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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지붕뚫고 하이킥

지붕킥, 커플들의 불꽃놀이?


 

지붕킥, 커플들의 불꽃놀이?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21608113715442


지붕킥은 커플들이 향연을 펼친다. 대부부분의 드라마들이 커플을 중심으로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전개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주 커플을 위해 보조적인 커플들이나 등장인물들이 존재하는 것이 대분부이다. 또한 너무 세속적이고 현실적으로 치닫기도 한다. 막장이란 소리를 듣기도 한다. 예를 들면 <수상한 삼형제>의 커플들이 그렇다. 많은 커플들이 등장하지만 아름답다기 보다는 너무 세속적이다. <추노>도 마찬가이다. 대길과 언년의 사랑이 주심축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붕킥은 어느 특정한 커플들이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커플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단순히 커플의 애증관계, 즉 사랑과 이별을 위해 다른 인간 관계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커플들의 이야기가 그 자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커플들이 중심들인 셈이다. 시츄에이션 코메디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중심이 없어서 좋다. 그래서 지붕킥은 커플들의 향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순재와 자옥 커플, 보석과 현경 커플, 지훈과 정음 커플, 준혁과 세경 커플, 광수와 인나 커플, 신애와 해리, 줄리엔과 신애 이 모든 인간관계들이 참 아름답게 펼쳐진다. 선악과 중심이 확연하게 정해진 단순한 멜로드라마와는 달리 커플들 나름대로의 슬픔과 기쁨, 사랑과 아픔, 꿈과 희망 등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순재와 자옥의 커플은 노년 커플이다. 노년의 커플이 대체로 양념거리로 등장하는 드라마와는 달리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커플은 우리사회의 변화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준다. 소외받는 노년의 삶과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한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2151915341001


필자 개인적으로는 신애와 줄리엔의 관계가 참 애정이 가는 커플(?)이다. 우리 사회가 다소 무관심하게 취급하고 있는 소녀가장이나 극빈자 아이들과 관련하여 신애를 생각하는 줄리엔의 인간적인 모습이 너무 좋다. 원어민 교사로 생활하는 줄리엔이 신애와 세경을 챙겨주는 모습은 우리가 배워야할 모습이라는 면에서 부끄럽기도 하다. 입양되어 가는 아이들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버린 어린 아이들이 다른 나라들에 입양되어 간다는 사실은 신애와 줄리엔의 관계를 보며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세경과 지훈의 관계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이 소통되지 않는다면 그 감정이란 아픔이 되어 혼자서 간직하면서 삭여야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감정이란 흐르고 흘러야지 막혀버리면 병이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세경이 그런 감정의 아픔을 통해 감정이 사랑에 있어 모든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체득해가는 모습도 좋다. 자신의 처지와 사회의 인식(가정부라는 사회적인 인식), 가난 이 모든 환경에 대해 세경은 내심 단호한 결의를 간직할 것이다. 세경이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 다소 세속적으로 적응하는 것이겠지만 피할 수 없는 성장의 과정이다.


광수와 인나 커플도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할 커플이다. 동거 커플에 대한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김병욱 PD의 말로는 인나가 광수의 하숙집에 자주 놀러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동거 커플처럼 여겨진다. 다소 실험적인 커플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커플이 아닐 수 없다. 유교적인 문화에서 성문화가 다소 폐쇄적인, 그러나 위선에 가까운 성개방성이 저변에 깔려있는 우리 사회에 이러한 동거커플의 이야기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것이다.


지훈과 정음 커플, 신애와 해리, 현경과 보석 커플 모두 사랑스럽고 의미있게 다가오는 커플이고 관계들이다. 이렇게 많은 커플들이 주변부에서가 아니라 각자 중심에서 나름의 의미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중심이 없는 이 지붕킥이 포스트모던하다고 하면 너무 지나칠까?