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믿어요> 59회는 젊음이란 생기와 발랄함 뒤에 붉은 노을빛으로 번지는 황혼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 노을은 우리의 가슴속으로 삶과 죽음, 성장과 늙음, 과시와 달관으로 조금씩 물들어 가며 여러 가지 가치를 성찰하게 했다. 권기창과 김영희의 코믹한 관계, 김우진와 최윤희(김윤희)의 달콤한 사랑의 한 편에 바로 김영호, 이미경의 황혼의 사랑이 있다는 것은 시간이 그리는 삶의 스펙트럼과 늙음의 비의를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이건 참 좋은 일이다. 우진과 윤희의 결혼과 신혼여행, 행복과 기쁨의 한 켠에 이미경의 암 발병과 가슴 뭉큼한 황혼의 사랑을 확인하다는 것은 우리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발랄하고 생기있는 젊음의 열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란 진리를 조용히 일깨워준다. 슬프지만 달관해야할 슬픔으로 조금은 진지하게 우리 삶을 생각케 한다.

이미지출처: http://www.kbs.co.kr/drama/believelove/report/photo/index.html



40년을 교직에서 헌신한 김영호 교감과 전직 교사였던 이미경 부부의 황혼의 사랑은 사랑을 믿어야만 하는 최종의 종착지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믿어요>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사랑의 방식들과 양상들은 결국 김영호와 이미경 부부의 40년 사랑으로 귀착된다. 이런 사실을 어찌 부인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깨는 수많은 복병들이 나타난다.  그런 것들을 이겨낸 부부들이라면 마지막으로 늙음(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이 늙음(죽음) 앞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신앙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테다.



사랑에 관한한 현실속의 사랑이란 말 그대로 참 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사랑은 지폐처럼 냉혹하기도 하며, 사랑은 거짓말처럼 달콤하기도 하며, 총처럼 잔인하기도 하다. 그야말로 너무나 현실적이라 사랑이란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란 회의에 빠지곤 한다. 다 좋다. 세상이 사랑을 이렇게 속되게 타락시켰다해도 그래도 여전히 진실이 살아있음을 본다. 김영호와 이미경 부부이다. 40년쯤 부부의 연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진실하지 아니할까? 이 발견은 정말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김영호와 이미경의 그 황혼의 사랑은 마치 사막에 던져놓은 영롱한 진주같다. 작가는 사막에서 진주를 찾기가 불가능함을 안 모양이다. 그래서 진주를 크게 클로즈업해주었다. 연예계의 달콤한 거품들속에서 사랑을 믿어라는 이 설득력 없는 주장은 그래서 그다지 공허한 외침만은 아닌것 같다. 다행스럽다. 3회를 남겨놓은 지금 <베사메무초>의 대본을 쥐어 짜내는 김영희와 권기창의 노력만큼이나 <사랑을 믿어요>의 작가는 참 고민을 많이 한 듯 보인다.



최근 이순재님(이하 이순재)의 발언이 연예계의 현실을 질타하고 있다. 근데 발언 자체도 소중하지만 이순재가 이러한 발언을 한 사실 자체가 더욱 소중하다고 본다. 정치계에서 능구렁이같은 늙은이들만 보면서 실망해온 우리는 정말 존경스러운 존재를 본다. 연예계는 이런 곳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김영호와 이미경 부부의 클로즈업은 의미가 깊다. 연예계의 현란한 거품속에서 이들 부부의 황혼 사랑은 진실을 일깨우는 소중한 그 무엇이다. 삶은 화려함과 호들갑, 밝음과 기쁨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그림자로서 늙음과 죽음도 도사리고 있다. 왜 이렇게 재수없는 이야기를 하냐고 한다면 이는 너무 지나치게 이분법을 믿는 인간이다. 삶이란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있는 혼돈의 모습이기에 이러한 말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드라마(연계계)는 삶을 위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삶을 성찰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늙고 병이든다. 죽음이 갈라놓을 까지 사랑한다는 표현은 바로 죽음 앞에서, 늙음 앞에서 표현하지 않고 표현되는 진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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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1.07.25 0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도 이런 사랑 하면서 살아야하는데..그쵸? ㅎㅎ
    리뷰 잘 보고가요.
    즐거운 한 ㅜㅈ 되세요

  2. 왕비마마 2011.07.25 0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부럽기도하고 보기좋기도하고~
    저에는 정말 감동적이더라구요~
    노년의 부부애는 사랑보다 진한 것이라던데~
    정말 그런모습을 딱~ 그려낸 듯해서 더욱 재밌었어요~ ^^

    울 촌블님~
    한 주 기분 좋~은 시간 되셔요~ ^^

  3. 해바라기 2011.07.25 0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시작하는 한주 좋은 시간 이어지세요.^^

  4. garden0817 2011.07.25 0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을 믿어요 너무 잘보고있습니다
    노부부의 사랑 정말 너무 좋아보여요 ㅎ

  5. 신기한별 2011.07.25 09: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보내세요~

  6. 새라새 2011.07.25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이런 사랑을 하면 행복하겠죠..
    잘 보고갑니다.^^

  7. racyclub 2011.07.25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보고 꾹!꾹!누르고 갑니다.

  8. 설이 2011.07.26 0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을 믿어요' 라는 제목이 참 따뜻한 느낌이라 좋아요 ^^
    사막의 진주 같은 사랑... 표현이 예뻐요~


 

사랑을 믿어요, 뚱땡이 철수의 정체는?

그저 사람 좋고 평범한 젊은이로만 보이던 뚱땡이 국밥집 사장인 철수가 심상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철수는 이전 드라마 <결혼해주세요>에서 마치 한경훈(한상진 분)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경훈은 연호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정수를 배달하는 사람으로 어느날 갑작스럽게 대단한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인물입니다. 바로 이런 한경훈의 존재처럼 철수도 갑자스러운 변화를 보여줌으로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철수는 김명희에게 실연당해(?) 가출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어딘지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면서 일주일간이나 종적을 감춘 후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또한 오픈카를 타고 김명희 옆을 스쳐지나가기도 합니다. 이에 김명희는 입을 다물지 못한체 놀라기도 하구요. 이러니 도대체 철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철수가 어떤 존재인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설정은 진부합니다. 그저 평범한 젊은이가 알고 보니 대단한 존재더라는 식은 개연성을 무시하는 비약적인 전개입니다. 이런 비약적인 전개를 통해 놀람과 호기심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마치 드라마의 정석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5020096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철수를 이렇게 비약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은 다소 불만스럽습니다. 명희와의 관계에서 보면 이런 불만의 이유가 분명해 지는데요, 명희가 뚱땡이 국밥집 사장으로서 지극히 평범한 철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가의 문제 때문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 좋은 철수를 통해 명희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녀가 사귀고 있는 남자는 아주 도도하고 시건방지며 명희를 여자가 아니라 부하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희는 이런 사내를 좋아합니다. 명희가 한 때 이 사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철수와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이 사내가 다시 명희에게 다가오자 명희는 다시 그 사내와의 관계를 복원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명희는 국밥집 사장보다는 오픈카를 타고 다니는 사내에게 더 가까이하는 것을 보면 다소 속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영심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명희를 변화시켜주는 존재가 사람 좋고 평범한 청년인 철수이길 은근히 바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철수를 어딘지 모르게 범상치 않는 존재로 만들려고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한 것이죠. 결국 명희를 변화시키고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뚱땡이 국밥집 사장이었던 사람 좋고 평범한 철수>가 아니라 <결혼해주세요>의 한경훈처럼 <호기심을 자아내며 새롭게 등장하는 철수>라면 이들 사랑의 의미는 퇴색되고만 마는 것입니다.


아직 철수가 어떤 존재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전의 철수 모습과는 달리 철수에게 비약적인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은 필자의 잘못된 추측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어떤 경우라도 철수가 변화한 모습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철수의 정체는 무엇까요? 철수는 무슨 사업 같은 걸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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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비마마 2011.05.03 0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를 꼭~ 봐야겠다 맘먹으면서도
    `도무지 시간이 나질않아서
    `이번 주도 요렇게 촌블님 포스팅을 통해서
    드라마 스토리를 짜집기해나간다니까요~ ㅋㅋㅋ

    울 촌블님~
    오늘하루도 기분 좋~은 하루 되셔요~ ^^

  2. 해바라기 2011.05.03 0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을 믿어요 글 재밋게 보고 갑니다. 좋은 화욜 되세요.^^

  3. garden0817 2011.05.03 0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철수너무 변해서 깜짝놀랐습니다 어떻게 진행될지 매주 기대가 됩니다

  4. 클라우드 2011.05.03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갈수록 의미심장 해져요.
    기대도 되구여.^^
    고운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5. Tong 2011.05.03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주말 <사랑을 믿어요>를 보는데
    촌스런블로그님이 생각나더라고요 ^^
    흥미진진한 스토리였어요
    조만간 명희가 아저씨를 찾게될 듯한 예감이 팍팍 ㅎㅎ

  6. †마법루시퍼† 2011.05.03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옹~! 혹 재벌집 아들일수도? 덜덜덜...>ㅁ<

  7. PinkWink 2011.05.04 0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근본은 귀여워요.. ㅋㅋㅋ

  8. 지름마존 2011.05.04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가 있는 드라마인가 봅니다...
    좋은글 읽고 조용하게 갑니다...^^

  9. 모르세 2011.05.04 2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10. 블로그엔조이 2011.05.04 2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리뷰 글 잘보고 가요~
    행복한 연휴 되세여~ ^^

  11. 로사아빠! 2011.05.06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거 가끔 보는데,,
    범상치 않아 보이긴 하더라고요^^

  12. Kay~ 2011.05.06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한번도 못본 프로그램이군요! ㅋ
    하지만 잘 읽고 갑니다.


세상의 커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부부로 결합을 하려는 커플들이며, 다른 하나는 그 결합을 깨려는 커플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부류는 결혼이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커플들이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개의 커플들이 부부되기를 희망하며 또 부부의 틀을 벗어나려 노력한다.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일찍이 통찰한 커플들은 부부로 결합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일까.


이렇게 사랑은 단순하지만 동시에 복잡하다. 사랑은 순수하지만 동시에 불순하다. 이런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우리의 일상이다. 사랑했기에 결혼했지만 그 결혼 때문에 불행해져 마침내는 이혼을 하는 것처럼 사랑은 문제를 잠재우기도 하면서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는 이율배반적인 이름이다.  

