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이 에세이집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를 출판했다.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한때 가난과 작은 키 때문에 부모님을 원망했던 적이 있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눈물은 범상치 않는 눈물이다. 그가 이루어 놓은 달인의 면모와는 달리 여린 모습의 눈물은 자전 에세이 속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연예계는 화려하다. 키크고 잘 생긴 선남선녀들이 부유하는 곳이다. 좀 걸맞지 않는 ‘부유’ 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어지간히 잘생기고 재능있는 사람들마저도 떨어지는 곳이 연예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개그계는 좀 나은 편이다. 그럼에도 김병만은 자신의 키와 가난이 열등감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이미지출처: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63584.htm



김병만이 이런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꿈을 포기하지 않은 노력이 아니었을까? 그의 자전 에세이의 제목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느리지만 거북이처럼 쉬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자 한 그 인내와 노력이 오늘날 달인 김병만을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노력을 가능케 한 그의 꿈이야 말로 소중한 삶의 목표가 되었을 것이다.


김병만을 보면 감탄과 부러움의 감정이 엄습해 온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은 그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노력했는지를 짐작해 하며 그의 슬랩스틱 개그는 그의 야무진 재능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성실한 한 인간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김병만의 성공은 그야말로 한 우물을 판 노력의 소산이다. 이런 성공의 정석이야 말로 삶의 정석이 되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훈적이다. 상식적인 것이 교훈적이 되어버린 것은 우리사회의 바람직하지 않는 모습을 웅변한다. 꿈을 가지고 거북이처럼 성실하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성공을 하고 대우를 받는 그런 사회는 이제는 비현실적이 되어버린 듯하니 참 안타깝기만 하다.


김병만 앞으로의 기대가 더 크다. 한 때 루저라는 말이 유행했다. 인간을 평가하는 우리사회의 천박함과 유치함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인간의 신체적인 조건이 인간을 평가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일까 회의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간을 평가하는 표피적인 언어들이 난립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욕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성형공화국이란 낙인이 찍힐 정도였을까! 이런 낙인에도 불구하고 표피적인 언어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몸을 할퀴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 김병만의 존재는 참 의미가 크다. 김병만 개인도 소중하지만 김병만으로 상징되는 표현하기 까다로운 ‘그 무엇‘ 이 더 의미심장하다.  ’ 그 무엇‘ 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김병만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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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비마마 2011.08.19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을 가진 루저라는 말이 왠지 가슴에 와닿네요~
    자신의 꿈을 위해 그누구보다도 많은 땀을 흘렸을 김병만씨~
    김병만씨의 책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울 촌블님~
    오늘도 시원~한 하루 되셔요~ ^^

  2. garden0817 2011.08.19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고 하는데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3. 모과 2011.08.19 0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병만은 키작은 위너입니다.^^

  4. *저녁노을* 2011.08.19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병만에게 박수를...ㅎㅎ

  5. 안나푸르나516 2011.08.19 0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배울점이 많은 사람 입니다... 앞으로도 더 큰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6. 달려라꼴찌 2011.08.19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루저로서 열렬히 응원합니다 ^^;;;

  7. 에바흐 2011.08.19 1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래부터 좋아했던 개그맨이지만,
    키앤크로 더 호감이 됐습니다. 진짜 매력철철 넘치는...+_+





이미지 출처: AP


카리브해의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아이티에서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해 13일 현재까지 수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대 5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만일 이같은 주장이 현실화될 경우, 아이티 지진은 지난 100년 이래 가장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될 것이다.

