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5.04.11 <장미빛연인들> 정시내, 이영국의 관계 불륜인가?
  2. 2011.02.22 사랑을 믿어요, 조미료로 뿌려진 불륜코드? (9)
  3. 2011.01.31 사랑을 믿어요, 지상의 아내와 지하의 남편 (8)
  4. 2011.01.04 사랑을 믿어요, 불륜의 갈등을 예고하는 엔딩컷들? (55)
  5. 2011.01.02 사랑을 믿어요, 사랑에 대한 믿음은 의지에서 나온다? (19)
  6. 2010.09.26 결혼해주세요, 윤서영의 비키니 몸매만으로는 부족한가? (24)
  7. 2010.07.28 결혼해 주세요, 윤서영의 불륜을 변호하는 이태임? (8)
  8. 2010.07.26 결혼해 주세요, 막장 불륜을 해결할 수 있는 한 방법? (32)
  9. 2010.07.18 결혼해 주세요, 윤서영은 제 2의 태연희? (22)
  10. 2010.06.24 제빵왕 김탁구, 19세 이상 등급이 된 이유는? (4)
  11. 2010.06.20 결혼해 주세요, <수상한 삼형제>의 ’수상한 삼남매‘ 버전? (12)
  12. 2010.06.12 제빵왕 김탁구, 아직 막장이란 판단은 이르다! (1)
  13. 2010.05.10 수상한 삼형제, 현찰과 도우미의 위장이혼 복수 성공할까? (20)
  14. 2010.04.07 수상한 삼형제, 건강이 다시 실망스러워진 이유? (4)
  15. 2010.03.29 수상한 삼형제, 연희 vs 세경 (19)
  16. 2010.03.24 지붕킥, 세경이 말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의미는? (17)
  17. 2010.03.22 수상한 삼형제, 건강은 바보인가? 지극한 사랑인가? (15)
  18. 2010.03.21 지붕킥, 지훈과 세경 자살인가? 타살인가? (27)
  19. 2010.03.15 수상한삼형제, 막장이라 하면서도 시청률이 높은 이유는? (19)
  20. 2010.03.03 수상한 삼형제가 못난이 삼형제인 이유? (11)
  21. 2010.03.01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이유? (9)
  22. 2010.02.16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이유? (11)



장밋빛연인들 50(2015.04.05.)

<장미빛연인들>에서 이영국과 정시내의 관계가 막장일까요? 한 번쯤 되씹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막장의 냄새를 풍깁니다. 하지만 유부남인 이영국이 독신녀 정시내에게 특별한 호감을 갖는다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동창으로 함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영국이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기일 때 정시내를 찾아 위로를 구하는 것도 뭐 그리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정도로 막장이라면 남녀 사이의 우정이나 만남이 불가능해 지는 것이겠죠.

 

 

​이미지출처: 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50104222606000


이 둘의 관계는 막장이라는 표현보다는 불륜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좁혀서 생각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 같은데요, 혈연이 뒤엉키고 상식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는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영국과 정시내의 관계는 지극히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초등학교 동창이면 아무리 남녀사이라도 그 우정이 남다를 수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기에 그 감정이 특별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게 되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그 어린 시절을 애틋하게 추억합니다. 이영국이나 정시내도 그랬습니다. 그러다 좀 특별한 감정이 싹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이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은 것도 아닙니다. 이영국이 정말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만났기에 정시내에게 의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관계가 위태로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만약 고연화가 이 둘의 관계를 알지 못했다면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진척되었을까요? 이 부분은 판단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영국과 정시내의 자제력을 믿고 있지만 계속 만나다보면 그 자제력이 깨어지기 쉬운 것이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입니다. 결과적으로 마필순의 개입이 그 둘의 불륜을 막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영국과 정시내의 관계는 막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솔직히 이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해도 이영국과 정시내의 관계까지도 막장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네요. 불륜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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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랑을 믿어요>는 가족의 정을 훈훈하게 느낄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막장의 오명을 쓴 드라마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족의 소중한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나 최근에 무너지고있는 가족의 전통적인 가치와 이로인한 가정교육의 부재와 붕괴, 그리고 아이들의 일탈을 떠올려보면 가족의 가치를 잔잔하게 전해주는 드라마의 의미는 참으로 소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의 미덕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겠지만 이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는 바로 가족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그 미덕이 더욱 크게 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의 소중한 가치들은 사랑, 정, 위안 같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15, 16회에서 보여준 할머니(차귀남)와 손녀(김명희)가 아옹다옹거리는 장면등은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가족의 가치가 드마마틱하게 발현되는 데는 서로의 오해와 갈등이 필요한 건 당연한데요, 부부의 갈등, 모자의 갈등, 부자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등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 뒤에 가족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지는 것이겠구요, 다소 과장된 면도 있지만 마치 현실 속 가족을 보는 듯합니다.

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53662



그러나 시청률을 의식해서인지 이러한 갈등들 중에 불륜코드를 끼워놓고 있는 듯한데, 불륜이 만들어 내는 갈등도 가족의 정을 더욱 끈끈하게 느끼게 하는 극적 반전이나 감동의 도구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에 답도 다르겠죠.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불륜 코드는 가족의 가치를 깨는 사건이지 가족을 더욱 결속시키고 정이 넘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족드라마 속에 안타깝게도 이렇게 불륜 코드가 조미료처럼 들어있다는 것은 옥의 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조미료가 우리의 건강에 나쁜 것처럼 불륜코드는 가족을 파괴하는 갈등을 잉태합니다. 가족드라마의 정감 넘치는 내용만으로는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있는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밋밋하기 때문일까요?


아직 불륜코드라고 단정지을 시점은 아니지만 내용전개로 판단해 볼 때 그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이자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이기에 다른 남자와 감정적인 교류를 갖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의 단면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서혜진(박주미 분)과 한승우(이상우 분)의 관계는 가족 이전에 남녀의 본질적인 관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여기에 모성애와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필자는 불륜코드 그 자체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이 없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 불륜코드가 자리하고 있는 상황과 환경은 가려야할 필요성을 느끼는 입장입니다. <사랑을 믿어요>는 부모와 자식들이 함께 볼 수있는 드라마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사랑을 믿어요> 같은 건전한 가족드라마에 돌연변이 같은 불륜코드를 섞어 놓은 것은 다소 느닷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내나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이기에 자기실현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 욕구가 없다면 인간이 아니겠지요. 남편 아닌 한 남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면서 빠져드는 것이 어찌 비현실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사랑을 믿어요>에서는 돌출한 돌부리처럼 아내의 불륜을 다루기보다는 가족 내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의 이성교제나 성장통을 다루는 것이 오히려 더 가족드라마의 성격에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서혜진-한승우의 관계가 다소 이상한 방식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의미있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이 드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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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렵게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 한 집에서 지상에는 영화배우 아내가 지하에는 작가 남편이 살아간다. 기가 막힌 모습이다. 과연 현실에서 이런 부부를 찾아 볼 수 있을까? 드라마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부부 사이의 관계가 아무리 소원해도 이렇게 살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차라리 이혼을 하면 나을 것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기가 막히면서도 참 재미는 있다. 아마도 불이나 싸움 구경을 재미있다고 즐기는 가학적인 심리와 다름없을 것이다. 이런 설정이 기발하다면 기발하고 엽기적이라면 엽기적이지만 재미있는 설정인 것만은 틀림없다. 불륜이나 막장에 비한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설정인가.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지만 왠지 정감이 넘친다. 당사자들이야 심각하겠지만 시청자로서는 가볍고 유쾌하기만 하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드라마이니 부담없이 본다.



지하에 살고 있는 작가 남편은 지하에서 어슬렁거리다 식사 때만 되면 1층으로 올라와 반찬과 라면에 넣을 계란을 훔친다. 출입을 위한 통로를 제외하고는 서로간에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들 부부가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의 이유가 9회에서 대충 밝혀지는데, 영화배우 아내 윤화영(윤미라 분)이 지하로 내쫓은 것은 아니다. 작가 남편 김수봉(박인환 분)이 작가로서 좀 괴팍했던 모양인데, 작품활동하면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술로 탕진한 모양이다. 그러다 부부사이에 금이 가게 되고 김수봉이 독립하려고 했는데 돈이 없어 지하실에 정착한 것이라고 한다.



이 부부는 우리가 재미있게 보는 것과는 달리 정말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인 정도인데 진지하고 심각하다. 이 부부를 보면서 <욕망의 불꽃>의 김영준과 남애리 부부가 떠오른다. 이들에 비하면 윤화영과 김수봉의 관계가 그래도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비록 견훤지간처럼 티격태격이지만 이런 티격태격도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김영준과 남애리는 완전히 무관심이다. 남남이다. 아내가 바람을 피워도 남편이 여자에 흔들려도 서로 묵인하는 사이다. 그래서 <욕망의 불꽃>은 보기가 좀 그렇다. 한마디로 형식상 부부에 불과하다. 윤화영의 경우 접근해 오는 남자에 대해서 막장같은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 불륜이라 할 정도의 행동도 없다. 이렇게 본다면 이 둘의 관계는 발전적인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관계 발전에 오랫동안 미국에 있다 귀국한 듯한 아들 김우진(이필모 분)이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9회에서 김우진은 어머니인 윤화영을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데 정말 반항적이다. 우진이 아기였을 때부터 윤화영이 자신의 집 도우미에게 맡겨 자랐다. 이 집 도우미가 현재 윤화영의 매니저인 하재숙의 엄마이다. 그러니 엄마의 정을 느낄 리가 없고 이런 엄마 대신에 실제적으로 자신을 키운 죽은 재숙의 엄마에게 정을 더 느끼는 것이다. 위에서 우진이 자신의 어머니인 윤화영을 뜻하지 않게 만났다고 했는데 바로 재숙의 엄마 기일에 재숙을 찾았다가 만난 것이다. 김수봉도 이 자리에 있었다.



