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그 시간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그 시간을 반영해주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낡은 것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은 말 그대로 낡은 것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우리가 이탈리의 어느 고성을 방문한다고 하면 그 낡은 고성은 우리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으로 전율하게도 된다. 영화 '쥬라기공원' 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전율했던가? 이미 멸종되어 화석속에서나 발견되는 공룡이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 정말 새로운 감동이었다. 시간이 지나 오래되면 될 수록 다시 새로운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던 시간 속에 있었던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의미를 갖게된다. 문제는 시간속에 단지 화석속으로 머물지 않을 때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막장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그저 사라져 가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무언가가 된다. 단지 다시 찾지 않기에 사라져 가는 것일 뿐이다.

 

 

이미지출처: http://www.imbc.com/broad/tv/drama/jangbori/

 

지난 일요일(2014.10.12) 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 '왔다! 장보리'도 시간속으로 사라져 가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국민드라마로 30대 후반 40%초반까지 시청율을 기록한 드라마라고 해도 별 볼일 없는 드라마로 시간속에 잊혀가게 될 것이다. 슬픈 운명이다. 사실 슬프지 않는 운명이 어디에 있을까 마는!

 

그렇다면 드라마가 시대를 조금이라도 반영한다면 우리는 '왔다!장보리'를 통해 어떻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을을까? 지금 사는 현실을 해석할 수 있는 어떤 상징이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그냥 보내야할 슬픈 운명의 드라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의가 아닐까한다. 그래도 2014년의 어느 한 때 주말마다 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겁게(?) 본 드라마이지 않는가?

 

미혼모의 문제

'왔다! 장보리' 에서 빼놓 수 없는 유의미한 주제는 미혼모의 문제이다. 우리사회의 미혼모 문제는 너무나도 심각하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접하는 입양아들의 소식들인데, 참 부끄러운 현실이다. 솔직히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만약 현실에서 우리가 한 아이의 운명을 두고 이렇게 갈등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할 수만 있다면 그저 아무런 의미없이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을까?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의 무게를 우리는 너무 가볍게만 여기는 것은 아닐까? 고귀한 한 아이의 존재를 쉽게 버리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아니고 무엇일까?

 

선과 악의 문제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존재해 온 것일 테지만 지금, 이곳 우리사회의 현실로 그 범위를 좁혀보면 이 선과 악의 문제는 정말이지 큰 의미가 있다. 성공을 위해 주위의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연민정은 우리가 손가락질 하면서도 결국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연민정을 보며 분노하면서도 현실의 악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심지어는 공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상위 1%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재화의 아버지이며 보리의 시아버님인 동후(한지희분)의 모습이야 말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존경할 만한 부자의 상이 아닐까 싶다. 대단히 전향적인 인물이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여동생인 정란(우희진분)과 전직 조폭인 내천(최대철분)과의 결혼을 허락해주는 것은 학력에 대한 편견이나, 더 나아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비단이를 친손녀처럼 귀여워해주는 것도 대기업의 회장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있다. 우리사회와 가진 사람들의 인식이 이렇게 유연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한 때 우리에게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던 드라마 '왔다!장보리' 를 보내며 급하게나마 몇가지 의미를 되짚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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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TV 프로그램에서 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언급했다고 합니다. 1일밤 12시에 방송하는 SBS의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하여 자신이 술을 마셨던 경험과 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 놓았다고 하는데요, "맥주나 아이스와인 등 먹어 본 경험은 있지만 즐기진 않는다"며 "맛도 없고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연아가 1990년생이고 보면 만으로 21세로 충분히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입니다. 지금껏 그녀가 술을 잘 마시지 않은 것은 짐작컨대 피겨스케이트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긴장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시간이 길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그만큼 자기 통제와 절제를 잘 해왔다는 뜻입니다.