이미지출처: http://www.kbs.co.kr/drama/believelove/report/photo/index.html

사랑은 너무나 순수해서 때묻은 현실에는 그 면역력이 약하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세속의 한 귀퉁이로 물러나야 할 운명인 경우가 많다. 잃어버린 순수의 시간이나 닳아빠진 감수성이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에서 잠깐 깨어나기도 하지만 잠깐의 시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은 이런 감정을 허락하기에는 너무나 빈틈없이 잘 짜여있다. 물론 잘짜여진 삶의 궤도를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삶을 영화나 드라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 부러운 삶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자위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필자 또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간혹 취기를 빌려 극중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지만 그 연극에서 깨어나면 엄청난 두통이나 후유증이 밀려온다. 인위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다. <사랑을 믿어요> 26회를 보면서 감평이란 걸 쓰려다 이런 흔해빠진 감상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드라마에는 유난히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하는 데, 시나리오 작가가 된 김영희, 시나리오 작가 김수봉, 영화배우 윤화영, 버클리에서 음악을 전공한 김우진이 그런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온 미술 전공의 서혜진도 이 부류에 가깝다. 또 국밥집 주인인 김철수도 우람한 체구와는 달리 발레에 일가견이 있는 부드러운 남자다. 이렇게 보면 <사랑을 믿어요>는 참 소프트한 드라마의 성격을 띠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와는 정 반대이다. 서혜진을 제외하고 드라마 속에서 이들은 아주 분주하고 시끄러우며 지극히 현실적이다. 바로 이런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적인 삶의 낙천적인 변모를 읽는다. 이것이야 말로 예술적인 삶의 우월적 모습의 상징은 아닐까(너무 과장된 추측이겠지만). 이들이 우리의 고단한 삶을 왁자지껄하게 전복해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비록 드라마 속에서이긴 하지만 말이다. 바야흐로 시나리오 작가가 된 김영희와 학원장인 권기창의 역전현상을 목도하고 있으며, 지하방에서 1층 거실로 올라온 김수봉의 모습도 일상적인 풍경으로 보고 있다. 김우진의 자유분방한 모습도 좋다. 빨리 서혜진의 우울한 듯한 모습도 활기를 띄기를 바란다. 필자는 이런 드라마를 본다는 것이 정말 유쾌하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가슴 설레게 한다. 노동자나 가정주부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는 근대적인 드라마관에 일정부분 동조하지만, 그렇다고 현실도피적이며 환각적인 역할을 한다는 비판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 동안 꿈을 꾸고 감정에 빠져들어 보는 것, 추억을 반추해 보는 것, 현실에서 벗어나 보는 것이 어찌 현실 도피라고만 할 수 있을까. 


뭐 그렇다고 드라마의 세계에만 빠져 현실을 망각하자는 말이 아니다. 드라마를 즐기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된다. 상상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일 뿐이다. 동경의 대상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동경과 존재하는 현실에서의 일상적인 삶은 항상 순환되어야 한다. 상상과 현실은 언제나 소통되어야 한다. 인간인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한계이지만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삶의 모습이다. 만약 상상이나 현실, 어느 하나에만 집착한다면 상상과 현실이 조화되지 않는 삶이 되고 만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삶이 아닐까.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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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arden0817 2011.04.14 0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아주 잘보고있습니다 ㅎㅎㅎ
    다들 캐릭터가 매력적이죠 ㅎㅎ

  2. 대빵 2011.04.14 0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에 못 본 글이라 다시 봅니다^^

  3. 리우군 2011.04.14 0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드라마 나름 재미있더라구요 ㅎ

  4. 스마일타운 2011.04.14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 못봤는데 재미있나보군요.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5. 혜진 2011.04.14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촌스런블로그님 덕에 관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세상의 커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부부로 결합을 하려는 커플들이며, 다른 하나는 그 결합을 깨려는 커플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부류는 결혼이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커플들이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개의 커플들이 부부되기를 희망하며 또 부부의 틀을 벗어나려 노력한다.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일찍이 통찰한 커플들은 부부로 결합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일까.


이렇게 사랑은 단순하지만 동시에 복잡하다. 사랑은 순수하지만 동시에 불순하다. 이런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우리의 일상이다. 사랑했기에 결혼했지만 그 결혼 때문에 불행해져 마침내는 이혼을 하는 것처럼 사랑은 문제를 잠재우기도 하면서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는 이율배반적인 이름이다.  

이미지출처: http://www.kbs.co.kr/drama/believelove/report/photo/index.html

사랑은 너무나 순수해서 때묻은 현실에는 그 면역력이 약하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세속의 한 귀퉁이로 물러나야 할 운명인 경우가 많다. 잃어버린 순수의 시간이나 닳아빠진 감수성이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에서 잠깐 깨어나기도 하지만 잠깐의 시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은 이런 감정을 허락하기에는 너무나 빈틈없이 잘 짜여있다. 물론 잘짜여진 삶의 궤도를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삶을 영화나 드라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 부러운 삶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자위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필자 또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간혹 취기를 빌려 극중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지만 그 연극에서 깨어나면 엄청난 두통이나 후유증이 밀려온다. 인위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다. <사랑을 믿어요> 26회를 보면서 감평이란 걸 쓰려다 이런 흔해빠진 감상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드라마에는 유난히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하는 데, 시나리오 작가가 된 김영희, 시나리오 작가 김수봉, 영화배우 윤화영, 버클리에서 음악을 전공한 김우진이 그런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온 미술 전공의 서혜진도 이 부류에 가깝다. 또 국밥집 주인인 김철수도 우람한 체구와는 달리 발레에 일가견이 있는 부드러운 남자다. 이렇게 보면 <사랑을 믿어요>는 참 소프트한 드라마의 성격을 띠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와는 정 반대이다. 서혜진을 제외하고 드라마 속에서 이들은 아주 분주하고 시끄러우며 지극히 현실적이다. 바로 이런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적인 삶의 낙천적인 변모를 읽는다. 이것이야 말로 예술적인 삶의 우월적 모습의 상징은 아닐까(너무 과장된 추측이겠지만). 이들이 우리의 고단한 삶을 왁자지껄하게 전복해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비록 드라마 속에서이긴 하지만 말이다. 바야흐로 시나리오 작가가 된 김영희와 학원장인 권기창의 역전현상을 목도하고 있으며, 지하방에서 1층 거실로 올라온 김수봉의 모습도 일상적인 풍경으로 보고 있다. 김우진의 자유분방한 모습도 좋다. 빨리 서혜진의 우울한 듯한 모습도 활기를 띄기를 바란다. 필자는 이런 드라마를 본다는 것이 정말 유쾌하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가슴 설레게 한다. 노동자나 가정주부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는 근대적인 드라마관에 일정부분 동조하지만, 그렇다고 현실도피적이며 환각적인 역할을 하는 비판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 동안 꿈을 꾸고 감정에 빠져들어 보는 것, 추억을 반추해 보는 것, 현실에서 벗어나 보는 것이 어찌 현실 도피라고만 할 수 있을까. 


뭐 그렇다고 드라마의 세계에만 빠져 현실을 망각하자는 말이 아니다. 드라마를 즐기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된다. 상상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일 뿐이다. 동경의 대상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동경과 존재하는 현실에서의 일상적인 삶은 항상 순환되어야 한다. 상상과 현실은 언제는 소통되어야 한다. 인간인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한계이지만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삶의 모습이다. 만약 상상이나 현실, 어느 하나에만 집착한다면 상상과 현실이 조화되지 않는 삶이 되고 만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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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arden0817 2011.03.27 0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을 믿어요 너무 재미있게 잘보고있습니다 ㅎ
    잘보고가요~!

  2. 해바라기 2011.03.27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연속극은 못봤지요. 글을 통하여 보고싶어지네요. 좋은 휴일 되세요.^^

  3. 자수리치 2011.03.27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 나라 드라마 정말 중독성 강하지요. 한번 보면 빠져 나오질 못한다는~ ^^

  4. 닥터콜 2011.03.27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이 드라마에서 이필모가 참 좋더라구요^^

  5. 이야기캐는광부 2011.03.27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봐봐야겠습니다. ^^

  6. Shain 2011.03.27 1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나라같이 빡빡한 삶을 사는 나라에선 드라마가
    큰 역할을 하고 있지요...
    대중 문화의 역할도 생각을 교환하는 역할도..
    그래서 판타지라고 단순히 폄하할 수가 없습니다...

  7. jewelry 2011.03.28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밋는 드라마군여

  8. 숭실다움 2011.03.29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드라마가 끝나면 한번에
    몰아서 보는 성격인데
    이 드라마도 목록에 추가시켰습니다ㅎ







강호와 다혜의 임신과 결혼과 관련하여 과연 이러한 행동이 요즈음 젊은이들의 행동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지 아니면 드라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참 궁금하면서 의문이 듭니다. 이와 관련해서 강호와 다혜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집어 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드라마상으로 강호와 다혜를 보아오면서, 강호와 다혜의 인간적인 면모와 관계의 성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강호와 다혜를 단순히 영혼이 맑고 순수한 젊은이들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정신적인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아이들로 보아야 할지 애매한 부분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강호와 다혜는 정신적인 수준이 낮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강호가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나, 다혜가 대학생이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되는 것도 이들의 정신적인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을 처음 만나는 과정이나 모텔에서 난리를 치는 사건 등은 도무지 바보 같기만 했다. 어떤 유혹의 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음탕한 생각이 드러난 것도 아니며 처음부터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아무런 생각 없이, 앞 뒤 재는 것 없이 행동한 것 뿐이었다. 강호처럼 어리숙한 인간이 아니라 음흉한 인간이었다면 술 취한 다혜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강호를 만났기에 다혜가 그나마 안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것을 젊은이들의 치기와 순수함으로 여기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이 순수하다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조금 미숙하게 느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보 같은 강호와 다혜의 존재들을 통해서 이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강호와 다혜를 통해서 전해 줄 것은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 같다. 정신이 살짝 빠진 존재들의 행동은 그 인과성이 약기 때문이다. 그걸 단순히 순수함이나 순진함이 일으키는 감동으로 이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에는 동정의 감정이 깊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와는 다르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동정이 아니라 순수하게 아름다운 감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정신이 빠진 인간이 아니라 전적으로 순수한 영혼을 가진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사랑을 우리가 공감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정신이 살짝 빠진 인간들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감동적일 수는 있겠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기보다는 ‘미숙한 정신적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성을 향한 감정‘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이런 지점이라면 강호와 다혜의 사랑은 '바보들의 사랑' 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혼해 주세요>는 강호와 다혜를 아주 순수하고 영혼이 맑은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오히려 강호와 다혜를 정신이 좀 이상한 젊은이로 만들어 놓고 있다. 만약 처음부터 이렇게 정신이 좀 나간 남녀간의 사랑을 그리려 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그러한 의도가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강호와 다혜를 좀 더 정상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랑이 아무리 맹목적이고 설명 불가한 것이라 하지만 강호와 다혜의 사랑은 맹목적이라 생각하기에도 무언가 어색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제작진이 순수함과 맑음을 강조하면서 강호와 다혜를 너무 바보스럽게 만들어 놓은 결과가 아닌가 한다. 더 정신이 나가기 전에 강호와 다혜의 성격을 좀 더 정상적으로 돌려 놓으면 좋겠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6140856471114&ext=na
두번째 이미지: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62108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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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니뭐니 2010.08.01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언제 하는거죠? 사진만 봐도 디게 잼날것 같네요ㅎㅎ
    쌍코피... 한편에 만화를 보는듯^^;

  2. 하녀 2010.08.01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가시
    손님이오셧습니디

  3. 아가시 2010.08.01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님이
    오셧습니다라고
    합니다
    라고하면은
    네에
    손님이오셧서요

  4. 학생 2010.08.01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수는물의자리의
    듯이고
    불화는불의자리의듯이다

  5. 행시녀 2010.08.01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님이
    어던어가시랑같이
    오고잇더라구요





14회의 인상적인 장면들 중에는 신유경의 예상치 못한 등장이 있었다. 거성 식품의 핵심 인력이 된 신유경의 모습은 이전의 신유경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반듯하게 빗어 넘어 넘긴 머리며, 흰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고 있는 신유경은 전형적인 직장 여성의 모습이었다. 대학시절 학생 운동에 투신했던 신유경의 남성적인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여성적인 매력을 가진 모습이었다.

신유경이 거성 식품에 입사한 것은 범상치 않는 결정인 것 같다. 아마도 신유경은 치밀한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을 실행해 갈 가능성이 크게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신유경이 많은 기업들을 놓아두고 굳이 거성 식품을 선택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신유경의 거성 식품 입사 이유를 크게 두가지의 입장으로 언급해 볼 수 있지 싶다.


