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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지붕뚫고 하이킥

지붕킥, 세경이 말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의미는?




지붕킥, 세경이 말한 시간이 멈춘다는 것의 의미는?







실망스러운 표현이겠지만, 지붕킥의 결말은 막장이다. 이 '막장' 이라는 의미는 다소 중첩적이라 할 수 있다. 내용상으로 막장이지만 또한 막장을 막장스럽게 하는 전제조차도 부족한 막장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소설이든 영화이든 드라마이든 내용상 막장인 경우는 많다. 대부분의 폭력영화가 그렇다. 예를 들면 <똥파리> 같은 경우를 보면 그 내용의 막장스럽기가 치가 떨릴 지경이다. 그런데 그 <똥파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가 되는 것은 막장스럽게 하는 과정이 아주 설득력있게 잘 짜여졌다는 말이다. <올드보이>의 폭력신은 대단히 혐오스러울 정도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의 반열에 오른 건 그 막장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득력이다. <양들의 침묵> 시리즈도 마찬가지이다. 혐오스럽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 속에 도사리는 악의 본질이 그토록 혐오스럽다는 면에서 현실적인 설득력 을 가진다. 그러니 내용이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그 작품성까지 막장이라고 하면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설득력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나가면서 막장스러움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다. 이 말은 작가는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작품을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붕킥> 결말의 핵심은 시간을 멈추면서 '지훈과 세경' 에게 영원성을 확보해 주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세경과 지훈의 커플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편이었지만 이러한 막장같은 파행적인 결말에 대해서는 도저히 혐오스러움만 느낄 뿐이다.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과잉된 감정의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시간을 멈추기 위해 차를 타고 빗길을 질주하던 순간이 아니었다. 힘들지만 시간과 마주하기 위해 차를 탄 것이다. 타이티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빠와 신애와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또 사랑하는 정음과의 만남을 위해 잠깐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차를 타고 있다는 의미는 너무 가슴이 벅찬 상황인 것이다. 비가 오게할 상황도 전혀 아닌 것이다. 좋은 날씨에 해가 쨍쨍 나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갑자기 허무주의가 필연적으로 나타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도대체 누가 시간을 멈추었는가? 시간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시간을 멈추었는가? 시간을 멈춘다는 것은 예술의 궁극적인 가치와도 통하는 것이다. 포착되는 순간은 아주 짧지만 또 그렇기에 영원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진이나 그림, 조각의 미가 그런 것이다. 이 예술적 미는 대단히 조화로워야 한다. 그 자체의 이유와 필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는 어떤가? 수 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포착된 영상들이다. 흩어져 있는 일상의 행동들을 설득력있게 이어서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과정은 그 자체가 조화로움이다. 원인이 없이 불쑥 결과가 나타나는 따위의 것을 영화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의미있는 구조물이 영화이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조화와 설득력이라는 것이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붕킥의 결말은 조화와 설득력이 깨어져 버렸다. 지훈과 세경은 마치 꼭두각시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 조종되고 말았다. 지훈과 세경이 시간을 멈춘것이 아니라 작가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시간을 멈추어 버린 것이다. 줄을 끈어 버린 것이다. 화장실에라도 가고 싶었을까? 비유하자면 열심히 살려고 하는 존재들에게 자살을 강요한 셈이다. 세경과 지훈이 시간을 멈추고자 한다면 그 행동이나 사고에 내적인 필연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경이나 지훈은 리모콘으로 조종되는 로보트처럼 시간을 멈추기 위해서 자살을 해버린다. 감독의 말대로 그들이 시간을 멈추려고 했다면 자살이어야 하는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영원성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려고 하는 주인공들을 타살해 버렸으니 그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시간을 멈춘다는 것은 영원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이기도 하다. 갇혀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조각 속에, 시어 속에, 소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장을 멈추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나 성장이 중단 된다는 것이다. 영원성이 중단이고 죽음이기도 하다는 것 참 아이러니하다.  마치 궤변 같기도 하다. 지훈과 세경이 시간을 멈추면서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차안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이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가 강요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시간을 멈춰버리려고 참 황당한 장면을 연출했다. 앞 뒤 상황 재지않고 시간만 멈추어 놓으면 그들은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영원성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