술이란 가끔 마시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작용을 합니다. 특히 화학주가 아닌 과일주의 경우는 적당하게 마시면 심장이나 혈액 순환에도 좋습니다. 술을 어떻게 마시고 누구와 마시며 왜 마시느냐, 그리고 기분에 따라 술이 개인들에게 갖는 의미는 달라집니다. 따라서 술 자체가 갖는 부정적인 의미는 그것을 마시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무튼 인간의 문제이지만 그 의미를 크게 나누어 보면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즉 술은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축제와 사회적인 물의나 범죄가 그런 것입니다. 술이 없으면 축제는 불가능합니다. 흥을 돋구고 기분을 발기시키는 역할을 술이 하는 것입니다. 축제가 일상에서 벗어나는 사회적인 일탈이라고 한다면 술은 그 일탈을 위한 윤할유인 셈입니다. 또한 예술적인 창조의 영감도 볼러 일으킵니다. 그런데 동시에 술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욱이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절제의 제약을 벗어나는 순간 인간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경향이 쉬워집니다. 술이 인간의 의식층을 부수면서 그 아래층에서 억눌려있던 반의식이나 무의식이 현실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범죄들이 대체로 술의 힘을 빌려 저질러 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자기 통제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연예인들의 폭행 사건이나 음주 운전도 술과 관련된 경우가 많습니다.



김연아가 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프로그램 진행자인 김정은 "아직 어려서 그렇다. 내 나이가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5년 뒤에 연락하면 술 사주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멘트입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전제가 너무 일방적입니다. 우선 어리다고 했지만 21살이면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21살에 술에 대한 생각이 이렇다면 필자의 생각으로 연아의 생각은 대단히 성숙하고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술이 자신에게는 그다지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술맛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면서도 무절제하게 술을 마시면서 방임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를 흔히 목격합니다. 이들은 정말 술맛을 음미하기 때문에 취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피곤한 짓을 하는 것일까요?  이런 이들이야말로 아직 어려서 술을 즐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김연아는 이렇게 맹목적으로 술을 마시고 취해버리는 젊은이들 보다 너무나도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김연아를 어리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그 다음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의 이런 말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술 맛을 알게 된다는 의미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5년쯤 후에는 술맛을 알게 될 테니 술을 사주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얼마나 술에 대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정은이 좀 더 신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너그로운 술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매우 관대합니다. 술주정은 단지 객기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술문화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연아의 말은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말에서도 그 말을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재치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우리의 청소녕들의 음주 문화와 흡연 그리고 성의식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10대들이 임신을 하고 외국으로 입양되는 아기 숫자는 엄청납니다. 몇 년 전반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세계 2위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을 권하는 사회보다는 술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사회는 어떨까요? "5년 뒤에 연락하면 술 사주겠다" 는 말 보다는 "5년 뒤에 연락하면 삶이 더욱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 는 그런 말이 더 낫지 않을까요?  김정은의 말에 시비를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니구요, 술이 우리의 삶을 사색적이고 평온하며 자족적인 기분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어라 마셔라는 식의 무모한 술문화에 조금은 반성의 생각을 돌려 보자는 것이지요.   


 

한경닷컴 기사 캡처


첫번째 이미지: http://www.why25.com/news/articleView.html?idxno=4830


* 이전 글 내용 추가하여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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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한 대로 결국 큰일이 나고 말았다. 다혜가 임신을 한 것 같다. 아직 확인이 된 것이 아니기에 섣불리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가능성은 거의 99% 아닌가 싶다. 만약 다혜가 임신을 하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강호와 다혜는 그들 자신의 앞가림을 제대로 못하는 정도인데 만약 다혜가 미혼모라도 된다면 이건 정말 큰 문제인 것이다. 어디 생명이 장안으로 태어나는 것인가? 만약 장난처럼 태어났다고 해도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게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강호나 다혜는 바보들이고 가정을 꾸릴 만한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 참으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제 3자들의 생각이 아무리 부정적이라고 해도 다혜나 강호, 특히 다혜의 선택이 완고할 수 있다. 아기를 꼭 출산하겠다는 고집을 피운다면 대단히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리라 싶다. 엄마인 송인숙과의 갈등은 불을 보듯이 뻔해지기 때문이다.


송인숙은 자신의 딸인 다혜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잉보호를 한다. 애당초 이런 문제 때문에 다혜의 자유를 구속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다혜의 삶은 구속적이고 자유롭지 못하다. 딸에 대한 이렇게 지나친 태도는 송인숙의 성격에서도 기인하겠지만 어리숙한 다혜에게도 있다고 본다. 필자는 이미 다혜의 정신 상태에 대해 약간 언급을 했지만 ‘성격적인 결합’ 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결함’ 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다혜의 행동은 정상적이지 않으며 대단히 위축되고 정신적인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송인숙의 지나친 구속이 다혜의 정신적인 상태를 악화시켰을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이런 다혜이다 보니 자연히 송인숙은 딸을 내놓기가 걱정이 되고 과잉보호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악순환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혜의 임신에 대한 송인숙의 반응은 추측만으로도 끔찍한 느낌이다. 그야말로 다혜의 임신은 송인숙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것이고 자신에 대한 원망과 한탄으로 귀착될 공산이 크다. 딸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책임감, 무력감과 함께 동시에 다혜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한꺼번에 폭풍처럼 밀어 닥치리라 여겨진다.