첫째는 신유경의 현실과의 타협이다. 대학시절 신유경은 운동권에서 대정부 정치 투쟁의 선봉에 섰다. 이것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투쟁 방식이다. 이러한 학생 운동에 전념한 것은 그 자신의 개인적인 환경이 크게 작용했다. 신유경은 평범한, 아니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항상 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이유없는 폭행을 일상적으로 당했다. 그야말로 부모의 사랑이 부재했다. 사랑을 대신해 폭력을 당했다. 그런 삶 속에서 만나 처음으로 웃음을 짓게 한 존재가 김탁구였다. 그래서 신유경에게 탁구의 존재는 누구보다도 소중했다. 이 인상적인 탁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신유경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폭력은 신유경의 마음에서 여성성을 약화시키면서 남성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심리적인 기제를 강화시켰을 것이다. 결국 학생 운동을 선택하는 것도 아버지의 폭력과 동일선산에서 볼 수 있는 남성 중심 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의 죽음을 바랬듯이 신유경은 사회의 거대한 모순과 폭력을 없애고 그 자리에 민주화, 즉 부드러운 어머니의 사랑을 채우고자 했을 것이다.
 

이미 다른 포스트(2010/07/17 - [드라마/제빵왕 김탁구] - 제빵왕 김탁구, 변화를 암시하는 중요한 상징물들) 에서 언급했지만 대학시절 신유경이 항상 쓰고 다니던 모자의 상징성은 바로 사회 변혁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신유경이 거성 식품에 입사하면서 가장 먼저 벗어야 했던 것은 그녀의 사회적 신념을 상징하던 모자였을 것이다. 신유경이 모자를 벗는 다는 의미는 신념을 유보하거나 버리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있다. 모자 대신 단정하게 벗어 넘긴 머리는 전형적인 직장인의 모습으로 사회와의 타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와의 타협은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구마준을 만나면서 싹텄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에 구마준으로 상징되는 사회 현실에 신념의 무모함과 절망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또한 그녀가 학생 시위 이력으로 공안기관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면서 들었던 사회를 변화시키기 보다 자신을 사회에 적응하고 변화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말에 조금씩 자신의 신념이 약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방식이다.
신유경이 현실과의 타협을 하고자 했다면 거성 식품에 입사할 이유가 있었을까?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구마준이 있고, 또 자신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던 서인숙이 있는 곳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신유경이 거성가에 뛰어든 것은 단순히 현실과의 타협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신념의을 구체화하려는 결단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신유경이 비록 모자와 남성적인 투박함을 벗고 세련된 직장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모자를, 신념을 더욱 견고하게 가슴에 품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선은 기업이라는 조직체에 뛰어든 이상 그 기업의 생리와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파악하면서 그것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에 시선을 돌릴 것이다. 그렇다고 신유경이 기업내에서 노동조합에 뛰어들리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러한 신유경의 모습은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약화되리라 싶다.
 

대신에, 드라마상 중요한 개인적인 복수의 차원으로 표출될 지도 모른다. 그녀가 증오할 수밖에 없는 구마준과 서인숙에 대한 복수야 말로 신유경을 거성가로 뛰어들게 만든 이유일지 모른다. 드라마의 전개상 신유경의 사회적인 활동은 축소될 수 밖에 없고, 대신 구마준과 서인숙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에 초점이 맞추어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이 포스트에서 신유경이 왜 거성식품에 입사를 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현실적인 타협과 신념을 구현하는 새로운 실천 방식이라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새로운 실천 방식에는 드라마상 한계가 있기에 대체로 개인적인 복수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 같다. 신유경이 거성가로 뛰어든 것은 흥미로운 사건이다. 조만간 신유경이 왜 거성식품에 입사했는지를 알 수 있겠지만, 미리 상상해 보게 할 만큼 참 궁금한 부분이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61109091405818&outlink=1
두번째 이미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7211018181001
세번째 이미지: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71610235597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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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른 장작 2010.07.24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 불탄 2010.07.24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도 재밌게 읽어보았습니다. ^^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3. 소소한 일상1 2010.07.24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유진이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눈빛도 그렇고 무서울 정도...한실장이나 구회장도 유진의 정체를 알면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구요.

    트랙 걸게요. 감사합니다.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4. 달려라꼴찌 2010.07.24 0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복수겠죠...
    너무 많은 적들을 만들었어요..
    아무튼 흥미를 이끄는 코드가 많습니다 ^^

  5. 미자라지 2010.07.24 0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안봐요...ㅋ
    예능만 보는 1인...
    근데 제빵왕 김탁구 인기 참 많더라구요^^

  6. 풀칠아비 2010.07.24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가끔 보게되는데,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네요.
    이렇게 분석해보고 예측하면서 드라마를 보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7. 카타리나^^ 2010.07.24 1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재밌긴 재밌나봐요
    보는 분들이 꽤 많네요
    전 초반에만 보고 안보고 있는뎅...(근데 진짜 왜 안보게 된거지? ㅡㅡ;;)

  8. DDing 2010.07.24 1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진씨의 연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많던데
    극 중 캐릭터 역시 매력이 있군요.
    블로그 제목과는 다르게 전혀 촌스럽지 않은데요. ^^

  9. blackam2 2010.07.24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볼때는 복수에 초점을 맞춰서 봤는데, 리뷰 읽고, 모자의 상징성이나 이런저런 모습들을 봤을때 현실과 타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탁구를 마음에 품고 있지만 현실의 여러 상황에 부딪히며 악역이 되는 캐릭터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 ^^

  10. 걸어서 하늘까지 2010.07.24 1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역이 되는 캐릭터로군요. 신유경의 앞으로의 행보가 참 궁금합니다.
    즐거운주말 되세요^^

  11. 소춘풍 2010.07.24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리보기를 한듯한 기분이에요. ^^
    상상으로 신유경 이란 인물의 이유를 찾는다는것이,
    왠지, 저도 이 글을 읽으면서, 빠진거 같습니다.
    악역이라지만, 결말에는 다시 선해지길 바래보게되요.
    드라마의 궁극적인 목적은, 권성징악이잖아요. 음음~
    좋은 글을 읽고, 김탁구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다음주 참 기대가 되요~

  12. BlueRoad 2010.07.25 0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 드라마를 두편인가 밖에 못보았는데,
    이웃 블로그에 이렇게 다니면서 줄거리를 다 알게 되었어요..ㅎㅎ
    그래서 가끔 채널 돌리다가 이 드라마가 나오면 내용을 대충 안다지요...^^

  13. 권력지상주의 2010.08.13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유경!정말너무하다
    자신을진심으로사랑했던
    고향친구(김탁구)를매정하게
    차버리고어떻게자기인생을
    부잣집아들놈(구마준)한테
    팔아버릴수있냐!너도어쩔수
    없는권력의희생양이구나!



드라마 <결혼해 주세요>는 우리 사회의 지식 계층(좀 더 급진적으로는 계급)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등장인물(개인)을 통해 그 개인들이 범주화 되는 계층의 특성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학교수인 김태호, 김연호의 맞선 상대이고 결혼을 고려하고 있는 변호사, 의사 송인선의 언행을 통해 지식인 사회의 특성을 어느 정도나마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대학교수 김태호의 사고방식과 언행이다. 드라마상으로 김태호는 오랫동안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처럼 보인다. 아내 남정임의 뒷바라지가 컸다. 만약 남정임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태호는 대학교수라는 직함을 결코 갖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대학교수가 되고 난 이후의 태호의 변화이다. 막상 대학교수가 되고나니 눈높이가 많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대학교수가 뭐길래 아내 남정임에게 그렇게도 유세를 떠는 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내 남정임을 비롯해서 이전의 모든 것들이-과장 좀 보태서-대학교수와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김태호에게 아내 남정임은  대학교수라는 자신의 신분과는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한 잡지사의 부부 인터뷰가 아내를 보는 김태호의 시각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아내에 대한 무시로 이해할 수 있음과 동시에 대학교수라는 지적 우월성, 그리고 현실(실제)과 괴리되는 추상적인 지식(이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연호와 목하 열애중인(?) 변호사(이름은 모르겠음)의 모습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일반적으로 그 신분의 성격 그대로 차가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법이란 이성적인 사유 체계와 연관을 시키기에 그러한 냉정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떠올릴뿐 변호사라는 존재가 차갑거나 냉정해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변호사라는 존재가 냉정하고 차가워야 하는 때는 법정에서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그 누구보다도 깊이 있고 따스해야 한다고 본다. 단지 그것을 지키는 수단이 법이기에 법정에서만은 차갑고 냉정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변호사란 존재가 자신의 삶속에서 조차 법처럼 빈틈없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만 산다면 진정하 변호사도 진정한 인간도 아니라고 본다.
 

연호와 만나는 변호사는 참으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인간이다. 그야말로 빈틈이 전혀 없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기계 같은 인간이 어떻게 진정한 변호사가 될 수 있는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http://www.mhj21.com/sub_read.html?uid=30327&section=section3


셋째로는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이다. 
의사란 어떤 존재이어야 할까? 단순히 인간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존재일까? 만약 의사가 병의 원인은 무시한 채 단지 병의 증상만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그 의사는 진정한 의사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사는 단지 도구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본다.


사실 드라마에서 의사로 나오는 송인선(이휘향분)은 아직 구체적인 언행을 보여주고 있지 않아 그 특성을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자신의 딸인 유다혜에 대한 태도로 보건데 의사로서 세대간의 소통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엄마로서 다혜가 아무리 걱정스럽다고 해도 집에만 가두어 두려는 태도는 엄마로서 뿐만 아니라 의사로서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인간의 병을 고쳐야 하는 입장에 있는 의사가 오히려 다혜가 답답한 마음에 집 밖으로 나와서 술을 마시게 만들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실제) 괴리된 추상적인 지식(이론)을 가진 대학교수, 인간성이 메말라있는 변호사, 마음의 병을 이해하지 못한 체 증상이라는 결과만을 치료하는 의사는 이러한 개인들이 소속된 계층의 성격을 제대로 드러낼 수는 없다. 한 사람의 대학교수로 대학교수 집단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불과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개인들의 모습에서 계층 전체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우려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식인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항상 건강하면 좋겠다.

 
첫번째 이미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2806470785642&outlink=2&SV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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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4 0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수상한 삼형제, 왜 김순경까지 망가트리나?




드라마<수상한 삼형제>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무게중심의 역할을 해온 사람은 ‘수상한 삼형제’ 의 아버지인 김순경이다. 이 김순경의 진지한 말과 행동이 있었기에 그나마 <수상한 삼형제>가 어느 정도 현실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전과자의 포악한(?) 성격과는 달리 김순경은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가장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능한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 방법을 조언해주고, 해결하는 존재였다. 만약 김순경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드라마의 갈등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이다. 그만큼 김순경의 존재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엄청난을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도우미가 다시 학업을 시작하고 요리 학원을 다니는 것을 수용해 주는 것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김순경의 역할이 컸다. 전과자로 인해 생긴 고부간의 갈등의 와중에서도 아내 전과자를 다독이면서도 며느리들의 심정도 헤아리고 이해하는 자상한 남편이자 시아버지였다. 건강에 대한 조언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에서의 역할 뿐만이 아니었다. 김순경은 경찰로서도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하행선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엄청난에 대한 이해, 주위의 불우한 사람을 솔선수범 도와주는 데 이르기까지 선행을 베풀었다. 이런 경찰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경찰에 헌신한 삶이었다. 그야말로 민중의 지팡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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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가장이면서 동시에 모범적인 경찰이었던 김순경이 한 순간에 그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억울하게 경찰복을 벗게 된 김순경이 집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하기 때문이다. 몇 십 년을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집에 머물게 되면 그 인간 됨됨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아무리 이해를 해도 좀스럽게 변해버린 김순경의 모습은 도무지 지켜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전과자가 계모임을 가는 데 빨리 와라느니, 함께 가자느니 하며 전과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불편했다. 또한 가계부를 자신이 쓰겠다는 것이나,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이나 한 결 같이 이전의 김순경과는 너무 달라도 다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김순경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마치 주범인이 개솔이 앞에서 망가지는 것처럼이나 불편하다.