윤화영에 대한 우진의 태도는 원망과 방항심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래도 아내라고 아버지 김수봉은 윤화영을 두둔한다. 이렇게 두둔하는 모습을 보니 이 부부의 사이가 비록 소원한 상태이지만 점차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또한 집으로 돌아온 윤화영은 게 요리를 준비하고서 지하에 있는 김수봉을 지상으로 초대하고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하다. 이 자리에서 조차도 둘은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지상에서 식사 초대를 받은 것은 예사롭지 않은 관계 진전이 아닐 수 없다. 참 재미이가 있다. 아주 나이가 들면 이렇게 살벌하지는 않지만 티격태격 하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은 쉬 짐작할 수 있다. 정으로 묶인 부부사이에 이런 사랑 싸움은 보기에도 좋다. 그렇다고 윤화영과 김수봉의 관계와 생활방식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사실 비정상적이니까 말이다. 



앞으로 이 부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다. 이들 사이의 관계에 아들 우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  


*이미지 출처는 KBS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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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렵게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 한 집에서 지상에는 영화배우 아내가 지하에는 작가 남편이 살아간다. 기가 막힌 모습이다. 과연 현실에서 이런 부부를 찾아 볼 수 있을까? 드라마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부부 사이의 관계가 아무리 소원해도 이렇게 살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차라리 이혼을 하면 나을 것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기가 막히면서도 참 재미는 있다. 아마도 불이나 싸움 구경을 재미있다고 즐기는 가학적인 심리와 다름없을 것이다. 이런 설정이 기발하다면 기발하고 엽기적이라면 엽기적이지만 재미있는 설정인 것만은 틀림없다. 불륜이나 막장에 비한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설정인가.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지만 왠지 정감이 넘친다. 당사자들이야 심각하겠지만 시청자로서는 가볍고 유쾌하기만 하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드라마이니 부담없이 본다.



지하에 살고 있는 작가 남편은 지하에서 어슬렁거리다 식사 때만 되면 1층으로 올라와 반찬과 라면에 넣을 계란을 훔친다. 출입을 위한 통로를 제외하고는 서로간에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들 부부가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의 이유가 9회에서 대충 밝혀지는데, 영화배우 아내 윤화영(윤미라 분)이 지하로 내쫓은 것은 아니다. 작가 남편 김수봉(박인환 분)이 작가로서 좀 괴팍했던 모양인데, 작품활동하면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술로 탕진한 모양이다. 그러다 부부사이에 금이 가게 되고 김수봉이 독립하려고 했는데 돈이 없어 지하실에 정착한 것이라고 한다.



이 부부는 우리가 재미있게 보는 것과는 달리 정말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인 정도인데 진지하고 심각하다. 이 부부를 보면서 <욕망의 불꽃>의 김영준과 남애리 부부가 떠오른다. 이들에 비하면 윤화영과 김수봉의 관계가 그래도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비록 견훤지간처럼 티격태격이지만 이런 티격태격도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김영준과 남애리는 완전히 무관심이다. 남남이다. 아내가 바람을 피워도 남편이 여자에 흔들려도 서로 묵인하는 사이다. 그래서 <욕망의 불꽃>은 보기가 좀 그렇다. 한마디로 형식상 부부에 불과하다. 윤화영의 경우 접근해 오는 남자에 대해서 막장같은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 불륜이라 할 정도의 행동도 없다. 이렇게 본다면 이 둘의 관계는 발전적인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관계 발전에 오랫동안 미국에 있다 귀국한 듯한 아들 김우진(이필모 분)이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9회에서 김우진은 어머니인 윤화영을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데 정말 반항적이다. 우진이 아기였을 때부터 윤화영이 자신의 집 도우미에게 맡겨 자랐다. 이 집 도우미가 현재 윤화영의 매니저인 하재숙의 엄마이다. 그러니 엄마의 정을 느낄 리가 없고 이런 엄마 대신에 실제적으로 자신을 키운 죽은 재숙의 엄마에게 정을 더 느끼는 것이다. 위에서 우진이 자신의 어머니인 윤화영을 뜻하지 않게 만났다고 했는데 바로 재숙의 엄마 기일에 재숙을 찾았다가 만난 것이다. 김수봉도 이 자리에 있었다.



윤화영에 대한 우진의 태도는 원망과 방항심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래도 아내라고 아버지 김수봉은 윤화영을 두둔한다. 이렇게 두둔하는 모습을 보니 이 부부의 사이가 비록 소원한 상태이지만 점차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또한 집으로 돌아온 윤화영은 게 요리를 준비하고서 지하에 있는 김수봉을 지상으로 초대하고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하다. 이 자리에서 조차도 둘은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지상에서 식사 초대를 받은 것은 예사롭지 않은 관계 진전이 아닐 수 없다. 참 재미이가 있다. 아주 나이가 들면 이렇게 살벌하지는 않지만 티격태격 하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은 쉬 짐작할 수 있다. 정으로 묶인 부부사이에 이런 사랑 싸움은 보기에도 좋다. 그렇다고 윤화영과 김수봉의 관계와 생활방식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사실 비정상적이니까 말이다. 



앞으로 이 부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다. 이들 사이의 관계에 아들 우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  


*이미지 출처는 KBS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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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어요> 1회와 2회는 큰아들 김동훈(이재룡 분)의 아내로 프랑스 유학중인 서혜진(박주리 분)과 한승우(이상우)의 조우와 비켜 지나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 이런 엔딩컷을 드라마 1, 2회에 보여주는 것은 이들의 만남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란 걸 보여준다. 또 시청률을 의식한 호기심의 자극으로도 보인다.



필자는 이 점이 너무 못마땅하다. 서혜진은 한국에 남편 김동훈과 6살된 딸 김란이(김환희)를 남겨두고 프랑스로 유학을 온 여자로 박사논문을 작성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한승우와의 조우를 통해서 불륜적인 관계(?)를 보여줄 기세다. 등장인물 소개를 보면 이러한 사실이 분명해 진다.





 등장인물의 소개에 보면 그들의 관계는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서 시작하여 귀국 이후에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 같다. 드라마의 내용을 이런 관계를 통해서 갈등을 만들고 채워가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가족드라마’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굿이 이런 관계를 통한 갈등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갈등구조를 만드는 데는 다른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드라마라는 틀 속에는 그 틀에 맞는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예들 들면 그 남자가 프랑스로 유학온 고지식한 초등학교 동창생인데, 대학원 카페테리아에서 그저 함께 점심을 하곤 하는 사이가 된다. 어느날 함께 산책삼아 산을 오르다 실족사하고 만다. 이 죄책감이 그녀를 이끌어 가는 주된 갈등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미혼의 여동생이 유학간 것으로 설정해도 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예를들면 그렇다는 것이다.이것은 반드시 남녀 사이의 불륜만을 갈등구조로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전하기 위한 아주 조야한 예에 불과하다. 3년 동안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남자와 귀국후 남편과 삼각 갈등 구조를 갖게 한 저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프랑스에서 혼자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은 의외로 클 것이다. 이 외로움이 한 남자를 만나면서 채워진다는 설정은 자유로운 내용을 보여주는 영화에 맞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개인적인 욕망과 가족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를 존재론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식만으로 아내가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족이 들러 앉아 보는 가족드라마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족드라마의 입장에서는 아내를 프랑스까지 유학 보내준 남편과 엄마 없이 성장해야 하는 아이에 대한 부채감을 더 크게 부각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http://www.kbs.co.kr/drama/believelove/report/photo/index.html


등장인물의 소개에 보면 프랑스에서 서혜진을 스쳐 만난 한승우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때 나는 다시 한번 그녀를 만난다면 꼭 내 여자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 말이다. 물론 그 때 한승우는 서혜진이 유부녀란 사실을 몰랐기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다시 만나고 귀국하고서도 서혜진과 한승우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갈등을 몰고 올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만약 한승우가 서혜진이 유부녀란 사실을 알고서도 서혜진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건 여간 심각해 지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제작진은 왜 이런 갈등을 만들려고 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드라마의 1회를 보고 쓴 감평에서 필자는 일본영화 <녹차의 맛>과 비교하면서 비록 밋밋하지만 깊은 맛을 우려내는 그런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길 바랬다. 그러나 1, 2회의 엔딩컷에서 불륜의 발아를 보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프랑스 유학 3년 만에 돌아온 아내 서혜진과 그녀를 기다려준 남편 김동훈, 그리고 그들 사이에 끼어들게 될 한승우의 이 관계가 어찌 정상적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등장인물의 소개를 보자면 전혀 무리한 걱정만도 아닐 것 같다. 제발 이러한 우려가 근거없는 우려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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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크다. 가족을 매개로 우리네 삶과 밀착되어 있기에 우리 삶에 대한 소박한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괜한 투정도 반찬투정처럼 부릴 수 있고, 답답한 마음에 무심한 어거지도 독백처럼 흘릴 수 있다. 관계들 속에 우리의 삶을 투영해 보면서 간접 체험을 하게도 된다. 바로 이런 게 가족드라마이지 싶다.


http://www.kbs.co.kr/drama/believelove/about/cast/cast01.html



가족드라마가 너무 불륜과 막장으로 치닫는 것이 못마땅한단 것도 바로 현실의 그 속상한 이야기를 드라마에서까지도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드라마가 현실이 되는 것은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창을 통해 보는 세상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니듯이 불륜과 막장이 가족드라마에 빠져서는 안되는 소재는 아니다. 시청률 때문에 불륜과 막장을 이용하는 것이겠지만 그건 제작진의 능력과도 관계가 있다. 시청자들을 감동시킨다면 시청률은 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떠있는 듯한 가요프로그램과는 달리 가족드라마는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서로의 일상을 더듬으며 소통하는 시간이 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가족드라마는 이렇게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과 주제를 제공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런 시간들이 우리 삶에서 점점 사라져만 가는 현실에서 가족드라마는 그런 역할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손자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을 들여다 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자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그 늘어지고 여유있는 시간 말이다.



http://www.kbs.co.kr/drama/believelove/report/photo/index.html



<사랑을 믿어요>. 참 느낌이 좋다. 가족은 불륜과 막장적인 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은 사랑과 믿음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일본영화 <녹차의 맛>을 참 감동적으로 본 기억이 난다. 참 단순하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것이 가족의 이야기라고 믿는다. 말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맛, 그저 맛으로 음미 할 수밖에  없는 맛이 바로 가족 사이의 정이고 사랑의 이야기이다. 마치 가족 동화 같은 느낌이 들었던 <녹차의 맛>처럼 우리의 안방극장 가족드라마의 흐름이 바로 이런 맛이 되면 좋겠다. <수상한삼형제><결혼해주세요>도 가족드라마이긴 했다. 하지만 진정 가족드라마라고 하기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부부드라마나 성인가족드라마라고 하는 편이 나ㅇ,을 것이다. 이제 온 가족이 함께 훈훈한 정을 나눌수 있는 가족드라마의 맛을 녹차처럼 우려내면 어떨까? 