무엇보다 의사인 송인숙이 다혜의 낙태를 선택할 것인가도 관심을 집중시킨다. 임신 초기에 낙태가 가능하다고 해도 특별한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딸에게 낙태를 강요한다는 것은 엄마와 의사의 기로에서 고통스런 선택이 되리라 싶다. 다혜가 미혼모가 되어 평생을 고생할 것을 생각한다면 엄마로서 낙태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리라 싶다. 그러나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낙태는 살인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기다 다혜의 출산 의지가 완고하다면 정말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만약 다혜의 출산 의지를 꺾지 못하면서 미혼모가 된다면 강호와의 결혼을 허락할 것인가도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이 문제는 의외로 낙태 문제보다는 쉬울 지 모른다. 미혼모라는 굴레를 딸에게 씌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송인숙은 다혜와 강호를 결혼으로 맺어지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드라마의 제목도 그렇지 않는가? 결혼해 주세요? 이 결혼은 외길이고 외통수다.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송인숙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저 무덤덤히 받아들어야 할 현실이 되지 않을까?


자식을 놓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강호와 다혜를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드라마지만 그들을 지켜본다는 것은 아슬아슬한 줄을 타는 느낌이 아닐가 싶다. 물론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말이다. 그들의 삶은 산 너머 산이 될 것 같다.


첫번째 사진: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6140856471114&ext=na
두번째 사진: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007121029443&mode=sub_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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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엄청난과 태연희에 주목해야 할 이유?


<수상한 삼형제>는 가족 문제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드라마 답게 가족내의 갈등과 갈등 해소의 모습들이 봇물 터지 듯이 솟아져 나오고 있다. 모두 다가 비중있게 다둘 만한 문제들이면서도, 동시에 다 들 한 두 번쯤은 생가해 본 적이 있는 내용들이라 다 다루기도, 안다루기도 그런, 참 계륵 같은 드라마가 되고 있다. 시청률을 믿고 드라마를 연장 방송하다 보니 별 별 자잘한 이야기까지 다 터져나오고 있다. 어영이 불임이 의심되면서 시험관 아기 운운까지 나오리라 누가 예상 했겠는가? 현찰과 도우미가 결혼을 다시 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보았겠는가? 참 별쓰러운 이야기가 다 터져나오고 있다. 심지어 건강의 고물상의 난자와 경찰관의 사랑까지도 퍼질러 지고 있는 상황이니 보는 시청자들은 참 어지럽지 싶다. 그러니 수삼에 대한 뭔 글을 쓰기도 참 힘들다. 방점을 찍을 만한 주제의식이 희박해져서 말이다.
 


물론 가족 드라마로 거듭나고 있는 <수삼>이 이제서야 가족 문제를 제대로 전달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그리 부정적으로 볼 일도 아니지 싶지만 갈등을 좀 선별하고, 축약하여  드라마 전개의 통일성을 지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관계야 이리저리 얽히고 섥히곤 해서 어느 일방으로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있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는 있지만 그러다 보면 드라마 전개가 박진감이 없어지고 자칫 흥미를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의 <수삼>이 꼭 이런 시점에 직면해 있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백화점식 나열 보다는 한 두 놈만 패는 식의 집중 공략 말이다. 수삼의 주제가 크게는 가족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나아가 보면 이 문제들이 너무 전방위적으로 흩어져 있어 혼란스럽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어영의 불임 문제, 엄청난의 변화 문제, 태연희의 문제 정도는 짚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엄청난의 변화와 태연희의 문제이다.  사실 어영의 불임 문제는 별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주제 의식을 가질 만한 부분이긴 하지만, 다 큰 성인인 어영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치고 계솔이가 또 덩달아 난리를 칠만한 그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그저 이상과 어영이 조용히 해결해 가야할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제작진들이 이 어영의 불임 문제에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게 부부간의 내적 갈등의 문제이지 온 가족들이 다 알고 호들갑을 떨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선, 엄청난의 문제는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수삼>에서 엄청난 만큼 문제적 인간은 없다고 본다. 엄청난이 희극적인 인물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극적인 인물이다. 고아에, 미혼모에, 저학력에, 맏며느리라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정말 비극적인 존재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엄청난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언니>의 등장인물에 비유해 본다면 송강숙류의 인물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이 <수삼> 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그저 웃어야 할 처지는 아니라고 본다. 하행선과의 갈등에서 엄청난이 많이 변화를 했지만 아직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의 글에서 이미 언급했다(2010/05/02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변하지 않는가?)자기 성찰의 과정을 전혀 거칠 수 없는 인물로 여전히 그려지고 있다.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엄청난이 종남이의 엄마로써, 또 앞으로 태어날 쌍둥이의 엄마로써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고 싶다. 68회에서 그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다.
  