김순경이 이렇게 무너지면 이 드라마의 현실적인 신뢰감도 약화 될 수 밖는 없는 것이다. 가득이나 막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김순경 마저 일관성을 상실하는 것은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그기다 설상가상으로 이상과 태백의 낯 뜨거운 장난, 이상과 어영의 별거 아닌 별거 등이 더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제작진이 의도하는 것이 직장을 잃은 가장의 자화상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순경을 이토록 망가트리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고 본다. 왜 이렇게 인물들을 하나 같이 과장되고 희화화시키는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서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김순경 마저 말이다.
 

앞으로 김순경이 어떻게 변해 갈지는 모르겠지만, ‘사직‘이라는 사실이 인간을 이토록 심각하게 변화시키는 조건이라는 섣부른 강요는 삼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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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uno 2010.04.28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야이거. ㅋㅋㅋ
    아동만화도 아니고 등장인물들 이름이 하나같이 병맛이야. 왜 이래 이거.. ㅋㅋㅋ

  2. 보시니 2010.04.28 1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논란의 중심인 막x 드라마가 갈데까지 가나 봅니다.~

  3. 현실공감 2010.04.28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퇴직한 이시대 아버지상이 아닐런지..

  4. 『토토』 2010.04.28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등장인물을 한번씩 초라하게 만들었다가
    새인물처럼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가 뻔하지요.

  5. *저녁노을* 2010.04.28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맘 아파요.
    트랙백 하나 걸고 갑니다.ㅎㅎ

  6. 공감공감 2010.04.28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퇴직한 남자들의 모습맞습니다.
    단지 차차 그런 모습이 나오는데,
    드라마에서는 좀 빠르게 그런 모습이 나왔을 뿐.

  7. 흐... 2010.04.28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나마 정상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시아버지까지....ㅠ_ㅜ;;

  8. 드자이너김군 2010.04.28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 의젓한 모습의 아버지 마져도.. 희화되는군요.. 수삼.. 정말 안타깝다는..

  9. 2010.04.28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ㅉㅉ 2010.04.28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를 보는거 자체가 한심합니다. 여기와서 댓글 다는 저도 한심하지만 ㅉㅉ

    이런 막장 쓰레기를..

  11. 123113 2010.04.28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퇴직한 아버지들이 집에 머물기 시작하면 저렇게 됩니다. ㅡ.,ㅡ

  12. 며느리 2010.04.28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퇴직하고 집에 앉아 계셔봤는지여..
    전 시아버지께서 농협의 간부까지 지내고 계시다가 퇴직 하셨는데여.. 같이 살면서 보니까
    딱 저렇게 됩니다.. 지금은 안 그러시지만 전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저렇게까지 달라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직하시고 6개월정도 지나니 우울증까지 오시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안버니
    식구들이 날 무시한다고까지 말씀하더이다...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전부터 살갑게 지낸 부부 아니면
    둘이 집에 있어도 서먹서먹하고 할말도 없으니 겉돌지여... 아버지도 할일이 없으시니 냉장고 뒤져
    썩는게 천지라든가 청소 상태가 어떻고 하십니다... 이렇게 싸움이 잦아지다가 부부사이 더 나빠지는 경우도 많구여
    진짜 당해보지 않으셨다면 망가지는 모습이라고 하지 마세여.. 그게 현실입니다.

  13. 모과 2010.04.28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현실보다 좀 늦습니다. 작가가 없는 이야기를 마구 만들지는 않거든요.
    간접으로도 경험을 하고 쓰지요.^^
    현실 돌아 보면 참 더 기가 막힌 경우가 많습니다.

  14. z코로 2010.04.30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퇴직하면 저렇게들 되더라구요^^
    정도의 차이가 약간씩 있을 뿐이구요^^


 

수상한 삼형제, 김순경을 보며 세상을 원망하게 되는 이유?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는 성격적인 결함이나 사회적인 편견을 가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을 덮어 쓴 이유도 이런 인물들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비중있는 인물들 중에서, 수상한 삼형제의 아버지 김순경 만은 거의 무결점의 인물이다. 만약 그가 없다면 수상한 삼형제는 인격적으로 내세울 만한 인물들이 없다.


김순경은 지구대에 근무를 하면서 경위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주위의 불우한 이웃을 조용히 돕는 등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민중의 지팡이로 자부할 만큼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다. 이런 경찰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이 필자의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모범적인 경찰관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공공의 적>같은 경찰 영화에서 보아왔던 약간은 불량스러운 경찰상에 익숙해져서 일것도 같다. 물론 현실 속의 경찰은 많이 다를 것이다. 아무튼 김순경은 참으로 계급과 관계없이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그런 김순경이 귤 2개 때문에 좌천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이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책임도 크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않은 감찰반의 잘못도 크다고 본다. 사실 표창을 받아야 하는 김순경이 오히려 좌천을 당하고 치욕을 받고 사표를 낼 정도라면 이건 정말 잘못된 것이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4112336481001




드라마상으로 볼 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도 건강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잘 살고 있는 엄청난이나 과거의 전력을 용서받은 주범인, 그리고 불륜에서 허덕이던 현찰이 도우미로부터 용서를 받는(연희에게 된 통 당하고는 있지만) 사실등과 비교해 볼 때 귤 2개로 목이 날아가는 상황에 처한 김순경의 처지는 너무 딱해 보인다. 선하게 산 사람들은 약삭빠르지 않기 때문일까? 이게 무슨 장발장의 비극도 아니고 무슨 귤 2개 때문에 이런 험한 꼴을 당한다는 게 어이가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이게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법 없이 살 사람이 법으로 피해를 보는 현실은 법의 존재 근거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법이 지켜주어야 할 사람을 오히려 지키지 못한다면 그 법은 죽어있는 법이지 살아있는 법이 아닌 것이다. 권력을 남용해서 법을 사유화 한다거나 무력화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이것을 법치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권력을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휘두르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이런 현실에서 귤 2개로 사표를 수리하고 하는 김순경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모처럼 막장 드라마의 오명을 덮어쓰고 있는 <수상한 삼형제>가 의도적이던 아니던 현실 비판적인 내용을 선보인 것이다.
 

만약 김순경의 귤 2개의 잣대를 정치인들나 경제인들에게 들이댄다면 과연 자유로울 인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양보해서 드라마 상에서 감찰반이 그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경찰의 부정과 부패를 잘 지적하고 엄벌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현실의 경찰이나 검찰은 어떨까?


너무나 성실하게 살아 온 김순경에게 닥친 사건은 해피엔딩이란 결말과는 무관하게 그 오해가 풀리면 좋겠다. 드라마가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이상 김순경의 경우가 현실에 타산지석이 되면 좋겠다. 정말 김순경 같은 사람들이 존경받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 법의 형평성이 깨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그런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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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0.04.18 0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아온 것이 충직하나였는데 실망감 감출수 없었겠지만, 밀감 2개였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좀 그랬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그냥 믿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 갑갑했습니다.

    잘 보고 가요. 귀감이 되는 김순경임에는 틀림없어요.ㅎㅎ

  2. 달려라꼴찌 2010.04.18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털어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다...
    천하의 도적에겐 도피처를, 선량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없어져야할 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3. killerich 2010.04.18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참..씁쓸했어요...

  4. 50대중반 아줌마 2010.04.19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생각에 이런 설정은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하겠습니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공무원으로서 불명예 사직을 감수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으로선 있을 수 없는 선택이에요. 소설이나 드라마가 때론 과장하여 사회적 문제점을 부각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이건 좀 납득이 안 가는 무리한 설정 같아요.
    아직 드라마가 안 끝났으니 아들 이상의 설득으로 억울한 누명은 벗는데 스스로 노력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꾸는 설정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직을 하는 것도 좋겠지요. 공연히 시청자로 하여금 현 사회를 원망하게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5. 참치 2010.04.28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 죄는 높은사람들이 저지르고 그런사람들 처벌하라고 있는 법으로 서민들 처벌하고




지붕킥, 지훈과 세경 자살인가? 타살인가?


 


정말 실망스러운 결말이었다. 이런 결말은 작가가 너무 염세적이다라는 생각밖에 들게 하지 않는다. 지훈과 세경의 죽음은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살과 사고사와 작가에 의한 타살이 그것이다.


우선 자살이라고 했을 때 지훈이 자살을 선택할 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지훈이 물귀신도 아니고 이제 막 새로 시작하려는 세경과 함께 자살을 선택할 만큼 의지 박약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붕킥에서의 지훈의 모습은 자살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어디를 보아도 죽음에 대한 암시나 성격적인 결함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지훈이 세경과 함께 자살을 선택할 만큼 삶이 고통스러웠느냐, 아니면 세경의 고백을 듣는 순간 지나온 삶이 그야말로 후회스러울 정도로 정음과의 사랑이 자신의 삶이 자괴감에 사로잡혔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세경과 함께 물귀신식으로 ' 함께 죽자' 라는 생각을 했을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죽음은 결코 자살이 될 수 없다.


세경도 마찬가지이다. 지훈이 잡고 있는 핸들을 잡아챘을 리도 만무하다. 그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런 세경이었다면 이 <지붕킥>을 봐 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세경처럼 성숙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도 없다. 세경이 아빠와 신애를 두고 지훈과 자살을 선택할 만큼 무모한 아이는 결코 아니다.



둘째로, 사고인 경우는 상당히 개연성이 있다. 사고란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비가 많이 오고 차 안에서는 감상적인 이야기로 분위기가 한껏 다운이 되었다면 사고의 가능성은 커진다. 그러나 사고라는 우연이 남발된다면 특히나 결말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면 굳이 장시간 동안 드라마를 만들 필요나 삶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줄 이유가 있을까 싶다. 또한 인생은 허무하다, 부조리하다라는 사실을 시트콤에서 보여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사고사라 하더라도 그 사고의 심각성이 지훈과 세경의 정신적인 파멸의 심각성을 상징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마저도 납득하기가 힘들다. 사고가 나게 하는 필연적인 이유도 부족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부조리와 허무에 기인한다면 사고 자체의 이유로는 가능하지만 가족이 모두 보는 국민 시트콤과는 걸맞지 않다. 그들의 죽음이 새로운 희망의 상징이라고 보는가? 예술에서의 허무적이고 부조리한 죽음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둥바등 살아가는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이러한 부조리한 허무주의를 보여주는 건 예술의 지나친 남용이라고 본다.