<녹차의 맛>처럼 <사랑을 믿어요> 라는 제목도 참 아름답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감정은 휘발성이 참 강하다. 사랑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불륜이라는 것도 막장이라는 것도 감정에서 피어나는 ‘사랑‘ 에 근거해 있다. 그러나 사랑이 의지라는 것을 강조해 준다면, 그래서 사랑은 믿음이라는 것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전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 드라마에서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랑을 믿어요> 첫회를 보면서 해본 사족같은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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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주세요>가 막장의 혐의를 다소 벗어나나 싶더니 동시에 스토리가 늘어지면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있다. 역시 TV 드라마에서 막장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싶다. 대중의 비난을 감수할 만한 막장 존재, 이를테면 불륜남(녀) 한 둘 정도가 있어야 하나 보다. 아니면 노출신이 있어냐 하나 보다. 그래서일까? 29회에서 최현욱과 윤서영이 느닷없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윤서영의 비키니 몸매에 이어 최현욱의 수영복 몸매도 드러났다. 이렇게 꼭 불륜이나 노출 같은 막장만이 아니다. 무리하게 스토리를 이어가다 보니 어색한 부분들이 두드러졌다. 꼭 구멍난 냄비에 땜질한 부분이 흉측하게 나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을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1.최현욱과 윤서영의 수영신

이미 언급했다시피 최현욱과 윤서영의 수영신은 전혀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 그들이 갑자기 수영을 하는 장면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이전에 태호가 출장갔을 때 윤서영이 수영을 하고, 비키니를 입은 그녀가 시청자들. 특히 남성분들에게 반향을 일으키면서 시청율이 얼마간 상승했기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는 최현욱과 함께였다. 최현욱이 풀장으로 뛰어들기 전에 드러나는 몸매가 애사롭지 않았다. 윤서영 하나로 모자라 최현욱까지 몸매를 드러내야 할 지경까지 가고 말았으니 이것 참 안타까울 정도이다. 만약 남녀의 수영복 씬을 번갈아 내보낸다면 제작진의 그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지 싶다. 다음 회에는 유서영의 비키니 몸매도 다시 한 번 드러내어 줄까?



2.준이의 갑작스런 변화

한경훈의 아들로 등장하는 준이는 정말 어른스러운 아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데 언제나 어른스럽기만 했다. 딸 연호와의 문제로 김종대가 한경훈을 만나려고 경훈의 집으로 찾아가는 중에 준이가 찬 공에 뒤통수를 맞는다. 김종대는 준이에게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이 여기에 살지 않느냐고 묻는다. 축구공에 뒤통수 맞고 만난 것도 지독한 우연인데 한경훈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기막힌 우연이다. 이후 이들은 집으로 함께 들어가는데 문제는 준이의 갑작스러운 변화이다. 언제나 어른스럽던 준이가 처음 본 김종대에게 할아버지라 부르면서 숨박꼭질을 하자고 하고, 말을 태워 달라고 하는 등 영 다른 아이처럼 행동한다.  아마도 한경훈과 종대를 어떻게든 맺어놓으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준이를 이전과는 전혀 이질적인 아이로 만들어 놓는 것은 정말 어색하기만 했다. 준이가 김종대에게 할아버지라 부르면서 친근함을 표하는 것이 무슨 복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3.늦춰지기만 하는 한경훈의 정체

필자는 한경훈의 정체에 대해서 두 번이나 포스트를 적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한경훈의 정체에 대해 또 적으려고 하니 민망할 지경이다. 29회에서 한경훈의 누나(변정수)가 연호를 만나러 학교로 찾아온다. 한경훈의 누나는 이전에 연호가 식당에서 한경훈과 다정하게 함께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물론 연호는 그녀가 한경훈의 누나라는 사실을 몰랐고 단지 한경훈의 여자로 오해했다. 이 일로 한경훈과 연호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연호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찾아 온 여자가 이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호는 경훈의 정체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도, 경훈은 자꾸만 별다른 이유도 없이(실제로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를 주저한다. 이렇게 한경훈이 주저하는 모습이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연호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한경훈이 자신의 정체를 연호에게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언제까지 연호에게 감추려나 말이다.  한경훈의 정체가 이 드라마를 긴장감있게 이끌어가는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유없이 자꾸만 늦추어기만 한다면 그 긴장감이나 궁금함이 반감되고 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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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역할에 대해 연기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겠지만 때로은 역할에 대해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특히 남녀간의 이성적인 관계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다.  리얼하게 연기하면 할수록 부담감이 커지는 역할이 바로 그런 역할일 것이다.


드라마 <결혼해 주세요>에서 대학교수 김태호의 후배이자 아나운서로 열연하고 있는 이태임이 이런 부담감을 털어놓았다. 극중 윤서영 역을 맡고 있는 이태임은 김태호에게 호감을 가지고 아주 노골적으로(?) 들이대면서 막장 불륜의 질책과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이런 역할에 대해 부담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인상이 고정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필자도 윤서영의 행동이 단순히 갈등을 만들기 위한 존재인 것에 불만스럽다. 처음 드라마가 시작될 때는 <수상한 삼형제>의 불륜 막장 코드와는 달리 코믹한 가족드라마를 기대했고 1, 2회에서 (강호와 다혜의 베드신을 제외하고)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듯 했다. 이러한 기대의 연장 선상에서 대학교수가 된 태호가 패셔너블하고 교양있는  아나운서 윤서영을 정임의 롤모델 같은 존재(?)로  강조하면서 아내 정임과 티격태격 거리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정도가 아니라  윤서영이 끈적하게 태호에게 들러붙기 시작하고 태호 또한 서영에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이런 또 불륜이냐!" 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처녀 총각인 강호와 다혜의 한 순간의 실수와 그로 인한 갈등과는 달리 유부남인 태호와 그에게 접근하는 윤서영의 불륜같은 장면들은 마냥 들이대는 서영과 모질지 못한 태호를 싸잡아 비난하기에 충분했다. 처녀 총각과는 달리 그들의 관계는 풍선을 누르는 것처럼 참 위태로운 것이다.  


사실 윤서영은 위태로운 여자이다. 아무리 순수하다고 강변하다고 해도 좀 나쁘게 말하면 바람기가 농후한 여자이다. <수상한 삼형제>에서 태연희와 다를 바가 없는 존재다. 태연희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한 정도가 아니다. 필자가 이미 이전의 포스트에 지적했듯이 윤서영은 제 2의 태연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런 윤서영에 대해 이태임이 부담스럽다고 한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특히 수영장에서 태호의 뺨에 기습 키스를 하는 장면은 이태임에게는 부담스러움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별 뽀뽀를 할 장면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이태임이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윤서영을 변호하는 말을 이어서 했다고 한다.  "서영은 가식이 없고 자기표현에 솔직한 여인이다. 자신을 웃게 하기 위해 태호가 앞머리를 가르며 영구 흉내까지 내는 것을 보고 진짜로 순수하게 귀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어 "그래서 입술이 아닌 뺨에 뽀뽀한 것 아닌가? 정말 누군가의 귀여운 모습을 봤을 때 깨물어주고 뽀뽀해주고 싶은 느낌이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이태임도 윤서영을 이해하고 변호하는 입장이라니 조금은 실망(?)스럽다. 누군가의 귀여운 모습을 보았을 때 깨물어 주고 뽀뽀해 주고 싶은 기분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필자만 하더라도 그런 충동(?)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뽀뽀하고 키스를 한다면 볼썽사납지 않을까? 필자가 딸아이의 뺨에 이런 뽀뽀를 해도 엄청 싫어한다. 특히나 유부남(녀)인 경우에 이런 행동은 자제해야 마땅한 것이다.  윤서영이 아무리 자신의 극중 분신이라고 해도 이런 변호를 하는 것은 너무 솔직하거나 너무 현실에 무감각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결혼해 주세요>의 김태호와 윤서영의 관계는 너무 불만스럽다. 코믹을 기대했고 가족드라마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윤서영의 행동이 불만스럽기에 아무 상관도 없는 이태임에게 짜증을 부린 것 같다. 하기사 이태임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괜한 투정 한 번 부려 보았다. 이태임이 크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첫번째 사진 http://www.bizplace.co.kr/biz_html/content/daum_content_view.html?seq_no=33435
두번째 사진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6011043125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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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주세요> 12회는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인간 관계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갈등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회였다. 이러한 갈등들은 주로 부부들이나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결혼, 배우자, 사랑, 불륜 같은 것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초래했다. 도대체 결혼이라 무엇인가? 갈등을 초래한다면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들도 떠올랐다.