둘째는 태연희이다. 태연희의 문제는 너무 작위적인 요소가 강하다. 제작진은 악녀 태연희를 궁지로 몰아넣으며 시청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통쾌함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 같다. 태연희의 문제는 이렇게 다루어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태연희의 문제는 법과 범죄라는 측면에서 분명하게 다루어지고 그 해결책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아직 스토리가 진행중이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만약 이 태연희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만 다루어 진다면, 즉 우미와 현찰의 위장이혼 복수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아무리 드라마지만 범과 범죄, 경찰과 검찰의 역할을 망각하는 지경으로 치닫게 되고 말 것이다. 이 것만은 좀 피햇으면 한다. 


만약 태연희의 문제도 앞서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극처럼 개인이 해결하는 식이 된다면, < 수상한 삼형제>가 경찰 홍보용 이니 하는 비아냥 같은 글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경찰 홍보라기 보다는 경찰을 무능력하고 비현실적인 집단으로 전락시켜 놓고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진다(2010/05/31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 통쾌한 복수극은 경찰과 검찰의 무능력의 결과?) 이번 만큼은 경찰이나 검찰이 제대로 서서 태연희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 이태백 검사도 있고, 아예 경찰 가족이 나오는 이런 드라마에서 법이, 검찰이, 경찰이 무능력해서 비록 악녀이긴 하지만 태연희가 억울한 피해를 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엄청난이란 이 비극적인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태연희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지 <수삼> 제작진들이 신중하게 결정해 나아가야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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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 하행선이 떠난 이후 엄청난의 숙제는?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에 있어서 엄청난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등장인물도 없다. 엄청난의 출생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건데 부모를 일찍 여윈 고아이거나 미혼모의 버려진 아이인지도 모른다. 엄청난이 미혼모로 자신의 아이인 종남에게 엄청나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 애정 결핍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아에, 미혼모라는 삶은 우리 사회에서는 살아가기가 힘들 정도로 냉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신분의 벽이 없다고 하지만 고아이며 미혼모인 엄청난이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에게 하행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 않았다. 그녀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종남을 양육해야 하는 미혼모로 더 극한 고통이 더해졌을 뿐이다. 자식을 돌 볼 능력도 없고, 가정을 꾸릴 능력은 더더구나 없었을 하행선이 엄청난에게 사랑을 보여주었을리도 만무하다.
   


이런 신산한 삶을 살아 온 엄청난에게 건강은 어떤 존재인가? 엄청난이 건강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은 건강이가 돈이 많아서도, 얼굴이 잘 생겨서도 아니다. 오직 사랑이고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이다. 엄청난은 철없던 시절 박력 넘치는 사내 하행선에게 한 번에 '뿅' 간 것이 얼마나 큰 실수 인지를 뼈속 깊이 깨닫고 있다. 그 어떤 것보다 미혼모가 되어버린 엄청난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일종의 화두가 되었을 것이다. 사내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별 잘 생기지도 못하고, 돈도, 능력도 없지만 오직 순수하고 진실한 건강을 자신의 남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엄청난에게 하행선은 떠났다. 그녀의 곁에는 건강이 있다. 종남의 아빠이자 자신의 남편인 건강이 있다. 엄청난에겐 어느 순간 보다도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건강이 있고, 건강하게 자라는 종남이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은 진심으로 감격에 겨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사실, 엄청난은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녀를 짓누르던 하행선이란 존재도 사라졌다.
 