셋째로 그렇다면 타살인가? 타살이다. 이건 명백하게 타살이다. 작가에 의한 타살이다. 이야기는 등장인물들 스스로가 이끌어 나가야지 작가가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작가의 철학에 의해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파멸을 맞게 된다면 이건 타살에 불과하다. 만약 지붕킥이 처음부터 시트콤이 아니라 부조리하고 허무적인 색채가 드라마의 전반을 지배해온 부조리극이라거나 허무즈이가 두드러졌다면 이러한 죽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지붕킥은 국민 시트콤으로 순재가 자옥과 커플이 되고, 보석의 쾌할함과 신애와 해리가 화해를 하는 등 부조리한 삶보다는 희망을, 슬픔보다는 웃음을 제공해 주었다. 지훈이 정음으로 인해 마음 상처를 받고 있지만 그로 인해 감정에 하몰되어 죽음을 생각할 성격적인 결함을 가진 인물도 아니었다. 세경이 아빠를 찾아 새로운 희망을 시작하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의욕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작가가 이들에게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은 작가의 개입이 이 드라마의 결말을 완전히 망쳤다고 본다. 대본을 쓴다는 것과 이야기 속에 작가의 힘을 행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왜 삶을 이렇게 부조리하게 만들어 버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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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 걍 2010.03.21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TV를 잘 안보는데요.
    지붕킥은 블로거들 글을 많이 봤더니
    꼭 본거 같은 착각이 들었는데 끝났다니 왠지 아쉽네요^^

  2. 모과 2010.03.21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트콤에서 자살 설정은 좀 황당합니다.

  3. 바람처럼~ 2010.03.21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티비를 안 봐서 지붕킥은 잘 모르는데...
    오늘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연속으로 방영을 해서 막방까지 봤네요 -_-
    근데... 전혀 스토리를 모르는 제가 봐도 너무 허무하게 끝나긴 했네요
    정말 사고를 당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4. 달려라꼴찌 2010.03.21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에 의한 타살 맞네요 ^^;;;;

  5. ageratum 2010.03.21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그냥 안보길 잘한거 같아요..
    처음부터 챙겨봤으면 정말 허망했을듯..;;

  6. 2010.03.21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살이라기보다.. 사고사라고 생각했는데요.
    갑자기 멍~해지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하필이면 빗길이었다는 거죠.
    하지만 역시나 제작진에 의한 타살이기도 한데 작가만의 의지였는지 감독과 공모한건지 모르겠군요.
    이 두 캐릭을 이렇게 죽이자는데 감독도 공모했을테니 제작진에 의한 타살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네요.

  7. 해피맘 2010.03.21 2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음을 예술로 승화한다는 거 가족 시트콤에선 아니라고 보는데... 김피디님! 빵꾸똥꾸야!!!

  8. 김의목 2010.03.21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럴수도 있죠..

  9. 악랄가츠 2010.03.22 0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작진의 의한 타살!
    그것이 해답이네요! ㄷㄷ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올지 모르겠지만,
    기대되네요! ㄷㄷㄷ

  10. 못된준코 2010.03.22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이렇게 결말이 난건가요. 요즘 티비를 못봤는데....헉...
    뭔놈의 시트콤에서....자살을???
    참....당화스럽네요.~~

  11. pennpenn 2010.03.22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이렇게 해야 했는지 정말 한심해요~
    잘 읽었습니다.

  12. 세경자살설이 유력 2010.03.22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죽어야할 이유는 세경이 제일 많습니다
    이른바 동반자살설이 유력하죠
    중졸.. 가진거 없는 빈털털이.. 동생을 책임져야하는 무거운 엄마의 무게..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는 키크고 잘생기고 의사에 매너까지 좋은 그야말로 괴물(!)..
    세경이 무모한 아이가 아니라는건 그냥 해석이죠
    여자들, 연애할때 부모고 뭐고 없습니다
    거기에 동의 못한다면 아직 제대로 사랑을 못해본 여성이거나 남자인거죠

  13. blue paper 2010.03.22 1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화는 아직 못봤는데

    어제 저녁먹으면서
    옆자리 분들이;;; 너무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시는바람에 ;;;
    다 알고 말았네요 ;;;

    참...
    충격적인 결말인데....

    작가들이 원망스러워요 ㅜㅜ

  14. 탐진강 2010.03.22 2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에 의한 타살이군요.
    결말이 영 찝찝하죠

  15. 나인식스 2010.03.22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이에요..ㅠ
    좀 해피엔딩으로 해주지,
    찝찝한 엔딩으로 마음만 디숭숭하네요;;

  16. ^^ 2010.03.23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 굉장히 수준 높은 글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

  17. 빨간來福 2010.03.23 0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말들이 많더라구요. 오히려 이런 작은 소동을 바라지 않았나 하는....ㅎㅎ

  18. 신세경 의견이라면서 2010.03.25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에 떴던데...
    자신과 지훈을 함께 죽는 걸로 해달라고 말했고 그것을 감독만 승인했다고...
    무슨 시트콤이 자신과 남자주인공 한 명의 멜로물인 줄 착각했는지..
    거기다가 준혁은 어디로 두고 갑자기 지훈을...
    정말 이해 안가는 자기 중심으로만 세상이 돌아가는 여자



 

수상한 삼형제, 건강은 바보인가? 지극한 사랑인가?




변화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육체적으로는 말 할 것도 없고 육체에 담긴 정신도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변화의 양상이 좀 특이한데 육체는 악화되는 변화(늙음)는 거치는 반면에 정신은 더욱 성숙해진다. 이걸 발전적인 변화라고 하면 될까? 변화는 인간의 본질이다. 육체가 노쇠해 질수록 인간의 정신은 원만해 지고 지혜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이 젊다는 것과 늙었다는 것이 마치 질량불변의 법칙처럼이나 내외의 질적인 면이 상쇄되면서 젊음이 부럽지도 늙음이 한탄스럽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노쇠하는 늙음과 더불어 정신 또한 쇠락한다면 이처럼 불행한 일도 또 있을까? 나이가 들어가면 정신이 조금씩 성숙해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 옹졸해지고 편협해진다면 그걸 퇴보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각설하고......


<수상한 삼형제>의 엄청난은 변화되기가 참 힘든 인물처럼 보였다. 자신이 변화해야겠다는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인간 같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청난과 같은 인간을 교육시키는 것이 교육기관의 궁극적인 사명이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엄청난의 거짓말과 허영과 허세는 보는 내내 얼굴이 확확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과연 엄청난이 어떻게 변할까하는 것이 <수상한 삼형제>의 재미가 될 정도이다. 그만큼 많은 시청자들이 욕을 하면서 보면서도 청난이 변하기를 바라는 심정일 것이다. 정말이지 엄청난에게 변화는 어려운 것 같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다 있나 하는 정도다. 그런데 요즘 이런 엄청난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이 변화를 하는 것은 아주 많은 부분 건강의 힘이 크다. 엄청난이 건강을 통해서 변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상하다. 건강은 답답하고 어리석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물론 건강도 청난을 통해 변해간다. 극중에 건강이 청난을 통해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한다. 인간 관계가 상호관계인 이상 서로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청난의 변화가 의미가 있지만 청난을 변하게 하는 건강의 모습은 생각해 볼만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세상에 과연 건강과 같은 사내가 있을까 싶지. 엄청난을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 폭풍처럼 어려움이 연속해서 밀려오지만 그때마다 청난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80평 아파트가 있다는 청난의 거짓말에도, 수천의 빚이 있음을 알았을 때도, 청난의 아들 종남이를 알았을 때도 건강은 청난을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청난이 종남을 데리고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도 건강은 청난과 종남을 찾아 다녔고 그녀를 다시 결합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이제 건강에 더 큰 폭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하행선이 바로 그 폭풍이다. 아마 가장 험난한 시련이 될 것이다. 건강이 청난을 끝까지 사랑하고 받아들일지 아니면 하행선에게 사랑하는 청난을 양보할지는 알 수가 없다. 마무튼 어떠한 경우라도 건강의 사랑은 참 대단하다.


이러한 건강의 모습은 바보같다. 멍청하다. 현실적으로 볼 때는 불가능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건강이 바보이고 멍청이일까? 이걸 막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드라마이지만 건강은 청난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청난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청난을 끝까지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건강의 모습은 지극한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건강의 사랑을 순수하고 지극한 사랑이라 한 들 욕할 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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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천댁이윤영 2010.03.14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난은 정말 이름그대로 엄청나요.. 근데 건강은 이름이 왜 건강인지 이해가 잘 안되네요..

  2. 새라새 2010.03.14 1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아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라고 봅니다..
    전혀 애정이 없다면 드라마에서 처럼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이유?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2160920131001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는 비판이나 비난을 하나 봅니다. 그런데 필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만큼 막장인 곳이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정작 우리의 현실이 막장이면서 그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상한 삼형제>는 막장 드라마가 아닙니다. 막장 드라마의 한계나 구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막장드라마라고 했을 때 적어도 드라마 자체의 '막장스러움' 과 드라마 내용의 '막작스러움' 을 언급한다고 봅니다. 즉, 드라마 자체의 막장스러움이란 드라마의 구성에 관한 것으로 이야기 전개상에 인과 관계나 개연성이 없이 우연들이 남발되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허구라고 하지만 그럴 듯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드라마 내용의 막장스러움입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 관계의 비상식적이고 엽기적인 행태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고 하는 비판이나 비난은 드라마 내용상의 '막장스러움' 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현찰과 도우미의 부부 관계나, 건강과 엄청난의 관계, 이상과 어영이의 관계등이 비상식적이고 심지어 엽기적이기까지 하는 관계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의 관계, 아니 <수상한 삼형제>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들의 관계가 막장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엄청난의 경우 그녀의 삶이 막장이라기 보다는 기구하다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차라리 이복 동생이 애인이 된다거나 하는 스토리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인간관계가 영화나 소설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상상을 해봅시다. 물론 유명 영화감독과 소설가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수상한 삼형제>라는 영화와 소설이 막장스럽다고 비난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비난이나 비판을 하더라도 문학성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올드보이>나 소설가 김영하의 소설 <오빠가 돌아왔다>는 인간관계로 놓고 볼 때는 그야말로 막장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나 소설을 중고등학생들도 보고 읽습니다. 예술성있는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말입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그리는 인간관계의 엽기성은 현실과 엄청나게 이질적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파고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낯설고 이질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찬사를 받고 문학적이라 칭송을 받습니다. 사실 이걸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엄청나게 막장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21507112124326
 

그렇다면 <수상한 삼형제>는 그 내용상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구성상 이질적이고 엽기적인 인간 관계를 설득력있고 자연스럽게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수상한 삼형제>의 구성에도 그다지 치명적인 흠이 없다고 봅니다. 우연과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좀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구성이 막장일 정도로 엉망진창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수상한 삼형제>를 '막장스럽다' 고 여기게 하는 것일까요? 필자의 판단으로 봤을 때 안방극장이라는 상황이 이러한 막장 운운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막장 드라마라고 낙인 찍힌 드라마들이 대부분 다 그렇습니다. 그 내용이 안방극장과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드라마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그런 부분도 있지만) 드라마 외적인 상황이 빗어놓는 문제인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보는 주말 드라마에 비도덕이고 비윤리적이며 엽기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이 막장스럽다는 것이지요.