뉴시스 기사 일부 인용


아이티의 이번 지진 참사가 과연 남의 일이기만 할까? 대규모 재난은 언제든지 닥칠 수 있고 그에 따른 엄청난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지구의 자연재해는 점차 예측이 힘들어지고 대규모화 되고 있다 (역사상 대규모 지진에 관한 자료는 여기를 클릭하여 참조하십시오.) 만약 우리나라에서 진도 7.0을 넘는 지진이 발생한다면 과연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가상을 한 번 해보자. 밤 8시쯤에 우리나라에 진도 7.0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하자. 그 시간대에는 사설 학원에서 과외를 받는 학생들이 많다. 가족과 떨어져서 밤늦게  학원에서 과외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 매몰되고 사망한다면 그런 비극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겠지만 전세계적으로 볼 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구체적인 상상을 해보는 것도 대규모 참사를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는 작은 단초가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일기예보조차 그 예측이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그것으로 판단해 볼 때 우리나라의 대규모 재난 예측은 빗나갈 수 있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를 보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부류들이 꼭 있다. <타워링>이나 최근의 <해운대>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런 부류들 때문에 사전 대피나 예방으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희생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이라고 다를까? 어쩌면 사리사욕 만을 챙기려는 정치인들의 안이한 생각들로 인해 대규모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에 구멍이 뚫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간도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대규모 토록공사나 건설사업과 관련한 부정부패가 부실시공으로 이어지면서 지진등의 재난에서 대규모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예산을 짜는 과정에서 재난 관련 예산을 터무니 없이 깎는 등의 경우도 그렇다. 어느 경우라도 돈을 가지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견실하게 집행해야할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 고위 공무원등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양심과 관련이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대규모 지진이나 해일 같은 대규모 재난이  없었다고 해서,  우리나라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한가하게 아이티의 참상을 불구경 하듯이 해도 될까?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면서 자연재앙은 그야말로 예측불허이다. 어느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안전 할 수 없다.


공허한 메아리가 되겠지만, 그러나 절박하게 바란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쟁을 멈추고, 정치인 권력자들이 사리사욕 버리고 진정으로 진심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자세로 대규모 자연 재해에 대한 비상 대책 같은 것을 함께 숙고해 주었으면 좋겠다. 국민의 안전에 여와 야가 어디에 있을까? 혹 4대강 개발이 대규모 재난 같은 것을 초래하지 않을지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피해를 입는 건 힘없는 국민들이라서 하는 소리다. 불쌍한 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빠를 수록 좋다. 피해의 복구보다도 예방이 더 중요한 것이다.  


아이티의 지진 참상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혹 우리나라에 닥칠 수 있는 자연 재해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획기적이고 효율적인 국가적인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 당장의 토목 공사 예산은 좀 접어 놓고 말이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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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엔별 2010.01.18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린 지질이 고생대라서 지진의 위험이 없다고 하지만, 일부에선 고생대라서 한 번 터지면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다고 하네요.
    일본처럼 잦은 지진이 오면 대비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한 번 큰 거 맞으면 아작날 수도 있다고... ^^;

  2. 팰콘스케치 2010.01.18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는 너무 무방비가 아닌가 생각이 되요~!
    위에서 대비 잘하고 있으리라 생각은 들지만요!
    지진 나면 버틸 건물들이 얼마나 될런지 궁금합니다!

  3. 카타리나^^ 2010.01.18 16: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자연재해는 우리라고 예외일수는 없겠죠
    미리 미리 예방하는것이 가장 최선인데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은듯해요 ㅠㅠ

  4. PLUSTWO 2010.01.18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뉴스에 잠깐보니 서울에 아이티처럼 강진이 발생했을경우 67만명정도가 사망할수 있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실제론 이런일이 안일어나야겠지만...끔찍하네요...

  5. 느릿느릿느릿 2010.01.18 1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교적 우리나라는 자연재해에 안전한 듯 합니다.
    그래도 가끔씩 발생하는 지진을 생각하면 안이한 대응체계를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겠죠.^^;

  6. gosu1218 2010.01.18 1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문장이 가장 와닿습니다.
    땅좀 그만 헤쳐 먹고, 실상 예산이 돌아가야할 데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안전을 위한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겠지요.

  7. 유쾌한 인문학 2010.01.18 2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걸 보면서 우리는 흔히 하는 말로 우리나라는 괜찮음.. 머 단층이 어저고 저쩌고...

    이런게 바로 전형적인 안전불감증...


    터지고나면 뒤늦은 후회... 서울이나 부산에서 저런일이 벌어지면 과연 어찌될지... ㅉㅉㅉㅉ

  8. 넛메그 2010.01.18 2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당하신 말씀!
    우리는 멀쩡한 강을 파면서 오히려 재난을 부르고 있는 셈이죠.

  9. ageratum 2010.01.19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도 안심하고 있다간 한방에 훅 갈텐데..;;
    미리미리 대비를 했으면 좋겠네요..