그러나 엄청난에게 하행선이 떠난 것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 된 것은 아니다. 엄청난의 삶에서 하행선 떠난 이후의 삶이야 말로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꾸리고, 시부모가 생기고, 서방들이 생기고, 동서들이 생긴 것이다. 한마디로 고아인 엄청난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생긴 것이다.(이와 관련해서는 엄청난의 시어머니인 전과자의 역할은 누구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전과자는 비록 자신이 시어머니라는 위치에 있지만 엄청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과자에게 이러한 것을 바라기는 요원한 실정이다.) 따라서 엄청난은 며느리, 형님 등 가족으로 확대된 역할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글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서, 몇 일전 필자는 엄청난이 좀 더 분방해야 된다는 뜻에서 아침라면 (2010/04/11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삼, 맏며느리가 끓인 아침라면 문제가 뭐길래?)에 대해 언급하면서 엄청난이 좀 더 잘 해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한 적이 있다. 이 포스트로 필자는 '엄청난'(?)  비난의 댓글을 감수해야 했다.

 


근데 사실 그건 오해다. 엄청난이 맏며느리로서 시댁 살림을 도맡아 해야 된다는 소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완전히 등한시 해왔던 가족 내의 자신을 역할을 좀금씩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하는 정도였다. 오해를 풀면 좋겠다. 


아무튼 다시 이전의 글 흐름으로 돌아와서, 엄청난이 처한 가장 급박했던 하행선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가족 내의 역할을 좀 더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건강과 자신의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볼 때 어쩌면 가족내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가족을 내팽개 칠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의 변화가 이왕 마음 깊숙이에서 일어났다면 시부모, 시동생들, 동서들과의 관계 변화도 시도해 봄직 하다. 도우미가 하던 그 역할을 엄청난이 하루 아침에 하기란 힘들 겠지만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엄청난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건강을 선택한 그녀의 눈에서 그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집집마다, 전기 밥솥 없는 집이 없다. 없어도 괜찮다. 결국 엄청난이 남편 건강과 아들 종남에게 비록 찬거리는 몇가지 없다고 해도 따뜻한 흰 쌀밥을 먹여야 할 테고, 그렇게 해야 할 밥이라면 시부모도 함께 공양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점에서는 시어머니 과자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집안 청소나 빨래 같은 것도 주말에 건강과 함께 협력해서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이다. 엄청난이 맏며느리이니까 과거 조선시대의 아낙네들 처럼 허리 펼 날 없이 죽도록 일만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엄청난의 변화의 방향이 건강과 종남을 향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녀에게 새로 생긴 가족을 향한 것이기를 소원해 본다.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를 통해 엄청난의 변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참 즐거운 시간이다.


첫번째: http://news.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7561553&contain=&keyword=&page=1
부번째: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410100916609&p=sisain
마지막: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3190854059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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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미혼모 엄청난이 자식에 집착하는 이유?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이 단편적인 경우가 많다. '지금 보고 있는 그 모습' 이 판단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지만 서로의 마음속을 알기란 참 어렵다. 진실과는 다르게 서로의 마음 속을 모르기에 생기는 오해가 많다. 모두 다 '나' 이면서 동시에 모두다 '너' 인 이 세상이 파라다이이스가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엄청난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을 정도로 분노가 인다. 정말 참 나쁜 여자다. 건강이를 감쪽같이 속이고도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그 뻔뻔스러움은 가히 철면피를 초월한 경지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을 무슨 성모 마리아 모시듯이 집착하는 건강을 보는 것은 너무 불편하다. 아니 눈꼴사납고 분노가 인다. 엄청난을 몇 번이나 내팽개쳐도 모자랄 지경인데 건강은 엄청난을 용서하고 끝까지 받아들인다. 이거 참 난감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신이 바로 박힌 게 맞나고 건강을 욕하다가도 또 저런 남자가 어디 있나고 건강을 감싸주게 된다. 현실과는 맞지 않지만 착하니 어쩌겠는가 말이다. 엄청난에 대한 건강의 태도가 어떤가를 제쳐두고 엄청난은 아무리 생각해도 구제불능의 인간이다.


그러나 이토록 용서의 여지조차 없는 듯한 엄청난에게도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미혼모라는 사실이다. 엄청난에게서 미혼모라는 사실을 간과한다면 엄청난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여지조차 사라지고 만다. 엄청난의 행동과 사고의 특성들이 이 미혼모라는 사실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 미혼모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다룬 바 있다.



