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굶어서 죽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놀라움의 한켠에서 의문이 일어났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없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녀가 죽고 이름도 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이 그녀의 죽음을 두고 뒤늦게 “명백한 타살”이라는 극한 표현을 사용하며 분노했지만, 그렇다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왜 최고은 작가의 비참한 삶을 죽을 때까지도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타살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조차도 말이다.



‘굶어죽었다’니! 사람이 어떻게 가만히 굶어 죽는단 말인가? 필자의 판단으로는 지병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치료를 받지 못해 거동이 불편했고 그러다 보니 제대로 먹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녀가 남긴 쪽지에 “그동안 너무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며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고 밥을 구걸하다시피 하는 메모를 남겼다고 하니 작가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던가를 알 수있다. 그러나 이런 메모를 남길 정도라면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굶어죽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어떻게 21세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4대강에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돈임에도 인간에게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돈을 투자하는 것일까. 가난한 우리의 작가에게는 왜 이다지도 매몰차기만 했을까.


고 최은정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http://daili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555

그런데 더욱 심각하게도 신인 작가의 이런 비극적인 죽음이 우리 사회의 비현실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라 더욱 걱정스럽다. 왜 이런 비현실적인 비극이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사회의 지나친 경쟁주의와 물신주의, 그에 따른 패배의식이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도달한 것은 아닐까? 무조건 상대를 밟고 올라가려는 무서운 현실이 아닐까? 승자 아니면 패자가 되는 살벌한 경쟁만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인간관계는 붕괴될 수 밖에 없으며 소통의 부재는 피할 수 없는 결과가 아닐까? 그기다 인간성은 황폐해 질 수 밖에 없다. 

 

분명 그녀에게는 찾아갈 만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찾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최고은 작가가 가족을 찾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을까? 그런데 그 부담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작가로서의 절망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화려한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배우들과 제작자들에게 상업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동안 최고은 작가는 팔리지 않는 자신의 작품과 함께 쓸쓸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화려한 영화의 이면에 이런 비극적인 작가가 있다는 사실은 바로 혹독한 경쟁의 횡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녀는 가족에게 찾아가지 않았는가. 확실한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활실한 사실은 분명 힘겨운 사연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쉬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그냥 속수무책으로 굶고만 있었다는 것은 작가로서 그녀의 고단했던 삶과 절망적인 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 뿐만이 아니다. 고인이 된 작가가 단편 영화 '격정 소나타'로 제4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영화계에서 적잖은 각광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해보면, 영화계 안팎으로도 일면식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누를 끼쳤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긂어죽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연의 끈을 연결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고 최고은 작가는 예리하게 잘라져 동강난 우리 사회의 황량한 단면을 소름끼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겉으로 화려한 우리 사회의 잘라진 얼룩진 단면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방에서 한마리의 벌레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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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an 2011.02.10 0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고인의 명복을빕니다.

  2. 따뜻한카리스마 2011.02.10 0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_-;;;
    글을 쓰는 저로서도 정말 섬뜩한 아픔이 저려오는군요-_-;;;
    그만큼 글 쓰는 사람들에 대한 대접이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3. 2011.02.10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박상혁 2011.02.10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명안타까운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만
    이러한 생활고는 작가들만 겪고 있지는 않죠.
    다른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살기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것에 비하면
    조금은 약해 보인다는 생각도 듭니다.

  5. 혜진 2011.02.10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이 기사를 보고 울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더군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6. Yujin 2011.02.10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미국살지만, 이 사건을 읽고 월급이 작다는 비유인줄 알았다니까요.
    60년대도 아니고 어째 이런일이... 도저히 믿기지가않습니다.

    • 그렇죠.... 2011.02.11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분이 미국에서 직장생활하시다가
      한국에서 구직활동 하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시더군요.
      물론 거기서도 어려움이 있으니까 오시는 거겠지만...
      연봉 적어놓은거 보면...참...
      여기 사정을 잘 모르시는것 같았어요....-_-;
      그냥 거기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엄청나게 생기더군요...