  10. 938호 2010.01.19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는 정말 대비책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이죠. 땅파고 있는중인데 거기에 지진나면 참 볼만할 것 같습니다 ㅎㅎ

  11. mark 2010.01.21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스에서 아이티가 우리나라 한국전쟁때 2,500달러인가를 지원했었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 만큼 가난했었다는 것도 그렇고 아무도 몰랐던 지구반대편에 있는
    나라를 도왔다는 게...우리도 이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붕킥, 세경의 짜장면이 해리의 갈비보다 맛있는 이유?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12280043


지금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대한민국, 이 대한민국도 한 때 남의 지원을 받아야하던 찌들어지게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6.25 직후 전후 참상에서부터 60년대까지가 바로 가장 어려운 때가 아닌가 싶다. 역사상 수많은 전쟁을 경험했지만 6.25 만큼 잔인한 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몽고 식민지 100년이나, 임진왜란 7년이나, 일제 식민지 36년도 이 3년간의 6.25 전쟁만큼 비극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같은 동족 상잔의 비극이라는 점에서도 그 슬픔이 더하다.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미국의 잘잘못을 떠나, 만약 6.25 직후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비극은 더욱 참혹했을 것이다.


전후 미국의 대한 지원 중에 잉여 농산물 무상지원이 있었다. 미국은 당시 잉여 농산물이 너무 남아 처리가 곤란한 지경이었다. 밀의 가격이 하락하자 정부에서 적정가에 매입해 그 잉여 농산물을 태평양에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잉여 농산물 보관과 유지비 때문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짓이었다. 이렇게 바다에 버리던 잉여 농산물을 우리나라에 무상 원조라는 이름으로 지원해 준 것이다. 그게 미국에는 쓰레기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상 원조와 관련한 여러 말들을 모두 배제해 버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잉여 농산물 무상제공은 가난과 기아로부터의 벗어남이 절체절명의 바램이었던 당시에 자존심을 돌아 볼 수없는 참으로 가슴 아픈 상황이었다.
 

이 잉여 농산물 중의 거의 대분분이 밀가루였다. 미국 남부의 밀밭과 옥수수 밭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다. 얼마나 넓었기에 흑인들을 수입해서 노예로 삼을 정도였을까? 노예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밀밭 재배는 거의 불가능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인간의 식량이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서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왜 인디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삼지는 않았을까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에 상륙할 당시 수많은(당시의 인디언 수는 들쑥날쑥 이다) 인디언이 있었지만 거의 전멸하다 시피했다. 유럽인이 옮긴 병원균에 감염되어 대다수가 죽었다고 하지만 확인하기도 어렵다. 인디언 대량학살의 죄를 줄이려는 눈가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남미의 경우는 거의 백인들만이 살아남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미의 원주민들은 병원균에 대한 면역력이 더 높았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 였을까? 물론 백인들의 희생도 있었다.



짜장면과 갈비찜


짜장면 출처:http://www.sportsseoul.com/news2/emotion/wine/2009/1109/20091109101150400000000_7623763283.html
갈비 출처:http://www.sbiznews.com/news/?action=view&menuid=75&no=19249&page=1&skey=&sword=


그러니 인디언들에게서 노동력을 충당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백인 그 자신들 마저도 그랬다. 이렇게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에 의해서 재배되던 밀이 기계화로 인해 잉여물이 남아돌아가 버리기까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 버려지던 밀을 우리가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 또한 그렇다. 미국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한 밀이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생계의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카오스이론의 나비효과가 이런 것이 아닐까? 흑인의 노동력이 대한민국에서 구원의 손길이 되었다는...... 심한 비약일까?


지붕킥의 세경과 신애 이야기를 하려다가 서두가 길어졌다. 화교들이 언제 짜장면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대중화되기 시작했는지 확실히 모르겠다(짜장면의 원조는 1905년 인천 차이나 타운이라고 한다). 6.25이후에 무상원조로 받은 밀가루와 짜장면이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는지도 궁금하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후의 포스트에서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
 

짜장면은 앞뒤 사정으로 보아 그렇게 흔한 음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에 바나나가 귀해서 아주 비쌌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갖은 야채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짜장을 곁들인 짜장면이 값 싸지는 않았을 것이다. 1960~70년대에 짜장면은 아이들의 꿈이었다. 부모따라 어디 놀이동산이라도 가게 되면 심중팔구 중국 식당에서 짜장면을 먹는 것이 도식화 되어 있을 정도였다. 왜 이렇게 짜장면이 아이들의 로망이 되었는지도 무척 궁금하다.
 