김종대 - 오순옥-송인선, 태호- 정임-서영, 강호-다혜 의 인간 관계들을 보면서 결혼은 왜 했는지, 또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낄 정도였다. 부부라는 틀을 부단하게 벗어나려는 김종대, 김태호의 모습을 보면서 결혼과 아내,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들의 심리적인 동인을 나름대로 헤아려보려고 노력했다.
무엇이 그들을 일탈케하는가? 의 질문은 유부남(유부녀)에게는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이 세상에 일탈을 꿈꾸어 보지 않은 인간들은 없기 때문이다. 비록 마음속으로 만이라도 말이다. 도대체 결혼에 대한 무슨 불만 때문일까? 아니면 아내나 남편에 대한 불만 때문일까? 이도 아니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세상은 수학 공식처럼 단순하지 않다. 이 말은 인간의 감정이 복잡하다는 말과 같다. 인간이 불변하는 진리,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보상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죽 끓듯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감정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인간이 불변하는 진리, 흔들림 없는 신념을 추구하듯이 결혼을 하며 사랑을 맹세했던 아내(남편)에 대한 불변성을 추구해야한다고 본다. 아내(남편)가 진리라는 말이 아니다. 또한 신념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감정의 변덕스러움에 대해 적어도 인간이 추구해야할 불변하는 것들의 항목에는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남편), 가족, 자식이라는 이러한 존재들은 처음 부여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부여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본다. 변덕스러운 감정에 대항하여 의도적인 냉정함과 초심의 생각을 다잡아야 한다고 본다. 인간이 그저 유혹에 넘어가기만 한다면 과연 이 세상에 결혼이란 사회적인 제도가 필요할 이유가 있을까? 결혼이란 그저 위선에 불과하 것이다.


우리사회에 불륜이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다. 애인이라는 말도 일상적으로 내뱉고 있다. 권위적인 존재의 행동을 우리 행동의 정당성의 기준으로 삼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빌 클린튼과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이나 타이거 우즈의 불륜등이 그런 것이다. 그런 사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저들도 그런데 뭘' 이라는 식으로 자신들을 합리화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본다. 적어도 변화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한 추구는 해야 한다.


삶의 일회성이란 것도 그렇다.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삶이기에 모든 경험을 다 해보고자 한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한가지만은 분명히 하자. 아내(남편), 가족, 자식에 대해서만큼은 불변하는 가치의 범주에 포함시키자. 그리고 변화하는 감정에 대해 의도적인 냉정함으로 맞서자. 김종대나 김태호가 자신이 감정을 의도적으로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것이 <결혼해 주세요>가 막장 불륜을 해결할 수 있는 한 밥법이 아닐까 한다. 이거 참, <결혼해 주세요> 12회를 보면서 느낀 점이다.

첫번째사진: http://search.daum.net/search?w=news&req=tab&q=%B0%E1%C8%A5%C7%D8+%C1%D6%BC%BC%BF%E4&req=tab&viewio=i&repno=0&period=0&relQ=&n=10&p=1
두번째 사진: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7231331031001
세번째사진:  http://www.epochtimes.co.kr/news/view.html?section=111&category=117&no=10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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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영이 참 수상합니다. 아무리 태호의 대학 후배라지만 아내가 있는 태호에게 너무 하다고 할 정도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근한 유혹에 가깝습니다. 어느 남자라도 이렇게 은근하게 유혹을 해오면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태호가 조금씩 윤서영에게로 마음이 움직이는 듯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은근한 유혹 때문인 것이지요. 태호만이 아니라 어느 남자라도 저항하기가 어렵지 싶습니다. 같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방송을 함께 하면서 애정이 점점 깊어가는 듯하는데 특히 윤서영의 비이성적이고 감상적인 태도가 태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사실 태호는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인간의 감정이란 텔레비전 리모컨과는 달리 이성적으로 조절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상사병이란 것이 그런 것입니다. 특히 대학교수가 된 태호에게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지적이고 사회적인 신분을 갖춘 여자의 존재는 어쩌면 저항하기 힘들 것입니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태호와 서영의 관계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결혼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인 <결혼해 주세요>에서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론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학 교수인 태호의 입장에서 다소 동정적으로 글을 쓴 적도 있지만(2010/07/05 - [드라마/결혼해주세요] - 결혼해 주세요, 아내와 아줌마의 사이?그래도 결혼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계층 상승으로 아내 정임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듯 해 여간 마음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태호는 정임과 서영을 부단하게 비교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촌스럽고 교양 없는 아내 정임보다도 방송 아나운서로 사회적인 신분과 교양의 정도, 그리고 세련미에서 서영을 동등한 파트너의 자격으로 인정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내가 있음에도 서영과 그렇게 쉽게 어울리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영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유혹에 약한 남자들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꿰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남자들의 심리를 너무 모르거나 말입니다. 서영이 태호에게 접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자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무지하거나 철없는 경우인지 모릅니다. 어느 경우라도 아내가 있는 선배라면 언행을 조심하고 자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호감이 간다고 해도 가정을 가진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본심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은 자제해야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서영은 태호와 거리감을 두기는 커녕 더욱 더 가까이 접근하고만 있습니다. 이러한 접촉은 유부남인 태호에게는 참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 윤서영을 보면 <수삼>의 태연희가 떠오릅니다. 현찰과의 사랑을 위해서 마구잡이로 머리를 내리 밀던 그 태연희 말입니다. 외모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 영락없이 닮았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태연희가 이혼녀이고 서영은 미혼여성이라는 사실뿐입니다. 아무튼 서영은 마치 태연희가 부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임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단순히 태호와 서영의 문제에 집착하면서 해결하려는 수동적인 상황에만 빠져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수삼>의 도우미가 태연희에게 그랬던 것 처럼 정임이 서영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애원하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는 것 입니다. 처음부터 의도적이지는 않겠지만 태호와 서영의 관계 때문에 서럽고 원통한 마음에 ‘맞바람‘ 을 피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맞바람의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결국 태호나 정임이나 똑같은 입장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필자의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KBS 드라마 <결혼해 주세요>의 인물 관계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맞바람의 관계는 이미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작가는 대단한 모험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한 부부를 풍비박산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호와 서영의 관계를 불륜, 막장이라고 비난했는데 정임이 이런 맞바람을 피운다면 그 반응은 엄청날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태호에게 시원한 복수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앞으로 태호와 정임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참 추측하기 힘들어 집니다.


첫번째 이미지: http://www.etoday.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0699&idxno=333268
두번째 이미지: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6011043125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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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그 시대적인 배경이 60,70년대입니다. 2000년대와는 30여년의 시차를 두고 있습니다. 이 30년이란 시간 동안 수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발전을 통한 물질적인 풍요가 있었고 물질적인 풍요 한켠으로는 정신적인 삭막함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 대한 가치 판단도 변화해왔습니다. 특히 남성의 권위주의에 억압당해온 성, 여성, 아이, 교육 등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두드러지게 변화해왔습니다.


<제빵왕 김탁구>가 남성의 권위주의와 가부장제가 강력하던 60,70년대를 시대적인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지금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6070 세대가 아니라면 드라마 내용상 현실과의 괴리와 모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10대의 고등학생이 이 드라마를 본다면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물론 현재를 기준으로 하기에 60,70년대를 시대적인 배경으로 하는 <제빵왕 김탁구>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엽기적이고 이상한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시대가 다르다는 상대적인 입장보다는 현재라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아주 열등하고 잘못된 문화로 치부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6070 세대라면 이 드라마의 내용이나 남자, 여자, 아이에 대한 생각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이미 삶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드라마에 공감하고 추억을 반추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헐벗고, 굶주리면서 삶이 얼마나 피곤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그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스쳐지나가듯이 피상적으로 본다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빵왕 김탁구> 가 19세 이상 관람가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10대, 20대, 심지어 30대까지는 그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사실 19세이상 등급 판정을 내렸지만 이 결정은 야하다거나 성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적인 이유가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10대,20대들에게는 이 드라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19세 이상 관람가능하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19세 미만인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좀 힘들 다는 배려에서 일까요?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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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가 끝나고 <결혼해 주세요> 1회가 방영이 되었다. 중견 탈렌트 백일섭과 고두심, 장용등 중후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1회였다. <결혼해 주세요>는 결혼이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 커플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싶다. 결혼이라는 ‘주제‘ 하에서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개되리라 기대가 크다. 1회에 등장하는 대학교수 김태호와 교양도 세련미도 없는 남정임 부부 외에도, 2, 3회쯤에는 언발란스한 커플들이 탄생할 것 같다. 이 지점에서 <수상한 삼형제>의 수상한 커플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특히<결혼해 주세요>의 삼남매는 어떤 상대들을 만나 재미있는 관계를 이어 갈지 참 궁금하다. <결혼해 주세요>는 마치 <수상한 삼형제>의 ’수상한 삼남매‘ 버전이 되지 않을까 추측하게 된다.


우선, 첫째 김태호와 남정임 커플은 김건강과 엄청난의 관계처럼 학벌상의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 커플처럼 보인다. 하지만 건강이 청난을 거의 바보처럼 포용하고 아량을 베풀었던 것과는 달리 대학교수가 된 태호는 정임을 자신의 수준의 맞지 않는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1회에서 빗속에 정지된 차를 밀라고 아내 정임을 바깥으로 내모는 태호의 처사는 정임을 참 비참하게 만들었다. 교수의 회식자리에서 무안을 당하는 것은 사소하게 보일 정도이다. 결혼 관계에서 이 학벌의 문제는 심각한 갈등을 유발한다. 태호와 정임의 커플도 마찬가지이다. 1회의 내용으로 짐작컨대 정임은 태호가 대학교수가 되기 전 시간 강사로 7년 동안 불안한 자리를 연연할 때 고생고생하며 뒷바라지를 한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대학교수가 되고 보니 아내 정임이 자신의 신분에 걸맞지 않는 것이다. 대학교수가 되는 것을 마냥 좋아하기만 하는 정임에게 닥쳐올 갈등의 회오리바람이 걱정된다.

http://ent.jknews.co.kr/article/news/20100619/4265821.htm


둘째는, 김태호의 여동생 김연호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로 참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여자이다. 1회에서 도대체 이런 자격 미달의 여자가 어떻게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의 고모 김종남의 말로 추측컨대 연호는 결혼정보사나 중매를 통해 변호사와 교제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박변호사와 연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이 둘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커플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연호 앞에 한경훈이 나타나고 학교에서 우연찮은 사건으로 인연(?)이 맺어지는데 이때 연호의 이기적이고 싸가지 없는 면모가 다 나타난다. 연호는 참 정나미 만정이 다 떨어지는 인간이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한경훈과 커플로 맺어질 것인지 아닌지 자못 궁금해진다.