인간의 행동 특성의 원인을 헤집고 들어가면 의외로 작은 곳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세 살 도둑 여든까지 간다' 는 속담이 그렇고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는 속담도 마찬가지이다. '매를 아끼면 아이들을 망친다' 는 서양의 속담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엄청난을 보는 관점도 그녀가 생각 없었던 시절의 불장난에서 시작해 볼 수 있다. 바로 미혼모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물론 그 이전 엄청난이 고아였다는 사실로 더 거슬러 올라 갈 수 있고 고아 이전의 처지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드라마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미혼모라는 사실이다. 엄청난에게서 미혼모라는 사실을 떼어놓는다면 엄청난은 단순히 구제불능의 인간이 되고 만다.



엄청난의 행동이나 사고에서 의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현상은 자신의 아이 종남에 대한 모성이다. 엄청난은 이상할 정도로 모성애가 강하다. 엄청난이 천박할 정도로 거짓말이 생활화 되어있고 낭비벽이 심하고 즉흥적이며 충동적이지만 종남에 대한 애정만큼은 어느 모성애에 뒤지지 않는다.
 

엄청난에게 왜 이토록 모성애가 강한 것일까? 미혼모라고 하면 엄청난과는 달리 아이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다. 애당초 모성애라는 것이 없다. 대부분의 미혼모들은 아이들을 유기하거나 입양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정한 애정없이 낳은 아이이기에 쉽게 마치 물건처럼 처리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혼모의 문나 입양아의 문제는 인명 경시 풍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사실상 우리 사회의 미혼모 문제는 그 미혼모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 미혼모들에게 의해서 버려지고 포기되는 아이들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미혼모의 문제가 아니라 '미혼모에게서 태어나서 유기되고 입양되는 아이들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이다.
 

종남에 대한 엄청난의 애틋한 모성애로 판단해보건데 엄청난이 고아라는 사실이 미혼모와 유기아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상상에 까지 이어진다. 엄청난의 개인사를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삶을 종남이에게까지 이어주지는 않으리라는 결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보면 엄청난은 참 불쌍하다. 동정의 여지가 생긴다. 자신의 아이를 끝까지 지키려는 미혼모의 모습이다. 건강이를 속이고 결혼을 한 것도 자신의 편안함보다는 종남이를 지키려는 의도해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엄청난을 두둔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단지 엄청난의 행동과 사고의 이면에 자신의 불행한 개인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규율보다 불행했던 개인사가 비대하게 자리를 잡다보니 도덕심이라거나 염치, 눈치 같은 미덕들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어 버린 것이다. 엄청난을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막돼먹었지만 자신의 아이 종남을 지키기 위한 모성애는 너무나도 강하다는 사실 말이다.
 

엄청난의 모든 악덕에도 불구하고 엄청난을 지켜보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바로 이런 이유는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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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엄청난은 왜 거짓말의 달인이 되었을까?

http://www.artsnews.co.kr/news/66370


<수상한 삼형제>의 엄청난은 참 문제 많은 여자다. 드라마가 전개되어 가면서 변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성스럽기까지(?) 할 정도이다. 건강과 결혼한 것에서부터 자신이 진 수 천 만원의 빚과 다른 남자의 아들인 종남이 드러나는 사실, 그리고 마침내는 종남의 친아버지인 하행선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과연 이러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남자가 몇이나 될까. 엄청난은 이렇게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문제아다.


이 청난이 이제 건강을 통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상에서 청난의 변화는 참 의미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청난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상한 삼형제>를 무조건 막장이라고 비하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의미있는 측면을 놓치고 말 것이다. 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막장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2010/02/16 - [드라마/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이유?


