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털은 왜 머리, 사타구니,겨드랑이에 가장 많이 날까?


출처:위키피디아


현대인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털이 사라진 것은 진화일까? 아니면 퇴화일까? 진화와 퇴화는 때로는 참 헷갈린다. 대체로 인간의 신체특징들 중에 퇴화를 한 것은 그 것 자체로는 퇴화지만 신체라는 전면의 기능을 볼 때는 진화가 되는 것이다. 꼬리를 예로 들면, 퇴화했지만 직립보행을 위해서는 오히려 편리해진 것이다. 그러니 진화했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질문하자. 털이 없어진 것은 진화일까? 퇴화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송하다. 털은 직립보행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옷이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털이 있다면 굳이 옷처럼 거추장러운 것을 입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왜 털이 사라졌을까? 인간이 유인원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거쳐 현대인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털은 엄청나게 짦아졌다.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털의 길이가 인간의 진화와 관계있다는 것은 머리털, 사타구니털, 겨드랑이 털이 남아있다는 것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털들의 존재는 진화의 과정에서 털이 엄청나게 사려졌음을 알려준다. 우리의 몸에 남아있는 머리털, 사타구니털, 겨드랑이털은 진화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털이 사라진 것이 인간의 진화의 과정이다. 그것은 남아있는 털들이 입증한다. 그런데 유독 머리털과, 사타구니털,그리고 겨드랑이털만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끝까지 다 없어지지 않고 이러한 털들만 남아있는 것일까? 정말 이해 부득이다. 머리의 경우 두개골로 보호가 되고 있다. 더해서 그것이 부족하다고 진화론상 판단이 내려졌는지 두개골의 두피에 머리털은 그대로 남아있다. 생각을 하는 뇌의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판단한 것 같다.

이미지 출처 http://movie.daum.net/moviedetailPhotoView.do?movieId=40515&photoId=23801


사타구니 털은 어떤가? 그래도 이 사타구니 털은 이해할만 한다. 생각을 하는 기능을 가진 머리와 함께 생식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참 재미있다. 직립보행상 생식기가 위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노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사타구니 부근에 쿠션감을 제공해 주려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진화론상의 선택은 잘못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겨드랑이 털을 보면 알 수 있다. 노출이 되지 않고 그다지 주요한 기능을 하지 않는 겨드랑이에 털이 남아 있다는 것은 머리 털과 사타구니 털이  남아있다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적용되지 않을 뿐더러 합리성이 부족하다. 이상하지 않는가? 겨드랑이도 머리(뇌)나 사타구니(생식기) 만큼 중요한 곳이었을까? 만약 중요하다면 그 중요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왜 겨드랑이에 털을 남기기로 선택했을까?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런 저런 질문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겨드랑이 털은 그저 진화상의 오류일까?
  .    


사실 뼈로 보호받지 않고 살로만 덮여있는 배와 옆구리 쪽도 털이 남아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아니 더 나아가, 추위를 막기 위해서는 몸 전체에 털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보호 받아야 할 곳에 털이 사라지고 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부분적인 퇴화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진화상의 오류일까? 


머리털, 사타구니털이 진화라면, 겨드랑이 털은 그저 진화상의 오류이기만 할까? 너무 궁금하다!



*이 궁금증에 대해서는 이미 학술적인 자료나 정보가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단지 그러한 자료와 정보를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호기심이고 조야한 나름대로의 추측입니다. 그냥 픽션이라는 생각으로 너그럽게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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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간來福 2010.02.10 0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ㅎㅎ 뭘까요? 개인적으로는 진화로 생각하고 싶네요.