식신신애(서신애)와 빵꾸똥꾸 해리(진지희)

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ut=1&name=/news/entertainment/201001/20100106/a1f77127.htm



그런 짜장면이었다.
 

<지붕킥>의 초반에 보듯이 세경과 신애가 깊은 산중에서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서울이라는 도시와의 공간적인 거리감이기도 하지만 2009년이라는 현재와의 시간적인 거리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경과 신애는 1960년대, 70년대 초 아주 가난하던 시절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아가면서도 인간미 넘치던 그 시절의 서민들의 순수하고 순박한 모습을 세경과 신애는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짜장면이란 사실은 그 때 가난하던 그 시절의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전히 짜장면의 위력은 대단하지만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통닭과 피자와 햄버그가 더욱 친근하다. 이런 현실에서 세경과 신애가 짜장면을 그토록 좋아하는 모습은 가난했으나 인간미가 넘쳤던 1960년대, 70년대 초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줄리엔이 세경과 신애에게 짜장면을 사주는 것은 묘하게도 미국의 식량무상원조가 떠올랐다. 별스러운 생각인지 모르겠다. 줄리엔이 세경과 신애를 위해 자신의 방을 내어주는 것도 우리가 못살던 시절 미국의 원조를 받던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그렇다고 줄리엔이 미국이다라는 식으로 비약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세경과 신애의 모습에서 우리의 가난하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일 뿐이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세경과 신애는 순재네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게 된다. 다행스럽다. 세경과 신애가 살아갈 곳이 그래도 재미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독같은 해리가 좀 껄끄럽긴 하지만 말이다. 세경과 신애와 이 가족들과의 의식적인 차이는 너무나도 클 수 밖에 없다. 세경과 신애는 수세식 화장기도 세탁기도 청소기도 믹서기도 모르고 사용하지 조차 모른다. 신애는 콜라, 아이스크림도 처음으로 먹어본다. 이런 아이들이다. 그러니 해리와의 의식적인 차이는 해리가 좋아하는 갈비와 짜장면의 차이만큼이나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장벽이 있긴 하지만 순재네 가족들은 참 인간적이고 재미있는 가족이다. 해서, 세경과 신애가 살아가기에는 참 다행스러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바깥 세상은 세경과 신애에게는 살벌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화려한 칼라 사진 속에서 유독 세경과 신애만이 짜장면 색깔처럼 흑백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을 잘 적응해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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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사진가 김기환 2010.01.12 0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장면에 대한 냉철한 고찰이군요.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 달콤시민 2010.01.12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저도 자장면에 한표요! 하하하
    갈비찜에는 추억이나 의미가 크게 없지만 자장면에는 많은 추억과 이야기가 있어요.. ㅎㅎ
    졸업식에 항상 함께한 자장면들.. 어릴때 외식은 중국집 등등.. 아아~

  3. Phoebe Chung 2010.01.12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우 오늘 짜장면 먹고 싶어져서 큰일 낫네요.
    춘장 사려면 시내 한국 슈퍼 가야하는데....

  4. 보시니 2010.01.12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붕뚫고 하이킥의 제작진은 코드에 관한 고찰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단순히 웃고 즐기기만 하는 시트콤이 아니라, 가족, 인간관계, 등에 대해
    세세히 생각하는 바를 제공하는 드라마인 것 같습니다.

  5. 쿠쿠양 2010.01.12 15: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걸보니 짜장면이 갑자기 땡기네요;;
    집에있는 짜장라면이라도;;

    글은 짜장면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인데 말이죠^^:

  6. 하록킴 2010.01.12 2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햐! 이런 주제로 이런 흥미진진한 포스팅을 하시다니 ㅎㅎ 하늘까지님 최고+_+
    저는 요즘 자짱면보다 제육덮밥이 땡기더라고요 ㅎㅎ중국집 제육덮밥에 짬뽕국물 크악 ㅎㅎ



아프리카, 남아공 월드컵과 거대한 동물원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golawnet/I9pl/1?docid=aYxa|I9pl|1|20091010215957