청난의 변화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 줄 안다. 악녀가 개과천선하는 전개야 말로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이전에 엄청난의 문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난이 미혼모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어린 시절 하행선과의 불장난으로 예기치 않게 생긴 아이이긴 하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은 그야말로 극진하다. 미혼모라는 말은 사회생활에서는 일종의 낙인과도 같은 것이다. 미혼모에 관한 한 우리사회는 공범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버려진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시키는 일련의 과정에는 우리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폐쇄적인 인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연 미혼모가 어렵지 않게 자신의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을까? 특히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10대 미혼모의 경우는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선진국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수많은 아이들을 외국으로 입양시키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미혼모의 관점에서 청난의 행동 특성을 살펴보면 그녀가 자신의 피붙이인 종남이를 위해 건강과 주위 사람들을 속였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허영이나 허세를 부리는 등의 행동 특성도 어쩌면 미혼모라는 사회적인 인식을 극복하려는 과장된 포즈인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고 해서 청난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혼모라는 관점에서 보면 청난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인 종남에 대한 사랑하나 만큼은 어느 누구의 모정에도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엄청난이 종남을 위해 애써는 모습을 보면서 동정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그녀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면 좋겠다. 왜 엄청난이 거짓말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이 미혼모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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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가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애자의 주인공 최강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번에 그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 <애자>를 보고 싶은 건, 순전히 최강희 때문이다. 최강희에 대해서는 가끔씩 TV에서 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많은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번에 <애자>의 주인공으로 나온 것도 의외였다. 최강희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이 다였다. 인상이 좋고 성격 좋다는 생각을 하기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러다 최강희가 일본여화 배우 우에노 주리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강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던 중 그녀가 골수기증을 한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골수 기증이라니! 그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도 심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강희가 그런 일을 주저하지 않고 행했던 것이다. 2007년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기증한 것이다. 그녀는 이미 1999년에 골 수 기증 희망을 서약하고 있었으니 그녀의 생각이 벌써 10년이나 되었다. 섣불리 행하기 어려운 사랑의 실천을 최강희는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연예인들의 수난시대이다. 연예인들 스스로가 그것을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연예인이란 속성상 억울하게 부풀려지거나 상업주의의 희생양이 되는 수도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오늘 수퍼쥬니어의 강인이 술집 폭력사건과 관련되어 불구속 입건이 되었다. 과연 그들이 술을 마시면서 최강희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필자도 마찬가지이다. 골수 기증하겠다는 생각은 아무나 못한다. 생각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 2007/10/22 14:43:46



그런데 더해서 최강희는 골수 기증 선행을 가족조차  몰래하였다고 감동적이다. 이런 어려운 결단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어디에서 이러한 선행의 결심이 생겼을까? 하나 하나 궁금증이 쌓여가지만  능력의 밖이다. 대체로 이러한 경우는 어려운 가족사나 처지가 비슷하다거나 하는 경우에 생길 수 있다.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강남의 졸부 부모 밑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과연 이러한 선행을 할 수 있는 경우보다 그 화률이 많이 높다는 것이다. 갑자기 기억이 나는데, 지금 한나라당의 정몽준 대표가 예전에 대통령 후보로 관훈 토론인가 어떤 토론에서 "버스값이 얼마인가?" 는 패널의  질문에 터무니 없는 답한 기억이 난다. 70원. 언제나 운전기사가 딸린 자가용을 차기만 하니 어떻게 버스 요금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 잘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다. 이건 차라리 코미디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정치인들이 국민들 감동시키는 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무슨 기부나 하는 것도 국민의 압력이나 자신의 이권 때문인 경우가 많다. 진심으로 국민들을 섬겨야 정치인들이 기꺼이 아무런 사욕이나 노림수없이 국민을 위해 베풀어 하지 않는가. 그런데 솔직히 그 반대다. 
 


그런데 최강희의 선행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마음이 예쁜 최강희다. 2008년도에는 미혼모 돕기 바자회를 해서 400만원(어떤 신문에는 350만원)을 모금해서 미혼모 시설에 기부했다고 한다. 정말 보기 드문 연예인의 모습이다. 솔직히 나는 최강희와 닮은 일본 영화 배우 우에노 주리의 모습에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참 똑 부러지는 배우로구나. 일본 여배우지만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런데 바로 나의 옆에 대한민국 여배우 최강희가 있을 줄이야. 최강희 정말 똑 부러지는 여배우이다. 이건 단순히 마음씨만 예뻐서만 아닐 것이다. 그녀의 가치관이나 인간관도 따져보아야할 일이다. 아무튼 최강희 이름만 들어도 너무 기분이 좋다.  우리 곁에 이런 배우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쭉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이런 바램을 표하지 않아도 그녀는 분명 똑 부러지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음이 간다.




이 최강희가 바로 <애자>의 주인공이다. 그러니 어찌 <애자>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애자>가 아무리 비평가의 혹평을 받고, 관객으로 외면당한다고 해도 필자는 꼭 <애자>를 보려고 한다. 순전히 최강희 때문이다. 아니 <애자>는 국민을  두 번 감동시키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너무 예쁜 최강희, 최강희 파이팅이다.


저 촌스런블로그가 아니라 최강희와 영화<애자>를 위하여 추천 꾹꾹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필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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