좀 더 분명히 해두어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막장스러운 현실을 영화로 소설로 드라마로 반영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은 막장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가족과 함께 보는 주말 드라마의 내용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엽기적이라는 사실이 거북스럽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드라마 자체를 막장이라고 비난하기 보다는 시간대에 맞게 드라마를 만들어라고 주문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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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6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2.17 0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저도 재방송으로 보고 있답니다. 주말드라마다 보니 좀 따라 가기가 쉽네요~~ 제 개인적으로는 막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가끔 막장이니 기사가 뜨는 것 같아서 말이죠^^

  2. PAXX 2010.02.17 0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이거 가끔 보는데도 재밌더라구요^^

  3. 악랄가츠 2010.02.17 0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말드라마는 당최 보지를 못하네요 ㅜㅜ
    월화, 수목드라마는 그나마 챙겨보는데, 흑...
    재방이나 케이블이라도 한번 살펴봐야겠네요! ㅎㅎㅎ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하늘이 2010.02.21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에서 있을법한 일이라면 여자친구 죽여서 며칠동안 자동차 트렁크에 실고 회사다니고, 알몸졸업식하고, 친딸 성폭행하고, 아동 성폭행해서 죽이는 현실까지 다 드라마로 만들 수 있다는 걸까요? 그리고 그러한 내용의 세세한 전개까지 공중파를 탈수도 있다는 건가요?
    님의 글처럼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영화나 소설등 예술을 표방하는 작품들은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똥인지 된장인지 가려야 한다는 거지요.
    남녀관계나 외설, 욕들은 일상 다반사이지요. 현실의 것들이 담겨서 공중파를 타면 무조건 막장이 아닌가요?
    공영방송에서 아무런 제제없이 사람을 자극시키고 정신이상적인 것을 전달한다면, 비판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나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경우에 얼마나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지는 살펴봐야 합니다.
    그저 돈과 시청률에 눈멀어 개념없는 드라마를 만들고 방송하는 이들은 건전한 사회의 기준으로 본다면 퇴출 대상이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3.01 0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늘이님, 댓글 감사합니다^^
      외설적이거나 욕설 같은 나오지 안구요, 막장의 현실을 반영하긴 하지만 마장만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 볼만한 문제거리가 많이 들어 있다고 봅니다. 고부관계, 부부관계,현실과 이상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님이 논리대로라면 티비나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소설이나 드라마가 어떻게 다른지 자 모르겠군요.

  5. 하하 2010.03.06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웃기는 군.

  6. 저도 동감 2010.03.09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황과 캐릭터가 특수할 뿐... 한 드라마에서 많은 얘기를 담으려고 좀 얽혀있을 뿐...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이 많다고 느꼈는데 막장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ㅠㅠ 잊을 수 없는 "헌신하면 헌신짝된다"는 대사ㅎㅎ



하이킥, 주인공들은 조금 이상한 사람들?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0549



지붕 뚫고 하이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금씩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상' 이란 말이 '정상적이 아니다' 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라는 기준을 정상으로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정말 정상적일까?

<지붕 뚫고 하이킥> 속의 세상과 사람들은 실제 현실의 관점에서 보면 좀 이상하다. 왜 이상할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정직만이 있기 때문이다. 본성이 악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양심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이다.
 

만약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나 글이라면 결코 정상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붕 뚫고 하이킥>은 세상의 축소판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과 인간들을 창조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어떤가? <지붕 뚫고 하이킥>의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비정상적인' 세상이다. 조금 바보 같고, 어수룩하고, 게으르고, 가난하고, 비현실적인 다소 이상한 사람들은 '그 조금 이상스러움'으로 말미암아 비정상적으로 취급 받기 쉽다. 이게 심해지면 정신병원에 격리되어야 한다.

 

http://www.radiogfm.net/news/3666


현실 속에서는 '비정상'이 '정상' 을 대체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적인 처세가 정상으로 판단되는 경향이 있다. 적당하게 약삭빨라야 살아남을 수 있고 적당하게 이기적이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응당 그런 삶이 정상적인 삶으로 당연시 되고 있다. 만약 <지붕 뚫고 하이킥>의 조금 이상한 사람들처럼 세상을 살아가다가는 큰 코 다친다.


특히 조직화된 사회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다가는 살아남기가 힘들다. 방귀대장 순재가 실제의 세상에서 회사를 경영한다면 망하기 딱 십상이다. 꺼벙이 보석이 실제 직장에서 그렇다면 당장 해고감이다. 학교에서의 못말리는 공주님 자옥과 남자같은 현경의 관계를 생각하기란 힘들다. 의사와 별 볼일 없는 대학생과의 러브 스토리도 마찬가지이다. 청순한 식모와 주인인 고교생과의 연정도 그렇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바로 이렇게 실제 현실에서는 조롱받고 비정상적이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일들이 다반사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미 언급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관계들이, 이런 삶의 태도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비정상적이거나 이상하지는 않다.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현실이라는 색안경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조롱거리이거나, 비정상이거나 이상할 수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등장인물들이 조금 이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형식과 격식에 짓눌린 자연스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들처럼 살고 싶은 우리의 바람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기에 <지붕 뚫고 하이킥>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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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악랄가츠 2010.01.21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무릎팍에서 박영규가 나와서 말해주어서 알았습니다. ㅎㅎ
    순풍산부인과의 연출가가 지금의 지붕킥 연출가라는 것을 ㄷㄷㄷ
    그는 정말 시트콤의 제왕이네요! ㄷㄷㄷ

  2. killerich 2010.01.21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햄스터 밥 제가 주고 갑니다^^;; 오늘은 아침은 패스하세요^^/

  3. 938호 2010.01.21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유쾌한 사람들~! 이라는 말도 어울리네요 ㅎ

    오늘 하루도 활기찬 하루 되세요~!

  4. 쥬늬 2010.01.21 0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의 냄새가 나기때문에 더욱 인기있는 프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5. 블루버스 2010.01.21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드라마들도 대부분 그런 편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재미라도 있으니 다행이지만요.ㅋㅋ

  6. 팰콘스케치 2010.01.21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 울 와이프가 즐겨봐요!
    저도 함 보고 깊은데 드라마랑 안 친하다보니~!

  7. 몽고 2010.01.21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어서 하늘까지님 할루~

    저 딱 두번본;;;

    다들 잼있다는데;;ㅠㅠ

  8. 달려라꼴찌 2010.01.21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주말에 몰아서 봅니다. ^^

  9. 넛메그 2010.01.21 14: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물이 모두 완벽하다면 내용이 뻔하고 재미없겠죠. 다들 흠이 있어야 엮여지면서 이야기도 재밌는 거고,
    또 무엇보다 최소 한 가지씩 흠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우리네와도 많이 닮아있어서 친근하기도 하구요.



지붕킥, 광수와 인나가 있어서 좋은 몇 가지 이유!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조각상들 같은 선남선녀들이다. 심지어 6살인 자옥도 아름다운 신데렐라 신드롬에 빠진 공주이다. 심지어 70대 순재도 자옥에게 늙어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꾸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보석도 어리벙하긴 하지만 조각 미남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 준혁,지훈,정음, 세경,인나, 줄리엔까지 다 예쁘고 잘생겼다. 그기다 몸짱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특이한 개성 하나로 우뚝한 인물이 있으니, 다 잘 아시다시피 바로 광수이다. 


광수는 투박한 외모와는 달리 마음이 참 따뜻한 남자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개성적인 외모만큼이나 자유 분방하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기 보다는 예술가적인 기술이 다분히 엿보인다. 인나와 함께 듀엣으로 가수 지망을 꿈꾸고 있다. 성격이 낙천적이고 순박하다. 장난이 좀 심하긴 하지만 진지하기도 하다. 광수는 외모만으로 파단할 수 없는 가슴속에 재능이 다분한 개성적인 사내이다.  
 

광수는 자신의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다. 줄리엔의 생일날 하숙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던 날 광수는 인나가 손님으로 온 줄리엔의 친구 외국인과 너무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질투에 빠지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약간의 주정을 한다. 외모지상주의 현실에 대한 자그마한 주정이랄 수 있을까? 필자 개인적으로는 광수가 좀 더 크게, 단호하게 술주정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외모만 색각하는 엿같은 세상! 꽃미남만 생각하는 더러운 현실~~' 이란 말을 크게 외치면서 말이다. 그랬더라면 이땅의 외모 컴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인나는 광수의 외모보다도 그의 개성과 재능을 좋아하겠지만 광수는 여전히 자신의 외모에 그다지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지붕킥>에서 광수의 존재는 젊은이들의 세태에 대해 많을 것을 생각케 한다. 우선, 외모지상주의이다. 이전의 포스트( 
한혜진 얼굴 변천사를 보며 씁쓸한 이유 ) 에서 강조했듯이 마치 우리는 성형수술 권하는 사회에서 살고있는 듯하다. 껌 정도 씹듯이 성형수술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현실에서 광수의 모습은 아름다움에 대해, 개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둘째로는 광수의 외모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인나의 태도이다.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현실에서 인나는 광수의 외모보다는 개성과 재능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것 같다. 이러한 인나의 태도는 외모와 학벌만을 따지는 젊은이들의 세태와는 거리가 먼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는 관점이 기존의 가치를 벗어나서 좀 더 다양해진다면 학벌과 외모만 따지는 비정상적인 사회 풍조를 조금이나마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나가 너무 대견스럽다.



세째로는 연예인들에 대한 도식화된 인식이다. 예쁘고 잘 생겨야 한다는 인식을 전도시킨다. 광수의 이력은 참 화려하다. 그가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진 것은 잘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개성적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외모에 대한 회의가 있었을 것이다. 성형수술에 대한 욕망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추측컨데 광수가 생각한 것은 분명 자신의 개성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선남선녀들 사이에서 맹활약하는 약간은 추남인 광수가 좋다. 이런 광수를 좋아하는 인나도 참 좋다. 화려하고 풍요롭지만 동시에 획일적이고 개성을 상실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세태에서 역으로 나아가려는 광수의 모습은 비록 <지붕킥>에서는 작은 부분이지만 큰 의미로 다가온다. 광수와 인나가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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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llerich 2010.01.14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타이거jk랑..광수랑 닮았나요?..너무 뜬금없죠^^;;
    우릎팍도사가 생각나서요^^..저 햄스터한테 올때마다 밥 주고 있어요..^^;;
    중독성 대단해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여행사진가 김기환 2010.01.14 0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반듯한 연예인들보다는..
    왠지 나같이 생긴 광수가 더 끌리는 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ㅎㅎ

  3. 달려라꼴찌 2010.01.14 0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둘이 남매로 설정되어 나오는거 맞죠? ^^

  4. 머니야 머니야 2010.01.14 0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붕킥..첨엔 저부터 관심있어서..낄낄대고 좋아했는데..어느순간 와이프도 낄낄대며 함께보고 있다가....어느날인가 보니깐 저희딸아이도..같이 낄낄대며..함께 시청하고 있더군요^^
    위 두사람이 아직 비중있어보이진 않지만..스토리를 풍성하게 하는데 역활을 하는것 같고..추후에도 기대해 보고 싶더군요^^

  5. ageratum 2010.01.14 1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둘이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더군요..^^

  6. 보시니 2010.01.14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수 모델 출신 아닌가요..ㅎㅎ 몸매랑 비율 장난 아니던데...
    저 정도 외모면 일반인들과 비교했을 때 킹카~
    지붕킥에선 저정도 외모도 안먹어 줄 정도라니... ㅠㅜ

  7. 2010.01.14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몽고™ 2010.01.14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어서 하늘까지님 할루~

    난 분홍색 정장이 맘에 들군요 ㅋㅋ

  9. dam 2010.01.14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수 쟤는 다음 작품에는 꼭 이미지 변신이 필요한듯. 너무 첫 광고 이미지로 굳혀지는 듯한 감이 있음.

  10. 넛메그 2010.01.14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수와 인나...
    어쩌면 우리나라 시트콤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동거 커플일듯해요ㅎㅎ
    원래 광수네 집으로 설정되어있다던데 매일 드나들고 밤엔 잠까지 같이 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더군요~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1.14 2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pd말로는 동거는 아니고 광수의 하숙집에 인나가 자주 놀러오는 것으로 설정을 했다고 하는군요^^ 근데 꼭 함게 동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피디의 변명인지...

  11. 못된준코 2010.01.14 1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재미난 글 잘봤습니다. 못된준코 블로그 이벤트 합니다...놀러오세요.