  7. Shain 2011.02.10 14: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아가신 분의 심정이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예술가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어했던 것인지
    정신적인 배고픔이 더욱 창궐한 시대라 그런지...
    작가의 사망이 잊혀지지 않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8. 함차가족 2011.02.10 1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아침도..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사회적위치..아니 생계...
    감독이 시나리오를 직접..필요성이 없다 등...자잘한 내용을 토론하더군요.
    시간강사에 시나리오 작가...합리적인 처우가 마련되면 좋겠는데 말이죠

  9. 해피로즈 2011.02.10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너무 가슴 아프고 슬픈 일입니다.
    어쩜 이럴 수가 있는지, 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있네요..
    무명 작가들이 그렇게 힘들게 사는줄 몰랐습니다.
    이제라도 바뀌는 게 있다면 좋겠군요.

  10. jeje 2011.02.10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고아도 아니구, 굶어죽을만큼 연락을 못할 가족이었단 말입니까 ? 밥얻어먹을 가족도 없었던건가요 ?
    그리고 젊은 나이에 가만히 앉아서 굶어죽다니 ;;; 작가이지만 알바정도도 할수없었을지. 현실적으로는 있을수없는일이라
    안타깝지만 답답합니다.

  11. 파리아줌마 2011.02.10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하며 글 잘보았습니다.
    너무 가슴아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2. 생각하는 돼지 2011.02.10 2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굶어 죽을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13. 새라새 2011.02.12 1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공포가 밀려오고 소름이 돋기도 했네요..
    이런 현실이 비록 고 최고은작가에게만 있지 않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것을 느낌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54회에서 오순옥 여사(이하 존칭 생략)는 자궁암 수술을 받기위해서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이때 그녀가 남편 종대와 아들 태호에게 하는 한마디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점심 먹어라' 는 식의 말입니다. 암수술을 받으러 가는 엄마 오순옥의 입에서 남편과 아들이 굶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납득하기가 참 어려울 것입니다. 밥 챙겨먹어라!


http://cafe.daum.net/eoqkdrkwjdryfl/1UBC/596?docid=1DwUX|1UBC|596|20090206175316&srchid=IIMAHOxW10



엄마의 정을 느끼게 하는 한마디이지만 아직도 먹는 것이 해결되지 않은 시절의 의식이 유전되어 온 것만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만나면 "진지드셨습니까?" "밥먹었나?" 하는 식의 인사도 굶주림과 가난이란 유전자가 대대로 전해진 결과일 것입니다.



엄마는 식구들에게 밥을 차려주는(먹여주는) 존재입니다. 암수술을 받으러 가는 순간에도 식구들이 굶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엄마의 정을 너무나도 깊이 느끼는 순간이지만 감정과 언어의 불일치는 이제는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이 패배의식으로 이어져 서로의 굶주림을 확인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따뜻한 정이지만 한편으로는 패배의식의 짙은 그림자가 스며있는 것은 아닐까요? 특히 엄마의 입에서 한 맺힌 듯이 나오는 '밥 굶지 마라' 는 식의 말은 우리 엄마들의 전통적인 모습, 정이 넘치는 엄마의 모습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로서 가사에만 헌신하고, 가족들을 뒷바라지 해야하는 고달픈 현실과 그 현실에만 안주하고 체념하는 그런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순옥의 자궁암 발병은 바로 이러한 엄마의 정서를 그대로 느끼게 합니다. 암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엄마의 헌신과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아버지 김종대가 암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그건 다소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아버지 보다는 좀 더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암, 그리고 밥이라는 말은 우리들 엄마를 고스란히 표현하는 말입니다. 희생과 헌신하는 엄마 바로 그 정많은 엄마의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고 엄마의 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굶주리던 시절의 그 엄마의 한 맺힌 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볼 수 없는 정서에 밥이란 말로 수식하는 것이 반드시 정형화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밥먹어라는 표현보다도, 웃어라, 사랑해라 는 표현도 그 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비주얼한 임팩트가 강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러한 표현을 자주 사용해준다면 그 표현의 전환이 가능해 지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이제 그 정이라는 정서에 다른 무언가로 장식을 해도 괜찮을 법 합니다. 밥보다 더 보이지 않는 사랑과 정의 정서를 표현하는 그런 언어는 없을까요? 과거의 가난과 굶주림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표현하는 그런 언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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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각하는 돼지 2010.12.25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니라는 말은 늘 가슴을 짠하게 합니다...빨리 병마를 툭툭털고 일어나시기 바래요~~~

  2. *저녁노을* 2010.12.25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는 늘 가족챙기는 그런존재이지요. 자신의 건강은 뒷전이고...
    이제...달라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자신의 건강 돌보지 않으면 결국 아픈법이니...
    잘 보고가요.
    즐거운 성탄되세요.

