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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아바타>, 한 그루의 나무를 생각하다!

 

<아바타>, 한 그루의 나무를 생각하다!


이미지출처: http://ntimes.co.kr/sub_read.html?uid=26211&section=sc5&section2=문화



아바타를 보았다. 놀라웠다. 공상과학(SF) 영화를 보고 놀란 세 번째의 경우이다. 첫 번째가 <터미네이터1>을 보았을 때였다. 정말 놀랐다. 두 번째는 <쥬라기 공원>이었다. 상상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했다. 바로 세 번째가 이번의 <아바타>였다. 사실 <아바타>의 경우는 그 놀라움의 강도가 조금 약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이미 우리사회에 그러한 상상과 흡사한 그래서 면역이되어 익숙해진 여러 가지 IT의 기술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경험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3D 게임이 그런 것이다. 또한 <쥬라기 공원>과 <아바타> 사이에 <마이너리티 리포트><메트릭스><이퀴브리엄><트랜스포머><아이언맨><2012> 등 무수한 공상 과학 영화도 그렇다.


그러나 놀라움이 줄어들었다 해도 그 의미하는 바는 <터미네이터>나 <쥬라기 공원> 보다 덜하지는 않았다. <터미네이터>가 인간의 미래가 과학 문명에 의해 얼마나 황폐해 질수 있는 가라면, <쥬라기 공원>은 인간의 과학적인 선택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파괴적일 수 있는가에 있었다. 아무리 헐리우드의 영화이긴 하지만 이 주제들은 필자에서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주제였다. <아바타>의 경우, 놀라움이 줄었든 것에 반해 의미성이란 측면에서는 더욱 사랑스러웠다. 모성적인 자연에 대한 동경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지출처: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C0912200001


"나무처럼 사랑스런 존재가 있을까?" 어느 싯구의 구절이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라고 해도 한 그루의 나무처럼 위대할 수 있을까? 간디가 위대한 건 나무같은 그 식물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명체이지만 자연 그 자체가 되어버린 생명체가 있다면 나무가 아닐까? 아무리 자연을 부르짖는다 해도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나무만큼 실천적인 생명체가 있을까? 모든 구도자의 스승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닐까? 붓다가 열반에 든 것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도에 이르렀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식물에 가까운 동물이 되었다는 뜻은 아닐까? 예수의 십자가가 단순히 형벌의 도구라기보다 예수의 존재와 동일시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나무의 의미에 있지 않을까?


나무처럼 효율적인 존재도 없다.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렇게 수많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무들은 마치 구도자들처럼 꼼짝 없이 서있다. 한 그루의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을까란 말이 정말 실감이 난다.


그러니 숲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인간인 우리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인간의 생존을 위해 부득이한 일일까? 이를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미래는 파멸만이 있지 않을까?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문명은 지구에 기생하며 지구를 파멸시키는 그런 존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인간이 살기 위해 삶의 근거를 파멸시키는 모순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이 과장이기만 하면 좋겠다. 아무튼 나무에 비해 인간의 생존방식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이고 잔인하다.


아바타를 보고 그냥 한 그루의 나무를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