  12. ※※※ 2010.01.14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수 근데 옛날 베이징올림픽때 광고나오지않았나요..? ㅋㅋ 우리만수 남대문열렸네

 

MBC 연예대상, 유재석의 수상소감에 공감하는 이유?

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0912/e2009123010455494220.htm


KBS, MBC 연예대상이 이틀 간격으로 성대하게 치러졌고 수상자들이 드러났다. 모든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드린다. 대중들의 즐거움을 위해 1년간 고생한 연예인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재미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의미있는 작업이다. 재미있는 삶을 위해 노력해준 연예계의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물론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들이 레크리에이션, 즉 새로운 충전의 시간으로 자리 잡아야지 현실을 무시하고 간과하는 것으로 자리 잡아서는 안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몇 일전 필자는 KBS 연예대상과 관련하여 포스팅을 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을 맞았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대중은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시상식 사회자에 대한 몇 마디 언급이었는데 이것이 '문제' 가 되었던 모양이다. 이런 와중에 필자에게 강하게 와 닿은 말이 하나 있었는데 '대본' 이라는 말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대본' 이라는 말이 강하게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대본' 이라는 말이었을까? 대본은 영화로 따지면 '콘티'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될까? 짜여진 틀과 그기에 맞추어진 대사나 행동이 떠올랐다. 자유 같은 것도 떠올랐다. 영화의 콘티가 영화의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경의로울 정도이다. 마치 억압과 부자유에서 자유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어서 대본과 관계하여 대중들의 수다를 대신해 주고, 재미를 제공하는 가장 자유로와야 할 연예인과 연예프로그램이 과연 자유로운 것인가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대중들의 수다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공원에서, 카페에서 그 수다들은 자유롭게 펼쳐지지 않는가? 그런데 자유롭게 수다를 떨고 있는 연예 프로그램들의 연예인들이 과연 자유롭게 수다를 떨고 자유롭게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대본에 의해 움직이는 것일까? 그들이 수다 떠는 모습은 그저 자유롭게 보이는 것이기만 할까?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93631


고작 대본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자유롭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단순한 연기란 말인가? <세바퀴>의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수다가 대본에 의한 것이란 말인가? 물론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애드립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본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수다를 추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오해일까? 대본과 관계없이 그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수다를 떨고 재치를 발휘하는 것일까? 우리 삶의 드대로의 모습으로 말이다. <세바퀴><해피투게더><무한도전><1박 2일>도 필자의 오해였으면 좋겠다. 틀렸으면 좋겠다. 대본이 무용할 정도로 그 인기 연예프로그램의 연예인들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런데 대본과 관계하여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KBS나 MBC의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만은 대본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1년 이라는 시간을 따져보면 참 늦었다는 사실이다. 참 늦긴했다. 수상 소감에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그들이 약간은 안타깝게도 보였다. 그래서 강호동이 고함인지 수상소감인지 모를 사자후를 토해낸 것일까? 대본이 모든 자유로움을 박탈하나 자유롭게 보이게 하는(유사 자유로움이라고 하면 될까?) 이러한 모습이 바로 방송의 속성이라는 것일까?


재미있는 사실은 자유롭게 보장된 수상 소감에 대해서만은 방송사들이 그다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생방송에다 대중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연예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연예인들의 성숙함을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축제의 분위기라서?


실제로 연예인들의 수상 소감이 그런 걱정을 확 날려주었다. 감격의 인사로 대부분 채워졌기 때문이다. 눈물이 쏟아지는 격정의 감정 속에서 그저 고마움, 또 고마움뿐이었으니 말이다. 대본이 없는 유일하게 자유로운 수상 소감이지만 그러한 수상 소감들은 마치 대본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천편일률적으로 감격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멘트가 9할을 차지했다. 대본이라면 대본이었다. 전통적으로 이어진 수상 소감이 일종의 대본인 것 같았다. 대중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감사의 연속이라는 걸 이해는 하지만, 대중들의 앞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하면 좋을 법한 것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 아내, 부모, 더 나아가 하느님이나 부처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지나간 과거의 촌스러운 멘트이긴 하지만 미용실 원장님에 감사하는 식은 곤란하지 않을까? 헤어스타일이 중요한 요소들 중에 하나인 미인 대회이고 보면 그런 감사의 멘트를 미용실 원장에게 날리는 것도 당연한 것일까? 강호동이 이경규에게 날린 멘트와 동일선상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올해 유재석의 멘트는 인상적이었다. 대본이 없는 수상 소감으로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제동을 배려한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제동이 누구인가? 올 해 KBS의 언론 탄압의 의심을 싸고 있는 희생자로 여겨지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이 김제동을 위해서 "제동이는 웃고 있지만 나는 마음 아파'라는 훈훈한 배려의 멘트를 날린 것이다. 대본 없는 수상 소감으로 최고의 멘트 중에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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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엔별 2009.12.30 1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상소감 속에서도 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녹아 있었지요.
    그게 바로 유재석을 저 자리에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

  2. dentalife 2009.12.30 1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엔별님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그런 유재석의 미덕이 이제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3. 그러게요 2009.12.30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재석씨가 제동씨에 대한 말할때 정말 찡햇네요
    제동씨도 다른분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여한 모습 멋잇고요!

  4. Phoebe 2009.12.30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유재석....
    그래서 제가 좋아합니다.^^

  5. 달콤 시민 2009.12.30 1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어제 유재석씨 수상소감은 못봤는데.. 완전 궁금하네요~ ..
    어제 초반에 이혁재씨가 먼저 김제동씨를 보면서 kbs엔 안가고 여기 오셨네요~ 하면서 얘기하던데 ,, 동료들이 먼저 이렇게 챙겨주던 모습들이 좋았어요~~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2.30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빵꾸동꾸로 생각해 볼 때 만약 무한도전이 별 인기없는 프로그램이라면 벌써 해체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6. ^^ 2009.12.31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처럼 멋지고 성실한사람이 우리곁에서 웃음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자체가 축복받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7. 하록킴 2009.12.31 0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 의미있는 포스팅이네요^^ 연예인들도 나름 힘들게 일하는데...

  8. 2proo 2009.12.31 0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재석 참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 같아요.
    물론 제가 유재석을 닮아서 이런말 하는건 아니구요 ㅋㅋㅋㅋ
    사실 저도 수상소감 못봤는데... 찾아서 봐야겠군요 ^^

  9. 어휴 2010.01.01 2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블로그엔 유재석라인 옹호글에
    이경규,강호동깍아내리는글뿐이네
    이 편협한새끼야 삐딱하게보지말고좀 똑바로봐라

  10. 희망 2010.09.25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ㄷ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지킴이 내 병은 내가 고친다

  11. ★100배빠른 영어 공부 2010.09.26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공부㉢ 좋은 글 감사합니다<7개 공식으로 100배 빠른 영어공부<100배빠른영어공식★선택하세요



선덕여왕, 비담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리는 이유?

 

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pid=180077&cate=ent&page=

드라마 <선덕여왕>이 지난주에 종영을 했다. 담배를 끊으면 금단 현상이 생기는 것처럼 한동안 비담의 얼굴이 떠올랐다. 급기야 월요일인 오늘은 비담이 되살아 난 느낌이 든다. 비담의 인상이 그만큼 컸던 까닭이다. 비담의 죽음과 함께 모든 갈등이 절정에 다다르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 까닭에 비담이 인상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비담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마지막회에 의해서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담이 갖는 매력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비담에 대한 미련이 많다. 선덕여왕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크다. 염종에게 단호하지 못한 태도도 아쉽기만 하며, 권력에 휩쓸려 들어간 사실 자체도 그렇다. 결말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모든 것들에 감정을 들이대고 만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그러나 결말은 그 자체로 완결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그 자체도 완결이며, 아쉬움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도 완결이다. 그러니 비담에게 작별의 손짓을 보내야 한다. 주저 주저 하다 늦어버렸다. 비담, 정말 매력적이었다.


비담과 함께한 시간들은 참 즐거웠다. 비담이라는 개릭터가 매력적이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비담의 캐릭터가 이 팍팍한 현실에 한 줄기 바람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권력 암투의 한 복판에서 신념보다는 감정의 순수함을 보여준 로맨티스트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권력 암투의 한 복판에서 불필요한 존재처럼 보였다. 더 나아가 드라마 <선덕여왕> 자체를 미지근한 사랑타령의 흙탕물로 빠지게 하는 듯도 했다. 그런데 그건 비담의 잘못은 아니다. 아무튼 비담은 무용지물 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상상해 보라. 권력을 쟁취하는 혁명의 한 가운데서 사랑으로 징징거리는 작자를 말이다. 그런데 그 작자가 혁명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간이라면! 참 난감한 일이 아닌가!




비담의 존재가 바로 이랬다. 비담은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존재인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스러운 인물인 것이다. 이게 너무 좋았던 거다. 이게 너무 매력적이었던 거다. 사랑으로 징징거린 작자가 되어버린 비담이 참 좋았던 거다! 비담이 근엄하기만 하고,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만 하며, 권모술수에 능수능란한 권력 지향의 인물이었다면 존경할 만한 인물은 되었을지언정 매력적인 인물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바보 같은 비담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장면은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시원 했다. 속 시원하다. 한 바탕 칼춤을 춘 뒤 장렬하게 숨을 거두는 비담. 이 장면은 현대의 비극적인 로맨틱 영화 속 주인공의 이상과 꿈을 향한 발버둥과 무엇이 다를까? 정치판의 한 가운데서 진실을 부르짖은 위인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록 페스티벌의 격렬한 저항의 몸짓과 무엇이 다를까? 이렇게 비담의 몸짓은 필자가 처한 현실과 이어지며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아마 필자가 처한 현실 속에서도 이런 바보 같이 수순한 인간을 무의식적으로, 아니 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작가들의 무의식 속에도 이런 바램이 있었을까? 이 각박한 현실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실패하고 비참해지고 놀림감이 되어도 이상을 위해, 꿈을 위해 멋있게 두 주먹을 날리며 죽어가는 사람 말이다. 현실 속에서 이성적으로는 우리가 배타적일 수밖에 없지만, 감성적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정반대의 사람 말이다. 돈키호테라고 하면 될까?


고질적인 질병인 모양이다. 나이 값을 하지 못하는 정신적인 미숙아인가 보다. 현실 속에서 환상의 물방울 놀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환상의 물방울은 금방 터져버리는 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물방울 놀이가 참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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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hoebe 2009.12.29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사진 볼때마다 눈을 어떻게 빨갛게 했을까가 제일 궁금해요.^^

  2. 못된준코 2009.12.29 1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그저 슬프기만 하더군요.
    어쩜 그렇게 비극적으로 결말을 내는지....흑흑

  3. 하록킴 2009.12.31 0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이란 캐릭터가 사극에서는 좀처럼 찾아볼수 없는 인물이여서 기억에 많이 남는것 같습니다^^
    물론 남길씨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도 좋아고요.

  4. montreal florist 2010.01.08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도 더 속상했으리라도 생각이들어여

 

한국인이 1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한국인이 100m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까? 좀 비약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에 앞서 한국인이 100m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을까가 더 적합할 것 같다. 굳이 최고가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만으로 질적인 수준에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상징적인 의미로 생각하자.