  2. 몽고 2010.02.10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어서 하늘까지님 할루~

    겨드랑이부분은 팔과 가슴사이 마찰부위땜에 생긴거일수도 -_-ㅋ

  3. 쥬늬 2010.02.10 0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그러고 보니 궁금하네요... 다시 방문하면 이유가 댓글에 적혀있을지도 모르겠어요~ ㅋㅋ

  4. 친절한민수씨 2010.02.10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겨드랑이 털이 없으니 왠지 팔 움직일떄 마찰이 심하지 않을까요? ㅋㅋ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ㅋ

  5. 감성PD 2010.02.10 17: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답을 기대하고 댓글을 봤는데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안올라왔군요!! ㅎㅎ

  6. 하얀 비 2010.02.10 17: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정말 궁금하게 만드시네요.
    탐구를 해봐야겠어요. 대체 왜...! 그런지.ㅋ

  7. 이름이동기 2010.02.10 1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찰 때문일듯 .... 한데요 ㅎㅎㅎㅎㅎ

  8. 핑구야 날자 2010.02.10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아이들은 겨털 깍으라고....난리예요...




인간의 털은 왜 머리, 사타구니,겨드랑이에 가장 많이 날까?


출처:위키피디아


현대인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털이 사라진 것은 진화일까? 아니면 퇴화일까? 진화와 퇴화는 때로는 참 헷갈린다. 대체로 인간의 신체특징들 중에 퇴화를 한 것은 그 것 자체로는 퇴화지만 신체라는 전면의 기능을 볼 때는 진화가 되는 것이다. 꼬리를 예로 들면, 퇴화했지만 직립보행을 위해서는 오히려 편리해진 것이다. 그러니 진화했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질문하자. 털이 없어진 것은 진화일까? 퇴화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송하다. 털은 직립보행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옷이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털이 있다면 굳이 옷처럼 거추장러운 것을 입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왜 털이 사라졌을까? 인간이 유인원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거쳐 현대인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털은 엄청나게 짦아졌다.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털의 길이가 인간의 진화와 관계있다는 것은 머리털, 사타구니털, 겨드랑이 털이 남아있다는 것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털들의 존재는 진화의 과정에서 털이 엄청나게 사려졌음을 알려준다. 우리의 몸에 남아있는 머리털, 사타구니털, 겨드랑이털은 진화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털이 사라진 것이 인간의 진화의 과정이다. 그것은 남아있는 털들이 입증한다. 그런데 유독 머리털과, 사타구니털,그리고 겨드랑이털만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끝까지 다 없어지지 않고 이러한 털들만 남아있는 것일까? 정말 이해 부득이다. 머리의 경우 두개골로 보호가 되고 있다. 더해서 그것이 부족하다고 진화론상 판단이 내려졌는지 두개골의 두피에 머리털은 그대로 남아있다. 생각을 하는 뇌의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판단한 것 같다.

이미지 출처 http://movie.daum.net/moviedetailPhotoView.do?movieId=40515&photoId=23801


사타구니 털은 어떤가? 그래도 이 사타구니 털은 이해할만 한다. 생각을 하는 기능을 가진 머리와 함께 생식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참 재미있다. 직립보행상 생식기가 위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노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사타구니 부근에 쿠션감을 제공해 주려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진화론상의 선택은 잘못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겨드랑이 털을 보면 알 수 있다. 노출이 되지 않고 그다지 주요한 기능을 하지 않는 겨드랑이에 털이 남아 있다는 것은 머리 털과 사타구니 털이  남아있다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적용되지 않을 뿐더러 합리성이 부족하다. 이상하지 않는가? 겨드랑이도 머리(뇌)나 사타구니(생식기) 만큼 중요한 곳이었을까? 만약 중요하다면 그 중요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왜 겨드랑이에 털을 남기기로 선택했을까?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런 저런 질문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겨드랑이 털은 그저 진화상의 오류일까?
  .    


사실 뼈로 보호받지 않고 살로만 덮여있는 배와 옆구리 쪽도 털이 남아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아니 더 나아가, 추위를 막기 위해서는 몸 전체에 털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보호 받아야 할 곳에 털이 사라지고 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부분적인 퇴화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진화상의 오류일까? 


머리털, 사타구니털이 진화라면, 겨드랑이 털은 그저 진화상의 오류이기만 할까? 너무 궁금하다!



