안방이라는 등식이 깨어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TV드라마는 안방의 전유물이며 가족이 함께 보는 상징처럼 되어있다. 영화 채널이나 외화 채널에서 솟아져 나오는 베드신은 노골적인 수위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안방의 TV드라마에서 베드신과 정사신과 섹스신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터부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김태희와 이병헌이 베드신을 연출했다고 한다. 첫 회부터 키스신과 발목 애무신이 있었고 이어서 프렌치 키스와 베드신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항로를 이어가고 있다. 애정의 정도를 표현하다보면 부득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베드신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고 편집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나 연출가의 입장에서는 이런 편집이 예술성을 망치는 것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당한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예술성을 강조한답시고 또는 흥행 수입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안방의 TV드라마에서 노골적인(?) 베드신을 노출하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러한 조치가 정당하다는 판단이 든다. 안방의 TV드라마의 경우는 예술성이나 상업성과 함께 공공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성이라고 해서 뭐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대에 가족용으로 자라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에는 몇 가지 성찰의 문제가 따른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의 결속이나 가정의 분위기가 진보적이어야 하는가, 또는 보수적이어야 하는 가의 문제가 그렇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진보적이어야 하는가, 보수적이어야 하는가? 예를들면, 부모 자식간의 위계적인 권위의 관계가 바람직한지, 아니면 평등에 입각한 친구같은 관계가 바람직한 지는 개인들의 태도와 가치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그 기본적인 선은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 기본적인 선이란 부모의 권위와 자식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서구적인 사고나 생활방식이 침범하지 말아야 하는 마지노선이라고 본다. 부모의 어께위에 자식이 손을 올리면 어깨동무를 하는 식 말이다. 부모 앞에서 애인과 진한 사랑의 키스 같은 것을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 선이 무너지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의미에서 그 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프레임은 보수적인 성격이 강해야 한다고 본다. 진정성과 진실성이 있다면 보수고 진보고 나쁜 것이 결코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보수도 진보도 아니면서 이런 단어로 장식하는 거시 문제가 아닐까? 만약 이런 최소한의 보수성(전통) 마저 무너진다면 가정과 가족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예를들다 보니 이 지경에까지 오고 말았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091022121030128e1&linkid=4&newssetid=1352


김태희와 이병헌의 베드신의 수위가 어떠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면 그 수위가 TV 드라마용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보는 TV 드라마는 극장용 영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옷을 벗고 있고, 섹스의 체위까지 진행되는 장면들이 안방의 TV 드라마에까지 내보내려고 했는지는 쉽게 납득히 가지 않는다, 아마도 TV 영화나 그외 다소 노골적인 프로그램의 추세에 편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베드신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잘 했다고 판단한다.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보수적이어야 좋을 때가 있는 반면에 진보적이어야 좋을 때도 있다. 이 둘을 뒤섞어 놓을 때가 좋을때도 있다. 무너지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무너뜨리는 것이 바람직 할 때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너져서는 안되는 때도 있고, 무너뜨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번의 <아이리스> 베드신이 바로 이런 때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안방의 TV 드라마는 여전히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이므로. 베드신을 보려면 영화관이나 늦은 밤 TV의 영화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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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요 2009.10.26 0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 앞에서 애인과 키스를 하는것이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테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그 선, 문화적 마지노선 이라는건 누가 결정하는걸까요?

    결국 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됩니다. 부모앞에서 애인과의 키스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 문화적 마지노선은 더이상 그자리에 있지 않겠지요.

    문화에 있어서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문화란 단지 여러 사회 요소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니까요.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아이들이 섹스신을 보면 안돼 라는 것도 하나의 문화적 마지노 선이겠지요. 그러나 앞 댓글에 쓴것처럼 아이들은 섹스신을 보면 안되는걸까요? 저는 이 마지노선이 더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3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게 현실입니다. 아시다시피 포르노는 매우 왜곡된 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그 이전에, 예를 들어 10살때, 부모님과 아이리스를 보다가 베드신을 보고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올바른 성과 섹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할 기회가 있었다면 포르노에 의해 왜곡된 성의식을 가질 확률은 확실히 줄어들겠지요.

    제 말투가 좀 주제넘어 보일수 있다는 걸 압니다만 이런 쪽으로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것 같아 써봅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가 없어 홈페이지 주소를 적지 못하는 것에 양해부탁드립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0.26 1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화가 상대적인 것에 동의하신다면 한 번쯤은 우리가 너무 서구 일변도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지 이런 부분도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네요^^
      아무튼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2. 경계선 2010.12.28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구의 옳지못한 영상물을 좋은예절과 문화를가졌던 우리나라에게 맹목적으로 모방하라 하는것은 소에게 개밥을 먹이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예절이나 성문화가 현저히 저질이 되어있다 생각하는 저는

    페미니즘이나 성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진보란것이 존재하지 말아야한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