셋째는, 막내 김강호이다. 강호는 직장을 구하고 있는 백수이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너무 여성적이다. 그러다보니 직장 면접에서 긴장하고 떨면서 제대로 면접한 번 치루지 못하고 떨어지기만 하는 형편이다. 강호가 면접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유다혜를 목격한다. 자신이 유다혜를 구하려고 불량배들에게 다가가지만 오히려 당하게 된다. 그런데 그를 구해주는 존재가 유다혜였으니 이런 남자 망신이 어디에 있을까? 정말 하루 하루 되는 일이 없는 강호다. 강호의 성격이 이렇다보니 늘상 이런 삶을 살아가리라 짐작이 된다. 좋게 이야기 하면 순수하달까. 하지만 이건 과장에 가깝다. 우연하게 만난 강호와 다혜의 관계도 어떻게 진행이 되어갈지 참 궁금하다. 남녀의 성격이 전혀 상반되어져버린 이 관계는 참 어처구니없는 지경이다.


출처: KBS 홈페이지



그런데 이 ‘수상한‘ 삼남매의 수상한 이야기가 다가 아니다. KBS 드라마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등장인물간의 관계도를 보면 아버지 김종대가 송인선이라는 여자와 애정 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심상잖은 갈등을 예고한다. 물론 이것은 한 중년 남자의 여자를 향한 플라토닉 러브 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또한 김태호가 아나운서인 대학후배 윤서영과 애정라인이 형성되고 남정임이 최현욱과 애정 라인이 그려지는 것으로 보아 코믹으로 일관하겠지만 막장의 성격도 다분히 가질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어찌보면 <수상한 삼형제>보다 막장(?)에 빠질 여지가 아주 넓고 깊어 보인다.


하지만 관계도에서 보여지는 관계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관계일 수 있으니 막장으로 이어질지의 여부도 아직까지는 판단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코믹하게 시작을 하였으니 앞으로 계속 재미있는 드라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단은 재미있고 볼 일이다. 물론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드라마가 되면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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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아직 막장이란 판단은 이르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1회에서 불륜의 장면들이 막장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은 그러한 비판이 이르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러한 장면들이 출생의 비밀을 실감있게 그리고 있다는 면에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불륜만 나오면 무조건 막장이라는 비판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모든 불륜 장면이 막장이라면 이 세상에 막장아닌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 없을 정도가 아니겠는가? <제빵왕 김탁구>에서 불륜은 구일중의 아내인 서인숙(전인화 분)의 주술적인 믿음과 남아선호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산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설득력있는 장면이며, 구일중과 미순의 불륜 또한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거성가의 간호사(보모)인 미순의 경우는 남성권위주의와 부에 희생당하는 여성성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불순한 남녀관계로만 폄훼하면서 막장이라고 한다면 드라마 전체보다는 부분에 집착하는 오류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 즉, 불륜 그 자체 만이 아니라 그것이 드라마 전체에 갖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등한시 하는 것이다. 드라마마나 영화의 경우에 남념의 애정씬이 내용상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영화 <하녀>에서 성적 노리개롤 농락당하거나 자발적으로 성을 수단화는 의식을 묘사하기 위해 성적인 표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런 예이다. 영화 <동파리>에서 자식이 부모를 때리는 장면이나 <올드보이>에서 모르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딸과 성관계를 갖는 것 등은 막장이라면 지독한 막장이다. 그러나 그것에 막장이라는 레벨을 달기보다는 필연적인 요소로 보는 것은 그 장면 자체가 아니라 큰 테두리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 대한 막장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현찰과 연희의 불륜이나, 엄청난의 철없는 짓 등을 빗대어 막장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은 가족드라마의 시간 편성상의 잘못일지 언정 막장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막장은 불륜이나 엽기적인 장면이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에 시종일관하는 통일성에서 벗어나 맹목적이고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경우로서 필연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1회에서 벌어진 불륜들은 단순히 막장이 아니라 스토리를 낳는 근원으로 파악되거나 원죄적인 운명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상징성과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 불륜은 어쩌면 성경에 있는 ‘태초의 말씀‘이거나 아라비안 나이트의 ’왕을 기쁘게 하는 이야기‘ 이나 철학의 ’합목적적 존재자‘ 의 위치를 차지하거나 비교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제 2회에 접어들고 스토리의 전개가 점점 흥미가 있어지는 <제빵왕 김탁구>를 아직은 주지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섣불리 막장이라는 식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스스로의 안목을 너무 좁히는 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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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현찰과 도우미의 위장이혼 복수 성공할까?




드라마에서 복수는 참 재미있는 소재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시리즈나 최근의 <모범시민>같은 영화들이 참 잔인하기는 하지만 재미가 있는 이유가 복수 때문이다. <모범시민>의 주인공은 복수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복수가 아닐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복수는 인간에게 흥미를 자아낼까?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억울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도 법과는 무관하며 <모범시민>도 그렇다. 법의 불완전성을 통쾌하게 깨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수상한 삼형제>도 마찬가지이다. 현찰과 도우미에게 법이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사기와 공모해서 철저하게 사기를 친 연희를 보는 것은 참 불편하다. 양심을 버리고 교묘하게 법을 이용해 사기를 친 연희는 세상에 활개를 치고, 사기를 당하고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버린 현찰과 도우미는 다시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모습은 법의 불완전성과 억울함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법이 가리는 데 실패한 정의를 현찰과 도우미가 복수를 통해 되찾으려 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복수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니 <수상한 삼형제>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아마 현찰과 도우미의 위장이혼 복수가 성공할까의 여부가 시청률의 최고점에 이르게 하지 않을까 싶다.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 복수에 대해 연희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샛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연희를 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힐 정도이다. 김사기를 거느리는 조폭의 여두목 같이 보이는가 하면, 신세진을 스파이로 포섭하는 공작의 달인 같기도 하며, 현찰이나 우미와 대화를 하노라면 마치 정의의 사도마냥 '태연한' 걸 보면 정말 탁월한 인물이다. 이런 연희가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드라마에 등장한다는 것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연희는 이미 신세진이란 자신의 심복을 현찰의 가게에 심어놓은 상태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 만약 가게내에서 현찰과 우미가 말을 잘못 하기만 해도 연희에게 위장이혼이 탄로 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연희에 대한 복수는 물 건너가고 만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찰과 우미의 사이를 의심한 연희가 현찰을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 이혼하는 것이 맞냐며 다그치고, 돌아서는 현찰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아, 위장이혼 복수도 끝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마침 연희의 아파트로 들이닥친 우미의 기지로 위기의 순간을 모면한다. 속고 속이는, 믿고 믿게 하는 현찰과 우미, 그리고 연희의 관계가 과연 어떠한 결말로 마무리 될지 참 기대가 된다. 이와 더불어, 현찰과 우미의 위장이혼과 연희의 발 빠른 대응이 어떤 갈등을 만들어내며 의기 상황을 맞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이다. 가족 드라마가 고도의 심리전과 전략이 충돌하는 서스펜스 복수극이 되는 상황이다.


이제 <수상한 삼형제>는 현찰과 우미의 통쾌한 복수를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 거는 최고의 기대가 되었다. 이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에 따라 시청자들이 얻는 만족감도 커지게 될 것이다. 아무튼 현찰과 우미가 당한 만큼 연희가 통쾌하게 복수당하는 모습이야 말로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이 되리라 싶다.


현찰과 도우미의 복수를 유치하게 볼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들의 복수가 막장이라느니 하지만 왜 막장인지 모르겠다. 드라마상에서 극단적으로 억울한 상황이라면 극단적인 방법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현찰과 도우미같이 삶에 성실한 일반인들도 위장이혼을 하면서까지 복수를 하고 싶은 그런 현실적인 상황이 있을 것이다. 지나친 폭력 위주의 복수가 아니라면 수상한 삼형제의 복수는 긍정적으로 보면 좋겠다.
 

첫번재 이미지: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800&g_serial=49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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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 건강이 다시 실망스러워진 이유?




<수상한 삼형제>는 이름 그대로 참 수상한 삼형제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이 중에서 첫째 건강이야 말로 수상을 넘어 '속상' 한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물론 이전의 건강과 현재의 건강을 비교해 보면 인간다운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독립심이나 판단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의지박약한 인간에서 엄청난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건강을 응원했다. 사람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


건강이 엄청난에게 결혼 사기를 당하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침내는 그 아이 종남의 생부인 하행선까지 대면하면서 겪고 있는 그 험난한 인생행로는 동정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니 동정에만 그칠 정도가 아니라 순수한 남편, 끝까지 아내와 자식을 책임지려는 한 진실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정말 바보스럽긴 하지만 순수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인물이 되어갔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이러한 기대가 한 순간에 날아가고 말았다. 고물상을 하겠다며 선뜻 나서면서 자신의 어머니 전과자에게 5천만원을 빌려달라는 대목에서였다. 사업 경험이 없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 구체적인 계획조차도 없이 고물상을 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5천만원을 빌리는 것이다. 한숨이 나왔다. 결국 건강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구나!