*이 궁금증에 대해서는 이미 학술적인 자료나 정보가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단지 그러한 자료와 정보를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호기심이고 조야한 나름대로의 추측입니다. 그냥 픽션이라는 생각으로 너그럽게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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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llerich 2010.01.16 0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답은..땀이 많이 나서?..ㅎㅎㅎ;; 농담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 머 걍 2010.01.16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듣고보니 아리송하네요.
    암튼 즐건 주말 보내세요^^

  3. 몽고 2010.01.16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어서 하늘까지님 할루~

    사진 쩝니다 ㅋㅋ

  4. 바다애미 2010.01.16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제가 궁금해하던 것의 답을 얻을 수 잇을까해서 봤는뎅... 답이 읎네ㅋㅋ 얼떨결에 잘못났다에 한 표 겁니다.

  5. khakikelle 2010.01.18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편의상 '진화'라고 부르는 과정이 사실은 장기적인 안목이 아니라
    단기적인 안목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잔머리 굴리듯 당장 살아날 구멍이
    있으면 뒷일 생각 안 하고 일 저지르는것과 같이 말이죠. lol
    그러한 이유인지 아직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조차도 학자들은 알아내지 못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사춘기나 이타주의, 얼굴붉히기 같은 것들 말이죠.
    겨드랑이털의 경우 기억나는건 팔을 흔들면서 걷을때 피부의 마찰의 줄여
    주는 역활을 한다고 들은거 같은데... 털의 기능의 설명이지 근본적인 의문은
    역시 해결 못 해줄뿐 궁금증만 남아 찝찝했던 기억이 있어 제목 보고 냅다 달려왔는데
    조금 낚인 기분입니다. lol 좋은 하루되시길 바래요. :)

  6. sinpascal 2011.12.03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털의 기능 다이유가 있죠.. 위에 쓰여진겁니다. 마찰,쿠션등 역할이죠...
    수염의 경우만 좀 특수하죠...

 

지붕킥, 순재가 진정한 주인공인 이유?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265970


한 국가의 60대 이상 인구가 15%가 되면 그 사회를 grey society라고 합니다. 노령사회라는 것이지요. 노령 사회는 그에 맞추어서 실버산업이 발달하면서 경제적인 동력이 얻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 인구의 증가로 복지의 부담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은퇴후 복지 제도의 정착은 선진국을 판단하는 주요한 잣대가 아닌가 합니다.


노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가 이러한 복지의 관점에서 과연 선진국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생각은 다시 구체적으로 나누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복지정책이 선진국인가 하는 문제와 다른 하나로 노인 자신의 파워가 강력해서 은퇴이후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경우에든 만족스럽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지만 일단은 앞으로의 글의 단초로만 삼고자 합니다.


이전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그랬지만 <지붕뚫고 하이킥>의 순재는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순수하고 잘 생긴 사위 보석을 똥 취급하는 듯한 노인 순재의 모습에서 완고한 영감쟁이의 이미지를 느끼기는 하지만 노령사회에서 그런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느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30대 중 후반 이상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이전에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의 '대발이 아버지' 의 부활이자 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발이 아버지' 는 대가족 제도하에서 엄한 아버지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유교적인 가부장제라고 비판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아버지와 대척점에 있는 존재가 민주적인 사고를 가진 며느리 하희라였습니다. 당시에 이 드라마가 약 60% 에 가까운 평균 시청률을 자랑했는데, 그 이유가 이러한 대결적인 구도가 우리의 삶과 너무나 익숙했던 데 기인하는 것이라 봅니다. 아무튼 순재는 그 대발이 아버지의 부활이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부할만이 아니라 진화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진화' 말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변화한 사회에 적응한다는 면에서는 진화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2251903531001



나이가 들면서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은퇴하는 삶의 경로를 밞으면서 노인이 된 분들은 대체로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의 중요한 척도 중에 하나인 돈을 쥐어 잡고 있다면 그만큼 그 영향력은 잃지 않는 것입니다. 또 권력이나 명예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를 일반적인 서민들에게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서민들의 경우는 대체로 고만고만입니다. 물려줄 돈도, 사회적인 명예도 없습니다. 나이들어 아프기라도 하면 차마 하기 싫은 말이지만 '애물단지' 로 전락하고 맙니다. 한국사회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정말 유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효'라는 개념이 많이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설령 효자 자녀들이 부양을 해준다고 해도 그것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부담스럽습니다. 사회의 성격이 그만큼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노인들은 당황스럽습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복지 제도가 확충이 되어서 자녀의 도움없이도 나이들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걱정이 없는 복지 사회가 참된 선진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복지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부족합니다. 빨리 노인들이 걱정없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 복지망이 구축되면 좋겠습니다.