  3. DDing 2010.12.25 15: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에서 조차 어머니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보기 그렇죠.
    밥 먹여주는 존재 말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 자아 실현이 가능한 인물로도 그려지면 좋겠어요. ^^

  4. *아루마루* 2010.12.25 1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이 지나면 그런 단어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과연 어떤 단어가 될지 감이 오지는 않네요 ^^

  5. 자수리치 2010.12.25 2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는 사랑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엄마상도 괜찮을 듯 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잘 보내고 계신죠?^^

  6. PinkWink 2010.12.27 0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해 복많이받으세요^*^
    글과는 관계없이.. 문득.. 엄마한테.. 전화한통 해드려야겠어요...ㅠㅠ

  7. Weight Loss Tips 2011.04.29 0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항목에 대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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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좋 은 글 을 올 렸 다. 감사 나 눔
    새해 복 많이 받 는 유 쾌 한 하루 였 다






어제 같은 제목의 포스트를 올렸는데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듯 하다. 다시 되돌아 보니 필자 스스로의 생각으로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을 다소 억지스럽게 비교해 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필자의 의도는 그렇치가 않았는데 오해를 산 것 같다.

필자의 의도는 이랬다. 6.25를 맞아 6.25의 비참했던 현실을 한 번쯤 상기해 보면서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깨닫고자 했다.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도 가능하지 않았는가 하는 역사의 연속성도 언급하고 싶었다. 

그런데 댓글이 달린 것을 보니 처음의 의도와는 달라진 것 같았다. '금욕주의' '뉴라이트' 등의 단어들이 댓글에 달렸다. 이해할 만은 하다. 6.25는 사실 거의 수구세력들의 전유물처럼 되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편협된 국수주의자도 아니며, 역사의 발전 방향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아니다. 무엇보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사람이다.  또한 이념을 포스트에 담고자 하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월드컵 응원녀와 6.25의 전쟁 고아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만이 불현듯이 떠올랐기때문이다. 그래서 올린 것이 바로 이 포스트(2010/06/24 - [주절주절] - 월드컵 응원녀 vs 6.25전쟁 고아) 이다


화려한 월드컵 응원녀 사진과 낡은  흑백 사진은 참으로 대조가 된다.  이 사진들 속의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단지 그들의 모습 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환경과 삶이 그렇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만약 우리가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얼마나 비참해 질까? (이렇게 이야기 하는 필자의 말에 민족주의를 불러놓으려 한다거나 보수주의라거나 전통으로의 회귀라거나 하지는 말기 바란다) 6.25를 맞아 우리의 비극을 한 번쯤 되돌아 보고 앞으로 우리의 이래에는 이런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오늘은 6월 25일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60년이면 강산이 6번이 바뀐 세월이다. 손에 잡을 만큼 가까운 현실이 아니라 너무나도 멀어진 역사가 되었다. 역사란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겐 절박한 현실이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은 역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주는 달콤한 선물이다. 만약 역사를 우리의 삶, 현실과 단절적으로 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초등학생들에게 6.25는 단지 지나간 역사에 불과하다. 전쟁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이며 사상자라는 수치에 불과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 뿐만 아니다. 그 시절을 살지 않았던 전후 세대들 모두에게는 그저 낡은 역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6.25를 겪은 어른들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이런 경험의 차이,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할 것이다. 삶은 추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경험이다. 현실이고 경험이고 그 현실과 경험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인 오해를 불러 일으키길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행복만을 보기 때문이다. 역사의 추상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는 삶이었고 현실이었다. 그들에게 오늘날 우리의 행복은 무엇일까? 시대착오라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일까? 단순히 세대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는 우리의 행복을 앞에 놓고 지나간 불행, 절박했던 현실, 비참했던 삶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는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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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곳간 2010.06.25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 6.25지요... 저희 앞세대들이 참 힘들게 사셨을 듯해요.. 그분들의 수고.. 잊지 말아야죠^^

  2. 세민트 2010.06.25 2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걸어서 하늘까지님....
    우리 후손들은 6.25를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다 앞세대들 덕분이지요...묵념...

  3. 친절한민수씨 2010.06.25 2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요즘세대는 전쟁을 모르죠? 근데 이쁘긴 이쁘네요 ㅋ

  4. 아디오스(adios) 2010.06.26 1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이쁜 사람과 전쟁의 아픔을 비교해서 사진으로 보니...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느껴지네요

  5. .....`` 2012.06.26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고아가 몇명이나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