건강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안다. 그러기에 다시 일어서려는 절박함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두 살 먹은 아이도 아니고 전과자에게 5천만원을 빌려달라고 어리냥을 부리는 모습은 참 철없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에게 아내와 자식이라는 부양해야할 가족이 생겼으니 자신이 경제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엄청난과 어렵게 부부의 연을 이어가면서 건강이가 보여준 삶의 희망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이러한 건강의 삶에 대한 노력이 드라마 구성의 엉성함으로 말미암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전달되지는 못했지만 전달되는 느낌만큼은 강렬했다. 찜질방에서 잡일은 기본이고, 신문 배달, 도로 위에서의 뻥튀기 장사 등 건강이 보여준 일련의 노력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이 감동적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신파조나 즉흥적인 구상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작품 구성상의 흠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는 감동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이 이 모든 노력의 가치들을 포기하고 갑자기 고물상을 하겠다며 자신의 어머니인 전과자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쉽게 말하고 또 쉽게 허락을 받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답지 않는 성급한 부탁이었다. 어머니 전과자로서도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해도 적지 않은 5천만이라는 돈을 거래한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이 전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건강이 자신의 노력이라는 탑을 스스로 허물어 버렸다는 것이다. 한 순간에 생각 없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5천만을 빌린다는 것은 생각이 없어도 너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를 통해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인 가치관과 삶에서의 입장들 간의 충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건강과 전과자의 관계는 우리 사회의 장자편애와 지나친 혈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아니 그렇게 선고해버리기도 하지만 '가치관과 삶에서의 입장들 간의 충돌' 을 보여주고 그 관계들과 입장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은 의미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과자-건강-현찰-우미의 관계가 우리 사회의 가족 구성원들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게 하는 것이 그렇다.
 

아무튼 건강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이미지가 갑작스런 고물상 사업과 5천만원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엄청난에 대한 순수하고 바보 같은 사랑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갈채를 보냈지만, 여전히 자립하지 못하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는 유아적인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보아 줄 수가 없다. 건강의 갈 길이 아직도 이렇게 멀다는 말인가?


첫번째 이미지 출처: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003151217393&mode=sub_view

두번째 이미지: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26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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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연희 vs 세경




<지붕킥>이 끝난 지 1주일이 넘었다. 세경과 지훈의 파멸적인 결말이 가져온 충격은 참으로 컸다. 이 파멸의 중심에 세경이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아니 연출자가 있었다. 내용상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결말인데다가 연출자의 억지스러운 감정이 과다하게 투영되어 완전히 막장이 되어버린 케이스다.


세경을 위해 시간을 멈추어 주고 싶었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시트콤의 모든 미덕을 내팽개쳐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세경이 지훈을 파멸로 이끈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 삼형제>의 연희가 현찰을 유혹하는 것과 별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지붕킥>을 이런 막장과 감히 비교하는 것에 불쾌감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청순 가련한 세경을 유부남 현찰을 홀리는 늙은 여우같은 자기 중심적인 연희와 비교한다는 것에 몸서리를 칠지도 모르겠다. 고상한 문학적인 취향과 3류 막장 드라마를 비교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짓으로 글쓴이를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랴, <지붕킥>의 세경이 <수상한 삼형제>의 연희와 동류의 여자라는 확신이 드는 데 말이다. 물론 다른 점이 있긴 있다. 지훈은 총각이라는 사실이고, 현찰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결말을 놓고 보면 이 차이는 오히려 역전이 된다. 지훈의 죽음은 도우미의 불행보다도 더 불행하니까 말이다.


나는 청순가련함의 상징인 세경이 연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어떤 편견을 깨고 싶다. 사실 이러한 편견을 깨고 싶은 건 연출자에 대한 실망 때문임을 솔직히 고백해야 겠다. 황당한 결말을 만들면서도 '시간을 멈춘다' 느니 '뒤늦은 자각' 이니 하면서 그 편견을 계속 고상하게 만들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개죽음을 만들어 놓고도 고상하게 봐 달라는 제스처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기 때문이다. 세경이 <수상한 삼형제>의 연희류와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일까? 세경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건 세경 그 자신이 아니라 연출가이지만 말이다.



세경과 연희가 다르다면 음악으로 치자면 발라드와 트로트의 차이일 뿐이다. 아무리 세경이 청순가련하고 그녀의 마지막 말이 형이상학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막장이라 비난받는 연희의 세속적인 사고와 행동, 말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연희는 단지 천박하고 저속한 형이하학적인 인물이란 말인가?


연희의 입장에서 보면 연희의 감정에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 이러한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그다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경이 지훈을 짝사랑 한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을 행위로 옮기는데 있다. 연희가 지속적으로 현찰을 유혹하는 것이 그렇다. 이 유혹에 우리가 막장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사회적인 관행 때문이다. 자신의 아파트나 호텔로 현찰을 불러들이는 등 일련의 행동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정이라는 변명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사랑의 유혹이다.


그렇다면 세경은 어떤가? 청순가련함이란 아후라에 우리가 너무 고상한 생각만을 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너무도 유명만 김병욱 PD의 시트콤인데 무언가 깊은 뜻이 있지 않나고 지레 아후라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결말에서 넋두리를 하는 세경이나 현찰에게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연희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런 그들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세경은 고상하고 연희는 저속하다는 식으로 단정지을 수 있을까? 세경이 "시간이 멈추면 좋겠어요" 라는 말이 연희가 "이제 널 내 남자로 만들 거야." 라고 하는 말과 도대체 질적으로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허황된 결말은 그저 허황된 결말일 뿐이지 그것에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봤자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막장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덮어쓰고 있지만 그래도 <수상한 삼형제>의 연희는 행동이나 사고에 일관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실감이 있다 보니 연희가 죽을 년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세경은 연희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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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 세경이 말한 시간이 멈춘다는 것의 의미는?







실망스러운 표현이겠지만, 지붕킥의 결말은 막장이다. 이 '막장' 이라는 의미는 다소 중첩적이라 할 수 있다. 내용상으로 막장이지만 또한 막장을 막장스럽게 하는 전제조차도 부족한 막장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소설이든 영화이든 드라마이든 내용상 막장인 경우는 많다. 대부분의 폭력영화가 그렇다. 예를 들면 <똥파리> 같은 경우를 보면 그 내용의 막장스럽기가 치가 떨릴 지경이다. 그런데 그 <똥파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가 되는 것은 막장스럽게 하는 과정이 아주 설득력있게 잘 짜여졌다는 말이다. <올드보이>의 폭력신은 대단히 혐오스러울 정도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의 반열에 오른 건 그 막장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득력이다. <양들의 침묵> 시리즈도 마찬가지이다. 혐오스럽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 속에 도사리는 악의 본질이 그토록 혐오스럽다는 면에서 현실적인 설득력 을 가진다. 그러니 내용이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그 작품성까지 막장이라고 하면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설득력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나가면서 막장스러움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다. 이 말은 작가는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작품을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붕킥> 결말의 핵심은 시간을 멈추면서 '지훈과 세경' 에게 영원성을 확보해 주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세경과 지훈의 커플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편이었지만 이러한 막장같은 파행적인 결말에 대해서는 도저히 혐오스러움만 느낄 뿐이다.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과잉된 감정의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시간을 멈추기 위해 차를 타고 빗길을 질주하던 순간이 아니었다. 힘들지만 시간과 마주하기 위해 차를 탄 것이다. 타이티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빠와 신애와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또 사랑하는 정음과의 만남을 위해 잠깐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차를 타고 있다는 의미는 너무 가슴이 벅찬 상황인 것이다. 비가 오게할 상황도 전혀 아닌 것이다. 좋은 날씨에 해가 쨍쨍 나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갑자기 허무주의가 필연적으로 나타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도대체 누가 시간을 멈추었는가? 시간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시간을 멈추었는가? 시간을 멈춘다는 것은 예술의 궁극적인 가치와도 통하는 것이다. 포착되는 순간은 아주 짧지만 또 그렇기에 영원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진이나 그림, 조각의 미가 그런 것이다. 이 예술적 미는 대단히 조화로워야 한다. 그 자체의 이유와 필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는 어떤가? 수 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포착된 영상들이다. 흩어져 있는 일상의 행동들을 설득력있게 이어서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과정은 그 자체가 조화로움이다. 원인이 없이 불쑥 결과가 나타나는 따위의 것을 영화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의미있는 구조물이 영화이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조화와 설득력이라는 것이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붕킥의 결말은 조화와 설득력이 깨어져 버렸다. 지훈과 세경은 마치 꼭두각시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 조종되고 말았다. 지훈과 세경이 시간을 멈춘것이 아니라 작가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시간을 멈추어 버린 것이다. 줄을 끈어 버린 것이다. 화장실에라도 가고 싶었을까? 비유하자면 열심히 살려고 하는 존재들에게 자살을 강요한 셈이다. 세경과 지훈이 시간을 멈추고자 한다면 그 행동이나 사고에 내적인 필연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경이나 지훈은 리모콘으로 조종되는 로보트처럼 시간을 멈추기 위해서 자살을 해버린다. 감독의 말대로 그들이 시간을 멈추려고 했다면 자살이어야 하는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영원성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려고 하는 주인공들을 타살해 버렸으니 그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시간을 멈춘다는 것은 영원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이기도 하다. 갇혀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조각 속에, 시어 속에, 소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장을 멈추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나 성장이 중단 된다는 것이다. 영원성이 중단이고 죽음이기도 하다는 것 참 아이러니하다.  마치 궤변 같기도 하다. 지훈과 세경이 시간을 멈추면서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차안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이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가 강요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시간을 멈춰버리려고 참 황당한 장면을 연출했다. 앞 뒤 상황 재지않고 시간만 멈추어 놓으면 그들은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영원성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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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건강은 바보인가? 지극한 사랑인가?




변화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육체적으로는 말 할 것도 없고 육체에 담긴 정신도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변화의 양상이 좀 특이한데 육체는 악화되는 변화(늙음)를 거치는 반면에 정신은 더욱 성숙해진다. 이걸 발전적인 변화라고 하면 될까? 변화는 인간의 본질이다. 육체가 노쇠해 질수록 인간의 정신은 원만해 지고 지혜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이 젊다는 것과 늙었다는 것이 마치 질량불변의 법칙처럼이나 내외의 질적인 면이 상쇄되면서 젊음이 부럽지도 늙음이 한탄스럽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노쇠하는 늙음과 더불어 정신 또한 쇠락한다면 이처럼 불행한 일도 또 있을까? 나이가 들어가면 정신이 조금씩 성숙해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 옹졸해지고 편협해진다면 그걸 퇴보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각설하고......