노인 개인적인 경우에도 자신들의 노후의 삶보다 자녀들의 교육이나 미래의 삶에 투자하면서 미래의 삶이 휘청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사교육 문제의 해결과도 직결된다는 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습니다. 우리사회는 너무 자녀중심적인 사회처럼 여겨집니다. 젊어서 자녀에게 투자하다가 나이들어 노후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서민들의 삶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말은 너무 당연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고쳐나가면 좋겠습니다. 자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부부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누군들 자녀를 생각해야 겠지만 그렇다고 은퇴하고 닥칠 노년의 삶 또한 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도한 사교육비, 자녀에 대한 능력이상의 기대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바로 부모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우리 사회의 교육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기본이 아닐가 합니다.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700&g_serial=447829


순재의 모습에서 이러한 삶을 봅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위축될 이유가 없습니다. 재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순재의 경우는 어전히 파워가 막강합니다. 기업의 사장입니다. 이런 순재의 모습은 실제적으로 노인의 이상적인 모습이랄 수 있습니다. 서민들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순재가 <지붕킥>의 주인공입니다. 순재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봐도 아무런 무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대발이 아버지의 부활로 시대적인 향수에도 젖게 합니다. 그런데 대발이 아버지의 부활만이 아니라 진화 또한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대응하는 순재의 모습인 것입니다.


젊음이 사라진다고 해서 젊은 정신까지 사라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순재는 노인이지만 사라진 젊음을 한탄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화라고 한들 무리이겠습니까?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순재가 너무 호들갑을 떤다, 깝죽댄다고 하실런지 모르지만 변화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발이 아버지' 로만 머무르면서 자신만의 껍질 속에 묻혀 있기만 한다면 퇴보가 아니겠습니까? 사회 변화의 적응이나 진화의 면에서 보면 순재야 말로 긍정적인 인물입니다.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순재는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 얼마나 유쾌합니까? 드라마지만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나이 들었다고 누리지 못할 사회적인 혜택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괜히 기죽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순재가 진정으로 주인공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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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탄 2010.01.09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 이순재님께 고맙죠.
    젊은 연기자들 보다 더 열정적으로 보일 때가 많으니까요.
    정말 연기인지 실생활인지 모를 정도로 그분의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2. *저녁노을* 2010.01.09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나이에 열연 하시는 분이죠. 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3. Phoebe Chung 2010.01.09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노인되면 카리스마 팍팍 풍기는 할머니가 되볼까요. 하하하....
    그래도 할머니는 자상한게 좋겠죠?
    할아버지는 카리스마 있으면 좋겠지만....

  4. 여행사진가 김기환 2010.01.09 1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또다른 시선으로 드라마를 보셨군요.
    앞으로는 중년 또는 노년층 연기자들이 진정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5. 하늘엔별 2010.01.09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재없는 하이킥은 바로 로우킥으로 추락할지도 모릅니다. ㅋ

  6. 표고아빠 2010.01.09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대발이 아버지 시절 정말 대단했었지요.
    너무 너무 재밌었던 기억! 이순재님 정말 넘넘 멋진 프로 연기자 이신거 같아요.
    종종 지붕킥 보는데 넘 재밌어요. 그 분의 노련미가 정말 돋보이는거 같아요.

    • 걸어서 하늘까지 2010.01.09 1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순재님 연기력 대단하시죠^^
      하이킥 시리즈에서도 젊은이들 못지않는 열연을 펼쳐주시고 계시죠. 저렇게 인생에서 한 우물을 파시는 분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습니다^^

  7. 쏭쏭이 2010.01.09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무한도전과 함께 대상을 탔을때도 아무도 뭐라그러지 못했죠
    정말 대단하신 분 같아요-
    이순재님 덕분에 하이킥이 더 빛나는거죠ㅋㅋㅋㅋㅋㅋ
    진정한 배우가 아닐까 생각해요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