아프리카를 거대한 동물원이라고 하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동물이냐고 말이다. 아프리카가 동물원이란 소리가 아니라
동물원 취급을 당해왔다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이다. 아프리카는 동물들에게는 동물원이 아니라 일종의 천국과 같은 곳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황폐해진 초원 위에서 동물들도 쓰러져 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지구상에서 동물들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곳이 아프리카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 지옥이 있다면 그곳은 아프리카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인간이 아니라 동물원의 우리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동물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이 많다. 기아와 질병과 죽음, 전쟁과 내전 등이 인간을 비극적인 삶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한 현실이다. 장 지글러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어보면 서구의 시각에 가려진 적나라한 아프리카의 비참한 실상과 접할 수 있다. 아프리카는 왜 이런 현실이 되었을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아프리카가 이러한 참상에 직면한 것은 유럽국가들의 탓이 크다. 아프리카가 너무 먼 대륙이라 별 관심을 가지고 살아오지 못했다. 관심을 가져 본들 겨우 유니세프 성금 정도이다. 이것마저도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는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갔다.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우리 사이에 놓여있는 실존적인 현실은 유행가 가사 하나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억 속에서만 잊혀져 있을 뿐 아프리카의 비극과 불행은 그대로 우리의 곁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28y6m/8n57/381?docid=1BBqK|8n57|381|20081022230715



유럽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자주 소개가 되고 있는 까닭에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런던은 영국의 수도이다. 노르웨이는 북유럽의 복지 국가이다. 프랑스의 파리에는 루부르 박물관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블로그를 한 번 쓱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하면 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우리와 비슷한 거리에 있음에도 유럽은 속속들이 알면서 아프리카는 그저 검은 대륙으로만 기억한다. 검은 대륙, 세계화의 시대에 너무나도 걸맞지 않는 표현이다.

그런데 유럽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안면서도 유럽이 아프리카에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는 아프리카의 비극을 잊고 살듯이 거의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 단적인 예가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보상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유럽의 흑인 착취에 대한 보상은 과연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수많은 흑인들의 노예장사를 한 유럽이 아프리카 국가에 어떤 보상을 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미국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그토록 많이 학살해 놓고 보상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착취한 것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죄악이다. 히틀러만 악마가 아니다. 이 아프리카에 대한 죄악에 대해 진정한 반성이 없다면 유럽 전체가 악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 스페인, 포루투갈 등 제국주의 식민지를 경영한 유럽의 국가들이 더욱 그렇다.
 

이미지 출처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70620200707732


어쩌면 유럽은 아프리카가 이대로 남아있기를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아프리카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의식이 깨어나면 깨어날수록 그들 과거의 악마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라면 아프리카는 기아와 빈곤에 허덕여야 하고 전쟁과 내란으로 참혹한 상태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치부도 그대로 덮어 둘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과거의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독일이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에 대한 보상과 집시들의 학살에 대한 보상을 비교해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은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미국의 지원을 등에 입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유대인 학살에 대한 보상 요구와 학살 범죄자에 대한 집요한 복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국가라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 집시들은 독일로부터 미미한 보상만을 받았을 뿐이다. 아프리카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유럽인들은 어쩌면 실제로 아프리카를 거대한 동물원 취급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들의 휴가를 위해, 여행을 위해, 쾌락을 위해 찾는 동물원 같은 존재로 말이다. 아프리카는 그저 그렇게 남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원주민들이 죽어가던 말던 그들은 그 불행 위에서 안락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심지어 경쟁을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간주하는 극단적인 자본주의자들은 아프리카의 실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진화론상 도태될 수 있다는 논리와 마찬가지이다. 지구 인구의 균형을 위해서 아프리카의 인구 감소를 긍정적으로 보는 인간들도 있다. 참으로 인간들은 무섭다.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12pmamhappy/7387955