<수상한 삼형제>의 엄청난은 변화되기가 참 힘든 인물처럼 보였다. 자신이 변화해야겠다는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인간 같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청난과 같은 인간을 교육시키는 것이 교육기관의 궁극적인 사명이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엄청난의 거짓말과 허영과 허세는 보는 내내 얼굴이 확확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과연 엄청난이 어떻게 변할까하는 것이 <수상한 삼형제>의 재미가 될 정도이다. 그만큼 많은 시청자들이 욕을 하며 보면서도 청난이 변하기를 바라는 심정일 것이다. 정말이지 엄청난에게 변화는 어려운 것 같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다 있나 하는 정도다. 그런데 요즘 이런 엄청난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이 변화를 하는 것은 아주 많은 부분 건강의 힘이 크다. 엄청난이 건강을 통해서 변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상하다. 건강은 답답하고 어리석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물론 건강도 청난을 통해 변해간다. 극중에 건강이 청난을 통해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한다. 인간 관계가 상호관계인 이상 서로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청난의 변화가 의미가 있지만 그것보다 청난을 변하게 하는 건강의 모습이야 말로 더욱 생각해 볼만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세상에 과연 건강과 같은 사내가 있을까 싶다. 엄청난을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 폭풍처럼 어려움이 연속해서 밀려오지만 그때마다 청난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80평 아파트가 있다는 청난의 거짓말에도, 수천의 빚이 있음을 알았을 때도, 청난의 아들 종남이를 알았을 때도 건강은 청난을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청난이 종남을 데리고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도 건강은 청난과 종남을 찾아 다녔고 그녀를 다시 결합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이제 건강에 더 큰 폭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하행선이 바로 그 폭풍이다. 아마 가장 험난한 시련이 될 것이다. 건강이 청난을 끝까지 사랑하고 받아들일지 아니면 하행선에게 사랑하는 청난을 양보할지는 알 수가 없다. 마무튼 어떠한 경우라도 건강의 사랑은 참 대단하다.


이러한 건강의 모습은 바보같다. 멍청하다. 현실적으로 볼 때는 불가능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건강이 바보이고 멍청이일까? 이걸 막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드라마이지만 건강은 청난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청난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청난을 끝까지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건강의 모습은 지극한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건강의 사랑을 순수하고 지극한 사랑이라 한 들 욕할 자 있을까?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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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 지훈과 세경 자살인가? 타살인가?


 


정말 실망스러운 결말이었다. 이런 결말은 작가가 너무 염세적이다라는 생각밖에 들게 하지 않는다. 지훈과 세경의 죽음은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살과 사고사와 작가에 의한 타살이 그것이다.


우선 자살이라고 했을 때 지훈이 자살을 선택할 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지훈이 물귀신도 아니고 이제 막 새로 시작하려는 세경과 함께 자살을 선택할 만큼 의지 박약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붕킥에서의 지훈의 모습은 자살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어디를 보아도 죽음에 대한 암시나 성격적인 결함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지훈이 세경과 함께 자살을 선택할 만큼 삶이 고통스러웠느냐, 아니면 세경의 고백을 듣는 순간 지나온 삶이 그야말로 후회스러울 정도로 정음과의 사랑이 자신의 삶이 자괴감에 사로잡혔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세경과 함께 물귀신식으로 ' 함께 죽자' 라는 생각을 했을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죽음은 결코 자살이 될 수 없다.


세경도 마찬가지이다. 지훈이 잡고 있는 핸들을 잡아챘을 리도 만무하다. 그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런 세경이었다면 이 <지붕킥>을 봐 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세경처럼 성숙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도 없다. 세경이 아빠와 신애를 두고 지훈과 자살을 선택할 만큼 무모한 아이는 결코 아니다.



둘째로, 사고인 경우는 상당히 개연성이 있다. 사고란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비가 많이 오고 차 안에서는 감상적인 이야기로 분위기가 한껏 다운이 되었다면 사고의 가능성은 커진다. 그러나 사고라는 우연이 남발된다면 특히나 결말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면 굳이 장시간 동안 드라마를 만들 필요나 삶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줄 이유가 있을까 싶다. 또한 인생은 허무하다, 부조리하다라는 사실을 시트콤에서 보여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사고사라 하더라도 그 사고의 심각성이 지훈과 세경의 정신적인 파멸의 심각성을 상징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마저도 납득하기가 힘들다. 사고가 나게 하는 필연적인 이유도 부족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부조리와 허무에 기인한다면 사고 자체의 이유로는 가능하지만 가족이 모두 보는 국민 시트콤과는 걸맞지 않다. 그들의 죽음이 새로운 희망의 상징이라고 보는가? 예술에서의 허무적이고 부조리한 죽음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둥바등 살아가는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이러한 부조리한 허무주의를 보여주는 건 예술의 지나친 남용이라고 본다.


셋째로 그렇다면 타살인가? 타살이다. 이건 명백하게 타살이다. 작가에 의한 타살이다. 이야기는 등장인물들 스스로가 이끌어 나가야지 작가가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작가의 철학에 의해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파멸을 맞게 된다면 이건 타살에 불과하다. 만약 지붕킥이 처음부터 시트콤이 아니라 부조리하고 허무적인 색채가 드라마의 전반을 지배해온 부조리극이라거나 허무즈이가 두드러졌다면 이러한 죽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지붕킥은 국민 시트콤으로 순재가 자옥과 커플이 되고, 보석의 쾌할함과 신애와 해리가 화해를 하는 등 부조리한 삶보다는 희망을, 슬픔보다는 웃음을 제공해 주었다. 지훈이 정음으로 인해 마음 상처를 받고 있지만 그로 인해 감정에 하몰되어 죽음을 생각할 성격적인 결함을 가진 인물도 아니었다. 세경이 아빠를 찾아 새로운 희망을 시작하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의욕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작가가 이들에게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은 작가의 개입이 이 드라마의 결말을 완전히 망쳤다고 본다. 대본을 쓴다는 것과 이야기 속에 작가의 힘을 행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왜 삶을 이렇게 부조리하게 만들어 버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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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막장이라 하면서도 시청률이 높은 이유는?



<수상한 삼형제>는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수상한 삼형제>는 반인륜적이라거나 엽기적인 드라마가 아닌데도 그렇다. 노골적으로 불륜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인륜을 저버린 오이디푸스적인 관계의 엽기성도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상호간의 갈등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고부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 <수상한 삼형제>를 막장이라고 한다고 결국 이것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이 막장인 셈이 된다. 아마 현실이 막장이라는 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분명 더 막장이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막장이 아닌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하는 비난이 안타깝다.


그런데 이런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한다. 공중파에 이런 부정적인 내용이 판을 쳐도 된다는 말인가? 이걸 용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도 이전의 포스트에서 이런식의 언급을 했다. "수상한 삼형제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단지 그 방영 시간대를 잘못 선택했을 뿐이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정확치는 않지만 이런 언급도 했다. "영화나 소설 내용의 막장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는가?" 문학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는 그 이유 때문인가 말인가? 소설의 내용도 막장이고, 영화도 막장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내용이 막장이라고 해서 작품의 예술성까지 먹칠이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수상한 삼형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예술성 운운은 좀 그렇긴 하지만 말이다.
 

<수상한 삼형제>를 막장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현실의 반영이기에 막장 그 자체는 아니다. 오히려 막장을 보여주면서 분노하게 하고 슬픔을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 예술적인 장르로써의 리얼리즘이라고 부르기에는 엄청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시간 떼우기식이나 대중 길들이기식의 3류 저질 드라마도 아니라고 본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이긴 하다. 아마 시청률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 TV드라마의 속성상 이런 의도적인 도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정담을 나누면서 보는 드라마에서 한 발자욱 더 나아가 가긴 했지만 전혀 엽기적이거나 외설적이고 비현실적인 막장드라마는 결코 아니다.



첫째는, 현실의 갈등적인 양상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부분은 대단히 엉성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의 핵심을 제대로 집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 부부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등등이 그렇다. 며느리가 무조건 시어머니에게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막장이라고 한다면 이 갈등의 본질에 너무 무관심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둘째는, 엉성하긴 하지만 형식에 있어서도 막장 드라마에서나 자주 볼 수 있는 비약적인 전개가 그다지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상한 삼형제>는 구성상으로도 짜임새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화를 나눈답시고 찾아가는 곳이 다방이고, 백마탄의 부모가 갑부라는 것, 백마탄과 부영이 결혼을 한다는 등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막장일 정도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시청률을 올려 놓았던 세경-지훈-정음의 러브 라인도 따지고 보면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시청률의 정점에 다다르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감정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상한 삼형제>가 부정적이고, 거부감이 든다고 해서 막장이라는 식의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연희의 입장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녀의 행동이 거부감이 들고 협오스럽다고 해서 막장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갈들의 양상이 우리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해서 막장이라면 문학도, 예술도 막장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수상한 삼형제> 가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 막장인 현실의 면면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솔직하지 않는가? <수상한 삼형제>를 통해 인간 관계에 대해, 인간에 대해 분노가 일고, 혐오감이 들었다면, 그 분노와 혐오가 문학이나 영화에서 흔히 말하는 그 고상한 감동이라는 말과는 전혀 무관하기만 할까?


*첫번째 사진 출처: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30810352797772&outlink=2&SVEC
 두번째 사진 출처: http://www.morningnews.or.kr/read.php3?no=19765&read_temp=20100228&section=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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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못난이 삼형제?


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32&newsid=01085686592899056&DirCode=0010302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는 제목 그대로 삼형제가 수상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삼형제가 무엇이 수상할까? 필자가 판단하기로 삼형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바보같고 어리숙 할 뿐 수상하지는 않다. 오히려 삼형제 중의 건강의 아내(청난)와 현찰과 이상의 친구, 상사(연희,태백)가 수상하다.