현재 100m 세계 신기록은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가 가지고 있다. 육상 100m는 전통적으로 흑인들이 막강한 파워를 형성해왔다. 100m 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름을 대지 않더라도 인터넷만 두드려도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100m 에서의 흑인 난공불락은 백인들에게는 대단한 질투를 불러왔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는 말은 인종적인 우월감을 내세우는 수단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00m에서의 흑인 파워에 대한 극단적 인종 차별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히틀러의 아리안 우월주의였다. 물론 100m에만 한정되지 않는 베를린 올림픽 자체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 극단적인 아리안 주의의 인종 차별에도 불구하고 흑인 100m 우승 기록은 깨어지지 않았다. 제시 오웬스는 그런 인종차별을 겪었다. 좀 끔찍스러운 상상이지만 만약 2차대전 당시 유럽에 흑인이 많았다면 흑인 대학살이 유대인 학살처럼 벌어지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아리안족의 신체적인 우월성보다 흑인들의 신체적인 우월성이 더 높다. 특히 스포츠에 있어서 흑인들의 신체적인 조건은 훨씬 우월하지 싶다. 100m는 말할 필요도 없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그만큼 흑인의 100m 우승은 깨기 힘든 기록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인이 100m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다이다. 100m가 흑인들만의 잔치라고만 할 수는 없다. 현재는 세계를 제패하고 있지만 그 흐름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흑인들의 신체적인 조건이 모든 스포츠 분야에서 뛰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영 같은 종목에서는 흑인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오히려 아시아의 박태환이 세계적인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또 아이스 아키에서도 그다지 많은 흑인들을 보지 못했다. 이것이 영구히 고착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100m가 흑인들의 독점 종목일 수는 없다는 논리도 가능해 진다. 또 육상 자체만을 놓고 볼 때도 중국의 류시앙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남자 허들 110m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알고 있다. 이것은 100m 와 좀 더 이웃한 종목이기에 더 높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모든 전통은 깨어지게 되어있다. 인간도 진화를 거듭한다. 100m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생득적인 신체적인 조건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엄청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의 성장에 유전적인 면과 함께 환경적인 면도 중요하게 여기듯이 스포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유전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개인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국가의 지원등 환경적인 면도 중요한 것이다. 대체로 백인과 일본 선수들이 독점해 오던 피겨 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최고의 자리를 현실로 만든 것도 바로 이런 요소들의 결정체이다. 역도의 장미란 선수도 마찬가지이다. 박태환이 수영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의 가능성도 높여 놓은 류시앙이 110m 허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건 특히 그렇다.
 
이처럼 다른 여러 종목에서 최고 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종적 편견에 가까운 자기 비하의 용어였던 숏다리나 발발이란 말이 이제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인종적인 편견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쓸데없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형의 중독 연예인들처럼 말이다.


박태환 이미지출처: http://blog.daum.net/k1010911/3
장미란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midorc/12380034
우사인 볼트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hayoung1125/98el/34?docid=1IDEx|98el|34|2009081714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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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콤시민 2009.12.01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스스로 체격적인 부분에 있어 한계를 짓는다면.. 아니 그랬다면 아마 박태환선수나 김연아선수는 영원히 나오지 못했을거에요~
    또 반대로 생각한다면 세계를 제패(?)한 양궁이나 쇼트트랙의 최강자 자리도 언젠간 뺏길 수 있다는 이야기^^;

    우리의 가능성은 정말 무한하지요~ ^^

  2. 하록킴 2009.12.01 2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 홧팅! 우리도 할수 있닷! 당장에는 어렵겠지만,가까운 미래에는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3. Reignman 2009.12.02 0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한국신기록부터 좀 깨야 할 것 같습니다.
    한 30년 됐나요? 서말구 선수의 기록..
    암튼 되게 오래 된 것 같은데... ㅎㅎ

  4. 생뚱맞죠 2009.12.02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100미터 신기록 애기로 시작했는데 끝은 성형??? 두서가 없고 완전 일기장에 쓰는글이네

    우리나라애들은 어렸을때부터 죽어라 운동만했잖아 외국애들은 어려서부터 죽도록은 아닌것 같던데

    우리나라처럼 학교홍보할라고 김연아처럼 다 받아주지도 않을뿐더라 어느정도 성적이 되야 운동도 할수 있는

    시스템먼저 도입해야지 무슨 신기록 얼어죽을







연애의 성공과 여행의 상관관계

연애는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이다. 현실은 저만치 멀어지고 둘 만의 새롭고 신비한 세상이 펼쳐진다. 세상은 자신들만의 무대가 되며 세상 사람들은 엑스트라가 된다. 이런 연애감정은 모든 연인들의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인들만의 세상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고 도 모두가 엑스트라인 이상한 세상이 된다. 그게 꼴블견이었을까? 이걸 화들짝하고 깬 영화가 그 이름도 유명한 <슈렉>이다. 마치 엑스트라가 주인공인 듯하고, 그 유명한 만화의 주인공들이 엑스트라가 되었으니 말이다. <슈렉>은 연인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외친다. 그런 현실이 더 사랑스럽다고 외친다.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외모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제법 설득력이 있어서, 슈렉이 멋져 보이고 피오나가 아름다워 보인다.


교훈적인 슈렉. 그러나 현실은?


영화란 그런 거다. 은근히 교훈적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작 연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교훈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이재(利財)에 밝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연인들이 연애라는 황홀한 세상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그것은 지극한 감정의 세계라 이성이 끼어들기가 참 벅차다. 맹목적이다. 세상의 반이 남자요, 여자인데 오로지 한 여자, 한 남자만이 전부가 된다. 노래의 가사나 연애소설의 한 구절만 슬쩍 훑어보아도 연애의 맹목성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은 나의 운명이라느니, 모든 것이라느니, 심지어 이 보다 더 속이 울렁거리고 니글거리는 표현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연애라는 새롭고 신비한 세상이 파열을 일으킬 때가 있다. 운명이었던 존재가 순식간에 더 이상 아무 상관이 없는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이 세상 하나 밖에 없는 주인공에서 엑스트라가 되는 비참함. 그야말로 불시착이다. 아니 추락이다. 운명적인 존재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추락하는 그 충격을 원자폭탄 이상의 위력을 가질 것이다. 이런 충격이 어디 있을까? 꿈속에서 날아다니던 세상은 온데간데없고 소수병이 나뒹구는 어둑한 방구석이다. 이렇게 동화의 세계와 현실을 드나들면서 인간은 성숙해간다. 연애는 아름답다는니...... 하다가, 눈물이라느니...... 하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까지 택한다. 이런 선택은 제발 하지 말어야 한다. 약이 있는데 말이다. 독한 약은 빨리 고칠 수 있지만 몸에는 좋지 않다. 순한 약, 느리게, 느리게 약효를 발휘하는 약이 있다. 그게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참 좋은 약이다. 느리게 효력을 발휘하지만 전방위적인 약효를 발휘한다. 약발의 범위가 아주 넓고 깊다.

시간이 약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연애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지속되고 부드럽게 현실이라는 활주로로 착륙하는 것이 좋다. 부드러운 착륙이란 연애의 무덤이라는 결혼이다. 결혼은 동화의 세계가 현실로 이동하는 입구가 된다. 같은 방에서 비슷한 잠옷을 입고 자고, 방구를 뀌고, 화장기 없는 얼굴을 쳐다보고, 튀어나온 똥배를 보면서 동화의 세계는 서서히 현실이 된다. 결정적인 한방은 아기다. 아기 울음소리에 분유와 귀저기 값 걱정을 하게 되고, 아기 울음에 달콤한 단꿈을 깨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제 현실은 그냥 현실이 아니라 고해의 바다가 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해의 바다. 동화의 세계는 이렇게 서서히 부드럽게 현실로 착륙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렇다면 연애와 여행의 상관관계는 어느 정도일까? 상, 중, 하의 정도로 말하자면 상이다. 파이도표로 말하자면 거의 80% 이상이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 결혼전 연애의 시기이던, 결혼 후 연애이던 연애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수단으로서 여행은 절대적이다.



연애의 성공과 시간의 상관관계는?


그렇다면 연애와 여행의 상관관계가 그토록 클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토록 가슴 뭉클한 연애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지 않는 연인들의 마음이 여행에서 스르르 열린다. 바로 여행지가 동화적인 세계의 배경으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연극 무대에서 무대 배경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된다. 무대 배경이 없는 연극은 여행 없는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좀 억지스럽고 과장되게 여겨지지만, 그만큼 여행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혼전이라면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주장은 아주 설득력이 있다. 신혼여행 없는 결혼을 생각해 보면 상상이 갈 것이다. 또한 우리가 흔히 속된말로 (결혼을 전제로 한다면) 일단 사고를 쳐라는 말은 여행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론 여행이 아니라도 역사적인(?) 사고는 흔히 일어나지만 이국적인 여행의 공간이 사고를 칠 수 있는 더욱 로맨틱한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깊은 사랑을 위해서도, 진실된 화해를 위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동화의 세계를 위한 배경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이렇듯 연애와 여행의 상관관계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애와 여행의 상관관계라는 표현은 너무 막연한 느낌이 있다. 여기에서는 연애의 성공과 여행의 상관관계라고 생각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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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링보링 2009.09.13 1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여행 함께하면 좋겠지만..이것도 현실이 어렵네요..ㅎㅎ




가상공간이 되어 가는 현실, 다시 야만의 시대인가?





쿠키뉴스 기사 일부 캡처화면



오늘 인터넷을 보다가 너무 놀라운 뉴스를 접했습니다. 뉴스 접하셨다면 여러분들도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왠만한 뉴스에도 잘 놀라지 않게 된 현실이 되었지만, 이 뉴스는 가상의 공간(사이버 스페이스, 공상, 상상의 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엽기적인 일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가상의 공간과 현실(실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극단적인 예가 아닐까요? 이런 조짐은 인터넷의 가상 공간이 생겨나면서 있어왔습니다.  사이버 게임상에서 품은 살의를 현실에서 실제로 행하는 것이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경계가 허물어져야 하는 것은 허물어져야 하지만 경제가 분명히 있어야 하는 것은 경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휴전선이나 인간들 사이의 적의의 경계같은 것은 허물어져야 하겠지요. 그 경계가 남아있어야 하는 것의 가장 분명한 예를 들자면 가상공간과 현실의 경제가 아닐까 합니다.


가상 공간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면 그 결과는 정말 파국적일 것입니다. 현실속에 가상적인 것을 응용한다거나 가상의 공간에 현실의 것을 가져다 놓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경계를 전제로 해야하며 또한 선하고 유익한 것으로 한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윈-윈의 사고인 것입니다. 두개의 공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경계 자체가 허물어지고 가상의 엽기적인 행동이 현실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이것은 마치 정신 분열증에 걸린 인간의 정신처럼 분열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가상적인 것을 현실화하려는 분열된 현상 말입니다.


이 엽기적인 임산부 살인 소식을 접하면서, 놀랍게도 제 자신이 현실의 사건에 대한 이성적인 반응이 아니라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습니다. 현실과 가상 공간의 경계가 제 자신의 머리속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할까요. 터미네이터가 떠오르고, 미래의 전쟁이 떠오르면서 임산부의 배에서 나온 아이가 인류의 미매를 구원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으로 이어지더군요. 사건에 대한 무감각한 반응이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태도입니까? 바로 제가 그랬던 것입니다. 충격적인 생각을 하던 머리 속 한켠에서 말입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이렇게 획 돌아 버린 것입니다. 제 머리속에서 현실과 가상의 공간의 허물어진 탓입니다.  


이런 엽기적인 살인이 오래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야만적인 존재였을 적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다시 야만의 시대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요?(이 말에 대해서는 업그레이드 필요함)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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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09.09.02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엽기 호러같은 세상의 단상이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2. 보링보링 2009.09.03 0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너무 무서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