이제 2010년에 남아공 월드컵이 열린다. 아프리카에서는 선진적인 국가이다. 흑인 인권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의 나라이기도 하다. 정말 자랑스러운 나라이다.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어느 유럽의 백인 국가보다도 자랑스러운 국가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국가이다. 넬슨 만델라는 유대인식으로 범죄자를 복수하지 않았다. 그는 백인들을 용서했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의 생각이며 태도인가? 물론 아프리카 자체의 문제도 클 것이다. 어지럽게 늘려있는 아프리카의 문제들이 정말 가슴 아프다. 불행은 왜 이렇게 겹쳐서 나는 것일까? 아프리카여 왜 이토록 이렇게 불행한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계기로 남아공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도약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가 우리에게는 유일하게 하나 남은 자연의 땅이며 미래의 희망이란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영화 <2012> 처럼 아프리카가 인류에게 희망의 대륙이 되었으면 한다. 유럽과 미국은 지난날의 죄악을 반성하는 차원에서라도 진정으로 아프리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미국에 과거의 피해 보상을 요구할 힘과 결집력이 없다. 내란과 전쟁과 기아와 질병으로 허덕이는 국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은 이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면서, 더 나아가 자원만 빼먹으려는 간악한 짓을 버리고 진정으로 자신들이 자행한 과거의 야만적인 짓들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바위에 계란치기에 불과할까?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에게 아프리카의 비극은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월드컵을 통해서 아프리카가 우리의 관심에서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전세계인의 관심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프리카가 일본보다도 더 가까운 우리의 이웃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부터라도 아프리카를 알아나가는 노력을 해야겠다.


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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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디아나밥스 2009.12.08 1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끊이지 않는 내란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저도 이번 월드컵으로 아프리카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면
    합니다.^^

  2. 바람처럼~ 2009.12.08 2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스포일러를 읽게 되었네요
    2012 아직 안 봤는데 -_-;;;;
    언젠가 아프리카도 꼭 여행해보고 싶습니다~
    동남아도 사실 서구 열강에 의해 침략을 많이 당했지요
    일본에도 당했고요
    캄보디아도 프랑스 식민지였고, 베트남도 그랬고, 라오스는 어디였더라...
    그리고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였죠
    유일하게 동남아에서 식민지가 아니었던 곳은 태국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태국은 서구 열강의 침략에서 이겨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더라구요~
    저도 여행하다가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2009.12.09 2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차~~스포일러가 된다고 생각지도 못했네요;;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도 아프리카 처럼 서구 열강의 식민자로 고통을 당했지요. 그래도 아시아는 아프리카에 비해서는 다소 상황이 나은 것 같아요. 하루 발리 아프리카에서 불행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3. 소이나는 2009.12.08 2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도를 보니 프랑스의 횡단정책과 영국의 종단정책이 눈에 확띄는 군요.
    월드컵을 계기로 아프리카가 무언가 변하는 시발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4. 이슈팟 2009.12.08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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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느릿느릿느릿 2009.12.09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우리 세대에서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래에는 달라졌음 좋겠지만요.^^;

이런 집 보셨나요?

사진 2009. 10. 15. 22:57



아직도 이런 집이 있습니다. 몇 채의 집이 있었는데 이제는 두 채만 남았습니다. 주위에는 집을 허물고 남은 집터와 이전에 살던 흔적들 만이 남아 있습니다. 텃밭을 가꾸고 화단을 만들고 해서 나무와 꽃들로 둘러 쌓여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불편할 것 같습니다. 생활 조건이 나은 곳으로 이사를 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으면서 주인을 만나고 보았습니다. 한 분은 길에서 만났고 다른 한 분은 집 바깥을 나와 무슨 일을 하시다가 보았습니다. 길에서 만난 한 집의 여주인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니 선뜻 응해 주셨고 또 몇 마디 말씀도 나누었습니다. 불편함도 없고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나 집 밖에 서 있던 다른 한 집 주인은 남자였는데 제가 멀리서 사진을 찍으니까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찍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경계의 기운이 강하게 서려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제 3자의 시선으로 볼 때 집은 거의 판자촌의 쪽방 수준이었습니다. 왜 이곳에 이런 집들이 자리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무허가로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몇 채의 주택 군이 형성되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자 그럼 사진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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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웃음 2009.10.15 2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슬아슬하네요. 위험해보입니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겠지만...정부에서 이런 분들을 위한 도움을 줘야하지 않나 싶네요.
    안타깝습니다.

  2. 소머즈 2010.04.14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을 찍으시면서도 많이 안타까우셨겠어요.
    그래도 그분들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불평등한 세상에서 돌아와 그래도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
    텃밭의 채소와 화단의 꽃들이 희망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 왔어요.

    먼 훗날,
    그들이 지금은 까마득히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꿈이
    어느덧 현실로 다가오는 화창한 봄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