그런데 왜 제목을 이렇게 선택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직 결말이 나기에는 한참이나 멀기 때문에 삼형제들이 수상하게 변할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 현찰이고 그 다음이 이상이다. 현찰은 연희로 인해서, 이상은 태백에 의해서 수상한 모습으로 변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 삼형제가 수상스러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연희와 청난, 그리고 태백이 밉상에 가까울 정도로 수상스러운 행동이나 말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삼형제에게 이러한 수상스런 존재가 근처에서 맴돌기는 하지만 수상한 삼형제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그들과의 관계가 더욱 은밀해지고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된다면 그들도 수상한 삼형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수상한 정도로 넘어서 '엄청난' 사고뭉치인 엄청난에 의해서 계속 속임을 당하면서 믿고 용서하는 건강은 아무리 양보해도 수상하기 보다는 바보 같고 한심스럽기는 하지만 수상하지는 않는 것이다.


http://news.wef.co.kr/wedding/?BBS=10137&MODE=VIEW&BYLINE=&CurrentPage=1&uSearchID=&uSearchText=&IDX=62066



삼형제가 수상스럽지 않다면, 도대체 그들은 어떻단 말인가? 지금까지의 스토리로 보면 수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상스러운 인간들(엄청난과 연희는 말할 필요도 없고, 태백, 심지어 어영까지)에 의해 속고, 판단이 흐려지고, 이용당하고 있는 다들 바보 같은 인물들이다. 차라리 드라마의 제목을 '바보 삼형제' 라고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우선, 건강을 보자.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큰 바보이다. 현실적인 판단으로 엄청난은 사기꾼이다. 80평짜리 아파트가 있다고 속이고, 2,000 만원 빚이 있는 것을 없다고 속인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건강이 다 뒤집어 썼다. 심지어 아이까지 있는 사실도 숨겼으니 이건 완전히 쓰리고에 피박에 흔들고 완전히 뒤집어 덮어쓴 꼴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여자를 용서해 줄 남자가 있을까? 어떤 남자가 건강이처럼 청난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정말이지 건강이는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같은 존재이다. 세상에 이런 바보가 어디에 있는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이는 바보지 수상한 인간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anitalgiapark/9Tb2/1097?docid=zvRf|9Tb2|1097|20060301085800



현찰은 또 어떤가? 현찰 또한 마찬가지이다. 건강이 보다는 작은 바보이다. 연애에 한해서는 건강이 보다 더 정신적으로 미숙한 것 같다. 어떻게 미모의 도우미를 아내로 삼을 수 있었을까? 아무튼 수상한 연희가 그야말로 여우같이 현찰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면서 유혹하고 있기에 빠져들고 있을 뿐 현찰이도 바보이긴 마찬가지이다. 연희에게 농락당하는 꼴이 불쌍하고 우습다. 건강이 아가페적인 바보라면 현찰은 에로스적인 바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히 연희에게 농락당하는 꼴이 말이다. 그래도 연희에게 '돈'을 빼앗기지는 않겠지.


이상은 그나마 바보의 정도가 좀 덜하다. 우선 어머니와 아내(어영)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더욱 악화시키는 바보 같은 짓을 하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의 바보라기보다는 경험부족에서 오는 실수 같다. 사실 이런 문제는 누구가 겪기 마련이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지혜가 생기면서 해소되는 그런 갈등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상이 태백의 접근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상이 태백과의 관계를 통해 연정이 생긴다면 이는 아주 은밀해 질 수 있다. 연애에 관한한 이상은 건강이나 현찰처럼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이상이야말로 가장 수상한 인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추측이 가능할 만큼 작가가 뻔한 스토리를 전개할 가능성이 있을까? 현재까지 이상 또한 수상하다기 보다는 바보같을 뿐이다.
 

이렇게 살펴 보고나니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 구실 제대로 못하는, 아니 남자 구실을 너무 잘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바보 삼형제> 같다. 이러니 <수상한 삼형제>는 <바보 삼형제> 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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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이유?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2160920131001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는 비판이나 비난을 하나 봅니다. 그런데 필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만큼 막장인 곳이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정작 우리의 현실이 막장이면서 그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상한 삼형제>는 막장 드라마가 아닙니다. 막장 드라마의 한계나 구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막장드라마라고 했을 때 적어도 드라마 자체의 '막장스러움' 과 드라마 내용의 '막작스러움' 을 언급한다고 봅니다. 즉, 드라마 자체의 막장스러움이란 드라마의 구성에 관한 것으로 이야기 전개상에 인과 관계나 개연성이 없이 우연들이 남발되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허구라고 하지만 그럴 듯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드라마 내용의 막장스러움입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 관계의 비상식적이고 엽기적인 행태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고 하는 비판이나 비난은 드라마 내용상의 '막장스러움' 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현찰과 도우미의 부부 관계나, 건강과 엄청난의 관계, 이상과 어영이의 관계등이 비상식적이고 심지어 엽기적이기까지 하는 관계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의 관계, 아니 <수상한 삼형제>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들의 관계가 막장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엄청난의 경우 그녀의 삶이 막장이라기 보다는 기구하다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차라리 이복 동생이 애인이 된다거나 하는 스토리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인간관계가 영화나 소설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상상을 해봅시다. 물론 유명 영화감독과 소설가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수상한 삼형제>라는 영화와 소설이 막장스럽다고 비난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비난이나 비판을 하더라도 문학성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올드보이>나 소설가 김영하의 소설 <오빠가 돌아왔다>는 인간관계로 놓고 볼 때는 그야말로 막장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나 소설을 중고등학생들도 보고 읽습니다. 예술성있는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말입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그리는 인간관계의 엽기성은 현실과 엄청나게 이질적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파고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낯설고 이질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찬사를 받고 문학적이라 칭송을 받습니다. 사실 이걸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엄청나게 막장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21507112124326
 

그렇다면 <수상한 삼형제>는 그 내용상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구성상 이질적이고 엽기적인 인간 관계를 설득력있고 자연스럽게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수상한 삼형제>의 구성에도 그다지 치명적인 흠이 없다고 봅니다. 우연과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좀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구성이 막장일 정도로 엉망진창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수상한 삼형제>를 '막장스럽다' 고 여기게 하는 것일까요? 필자의 판단으로 봤을 때 안방극장이라는 상황이 이러한 막장 운운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막장 드라마라고 낙인 찍힌 드라마들이 대부분 다 그렇습니다. 그 내용이 안방극장과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드라마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그런 부분도 있지만) 드라마 외적인 상황이 빗어놓는 문제인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보는 주말 드라마에 비도덕이고 비윤리적이며 엽기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이 막장스럽다는 것이지요.


좀 더 분명히 해두어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막장스러운 현실을 영화로 소설로 드라마로 반영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은 막장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가족과 함께 보는 주말 드라마의 내용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엽기적이라는 사실이 거북스럽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드라마 자체를 막장이라고 비난하기 보다는 시간대에 맞게 드라마를 만들어라고 주문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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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이유?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2160920131001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는 비판이나 비난을 하나 봅니다. 그런데 필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만큼 막장인 곳이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정작 우리의 현실이 막장이면서 그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상한 삼형제>는 막장 드라마가 아닙니다. 막장 드라마의 한계나 구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막장드라마라고 했을 때 적어도 드라마 자체의 '막장스러움' 과 드라마 내용의 '막작스러움' 을 언급한다고 봅니다. 즉, 드라마 자체의 막장스러움이란 드라마의 구성에 관한 것으로 이야기 전개상에 인과 관계나 개연성이 없이 우연들이 남발되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허구라고 하지만 그럴 듯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드라마 내용의 막장스러움입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 관계의 비상식적이고 엽기적인 행태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이라고 하는 비판이나 비난은 드라마 내용상의 '막장스러움' 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현찰과 도우미의 부부 관계나, 건강과 엄청난의 관계, 이상과 어영이의 관계등이 비상식적이고 심지어 엽기적이기까지 하는 관계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의 관계, 아니 <수상한 삼형제>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들의 관계가 막장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엄청난의 경우 그녀의 삶이 막장이라기 보다는 기구하다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차라리 이복 동생이 애인이 된다거나 하는 스토리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인간관계가 영화나 소설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상상을 해봅시다. 물론 유명 영화감독과 소설가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수상한 삼형제>라는 영화와 소설이 막장스럽다고 비난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비난이나 비판을 하더라도 문학성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올드보이>나 소설가 김영하의 소설 <오빠가 돌아왔다>는 인간관계로 놓고 볼 때는 그야말로 막장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나 소설을 중고등학생들도 보고 읽습니다. 예술성있는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말입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그리는 인간관계의 엽기성은 현실과 엄청나게 이질적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파고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낯설고 이질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찬사를 받고 문학적이라 칭송을 받습니다. 사실 이걸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엄청나게 막장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21507112124326
 

그렇다면 <수상한 삼형제>는 그 내용상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구성상 이질적이고 엽기적인 인간 관계를 설득력있고 자연스럽게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수상한 삼형제>의 구성에도 그다지 치명적인 흠이 없다고 봅니다. 우연과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좀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구성이 막장일 정도로 엉망진창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수상한 삼형제>를 '막장스럽다' 고 여기게 하는 것일까요? 필자의 판단으로 봤을 때 안방극장이라는 상황이 이러한 막장 운운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막장 드라마라고 낙인 찍힌 드라마들이 대부분 다 그렇습니다. 그 내용이 안방극장과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드라마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그런 부분도 있지만) 드라마 외적인 상황이 빗어놓는 문제인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보는 주말 드라마에 비도덕이고 비윤리적이며 엽기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이 막장스럽다는 것이지요.


좀 더 분명히 해두어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막장스러운 현실을 영화로 소설로 드라마로 반영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은 막장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가족과 함께 보는 주말 드라마의 내용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엽기적이라는 사실이 거북스럽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드라마 자체를 막장이라고 비난하기 보다는 시간대에 맞게 드라마를 만들어라고 주문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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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걸어서 하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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